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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General Edu > Volume 17(6); 2023 > Article
대학 교양 교과의 성격과 준거

Abstract

이 글은 교양교과의 준거를 탐구하여 교양교과의 정체성을 명료화, 공고화하기 위한 연구이다. 교양교과의 형성과 역사적 전개를 고찰하여 교양교과의 성격을 도출하고, 왜곡 요인을 규명함으로써 교양교과의 준거를 정립하고자 하였다. 교양교과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자유학예의 전통에서 비롯되어 자유교과, 인문교과, 일반교과 그리고 중핵교과가 4중 얽힘의 다중 나선적 중층구조를 형성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자유학예의 통시적 전개와 공시적 경험을 통하여 다양하게 변용되어 온 교양교과는 진리지향성, 인격지향성, 보편지향성 그리고 핵심지향성이라는 고유의 성격을 갖는다. 교양교과의 본질적 성격을 고양하고 선양하기 위해서는 교양교과를 왜곡하는 분과적 전공성, 표피적 실용성, 불합리적 편의성, 총체적 무책임성부터 혁파해야 한다. 교양교과에 대한 고질적인 왜곡을 극복하고 본질적인 성격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교양교과의 준거를 정립해야 한다. 교양교과 준거 정립의 출발점은 ‘교양교육에 적합한 교과가 있다’는 전제를 인정하는 것이다. 교양교과는 교육적, 목적적, 문명적, 학술적, 대상적 준거를 통하여 그 적합성을 입증한다. 교양교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내면화하면서 자기 고유의 인격을 형성하는 역동적 복합체이다. 디지털 전환의 시대, 교육적 진정성이 교양교과다운 교양교과를 만든다.

Abstract

This article explores the criteria of general education courses to clarify and solidify the identity of these courses. The study aims to derive the nature of general education courses by examining their formation and historical development, identifying distorting factors, and establishing criteria for them. General education courses have evolved from the liberal arts traditions of ancient Greece and Rome, forming a complex multilayered structure with four intertwining layers: liberal subjects, humanities subjects, general subjects, and core subjects. Originating from the comprehensive development of the liberal arts and shared experiences, general education courses, have possessed distinctive characteristics such as truth-seeking, personality development, universality, and core orientation since their inception.
To preserve and enhance the essential nature of general education courses, it is crucial to eliminate distortions such as narrow specialization, superficial practicality, frivolous convenience, and overall irresponsibility. Overcoming persistent distortions and restoring the fundamental nature of general education courses requires establishing criteria. The starting point for this is acknowledging the premise that there are certain courses suitable for general education. General education courses demonstrate their suitability through educational, purposive, civilizational, academic, and objective criteria. These courses serve as dynamic complexes that internalize universal human values while shaping one’s unique personality. In the era of digital transformation, the authenticity of education must strive to create genuinely characteristic general education courses.

1. 머리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곳에 들어오지 마라.”
기원전 387년, 플라톤이 대학의 원조격인 ‘아카데메이아(academeia)’를 세우고 정문에 새긴 경구이다. 이 경구의 교육적 의미는 깊고도 넓다. 우선 교육의 본원적 가치에 대하여 성찰하게 한다.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의 납득할 수 없는 죽음을 목도하면서, 당대의 아포리아(aporia)를 타개하기 위한 방책을 교육에서 찾았다. 교육을 통해 시민들이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을 계발하고, 편견과 무지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삶의 원리를 깨치기를 간구했다. 교육받은 사람(an educated person)을 양성함으로써 정의가 구현되는 ‘아름다운 나라(kallipolis)’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그러면서 어떤 교과가 그 교육에 적합한지를 분명하게 천명하였다. 플라톤은 기하학을 마음의 눈을 틔우는 핵심 교과로 보았다. 아울러 고등교육의 수학(修學) 능력으로 기하학적 지식을 제시하였다. 고등교육은 단순히 몰라서 배우는 초급적 교육이 아니라, 기초적인 학습 능력을 담지하고 있어야 배울 수 있고, 더 배워야 제대로 알 수 있는 고등한 교육임을 함의하고 있다. 아카데메이아의 모토는 우리에게 성찰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21세기 ‘포스트 휴먼’ 시대의 대학은 어떤 교양교과를 가지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과연 지금의 대학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교양교과는 안녕한가를 묻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장 가치 있는 교양교과는 어떤 교과인가를 묻고 있다.
교과는 학교교육을 위해 인류가 고안한 제도화된 교육적 문법이다. 교과는 교육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교육 경험의 개념적 체계로 조직화되었다. 교과는 좁은 의미에서는 교육내용을 지칭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교육적 경험의 총체를 함의한다. 교과는 교육의 목적뿐만 아니라 교육의 내용과 학습 활동 그리고 교수 방법이 역동적으로 녹아들어 있는 교육 활동의 총체적 조직체이다. 학교교육은 교과를 통해 교육을 수행한다. 즉 교과는 교육이 수행될 수 있는 최적의 단위인 것이다. 교과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지식을 학문분야에 따라 범주화하여 배열하고,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세부적인 단위로 쪼개어, 각각의 순서에 맞게, 전체적으로 조직해 놓은 것으로 이해된다(Dewey, 1916: 323). 그러나 교양교과의 경우에는 그 학문분야가 특정되어 있지 않다는 난점에 봉착한다. 교양교육이 아직 학문으로서의 정체성을 온전하게 확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근본적인 한계이다.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기초학문분야가 교양교육의 원천적 내용이라고는 하지만, 교양 교과를 조직화하는 단계에 접어들면 구체적인 지침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교양교과의 성격과 준거를 특정 학문이 아니라 역사적 근거에서 찾으려는 다양한 연구들이 수행되어 왔다. 교양교육의 원형과 변용을 탐구하며(손승남, 2011), 3학 4과의 형성과 전개를 고찰하고(송성수, 2022; 한기철, 2017; 한철희, 2012), 중세 대학의 학문분류와 교과과정을 연구하고(박승찬, 2003), ‘철학의 여왕과 리버럴아츠 7과목’을 천착하기도 하였다(한수영, 2020). 이들의 연구는 각각의 장점을 가지고 교양교육의 이론화에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교양교과의 차원에서 그 성격과 준거를 규명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교양교육의 존재 의의는 교양교과를 통해 나타난다. 교양교과가 의미 있고 가치로울 때 교양교육도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지금까지 교양교육의 본질적 가치와 시대적 사명을 역설한 다양한 논의들이 있었지만, 교양교과, 그 자체에 대해서는 연구를 등한시해 온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는 교양교과의 형성과 역사적 전개를 고찰하여 교양교과의 성격을 도출하고, 교양교과의 왜곡 요인을 규명함으로써 교양교과의 준거를 정립하기 위한 연구이다. 먼저 2장에서는 교양교과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고찰을 통해 교양교과의 경험적 근거를 4가지 교과 유형으로 확보하고자 한다. 이어서 3장에서 교양교과의 본질적 성격을 4가지 차원에서 천착하고, 4장에서는 교양교과의 성격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뒤틀린 현실을 성찰적으로 톱아본다. 5장에서는 교양 교과가 견지해야 할 준거를 제시함으로써 대학 교양교육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2. 대학 교양 교과의 형성과 전개

인류는 태초에 삼라만상을 천차만별로 구분하고, 분별하고, 이름 짓고, 가치를 부여하면서, 지식을 창출하고 문명을 일구어냈다. 문명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이상이었다. 문명 공동체는 ‘교육’을 발명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교육은 ‘교과’라는 틀(framework)을 통해 문명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왔다. 교양교과는 인류의 문명이라는 풍부한 원천에서 생성되고 진화하였다. 따라서 교양교과의 가치를 확인하고 정당화하는 과업은 문명에서 출발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파이데이아(paideia)를 통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길을 개척하면서 교양교육의 유장한 역사를 개창했다. 파이데이아는 리버럴 에듀케이션(liberal education), 후마니타스(humanitas), 리버럴아츠 에듀케이션(liberal arts education), 빌둥(Bildung), 제너럴 에듀케이션(general education) 등 자유교육의 역사적 전개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변용되어 왔다. 교양교육의 변화는 곧 교양교과의 변화이다. 교양교과의 본류는 단연 자유학예(artes liberales)이다. 자유교육의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교과의 차원에서도 자유학예는 크게 자유교과(liberal subjects)1), 인문교과(humanities subjects), 일반교과(general subjects) 그리고 중핵교과(core subjects)로 진화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자유학예는 학문의 발전, 시대적 요구, 지역적 특성 등을 반영하여, 대동소이하지만 그 강조점을 달리하면서 다중 나선적으로 분화되고 통섭하는 진화의 과정을 거듭하여 왔다. 교양교과의 변화는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역사의 산물이다. 교양교과의 성격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차원에서 전개된 자유학예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교양교과는 자유학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해체, 재구성, 심화, 확장시키기 위한 교양교육적 노력이다. 4중 얽힘의 다중 나선적 중층구조로 표상되는 교양교과의 형성과 전개의 양상을 도해하여 나타내면 [그림 1]과 같다.
[그림 1]
교양교과의 형성과 전개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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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자유교과

