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거울, ‘로봇’ -기술지배시대의 독법과 교양교육

‘Robot’, A Mirror for Humans : Liberal Arts Education in the Era of Technological Domination and How to Read this Era

Article information

Korean J General Edu. 2024;18(1):23-33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24 February 28
doi : https://doi.org/10.46392/kjge.2024.18.1.23
이병태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부교수, taotome@khu.ac.kr
Associate Professor, Humanitas College, Kyung Hee University
Received 2024 January 20; Revised 2024 February 03; Accepted 2024 February 19.

Abstract

초록

‘4차산업시대’를 향한 전환의 바람은 무척 거세다. 교육의 장 또한 결코 그 권역 밖에 있지 않으며, 교양교육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작금의 변화에 대해 순응적으로 수용하는 교육적 대응의 추세가 그저 강화되기만 하는 일은 달리 성찰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특정한 시대의 선풍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근원적으로 성찰하도록 이끄는 교육적 시도가 적어도 교양교육의 영역에서 지금보다 활발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급변하는 세상을 살아갈 세대에게 자신들이 자리한 역사적 문맥을 자각하도록 함은 간과하기 어려운 교육적 무게를 지니는 까닭이다. 이와 관련하여, 눈여겨봄직한 교육적 자원은 ‘인간-기계’에 대한 재정의 담론, 그리고 ‘로봇’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시대, 첨단 기술시대의 전사(前史)다. 지성사, 문화사, 현실 역사를 교차하는 궤적들은 인류가 어떤 도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는지 착목할 수 있도록 하기에, 풍부한 서사의 보고이자 중대한 교육적 자원이 된다. 다학제적 특성을 지닌 교양교육의 영역이야말로 이러한 자원이 자리 잡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다.

Trans Abstract

Abstract

The winds of transition towards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are very strong. The field of education is never outside their sphere of influence, and liberal arts education is no exception. However, it seems necessary for us to reflect differently on the fact that the trend of educational responses to adaptively accept current changes is only being strengthened. For instance, educational attempts to lead students to reflect critically and fundamentally on the prevailing trends of a particular era need to be made more actively than they are now, at least in the field of liberal arts education. This is because leading the generation who will live in a rapidly changing world to be aware of the historical context in which they are located has an educational weight that is difficult to overlook. In this regard, educational resources worth paying attention to are the redefinition discourse on the ‘human-machine’ and the preceding history of the digital age and hi-tech era symbolized by ‘robots’. The trajectories that intersect intellectual history, cultural history, and real history serve as a treasure trove of rich narratives and an important educational resource because they allow us to focus on the journey humanity has taken to reach the present stage. The field of liberal arts education, with its multidisciplinary characteristics, is the most appropriate place for these resources.

1. 들어가며

‘4차 산업시대’의 선언은 무척 단호하다. 이는 급격한 현실적 변화를 예고하거나 모종의 역사적 전기(轉機)를 확고하게 알리는 목소리인 듯하지만, 여기에는 누락되거나 배면화된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먼저, 경제 성장의 관건이 4차 산업에 달려 있다는 말이 하도 다급하며 확신에 차 있어 의미심장한 질문들, 즉 신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도열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 영향과 귀결이 과연 바람직할지 되물음은 잘 들리지 않는 웅얼거림이 되고 만다. 물론 이 추세에 대해 진지한 우려가 전무했다고 할 수는 아니지만, 이미 시작된 행군을 주춤거리게 할 만큼 진지하며 집요하게 제기된 적도 없다.

