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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General Edu > Volume 16(2); 2022 > Article
장편 통독과 주제 토론, 글쓰기를 결합한 고전 교육 사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Abstract

이 논문은 <명저 읽기> 과목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어떻게 읽어나갈 것인가의 방법에 접근한 사례를 살펴본 다음 이와 관련된 학생들의 피드백을 소개하고자 한다.
본 논문에서는 우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원문과 다이제스트판을 비교하여 살펴본 다음에 원작 그 자체를 읽어야 하는 근거에 대해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텍스트 원문의 중요성을 인지한 학생들과 함께 작품 내적 맥락과 외적 맥락을 활용하여 수동적인 독서행위를 능동적인 것으로 전환시키며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 부분을 고찰하였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이러한 수업 과정을 학습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글쓰기 피드백 사례를 소개하였다.
이와 같이 본 논문의 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소설의 배경지식과 작가의 개인 정보, 텍스트가 별개가 아니라 모든 것이 아울러져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를 증진시키는 방법의 일환이 될 수 있다. 둘째, 전공과 고전을 접목시켜 글을 작성해 봄으로써 기존 해설과는 다른 시각에서 고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셋째, 누구나 당연히 그러하다고 생각한 테마에 의구심을 가지는 것으로 출발하여 텍스트와 외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작가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추론 과정이 학습자의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일종의 장치라 할 수 있겠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case of how to read 『The Brothers Karamazov』 in the subject of Reading Classics and then introduces the feedback of the students.
First of all, in this paper the original text and the digest version of 『The Brothers Karamazov』 were compared and examined. Following this, the reason for reading the original text itself was examined. Next, with the students who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the original text, the discussion about the possibility of various interpretations was considered by converting their passive reading behavior into an active one by using the internal and external context of the work. Finally, we introduced the activity of writing feedback, which can allow instructors to estimate to what degree their learners have accepted the process of their class.
There are three things that can be confirmed through the analysis of this paper. First, the background knowledge of the novel, the author’s personal information, and the text are not separate, but all are combined. This type of analysis can serve to promote creativity and critical thinking among the students. Second, students can discover the meaning of such classics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than the existing commentary by writing an article which draws from their majors and applies it to the classics. Third, this study shows that the process starts with instilling doubts among the students about the theme of the text, which up until then everyone has taken for granted. The students then arrive at the author’s worldview through the process of organically examining the text and the external context. This reasoning process can arouse the curiosity of the learner.

1. 서론

이 논문은 <명저 읽기> 과목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어떻게 읽어나갈 것인가의 방법에 접근한 사례를 살펴본 다음 이와 관련된 학생들의 피드백을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많은 대학들에서 사고의 지평을 확장하고 깊이 있는 사고를 이끌어 내기 위해 명저와 관련된 강좌를 운영 중이다. 그와 더불어 명저 읽기와 관련된 연구들 또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데 몇 가지로 구분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교과목 운영사례(윤승준, 2021: 이영준, 2014)및 읽기⋅쓰기⋅토론의 융합적 측면(박규준, 2018: 김수경, 2019: 김미령, 2016: 한래희, 2013)을 비롯하여 고전 교양 수업의 교육적 함의에 대한 논의(김주언, 2019) 그리고 고전 읽기의 방향을 탐색하는 논의들(김유미, 2021: 임선숙, 2021: 이하준, 2014: 최인자, 2008: 박인기, 2008: 황혜영, 2018)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기존 연구들은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사고력 함양 등을 목표로 하는 교양 교과목의 운영 과정을 비롯하여 학생들에게 고전을 어떻게 읽히게 할 것인가에 대해 활용할 수 있는 여러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본 논문의 방향성에 도움을 준 세 편의 논문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한래희는 학생들의 독서 방식이 ‘객관적 의미 발견’에 치우쳐 있음을 지적하면서 수용미학 이론을 참고하여 고전의 의미를 하나의 해석으로 소진하지 않고 다양한 의미구성과 해석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2013: 387-393). 특히 위 연구자는 텍스트가 촉발하는 ‘낯섦’과 ‘불편함’이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어떤 맥락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남길 수 있다고 보았다(2013: 392). 한편 황혜영은 풍부한 인문학적 사유가 담긴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접근하여 자신의 성찰을 구체화할 수 있는 사고활동에 주안점을 두었다(2018: 205-206). 그리고 최인자는 고전 『심청전』을 디지털 매체 변화 속에서 상호 매체적 읽기와 상호 문화적 읽기 방식으로 분석하였다(2008: 126). 위 논문들은 주교재인 고전 외에 곁텍스트를 활용했다는 점, 고전을 해석하는데 있어 새로운 인식이 고려되어야 능동적인 독서행위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밝히고 있어 본고에 중요한 참고가 된다. 이에 본 논문은 선행 연구들의 목적에 부합하면서도 기존과는 다른 방법적 측면을 제시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살필 것이다.
본 논문이 문제의식으로 삼은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학생들이 왜 ‘다이제스트’가 아닌 원문을 그대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다. 아무래도 우리는 고전의 많은 분량으로, 혹은 내용 파악이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일종의 ‘다이제스트식 고전 읽기’를 할 때가 있다. 본 논문이 텍스트로 삼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2007)은 총 1600페이지 가량의 방대한 분량과 다양한 인물 군상이 제시되고 있어 평소 읽기를 좋아한 학생이 아니라면 책 읽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게다가 더욱 우려되는 부분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고전 필독서라 시중에 청소년판이나 다이제스트판 혹은 풍부한 스포일러 자료들이 포진해 있어 학생들이 주요 장면들만 요약해서 읽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몇몇 다이제스트에는 ‘원문과 다른 구절’을 종종 살펴볼 수 있다. 이는 편집부의 표기 오류도 있겠으나 ‘기존 해석’에서 언급된 정보들로 인해 오독된 사례 또한 해당된다. 물론 다이제스트본이 원문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본 연구자는 어떠한 부분에서 그러한 것인지 학생들을 이해시켜 최대한 원문을 읽도록 유도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다이제스트로 읽게 되었을 때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우선 시중에 나와 있는 다이제스트 몇 편과 원문 텍스트부터 비교분석할 필요가 있겠다. 둘째, 작품 해석에 필요한 배경지식이 때론 오독의 여지를 제공하진 않을까란 점이다. 물론 작품을 해석하는데 필요한 배경지식, 즉 도스토옙스키의 생애 및 작품세계, 19세기 러시아 시대적 배경과 상황 등은 학생들이 텍스트에 접근하는 단계에서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작품 해석의 바탕을 마련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을 갖고 있다. 만약 이 단계를 생략한다면 학생들은 고전을 읽어나가기에 더욱 막막할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많은 독자들이 작품을 둘러싼 배경지식 및 작가의 전기적 정보 등을 마치 그것이 정답인양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적 자세를 취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본고는 작품을 둘러싼 배경지식 및 작가의 전기적 정보를 작품과 연관시키는데 한번쯤 의구심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셋째, 고전읽기가 일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접근법이 없을까에 대해서다. 이에 본고에서 생각한 방법은 전공 관련 글쓰기다. 왜냐하면 일상적이고 친밀한 전공을 활용하는 것이 학생들의 동기 유발을 위한 적절한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명저 교과목이 여러 전공자들이 모인 수업인 만큼 흥미를 유발시켜 학생간의 내적 동기를 추동할 수 있는 효과 또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본 논문에서는 우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원문(번역본)과 다이제스트를 비교하여 살펴본 다음 원작 그 자체를 읽어야 하는 근거에 대해 정리하겠다. 다음으로 텍스트 원문의 중요성을 인지한 학생들과 함께 작품 내적 맥락과 외적 맥락을 각각 분석하여 종합적으로 검증해 봄으로써 학습자들의 수동적인 독서행위를 능동적인 것으로 전환시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 부분을 고찰하고자 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이러한 수업 과정을 통해 학습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글쓰기 피드백 사례를 소개할 것이다.

