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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General Edu > Volume 14(6); 2020 > Article
서양 고전에 나타난 전염병과 그 대응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

초록

지금 세계는 코로나-19로 황폐화되고 있고, 많은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하고 있다. 이 연구는 서양 역사에서 전염병의 대유행을 기록한 다섯 권의 ‘고전(古典)’, 즉 『일리아스』, 『오이디푸스 왕』,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데카메론』, 『페스트』에 나타난 전염병과 그 대응에 관해 인문학적으로 고찰했다.
병인론에 대해 호메로스와 소포클레스는 종교적, 초자연적 질병관을, 투키디데스는 자연적, 합리적인 질병관을, 보카치오는 종교적, 우주적 질병관을, 마지막으로 카뮈는 합리적, 과학적 질병관을 보여주었다. 병인론에서 점차 신성성이 감소하고 합리성이 강화되었다.
전염병에 대한 인간의 대응은 『일리아스』와 『오이디푸스 왕』에서는 신의 분노를 해소시키는 것이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는 의사의 치료, 신전 탄원, 자포자기, 쾌락탐닉처럼 다양했으며, 『데카메론』에는 금욕적 태도, 쾌락적 태도, 중간적 태도, 도피적 태도 등이 나타나 있다. 마지막으로 『페스트』에는 초월적 태도, 도피적 태도, 저항적 태도, 실리적 태도 등 인간의 적나라한 실상이 담겨 있다. 카뮈는 전염병에 맞서 시민 모두가 서로 협력해야 하고, 어려운 상황 하에서 고독감과 연대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염병에 대한 인간의 대응은 개인의 대응, 의사의 진료, 정부의 활동, 시민의 연대로 점차 확대되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를 대비하여 우리는 교양교육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학생의 건강과 사회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연대하고 협력할 것인가? 우리는 뉴 노멀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가치와 규범을 만들어가야 한다.

Abstract

COVID-19 has been ravaging countries all over the world, and many schools have been shut down as a result. This paper is about the humanistic review of plagues and the responses to them in the following western classics as: The Iliad, Oedipus Rex, The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 The Decameron, and The Plague.
The cause of the plague was treated in Homer and Sophocles as the religious and supernatural factors, in Thucydides as the result of natural and rational factors, in Boccaccio as stemming from religious and cosmic factors, and in Camus as deriving from rational and scientific factors. Therefore, we can see the decline of the divine factor, along with the incremental increase of the rational factor, in explaining this disease.
The only way to deal with a disease in The Illiad and Oedipus Rex was to avoid divine wrath. On the other hand, The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 contained various ways to respond to a disease, for example, receiving treatment from a doctor, the supplication of a god, self-abandonment, and seeking pleasures. The Decameron argued for an ascetic attitude, a hedonistic attitude, a centric attitude, and a escapist attitude in the face of the plague. The Plague showed four responses: a transcendental attitude, a resistant attitude, an escapist attitude, and a utilitarian attitude. Camus maintained that all citizens must cooperate to combat a plague, and emphasized that we should live a life of solitude and have a sense of solidarity under such unfavorable conditions. Furthermore, the overall response to the plague increasingly extended from the role of the individual to the role of the citizens’ coalition.
To prepare for the post-COVID-19 pandemic, we need to try to improve liberal education. How should we cooperate with one another to maintain our health and ensure our social safety? We must create new values and standards of the new normal era.

1. 서론

2020년은 그 어느 때보다 인류가 전염병의 공포를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는 해이다. 14세기의 흑사병이나 20초기 초의 스페인 독감을 연상시키는 새로운 전염병이 1년째 전 세계에 무섭게 확산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부터 함박눈 내리는 겨울까지 계절의 변화조차 체감하지 못한 채, 긴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서로 무관하게 보이던 지구촌 곳곳의 사건들이 이제 초연결망에 의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공유되어 공포의 동시적 세계화가 이뤄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언택트, 마스크 의무 착용과 같은 생소한 용어가 우리의 일상을 크게 바꾸고 있다. 21세기 역사는 어쩌면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뉠 듯하다.
그러나 돌아보면 인류는 전염병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 면에서 인류 역사는 질병과의 투쟁의 역사였다. 서양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아테네는 기원전 5세기에 엄습한 전염병으로 찬란한 문명의 빛을 잃기 시작했다. 영원할 것 같던 로마 제국의 영광도 2세기에 발생한 ‘안토니누스 역병(Antonine Plague)’으로 쇠퇴하기 시작했고, 5세기에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에도 여전히 건재하던 동로마 제국도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역병(Justinian plague)’으로 욱일승천의 기세가 꺾였다. 천년 동안 지속된 중세는 14세기 중반에 발생한 흑사병으로 막을 내리기 시작했고, 16세기 아메리카 3대 문명도 유럽에서 옮겨간 천연두(small pox)로 흔적만 남긴 채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인류는 코로나-19(COVID-19)1)라는 팬데믹(pandemic)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러나 전염병의 대유행은 1997년에 이미 WHO가 예고한 바 있다. 21세기에 전염병 시대가 재래(再來)할 것이므로 인류가 관심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는 세계보건기구의 예측은 이후 SARS(2003), H1N1(2009), MERS(2012), 그리고 Corona-19(2019)로 현실화되고 있다.
질병만이 아니다. 21세기 들어 세계 도처에서 지진, 태풍, 홍수, 화산과 같은 자연재해에서부터 화재, 테러, 폭발 등의 인공재해까지 인간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재난들이 빈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재난의 일상화는 재난을 당한 인간의 인식과 대응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요구한다. 재난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은 재난을 불가피한 실존적 문제로 인식하고, 재난을 온 몸으로 겪은 체험과 그에 관한 서사(敍事), 그리고 재난에 대한 대응과 치유 등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
이 연구는 서양 역사에서 전염병의 대유행과 그 당시 상황을 기록한 ‘고전(古典)’들을 통해 전염병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대응에 관해 인문학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연구를 위해, 1993년에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소가 선정한 『동서고전 200선』 중에서 전염병을 주제로 다루고 있거나 작품의 주요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는 다섯 권의 고전을 분석했다. 첫 번째 작품은 트로이 전쟁을 노래한 서양 최초의 서사시(敍事詩)로 제1권의 제목이 ‘전염병, 아킬레우스의 분노’인 『일리아스(Ilias)』이다. 두 번째 작품은 전염병이 창궐한 기원전 429년에, 공포에 휩싸인 아테네 시민들에게 공연하기 위해, 그로부터 800년 전의 ‘테베 역병’을 배경으로 쓴 『오이디푸스 왕(Oedipus Tyrannus)』이다. 세 번째 작품은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 전염병(Athenian plague)을 기록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이고, 네 번째 작품은 14세기의 피렌체 흑사병을 배경으로 한 『데카메론(Decameron)』이다. 마지막은 아프리카 오랑(Orang) 시의 페스트에 맞선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 투쟁을 다룬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이자, 재난 소설의 효시인 『페스트(La Peste)』이다.
이 다섯 권은 신화시대의 전염병을 다룬 두 권의 문학서와 역사적 전염병을 다룬 사서(史書) 한 권, 문학서 한 권, 그리고 가상의 전염병 발생상황을 그린 재난 소설 한 권으로 구성된다. 이 연구는 각 작품의 외적 부분 보다 내용을 중심으로 한 내적 부분에 집중하여 분석했기 때문에, 각 작품의 고유한 성격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논문 구성에 있어 본론에서 작품 별로 공통주제들에 초점을 맞춰 분석한 후, 결론에서 주제별로 다시 정리해서 제시했다.2) 작품 별 구성방식을 취하게 되어 주제별 분석에 앞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 작품의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다.
이 연구는 위의 고전들에 나타난 전염병과 그 실존적 대응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고찰해 보면서, 현재의 코로나 위기 상황을 잘 극복하기 위해 우리 교양교육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2. 본론