자유교과는 고대 그리스의 자유학예에서 발원하여 중세 대학에서 7자유교과(septem artes liberales)로 제도화되었다. 자유교과는 기원전 5세기 이른바 ‘교육의 세기’에 기원하여 거의 천년에 거처 서서히 형성된 교양교과의 원형이자 구원의 이상이다. 파이데이아는 자유학예(artes liberales)와 비자유학예(artes illiberales)를 구분하고, 자유학예를 통해 자유시민의 자유로운 마음을 형성하고자 하였다.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자유학예는 무지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교과이며, 생산적 노동이나 단순 반복적 직공적 업무로부터 자유로운 교과이다. 반면에 비자유학예는 주로 노예들이 종사하는 분야의 기계적인 기예(mechanical arts)에 해당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유학예와 비자유학예는 구분되어야 마땅하다고 전제하고, 기계적인 기예라 함은 인간의 신체를 열등한 상태로 만드는 활동,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생계적 활동이라고 역설하였다.
자유학예는 인간으로서의 마음과 영혼의 아레테(arete)를 추구하는 자유인의 활동이었다. 인류는 인간 고유의 언어를 활용하여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삶을 영위하였으며, 수(number)를 발명함으로써 지식을 추상하고 진리를 추론하는 마음의 눈을 틔웠다. 언어를 통한 실제적 활동은 문법(grammatica), 논리학(logica), 수사학(rhetorica) 등 세 가지 길이 만나는 3학(trivium)으로 발전하였고, 수(數)를 통한 이론적 활동은 산술(arithmetica), 기하학(geometria), 천문학(astronomia), 음악(musica) 등 네 가지 길이 만나는 4과(quadrivium)로 발전하였다.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에서는 파이데이아의 자유학예를 가르치는 두 개의 사설 학교가 설립되었다. 하나는 기원전 390년경에 이소크라테스(Isocrates)가 설립한 3학 지향의 수사학 학교이고, 다른 하나는 기원전 387년에 플라톤이 설립한 4과 중심의 아카데메이아다. 그리스의 자유학예는 로마로 전승되었고,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복음 전파와 성경 공부를 위한 준비 교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였으며, 중세 초에는 ‘7 자유교과’의 형태로 성립되어 중세 교육의 근간으로 자리 잡았다(한기철, 2017).
중세 대학은 고대로부터 물려받은 지식의 위계적 개념에 제도적 형식을 부여했다. 중세 대학의 교과목은 중세 고유의 독창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그리스, 로마적인 것과 교부들의 영향, 그리고 중세교육의 부흥기를 이룬 카롤링거 왕조 교육개혁의 종합적 산물이다(이석우, 1998: 302). 3학 4과는 공통적으로 교육의 입문적 기능을 수행하였으나, 점차 각각의 특성을 반영하여 불균등한 발전을 가져왔다(Leff, 1992: 308).
먼저 3학 교과 중에서 문법은 점점 쇠퇴의 길을 걸었고, 급기야 대학 밖 문법학교에서 배우게 되었으며, 수사학은 차츰 문법과 통합되면서 철학을 돕는 부수적인 역할만을 하게 되었다. 논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의 번역과 보급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크게 활성화되었다(이석우, 1998: 309-314). 13세기 중반 이후 전통적인 3학 이외에 자연철학, 도덕철학, 형이상학 등 3철학이 추가되었다. 4과 교과에서도 변화가 발생하였다. 로마 시대 이후 주로 수도원에서 담당해왔던 4과 과목은 주판 계산, 교회 달력, 단선율 성가 연습, 약간의 실용적인 기하학 등 아주 단순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Leff, 1992: 339). ‘제2의 수학’이라고까지 일컬어진 음악은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조화시키며 기쁨을 줄 뿐만 아니라 정신의 완성에도 필수적이라고 강조되었으며, 수학적, 기하학적, 화성적 비율의 관점에서 음악에 관한 이론적 요소가 지배적이었다. 산술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영역을 추구했다기보다는 절기 계산이나 천체 운항의 거리 등을 계산하는 등 점차로 점성학의 보조학문이 되어갔다. 기하학은 점성학, 천문학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진행되었다. 점성학, 천문학은 천체의 크기, 지구의 크기 등 천상에 대한 외경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학문이었다. 4과 중에서 중세 대학에서 가장 높은 관심의 대상은 음악과 천문학이었다. 이 두 과목은 이론적인 측면 못지않게 실용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여타의 두 분야인 산술과 기하학을 통합적으로 수용하였다(Leff, 1992: 343-350). 아울러 중세 대학에서는 교과목과 교재가 동일시되었으며, 보에티우스의 <음악론(De musica>, <산술론(De arithmetica>, 유클리드의 <요론(Elementa)> 등이 주요 교재로 사용되었다(이석우, 1998: 307-309).
20세기 이후 자유교과는 정신도야론, 지식의 구조론, 지식의 형식론 등 현대적 관점에서 다양하게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자유교육의 이론화에 앞장서 온 피터스는 규범적 준거, 인지적 준거, 과정적 준거를 통해 내재적 가치를 추구하는 자유교육을 정당화하였다(Peters, 1966). 피터스와 허스트는 인간의 경험과 지식을 이해할 수 있는 탐구 및 검증 방식으로 ‘지식의 형식’(forms of knowledge)이란 개념을 제시하고, 논리학과 수학, 자연과학, 인간과학, 역사, 종교, 문학과 예술, 철학, 도덕적 지식을 지식의 형식으로 제안하였다(Hirst & Peters, 1970; Hirst, 1965).

2.2. 인문교과

인문교과는 로마 시대 이래로 교양교과의 또 다른 명칭이었다. 자유 시민의 교양과 지식을 교육의 중심으로 놓았던 그리스의 파이데이아 체계가 로마에 와서 사람을 기르는 일을 교육의 중심에 놓는 후마니타스(humanitas) 체계로 변화하였다. 후마니타스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교육과 문화’라는 뜻으로 통칭한 사람은 키케로였다(안재원, 2010: 92-95). 키케로는 스투디아 후마니타티스(studia humanitatis)를 인간의 정신을 고귀하고 완전하게 해주는 학문이며 인간에게 가치있는 유일한 연구라고 극찬하였다(정연교 외, 2012: 4). 후마니타스는 실용적이며 실제적인 성격을 가진 수사학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키케로의 <연설가에 대하여(De Oratore>, 퀸틸리아누스의 <수사학 교육(Institutiones Oratioriae> 등에서 보여지듯이 수사학은 로마의 문화적 전통의 기본적 요소로 자리 잡았다(손승남, 2011: 103-105).
로마의 후마니타스에 교양교육적 의미를 확고하게 각인시킨 시기는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이다. 르네상스를 계기로 신학 중심의 스콜라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인간이 중심이 되는 인간 위주의 교육 운동이 일어났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후마니타스를 ‘인간성’, ‘인간다움’, ‘교양’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면서, 개인적으로는 교양있는 사람을 기르고, 사회적으로는 자유의식과 책임의식이 조화된 건전한 시민을 양성하고자 하였다(손승남, 2011: 132). 15세기 초에 스투디아 후마니타티스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바탕으로 한 문법, 수사학, 시, 역사, 도덕철학 등의 인문교과를 의미하게 되었다(손승남, 2011: 133).
인문교과의 발전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빌둥(Bildung)’이다. 빌둥은 도야, 교양, 인간 형성, 육성, 교육 등을 포괄적으로 함의한다. 훔볼트(Humboldt)는 빌둥을 ‘인간의 조화로운 발달’로 풀이했다. 19세기 중엽 신인문주의는 그리스, 로마 문화의 본질을 탐구하여 인간의 도야에 활용하고자 하였다. 인문교과를 통해 인간의 내면에 깃들여 있는 인간성을 계발함으로써 윤리적, 이성적, 미적으로 조화로운 참된 인간을 완성하고자 하였다. 로마적 후마니타스 전통을 강조한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다르게, 그리스적 문화를 더 선호한 신인문주의는 언어적 형식주의를 배격하고 고전을 탐구하며 고전어 수업을 현대화하려고 하였다. 또한 ‘인간은 시민 이전에 인간으로 길러져야 한다’는 루소의 언명을 기저로 스스로를 도야하는 전인적 인격 형성을 추구하였다(손승남, 2011: 141-155).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수학과 철학의 구분이 없었으며, 중세 르네상스 시기에는 인문학과 과학을 분명하게 구별하지도 않았다. 인문의 이름으로 인문학과 과학이 동시에 탐구되었다. 다만 학문의 발달 과정상 과학보다는 인문학이 주류를 형성하였을 뿐이다. 과학이 점차 발전함에 따라 인문학과 과학이 ‘두 문화’(Two Culture)적 경향을 나타내고 있지만, 리버럴아츠나 후마니타스도 인문학과 과학을 통칭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인문교과를 다룬다. 베이컨은 역사는 사람을 현명하게 하고, 시는 지혜롭게 하며, 수학은 치밀하게 하고, 자연과학은 심원하게 하며, 윤리학은 중후하게 하고, 논리학과 수사학은 담론에 능하게 한다고 했다(Bacon, 2000). 1636년 설립 당시 하버드 대학은 그리스어, 히브리어, 수사학, 논리학, 물리학, 윤리학, 정치학, 대수학, 기하학, 천문학, 역사 등의 인문교과를 공통 필수과목으로 개설했다. 1828년 예일 대학교는 ‘Yale Report’를 통해 고전문학, 수학, 자연과학, 영어, 논리학, 정신철학, 수사학, 웅변술, 작문 등의 인문교과를 옹호하였다.