2. 다이제스트 읽기의 문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1) 고전 필독서로 손꼽히는 작품이긴 하나 분량이 방대한 탓에 독자들이 부담을 갖기 쉽다. 그런 점에서 다이제스트는 작가의 생애 및 등장인물 성격, 간략한 줄거리로 독자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고 있다. 본고가 이점에 주목한 이유는 학생들이 다이제스트로 읽고 해설서만 참고했을 때 원문에서 놓칠 수 있는 부분이 과연 무엇일까란 점 때문이다. 우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다이제스트 부터 살펴보자. 본고는 시중에 나와 있는 다이제스트 가운데 3편을 선정하여2) 원문과의 차이점을 분석하였다. 세 편의 텍스트에서는 공통적으로 작가연보, 등장인물 소개, 줄거리가 제시되어 있다. 특히 드미트리와 표도르의 갈등 및 드미트리의 약혼녀 카체리나와 그루센카 관계, 범인 스메르쟈코프와 이반의 만남, 유죄판결을 받은 드미트리의 탈출 계획 등과 같은 중심 내용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아무래도 요약본인만큼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소개되는 부분의 차이가 있으며 분량적 측면에서도 18페이지부터 166페이지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다이제스트는 독자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과할 수 없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1600페이지 분량의 원문을 몇 십장 이내로 줄여야 하다 보니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독자들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관계나 심리묘사, 그리고 대화 등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암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다이제스트에서는 그런 단계들이 대폭 축소된다.
둘째, 원문의 내용과 다른 오독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먼저 『다이제스트로 읽는 세계명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2015)에서는 전체 18페이지 가운데 소설내용은 10페이지 정도로 분량이 짧으며 줄거리를 비롯한 작가 소개 및 작품 개관 또한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 다이제스트판은 아무래도 분량이 짧은 만큼 드미트리와 표도르 부자간의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요약하였다. 소설의 주된 삼각관계는 드미트리와 표도르 부자(父子) 사이에 그루센카라는 여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드미트리와 이반의 형제(兄弟) 사이에 카체리나가 존재한다. 특히 카체리나의 경우 드미트리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가 소설 속 맥락을 파악하는데 중요하다. 그런데 다이제스트에서는 ‘그녀가 몸을 파는 조건으로’(다이제스트로 읽는 세계명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015: 10) 그녀 아버지의 돈을 갚은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원문에서는 이런 노골적인 언급을 살펴볼 수 없다.
한편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23분 만에 독파하는 고전 멘토링』(2016)의 경우 40페이지 가량의 분량으로 등장인물, 작가 소개 외에도 자주 인용되는 문장, 기억할 만한 문장 등 이전 텍스트에 비해 좀 더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다이제스트판에서도 원문과 다른 구절을 살펴볼 수 있었다. 가령 스메르쟈코프는 표도르의 하인 그리고리 부부의 업둥이로 키워졌는데(도스토옙스키 1, 2007: 210) 다이제스트에서는 카라마조프가에 입양되었다고 기재된 점(카라마조프의 형제들- 23분 만에 독파하는 고전 멘토링, 2016: 24)을 비롯하여 원문에서는 조시마 장로의 형이 그의 소년시절에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도스토옙스키 2, 2007: 26) 다이제스트에서는 성인이 된 조시마가 결투를 벌이기 전날, 죽어가는 형에게 인류애를 들었다는 대목(카라마조프의 형제들- 23분 만에 독파하는 고전 멘토링, 2016: 17)이 나타난다. 게다가 삼소노프가 그루센카에게 구애했다가 거절당한 대목(카라마조프의 형제들- 23분 만에 독파하는 고전 멘토링, 2016: 19)은 원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부분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오류는 표도르가 사망하기 얼마 전, 이반과 스메르쟈코프가 이야기를 나눈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원본에서는 곧 간질을 앓을 것 같다는 스메르쟈코프의 이야기를 들은 이반이 그 다음날 바로 떠났다고(도스토옙스키 1, 2007: 588) 서술되어 있는데 반해 다이제스트에서는 이반이 고향에 남기로 했다고 적혀 있다(카라마조프의 형제들- 23분 만에 독파하는 고전 멘토링, 2016: 17). 원본에서와 같이 이반이 스메르쟈코프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떠난 것은 훗날 아버지의 죽음에 간접적으로 개입되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는 점에서 이반의 정신착란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이제스트에서 보여준 잘못된 정보는 독자들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의 상황 변화를 이해하는데 오류를 제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해성 북 출판사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2020)은 다이제스트임에도 불구하고 160페이지 이상의 분량이라 다른 텍스트에 비해 줄거리가 비교적 상세히 서술되어 있는 편이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사상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대심문관>이나 <양파 한 뿌리> 등의 에피소드는 생략되어 있다. 여기에서도 표기의 오류를 살펴볼 수 있는데 원문에서의 ‘페레즈본’이(도스토옙스키 3, 2007: 72) 해성 북 출판사 다이제스트에는 ‘쥬치카’로 표기되어(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020: 109) 있다. 물론 원문 그 자체에서도 이 ‘개’의 존재는 일류샤의 친구 콜랴가 데리고 온 개가 페레즈본인지 쥬치카인지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일류샤가 죽게 된 원인 중에서 자신의 개를 찾지 못한 죄책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면밀히 읽어 볼 필요성이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본다면 단어 표기 오류가 소설의 큰 흐름을 이해하는데 별 지장이 없으리라고 생각하기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3)
그 외에도 원문의 글이 주는 감동을 오롯이 느낄 수 없다는 점, 고정된 의미만을 재창출하여 동일한 감상에 그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는데 이처럼 원문과는 다르게 서술된 위 대목들은 독자들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혼란을 줄 우려가 크다. 그런 점에서 교수자는 우선적으로 다이제스트 읽기의 우려되는 사항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본 수업은 학습자들에게 최대한 원문을 읽도록 유도하였는데 이는 토론과 과제 및 기말고사 에세이를 통해 학생들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검증해 볼 수 있었다. 특히 다이제스트에서 생략되었던 <대신문관>이나 <신비로운 방문객>에 관한 일화의 경우, 많은 학생들이 신에 대한 고민과 구원적 측면에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서 한 학생의 글(그림 1- 예시 1, 이원○ 경영학부)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동안 입시를 치러오면서 소설의 중요대목만을 골라 읽었을 때와 비교하면서 현재 원문 자체를 읽었을 때의 느낌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 학생의 글은 본 논문이 문제의식으로 삼았던 지점을 제대로 수용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한편 본 수업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또 다른 특징은 학생들이 통독을 진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등장인물의 행동과 심리변화에 대해 꼼꼼하게 추적해 나가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한 예로 이반과 스메르쟈코프가 마지막으로 대면하는 장면 중에서 스메르쟈코프가 보인 행동묘사는 그가 벌인 살인의 목적이 ‘돈’과 ‘사상’ 가운데 어느 것에 더 치중해 있는지 관심을 가진 글(그림 1- 예시 2, 임영○, 경영학부)에 관해서다. 이 학생의 글은 본고가 요약본이 아닌 원문을 접해야만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대목의 근거가 되어준다. 이와 같이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들을 보면 기존의 우려와는 달리 원문을 읽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소설 교육의 핵심이 교사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작품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작품에서 의미의 구체성과 보편성을 추구할 수 있는 작품 해석의 방법을 교육하는 데 있다는 최인자의 견해는(2001: 60) 왜 우리가 고전 수업에서 다이제스트가 아닌 원문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림 1]
기말과제 에세이 학생 사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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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업 방법론 1: 주제 토론