이와 관련하여 MIT가 최근 발표한 문건은 흥미로운 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2023년 11월 28일 공개된 정책개요로서 「미합중국 AI 거버넌스 체계 : AI부문 육성 및 안전 창출」라는 제목의 글이다(Huttenlocher, D., Ozdaglar, A., Goldston, D., 2023, p. 1). 4차 산업기술의 코어라 할만한 AI를 주제로 삼고 있을 뿐 아니라, 전문가 집단이 특히 ‘규제’에 관한 구체적 성찰의 결과를 담아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의미를 지니기에 충분했다. ‘규제’를 생각하고 논함은 4차 산업시대에 수반될 부작용이나 악영향을 명백하게 의식하는 일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정책개요는 첫머리에 두 가지 목적을 명시하는데, 그 중 하나가 훼손되어선 안 되는 대상 또는 영역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니라 ‘보안’과 ‘안전’, ‘공영(共榮)’, ‘민주적이고 시민적인 가치’로, 위의 ‘규제’에 관한 성찰의 함의와 유사하게 AI를 중심으로 하는 4차 산업시대의 불길한 측면을 우회적으로나마 뚜렷이 드러낸다. 즉 이 문건은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개인의 사생활이나 국가안전을 자칫하면 훼손할 수 있고, 기술과 그에 기반한 다양한 편익의 수혜가 특정한 집단 및 개인에게 집중될 수 있으며, 미디어와 정보의 생산 및 재생산에 강력하게 개입함으로써 민주주의적 가치 실현을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다.

이미 가시화되어 대중적 불안을 증폭시켜 왔던 문제를, 그리고 그에 대한 흐릿하며 막연한 ‘우려’를 신뢰할 만한 전문가 집단이 공표했음은 긍정적이다. 명확한 문제의식은 곧 그에 대한 대응과 직결되고, 실제로 보고서 배포의 의도 또한 발생 가능한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 대응을 촉발하려는 데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4차 산업시대 선언의 기본적 추세나 일방성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문건이 명시한 두 가지 목적 가운데 첫 번째는 ‘미합중국 AI 리더십 유지’이며, 나아가 위의 두 번째 목적을 포괄하는 개념마저 ‘유익성’인 까닭이다(Huttenlocher, D., Ozdaglar, A., Goldston, D., 2023, p. 1). 말하자면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기에 새로운 시대에 관한 비판적 성찰이 근본적인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1) 이런 점에서 이 문건의 지향은 오히려 시대적 전환의 정교하며 세련된 방식을 모색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4차산업시대의 선언을 통해 배면화되는 또 다른 이야기는 예컨대 전환의 전사(前史)다. 선언은 시대를 주도하는 목소리인 양 떠들썩하지만 기실 뒤늦은 외침이다. AI, 로봇, SNS 등 새로운 시대의 단말들이 일상화되는 사건 자체는 그보다 훨씬 앞서는 기원을 지니기 때문이다. 시대적 전환의 선언은 이 기원의 장구하며 복잡다기한 역사적 문맥에 눈길을 둔 흔적조차 없다. 우리가 어떻게 그같은 선언이 날로 증폭되는 시대에 도달했는지 말하지 않으며, 이 도정의 현재와 미래, 특히 부정적인 전망에 관해 직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다만 경제적인 효과, 편익의 증대 등이 전환의 불가피함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되풀이해서 운위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외침은 현재 전사회적이며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며 실질적인 변화로 구현되고 있다.

교육의 장 또한 결코 그 권역 밖에 있지 않으며, 어떤 의미에서 가장 거센 변화의 바람을 마주하고 있다. 실제로 학과신설, 증원 등 제도적 지원에서 정부는 대학이 일제히 ‘첨단기술’을 지향하도록 이끌고 있다.2) 주지하다시피 작금의 대학은 정책적 기조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기에 이와 연관된 변화는 급격하게 여러 대학에서 절감되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 대학사회의 구성원들은 신규 학과 및 융합 전공 신설, 교과목 개편 등에서 이같은 변화를 강하게 체감하고 있다.

