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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General Edu > Volume 17(2); 2023 > Article
인문 고전을 활용한 비판적 사고 교육 -『페스트』를 중심으로

Abstract

교양 교육으로서의 비판적 사고 교육을 위해서는 덕성적 측면의 성향 교육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단순히 논리적 사고 기술만 가르치는 것은 변론술에 능한 소피스트들을 양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교양인 양성을 위한 비판적 사고 교육의 목표에 부합하는 한 가지 방법은 인문 고전을 활용하는 것이다. 인문 고전의 장점은 학생들이 바람직한 인간상과 사회상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주인공이 되어 최선의 의사결정과 문제해결을 위해 비판적 사고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알베르트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활용하여 교양 교육으로서의 비판적 사고 교육이 가능함을 보이고자 한다. 먼저 학생들의 집중을 위한 생각자료로 이 소설의 일인칭 시점 줄거리를 소개하고 중간 중간 학생들 스스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질문들을 제공하였다. 학생들은 이 질문들에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 과정에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 다음으로 학생들은 생각자료들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고 개선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 등장인물들의 생각에서 논증과 오류를 추출하여 제시했다. 요컨대 학생들은 이 고전을 통해 우리 시대의 팬데믹 상황과 아주 유사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여러 문제 상황들을 간접 체험하고 함께 해결책들을 궁리해 봄으로써 비판적 사고 기술과 성향을 겸비한 강한 의미의 비판적 사고자가될 수 있다.

Abstract

For critical thinking education in the liberal arts, virtuous disposition education is essential. Simply teaching logical thinking skills is no different from mass-producing sophists who are good at forensics. One way to meet the goal of critical thinking education for cultivating educated people is to use classic texts in the humanities. The strength of such texts is that students are not only able to think about desirable human and social aspects by reading them, but they can also become the main character themselves and use critical thinking for the best decision-making and problem solving possible. I would like to show that critical thinking education in liberal arts education is possible by using Albert Camus’ novel The Plague. First, the first-person point of view of the novel was introduced as material for consideration to provide a focal point for the students on which they could concentrate. Following this, various questions were provided worthy of serious consideration. Students were able to think for themselves about these questions and to share their thoughts with each other during the discussion process. Next, students were able to logically analyze, evaluate, and improve their thinking process. To this end, arguments and errors were extracted and presented from the thoughts of the characters of the novel. In short, through this classic text, students were able to become the protagonists of a story very similar to the pandemic situation of our current time, indirectly experiencing various problematic situations and contemplating solutions, thereby becoming critical thinkers with critical thinking skills and dispositions at the same time.

1. 머리말

코로나19가 유행을 시작한지 벌써 3년이 넘었다. 세계적으로 68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대한민국에서도 확진자만 3,000만 명을 넘어섰다.1) 인류의 모든 활동이 순식간에 멈추었고 그로 인한 피해도 막대하며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경제, 교육, 여가 활동이 중지되는 것에서부터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정신적 슬픔까지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고립과 단절로 인한 스트레스가 우울증, 분노조절 장애, 공황 상태 등을 유발한다는 데서 착안해 코로나블루, 코로나레드, 코로나블랙 등의 신조어가 등장했을 정도다.
바이러스는 개인, 남녀, 연령, 피부색, 소수집단, 국가, 종교, 사상을 가리지 않는다. 과거에도 1차 대전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으로 50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페스트로 지구상에서 최소 2억 명 이상이 사망했다. 슈퍼바이러스들로 인한 팬데믹 상황이 앞으로도 10년에서 40년 주기로 출현할 것이라는 예측은 인류가 바이러스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방면에서 예방책을 실시하고 그것을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교육도 예외일 수 없다. 개인의 측면에서든 공동체의 측면에서든 위기의 상황에서는 최선의 의사결정과 문제해결을 위해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한상기, 2007; Haver, 2020: xi). 이러한 점에서 시민 개개인의 비판적 사고 능력과 공동체 의식 확립이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떠오른다(정세근, 2021: 121-23; Halpern & Dunn, 2021: 4).
교양 교육으로서의 비판적 사고 교육을 위해서는 덕성적 측면의 성향 교육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김광수, 2022; 최훈, 2008; 김태영, 2014, 2021). 단순히 논리적 사고 기술만 가르치는 것은 변론술에 능한 소피스트들을 양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이승규, 2020: 192). 교양인 양성을 위한 비판적 사고 교육의 목표에 부합하는 한 가지 방법은 인문 고전을 활용하는 것이다(반덕진, 2020; 최용호, 2022). 인문 고전을 활용하는 장점은 학생들이 바람직한 인간상과 사회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주인공이 되어 최선의 의사결정과 문제해결을 위해 비판적 사고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알베르트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활용하여 교양 교육으로서의 비판적 사고 교육이 가능함을 보이고자 한다. 필자의 전략은 1) 학생들에게 일인칭 시점의 줄거리를 소개함으로써 생각자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비판적 사고를 위한 생각자료들을 미리 기억시키는 것이다. 즉 학생들은 등장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을 통해 생각자료에 집중할 수 있다. 2) 학생들은 줄거리 중간 중간에 생각할 질문들이 주어짐으로써 자신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보고 토론 시간에 서로의 생각을 공유해 볼 수 있다. 3) 나아가 학생들은 등장인물들의 생각을 분석, 평가, 개선하는 과정에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더 나은 의견에 도달할 수 있다(Nosich, 2001: 3; Swatridge, 2014: xi). 이를 위해 2장에서 제시한 생각자료들 가운데 등장인물들의 생각들을 논증과 오류로 추출해 보았다. 학생들은 이러한 학습경험을 통해 비판적 사고의 기술과 비판적으로 사고하려는 성향을 동시에 익힐 수 있다.