3.1. 능동적 해석을 위한 분석적 읽기

이번 장에서는 텍스트 원문의 중요성을 인지한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방법적 측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본고는 아무래도 고전을 읽히는데 가장 어려운 부분이 학생들의 호기심을 유발하여 흥미를 부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기존 연구들에서도 여러 방법적 측면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본 논문이 주목한 것은 학생들이 책을 읽기 전, 사전 조사에서 얻은 작가의 개인 정보 및 작품의 배경지식을 어떻게 능동적으로 활용해 나가느냐에 대해서다. 평소 우리는 고전 반열에 오른 작가에게 붙은 화려한 수식어를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본고는 이 점에 대해 학생들이 의구심을 갖고 검증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유추 작용은 학생들의 호기심을 유발시켜 방대한 분량을 읽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는 부자간의 갈등이 낳은 참극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장르는 범죄소설과 추리소설, 종교소설 혹은 심리소설 등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친부 살해’란 테마가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해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도스토예프스키와 친부 살해> 란 제목으로 이 소설에서 아버지를 향한 작가의 강박관념을 연구로 남기기도 하였다. 소설 속에서 표도르를 죽인 용의자는 평소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말하고 다닌 드미트리가 지목되지만 실제 범인은 바로 집안의 하인이자 서자로 추정되는 스메르쟈코프이다. 여기서 ‘친부 살해’가 참이 되기 위해서는 스메르쟈코프가 표도르의 소생이라는 가정이 확실할 때 가능해진다.4) 본 수업에서는 누구나 그러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친부 살해’를 문제의식으로 삼아 작품 내적 맥락과 외적 맥락을 각각 분석하여 종합적으로 검증해 보는 과정을 제시하고자 한다. 물론 스메르쟈코프가 ‘표도르의 서자가 아닐 수도 있다’라는 가정은 이 소설을 오독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닌다.5) 게다가 본고는 이미 많은 연구자들과 참고문헌 등을 통해 ‘스메르쟈코프가 서자’임을 단정 짓고 있는 대목에 의구심을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점을 본 수업에서 문제의식으로 삼은 이유는 스메르쟈코프가 표도르의 서자라고 단정 짓기에는 서술과정이 애매하게 처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독자의 선입견으로 엉뚱하게 해석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제기는 학생들에게 유심히 읽도록 하여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 나갈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문제의식을 전환시킬 수 있는 동기부여를 유발하기 위한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6) 두 가지 근거를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작품 내적 맥락을 통해서다. 제목에서 살펴볼 수 있다시피 카라마조프가의 세 형제 가운데 장남 드미트리나 이반, 알료샤의 출생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그에 반해 스메르쟈코프의 경우 출생할 당시 장면 묘사가 석연치 않다. 스메르쟈코프의 어머니 리자베타 스메르쟈쉬야는 마을의 백치여인으로 말을 할 줄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표도르가 아이 아빠로 의심받게 된 계기는 어느 날 밤 그를 비롯한 대 여섯 명의 신사들 무리가 술집에서 나와 각자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 리자베타가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고 ‘누가 이 짐승을 여자로 다룰 사람이 없느냐’는 농담을 주고받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때 표도르가 나서서 자신이 여자로 다룰 수 있다며 어릿광대 역할을 자청하게 되는데 이후 리자베타의 배가 불어오게 되자 아비가 바로 표도르일 것이라는 소문이 돌게 된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이 모든 것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강력하게 부인하지만(도스토옙스키 1, 2007: 210) 자신의 친자식들조차 모른 척 했던 전적이 있던 터라 그의 말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표도르의 아이라고 믿게 된 결정적 사건은 바로 리자베타가 출산 직전, 표도르 집 정원의 담장을 넘어 목욕탕에서 해산했다는 점이다(도스토옙스키 1, 2007: 209).
그녀가 그와 같은 몸 상태로 어떻게 높고 견고한 정원의 담장을 넘을 수 있었는지는 일종의 수수께끼로 남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그녀를 ‘사람들이 옮겨 놓았다.’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귀신이 옮겨 놓았다’라고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확실한 것은 이 모든 것이 기이하긴 하지만 그래도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일어났으리라는 점인데, 리자베타는 밤을 보내기 위해 울타리를 넘어 남의 텃밭으로 기어 들어가는 법을 알고 있었던 터라 어떻게 용케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담장으로 기어 올라간 뒤, 자기 몸의 상태가 그 지경이어서 좀 해가 되더라도 담장에서 정원으로 껑충 뛰어내렸을 것이다. …(중략)… 부칭에 관해서는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다들 저절로 표도르비치라고 부르게 되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전혀 반대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이 모든 것을 재미있어했는데, 그러면서도 계속하여 자기는 이 모든 것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있는 힘껏 발뺌을 했다. 그가 업둥이를 거둔 것을 도시에서는 다들 좋아했다.