교양교육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작금의 변화에 대해 순응적으로 수용하는 교육적 대응 추세가 그저 강화되기만 하는 일은 달리 성찰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특정한 변화의 선풍이 자주 강화 일변도의 양상 및 수렴적 경향을 나타냄은 비판적 성찰과 실천의 입지가 협애해진다는 사실과 궤를 같이한다. 이는 현재의 변화에 따른 부작용은 물론 인류가 당면한 다양한 위기, 그리고 도래할 문제들에 대한 대안적 전망을 근본적으로 어둡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교육, 특히 교양교육이 극히 원론적으로 삶의 정향, 가치관 정립 등에 연관되어 있음을 상기하더라도 비판과 문제의식 자체의 약화는 무거운 교육적 과제가 된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달려가는 곳, 그리고 우리의 질주 자체에 관해 진지하게 탐문하려는 논의는 특히 교육의 장에서 좀 더 긴급하게, 그리고 심도 있게 전개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 글은 특히 4차산업과 관련하여 상술한 성찰의 단초를 성글게나마, 그리고 제한적으로나마 제시해보고자 한다.3)

2. 성찰의 단초들, 또는 교육적 자원들

시대적 전환의 소란을 비판적으로 성찰함은 그 자체로 교육적 자원의 구축과 한 몸이다. 교육은 변화를 일방적으로 추수함으로써 그 일부가 될 수도 있지만, 그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확장함으로써 변화 자체를 재인식하고 삶을 재정향하도록 이끌 수 있는 까닭이다. 현재의 교육정책이나 대학의 실질적 움직임은 전자를 중심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나, 변화의 한 복판을 살아갈 이들이 교육의 또 다른 주체임을 고려할 때 후자와 같은 교육적 비전이야말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자신이 자리잡고 있는 인류사적 맥락을 되짚음과 더불어 이에 기반하는 자기 성찰의 가능성을 개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적 단초는 4차산업시대의 선언과 더불어 확대되고 있는 기능적⋅기술적 교과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 실마리는 변화의 격랑 속에서 점차 그 위상이 불안해지는 인문학의 지평에서 좀 더 풍부하게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에는 일정한 조건이 따른다. 아무런 준비나 보완 없이 기존의 인문학적 교육을 지속하는 게 저절로 그와 같은 교육적 자원의 확보로 이어지지 않기에, 실질적인 콘텐츠의 재정비 정도는 필요하기 마련이다. 비판적 성찰의 힘이나 창조적 상상력을 도야시킨다는 종래의 기조가 변함없이 관철되어야 한다 하더라도, 인문학의 외연 내에서 말하자면 작금의 변화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다양한 소재 및 주제의 확보는 일단 불가피하다. 이같은 시도를 통해, 인문학적 지평과 기능 및 기술 중심의 교육적 변화가 ‘서로 소’인 듯 병렬되기보다 양항의 간극을 채울 접점이 마련됨으로써 융합적 교육 가능성이 비로소 열릴 수 있다. 사실 그같은 ‘접점’은 생각보다 너무도 풍부하다. 예컨대, 우리의 현재가 과거의 결과라는 점에서 적절한 소재 및 주제를 중심으로 과학사, 기술사, 지성사, 문예 및 문화사를 재독해하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전환’이나 ‘선언’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전사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다만 이러한 ‘접점’적 소재 및 주제는 보면 볼수록 풍부하다 못해 막대하다. 따라서 그 전모를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일은 확실히 글쓴이의 역량 밖이다. 이 글은 전술한 문제의식 하에 실제로 개설⋅운영되고 있는 교과를 참고하여 그 일부를 소개하는 환기 내지 제안 정도의 의미를 지닐 따름이다.4),5)