2.3. 일반교과

일반교육(general education)하면 곧 미국을 떠올리지만 그 연원은 유장하고 광범위하다. 보통적이고 보편적인 교육을 지향하는 일반교육은 고대 그리스의 엔키클리오스 파이데이아(enkyklios paideia)에서 비롯되어, 프랑스 대혁명의 교육개혁으로 공론화되어 제도화되었으며, 미국의 일반교육으로 재해석되고 집대성되었다.
교양교육의 고향이자 발상(發祥)인 엔키클리오스 파이데이아는 자유교과, 인문교과 등 모든 교양교과의 공통 원천이지만 특히 일반교과의 차원에서 일반성의 근원이 된다. 그리스인들은 일반적이고 정신적인 기초교육과정을 ‘엔키클리오스 파이데이아’라고 불렀다. 엔키클리오스는 기하에서 말하는 ‘둥근형’의 어원에서 나와 ‘일반적인’ 혹은 ‘보편적인’ 의미로 확장된 개념이다(손승남, 2011: 46).
엔키클리오스의 이념은 18세기 말 근대적 교육 패러다임으로 제도화되었다. 민족 국가가 출현하고, 과학적 합리주의와 계몽사상이 확산되고, 시민 계급이 형성됨에 따라 국민교육제도가 등장하였다. 근대적 시민의 탄생함에 따라 그에 걸맞는 자질과 역할을 공교육 원칙, 의무교육 원칙, 무상교육 원칙 등을 통해 육성하고자 하였다. 특히 프랑스는 1789년 대혁명을 통해 구체제(Ancien Regime)의 귀족 교육, 기독교 교육, 인문주의 교육을 혁파하고 시민교육과 일반교육의 이념을 제도화하였다. 교육은 ‘공공의 것(res publica)’으로서 국가의 관리하에 모든 시민을 위한 ‘일반교육(éucation gééale)’이 되어야 하며, 공적 이성으로 무장한 공화국의 시민을 길러내는 공적 활동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이기라, 2015:12). 교육 내용적으로도 기독교 중심주의와 르네상스 인문주의에서 벗어나 이성과 합리성을 강조하며 과학적 사고 중심의 대중적 시민교육을 주창하였다. 예컨대 백과전서파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는 과학이 모든 사람에게 최고의 가치가 있다고 전제하고, 과학, 수학, 역학, 수력학, 천문학, 자연사, 실험물리학, 화학, 해부학, 논리학, 분석문법, 모국어 연구, 그리스어, 라틴어, 수사학, 시학 등의 교과목을 9년에 걸쳐 연차적으로 이수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하였다(정연교 외, 2012:12).
프랑스 대혁명에서 공론화된 시민교육적 일반교육의 이념은 전 세계로 확산되어 근대적 국민교육제도의 기틀을 형성하였다. 미국은 초⋅중등 교육은 물론 대학교육 차원에서도 일반교육을 제도화하였다. 1776년 독립을 선언한 미국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민주주의는 근대화되었고 산업혁명은 가속화되었다. 남북 전쟁(American Civil War)의 성과도 미국적 발전에 기여했다. 교육적 차원에서도 대중교육, 시민교육의 기반이 형성되었다. 1862년 모릴법(Morrill Land-Grant Colleges Act)에 의한 교육의 실용화, 1869년 엘리엇(Eliot)의 선택 교과제(elective system)에 의한 학생의 선택의 자유 확대, 1909년 로웰(Lowell)의 ‘집중과 배분 이수(concentration and distribution)’에 의한 전공교육과정과 교양교육과정의 분리 제도화 등 일련의 교육 입법적 조치에 따라 미국의 교양교육은 패러다임적 전환을 추진하였다. 고등교육의 대중화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질적인 학생이 증가함에 따라, 이들에게 일반적인 지적 공감대를 형성하여 상호소통을 원활히 하고, 미국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주고자 하였다(백승수, 2020a: 82). 미국의 일반교육은 1945년 하버드 대학의 보고서 ‘자유사회에서의 일반교육(General Education in a Free Society)’을 통해 집대성되었다(Harvard University, 1945).
대학 교양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Red book’은 일반교육을 미국의 실용주의적 풍토와 대중교육적 상황에 맞게 변용하여 ‘미국형 자유교육’으로 재해석하였다. 소수 엘리트 중심의 고전적 자유교육을 보통 시민 중심의 일반교육으로 전환시켰다. 일반교육을 전문교육, 직업교육과 구별하고, 일반교육은 전공교육과 함께 대학교육의 유기적 구성체임을 천명하였다. 일반교육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대상의 일반성과 지식의 공통 기반적 보편성을 강조한다. 교양교과에 있어서는 성격상 협소하게 전문적인 과목들은 배제되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다양한 학생들이 공통의 교육적 경험을 형성하고 인류의 문화 유산을 향유할 수 있는 과목들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구체적으로 인문학 영역에서는 고전 명저, 문학, 철학, 미술, 음악을, 사회과학 영역에서는 서구 사상과 제도, 역사, 정치, 미국의 민주주의, 인간관계론을 그리고 수학 및 과학 영역에서는 수학, 물리과학 원리, 생물과학 원리를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고 제시하였다(Harvard University, 1945).

2.4. 중핵교과

자유학예에 기원을 두고 있는 교양교과는 인간과 세계의 심층적 이해를 통해 질서와 조화를 익히는 교과이어야 한다. 서로 유리되고 분절되어 있는 파편화된 지식으로는 인간과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교양교과로 기초학문을 강조하는 이유는 인간, 사회, 자연을 조화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통합된 안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Whitehead(1929)는 교양(culture)은 사고의 활동이자 아름다움과 인간적 정서에 대한 감수성이라고 규정하고 단편적인 지식은 교양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강조했다.
중핵교과는 분과적 학문 중심이 아니라 통합적 주제 중심이다.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학습을 지양하고,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유기적으로 관련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종합적, 통합적 학습을 강조하며, 일반적으로 학문적 공유 지평이나 사회적 필요 및 문제해결적 주제를 중핵으로 삼는다(백승수, 2020a: 84). 일반교과에서 나타나는 교과 구성의 방만성과 과목 이수의 방종적 경향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접근이었다. 교육받은 사람으로서 반드시 배워야 하는 지식과 경험이 있음을 전제하고 중핵적 통합성과 필수적 의무성을 강조한다.
대학의 중핵교과는 1919년 컬럼비아 대학의 ‘현대문명(contemporary civilization)’ 교과에서 태동되어, 1936년 시카고 대학 허친스 총장의 ‘위대한 저서(Great Books)’ 프로그램으로 전개되었으며, 1978년 하버드 대학의 ‘중핵교육과정 보고서(Report on the Core Curriculum)’로 발전하였다. 허친스 총장은 ‘마지막 학교 경험으로 교양교육’, ‘오직 교양교육 그 자체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교양교육’을 목적으로 위대한 저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모든 학생이 공통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하였다(백승수, 2020a: 84-85).
1979년 하버드대학은 교양인으로 갖추어야 할 지식과 사고하는 습관을 함양하는 중핵교육과정을 도입했다. 중핵교과제는 모든 학생들에게 공통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기본적인 주제를 설정하고, 분리 제공되던 교과목들로부터 주제에 맞는 자료를 이끌어 내고 결합하는 교과과정이다(Rosovsky, 1996: 192). 당시의 중핵교과 영역은 문학과 예술, 과학, 역사 연구, 사회 분석, 외국 문화, 도덕 추론 등 6개 영역이었다. 한편 하버드대학은 2007년 중핵교과제를 변형하여 주제(subject)를 강조한 신교양교육(new general education)을 시행했다. 8가지 영역은 ① 심미적, 해석적 이해(aesthetic and interpretive understanding) ② 문화와 신앙(culture and belief) ③ 경험적, 수학적 추론(empirical and mathematical reasoning), ④ 윤리적 추론(ethical reasoning) ⑤ 생물계의 과학(science of living systems) ⑥ 물리 세계의 과학(science of the physical universe) ⑦ 세계의 사회들(societies of the world) ⑧ 세계 속의 미국(the United States in the world) 등이다(harvard university, 2007).
중핵교과는 지식의 급속한 팽창과 융합화, 비서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의 증대 등 지식 지형의 변화와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여 교양교육의 사회적 적실성을 제고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중핵교과의 요체는 중핵에 있다. 무엇을 중핵으로 규정할 것인가가 교과의 수준과 적합성을 좌우한다. 학업기초적 도구과목을 교양 필수과목으로 부과한다고 해서 중핵교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핵교과는 전공을 초월한 공통의 주제를 공유함으로써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는 자율적 개인이자 공동체의 책임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지적 능력을 배양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정연교 외, 2012: 31).
경희대가 2011년 ‘인간의 가치탐색’, ‘우리가 사는 세계’라는 모범적인 중핵교과를 개설한 이래로, 디지털 전환, 인공지능의 확산, 초연결 사회의 도래 등 지식 지형이 급변함에 따라 ‘인간사회자연의 이해’, ‘빅 퀘스천(Big Question)’, ‘자유정의진리’ 등 융합지향적인 중핵교과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아울러 경희대에서 제안한 교과 조직의 6대 원칙인 ‘학제성의 원칙, 지구성⋅다양성⋅복잡성의 원칙, 지평융합의 원칙, 비직선성의 원칙, 문제탐색의 원칙, 핵심 공유의 원칙’은 특히 중핵교과 조직시 규범적 지침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3. 대학 교양 교과의 성격