위 대목에서 보다시피 서술자는 만삭인 그녀가 담장을 넘는 사건에 대해 수수께끼라고 표현하면서 추측으로 대신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3형제의 출생에 대해서는 꼼꼼하게 서술한 것에 반해 스메르쟈코프에 관해서는 모호하게 해석되게끔 서술한 작가의 의중에 대해 독자들이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마을 사람들이 ‘표도르가 친부일 것이라는 확신’은 리자베타가 그의 집에 들어가 아이를 낳았다는 점에 있다. 표도르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마치 표도르가 친부임을 낙인찍는 것과 같다. 만약 표도르가 아이 아빠가 아니라면 아기 아빠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리자베타를 데리고 가 표도르의 집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리라는 추론도 가능해진다. 그렇게 되면 리자베타 아이가 표도르의 자식임을 만인에게 공포하는 효과를 낳는 동시에 평소 표도르의 자식을 친자식처럼 키워주던 그리고리의 행적을 고려해 볼 때 뱃속 아이의 양육인 또한 보장받을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작가의 개인정보를 통한 외적 맥락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평소 스메르쟈코프에 대해 무관심하던 표도르는 아이의 첫 간질 발작이 일어난 직후부터 태도가 달라진다. 가령 그리고리로 하여금 스메르쟈코프에 대한 매질을 금지시켰을 뿐 아니라 자신의 서재를 개방해 책을 읽도록 권유하기도 한다. 스메르쟈코프가 요리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모스크바 유학비까지 지원하였다. 소설 속에서 표도르의 행동변화가 스메르쟈코프의 첫 간질발작 직후에 일어난다는 점은 스메르쟈코프의 간질병이 마치 표도르의 아들임을 입증하는 듯한 뉘앙스를 보여준다. 이와 관련하여 표도르의 행동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교수자의 질문에 한두 명의 학생들은 ‘표도르의 간질’과 관련 있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소설 속 어디에도 표도르가 간질을 앓고 있다는 구절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소설이라는 장르가 표면에 제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분위기에 따라 유추할 수 있긴 하나 ‘간질’의 경우 소설의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모티프 중 하나이므로 이 대목을 생략처리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이를 위해 H.포터 애벗의 징후적 접근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여기서 ‘징후적 읽기’란 저자가 쓰는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않았던 읽기를 배후에서 찾아냄으로써 의도를 헤아리는 읽기를 해체하는 것을 의미한다(H.포터 애벗, 2010: 204). 이러한 징후적 접근법은 서사 배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의미를 발견하려 한다는 점에서 곁텍스트에 비중을 둔다고 볼 수 있다(H.포터 애벗, 2010: 205). 본고는 바로 이 지점이 학생들의 곁텍스트가 작용한 지점으로 보았다.7)
그렇다면 학생들이 착각하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학생들은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 사전조사를 통해 작가 도스토옙스키가 간질병을 앓는 환자였음을 파악한 바 있다. 게다가 작가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러시아 통보에 연재하기 이전해인 1878년, 막내아들 알료사를 자신의 유전인 간질병으로 잃었고 그로 인해 소설의 셋째 아들 이름으로 불리도록 했음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소수의 독자들은 텍스트 내용을 작가의 삶과 연결시키는 오류를 범할 수 있었을 것이고 마치 이것이 스메르쟈코프가 표도르의 자식임을 정의내릴 수 있는 근거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는 작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와 이름이 동일하다는 점에서 학습자들의 무의식중에 착각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에게 물려받은 간질병 때문에 세상에 태어나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죽은 알료샤에 대한 죄책감이 컸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죽은 아들을 소설에서나마 동일한 이름인 알료샤로 부활시켜 살아 숨쉬도록 하고 대신 간질을 앓는 이로부터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은 표도르 자신이 되도록 장치해 둔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다. 여기서 표도르는 소설 속 아버지이나 동명이인인 작가 본인 또한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측은 자신의 대한 징벌과 아들의 구원을 동시에 이루고자 했을지 모른다는 가정을 가능하게 해 준다. 작가의 트릭을 눈치채지 못한 독자들의 경우, 작가의 간질병이 소설 속 표도르에게 이입되어 우리는 마치 스메르쟈코프의 간질병이 표도르에 의해 유전되어 그의 행동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8).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추정이 ‘친부살해’가 아닌 ‘표도르의 피살’이라는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3.2. 확장적 사고로 진행된 학생들의 피드백 사례