2.1. ‘인간’과 ‘기계’의 재정의

4차산업시대의 파장이 인문학에 미친 영향은 ‘인간’ 또는 ‘기계’, ‘기술’에 관한 재정의가 활발하다는 데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단적으로, ‘트랜스휴먼’ 또는 ‘포스트휴먼’에 관한 논의가 대표적인데 개념만 놓고 보면 얼핏 ‘휴먼’에 집중된 듯하다. 하지만 ‘트랜스’ 및 ‘포스트’란 말이 함축하는 전이 운동을 주로 과학과 기술의 다양한 성과들이 촉발시켰음을 반추할 때, 이 논의는 필연적으로 확장된 기계 및 기술의 위상을 전제한다. 발전한 기술의 지배력이 확장되면 될수록 인간 정체성의 변화에 관한 담론과 논구 또한 활발하게 제기⋅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휴먼 및 트랜스휴먼에 관한 논의, 이와 관련하여 신유물론적 접근, 인간과 세계에 대한 재정의 등 다양하고도 흥미로운 시각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논의되고 있으며, 현재의 거대한 변화는 이 논의들의 정당성을 일정하게 보장하는 듯하다.

새로운 시선들은 ‘인간’뿐 아니라 인간이 마주하며 상호작용하는 ‘세계’까지 이전과 달리 바라본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인간’, 그리고 그 대상으로 일축된 ‘세계’를 재정의하는 것은 물론 양자 간의 경계마저 허문다. 예컨대 ‘인간’은 성속의 대체 이후, 즉 초월적 주체의 위상이 붕괴된 이후, 세계를 객체로 마주하는 유일무이한 주체로 정의되었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인간이라는 “주체가 대상을 구성하는 방식을 묘사한 수많은 신화”들이 붕괴되었으며, ‘세계’ 역시 생물과 무생물, 자연, 사회, 우주 등 순전히 ‘대상’으로 규정된 존재를 지칭하는 게 아니다(Latour, B., 1991/2008, p. 211). 디지털 혁명 등 첨단 기술의 보편화 이후 인간은 기존의 세계는 물론 ‘정보’들과 연관된 “정보적 유기체, 즉 인포그inforg”로 변화하며, 세계 또한 “생물학적 행위자들 및 공학적 인공물들과 함께 궁극적으로 정보로 이루어진 총체적 환경, 즉 인포스피어inforsphere”로 전환되었음이 선언되기도 한다(Floridi, L., 2010/2022, p. 24). 현재의 기술적 대전환이 특유의 철학적 사건까지 수반하는 셈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 이들의 관계와 상호작용에 관해 근본적으로 새로운 관점이 출현함은 분명히 형이상학적 성찰의 개입을 의미하는 까닭이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재정의가 이처럼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음은 그 자체로 중대한 학문적⋅교육적 주제이자 소재다. 인간이 재정의되는 시기는 역사적으로나 지성사적으로나 언제나 격변기였다. 근대 휴머니즘의 정립은 세계사의 탈중세적 대전환과 분리되어 이해될 수 없으며, ‘존재의 거대한 고리’를 부정함으로써 ‘인간’은 물론 여타의 다른 존재들, 그리고 그에 대한 관계들까지 동시에 재정의하는 사건이었다(Taylor, C., 1991/2013, p. 11). 즉 인간을 포함하여 천사에서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유기체론적⋅전일론적 믿음을 거부함으로써, 인간 자신을 중심에 놓고 그밖의 다른 존재들 또한 동시에 재규정했던 것이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인간 및 여타의 존재들에 재정의 또한 다르지 않다. 인간 재정의 담론의 범람은 기술적 진보, 연관된 정치⋅경제적 변화 등 인간이 포함된 거대한 관계망의 동요를 직접적으로 함축한다.