2.1 『일리아스』에 나타난 전염병과 그 대응

서양 고대사 연구자들은 대체로 기원전 13세기에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 동맹군 사이에 10년간의 ‘트로이 전쟁(Trojan War)’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이로부터 약 500년 정도가 지난 기원전 8세기에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Homeros)가 트로이 전쟁 마지막 10년째의 며칠 동안을 기록한 『일리아스(Ilias)』는 서양 최초의 문학작품으로, 당대의 가치관, 인간관, 운명관 등에 관한 서양적 사유의 기원을 담고 있어, 서양 정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고전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이 책은 출간 이후 그리스인들의 교과서가 되었고3) 오늘날에도 전 세계 유명 대학들의 고전목록에 빠지지 않는다.
그리스 시대의 전염병에 관한 기록은 아이러니하게도 당대의 의사들이 남긴 의서(醫書)보다 시인이 쓴 문학서나 역사가가 쓴 역사서와 같은 인문학 작품에 더 풍성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일리아스』라는 서사시와 『오이디푸스 왕』이라는 비극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라는 역사서가 대표적이다.4)
전체 24권으로 구성된 『일리아스』 제1권의 제목이 ‘전염병, 아킬레우스의 분노’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문학은 ‘전염병’과 관련된 내용으로 시작된다. 『일리아스』에는 기원전 13세기 치료영웅(hero-healer)인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의 두 아들, 마카온(Machaon)과 포달레이리오스(Podaleirios)가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여 활약하는 장면이나 전투에서 창칼을 맞은 전사들의 인체 구조에 관한 내용도 담겨 있어 의학사 연구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일리아스』는 그리스 진영에 전염병이 발생한 장면에서 곧바로 시작된다. 시인은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스 군대에 전염병이 발생하여 많은 전사들이 쓰러진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세 줄로 요약한다(1.8-10).
  • 여러 신들 중에 누가 이 두 사람을 서로 싸우고 다투게 했던가?

  • 레토와 제우스의 아들이었다. 그가 왕에게 분노하여 진중에

  • 무서운 전염병을 보내니 백성들이 잇달아 쓰러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레토(Leto)와 제우스(Zeus)의 아들은 아폴론(Apollon)이고, 왕은 그리스 연합군의 총대장인 아가멤논(Agamemnon)이다. 그리스 백성들을 전염병으로 쓰러뜨린 당사자가 아폴론이고, 전염병을 발생시킨 이유가 아가멤논의 신성모독에 대한 신의 분노라는 사실이 밝혀진다.5) 그리스 군을 덮친 재앙은 한 사람의 죄를 벌하기 위해 그가 속한 공동체 전체에 내린 천벌로 묘사된다. 시인은 아폴론이 분노한 이유를 설명한 다음(1.11-42), 아폴론이 그리스 진영을 향해 전염병의 화살을 무차별하게 쏘아대는 모습을 노래한다(1.50-52).
  • 처음에 그는 노새들과 날쌘 개들을 공격했고

    다음에는 대놓고 사람들을 향하여 날카로운 화살을 쏘았다.
여기서 아폴론이 아가멤논의 불경에 대해 날리는 분노의 화살은 인간은 물론이고 짐승에게까지 향한다. 아폴론의 화살이 9일 동안 날아들자, 다음 날 아킬레우스(Achilleus)는 비상회의를 소집하여 전쟁과 역병이 동시에 아카이오이족을 제압한다고 말하면서(1.59-60), 아폴론이 분노한 이유를 칼카스(Kalchas)라는 예언자에게 묻는다(1.62-63). 이에 대해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신의 뜻을 전한다(1.93-95).
  • 신이 분노한 까닭은 서약이나 헤카톰베6)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사제 때문이오. 아가멤논이 그를 모욕하며 그의 딸을
    돌려주지 않고 몸값도 받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여기서 아폴론이 분노한 이유가 명확히 밝혀진다. 자신의 신관인 크리세스를 아가멤논이 모욕했기 때문이며, 크리세스의 딸인 크리세이스를 돌려주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1.97-99). 예언자의 말에 질병의 원인과 대응이 모두 담겨 있다.
이처럼 『일리아스』에 나타난 질병은 인간의 불경에 대한 신의 징벌이고, 이에 대한 인간의 대응은 원상회복을 통해 신의 분노를 해소시키는 것이다.7)

2.2 『오이디푸스 왕』에 나타난 전염병과 그 대응

고대의 전염병은 서사시 외에 기원전 5세기에 나온 비극시에서도 중요한 배경이 된다. 소포클레스(Sophocles)의 대표작인 『오이디푸스 왕』도 『일리아스』처럼 전염병이 창궐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트로이 전쟁 이전의 인물인 오이디푸스(Oedipus)는 테베의 왕자로 태어났지만, 세상에 나오자마자 들판에 유기된다. 그러나 우연히 코린토스(Korinthos)의 왕자로 입양된 그는 성년이 되어 부지불식간에 테베의 생부(生父)를 살해하고 모친과 상간(相姦)하여 2남 2녀의 자녀까지 낳는다. 테베의 번영과 함께 행복하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전염병이 도시를 덮친다. 도시는 주검들로 넘쳐나고 살아남은 자들은 오이디푸스 왕에게 몰려와 도시를 구해달라고 탄원한다. 바로 이 장면부터 작품의 막이 오른다.
오이디푸스는 양털실을 감아 맨 나뭇가지를 들고 몰려온 탄원자들 앞에 나서서, 이 국가적 재난을 해결하기 위해 델포이 신전에 특사를 파견하여 신탁을 받아오도록 했다고 말한다. 잠시 후에 특사로 파견됐던 크레온(kreon)8)이 등장하여 아폴론 신의 뜻을 전한다(96-98).
  • 포이보스 왕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 이 땅에서 자라는 오욕을 나라에서 몰아내라고

  • 치유할 수 없을 때까지 품고 있지 말라고.

여기서 포이보스(Phoibos) 왕은 아폴론이고, 오욕(miasma)은 테베의 라이오스 왕이 아들인 오이디푸스에게 죽을 당시 흘린 피 혹은 피로 인한 불결을 뜻한다. 이어 크레온은 왕에게 테베시의 오염을 정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해준다(100-101).
  • 사람을 추방하거나 피는 피로 갚으라고 하셨어요.