이제 표도르와 스메르쟈코프가 부자지간이 아닐 수도 있다면 그가 보인 호의는 과연 무엇일까란 질문으로 넘어가야 한다. 자신의 친아들들에게조차 돈쓰기를 아까워했던 표도르가 구태여 집안 하인의 모스크바 유학비까지 댈 정도로 호의를 베풀었느냐에 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호의를 베푼 표도르의 의도에 대해서는 작가가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온전히 파악하긴 어렵지만 이러한 그의 행동에 대한 결과는 종교적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부자 갈등과 더불어 구원의 문제 또한 비유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서사시 <대심문관>과 우화 <양파 한 뿌리>를 통해서다. 그 가운데서도 본고는 <양파 한 뿌리>에 주목했는데 이 우화는 짧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종교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루센카가 알료샤에게 들려준 <양파 한 뿌리>는 지옥에 떨어진 어느 할머니를 천사가 천국으로 보내기 위해 그녀가 평생 살아오면서 딱 한번 선행을 베푼 ‘양파 한 뿌리’를 찾아내게 되지만 할머니의 교만으로 결국 지옥에 떨어져 살게 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양파 한 뿌리’는 최소한의 선행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평생 고리대금업자로 인색하게 살아온 표도르가 스메르쟈코프에게 보인 호의는 그의 유일한 ‘양파 한 뿌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다른 등장인물들에게도 이러한 ‘양파 한 뿌리’를 찾아볼 수 있는가”로 이어진다. 한 사례로 2021-2학기 발표수업 가운데 4조에서는 표도르를 비롯한 그루센카, 이반, 카체리나, 알료사 등의 ‘양파 한 뿌리’9)에 대해 발표하였다(그림 2 참조). 이와 관련한 토론에서 다른 학생들은 이 작은 선행마저도 살펴볼 수 없는 인물로 ‘스메르쟈코프’를 지명하며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여러 견해를 제시하였다.
[그림 2]
학생들의 발표 및 피드백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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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논의는 보다 확장적 사고로 이어져 학생들의 논제와 토론으로10) 진행되었다(그림 2 참조). 여기서 학생간의 호응도가 높았던 몇 가지 논제를 소개하겠다. 첫째, 표도르가 보인 호의가 순수한 선행이라면 단 한 번의 선행으로 그의 수많은 죄가 용서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논제이다. 이는 과연 사람을 죽이고도 뉘우치기만 한다면 용서 받을 수 있을까란 논제로 확장되었는데 댓글을 작성한 학생 대부분이 용서 받을 순 없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하지만 가해자가 피해자 곁에서 평생 속죄한다면 다시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위 논제들을 통해 학생들은 표도르의 <양파 한 뿌리>를 추측해 봄으로써 소설 속 다른 살인사건들과 연관시켜 죄의 무게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둘째, <친부살해>가 아닌 피살 사건일 경우일지라도 존속살인의 도덕적 범주를 어디까지 정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다. 특히 ‘죽이고 싶었으나 죽이지는 않았는데, 혹은 죽이지는 않았고 그저 죽음을 바랐을 뿐인데, 이것이 왜 죄가 되는가’(도스토옙스키 3, 2007: 565)란 대목이 학생들의 관심도가 높았다. 이 대목의 경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보편적인 문제의식 가운데 하나이기도 해서 더 활발한 토론이 이뤄진 까닭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하여 대부분의 학생들은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처벌’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하지만 ‘악한 마음에 대한 죄의 무게’와 같이 종교적⋅윤리적 측면에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한 발표자는 ‘평소 드리트리가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고 다닌 사실에 대해 예심 과정에서 인정한’ 구절을 언급하며 ‘과연 감정은 숨겨야 하는 것인가, 표현해야 하는 것인가?’란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댓글을 달았는데 대다수가 감정의 선택여부보다 자신의 감정에 대한 책임여부에 초점을 두었다. 요컨대 감정이란 수시로 변화하는 특성 때문에 표현 자체가 사람의 진실을 흐릴 수 있으므로 감정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상대에게 끼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 감정표현에 따른 책임 여부 등에 대해 언급했다. 이와 같이 확장적 사고로 이어나갈 수 있도록 서로의 견해를 보완해 주는 주제토론은 효과적인 독서교육의 전략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의미를 발견해 나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4. 수업 방법론 2: 글쓰기