1977년 이합 핫산(Hassan, I.)에 의해 탄생한 조어, ‘포스트 휴머니즘’은 인간 재정의 담론 가운데 가장 포괄적인 함축을 갖는 개념으로 반서구중심주의, 반인종주의, 진화론,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반인간중심주의 등의 문제의식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Ferrando, F., 2016/2021, pp. 59-65). 이 개념의 의미를 천착하면, 우리 시대의 통념화된 욕망, 가치, 지향 등을 재발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를 구축하는 현실적 맥락 및 역사적 운동까지 가늠할 수 있다. 예컨대, 반인간중심주의 담론의 갈래는 기술과 자본 지배시대의 환경위기 등을 독해하도록 이끄는 중요한 경로가 된다. ‘트랜스 휴머니즘’은 1950년대 중반 줄리언 헉슬리(Huxley, J. S.)에 의해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의미에 가장 가까운 뜻으로 개념화된다(이종관, 2017, pp 28-29). 이 개념은 포스트 휴머니즘과 중첩되는 지점이 없지 않지만, 과학기술에 의한 인간의 변이를 긍정한다는 점에서 대체로 구분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역시 과학과 기술의 지배력이 압도적인 현대 사회를 성찰하도록 이끌 뿐 아니라, 그같은 지배력에 대해 놀라울만큼 수용적인 우리 현대인의 태도를 다시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인간에 대한 재정의 담론은 인간은 물론 기계, 자연 등 인간이 관계 맺는 모든 존재를 재조망하는 것이기에 그 자체로 중요한 학술적 고구의 주제이지만, 동시에 교육적 함의 또한 자못 크다. 개념 및 담론의 함축과 형성 배경 등을 좇는 데서 우리가 몸담은 시대,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좀 더 선명한 부감이 가능해지는 까닭이다. 덧붙여, 점차 강화되는 기능적 교육 프로그램은 물론 이를 배치하도록 이끄는 현실적 맥락, 그밖에 다양한 기원들을 통합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하기에 그 교육적 의미는 더욱 커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논구들은 기존의 인간관이나 세계관이 지닌 한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거나 인간-세계-기계의 새로운 전망을 격변의 규모와 속도에 걸맞게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환언하자면 그 속에 함축된 통찰력은 전환의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바탕을 제공한다. 아울러 인간을 비롯하여 인간이 마주하는 대상, 인간이 자리잡고 있는 세계를 재규정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철학적 사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새로운 견해들은 대체로 현재의 변화를 일종의 객관적⋅비가역적⋅확산적 흐름으로 간주하는 공통점을 지닌다. 말하자면 수용적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혹은 이 철학적 사건에서 상대적으로 윤리적⋅비판적 성찰의 위상은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예컨대, 디지털 사회를 향한 발걸음이나 그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첨단 기술의 위상을 강화하는 방향과 대체로 결을 같이 한다면, 비판적 질문 및 성찰은 이미 위축된 상태라 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시대의 선언과 수용에 불평등, 환경 등 현재의 위기를 의식한 수사가 없지 않지만, 변화의 공음(跫音)이 워낙 큰 탓에 그 뒤에 가려져 잘 들리지 않는다.

나아가 간혹 제기되는 비판적⋅윤리적 성찰이 보정, 보완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떨치기 어렵다. 예컨대, 인공지능에 사회규범의 알고리즘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또는 첨단 매체를 마주하는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인가, 발생 가능한 문제들에 대한 규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은 디지털 사회로 진입할 때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비판적⋅윤리적 성찰은 이같은 물음 속에서 단적으로 도구화된다. 첫 번째 물음의 경우, 특정 기술의 상용화란 대전제 아래 발생 가능한 위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명령어 프로그래밍’을 묻는 것이다. 여기서 윤리적 문제는 사회적 규범을 규칙화하는 수준으로, 따라서 프로그래밍을 위한 하위 절차로 위축된다. 만일 ‘자율성’이나 이에 근거하는 ‘책임’의 문제 등이 개입되면 ‘윤리적’이란 수사조차 어울리지 않는 게 된다. 두 번째 물음 또한 미디어의 첨단화 및 일상화 기조는 전제하며, 이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하도록 하는 일종의 ‘매너’ 정립을 요청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기술지배의 경향 자체에 근원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게 결코 아니며, 오히려 수용적 관행의 창출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러한 경향의 일방적 확산에 간접적인 호의를 표하는 것이다. 마지막 물음 역시 문제 발생을 확실하게 예견하면서도 법제 등 기존의 규제 장치의 연장선 위에서 문제를 처리하는 사회적 메커니즘의 기술적 고안을 고민하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6) 따라서 이와 같은 비판적 접근이란 윤리적이고 비판적인 성찰이 아니다. 그저 새로운 관행 또는 형식적 규칙의 산출에 집중하는 도구적 지평에 머무를 뿐, 지금 전개되고 있는 철학적 사건이 윤리적 비판의 심화에 기여하는지는 의문이다.