2. 생각자료: 학생들을 위한 일인칭 시점의 줄거리와 질문들

지금부터는 학생들의 생각자료를 위해 필자가 각색한 『페스트』의 일인칭 시점 줄거리2)를 소개하겠다. 중간 중간의 질문들은 학생 개개인이 문제를 진단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추후 서로의 대안들을 공유하고 토론하도록 돕는 장치로 작용한다.
당신이 오랑이라는 도시에서 일하는 의사라고 해보자. 당신의 이름은 리유다. 당신은 여느 때처럼 진찰실을 나선다. 계단을 내려오던 중 당신은 우연히 죽은 쥐 한 마리를 발견한다. 별 생각 없이 건물 수위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수위는 자신이 건물을 깨끗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장난이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그날 저녁에도 당신은 쥐가 피를 토하며 죽는 것을 목격한다. 하지만 당신은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지금 당신의 아내는 많이 아프다.
다음 날 건물 수위는 죽은 쥐 3마리를 더 발견했다. 수위는 사람들의 장난이 심하다며 몹시 불쾌해 한다. 심상치 않은 마음으로 당신은 시 외곽지역을 돌며 회진을 시작한다. 당신은 그 지역에서도 죽은 쥐가 발견된다는 증언을 들었다. 요양 가는 아내를 배웅하는 기차역에서도 당신은 기차 역무원이 죽은 쥐들을 옮기고 있던 장면을 목격했다. 며칠이 지나자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죽은 쥐들의 수는 날로 늘어 급기야 도로, 하수구, 학교 건물 등 도시 여기저기서 발견되어 처치가 곤란할 정도였다. 원인 불명의 쥐들의 죽음은 시민들의 불안을 자극했다. 시민들은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했고 일부는 피난을 생각하기도 했다.
쥐가 피를 토하고 죽는 원인 모를 현상이 불현 듯 일어났을 때, 건물 수위는 자신의 책임이 아님을 항변했고, 의사 리유는 진찰 업무로 바빴다. 죽은 쥐가 처치 곤란할 정도로 늘어나자 시민들은 동요했다. 건물 수위, 의사 리유, 시민들 각각 자기 중심적인 관점으로만 사물을 바라보는 것 같다.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넘어 페스트나 코로나와 같은 재난적 사태를 조기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약 8천 마리의 쥐들이 수거됐다는 뉴스가 있던 날 당신에게 한 환자가 도착한다. 바로 당신 건물의 수위였다. 그는 부축을 받아야 할 정도였고, 목, 겨드랑이, 허벅지에 종기가 나서 통증을 참을 수가 없다고 한다. 응급 처치 후 업무를 보던 중 시청 서기 그랑이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있으니 빨리 와달라고 했다. 가서 살펴보니 자살 시도자 코타르는 가볍게 질식 증상만 있을 뿐 건강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당신은 의사로서 이 사건을 의무적으로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만 코타르의 결사적인 저지 때문에 그를 안심시키고만 나왔다. 석간신문에서는 더 이상 죽은 쥐들이 나오지 않는다며 쥐로 인한 피해는 끝났다고 외치고 있었다.
언론은 원인을 규명하려는 심층적인 태도보다는 피상적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 말하는 모든 내용을 신뢰하는 것은 적절한가? 정확하고 올바른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는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건물 수위의 상태가 더 심각해졌다. 그는 심한 갈증과 통증을 호소했다. 열이 40℃에 달한다. 건물 수위는 구급차로 이송 도중 사망했다. 얼마 되지 않아 열병을 앓는 환자는 이제 10여 명에 달했다. 당신은 동료 의사들로부터 유사한 사례가 며칠 동안 약 20건이 발생한 사실을 알았다. 당신은 그 즉시 리샤르에게 환자들의 격리를 요구했지만 그는 주저했다. 도청의 조치가 있어야 하며 전염병이라는 확증이 없다는 것이다. 의사협회 회장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책임을 면피하려고만 하는가?!
불과 며칠 사이 사망 건수가 몇 배로 불어나자 도청과 시청에서도 의문을 느끼기 시작했다. 당신보다 연배가 훨씬 많은 동료의사 카스텔은 그동안의 의사경력을 통해 이 유행병이 페스트라는 것을 확신했다. 당신은 의사로서 페스트라는 공포를 이겨내야 한다. 그리고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만 한다. 이제 페스트 의심 환자들이 48시간 동안 11명꼴로 사망하고 있다. 당신은 가까스로 도청의 보건위원회를 소집해 확진자 수가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어쩌면 도시 인구의 절반이 생명을 잃을 수 있음을 지적한다. 리샤르는 자신의 환자들 가족이 무사하다는 것을 근거로 전염성이 확실치 않다고 주장했다.
카스텔의 경우 오랜 경력의 신뢰할 만한 의사의 권위에 의해 전염병이 페스트라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지닌 여러 믿음들 중 신뢰할만한 믿음과 그렇지 않은 믿음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리샤르의 경우 의사로서의 관점이 공무원의 관점 및 고위 책임자의 관점과 충돌하고 있다. 왜 이런 충돌이 발생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충돌이 발생할 때 나라면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사흘 만에 병동 2개가 환자들로 가득 찼다. 카스텔은 조사 끝에 쥐들 또한 페스트와 대단히 유사한 병으로 죽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곤 쥐들이 수만 마리의 벼룩을 퍼뜨려 놓아서 제때 막지 않으면 벼룩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병을 전염시킬 거라고 경고했다. 당신은 도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조치를 요청했다. 사망자의 수가 줄었다가 다시 늘어날 때쯤 프랑스 당국에서는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는 공문을 보내왔다. 그때부터 페스트는 시민들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 도시가 폐쇄됨으로써 시민들은 외부와의 단절감과 페스트로 인한 공포감으로 살아야 했다. 극도의 고독 속에서 아무도 이웃의 도움을 바랄 수 없었고 혼자서 근심에 잠겨 있었다.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공포심과 함께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오는 단절감, 고독감, 우울감을 겪은 우리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코리나19 초기에 자신들의 동선을 거짓으로 알리거나 자신의 증세를 가볍게 판단해 일상을 유지하다가 대규모 확진의 원인제공자가 되고 말았던 사례도 있다. 전지적 시점에서 나, 나의 가족, 사회, 국가, 세계는 팬데믹 상황에서 어떤 모습이었으며, 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현명할까?
페스트 발생 3주 만에 30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사람들은 그 정도의 사망률이 정상적인지 아닌지도 알지 못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전염병에 무지했고 관심도 없었다. 오히려 시민들은 불안의 한복판에서도 여전히 거리로 나와 돌아다녔고 카페테라스에 나앉아 있곤 했다. 보행자 수가 현저히 늘고 대낮의 한가한 시간에도 할 일이 없어진 많은 사람들이 거리와 카페에 득실거렸다. 어느 카페에서 술이 세균을 죽인다는 광고문을 써 붙이자 매일 밤 2시쯤에는 주정꾼들이 카페에서 쏟아져 나오곤 했다. 자살 미수에 그쳤던 코타르는 이 사태를 유쾌해하는 어조로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될 거라고 조소했다.