교양교육은 어느 누구의 인위적인 고안물도 아니고 어느 집단의 교조적인 창작물도 아니다. 교양교육 그 자체가 유장한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서서히 형성되어 지속적인 변천을 겪어온 문명의 결실이기 때문에 교양교과의 성격도 인류의 경험적 근거에 터하여 종합적으로 고찰하여야 그 성격을 올곧게 규명할 수 있다. 교양교과의 형성과 전개에서 확인하였듯이 교양교과는 2500년을 이어온 인류의 가치로운 문화가 역사적으로 축적된 문명의 증거이다. 어떤 형이상학적 원리와 규칙에 의해서 연역적으로 설계된 것이라기보다는 문명의 진보와 학문의 발달에 의하여 경험적으로 체계화된 개념의 구조물이다. 교양교과는 그리스의 자유학예의 전통에서 비롯되어 자유교과, 인문교과, 일반교과 그리고 중핵교과가 4중 얽힘의 다중 나선적 중층구조를 형성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자유학예의 통시적 전개와 공시적 경험을 통하여 다양하게 변용되어 온 4가지 교과 유형에 근거하여 교양교과의 성격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교양교과는 진리지향적 성격을 갖는다. 교양교과의 원형인 리버럴아츠는 본질적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사고 기반의 지적 활동이다. 인간 고유의 특징인 이성을 통하여 인간 그 자체를 이해하고 우주 만물을 탐구하고자 하였다. 순수한 사고 활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궁구하고 세상의 질서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통해 인간이 지향하는 지고지순한 경지를 탐색하였으며, 피터스는 자유교과의 내재적 가치를 통해 지식 그 자체를 추구하였다. 자유교과의 전통에서 확인하는 진리지향성은 마음의 계발이며 지적 탁월성의 추구이다. 따라서 교양교과는 고등적인 사고력을 계발하며 지적인 학술성을 담보하여야 한다. 인류 문명의 가치로운 지식을 통해 교육받은 사람으로서의 마음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진리를 지향하는 마음은 인간 본연의 자유로운 마음이며 무지와 편견으로부터 해방된 마음이다. 직업적 유용성이나 도구적 효용성을 따지지 않고 진리 그 자체를 탐구하는 적극적인 자유를 추구한다.
둘째, 교양교과는 인격지향적 성격을 갖는다. 교양교과는 사람이 되어가는(becoming) 문화적 활동이다. 교양교육은 인간성을 고양하고 인간을 자유롭게 하며 인류 문화를 선양하는 숭고한 고등 정신이다(백승수, 2020a). 인문교과의 전통에서 발견하는 인격지향성은 사람됨의 품성을 도야하는 자기완성의 과정이다. 인간만이 되어가는 존재이다. 칸트가 갈파하였듯이 인간은 교육을 통해 인간이 되어간다. 인간이 되어가는 교육이 바로 교양교육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형성하면서 자기를 완성하고 인간이 된다. 르네상스는 인간성의 재발견이며 인문 정신의 회복이다. 훔볼트의 빌둥은 인간성의 도야이며 인격의 형성이다. 사람됨에 이르는 과정이며 자기를 완성하는 전제이다. 고등교육법에서는 대학의 목적을 ‘인격의 도야’라고 명시하고 있다.2) 교양교과는 품격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인류의 발명이며, 인간의 아름다운 삶을 가꾸어나가는 자기완성의 길이다. 교양교과는 사람됨을 배워서 몸에 배게 하는 체화의 과정이다. 아는 것을 넘어서 하는 것의 차원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교양교과는 인성교육의 기반이 되며 가치교육의 지향을 공유한다.
셋째, 교양교과는 보편지향적 성격을 갖는다. 교양교과는 교육받은 사람으로서 세계와 소통하는 사회적 활동이다. 교양교과는 인간과 자연과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지적 기반을 통해 사회적 존재의 기본기를 형성하며 균형 잡힌 주체로 바로 설 수 있는 자기 안목의 토대를 마련해 준다. 교양교육은 민주 사회의 책임있는 시민으로서 마땅히 향유해야 할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공적 성격을 갖는다. 상식적인 통념이나 엘리트주의적 취향은 배제한다. 시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누구나 배워야 하고, 배울 수 있는 보편적인 필수 지식을 익힌다. 또한 보편적 지성을 지향하는 교양교과는 ‘무경계, 무장르적’인 특성을 나타낸다. 영역과 분야를 넘나들며 자유자재로 활용, 응용할 수 있는 순수학문, 기초학문의 검증된 성과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일반교과의 전통에서 발견하는 보편지향성은 인간다운 삶의 공통 토대이며 사회적 삶을 영위하는 공공적 질서이다. 따라서 교양교과는 시민교육을 포용하며 민주교육을 지향한다.
넷째, 교양교과는 핵심지향적 성격을 갖는다. 교양교과는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의미를 만들어내는 지속가능한 창조적 활동이다. 지식의 대폭발 시대에도 가치로울 수 있는 근본을 탐구하며, 급속한 지식의 반감기에도 유용할 수 있는 항구적인 가치를 추구한다. 문제의 본질을 발굴하고 근본적인 해법을 모색한다. 교양교과에서 지향하는 핵심성은 주변적이거나 지엽말단적인 호기심을 탐하지 않는다. 독단과 편견의 좁은 틀에 갇힌 끝 모를 깊이를 추구하지 않는다. 교양교과는 기초학문분야를 횡단적으로 가로지르면서 지적 지평을 연결하고 공유한다. 따라서 핵심지향성은 곧 융합지향성이다. 융합의 전제는 핵심이다. 핵심이 있어야 융합이 일어난다. 핵심은 융합의 축이며 융합의 지향이다. 핵심은 빅 아이디어(big idea)이며, 기본 개념과 원리 및 핵심 아이디어를 담아내는 ‘지식의 구조’이다. 중핵교과의 전통에서 발견하는 핵심지향성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융합의 지평이다.

4. 대학 교양 교과의 왜곡

대학의 교양교육에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 있다. 교양교육의 본질적 성격과 목적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그 논리적 부수관계에 있는 교양교과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상반된 입장을 고집하는 불합리가 고질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총론 찬성, 각론 반대’의 아전인수적 아집이 다양한 양태로 포장되어 나타난다. 자의적 해석과 이해관계적 얽힘으로 등장한 ‘비정상적’ 교양교과가 오늘날의 교양교육을 왜곡하는 주범이다. 교양교과에 대한 고질적 왜곡은 고착화된 인습이 되어 사회적 통념이 되었다. 교양교육의 정상화와 내실화가 지난한 까닭이다.
교양교과를 왜곡하고 변질시키고 있는 ‘비정상적’ 교양교과에 대해서는 이미 적확한 지적과 비판적 논의가 있었다. 교기원 표준모델에서는 “교양기초 교과목이 될 수 없는 부정적 제한 조건”을 “교양기초 교과목의 소극적 기준”으로 제시하였다(교기원, 2022).3) 백승수(2020b)는 교양교육에서 배제해야 할 과목을 ‘반(反)교양, 비(非)교양, 몰(沒)교양’ 과목으로 규정하고 구체적인 교과목을 적시하였다.4) 여기서는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교양교과의 본질적 성격인 진리지향성, 인격지향성, 보편지향성 그리고 핵심지향성을 왜곡하고 있는 요인을 4가지 차원에서 고찰한다. 교양교과의 왜곡 요인을 척결하는 길이 곧 교양교과의 성격을 올곧게 정립하는 길이다.