  • 바로 그 피가 우리 도시에 폭풍을 몰고 왔다고 합니다.

도시를 더럽힌 사람을 색출하여 추방하거나 피로 보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재앙의 당사자가 누구인지는 오이디푸스 자신은 모른다. 이 작품에서도 질병을 보낸 당사자는 아폴론 신이고, 그가 분노한 이유는 오이디푸스의 부친살해 행위이며, 질병의 결과는 테베 시민들의 무차별적인 죽음이다(22-30).
  • 보시다시피 도시가

  • 이미 풍랑에 너무나 흔들리며, 죽음의 파도 밑에서 아직도 고개를 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이 나라에서는 대지의 열매를 맺는 이삭에도 목장에서 풀을 뜯는 소 떼에게도, 여인들의 불모의 산고에도 죽음이 만연해 있나이다. 게다가 불을 가져다주는 신이, 가장 사악한 역병이 도시를 뒤쫓으니

  • 카드모스의 집은 빈집이 되어가고

  • 어둔 하데스는 신음과 눈물이 늘어나게 되었나이다.

『일리아스』에서처럼 『오이디푸스 왕』에서도 신의 응징이 동식물에서 시작하여 인간과 도시 전체로 무차별하게 향하고 있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에게서 자식을 낳은 오이디푸스의 패륜 행위가 자연적 질서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신화 속의 전염병을 다룬 서사시와 비극시에는 유사한 점이 있다. 전염병의 발생 원인이 인간의 오만(hybris)에 있다. 『일리아스』에는 아가멤논이고 『오이디푸스 왕』에는 오이디푸스가 그들이다. 이들은 자기분수를 넘어 사회질서를 교란시키고 도시를 재앙에 빠뜨린다.9) 결국 질병의 신인 아폴론은 사회질서를 혼란시킨 당사자와 그가 속한 공동체 전체를 전염병으로 응징한다.

2.3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나타난 전염병과 그 대응

이제 역사가가 기록한 역사 속의 전염병에 대해 살펴볼 차례이다. 그리스 역사가 중에서 당대의 전염병에 관해 기록한 역사가는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지성인인 키케로(Cicero)가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평가한 헤로도토스(Herodotos)와 19세기 독일의 역사가 랑케(Ranke)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역사가의 모델로 인정한 투키디데스(Thucydides)가 있는데(반덕진, 2013: 152),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담긴 전염병에 관한 기록은 단편적이고 산발적이어서 이 연구에서 제외했다.
투키디데스는 델로스 동맹(Delian League)의 맹주인 아테네와 펠로폰네소스 동맹(Peloponnesian League)의 맹주인 스파르타가 그리스 패권을 놓고 대결한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B.C. 404)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The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에 기록했다. 전쟁 초기인 기원전 430-429년에 아테네에 전염병이 발생하여 아테네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당시 아테네 민주주의 지도자였던 페리클레스(Perikles)도 이 전염병으로 기원전 429년에 죽었다(Plutarchos, 38). 결국 이 질병은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패배하게 되는 큰 원인이 된다.10)
페리클레스의 라이벌인 투키디데스는 이 전염병에 걸렸다가 회복되었기에(Thucydides, 2.48.3), 이 역병의 실상에 대해 상세하고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었다(2.48.3). 그의 기술(2.47.3-54.5)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관한 유일무이한 기록이기 때문에 아테네 역병은 ‘투키디데스 전염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성영곤, 2013: 114).
투키디데스는 아르키다모스(Archidamos) 왕이 지휘하는 스파르타인들이 아테네를 약탈한지 며칠 되지 않아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고 기록한 후(2.47.2-3), 이어서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2.47.4).
  • 처음에는 무슨 병인인지 몰라 의사들이 제대로 치료할 수 없었다.

    환자들과 접촉이 잦으니 실제로 의사들이 가장 많이 죽었다.
위 기록에는 중요한 두 가지 단서가 담겨 있다. 하나는 호메로스와 소포클레스의 작품에서와는 달리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예언가가 아니라 의사가 나타났고, 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하다가 죽기도 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그 병이 ‘접촉’에 의해 전염된다는 인식이 어렴풋하게나마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비록 이 역사가는 질병의 원인에 대한 고찰을 거부했으나, 이 전염병이 접촉에 의해 전파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했고, 환자들과 접촉하는 의사들이 감염에 가장 취약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의사의 돌봄이 별 효과가 없자 환자들은 마지막으로 신전에 호소했다. 그러나 신은 응답하지 않았다(2.47.4). 이처럼 역사가는 전염병에 대한 종교적 의존의 한계를 인식하고 질병의 신성성을 탈색시킨다.11) 결국 아테네 시민들은 생존을 위한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다.
역사가는 이 질병의 발생지와 전파경로에 대해 간략하게 말한 후, 질병의 한 가지 원인을 스쳐가듯 전한다(2.48.2).
  • 가장 먼저 감염된 사람들은 페이라이에우스인들인데 그들은 펠로폰네소스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펠로폰네소스인들은 스파르타인들을 말하며, 이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것인데, 아마도 독성물질이 함유된 수분이 우물 속에서 증발하여 대기로 퍼져나가 질병이 발생했다고 믿은 것 같다. 만약 독성 물질이 섞인 공기를 질병의 원인으로 생각했다면 이는 당시 의사들이 주장했던 장기설과 관련된다(반덕진, 2013: 156). 그러나 투키디데스는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역할은 의사에게 맡기고, 자신은 질병의 증상에 대해 묘사하겠다고 말하고(2.48.3), 이어서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2.49.2-6).
  • 처음 증상은 머리에 고열이 나고 눈이 빨갛게 충혈 되는 것이었다. 입안에서는 목구멍과 혀에서 피가 나기 시작하고 내쉬는 숨이 부자연스럽고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재채기가 나며 목이 쉬었다. 얼마 뒤 고통이 가슴으로 내려오며 심한 기침이 났다. 이 병이 복부에 자리 잡게 되면 복통이 일어나면서 의사들이 이름을 붙인 온갖 담즙을 토하게 되는데 큰 고통이 있었다. … 그러나 환자들이 이 기간을 넘기면 역병이 배로 내려가 심한 궤양과 걷잡을 수 없는 설사를 유발해서 나중에는 대부분 그 때문에 죽었다.

이처럼 역병은 머리에서 시작해서 온몸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2.49.7). 투키디데스는 병의 증상에 대해 놀랄 만큼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면서도, 이 역병의 증상에 대해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고 실토하면서(2.50.1),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2.51.2-4).
  • 어떤 사람들은 방치 상태에서 죽어갔고, 어떤 환자들은 지극한 보살핌 속에서 죽어갔다. 효과적인 치료제는 없었다. … 체질이 강하든 약하든 일단 이 병에 걸리면 차이가 없었으니, 이 병은 평소 건강관리를 잘하고 못하고에 관계없이 사람을 무차별하게 낚아채갔다. 이 역병의 가장 무서운 점은 이 병에 걸린 사실을 알면 절망감에 사로잡히는 것(그럴 때 사람들은 희망이 없다고 믿고 당장 자포자기에 빠져 저항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과 사람들이 서로 간호하다 교차 감염되어 양떼처럼 죽어가는 것이었다.