‘첨단기술시대’의 선언과 더불어 윤리 또는 가치의 문제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걸음을 되도록 곧게 하려는 일 정도로 축소된 채 이해되곤 하는데 이는 충분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 선언과 실질적인 전환이 ‘첨단기술사회’ 또는 ‘디지털사회’를 지향한다고 할 때, 비판적⋅윤리적 성찰은 이 행선지의 정당성을 되물을 수 있고 또 마땅히 그러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 변화의 과정 자체와 그 끝이 “‘도덕적 문명’과 이상이 움츠러들게 방치하고, 원래 자신들을 위해 봉사하도록 창조한 기계에 스스로를 종속”시키는 것은 아닌지 자문함은 너무 거창해 보이지만 외면하기 어려운 일이다(Adas, M., 1989/ 2011, p 499). 인간 “그 자신마저도 그저 한낱 부품으로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추락의 낭떠러지 마지막 끝”은 아무래도 우리가 원하는 귀결은 아닌 듯하다(Heidegger, M., 1954/2008, p 36).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이 흔들림 없이 지속되고, 디지털 시대로 나아갈 때 “재앙은 없을 듯하며” 간혹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주요한 장애도 아닌 듯”하다는 믿음 역시 여전함은 아무도 비판하지 않는다는 사실, 설사 비판이 제기되더라도 극히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고 할 수 있다(Rist, G.. 2007/2013, p 386).

이러한 비판적 접근은 로얼드 호프만(Hoffman, R.)이 “반(反) 플라톤주의”라 칭했던 것, 즉 “과학자(또는 기술자)가 세계를 지배하면 안 되는 이유”와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물론 호프만 스스로 인정하듯 “과장”된 수사이긴 하지만, 기술지배력 확장의 일방성을 경험하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간명하면서도 의미 깊은 메시지다. 호프만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단순한 과학적 분석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과학자들의 세계는 수학적 분석으로 모든 복잡성이 해소되는 것이기에, “세상은 물론 생명 자체도 윤리적, 도덕적 논쟁거리이고, 정의와 동정심이 요구”된다는 사실이 간과된다. 따라서 고용의 평등이나, 마약 중독, 이 시대의 사랑에 관해 말하지 못한다. 시끌벅적한 토론이 끝 간 데 없이 이어져도 ‘참값’을 찾지 못하며, 그럼에도 불완전한 합의가 세상을 떠받치는 규준을 만드는 일은 아무래도 과학이나 기술의 영역 밖이다. 과학자 출신의 정치인이 존재함은 이에 대한 반박 사례가 되지 못한다. 이들의 정치적 활동은 과학적 수행과 무관하거나 확연히 다른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유의할 점은 호프만의 이야기가 ‘과학자’라는 인격적 존재를 비정치적 영역에 묶어두어야 함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의인화되었을 뿐 과학과 기술의 사회적 영향력이 일방적으로 과도해질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우려함일 따름이다(이상 Hoffman, R., 1996/2018, pp. 300-303).

과학적 또는 기술적 이해만으로 우리의 세상을 온전하게 파악할 수 없고, 따라서 그 이해가 근원적으로 불완전한 것이라면, 그에 기반한 통치도 불안한 것일 수밖에 없다. 과학자의 성찰과 앎 또한 ‘철(哲)’, 즉 지혜(sophia)에 속하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호프만은 이런 이유로 이 ‘철인’들의 통치를 못미더워 했던 게다. 그의 통찰은 적어도 새로운 시대 선언의 어수선함에 관해 소박하지만 직설적인 메시지로 곱씹을 만한 여지를 갖는다.