4.1. 전공성에 의한 왜곡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이다. 대학에서의 학문 탐구는 교양교육과 전공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12세기 대학의 형성될 때부터 대학교육은 교양과 전공으로 성층적으로 구조화되었다. 다만 오늘날의 대학과는 그 구조적 성격이 달랐다. 중세 대학에서 학부과정은 교양교육만을 전담하는 교양 중심 대학이었으며, 전공 과정은 전문대학원에서 수행하였다. 법학, 의학, 신학 전문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교양과정의 학사학위를 취득해야만 했다.5) 오늘날에는 학부과정에서 교양교육과 전공교육을 동시에 수행하는 구조이다. 전문대학원이 발달되어 있는 미국에서는 응용전문분야의 전공교육은 전문대학원에서 수행하는 경우가 많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기초학문분야와 응용전문분야의 학사구조가 병렬적으로 혼재되어 교육적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여기가 포인트이다. 분과적 전문성에 의한 교양교과의 왜곡 현상이 발생하는 진앙지이다. 응용학문분야의 전공 과목들이 교양교육과정으로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 전공 학과의 전공성에 의한 교양교과의 왜곡은 크게 3가지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전공기초 과목을 교양과목으로 분식하는 경우이다. 이미 1953년 「교육법 시행령」에서 “전공과목에 속할 과목을 일반교양과목으로 과할 수 없다.”고 법령으로까지 규제하였지만 아직까지 백년하청이다. 법학, 경영학, 행정학, 신문방송학, 회계학, 사회복지학, 식품영양학, 보건학, 공학 등 응용학문분야의 전공기초 과목이 버젓이 교양과목으로 행세하고 있다. 교양과목과 특정 학과가 일 대 일 함수관계로 매칭된다면 대부분 전공기초 과목일 개연성이 높다(백승수, 2020a: 182). 전공과목을 교양과목으로 둔갑시키는 것이 전공 학과의 영역을 확장하고 전공교육을 강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종국적으로는 전공교육을 좀먹고 교양교육을 황폐화시키는 비교육적인 조치이다. 전공은 전공답게, 교양은 교양답게 교육적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 교육적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영역 특수적인 전문적 지식(domain knowledge)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암기하는 것은 비판적 사고를 통한 보편지식의 탐구를 추구하는 교양교육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다양한 전공과목을 명칭을 조금 수정하여 마치 교양과목인 것처럼 각색하여 개설하는 경우이다.6) 전공 교육을 보충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교양교육과정을 활용하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양교육과정에 개설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공과목이기 때문에 단과대학, 학부, 학과별로 이수 규정을 다르게 적용함으로써 전공교과와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는 현상이다(최미리, 2001: 142). 이는 교양교육을 학부생 전체를 위한 공통적 일반교육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전문학문분야의 전공생을 위한 준비교육 정도로 간주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교양교과의 왜곡이다. 한편으로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학생들에게 자연과학 분야의 교양교과의 이수를 면제해 주는 것 역시 또 다른 교양교육의 왜곡이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2018년도부터 고등학교에서도 문이과 통합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사정을 감안하면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이다. 원리적으로 전공, 학과에 관계없이 모든 학부 학생들에 공통적인 이수 요건을 적용하는 것이 일반교육의 취지에 부합하는 길이다.
셋째는 이른바 이중설강(double listing) 제도를 악용함으로써 나타나는 교양교과의 왜곡 현상이다. 이중설강은 기초학문분야의 일부 교과목을 전공 및 교양 교과목으로 동시에 개설하는 제도이다. 즉, 이중설강의 전제 조건은 기초학문분야의 전공과목에 한한다는 것이다(교기원, 2023). 기초학문분야의 전공학과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이중설강 제도를 운영할 수 있는 여건이 구축되지 않은 것이다.7) 그런데도 일부 대학에서는 이중설강 제도를 오용하여 응용전문분야의 전공과목을 교양과목으로 중복 개설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8)

4.2. 실용성에 의한 왜곡

교양교육의 형성 이래로 교양교과는 실용성에 시달리면서 그 정체성을 확인하여 왔다. 교양교육의 역사는 자유성과 실용성의 투쟁의 역사이다. 내재적 가치를 추구하는 자유성은 언제나 외재적 가치를 추종하는 실용성에 의하여 도전받아 왔다. 고대 그리스의 자유교육은 물론 중세 대학의 교양교육도 두 가치의 충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19세기 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기능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다양한 교육과정 개발 기법들이 확산되면서 실용성은 지배적인 교육적 가치로 등극하였다. 급기야 실용 중심의 전문성 교육이 ‘교양교육의 최대의 적’이 되어 버렸다(Kliebard, 1988). 하지만 교양교육에 있어 이른바 ‘실용성’에 대한 논의는 분분하지만, 그 실체는 불분명하다. 교양교육의 실용성을 판별하는 준거도 불확실하며, 그 효과를 가늠하는 시점도 불명료하다. 실용적 교양교육에 관한 본격적 논의는 후속 과제로 남기고, 여기서는 한국 대학에서 현상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실용지향적 교과가 교양교과의 본질적 성격을 왜곡하고 있는 실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논의한다.
첫째는 전문적 실용성에 의한 교양교과의 왜곡이다. 전공교과의 침윤에 의해 교양교과가 왜곡되는 현상과는 다른 차원에서, 교양교과 자체가 영역 특수적인 전문지식을 추구하는 경향이 점증하고 있다. 예컨대, ‘인터넷과 컴퓨터보안’, ‘자동차와 친환경 기술’, ‘범죄예방을 위한 공간디자인’, ‘현대인의 식생활’, ‘하우징 트렌드’ 등과 같은 과목들이 교양교육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늘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달과 인공지능 기술의 확산에 따라 컴퓨터 프로그래밍, AI 관련 과목들이 증가하고 있다. 교양교육 역시 사회적 삶을 영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시대적 변화와 사회적 요구를 능동적으로 수용해야 하겠지만, 교양교과의 본질적 성격에 기반하여 재해석하고 재발견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사회적 적실성을 탐구해야 한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표피적이고 좁은 실용성이 아니라 생애 전반을 걸쳐 활용할 수 있는 심층적이고 넓은 실용성을 탐색해 나가야 한다. 교양교과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공통의 지적 기반을 추구하는 교과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취창업적 실용성에 의한 교양교과의 왜곡이다. 취업과 창업을 직접적으로 겨냥하는 실무적인 취창업용 과목이 교양교육을 왜곡한다는 지적은 이미 상식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극복이 되지않고 있다. 심지어는 교양교육과정 내에 취창업 영역을 별도로 설정하는 경우도 발생하는 등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엑셀, 파워포인트 등 단순 사무적 실무 관련 과목들은 줄어들고 ‘핵심취업전략’, ‘취업성공전략’, ‘직장체험’ 등 취업 활동을 지원하는 과목들이 늘고 있다. 특히 ‘창업과 법률’, ‘스타트업의 현재와 미래’, ‘창업 아이디어 개발’, ‘창업 경영의 이해’ 등 창업 관련 과목들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책임있는 사회인으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취업이 필수 불가결한 과제이기는 하지만 취창업 관련 과목들이 취창업을 보장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단순 실무적 매뉴얼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창의력, 문제해결능력 계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취창업 역량은 대학교육 전반에 걸쳐 총체적으로 발달하는 생애 역량이다.
셋째는 생활적 실용성에 의한 교양교과의 왜곡이다. 고등 사고력을 계발하는 대학 교육에 걸맞지 않게 학술성도 부족하고 보편성도 희박한 일상 생활용 단순 정보가 다양한 교양교과로 포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골프’, ‘필라테스’, ‘요가’, ‘색스폰 연주’, ‘와인의 이해’ 등 개인의 기호와 취향에 기반한 취미 생활용 과목, ‘신용관리와 소비생활’, ‘회계와 세무의 실무적 이해’, ‘재테크의 이해’ 등 사회생활의 요령을 담고있는 정보, ‘토익RC’, ‘토익LC’, ‘토픽’ 등 시용험 지식, 자격증 취득용 지식을 교양교과로 인정할 수는 없다. 대학의 대학다움은 그 교과로부터 나온다. 교양교과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는 함량 미달의 과목들이 대학의 위기를 가중시킨다. 시급히 청산되어야 할 대학의 오점이다. 생활적 실용성에 의한 수요는 비교과 프로그램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4.3. 편의성에 의한 왜곡

교양교과를 왜곡하고 있는 또 하나의 요인은 학생들의 편의적 ‘수강 기회주의적’ 행태 때문에 야기되는 현상이다. 모든 교육은 학습자를 전제한다. 학습자가 없으면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교양교과의 실질적인 주체는 학생이다. 필수 과목이 아닌 한 모든 과목은 학생들의 수강 선택을 받아야 개설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과는 학생들의 흥미와 의미에 소구하는 가치 있는 내용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교육의 발전을 담보하는 합리적인 시스템이다. 수강신청시스템은 학습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가정한 제도이다. 적정량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여 바람직한 학업적 성취를 이루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학습자의 수강 선택 자체가 변질되었다면 문제는 다르다. 소위 ‘인기과목’은 쉬운 과목, 학습량이 적은 과목, 학점 취득이 용이한 과목, 성적을 잘 주는 과목들이다. 실질적으로 취창업 과목, 취미용 과목, P/F 과목, 사이버 과목 등에 수강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백승수, 2020a: 147-148). 편의적 수강기회주의는 교양교과의 연성화, 표피화, 단편화, 상식화를 압박하면서 교양교과의 성격을 왜곡한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학생이 아니다. 제도이다. 학생의 자유로운 선택은 보장되어야 한다. 제도적인 개선이 요체이다.
핵심은 교양교과의 등가성을 제도화하는 조치이다. 교과목 하나하나는 동등한 가치를 담보해야 한다. 교과는 계열성(sequence)과 범위(scope)에 기반하여 균질한 교육적 가치를 조직화하는 교육의 질서이다. 쉬운 과목과 어려운 과목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과목, 나쁜 과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적합한 과목, 부적합한 과목이 있을 뿐이다. 교양교육과정에 편성된 모든 과목이 각각 그 대학의 교양교육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개개의 교과목이 동등한 교육적 가치 속에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어야 잘 짜여진 교육과정이다. 교과의 등가성은 학업의 질적 측면, 밀도 측면, 양적 측면에서 확인된다. 교양교과는 대학 수준에 걸맞는 학업의 수준, 학업의 강도, 학업의 총량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교양교과는 전공교과와 동등한 가치를 획득해야 한다. 교양교과의 등가성을 자체 점검하여 함량 미달의 교과는 솎아내야 한다. 교과목 자체점검시스템은 교양교과의 등가성을 직접적으로 확보하는 제도이다.
교양교과의 등가성을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제도는 강의평가제도이다. 강의평가 문항을 개선하여 교양교과의 등가성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종래의 여러 대학의 강의평가 문항을 보면, ‘수업은 이해하기 쉬웠다’, ‘설명은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었다’, ‘강의는 이해하기 쉽고 전달이 잘 되었다’ 등과 같이 내용적으로 쉬운 과목, 쉽게 진행하는 과목을 장려하는 문항들이 있다. 쉬운 과목을 조장하는 문항을 폐지하고 학업의 균질한 가치를 담보하는 문항을 개발하여 적용하여야 한다. 예컨대, ‘이 수업은 전공 수업보다 학업 수준이 높았다’, ‘이 수업은 전공 수업보다 학업 강도가 강했다’, ‘이 수업은 전공 수업보다 학업 총량이 많았다’ 등과 같이 학업의 질적 측면, 밀도 측면, 양적 측면에서 비교 대상을 명확히하여 전공교과와 동등한 교과적 가치를 확보하는 방안이다. 교양교과와 전공교과의 강의평가 문항은 차별화되어야 한다. 교과가 지향하는 목적, 내용, 방법 그리고 성과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교육적 가치를 담보한 기초학문 기반의 학술적인 교양과목들은 소외되고 폐강되는 반면 학업의 질이 확인되지 않은 인기영합적 과목들은 확대재생산되는 ‘기울어진 운동장’은 교양교육의 위기를 심화시킨다. 자카리아는 학업 수준의 하락과 낮은 기준이 교양교육의 결함이라고 전제하고, 교양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더욱 엄격하고 까다롭게 더 좋은 교양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라고 갈파했다(Zakaria, 2015). 교양교과의 내실화가 곧 교양교육의 정상화이다.