건강한 사람이든 허약한 사람이든, 무차별하게 병에 걸리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절망한 나머지 자포자기에 빠져 무너졌다. 어떤 사람은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죽었고, 어떤 병자들은 자기 생각만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의 간호를 받기도 했으나(2.51.5), 대부분 동반죽음을 면치 못했다. 저자는 이 병에 걸렸다가 살아나 주변 사람을 돌본 사람들에 대해서도 언급한 후(2.51.6), 점점 악화되어가는 당시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한다(2.53.4).
  • 신들에 대한 두려움도 인간의 법도 구속력이 없었다. 신들에 대한 두려움에 관해 말하자면 착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무차별적으로 죽는 것을 보자 그들은 신을 경배하든 하지 않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법에 관해 말하자면 재판을 받고 벌을 받을 만큼 오래 살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 저마다 자기에게는 이미 더 가혹한 판결이 내렸으며 그것이 집행되기 전에 인생을 조금이라도 즐기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일리아스』에서는 병을 주는 것도 신이고 약을 주는 것도 신이었다. 병은 곧 신의 벌이기 때문에 인간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속죄하면 신은 벌을 거둬들였다. 그런데 투키디데스 시대에 오면 신전에는 그곳을 찾은 환자들의 시체로 가득 찼다(2.52.3). 이로 인해 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인간의 규범도 더 이상 효력이 없어졌다. 생사의 기로에서 순간적 쾌락에 탐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가(史家)는 점차 무법천지가 되어가는 아테네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2.51.1-2).
  • 아테네는 이 전염병 탓에 무법천지가 되기 시작했다. 운세가 돌변하여 부자들이 갑자기 죽고, 전에는 무일푼이던 자들이 쾌락에 공공연하게 탐닉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목숨도 재물도 덧없는 것으로 보고, 가진 돈을 향락에 재빨리 써버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겹겹이 쌓이고 사회적 질서가 무너진 혼란 상황에서, 내일이 보장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재산과 명예는 공허한 것이었다. 도덕심 때문에 억제해 온 육체적 욕망을 마음껏 충족시키고 싶은 본능이 발동했던 것 같다. 전염병 앞에서는 종교도 무기력했다.
기원전 5세기 비극작가인 아이스킬로스(Aeschylus)는 도시의 인구를 감소시키는 두 가지 원인으로 전쟁과 역병을 들고 있는데(Persians, 715; Suppliants, 659-662), 투키디데스는 바로 아테네가 안으로 역병과 싸우고, 밖으로는 스파르타와 싸우는 이중전쟁을 치렀다고 보고했다(2.54.1). 그러나 홀연히 등장하여 당시 아테네 농민군의 1/4을 죽음에 이르게 한 후 퇴장할 때도 아무 흔적 없이 사라진 이 질병이 오늘날의 어떤 질병인지는 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McNeil, 1998: 120-121), 최근에 장티푸스 설이 유력하게 등장했다.12)

2.4 『데카메론』에 나타난 전염병과 그 대응

중세 시대(476-1453) 후반에는 유난히 전염병들이 많이 발생했다. 14세기 중반에 발생한 대역병(Great Plague, 1346-1353)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준 3대 거대 역병의 하나이다(이종찬 역, 2009: 47). 이 역병은 중세가 무너지고 르네상스의 문이 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0대 중반에 피렌체에서 흑사병(Black Death)을 직접 경험한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1375)는 페스트로 인한 당대의 참상을 『데카메론(Decameron)』(1349-1351)에 생생히 기록했다.
한국어 번역본으로 약 1500쪽 정도에 이르는 방대한 이 책에서 작가는 책의 앞부분에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와 배경을 밝히고 있는데, 흑사병에 대한 내용은 바로 이 부분에 담겨 있다. 물론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허구이지만 그들의 대화에 나오는 페스트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라 동시대의 어떤 문서들보다 흑사병 시대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Kelly, 2005: 105).
흑사병이 기승을 부리던 1348년 어느 화요일, 피렌체의 젊은 숙녀 7명과 젊은 신사 3명이 산타 마리아 노벨라(Santa Maria Novella) 성당에서 우연히 만나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다음과 같이 의견의 일치를 본다(박상진 옮김, 2012: 33-41). 즉 불결하고 위험한 도시를 떠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전원에서 절제된 생활을 하면서 이성적 기쁨을 누리자며 교외로 나기로 한다.13)
다음 날 아침에 몇 명의 하인을 데리고 피렌체 교외의 피에솔레(Fiesole) 산 별장으로 떠나 2주일 중에서 금요일과 토요일을 제외한 열흘 동안 매일 다른 주제에 대해 각자가 이야기한 후, 가무(歌舞)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보카치오는 첫째 날의 프롤로그에서 당시 피렌체에 어떤 재앙이 언제 어디서 일어났는가에 대해 먼저 기록한다(2012: 22).
  • 1348년에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중에 가장 빼어나고 고귀한 도시인 피렌체에 치명적인 흑사병이 돌았다.

이어 작가는 질병의 원인을 천체의 영향이 인간에게 미친 것이거나 우리의 삶을 바른 곳으로 인도하는 하느님의 정의로운 분노 때문이라고 소개한다(2012: 22). 작가는 질병의 원인으로 점성설(cosmic theory)과 신벌설(divine punishment)을 언급하면서 이 전염병이 몇 해 전 동쪽에서 시작되어 살아 있는 생명들을 셀 수 없을 만큼 빼앗으면서 서쪽을 향해 확산되었다며 질병의 발원지와 전파경로에 대해 설명한다(2012: 22). 이는 몽골군의 유럽 원정으로 흑해 북쪽 해안에 있는 이탈리아 제노바의 동방무역 거점도시인 카파(Caffe)14)에서 공성전이 벌어져 흑사병이 퍼졌고, 이에 제노바 상인들이 황급히 이탈리아로 돌아가면서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는 오늘날의 추측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 보카치오는 당시의 참상을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2012: 22).
  • 그 휘몰아치는 전염병 앞에서는 인간의 어떤 지혜도 대책도 소용이 없었다. 특별히 임명된 공무원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오물을 청소했고 병든 자들은 도시에 들이지 않았으며 수많은 위생지침이 고시됐지만, 다 헛일이었다. 인내심 깊은 사람들은 행진을 하거나 다른 모든 방식을 동원해 하느님께 수없이 간청해 봐도 효과가 없었다.