시민들의 일탈과 코타르의 방관자적 태도는 전염병과 정상적 삶 사이의 괴리(부조리)를 보여준다. 이와 같이 전염병을 무시하거나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조롱하는 태도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사고자의 관점에서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시가 폐쇄된 지 3주 후에 당신은 병원에서 나오다가 기자 랑베르와 마주쳤다. 그는 당신에게 파리에 두고 온 아내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페스트에 걸리지 않았다는 증명서를 부탁했다. 그러나 당신은 의사로서 거부할 수밖에 없다. 그는 흥분해서 이렇게 말한다. “서로 마음이 잘 맞아서 살고 있는 두 사람에게 이러한 이별이 어떤 것인지를 아마 선생님께서는 이해하지 못하실 겁니다.” “선생님 말씀은 이성에서 나오는 말씀이지요. 선생님은 추상적이십니다.” 급기야 랑베르는 당신에게 화를 내며 이렇게 주장한다. “공적인 일이라는 말씀이죠? 그러나 공공복지도 개개인의 행복이 우선해야 성립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일주일에 사망자 수가 평균 500명에 달하고 있는 병원에서 보낸 그날들이 정말로 추상적이었는지 자문한다. 환자에게 달려가면 환자 가족은 당신에게 동정을 구한다. 그러나 당신은 그러한 동정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결국 환자를 데려가기 위한 싸움과 눈물과 설득이 반복된다. 그 일이 추상이라 해도 당신은 의사로서 그 추상과 맞서 싸워야만 한다.
랑베르는 기자의 관점이 아니라 아내와 함께 하고 싶은 남편의 관점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랑베르는 개인의 자유(행복)라는 가치가 사회의 안정이라는 가치보다 우선한다고 보고 있다. 만일 당신이 랑베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제삼자의 관점에서 랑베르는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페스트 발생 한 달째, 수위를 부축했던 예수회 파늘루 신부는 자신의 열렬한 설교로 분위기를 암담하게 만들었다. 오랑시의 고위 성직자 측에서는 집단기도 주간을 설정함으로써 그들 특유의 방법으로 페스트와 싸우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기도 주간에는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파늘루 신부는 설교했다. “여러분은 불행을 겪어 마땅합니다. 페스트가 역사상 처음으로 나타났을 때 그것은 신에게 대적한 자들을 쳐부수기 위해서였습니다. 애굽 왕은 신의 뜻을 거역했는지라 페스트가 그를 굴복시켰습니다. 태초부터 페스트는 오만한 자들과 눈먼 자들을 그 발아래 꿇어앉혔습니다. 이 점을 잘 생각하시고 무릎을 꿇으시오.”
파늘루 신부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코로나19나 백신을 정부 음모론으로 주장하고 깜깜이 종교집회를 하다가 대규모 확진이 발생한 경우가 있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내리는 판단과 그에 따른 행동의 함의의 파급효과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의 함의를 알아채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더위가 시작됐을 때 오랑의 시민들은 절망에 사로잡혔다. 매주 700명에 가까운 희생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더위와 페스트로 이성을 잃은 사람들은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훨씬 더 집요하고 교묘하게 노력했다. 시의 출입문에서 소동이 벌어지면 헌병들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시민들이 선택한 것은 종교가 아닌 향락이었다. 그들은 날씨가 선선한 저녁이 찾아오면 억눌린 자유를 만끽하려고 했다. 파리에서 온 백신은 효과가 없었고 모든 사람이 접종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페스트는 새로운 유형의 변이 사례가 둘이나 생겼다.
인간은 종종 비이성적 안경(편견, 오류, 자기중심주의, 집단이기주의 등)을 쓰고 현실을 왜곡해서 바라본다(R. Paul & L. Elder, 2020: 38). 시민들은 생업에 종사하느라 전염병에 무지하거나 전염병이 창궐한 상태에서 무기력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도 문제가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어떤 조치들이 취해져야 할까? 팬데믹과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불행 중 다행으로 당신과 친구 타루는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보건대를 조직했다. 타루는 ‘체념하고 페스트를 용인한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나 눈먼 사람이나 비겁한 사람의 태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파늘루 신부처럼 말하기 전에 치료부터 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현재로선 있는 힘을 다해서 싸우는 것이 더 합당한 일이다. 타루의 뜻대로 그랑이 보건대에 합류했고, 노련한 의사 카스텔 역시 백신 제조를 위해 노력했다. 랑베르만 비밀리에 시를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랑베르 역시 타루의 요청에 파리로 가기 전까지만 보건대에 가담해주기로 했다.
8월 중순쯤에는 페스트가 모든 것을 뒤덮어 버렸다. 개인적 운명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었고 페스트라는 집단적인 역사적 사건과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여러 감정들만 남아있었다. 누적된 희생자들의 수는 공동묘지의 한계를 훨씬 초과하고 있었다. 질병이 더 기승을 부려 의료붕괴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다. 9월과 10월이 되자 당신과 당신의 보건대 친구들은 피로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쳤다.
랑베르는 9월 초순 당신 옆에서 열심히 일을 도왔다. 그는 한 여인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부인에게 페스트를 옮길까 두렵지 않으세요?” 랑베르는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고, 이대로 남아 있으면 두 사람이 영원히 헤어질 위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 여인은 또 랑베르에게 아내가 상냥한지 예쁜지를 거듭 물었다. 랑베르가 그렇다고 하자, 그 여인은 그제야 이제 알았다고 답변했다. 그 후 랑베르는 오랑시를 떠나기 전까지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그리곤 당신을 찾아와 아내를 사랑하지만 이곳을 떠난다면 부끄러운 마음을 지울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오랑 시에 남아 함께 페스트와 싸우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동안의 무력한 모습과 달리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자기중심주의가 극복되면서 단절에서 연결로, 우울에서 희망으로, 고독에서 연대로 바뀌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랑베르 역시 개인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관점에서 공동체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으로 바뀌었다. 