4.4. 무책임성에 의한 왜곡

교양교육은 ‘재난 지역’이자 주인 없이 방치된 ‘공유지의 비극 지대’이다. 기실 교양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고 정성을 다하는 대학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9) 그나마 2010년부터 교육부가 대학재정지원사업으로 추진하였던 이른바 ‘잘 가르치는 대학 지원 사업’(ACE 사업)이 종료됨에 따라 반짝하던 ‘교양교육 특수’도 사그라지고 말았다. 이 시점에서 교양교육에 책임을 다해야 할 ‘주체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교양교육을 보호하고 지원하고 관장하고 공급하면서 교양교과의 성격을 보지하고 심화, 확산해야 할 주체들이 그 책무를 등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대학 당국, 교양교육 주관 기관, 기초학문분야 학과 등 교양교육에 책임있는 주체들의 총체적 무책임성이 교양교과의 왜곡을 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국가적, 정부적 차원에서 교양교육에 대한 책무를 다해야 한다. 교양교육은 바람직한 시민 사회를 형성하고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공공적 성격을 갖는다. 고착화되어 가고 있는 혐오사회, 위험사회를 극복하고 포용과 공감의 민주 사회를 형성하는 토대가 교양교과에 있다. 듀이는 교육의 과정이 민주적이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고 했다(Dewey, 1916). 정부는 대학 자율이라는 미명하에 교양교육을 무책임하게 방치할 것이 아니라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본연의 책무를 수행하는 차원에서 교양교육을 보호, 진작하고 지원, 관리해 나가야 한다. 가령 ‘교양교육인증시스템’과 같이 정부적 차원에서 전국 대학의 교양교육의 질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과연 대학들은 건강한 교양교과를 운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부적 차원에서의 점검이 요청된다. ‘주체의 부재’로 인하여 교양교과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ACE 사업과 같이 교양교육을 진흥하는 대학재정지원사업의 지속적인 추진도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다. 또한 한국교양기초교육원의 역할과 임무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은 대학 당국의 무책임성으로 인한 교양교과의 왜곡 현상이다. 총장 등 대학 교양교육에 책임이 있는 당국의 교양교육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안일하다. 대부분 현상 유지의 차원에 머문다. 교양교육 발전계획을 제시하거나 교양교과 적합성 제고 정책을 발표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교양교육에 대하여 무지하거나 그 중요성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교양교육에 대한 교육적 지원 예산이 수 천만원에 불과한 경우가 다반사이다. 대학의 전체 예산 중에서 교양교육에 소요되는 예산은 매우 미미하다.10) 일부 대학에서 교양교육 주관 기관을 폐지하는 등 교양교육 거버넌스의 역할과 위상은 점점 저하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 경영진의 무관심과 무시 속에 교양교육은 점점 소외되고 주변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 틈새를 취창업 과목 등 교양교과를 왜곡하는 교과들이 파고들어 양질의 교양교과를 구축한다. 대학 스스로 교양교과의 적합성을 관리하는 자가점검시스템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 대학 차원에서 교양교육에 대한 비전을 천명하고 인적, 물적, 정책적 지원을 활성화할 때 교양교과는 본질적 성격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 교양교과 하나하나가 그 대학의 수준과 비전을 대변한다.
아울러 교양교육 주관 기관의 무책임성으로 인하여 교양교과의 왜곡 현상이 가중되고 있다. 교양교육을 주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양교과의 정상화와 내실화에 의지를 보이지 않는 특이한 현상이다. 주지하다시피 ACE 사업을 계기로 학부대학, 기초교육원, 리버럴아츠칼리지 등 교양교육 주관 기관 설립이 붐을 이루었다. 사업 선정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실제로 사업에 선정된 대부분의 대학들은 교양교육 주관 기관을 운영하였다. 하지만 재정지원사업이 종료되자 예산 중단을 이유로 관련 프로그램을 폐지한 경우가 다반사이다. 교양교육 주관 기관은 정부의 재정지원이 아니더라도 교양교육의 질을 관리해야 할 책무가 있다. 대학 내에서 교양교육 예산을 확충하고 교양교과의 적합성을 점검하는 등 능동적인 문제해결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 특히 교양교육과정, 교수, 학생, 전용공간, 교육 인프라 등을 온전히 구비하고 독립적으로 관장하는 자체 완결적 교육기관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여야 한다. 교양 교과목 신설 및 폐지, 교육과정 이수 요건 변경 등 교육과정 개편과 수업 시간 배정, 교강사 배정 등 학사 운영에 있어 자율적인 권한과 책임을 행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교양교과의 적합성 제고, 교수자 적합성 확보, 강좌별 수강정원 적정화 등 교양교과 내실화 조치를 제도화하여야 한다.
한편으로는 기초학문 분야의 전공 학과의 무관심으로 인한 교양교과의 왜곡 현상이 점증하고 있다. 보편지식을 통한 일반적인 지적 기반을 형성하고자 하는 교양교과는 기초학문의 학문적 성과를 공유한다. 기초학문은 교양교과의 학술적 원천이다. 기초학문 분야는 적극적으로 적합한 교양교과를 개발, 공급해야 할 책무가 있다. 교양교과가 기초학문의 교육적 토대가 되고 학문적 지평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초학문 분야에서는 교양교과에 대하여 책무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른바 학문구조조정으로 인하여 학과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다 보니 교양교과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는 상황이 반영된 듯하다. 하지만 기초학문교육과 교양교육은 공생 관계이다. 함께 가야 한다. 기초학문은 교양교과의 모(母) 학문이며 교양교과는 기초학문의 교육적 임무이다. 전공을 불문하고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자연과학적 교양교과를 개발하고, 사회적 현상을 탐구하는 사회과학 기반의 교양교과를 확대하고, 인간의 가치를 고양하며 윤리성을 선양하는 인문학적 교양교과를 보편화시키는 것은 기초학문 본연의 책무이다. 교양교과의 수강 수요에 비하여 기초학문 기반의 적합한 교양교과의 공급이 과소하다 보니 취미생활적인 과목 등이 남설되어 교양교과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있다.