여기서 전염병에 대항한 집단 차원의 공적 대응이 처음 나타난다. 정부 차원에서 도시청결, 환자격리, 위생지침 공지 등의 대책을 세웠지만 효과가 없었고, 개인적으로 무리지어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며 채찍 고행을 해봐도 소용없었다. 마지막으로 신께 간청해 보았지만 신은 끝내 침묵했다. 이어 흑사병의 증상이 소개된다(2012: 22).
  • 병에 걸리면 남자든 여자든 똑같이 샅이나 겨드랑이에 종기가 나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달걀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보통 사과만 하기도 했다. … 종기는 이 두 부위에서 시작하여 삽시간에 온 몸으로 퍼졌다.

그러다가 검거나 납빛을 띠는 반점들이 병의 특성으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팔과 허벅지, 그리고 몸의 다른 구석구석에 찍히는 반점은 큰 것은 숫자가 적고 작은 것들은 촘촘하게 나타났다(2012: 23). 이 전염병에는 의사의 조언도 치료도 소용없었다. 아무도 무슨 병인지 몰랐고 그때까지 그 병을 연구한 의사도 없었다(2012: 23). 히포크라테스에서 갈레노스로 이어지는 서양의 정통 의학도 중세의 페스트 앞에서는 무기력했다.15)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와 성직자들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누구나 일단 병에 걸리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기 일쑤였고, 몸에 반점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대부분 3일 만에 죽었고, 점차 믿기 힘든 상황이 벌어졌다(2012: 27).
  • 형제가 형제를 포기하고 아저씨가 조카를, 누나가 동생을, 그리고 더 흔하게는 아내가 남편을 버리게 만들었다. 믿기 힘들지만 더 심하게는 부모가 아이들을 마치 자기 자식이 아니란 듯 돌보지 않았다.

약간의 도움만 받으면 살 수 있었던 사람들조차 죽어갔다. 살아남은 사람들 사이에는 기존의 관습과 다른 관습이 생겨났다. 사람이 죽어도 함께 울거나 슬퍼하지 않고, 경건하게 장례 치러주는 모습조차 볼 수 없게 되었다. 죽어가는 자리에 서로 모여 웃고 농담하며 왁자지껄하게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시체를 운반하는 산역꾼들과 무덤 파는 사람들은 턱없이 높은 품삯을 요구했다. 이들은 포화상태가 된 교회묘지 대신 아무 구덩이에나 시신을 그냥 버리기도 했다. 또는 거대한 도랑들을 파서 시신들로 채우기도 했다(2012: 28-29). 아침에 부모, 동료, 친구와 함께 식사하고 나서 바로 그날 저녁에 저 세상에서 먼저 가신 분들과 저녁을 먹게 될 줄을 누가 알겠는가?(2012: 32). 이어서 작가는 흑사병의 공격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대응을 묘사한다(2012: 24-25).
  • 사람들은 모두가 극도로 잔인해져 환자와 그에 속한 모든 것들을 피하고 멀리했다. 그런 식으로 자기목숨은 자기가 부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했다. 그런데 그중에는 절제된 생활을 하고 무슨 일에서든 지나치지 않으면 그런 불행을 이겨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끼리끼리 무리지어 은둔 생활을 했다. 그에 반해 실컷 먹고 마시며 즐기고 노래하며 주변을 돌아다니고 닥치는 대로 욕망을 채우고 모든 불안과 의심을 지우는 것이 최선의 대처라고 믿는 사람도 있었다.

페스트에 대처하는, 전에 볼 수 없었던 몇 가지 대응방법들이 생겨났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행태를 보였다. 첫 번째 부류는 신에게 속죄하는 마음에서 스스로 근신하고 자제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과 접촉을 끊고 옥내에서 절도 있는 생활을 하며 정갈한 음료를 마시고 악기를 연주하며 지냈다. 이와 반대로 자포자기 상태에서 낮이나 밤이나 이 술집에서 저 술집으로 옮겨 다니며 흥청망청 마시며 방탕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재산조차 포기했기에 집들은 공동소유가 되고, 낯선 사람이 주인행세를 했다(2012: 24-25). 작가는 이 두 가지 극단적인 대응 외에 두 가지 방법을 더 소개한다(2012: 26).
  • 그들은 집에만 틀어 박혀 있지 않고 근처를 산책하면서 어떤 이는 향기로운 풀을, 어떤 이는 여러 향료를 갖고 다니며 코에 대고 향기를 맡았다. … 더 잔인한 감성의 소유자들도 있었는데 … 그들은 흑사병에 걸린 사람을 그대로 두고 도망치는 것이 가장 좋은 약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자기 외에 다른 것에 대해서는 일체 신경을 쓰지 않고 남자건 여자건 살던 도시와 살던 집, 살던 땅과 더불어 살던 친척들, 쓰던 물건들도 모두 버리고 다른 땅이나 교외를 찾아 나섰다.

세 번째 부류는 질병이 오염된 공기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하고 불결한 도시와 환자의 몸, 그리고 시체에서 발생하는 악취를 피하기 위해 향료와 약초를 이용하여 향기를 맡는 사람들이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유형은 불결하고 위험한 도시를 피해 깨끗하고 안전한 장소로 이동하여 자발적으로 격리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당대의 사회적 타락과 도덕적 오염을 멀리하고 흑사병이라는 공공의 적을 피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도했다(Kelly, 2005: 108-109). 아마도 『데카메론』의 주인공들도 이 방법을 선택한 것 같다.
흑사병에 대한 이런 다양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래서 13세기에 꽉 찼던 유럽이 14세기에는 텅 빈 유럽이 되었다. 정치적 봉건제도와 경제적 장원제도에 의해 유지된 중세 체제가 급격한 인구감소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흑사병 앞에 성속(聖俗)의 구별조차 사라져, 교회와 성직자의 권위는 크게 약화됐다. 결국 중세의 흑사병은 인간의 삶에서 종교적 영향력을 급속하게 약화시켰고, 인간의 관심을 신에게서 인간에게로 돌리게 했다.

2.5 『페스트』에 나타난 전염병과 그 대응

중세 페스트의 유행을 배경으로 한 『데카메론』이 나온 지 약 600년이 지난 20세기 중반에 『페스트』(La Peste, 1947)라는 작품이 나왔다. 제2차 대전 무렵에 ‘부조리’와 ‘반항’의 개념을 내세웠던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이 작품은 페스트로 외부와 단절된 도시에서 대규모 전염병에 대처하는 다양한 인간군상과 부조리한 재앙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반항하는 인간의 실존을 그린 최초의 본격 재난소설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인 1940년대 어느 날, 아프리카의 알제리에 있는 오랑시에 페스트가 발생하여, 도시가 봉쇄되고 시민들이 고립된다. 하루에도 수백 명씩 죽어가는 한계 상황에서 도시에 갇힌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기 시작한다. 기필코 탈출하여 파리의 아내에게 돌아가려는 레이몽 랑베르(Raymond Rambert) 기자, 재앙은 신의 징벌이라며 인간의 속죄를 강요하는 파늘루(Paneloux) 신부, 전염병에 맞서 묵묵히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베르나르 리유(Bernard Rieux) 의사, 하급 공무원이자 리유의 협력자인 조제프 그랑(Josech Grand), 자원보건대를 조직하여 리유, 그랑과 함께 전염병과 싸우다 장렬하게 죽은 장 타루(Jean Tarrou), 혼란 상황을 이용하여 암거래로 이익을 챙기며 페스트를 즐기는 코타르(Cottard) 등, 다양한 인물들이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재난 앞에서 적나라한 실상을 보여준다.
어느 날 시내에서 죽은 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곧 전염병이 발생하여 사람들이 죽어간다. 관계 공무원들은 위험한 현실을 회피하며 사태를 조용히 무마하려 한다. 도청에서 소집된 비상보건위원회에서, 중요한 것은 질병의 명칭이 아니라 시간문제라며 최대한 신속하게 예방조치를 취하라는 리유의 의견에 따라 드디어 당국의 결정이 내려졌다(김화영 역, 2011: 89).
  •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