이들의 노력 외에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카스텔의 백신이 시험된 것은 10월 하순이었다. 판사가 어린 아들의 증세를 발견하자마자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당신은 고통으로 신음하는 그 어린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타루는 눈물과 땀으로 범벅 진 아이의 조그만 얼굴을 닦아 주었다. 파늘루 신부는 기도를 드리며 “하느님이시여, 제발 이 어린애를 구해주소서!”라고 외쳤다. 그러나 모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카스텔의 백신은 듣지 않았다. 아이는 형용하기 힘든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숨을 거두었다. 당신이 참을 수 없어 나가려 할 때 파늘루 신부는 당신을 설득하려고 붙잡는다. 당신은 화가 나서 이렇게 쏘아붙였다. “이 애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 당신도 그것은 알고 계실 거예요! … 어린 아이들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 놓은 이 세상이라면 나는 죽어도 거부하겠습니다.” 미처 죄를 지을 사이조차 없었던 이 어린아이는 대체 무엇에 대해 벌을 받은 것이란 말인가?!
그날 이후 파늘루 신부도 보건대에 들어와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던 날부터 그는 변한 것 같았다. 두 번째 설교는 부드럽고 신중해졌으며 주저하는 빛이 보였다. “우리는 모든 것을 믿거나, 모든 것을 부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 우리들 중 누가 감히 모든 것을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이 설교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페스트인 것 같은 병으로 죽는다. 그를 발견한 이에 따르면 그는 끝까지 진찰을 거부하고 십자가를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일을 예상이라도 한 듯 타루는 그 두 번째 설교 날 이렇게 말했었다. “죄 없는 사람이 눈을 잃었을 때, 기독교인으로서는 신앙을 잃거나 눈이 멀거나 해야 마땅하죠. 파늘루는 신앙을 잃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니 갈 데까지 갈 거예요.”
고통을 정당화하려는 수많은 시도나 이론은 성공할 수 없으며 고통의 진상을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다(김선희, 2018). 여기서 우리는 종교적 신앙을 통한 접근 방법과 아이의 죽음이라는 악의 문제와의 충돌을 마주하고 있다. 아이의 죽음 이후 파늘루 신부는 보건대 일에 최선을 다 하면서도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자신의 신앙을 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종교적 신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진정한 종교적 가치는 무엇일까?
파늘루 신부의 죽음에 이어 의사 리샤르도 죽음을 맞이했다. 당국은 추워지면 병세가 수그러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12월이 되자 페스트는 더 기승을 부렸다. 이제 당신은 대하는 사람이라곤 환자밖에 없다. 페스트에 휩쓸린 도시 생활은 크리스마스까지도 그 상태를 지속했다. 성실하던 그랑이 당신과의 크리스마스이브 약속을 어겼다. 불안해진 당신과 동료들은 그를 찾아다녔다. 크리스마스 정오에 당신은 장난감 가게 진열장 앞에 서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페스트에 감염된 것이다.
그랑은 자신을 떠난 아내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당신은 그를 다독여 집으로 데려와 백신 주사를 놓아준다. 당신은 오래도록 그랑과 함께 일했기에 밤새 그를 걱정했다. 그런데 다음날 놀랍게도 그랑은 회복되고 있었다. 백신이 효과를 거두고 있었던 것이다. 일주일 동안 당신의 관할구역에서 그와 같은 일이 4건이나 생겼다. 여기저기서 쥐가 다시 바스락 거리기 시작했다. 페스트가 후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색은 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커다란 희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페스트는 기대했던 것보다는 더 빨리 약화되어 가고 있었다.
시의 봉쇄령이 풀리기 며칠 전 당신은 아내에게서 전보가 와있을까 싶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병은 당신의 친구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 있었다. 타루는 열이 있었고 골치가 아파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당신은 타루에게 백신 주사를 놓아주면서 그를 위로했다. 그러나 타루는 당신과의 우정을 정말 우정답게 체험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극한의 고통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설상가상으로 다음날 아침 아내에 대한 비보가 도착했다. 아내가 일주일 전에 숨을 거둔 것이다.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당신은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피한 일들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만일 당신이 그와 같은 일을 당했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하는가?
봉쇄령이 풀린 후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서로를 축하했다. 랑베르도 자신의 아내와 재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축제 분위기가 달갑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페스트 이전엔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불행했던 사람, 모두 하향 평준화된 덕분에 오히려 살맛이 났던 인물, 혼자서 죄수가 되느니 모두 함께 포위당해 있는 편이 좋았던 코타르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페스트가 기승을 부리는 동안 암거래를 일삼고 보건대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을 비롯해서 인간들을 죽이는 페스트에 대해 마음속으로 긍정했었다. 그는 결국 총기 사고를 일으키려다가 붙잡혀 경찰서에 연행되었다.
코타르는 자신의 범죄로 인해 페스트라는 모두의 불행을 다행으로 삼고 사태를 방관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런 냉소적인 태도는 일을 진전시키지 않는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우리는 “나만 아니면 돼!”와 같은 마음을 가졌을 수 있다. 가령 코로나 19 상황에서 의사들은 파업을 선언했었고, 젊은이들은 건강하다는 이유로 백신 접종을 거부했었다. 자의건 타의건 이런 방관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접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할까?
페스트가 물러간 지금 당신은 환자를 진찰하고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시내에서 들려오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당신은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고, 수십 년간 꾸준히 살아남아 언젠가 다시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줄 것이다.