5. 대학 교양 교과의 준거

대학 교양 교과에 대한 고질적인 왜곡을 극복하고 본질적 성격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교양 교과의 준거를 체계적으로 정립해야 한다. 교과의 적합성 준거는 교과의 근거이며 교과를 정당화하는 지표이다. 일찍이 타일러(Tyler, 1949)가 학습경험의 선정의 일반적인 원리를 기회 보장, 만족감 부여, 달성 가능성, 하나의 목표에 복수의 학습경험 제공, 하나의 학습경험에 복수의 성과 확보 등으로 제시한 이래로 각종 교육과정 교재에서 교육내용의 선정 기준, 원리 등으로 적합성 기준을 대동소이하게 제시하고 있다.11) 대학 교양교과와 관련해서도 교기원 표준모델에서는 “교양기초 교과목은 보편적 포괄성, 학술적 대표성, 전인교육의 요건을 두루 갖추어야 한다.”고 ‘교양기초 교과목의 기본요건’을 제시했다(교기원, 2022: 7). 백승수는 교양 교과의 규범적 준거로 대학에서 고유하게 제공하는 ‘대학성’, 내용적 준거로 기초학문 중심의 ‘학술성’, 실천적 준거로 자율적 사고를 함양하는 ‘교육성’을 제시한 바 있다(백승수, 2020b: 18-19). 여기서는 이들의 논의에 터하여 좀 더 실천적인 관점에서 구체적인 준거를 종합적으로 탐색하고자 한다.
먼저 교양교과의 준거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교양교과의 성립 조건부터 확인해야 한다. 교양 교과는 ‘교양교육에 적합한 교과가 있다.’는 대전제에 동의해야 교양교과로 성립된다. 학교교육은 교과를 전제로 운영된다. 교육의 핵심 내용인 교과가 없다면 교육도 이루어질 수 없다. ‘물리학과에는 물리학에 적합한 교과목이 따로 있고, 경제학과에는 경제학에 적합한 교과목이 따로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교양교육에는 교양교육에 적합한 교과목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교양교육의 존재 근거가 사라진다. 전공교과가 교양교과로 분식되는 것도, 취창업용 실무적 교과가 교양교과로 둔갑하는 것도 교양교과의 고유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교육적 횡포이다.
일각에서는 교양교육에 적합한 교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교과이든 교양교육적 원리에 따라서 가르치면 교양교육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동의하기 어렵다. 교과는 내용과 방법의 통일체이다. 교과는 내용 속에 그 적합한 방법이 스며들어있고, 방법을 통해 그 내용을 구현한다. 원리로서의 방법은 이미 내용 속에 붙박여 있는 교과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이다. 교과는 내용과 유리된 별개의 원리적 방법을 선택하여 교육 내용에 임의적으로 적용시키는 것이 아니다. 교양교육의 원형인 자유교육은 목적적으로, 내용적으로도, 방법적으로도 그리고 성과의 측면에서도 일관된 자유교육적 원리를 추구했다(백승수, 2022: 55-56). 온전한 교과는 교육의 목적, 내용, 방법 그리고 성과의 요소를 총체적으로 담지하고 있는 교과이다. 따라서 교양교과의 준거에 대한 탐구는 교양교과의 고유성을 재확인하는 과정이며, 교양교과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교육적 질서를 구축하는 과업이다. 교양교과의 준거는 교양교과의 성격에서 내재적으로 도출된다. 어떤 필요나 요구에 의해서 외재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지식의 대폭발, 급격한 지식 반감기, 초지능적이고 초융합적인 새로운 지식의 대두 등 지적 지형의 급변에도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 준거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양교과의 준거는 교양교과의 본질적인 성격인 진리지향성, 인격지향성, 보편지향성, 핵심지향성을 통해 내재적으로 도출되어야 한다. 모든 교양교과에 녹아들어 있는 4가지 본질적인 성격은 총체적이며 통섭적인 성격이므로 기계적인 분리가 불가능하다. 교양교과의 성격은 그 준거를 통해 표상된다. 교양교과는 다음의 준거를 충족해야 온전한 교양교과로 자리매김된다.
첫째는 교육적 준거이다. 교양교과는 교양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교육적 장치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먼저 교육적 가치를 구현하는 교육적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 교양교육의 원형인 자유교육의 교육적 가치를 현대적으로 구현하는 교육적 틀이 교양교과이다. 따라서 교양교과는 자유로운 교육적 체험을 보장해야 한다. 듀이는 교육적 경험과 비교육적 경험을 준별하고, 오직 교육적 경험을 통해서만 인간적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설파했다(Dewey, 1938). 사상적 자유를 통제하고 정신적 불구로 만드는 교조적 세뇌와 무비판적 교화를 교양교육이라 하지 않는다. 명세화된 매뉴얼적 지식을 억지로 주입하는 것은 교양교육이 아니다. 단순 실무적 지식을 기계적으로 반복하여 훈련하는 것을 교양교육이라 할 수는 없다. AI를 무한 반복적으로 훈련하는 알고리즘을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이라 한다. 인간은 인간의 학습(human learning)을 해야 한다. 교양교과는 자기 머리로 사고하고, 자기의 언어로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는 교과이다. 따라서 자율적인 사고력을 배양하는 탐구의 과정이어야 하며, 자기의 생각을 합리적으로 소통하는 표현의 세계이어야 한다. 질문과 토론, 생각과 담론, 소통과 탐구가 자유교육의 교육적 원리이다. 교양교과의 교육적 준거는 자유롭게 진리를 탐구하는 교양교육의 고유한 전통이다.
둘째는 목적적 준거이다. 교양교과의 궁극적 목적은 사람됨이다. 교육과 교양의 개념 속에는 ‘사람을 가르쳐서 사람다운 사람으로 기른다.’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교양교과는 교양과 교육의 개념에 붙박여 있는 사람됨의 내재적 가치를 구현하는 교과이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으로 성장하는 원리와 과정을 깨우쳐 주는 교과가 교양교과이다. 사람으로서 마음의 밭을 갈고, 마음의 눈을 틔우는 사람됨의 과정이 교양교과이다. 사람됨은 사람의 내재적 가치다. 사람이니까 사람이 되어야 하고, 사람이 되어야 사람인 것이다. 존재 그 자체가 목적인 사람됨에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없듯이, 교양교과를 체험하는 그 자체가 교양교과의 목적이다. 사람됨을 떠난 기계적인 유용성이나 경제적인 실용성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교양교과는 외부적인 필요의 획일적인 주입이 아니라 내면적인 잠재력의 주체적 발현을 추구한다. 자기 스스로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인간관, 세계관을 형성하는 자기목적적 교과이다. 교양교육은 사람됨을 실현하는 자아완성의 과정이다. 인간의 고유한 품성을 자발성으로 계발하는 에듀세레(educere)를 지향한다. 교양교과의 목적적 준거는 무지와 편견과 협량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격을 도야하는 교양교육의 내재적 가치이다.
셋째는 문명적 준거이다. 교양교과는 기본적으로 문명화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교과이다. 인류의 가치로운 문화적 전통에 입문함으로써 사람다운 사회적 삶을 영위할 수 있다(Peters, 1966). 인류는 교육을 통해 문화적 가치를 전승하여 왔다. 교양교과는 문화를 배우고 익힘으로써 건강한 사회적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문명을 일구어 온 보편적인 주제를 탐색하고, ‘위대한 저서’ 등 아름다운 문화 유산을 향유함으로써 지속가능한 가치있는 삶을 통찰한다. 교양교과가 지향하는 문화는 우수마발, 지엽말단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문화이다. 개별성보다는 보편성을 추구하고, 특수성보다는 일반성을 탐구한다. 따라서 교양교과는 분절적이고 파편적인 내용을 선형적으로 병열하는 커페테리아식이 아니라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내용의 유기적인 조화를 도모하는 네트워크식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또한 문명의 전환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담아내야 한다. 디지털 문명, 스마트 문명의 근원을 고찰하고 미래를 통찰해야 한다. 교양교과가 다루는 문명은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제한이 없다. 교양교과의 문명적 준거는 인류의 어제를 성찰하고, 오늘을 고찰하며, 내일을 통찰하는 교양교육의 진보적 원천이다.
넷째는 학술적 준거이다. 대학 교육에서 다루어지는 교양교과는 학술적 활동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학술적 내용을 학술적 탐구 방법을 통해 배우고 익히는 학술적 과정이 교양교과의 요체이다. 교양교과의 학술성을 기초학문의 온축된 성과를 전제한다. 기초학문은 오랜 역사적 검증을 통해 진리가를 확보해 온 인류의 자치로운 지식이다. 기초학문은 자기 자신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근원적으로 이해하고, 인간이 관계 맺고 있는 사회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며 더 좋은 사회를 추구하고, 세상 그 자체를 탐구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다(백승수, 2020b: 15). 인간의 정신 현상, 사회 현상 그리고 자연 현상을 탐구하는 기초학문은 교양교과와 학술적 지평을 공유한다. 교양교과는 기초학문의 핵심 개념을 이해하는 보편적인 지적 기반을 형성하며 도구적 지식이나 도메인 지식을 배제한다. 교양교과의 학술적 준거는 교양교과가 대학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고등한 교육임을 증거한다. 교양교과는 학술성의 폭과 깊이에서 차별화된다. 야스퍼스는 근거도 없고 과정도 없는 지식에 대해서는 교육적 가치를 논할 필요도 없다고 하였다(Jaspers, 1946). 취창업적 실용과목이나 취미생활적 프로그램 등을 배제해야 하는 이유는 교양교과의 학술적 준거를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지식의 성격, 내용, 형식, 지형이 급변하면서 학술의 질서가 재편되고 있는 디지털 전환에 주목해야 한다. 산업 기반의 표준적 지식이 종말을 고하고 디지털 기반의 초융합적 지식이 생성되고 있다. 인문학이 해체되고, 사회과학이 분해되며, 자연과학이 변신하면서 생경한 신생학문이 탄생되는 지식융합의 시대이다(백승수, 2020b: 12). 교양교과의 학술적 기반인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전통적 기초학문의 학사구조가 급속히 와해되고 있다. 또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 ‘인간⋅사회⋅자연의 이해’, ‘AI와 포스트 휴먼’, ‘글로벌 이슈 탐구’ 등과 같은 융합적이고 혁신적인 교양과목들이 개설되고 있다. 교양교과의 학술적 공급원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한 시대적 상황이며 교육적 요구이다. 종래의 기초학문의 지적 유산을 아우르는 종합적이고 학제적인 교양학문의 정립에 대하여 지혜를 모아야 할 변곡점이다.12) 아울러 교양교과는 지식중심, 경험중심, 역량중심 교육의 성과를 수렴하여 지식, 기능, 태도 및 가치가 탈경계적으로 녹아있는 역동적 총체로 재구조화 되어야 한다(백승수, 2022: 56-57). 교양교과의 학술적 준거는 고등 사고력을 함양하고, 새로운 교양 지식을 창출하는 교양교육의 창조적 활동이다.
다섯째는 대상적 준거이다. 대학의 교양교과는 대학생이 배우는 교과이다. 교육교과를 경험하는 주체는 모든 대학생이다. 학과, 학부, 전공, 계열 등 소속 단위에 관계없이 모든 대학생이 공통적 지적 기반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학과와 전공을 불문하고 모든 대학생이 경험할 수 있는 일반적인 학습 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학과와 전공을 불문하고 모든 대학생이 이수해야 하는 공통성을 담보해야 한다. 교양교육은 귀족적인 엘리트 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이며 민주 사회의 책임있는 주체임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학년에 있어서도 1~4학년 모두를 포괄해야 한다. 교양교육은 1~2학년 종결되는 고교 보충수업이 아니다. 일생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학습의 습관을 내재화하는 과정이다. 교양교과와 개설 학과가 함수관계로 맺어져 특정 학생, 학년은 들을 수 없다고 이수 제한을 걸거나, 특정 학생, 학년만 이수할 수 있다고 장벽을 설치하는 독선은 교양교과의 본질을 왜곡한다. 따라서 전공과목을 조금 변형하여 교양교과로 제시하는 구태의연한 방법이 아니라 일반성과 보편성을 지향하는 교양교과의 성격에 부합하는 창의적인 과목을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 교양교과의 대상적 준거는 개인적, 사회적 좋은-삶(well-being)을 추구하는 교양교육의 민주적 실천이다.