그때부터 페스트는 도시 전체의 문제가 되고 사람들은 집단 감옥살이에 들어간다. 외부와 단절된 도시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총소리, 다급한 구급차 사이렌소리, 화장터의 내뿜는 연기 등이 뒤엉켜 생지옥으로 변한다. 사람들은 각자 그날그날 하늘만 바라보며 고독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극도의 ‘고독’ 속에서 누구도 이웃의 도움을 바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파리의 신문 기자 랑베르가 리유를 찾아와 도시를 탈출할 수 있도록 자신이 페스트 환자가 아니라는 증명서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리유는 이제 당신도 이 고장 사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라며 거절한다.
혼란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도시에서 유난히 호황을 누리고 있는 곳이 있었다. 교회였다. 신도들의 존경을 받는 파늘루 신부가 설교단에 오른다(2011: 128-129).
  • 여러분은 불행을 겪고 있습니다. 그 불행을 겪어 마땅합니다. … 페스트가 여러분에게 관여한 것은 반성할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페스트는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징벌이며, 이 재앙이 인간을 향상시키기도 하고 길을 제시하기도 한다는 내용이 이어졌다.
이즈음 얼마 전부터 오랑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는 타루가 리유를 찾아와 공무원들만 믿고 있을 수 없다며, 부족한 인력을 돕기 위해 자원보건대를 조직하겠다고 말한다. 리유도 이에 공감하고 서로 의기투합한다. 타루가 신부의 설교에 대해 묻자 리유는 모든 것을 체념한 채 페스트를 용인하는 것은 비겁한 것이며, 질병의 유익한 점을 증명하기 전에 우선 치료부터 해야 한다고 대답한다.
한편 집요하게 도시탈출을 노리는 랑베르가 어느 날 리유에게 자원보건대에 대해 물으며, 자신은 영웅주의를 믿지 않고 오직 사랑하는 것을 위해 살고 사랑하는 것을 위해 죽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이에 리유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2011: 216).
  •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 무관하며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다.

리유의 대답에 랑베르는 성실성이 대체 뭐냐고 되묻는다(2011: 216).
  • 성실성이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다.

랑베르는 리유의 부인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요양소에 있다는 말을 타루로부터 듣고, 다음 날 새벽에 리유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도시를 떠날 때까지는 보건대에서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미 그는 도시 관문의 경비병을 매수해서 탈출 일정을 잡은 상태였다.
도시에서는 페스트로 인해 군인, 수도승, 죄수들 같은 단체 생활자들까지 분산 숙박해야 하는 상황으로 변한다. 이처럼 페스트는 시민들에게 ‘연대’를 요구하는 동시에 전통적인 결합관계를 파괴하고 저마다 ‘고독’에 잠기게 했다. 점차 페스트가 절정으로 치닫자 시민들의 폭력도 극에 달해 방화, 약탈, 무장습격, 총격전 등이 발생했다. 이 와중에도 도시를 탈출하여 파리의 애인을 만날 수 있게 된 랑베르에게 리유와 타루는 진심어린 축하를 해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재난에 맞서 묵묵히 희생하고 있는 리유와 타루를 지켜 본 랑베르의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2011: 272-273).
  • 탈출하지 않고 여러분과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 나는 늘 도시와 남이고, 여러분과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해 왔어요. … 그러나 이제는 나도 이곳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 사건은 우리 모두와 관련되어 있으니까요.

랑베르는 오기 전에 파리의 애인에게 이 사실을 미리 알렸다. 오랑을 탈출하는 것만이 행복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현장을 외면하고 떠나는 것이 부끄러운 것임을 깨닫고, 그들의 연대 투쟁에 동참하겠다는 것이다.16)
급기야 한 어린 아이가 죽는 장면에서 이 소설은 절정에 달한다. 페스트가 발생한지 6개월이 되는 어느 날, 페스트에 걸린 오통 판사의 아이에게 노의사 카스텔이 만든 혈청이 시험 주사되는 현장에 리유, 카스텔, 타루, 파늘루, 랑베르, 그랑 등 보건대원들이 다 모였다. 아이는 페스트의 광풍에 부들부들 떨며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이를 살려달라는 파늘루 신부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숨을 거둔다. 리유가 신부에게 항변한다(2011: 284-285).
  • 이 아이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습니다. … 어린 아이들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 놓은 세상이라면 나는 그 세상을 죽어서도 거부하겠습니다.

리유의 단호한 입장에 신부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보였다. 리유는 의사답게 공허한 관념 대신 실존적 가치를 강조한다(2011: 285).
  • 인간의 구원이란 나에게는 너무 거창한 말입니다. 나에게는 그렇게까지 원대한 포부는 없습니다. 내게 관심이 있는 것은 인간의 건강입니다.

굳이 의사가 아니라도 건강은 모든 인간이 언제 어디서든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이다. 리유는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악에 맞서 환자의 건강을 지켜야 하는 의사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신부와의 인연은 포기하지 않는다. 리유는 죽음과 불행을 증오하면서도 신부가 원하던 원치 않던 그것 때문에 함께 고생하고 싸우고 있다면서 이제 하느님조차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2011: 286).
생각에 변화가 온 신부는 자원보건대에 합류했다가 얼마 후 페스트로 보이는 병에 걸려 눈을 감는다. 페스트로 어린 아들을 잃은 오통 판사도 자원보건대에 가입한다. 리유, 타루와 함께 보건대를 이끌다 페스트에 걸렸던 그랑이 혈청 주사를 맞고 극적으로 살아났다. 환자들이 점차 회복되고 사라졌던 쥐들이 다시 나타난다. 8개월 동안 극성을 부리던 페스트의 기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도 장시, 남의 얼굴에 병을 옮기지 않으려면 늘 스스로를 살펴야한다고 말했던 주인공 타루가 그만 순간적인 방심으로 페스트에 쓰러지고 말았다. 요양소에 있던 리유의 아내마저 세상을 떠났다. 페스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물러갔다. 오랑 시의 문이 크게 열리자 랑베르의 아내가 들어와 두 사람이 반갑게 재회한다. 시민들의 환호 속에 작가는 다음과 같은 독백으로 독자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는 것을 잊지 않으며 작품을 마무리한다(2011: 401-402).17)
  • 페스트균은 죽거나 소멸하지 않고 꾸준히 살아남았다가 … 언젠가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쥐들을 다시 깨우고 사람들을 죽게 할 날이 온다.