3. 생각자료 분석, 평가, 개선하기

학생들은 위의 생각자료들을 통해 지난 3년 동안의 코로나19 상황을 상기하고 숙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비판적 사고의 성향과 기술을 익히고 활용하는 것이다. 우선 학생들은 교수자의 도움으로 등장인물들의 생각들을 목적, 물음, 정보, 추리/결론, 개념, 가정, 함의/귀결, 관점으로 분석할 수 있다(Paul & Elder, 2015: 15). 나아가 학생들은 이렇게 분석한 등장인물들의 생각을 비판적 사고의 기준들에 비추어 평가할 수 있다(Paul & Elder, 2021: 19-20). 가령 교수자는 위에서 제기한 물음들과 함께 학생들에게 여러 등장인물들의 관점이 편협하지는 않은지 여부(다각성)를 물음으로써 학생 스스로 생각자료를 평가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그 밖에도 학생들은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지 여부(심층성, 충분성), 등장인물들의 의견이 문제 해결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지 여부(관련성) 등을 평가해보고 개선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요컨대 학생들은 이와 같은 꾸준한 훈련을 통해서 비판적 사고 계발이 가능하다(Chaffee, 2000: 56-59).
생각자료를 평가하고 개선하는 과정에서 논리적 사고(논리성)는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에 핵심적으로 요구되는 역량들 중 하나다. 그런 까닭에 기존의 비판적 사고 교육 관행에서는 논리적 사고 교육이 우선시되는 경향이 있다(방선희, 2011). 그러나 논리적 사고가 비판적 사고의 전부는 아니다. 논리적 사고 기술만 습득하는 것은 논쟁에서 이기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소피스트가 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학생들이 약한 의미의 비판적 사고자가 아닌 강한 의미의 비판적 사고자가 되기 위해서는 학생들 스스로가 실제로 자신의 삶과 사회에 유익하고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도록 논리적 사고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학생들은 논리적 사고 기술과 함께 비판적 사고 성향을 기를 수 있어야 한다(Paul & Elder, 2021: 4-5).3)
지면 관계상 지금부터는 학생들이 논리적 사고 기술을 올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앞서 2장에서 제시했던 생각자료들─등장인물들의 생각과 중간 중간 제시된 질문들─을 활용하여 논리적으로 재구성하고 평가 및 개선하는 사례를 보이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생각자료를 주제로 다른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삶과 사회를 위해 현실적으로 고민하고 대안들을 제시하며 그러한 대안들을 평가하고 개선시키는 훈련을 할 수 있다. 다음 사례들을 살펴보자.
<사례1>
만일 관리를 잘 한다면 건물이 청결할 것이다.
만일 건물이 청결하다면 쥐가 나올 리 없다.
그러므로 만일 관리를 잘 한다면 쥐가 나올 리 없다.
소설의 초반부에 건물 수위는 방어적 관점에서 건물 관리와 청결이 자신의 일이고, 자신은 관리를 잘 했기 때문에 쥐가 나올 리 없다고 단언한다. 이 논증은 전제들이 이미 결론에 포함되어 있는 타당한 연역논증 형식을 갖추었다. 그러나 그 논증의 결론을 받아들이기 전에 전제들의 진리성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조건문의 의미는 ‘전건을 가정하면 후건이 성립한다’는 것을 뜻한다(이병덕, 2019: 94). 따라서 전건을 가정해도 후건이 성립하지 않는 반대사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 즉 전제1에서 건물이 낡아서 관리를 잘해도 건물이 청결하지 않은 경우가 가능하다. 전제2에서 건물이 청결해도 쥐가 나올 수 있다. 가령 24시간 철저하게 감시하지 않는 한 사람들이 출입문을 여닫을 때 작은 동물들이나 곤충들이 사람들과 함께 들어올 수 있다. 소설의 줄거리 상 건물이 청결해도 페스트에 감염된 쥐들이 천장이나 벽 속에 숨어 있다가 도망치지 못한 채 발견되었다고 추정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건물 수위는 죽은 쥐 3마리가 더 발견되자 문제를 파악하려고 하기보다는 누군가 장난을 친 것이 틀림없다고 단언한다.
<사례2>
청결한 건물에서 발견되는 모든 쥐는 장난을 치는 사람들의 소행이다.
이 쥐는 청결한 건물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므로 이 쥐는 장난을 치는 사람들의 소행이 분명하다.
이 연역논증의 전제1에서 수량표현 “모든”은 예외 없음, 100% 즉 보편을 뜻한다. 즉 이 논증은 전제를 옳다고 가정하면 결론이 반드시 옳을 수밖에 없는 연역논증이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와 같이 수위가 제시한 논증의 전제1은 반대사례에 열려 있다. 즉 누군가 장난을 치지 않아도 건물에서 죽은 쥐가 발견될 수 있다. 평소 건물에 장난을 치는 사람이 없었다면 전제1는 더더욱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학생들은 이 사례에서 “이럴 리 없어.” “절대 그럴 리 없어.” “누가 장난친 거야.”와 같이 단 하나의 가능성만 염두해 두거나 사건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습관의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 즉 학생들은 열린 마음으로 왜 그런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염두해 두면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제2, 제3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는 다각적 사고를 익힐 수 있다.
<사례3>
사흘 만에 병동 2개가 환자들로 가득 찼다. 카스텔은 조사 끝에 쥐들 또한 페스트와 대단히 유사한 병으로 죽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곤 쥐들이 수만 마리의 벼룩을 퍼뜨려 놓아서 제때 막지 않으면 벼룩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병을 전염시킬 거라고 경고했다.