이번 장에서는 앞서 진행한 확장적 사고의 연장선상으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자신의 전공을 연관시켜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도록 제안한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과제는 학생들이 고전을 현대적 문제의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파악하되 추상적인 개념보다 자신과 실질적 연관성이 있는 것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본고는 이 과제를 통해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러시아 전공자가 아니기에 바라볼 수 있는 색다른 시각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고 이를 지식의 비판적 수용과 더불어 자신만의 창의력으로 글쓰기를 진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과제 주제는 자신의 전공과 접목시킨 자유 선정이나 그것이 어려운 경우 전공 외 주제 또한 선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교수자의 제안대로 글쓰기에 참여했다. 참여대상은 2021년에 수업을 들은 공과대와 경영경제대 학생들로 한정한다. 1학기 공과대학 참여학과는 화학공학과, 토목환경공학과, 기계공학과, 건축학부 건축학 전공이며 총 37명이 참여하였다. 2학기 경우 총 23명으로 구성된 경영경제대학에는 경제학과, 경영학부, 국제학부 국제경영학 전공, 무역학과 등을 포함하여 그 외 과학교육과, 체육교육과, 국어국문학과 학생 또한 각 1명씩 참여하였다.
이 과제를 통해 살펴볼 있는 학생들의 글은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눠진다. 첫째, 소설에 제시된 여러 모티프나 장면 가운데 연관성 있는 부분을 뽑아 자신의 전공지식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많은 학생들이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우선 공과대학 학생들의 과제부터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화학공학과 전공 학생들은 주로 조시마 장로의 시체가 썩는 냄새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거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보드카와 코냑의 제조원리, 스메르쟈코프의 간질병의 약물 치료법 등에 대해 서술하였다(<표 1> 참고). 한편 기계공학과와 토목환경공학과 학생들의 경우 전공의 특성상 겹치는 대목이 많았다. 두 전공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콜랴가 철도아래에 들어간 장면과 연관시켜 철도공학에 대한 이론이나 드미트리가 모스크예로 가는 길에 탔던 트로이카와 관련된 당시 운송기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한편 경영경제대학 학생들의 경우 공과대 학생들과는 달리 뚜렷한 전공별 차이점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11) 경영경제대 학생들 사이에 가장 많이 언급된 부분은 바로 ‘3000 루블’인데 이를 현재의 화폐가치로 가늠해 본다거나 3000루블이란 경제적 부와 행복의 상관성을 비교 분석하였다. 이 주제가 많았던 이유는 아무래도 ‘3000루블’이 소설에서 191번이나 언급될 정도로 노출빈도가 높았기(석영중, 2008: 288-289) 때문이라 판단된다.
<표 1>
<전공관련 글쓰기>에 관한 전공별 주제 분류
대학/전공 분류
공과대 화학공학과 • 시체 썩는 냄새(조시마 장로)
• 냄새 콤플렉스(스메르쟈코프)
• 간질병 요인(스메르쟈코프)
• 공학도의 자세를 수도승의 자세로 비유(알료샤)
• 술 제조원리와 소설에서의 역할(드미트리, 표도르)
• 빵 제조원리(배경)
기계공학과
토목환경공학과
• 비포장도로에 관한 도로정비(드미트리가 삼소노프를 만나러 가던 장면)
• 철도 공학(콜랴 에피소드)
• 화약 제조원리(콜랴)
• 트로이카 및 마차와 같은 교통수단(드미트리)
• 소설 속 러시아 아파트, 우체국 등의 건물(배경)
건축학부(건축학 전공) • 신경 건축학(라스콜니코프와 소냐의 방 구조)
둘째, 소설의 주요 쟁점을 비판적 안목으로 분석해 내거나 혹은 소설 상황을 변경시켜 다른 흐름으로 예상해 보는 방식이다. 우선 하나는 학생들이 소설을 비판적 안목으로 읽어나가고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사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조시마 장로와 스메르쟈코프의 냄새에 관해서다. 조시마 장로와 관련된 주제에서는 소설 속 조시마 장로와 일류샤의 시체 썩는 냄새를 비교하면서 장례식이 치러지는 기간과 계절을 염두한 과학적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였다(김수〇, 화학공학과). 위 학생의 견해는 소설 속 주요 사건이기도 했던 ‘시취(屍臭)’가 수도원 내의 위계질서와 시기심, 성자의 기적에 대한 대중들의 잘못된 믿음과 기대 때문(권철근 2013: 7)이란 기존 논의와는 또 다른 해석적 접근으로 볼 수 있다. 냄새에 관한 문제는 스메르쟈코프에게서도 살펴볼 수 있다. 소설 속 묘사된 장면을 보자면 그는 자신의 본연적인 냄새를 감추기 위해 영국제 구두약으로 구두를 닦고 향수를 뿌리는 등 자신이 냄새나는 여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싶어한다. 이에 대해 스메르쟈코프가 가지고 있는 냄새 콤플렉스는 겉으로 풍기는 악취보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한 심리적 상태를 보여주는 것인데 이는 아마 기억과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우혜〇, 화학공학과). 위 학생은 ‘냄새’에 관한 스메르쟈코프의 복합적인 감정을 심리적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한편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이 배우는 현대의 기술이 소설 속에 도입되었더라면 소설 상황이 어떻게 변경되었는지 예상해 보는 방식이다. 한 예로 ‘드미트리가 정비된 도로를 달려 그루센카가 떠나기 전에 도착했다면 그의 운명은 어떻게 바뀌게 되었을까’(정도〇, 토목환경공학과)에 관해서다. 이 학생은 ‘그 당시 토목환경공학이 잘 발달되어 도로의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면 드미트리가 랴가브이를 만나러 다녀온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그루센카가 떠나기 전에 도착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드리트리가 표도르의 집을 방문할 일도 벌어지지 않아서 친부살인이라는 누명을 씌지 않았으리라’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학생의 글은 단순히 모티프 언급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전반적 흐름을 파악하여야만 예측할 수 있는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과제의 의도를 잘 포착해 내는 글쓰기라 할 수 있다.
한편 경영경제대 과제 가운데서는 트미트리의 ‘친부 살해 혐의’의 원인이 어머니의 유산상속 때문인 점을 감안하여 만약 그 당시에 회계사가 있었더라면 사건 전개가 어떻게 변모되었을지 유추해 낸다거나(박수〇, 경영학부) ‘SWOT’ 경영 전략 이론을 대입시켜 등장인물의 상황을 분석해 낸 기발한 아이디어도(장아〇, 경영학부) 살펴볼 수 있었다. 그 외 전공자 가운데서 한 학생은 당시 ‘DNA 분석’이 가능했다면 스메르쟈코프의 친자여부를 가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드미트리 옷에 뭍은 혈의 채취를 통해 범인을 바로 알 수 있지 않았을까(문유〇, 과학교육학과)에 대해 언급했다. 이는 앞서 설명한 교수자의 강독이 학생의 확장적 사고로 이어진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경영경제대 학생들의 경우, 가상의 공간부터 우선 설정해 놓고 소설 내용을 대입시키는 몇몇 학생들의 글도 인상적이었다. 가령 가상의 기업을 설정한 후 소설 속 주요 등장인물을 조직 내 구성원이라 가정하여 MBTI 유형으로 분류(이휘〇, 경영학부)하거나 소설에 묘사된 장점을 위주로 적합한 직무를 선정(조유〇, 경영학부)한다는 점이다. 또는 드미트리가 용의자로 혐의 받게 된 배경에 소문이 지배적 역할을 담당했다고 보고 이것을 가상의 회사를 설정해 기업적 측면(임영〇, 경영학부)에서 분석하기도 하였다. 위의 논의들에서 흥미로운 것은 기업가 측면에서 볼 때 ‘표도르’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소설 속 ‘표도르’는 고리대금업자이며 악랄한 사업가에다 속물적인 호색한으로 소개된다. 하지만 학생들은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표도르’가 경제 주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는 아무래도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대목을 찾다보니 이러한 분석 차이가 나는 것이겠으나 결국 책을 읽은 독자들의 배경지식에 따라 해석 또한 충분히 달라질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12)
이와 같이 본고가 ‘전공 관련 글쓰기’ 과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학생들이 현재적 시각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이다. 통상 우리는 고전의 의미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측면에서 찾기 쉽다. 하지만 이 과제에서 시도한 실용성과 전문성을 강조하는 전공 학문을 인문학에 대입시켜 봄으로써 모든 학문이 하나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인지해 보도록 한다는 점이다. 둘째, 이 과제를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소설 전반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므로 학생들이 고전에 대한 이해도를 파악하는데 용이하다. 결론적으로 학생들의 배경지식을 확장시키고 보완해 주는 것은 고전읽기의 또 다른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5. 결론