『페스트』에는 사회적 재난을 피하지 않고 인간들이 굳건히 연대하여 극복하는 희망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 작가는 현실이 아무리 가혹해도 희망을 갖고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에 충실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연대하여 투쟁하는 소시민들의 이타심이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진정한 반항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작가는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의 한 사람인 타루를 통해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예언자적인 메시지를 남긴다(2011: 329).
  •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준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이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이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결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다.

작가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설령 병에 감염되어도 속히 자연치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감염된 동안에는 남에게 병균을 옮기지 않도록 안전수칙을 최대한 준수하고, 건강을 잘 관리하기 위해 평소에 도덕적으로 해이해지지 않도록 일정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3. 결론

지금까지 『일리아스』에서 『페스트』까지 서양의 인문고전 중에서 전염병을 다루고 있는 다섯 작품 속에 담긴 전염병의 원인과 대응에 대해 살펴보았다.18)
전염병의 원인을 호메로스는 신벌설과 점성설로, 소포클레스는 신벌설과 장기설로 이해했고, 투키디데스는 질병의 원인에 대한 탐구는 의사들에게 돌리고 자신은 스쳐지나가듯 장기설(독기설)과 관련된 내용을 한 줄로 남겼다.19) 보카치오는 신벌설과 우주설을 단 두 줄로 간단하게 소개하는 데 그쳤고, 이미 페스트의 병원균이 명확히 규명된 20세기에 카뮈는 당시에도 사라지지 않은 채 여전히 기승을 부리던 신벌설을 강하게 비판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호메로스 시대에 절대적이었던 종교적 사고가 점차 약화되고 20세기에는 신벌설이 의사의 합리적 비판의 대상까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중세의 흑사병은 성속의 구별 없이 사망자를 발생시켜 결과적으로 질병의 신성성을 약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처럼 호메로스와 소포클레스는 종교적이고 초자연적인 질병관을 노래했고, 투키디데스는 자연적이고 합리적인 질병관을 보여주었으며, 보카치오는 다시 종교적, 초월적 질병관으로 회귀했다가, 카뮈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질병관의 승리를 보여주었다.
전염병에 대한 일반 개인의 대응을 보면 『일리아스』와 『오이디푸스 왕』에는 신의 분노를 유발한 원인을 제거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투키디데스 작품부터 질병에 대응하는 인간의 군상이 다양하게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의 기록에는 아직 집단적 차원의 대응은 나타나지 않고, 주로 개인적 차원의 대응, 예를 들면, 신전 탄원, 자포자기, 쾌락 탐닉 등과 같은 행태가 나타난다. 『데카메론』에는 사람들의 다양한 대응이 더욱 생생하게 묘사된다. 질병에 대한 절제적 태도, 쾌락적 태도, 방어적 태도, 도피적 태도 등이 대표적이다. 『페스트』에도 주인공들 사이에 확연하게 구별되는 대웅법들이 나타났다. 우연히 오랑에 발이 묶인 랑베르의 ‘도피적’ 대응, 파늘루 신부의 ‘신앙적’ 대응, 동지적 우정으로 결속된 리유와 타루의 ‘저항적’ 대응, 혼란 속에서도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코타르의 ‘실리적’ 대응 등이 비교된다.
전염병에 대한 대응과 관련하여 의사는 호메로스와 소포클레스 작품에는 언급조차 되지 않다가 투키디데스 작품에 와서 환자를 돌보다 죽기까지 하는 존재로 기록되었고, 이런 질병 치료자로서의 의사의 역할은 보카치오에 와서 더욱 확대되었다가, 카뮈에 와서는 전염병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영웅적 존재로 그려진다.20)
질병에 대한 정부적 차원의 대응은 『데카메론』에 와서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한다. 당시 흑사병이 확산되자 피렌체 정부는 위생지침 공지, 오물 청소, 병자 격리 등과 같은 조치를 취한다. 『페스트』에서 정부는 초기 대응에 실패하기도 했지만 점차 정부가 주도적으로 도시 폐쇄, 교통 통제, 등화관제, 식량 배급 등 적극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한다. 그럼에도 상황이 계속 악화되자 페스트는 이제 개인이나 정부 차원을 넘어 공동체 전체 차원의 사건이 되어 다양했던 대응방법들이 한 가지, 즉 저항 방식으로 통일된다. 그토록 원하던 탈출기회가 왔는데도 혼자만의 행복이 부끄러워 탈출을 포기하는 랑베르, 영생의 기쁨이 순간의 고통을 보상해 줄 수 있는가에 의문이 든 파늘루 신부 등 등장인물 모두가 연대하여 대규모 재앙에 맞선다.
이처럼 전염병에 대해 인간은 신에 대한 초자연적 의존에서 벗어나 점차 개인 차원의 다양한 대응, 의사의 진료, 정부의 방역으로 확대되어 갔고, 도시 구성원 전체의 연대와 협력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 전염병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되는 팬데믹 시대에는 이런 연대의식과 공동체 정신이 지역과 국경을 넘어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앞에서 살펴 본 다섯 권의 고전 중에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주는 책은 카뮈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비대면과 비접촉이 새로운 삶의 양식이 되어가는 뉴 노멀 시대에 새로운 사고와 행위에 관한 규범이 필요하다. 전염병의 위협 속에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적극 동참하게 해야 한다.21) 이를 위해 개인적 차원에서 신체적 면역력과 심리적 고독력을 강화하고, 사회적 차원에서 집단적 면역력과 심리적 연대감을 증진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각자 건강한 심신을 갖춰 홀로서기가 가능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제 인간관계도 ‘연결에서 연대로’ 강화돼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홀로서서 함께하는’ 정신일 것이다. 사회적 대재앙 상황에서 카뮈가 제시한 ‘고독’과 ‘연대’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게 보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자의 독립적인 생존능력과 정부와 시민이 함께 하는 줄탁동시(啐啄同時)와 같은 협력적 대응방법이다. 그런데 이에 관한 논의와 학습은 특정 분야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는 전공교육보다 다양한 분야의 폭넓은 지식과 지혜를 제공하는 교양교육의 영역에 속한다. 건강한 심신, 안전한 사회, 범지구적 연대 등에 관한 교육은 교양교육에서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교양기초교육원의 교양교육표준안에서 교양교육 영역의 인문사회 관련 교과목을 활용하여 구성원 간의 공감과 소통, 공동체 정신과 시민의식 등을 교육하고, 소양교육 영역의 신체적 체험교육, 정서적 체험교육, 사회적 체험교육 관련 교과목을 활성화시켜 건강 증진과 질병 예방을 위해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면 좋을 것이다. 이제 우리 교양교육은 현재와 미래의 팬데믹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교과목들을 개설하고 효과적인 교수법도 개발해야 할 상황을 맞았다.