쥐가 8천 마리 가까이 수거될 때쯤 건물의 수위가 페스트 증상을 보이고 사망했다. 상황이 악화될 무렵 이미 의사들과 방역당국은 전염병을 의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령 노련한 카스텔 의사처럼 과거에 페스트와 동물 폐사의 인과적 연관성에 관한 자료들을 확인해볼 수 있다. 나아가 실제 죽은 쥐들을 부검해볼 수도 있다. 경력의사 카스텔은 그 분야의 전문가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는 판단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단순히 현상 유지를 원하는 의사들과 도시의 책임자들은 신속한 원인 규명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리고 상세한 방역지침을 전달하지도 않았다. 이는 엄격히 말해 문제를 방관하는 직무 유기에 해당한다. 그 결과 시민들은 하나둘 페스트에 감염되었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학생들은 이 사례에서 문제를 원인과 결과로 분석하는 과학적 사고방식을 존중하고, 나아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학생들은 또한 관리자와 책임자의 관점에서 문제를 조기에 차단하고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매뉴얼을 정해 놓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례4>
전염병이라는 확실한 증거들이 아직 없다.
그러므로 전염병이 아니다.
원인을 규명할 수 없는 쥐들의 집단 폐사는 책임자들의 미온적 태도로 인해 시민들의 불안을 더욱더 자극했다. 리샤르는 의사라기보다는 책임자로서 전염병이 아닐 때의 오판에 대한 부담과 그 귀결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정부 및 도시 당국자들의 관점에서도 사회적 혼란과 온갖 민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미온적 태도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증거 없음이 전염병이 아니라는 결론의 증거일 수 없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다면, 수많은 감염자와 사망자와 경제적⋅정신적 피해를 가져올 위험이 크다. 그런 까닭에 리유는 면피를 일삼는 리샤르의 안일한 대처에 화가 났던 것이다. 전문가들과 책임자들의 협조와 대응이 빨랐다면 오랑시의 지옥 같은 현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예컨대 최악의 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방역수칙이 일찍 전달 됐다면, 최초의 사망자였던 수위는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교수자는 학생들에게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사태에 적절히 대응할 때와 문제를 규명하지 않고 사태를 키웠을 때의 상황을 상기시킴으로써 학생들의 올바른 상황 판단 감각을 연습시킬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학습자들은 사고실험을 통해 두 상황을 가늠해 봄으로써 어떤 상황이 나은지 현명하게 가치판단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사례5>
공적인 일이라는 말씀이죠? 그러나 공공복지도 개개인의 행복이 우선해야 성립되는 것입니다.
랑베르는 기자의 관점보다는 남편이자 한 개인의 관점에서 암묵적으로 개인의 자유가 공동체의 안전보다 가치가 높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랑베르는 자신의 자유로 인해 전염병이 외부로 퍼질지도 모르는 상황을 무시한다. 즉 그는 개인으로서의 자신의 행복추구의 자유가 공동체 모두의 행복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외면한다. 요컨대 랑베르는 마치 개개인의 행복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가치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복지를 일종의 방역체계 정상화라고 한다면 방역체계가 무너진 공동체 개개인이 과연 행복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방역체계가 무너져 페스트로 폐쇄된 오랑시의 불행한 모든 시민들이 그 증거다. 이와 유사하게 학생들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파업을 외친 의사들, 깜깜이 집회를 한 종교 집단들, 방역수칙을 무시하고 마스크를 벗거나 모임을 갖는 사람들이 소설 속의 랑베르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요컨대 학생들은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사례6>
여러분은 불행을 겪어 마땅합니다. 페스트가 역사상 처음으로 나타났을 때 그것은 신에게 대적한 자들을 쳐부수기 위해서였습니다. 애굽 왕은 신의 뜻을 거역했는지라 페스트가 그를 굴복시켰습니다. 태초부터 페스트는 오만한 자들과 눈먼 자들을 그 발아래 꿇어앉혔습니다. 이 점을 잘 생각하시고 무릎을 꿇으시오.
파늘루 신부는 페스트로 동요된 시민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파늘루 신부의 설교는 설명이지 논증이 아니다. 인류는 원인 모를 현상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구성원들의 불안을 종식시키고 사회적 안정을 꾀하기 위해서 여러 설명들을 시도했었다. 신화의 시대에 천지가 진동할 정도로 벼락이 치는 것은 제우스신이 노해서였고, 고기잡이를 못할 정도로 폭풍과 태풍이 부는 이유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노해서였다. 종교의 시대에 벼락과 폭풍과 페스트는 신이 노해서였다. 그러나 현 시대에 자연현상의 원인과 전염병의 원인은 과학적으로 잘 규명되어 있다. 파늘루 신부의 설명은 비과학적이고 반이성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무비판적 사고의 표본이다. 그의 설명은 오비이락이나 마녀사냥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원인에 근거하고 있는 점에서 오류이다. 그는 페스트의 원인을 오랑시 시민들의 타락에서 찾고 있는데, 그의 생각을 논증으로 추출해보면 다음과 같다.
만일 오랑시 시민들이 타락한다면 신이 노한다.
오랑시 시민들은 타락했다.
신이 노한다.(페스트가 창궐했다.)
파늘루 신부는 이 논증의 첫 번째 전제가 사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까. 만일 그것이 성경에 근거한 것이라면, 성경의 권위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하는 물음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두 번째 전제에서 오랑시 시민들이 타락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 논증의 전제들의 진리성과 무관하게 시민들은 파늘루 신부의 설교를 통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렇다 해도 페스트가 물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아가 파늘루 신부는 다음과 같은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만일 오랑시 시민들이 타락한다면 신이 노한다.
오랑시 시민들이 타락하지 않는다.(회개하기 위해 무릎을 꿇는다.)
신이 노하지 않는다.(페스트가 종식된다.)