이상 본 논문은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여 능동적인 독서를 이끌어 내기 위한 수업방안을 고찰하고 이에 학습자들이 자신의 관심사와 연결시킨 글쓰기 사례를 소개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고전에 대한 개인적 흥미가 낮은 학습자들에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동기를 유발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판단했다. 검토한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우선 2장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원문과 다이제스트판을 비교하여 살펴본 다음에 원문 그 자체를 읽어야 하는 근거에 대해 살펴보았다. 본 강좌에서는 원문과는 다르게 서술된 대목들을 다이제스트에서 살펴볼 수 있어서 최대한 학생들이 원문을 읽어 나가도록 유도하였다.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들을 보면 기존의 우려와는 달리 원문을 읽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3장의 경우 텍스트 원문의 중요성을 인지한 학생들과 함께 작품 내적 맥락과 외적 맥락을 활용하여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였다. 본고는 소설의 주된 테마인 ‘친부 살해’를 추적해 나가기 위해 표도르와 스메르쟈코프의 친자관계 맥락에 대해 살펴보던 중 이 대목이 명확하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었고 학생들과 함께 이를 좀 더 확장시켜 추적해 나가는 과정을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이러한 수업 과정을 학습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가에 대한 확인 작업으로 전공을 활용한 글쓰기를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공별로 매우 다양하고도 참신한 주제들이 논의되었다. 이 과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양상은 소설에 제시된 여러 모티프나 장면 가운데 연관성 있는 부분을 뽑아 자신의 전공지식으로 설명하는 방식과 소설의 주요 쟁점을 비판적 안목으로 분석해 내거나 혹은 소설 상황을 변경시켜 다른 흐름으로 예상해 보는 방식 두 가지로 구분된다.
이와 같이 본 논문의 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소설의 배경지식과 작가의 개인 정보, 텍스트는 별개가 아니라 모든 것이 아울러져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를 증진시키는 방법의 일환이 될 수 있다. 둘째, 전공과 고전을 접목시켜 글을 작성해 봄으로써 기존 해설과는 다른 시각에서 고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셋째, 누구나 당연히 그러하다고 생각한 테마에 의구심을 가지는 것으로 출발하여 텍스트와 외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작가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추론 과정이 학습자의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일종의 장치가 되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본 논문의 결과는 ‘고전은 어렵고 과거의 것’이라는 인식을 제고하는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고전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험이 아니라 능동적 자기 이해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논문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다양하게 독해해 낼 수 있는 모티프 가운데 스메르쟈코프와 관련된 논의에 한정되어 있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이는 본고가 기존에 논의되지 않은 모티프에 중점을 두고 꼬리물기식 연상 작용을 해 나갈 수 있는 방법적 측면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였기에 다소 논의의 폭이 협소한 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차후 도스토옙스키의 관련 작품들 논의에서 좀 더 보강하도록 하겠다.

Notes

1)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관한 기존 논의들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E.H카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타난 죄와 용서 같은 신앙적 측면에 주목하여 작가의 종교관을 지적하였다(2011: 342). 한편 석영중은 이 소설에서 보여지는 신경 신학자들의 예고된 논쟁을 대해 고찰하였다(2021: 324). 권철근의 경우 이 소설에 제시된 다양한 아버지의 형상을 분석함으로써 아버지 테마의 본질과 의의를 밝히는데 주목하였다(2013: 2). 그리고 백준현은 ‘아이들 테마’를 통해 궁극적으로 도스토옙스키가 구원의 요건으로 삼은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다(1998: 489). 마지막으로 김연경 논문에서는 본고에서 주목하고 있기도 한 스메르쟈코프의 특성을 분석하고 소설 내에서 그의 입지에 대해 상세히 분석하였다(2018: 34). 이처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종교적⋅심리적⋅가족관계 차원 등 다양한 측면에서 다뤄지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아버지’ 테마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 소설에서는 카라마조프가의 아버지 표도르를 비롯하여 알료샤의 정신적 아버지인 조시마 장로, 공금 유용으로 딸을 어려움에 처하게 한 카체리나의 아버지, 자신의 아들을 잃은 후 스메르쟈코프를 자식처럼 키워준 그리고리, 아들 일류샤에게 헌신적이었던 스네기료프 대위 등 여러 아버지상을 살펴볼 수 있다(권철근, 2013: 3).

2) 현재 인터넷 대형 서점에는 여러 종류의 다이제스트가 판매되고 있다. 본고는 절판, 품절된 것을 제외한 텍스트 가운데서 학생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 바로 eBook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점을 감안하여 본 논문에서는 현재 인터넷 대형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도서출판 앱북의 『다이제스트로 읽는 세계명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2015)과 위즈덤커넥트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23분만에 독파하는 고전 멘토링』(2016), 해성 북 출판사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2020)을 비교 텍스트로 선정하게 되었다.

3) 권철근(2010)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략이 직선적인 경우보다 곧잘 미묘한 상황 속에 숨겨져 있거나 도스토옙스키 역시 포착하기 어려운 암시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교묘한 작가’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견해는 본 논문의 문제의식에 참고점을 제공하는데 그런 시각에서 보자면 ‘쥬치카’와 ‘페레즈본’의 애매한 서술 또한 작가의 ‘트릭’일 수 있다. 따라서 텍스트 내 단어 명칭은 명확히 서술되어야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4) 본 수업에서 문제의식으로 제기한 ‘친부 살해’ 모티프는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학생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한 교수자의 방법적 측면이었다. 우선적으로 교수자가 이 텍스트의 중요 쟁점인 ‘친부 살해’을 언급하여 본문의 앞 뒤 문맥을 정확히 파악하도록 한 후 이와 관련된 주제들을 꼬리물기식으로 연상하도록 유도하였다. 이후 학생들은 이러한 방식을 활용하여 자신들이 고민해 온 다양한 논제들을 작성해 왔는데 아무래도 ‘친부 살해’의 경우 워낙 소설 중심테마와 연관되어 있으므로 이 테마에서 변형된 논제들을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이후 살펴볼 <양파 한 뿌리> 또한 ‘친부 살해’에서 확장된 문제의식으로 학생들의 활발한 논쟁을 이끌어냈다.

좀 더 구체적인 수업 방식에 대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수업 전 학생들은 정해진 분량을 읽고 각자 준비한 논제들을 과제로 제출한다. 발표조 또한 조원 개인마다 논제를 ppt에 올리면 이러닝 열린 게시판을 통해 토론이 진행된다. 발표조의 ppt를 본 나머지 학생들은 수업시간 내에 ppt에 제시된 논제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이에 대한 답변과 더불어 자신이 작성해 온 논제를 이러닝 열린 게시판에 올린다. 이후 발표조는 이에 대한 답변을 작성해야 한다. 이 과정은 발표기간동안 매주 진행되었으며 수업을 듣는 학생은 누구나 공유할 수 있도록 공개해 두었다.

5) 수없이 논의되어 온 ‘부친 살해’ 모티프 가운데 ‘표도르’를 살해한 ‘스메르쟈코프’가 그의 자식이 아닐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본 논문의 실험적인 시도이기도 하다. 이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견해이긴 하나 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근본적인 지점을 향한 새로운 질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6) 임선숙은 선행지식 학습과 해석적 읽기를 통해 텍스트를 해석할 시 몇 가지 유의사항을 언급하였는데 전문가의 의견이나 대중적인 의견에 의지하지 않을 것, 오독을 염려하지 말고 적절한 근거를 중심으로 자신만의 관점으로 작품을 해석할 것을 강조했다. 그 결과 학생들이 더 다채로운 관점에서 다양한 의미를 해석해 냈다는(2021: 183) 위 연구자의 견해는 본 논문의 연구방향에 근거가 되어준다.