Notes

1) WHO는 2020년 2월 11일에 이 전염병의 공식 명칭을 COVID-19(Coronavirus Disease 2019)로 확정했다.

2) 본론을 작품별로 구성하는 방법보다 주제별로 구성하는 방법을 제안해주신 심사위원님의 조언을 여러 가지 사정상 이번 연구에는 반영하지 못한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

3)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크세노폰(Xenophon)은 니케라토스(Niceratos)가 “우리 아버지는 아들이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열망하여 호메로스의 시행을 모두 암송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모두 암송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했다. Xenophon, Symposion, 3.5. 알렉산드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교정한 『일리아스』를 잠잘 때도 베개 밑에 간직했고, 페르시아의 다레이오스 왕에게 노획한 보물 상자에 넣어 보관했을 만큼, 이 책을 애지중지했다고 전한다. Plutarchos, Bioi parallēloi, 8; 26.

4) 이 연구 중 일부는 그리스 시대 전염병에 관한 연구(반덕진, 2013: 145-163)에 기초하여 발전시킨 것이다.

5) 아가멤논은 트로이의 아폴론 신전 사제인 Chryses의 딸 Chryseis라는 전쟁포로를 전리품으로 배당받는다. Chryses는 딸을 돌려 달라고 간청했으나, 아가멤논이 거부하자, 그리스인들이 죄값을 치르게 해달라고 아폴론에게 기도했다. 이에 아폴론은 올림포스의 정상에서 내려가 그리스 진영에 화살을 날려 전염병을 발생시켰다. 이에 당황한 그리스인들은 예언자의 조언에 따라 크리세이스를 돌려주고 희생제물을 바치고서야 신의 분노를 해소시킬 수 있었다. 이에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인 Briseis를 대신 강탈했고, 명예를 훼손당한 아킬레우스는 크게 분노하여 전장에서 물러난다. 그래서 『일리아스』 제1권의 제목이 ‘전염병, 아킬레우스의 분노’이다.

6) 헤카톰베(hekatombe)는 원래 ‘소 100마리의 제물’이라는 의미이지만 여기서는 ‘성대한 제물’이라는 뜻으로 쓰였다(천병희, 2016: 29).

7) 그런데 『일리아스』에는 신벌설 외에 또 하나의 병인론(病因論)이 나온다. 『일리아스』 제22권에는 질병이 별과 관련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가 들판 위를 질주하는 모습은 마치 늦여름에 떠올라/밤의 어둠 속에서 수많은 별들 사이에서도/가장 찬란한 광채를 발하는 별처럼 빛났다/이 별을 사람들은 오리온의 개라고 부른다./이 별은 가장 찬란하기는 하나 불행의 전조이며/가련한 인간들에게 심한 열병(熱病)을 가져다준다.”(22.26-31). 별이 인간의 건강이나 질병에 ‘영향(influence)’을 미친다는 ‘점성설’이 서양의 기록에 처음 나타나고 있다. 호메로스는 들판을 질주하는 영웅 아킬레우스를 별에 비유한다. 그리스인들은 하늘에서 특정한 별이 깜빡일 때 방출되는 유해한 물질이 지상의 인간들에게 병을 걸리게 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유행성 독감을 뜻하는 인플루엔자라는 용어도 이런 사고와 관련있다. 그런데 점성설(cosmic theory)에 대한 인간의 대응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없다.

8) 그는 전에는 오이디푸스의 외삼촌이었으나 당시는 처남이다.

9) 이 사실은 두 작품 모두 예언자를 통해 알려진다(반덕진, 2013: 152).

10) 기원전 5세기 당대를 살았던 서양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가 남긴 것으로 전해오는 『히포크라테스의 전집(Corpus Hippocraticum)』에는 아테네 역병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그래서 당대 의사들이 외면했던 아테네 역병에 대한 역사가의 기록은 더욱 가치가 있다. 투키디데스는 전염병을 묘사하는 첫 부분에 자신의 경험을 밝힌다. 그는 개인적으로 그 질병에 걸렸었고 그 질병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정보에 의지할 필요 없이 내적 경험과 외적 경험을 모두 거친 선택받은 증인으로서 그 질병에 대해 기술할 수 있었다.

11) 이처럼 투키디데스는 합리적 의사들은 물론 종교적 의사들의 한계도 놓치지 않았다.

12) 아테네 역병의 실체에 대해 그동안 다양한 병명이 제시되었으나, 1994년에 전몰자기념묘지(Kerameikos)의 집단매장지에서 발굴한 150구의 유골에 대한 DNA 분석 결과, 2006년 이후에는 장티푸스(Typhoid fever)설이 유력하다(성영곤, 2013: 120).

13) 일곱 명의 여성들은 모두 18세 이상에서 28세 이하의 젊은 귀족들로 대부분 별장 몇 채씩과 재색을 겸비하고 있었다. 세 명의 남자들은 모두 25세 이상으로 역시 좋은 가문에서 성장한 교양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서로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사이였다.

14)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 페오도시야(Feodosiya)이다.

15) 서양 고대 의학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에서 시작되어 서기 2세기 무렵 로마 시대의 갈레노스(Gallenos)가 집대성하여 중세까지 이어졌다.

16) 랑베르의 이런 심경의 변화는 전쟁을 반대하면서도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작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17) 작가는 타루를 통해 사람은 저마다 자기 속에 페스트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작가가 말하는 페스트는 전쟁이나 지진처럼 인간의 자유를 제약하는 모든 재난 상황은 물론이고, 부조리한 삶이나 치유할 수 없는 원초적 고통 등을 포함한다.

18) 호메로스와 소포클레스는 질병에 대한 신화적 사고를 보여주었고, 투키디데스는 질병을 합리적 관점에서 인식했으며, 보카치오는 질병에 대한 다양한 세속적 대응방법을 소개했고, 카뮈는 질병에 맞서 인간의 실존과 존엄을 지키려는 인본주의 정신을 강조했다.

19) 소포클레스와 페리클레스는 전염병을 설명하기 위해 장기(miasma)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나, 이 용어는 두 저자에 의해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장기는 출혈과 같은 종교적, 도덕적 불결을 의미하지만, 페리클레스는 대지, 습지, 늪지 등에서 발생하는 오염된 공기와 같이 종교적, 도덕적 의미가 탈색된 자연적, 물리적 성격이 강한 것이다.

20) 물론 작품 속의 의사 리유는 영웅주의에는 관심이 없다.

21) 코로나 이전에는 ‘개인’의 ‘질병’을 치료하는 의학(medicine)에 비해, ‘집단’의 ‘건강’을 연구하는 공중보건학(public health)이 관심을 받지 못했으나, 코로나 시대가 열리면서 공중보건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화학과 생물학 등 자연과학에 기반을 둔 의학과 달리, 의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 등 다양한 학문과 연계되어 있는 공중보건학은 질병 예방과 건강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 미래의 각종 재난 상황에서 사회적 안전을 지키기 위한 재난 인문학 관련 교육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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