신화의 시대에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고 제물을 바쳤으며, 종교의 시대에는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오랑시의 고위 성직자들 측에서 선택한 것도 집단기도 주간이다. 어쩌면 그 기간에 시민들은 페스트에 더 많이 노출되었으리라. 파늘루 신부의 대안을 평가하면서 학생들은 코로나19 초기에 깜깜이 종교 집회로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사실을 상기할 수 있다. 한편 위의 논증은 타락의 기준을 정확히 제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전제들의 진리성을 확인할 길도 없다. 더구나 타락하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아이들을 생각해 볼 때 신의 분노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무엇보다 파늘루 신부의 방법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악화시킨다.
<사례7>
신이 선하다면, 죄 없는 어린 아이를 페스트로 죽이지 않는다.
신이 전능하다면, 죄 없는 어린아이의 병을 고친다.
아이가 죽거나 아이의 병을 고치지 않는다.
신은 전선하지 않거나 전능하지 않다.
파늘루 신부의 종교적 신념이 가장 심하게 흔들린 계기는 아마 판사의 죄 없는 어린 아들이 페스트로 사망한 사건일 것이다. 그는 그 아이가 고통으로 신음하고 온 몸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몸소 지켜보았다. 백신도 그 아이에겐 소용이 없었다. 그가 평생토록 지켜온 신념,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토록 강하게 권하고 호소했던 종교적 신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위와 같은 악의 문제가 파늘루 신부에게 딜레마 상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신은 전통적으로 전지(모든 것을 앎), 전능(모든 것을 할 수 있음), 전선(항상 선함)하다는 것이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었다. 그런 까닭에 전제들을 의심할 수도 없다. 그런데 그는 아무 죄 없는 어린 아이가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악의 문제를 바로 눈앞에서 목격했던 것이다.
두 번째 설교에서 그는 “우리는 모든 것을 믿거나, 모든 것을 부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 우리들 중 누가 감히 모든 것을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한다. 이 주장에 대한 타루의 명쾌한 지적은 아래와 같은 논증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죄 없는 사람이 눈을 다쳤을 때, 기독교인은 신앙을 잃거나 눈이 멀어야 마땅하다.
파늘루는 신앙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눈이 먼다.(갈 데까지 간다.)
실제로 파늘루 신부는 끝까지 진료를 거부하고 십자가를 쥔 채로 숨을 거둔다. 자신이 페스트에 걸렸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종교적 가치가 훼손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일까? 아이가 백신 주사를 맞고도 고통스럽게 죽어갔다는 사실에 덜컥 겁이 났던 것일까? 마지막까지 신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인정해 주고 구원해주길 바랐던 것일까? 그러니까 신이 페스트에서 회복시켜 주거나 죽어서 천국의 문에 들어가게 해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일까? 우리가 파늘루 신부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볼 길은 없다. 위의 의문점들과 별개로 학생들은 논리적 관점에서 파늘루 신부의 딜레마에 대하여 신이 선해도 아이를 죽일 수 있고, 신이 전능해도 아이를 고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다. 또한 학생들은 두 번째 설교에서 모든 것을 믿거나 모든 것을 거부하는 흑백사고의 오류를 피하고 제3의 선택지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요컨대 학생들은 딜레마나 양자 택일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상황에 직면해서 더 나은 대안적 선택지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가령 학생들은 종교의 관점에서 파늘루 신부의 관점을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님을 깨달을 수 있다. 오히려 학생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전염병 예방의학적 관점에서 페스트를 퇴치하려고 노력하는 한편으로 파늘루 신부의 온건한 설교와 설득를 통해 시민들의 불안과 소요를 진정시키는 쪽으로 대안을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례8>
아내와 재회하거나 오랑시에 계속 남는다.
아내와 재회한다면, 아내와 외부인들에게 페스트를 전염시킬 수 있다.
오랑시에 계속 남아 있으면, 영원히 아내와 재회하지 못할 수 있다.
아내와 외부인들에게 페스트를 옮길 수 있거나 영원히 아내와 재회하지 못할 수 있다.
파늘루 신부의 종교적 딜레마와 달리 랑베르는 한 개인으로서 자유의 딜레마에 처한다. 그는 오랑시를 탈출해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런 까닭에 한시라도 빨리 오랑시를 벗어나고 싶었다. 먼저 그는 합법적으로 나가고자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가망이 없자 은밀히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그러나 한 여인의 질문과 보건대에서의 활동은 그를 딜레마 상황에 빠지게 했다. 아내와 재회해도 자신이 페스트에 감염되어 행복을 누릴 수 없는 가능성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랑시에 남아 있다가 페스트에라도 확진되면 그걸로 모든 것이 끝이다. 행복하고 싶고 살고 싶다는 강인한 의지와 희망 때문이었을까. 죽지 않으려는 그의 끈질긴 노력 때문이었을까. 놀랍게도 그는 페스트 속에서 살아남았다. 그는 오랑시에 남아 있어도 아내와 재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현시킨 셈이다. 즉 딜레마 상황을 과감히 이겨냈다. 물론 랑베르는 아내와 재회해도 그녀를 페스트를 감염시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랑베르를 오랑시에 머물게 했던 것은 개인의 자유보다는 공동체에 대한 염려가 더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자신의 자유만 추구하다가 사랑하는 아내와 공동체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그것은 그들 부부에게나 친구들 모두에게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학생들은 랑베르를 통해 자기중심주의적 태도를 이겨내고 동료들과 함께 공동의 문제를 극복해낼 때 자신의 행복도 찾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4. 맺음말