7) 소설 속 명확하지 않는 구절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고전읽기에 익숙하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부담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자는 게임에 익숙한 Z세대 학생들이 마치 게임 개발자가 게임 속에 재미 요소를 주기 위해 몰래 숨겨놓은 메시지와 같은 일종의 ‘이스트 에그’를 찾는다고 생각하며 이를 텍스트에 적용한다면 고전읽기의 새로운 통로가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8) 도스토옙스키의 작중 인물들 가운데 간질의 징후가 나타난 인물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스메르쟈코프 외에도 『백치』의 므이쉬킨 공작과 『악령』의 키릴로프에서도 작가의 질병을 투사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작품에 따라 각각 표출하는 간질의 의미를 달라지게 묘사했다는 점이다(권철근 2006: 132-133). 먼저 발표된 『백치』의 경우 집필기간에 태어난 첫딸을 폐렴으로 3개월 만에 잃게 되는 불행한 가정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질을 앓는 주인공의 모습을 순수하고 신비하게 묘사하였다. 그에 반해 『미성년』을 집필하던 중 자신의 질병을 유전적으로 상속받은 알료샤가 간질로 인하여 삼년 만에 죽게 되자 이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는 악의 표상인 간질병 환자 스메르쟈코프를 그려내었다. 이는 자식의 죽음과 자신의 병의 연관성에 따라 병에 대한 묘사가 달라지고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9) <양파 한 뿌리>는 교수자와 학생간의 견해 차이는 있으나 수업시간에 이를 수정해 주기보다 학생들의 분석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가령 ‘양파 한 뿌리’는 탄산가스에 질식할 뻔한 라갸브이를 구한 드미트리와 술에 취해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농부를 구한 이반, 일류샤 가족에게 금전적 지원을 한 카체리나, 오갈 데 없는 막시모프를 거둬 준 그루센카의 행동에서 살펴볼 수 있다. 여기서 등장인물들은 순수한 선행적 차원보다 자신의 이익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받은 상대방에게 어떠한 요구도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러한 그들의 행동을 ‘선행’으로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각 등장인물들의 <양파 한 뿌리>를 단답형으로 정의내리기에는 무척 조심스러운 부분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단서가 될 수 있는 것을 추리해 나가는 과정은 확장적 사고를 진행하는데 있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10)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본 수업에서 진행한 토론은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강의라는 점과 학생들이 댓글문화에 익숙하다는 점을 감안하여 이러닝 열린 게시판의 댓글달기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특히 2021-2학기 강의는 D대학 교수학습개발센터에서 진행한 단러닝 스터디클럽에 참여하였는데 위 인용문의 경우 발표조와 나머지 학생간의 토론 댓글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11) 경영경제대 학생 외에 과학교육과, 국어국문학과 학생의 경우 DNA 분석으로 친자확인 유무 및 ‘감정 전염’과 ‘후광 효과’의 심리학 개념 적용 등의 주제로 글쓰기를 진행하였다.

12) 이러한 전공 관련 글쓰기는 도스토옙스키의 또 다른 작품인 『죄와 벌』을 통해서도 진행한 바 있다. 여기서도 학생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살펴볼 수 있었는데 잠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2020년 1학기의 경우 공과대와 예술대(도예과, 음악학부, 디자인학부, 공연영화학부 포함 40명), 2020년 2학기에는 사범대 학생들을(수학교육과, 특수교육과, 체육교육과, 과학교육과, 한문교육과 전공 포함 31명) 대상으로 진행하였고 앞서 소개한 공과대는 제외하도록 하겠다.

예술대 학생들의 글쓰기를 살펴보자면 소설 속 여러 장면들을 영화로 제작했을 때 어떠한 음악이 좋을지 추천한다거나(음악학부) 소설 속 인물들의 의상을 고전 그림과 비교하여 설명한다거나 등장인물의 심리를 ‘선’의 변화로 설명(디자인학부), 텍스트를 화면으로 연출할 경우 예상되는 인물 움직임이나 제스처, 더 나아가 어떤 배우를 캐스팅할지에 대해 언급한 대목(공연영화학부)도 살펴볼 수 있었다. 한편 사범대 학생들의 글쓰기에서는 소설 속 주요 사건 3가지를 함수로 표현한다거나 주인공과 주변인물 관계도를 사칙연산으로 비유하여 서술하거나(수학교육과) 주인공의 환시 혹은 환청 요인등과 같은 정신적 질환을 생물학의 신경계 및 면역계 등으로 설명(과학교육과), 소설 속 소외된 계층에 대한 관심을 갖고 교사로서 해결책을 제시한다거나 당대 경제 및 교육, 여성에 대한 정책 및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분석(특수교육과), 전공에서 배운 이론을 접목시켜 주인공 행동의 문제점을 해결책(체육교육과)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예술대 학생들의 글쓰기에서는 『죄와 벌』의 줄거리 및 등장인물의 특성을 자신의 전공에서 변형시키는 일종의 ‘원 소스 멀티 유스’적인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에 반해 사범대 학생들은 자신이 배운 이론을 통해 등장인물의 비정상적인 행동의 문제점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특징이 강하게 드러났다. 그 가운데서도 한 학생의 글이 굉장히 흥미로웠는데 ‘죄와 벌을 게임으로 만든다면 어떤 의미와 포맷으로 만들 것인가’(조도〇, 패션디자인학부-커뮤니케이션 디자인과)란 주제였다. 학생의 글에서 나타난 게임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들이 이 게임을 진행하면서 라스콜니코프에 감정이입하여 결말을 봄으로써 벌의 의미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바꿔 나간다는 점이다. 가령 소설 속 등장인물인 ‘소냐’를 게임의 힌트와 같은 존재로 설정한다거나 게임의 마지막 엔딩의 경우 신에게 구원받는 장면의 이미지와 라스콜니코프가 감옥에 있는 장면을 디졸브하여 보여준다. 결국 신의 구원은 라스콜니코프가 죄를 받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는 것을 게임의 유저에게 알려주겠다는 학생의 글을 통해 이 게임이 단순히 줄거리만을 적용하는 것이 아님을 살펴볼 수 있었다. 위 학생의 과제 경우 『죄와 벌』의 내용을 온전히 숙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원 소스 멀티 유스’적 측면에서 자신의 전공을 잘 살린 사례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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