6. 맺음말

고대 그리스, 로마의 자유학예는 중세 대학에서 자유교과로 제도화되었다. 인문교과는 자유교과의 주지적인 스콜라적 경향을 극복하고자 하였으며, 일반교과는 인문교과의 고전 지향의 낭만성을 지양하고 보편적 일반성을 추구하였다. 중핵교과는 일반교과의 방만성과 방종적 경향을 주제 중심의 핵심성과 필수 이수의 의무성으로 돌파하고자 하였다. 교양교과는 통시적으로는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발원하여 12세기 중세 대학과 14세기 르네상스를 거쳐 18세기 근대적 개인의 탄생과 역사적 궤를 같이하며 진화하여 왔다. 공시적으로는 그리스, 로마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의 문화적 토양에서 나름대로의 교양 담론으로 전개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국, 중국, 일본의 동아시아적 전통과 문화접변적 변용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교양교과는 통시적 보편성과 공시적 개별성을 담지하고 있는 문화적 복합체이다. 자유학예에서 비롯된 교양교과는 자유교과, 인문교과, 일반교과, 중핵교과의 4중 나선적 얽힘을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관점에서 파악하여야 온전한 본래의 모습을 형상할 수 있다. 결코 아무렇게나 개설하고 누구나 가르치는 여분의 과목이 아니다. 확장된 상식 나부랭이나 우수마발 잡동사니가 결단코 아니다. 시류에 편승하고 유행에 휩쓸리는 섬광적 존재는 더욱 아니다. 교양교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내면화하는 동시에 자기 고유의 인격적 특질을 외연적으로 발산하는 역동적 복합체이다. 인성교육, 지성교육, 역량교육을 아우르며 실존적인 사회 생활의 자세와 태도를 형성하는 총체적 생활 양식이다. ‘성찰과 통찰의 자기 제도화’로 스스로를 돌보며 인간다운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자존적 삶의 양식이다.
바야흐로 전환의 시대다. 디지털 전환으로 촉발된 4차 산업혁명은 패러다임 전환, 문명적 전환, 생태적 전환, 인류사적 전환 등 전방위적인 대전환을 추동하면서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그 끝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교육의 전환, 교양의 전환, 대학의 전환에 대하여 고뇌하지 아니할 수 없다. 더군다나 ‘AI 기반의 포스트 코로나 사회’라는 전대미문의 사회적 환경과 시대적 상황이 대학 교양교육 그 자체의 전환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기반의 급격한 변화라는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기원을 소실하고 맥락을 몰각한 단편적인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전환의 시대, 변곡의 국면일수록 차분히 본질을 되짚어봐야 한다. 2500여년을 이어온 교양교육의 역사를 성찰하면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가치로운 인류 문화의 기반 위에서 미래를 보아야 한다. 교양교과의 본질적 성격인 진리지향성, 인격지향성, 보편지향성 그리고 핵심지향성을 왜곡하고 있는 분과적 전공성, 표피적 실용성, 불합리한 편의성, 총체적 무책임성부터 혁파해야 한다.
우리가 파이데이아를 고찰하고 3학4과를 탐구하면서 훔볼트를 천착하고 레드북을 다시 읽는 까닭도 모두 교양교과다운 교양교과를 모색하기 위한 교육적 노력이다. ‘대학 교양교육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논쟁적 물음은 ‘대학에서 교양교과를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인가?’하는 근본적 성찰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가장 필요한 지식, 사회적으로 유용한 지식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교육적 경험에서 해답을 구해야 한다. 필요와 수요는 수시로 변화하고, 천 가지, 만 가지로 분화하기 때문에 교육적 합의를 형성하는 데 있어 매우 제한적인 한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교양교육은 필요를 초월하고 수요를 넘어선다. 교양교육의 내재적 심원은 사람다움이며 사람됨이다. 사람이 되어가는 내재적 가치를 구현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어야 교양교과의 자격을 획득한다.
교육은 학생 개개인의 존재의 변화가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개개인의 지속적인 성장이 교육의 본질이다. 교육은 집체적이라기보다는 실존적이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자각적인 변화를 지원하는 문명적 활동이 교양교육이다. 교양교육은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라 교과목 하나하나가 핵심이다. 개개의 교과목이 교양교육 전체를 서로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보석처럼 빛나는 찬란한 교과목이 아름다운 교양교육을 만든다. 교육은 가짜로 할 수 없다. 진짜로 해야 교육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진정성은 진짜로 정성을 다하는 자존적 숭고함이다. 교양교육의 진정성은 교양교과로 나타난다. 교양교과의 진정성은 교양교과의 교육적, 목적적, 문명적, 학술적, 대상적 준거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뇌한다. 교육적 진정성이 교양교과다운 교양교과를 만든다.

Notes

1) 라틴어 ‘artes liberales’는 영어로 ‘liberal arts’로 번역되나 한국어에 있어서는 자유학예, 자유교과, 자유학문, 자유학과목, 자유교양학문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다. 여기서는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행해진 자유교육의 맥락에서는 ‘자유학예’로 표기하고, 중세 대학의 교과적 관점에서는 자유교과(liberal subjects)로 표기한다. 교과는 학교교육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정적 제도임을 감안하였다.

2) 고등교육법 제28조(목적) 대학은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3) 표준모델에서 제시한 ‘자유학예교육’ 영역의 소극적 기준은 다음과 같다. 우선 “비학술적 내용, 더 나아가 기초학문의 범위를 벗어나는 내용을 담는 교과목은 자유학예교육의 교과목이 될 수 없다”고 전제하고, 구체적으로 “영역을 막론하고 학술성이 빈약한 교과목”이나,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기초학문 이외의 교과목” 등을 적시하였다(교기원, 2022).

4) 백승수가 ‘교양교육이 아닌 것’은 규정한 ‘반(反)교양 과목’은 응용학문분야의 전공 과목을, ‘비(非)교양 과목’은 취미 생활이나 상식의 확장을 위한 상업적 프로그램을 지칭하고, ‘몰(沒)교양 과목’은 취업, 창업용 단순 실무와 매뉴얼적 지식을 나열하는 과목을 말한다(백승수, 2020b: 18-19).

5) 12세기 파리대학의 학사구조를 오늘날의 미국의 고등교육 시스템으로 이해하면, 학사 과정에는 하나의 리버럴아츠칼리지만 존재하며, 석박사 과정에는 법학, 의학, 신학 전문대학원이 설치되어 있는 구조이다.

6) 심지어는 ‘IoT와 전자공학개론’, ‘패션 스튜디오’, ‘화장품과 피부’, ‘헬스와 운동 재활’, ‘특수아동과 심리’ 등과 같은 전공과목들이 교양과목으로 개설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7) 교양기초교육원은 “대학 교양교육 기본 컨설팅 진단항목 및 기술사항”에서 이중설강은 “기초학문 분야 학과가 있는 대학에 한함”이라고 명시하고 있다(교기원, 2023).

8) 심지어는 ‘형법입문’, ‘경영학원론’, ‘영양학개론’, ‘핀테크개론’, ‘이러닝교육론’ 등과 같은 전공과목을 이중설강 과목으로 개설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9)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성균관대 학부대학, 대전대 혜화리버럴아츠칼리지 등 교양교육의 정상화와 내실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대학들도 있지만, 당해 기관의 위상, 역할, 지원 등은 설립 당시에 비해 상당히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 연구자가 교양기초교육원에서 주관하는 대학교양교육컨설팅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추정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전국 대학의 교양교육 관련 예산을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 대학정보공시제 등에서 교양교육 지원 예산 현황을 확인할 수 있으면 교양교육 내실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11) 예컨대, 김대현은 교육내용의 선정 원리를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타당성의 원리, 확실성의 원리, 중요성의 원리, 사회적 유용성의 원리, 인간다운 발달의 원리, 흥미의 원리, 학습가능성의 원리(김대현, 2017: 165-167).

12) 백승수(2020b)는 “교양교육의 학문적 관계망 또는 학문적 지도 구축을 위한 탐색적 연구”를 통해 교양교육의 학문적 정체성 정립을 시론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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