마지막으로 의사 리유를 생각해보자. 학생들은 랑베르 보다는 리유에게 감정 이입이 되어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끝날 때까지 그와 함께 했다. 그 역시 지옥 같은 현실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고 뜻을 같이했던 든든한 친구 타루를 잃었다. 리유는 그동안 너무 힘들었고 또 기쁜 마음에 이제 다 끝났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방심하는 마음을 갖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아내에게 그리고 친구에게 건강을 당부하고 의사로서 조치를 취했더라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비극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떤 학생은 리유에게 지나치게 감정 이입된 나머지 삶에 대한 허무주의적 태도를 가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속담이 정말 맞는 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불가항력적인 재난 앞에선 모든 인간들이 무기력하고 혼자 힘만으로는 모두를 살려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시민들은 점점 늘어나는 사망자 수치에 이성적으로 판단할 힘을 잃고 무감각해진다. 그러한 까닭에 더더욱 병에 대한 공포심이 증폭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우울증이 강화된다. 해결이 보이지 않는 나날들 속에 일부는 일탈과 탈출을 기도했다. 다른 일부는 종교적 힘에 의지하려 했다. 또 다른 일부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닌 향락을 선택했다. 소설과 코로나19를 겪는 우리의 현실이 이와 전혀 다르지 않다. 팬데믹 시대에 자기 자신 또는 내 집단만을 위한 생각의 결과 세계적으로 의료 붕괴,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격리 생활, 저성장, 집단 우울증 등 그 대가는 혹독했으며, 그 부작용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교양으로서의 비판적 사고 교육을 통해 자신들의 이러한 소극적 태도 역시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최근의 펜데믹 상황 속에서도 의료진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방역수칙을 준수한 시민들의 뛰어난 선진 의식은 의사 리유와 보건대 친구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끝까지 코로나19와 싸워 자신의 가족과 시민들을 보호하고 살려낸 우리 시대의 평범한 영웅들을 대신한다. 시야를 더 넓혀 보았을 때 인류의 역사는 반이성과 무지몽매주의에 맞서 싸워온 역사다. 수많은 과학적 발견과 특히 의학적 발견으로 수많은 질병들이 극복되었고, 수명이 연장되었으며, 죽음을 예방할 수 있었다.4) 그런 까닭에 비관적 태도나 무관심한 방관자적 태도는 마땅히 경계해야할 대상이다. 오히려 학생들은 문제 해결과 의사 결정의 주체로서 비판적 사고를 활용하여 신뢰할만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러한 정보들로부터 올바로 결론을 이끌어 내며, 상황에 맞는 판단과 지혜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학생들 스스로가 사람과 환경을 배려하는 교양인이자 비판적 사고의 주체로서 열린 마음과 관용, 그리고 협동적 사고를 통해 동료와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아갈 때 개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다.

Notes

1) worldometer, 세계 각국 코로나19 사망자 및 확진자 수치, 2023.3.21., https://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countries (검색일자. 2023.3.21.).

2)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페스트』, 민음사, 2017을 참고하였다. 필자가 각색한 줄거리이므로 잘못된 줄거리 내용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있다.

3) 공정한 비판적 사고자는 다음과 같이 훈련된 마음의 특성들을 갖는다. 지적 정직성, 지적 겸손함, 지적 정의감, 지적 인내심, 지적 공평성, 이성에 대한 지적 확신, 지적 용기, 지적 공감, 지적 자율성. 반면 공정하지 않은 비판적 사고자는 다음과 같은 훈련되지 않은 마음의 특성을 갖는다. 지적 위선, 지적 오만, 지적 불공평성, 지적 게으름, 정의에 대한 지적 무시, 이성에 대한 지적 불신, 지적 소심함, 지적 자기중심성, 지적 순종.

4) 지난해 세계 인구는 80억 명을 돌파했다. worldometer, 세계인구, 2022.12.27., https://www.worldometers.info/ (검색일: 202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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