2.2. 인간과 ‘로봇’7)

앞선 시대의 과학적⋅기술적 바탕 없이 새로운 기술의 탄생이 불가능하듯이, 다양하게,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폭발적으로 제시되는 새로운 인간-세계-기계의 정의도 마찬가지다. 양자는 모두 현 세기 특유의 창의적 발명 및 발상인 듯하지만, 실은 오랜 전사(前史)를 지닌다. 이 전사를 깊이 반추함은 교육적 영역에서 특히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오늘날과 같은 기술지배시대가 어떻게 도래했는지 가늠할 수 있도록, 즉 전혀 출구가 없어 보이는 시대적 상황에 관해 적어도 그 입구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전사는 복잡하다. 또는 다면적이고 다층적이다. 학문의 발전, 새로운 기술의 출현, 상상과 욕망의 확장,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변화 등이 교차하는 까닭이다. 따라서, 이같은 담론의 확산, 그리고 4차산업시대의 선언 등에 표면상 기술이 가장 중대한 요인인 듯 보인다고 해서 공학적 접근만으로 그와 연관된 모든 전경(全景)을 포착할 수는 없다. 학문분과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융합적이고 통섭적인 접근이 불가피한 것이다.8)

따라서 과학, 철학, 문예, 문화 등의 영역과 그 역사까지 첨단기술지배시대를 통찰하는 훌륭한 바탕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전술한 인간-기계의 재정의 담론은 기술의 진보와 약진에 의해 촉발된 것이지만, 동시에 인류 사회에 대한 성찰과 문제의식을 담고 있으며 특히 주요 개념들의 탄생과 관련하여 문학적 상상 및 철학적 사유에 의존하는 바 크다. ‘트랜스 휴머니즘’의 경우, 단테(Alighieri, D.), 엘리엇(Eliot, T. S.)에 기원을 두며(Ferrando, F., 2016/2021, pp. 70-71), 아이작 아시모프(Asimov, I.)의 작품을 비롯한 SF 문학의 상상력에 의해 그 내포를 확장할 수 있었다(신상규, 2014, p. 112). ‘포스트 휴머니즘’ 또한 근대 휴머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 트랜스 휴머니즘 등과 깊은 상관관계를 지니며, 하이데거에서 보스트롬(Bostrom, N.)에 이르기까지 여러 철학자들의 성찰과 얽혀 있다.9) 이렇듯 철학과 문학, 과학과 기술, 그리고 그 역사를 횡단하는 복합적 시선 하에서, 인간, 그리고 4차산업시대의 총아인 ‘로봇’은 자신들에 관해 흥미진진한 서사를 들려준다. 첨단 기술과 그 지배가 오래전의 우연한 접촉, 지속되는 욕망과 상상 등에 간과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연루되어 있음이 드러나는 까닭이다.

주지하다시피, 영혼이나 영성처럼 인간의 주변에 독점적으로 배치되었던 속성들이 과감하게 제거되기 시작한 사건은 이미 18세기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인간-기계’의 선언10),은 ‘이성’ 중심의 인간 해명과 동시대에 이뤄졌고, 특정하게 프로그래밍된 역사 이해로 확장되었다.11) 나아가 인간 사회의 다양한 기제들, 심지어 ‘국가’조차 “기계”로 간주되기도 하였다(Stirner, M., 1845/2023, p. 181). 하지만 새로운 철학적 관점의 출현 못지않게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맹아는 이미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측시(測時)의 감각을 외화할 뿐 아니라 그 부정확성이나 주관성을 단번에 극복할 장치, 즉 시계는 14세기에 유럽에 출현한 뒤 마침내 인류 사회의 풍경을 뒤바꿔 놓는다(Cipola, C. M., 1967/2013, pp. 53-113). 인간의 감각 또는 능력을 기계장치로 외화한 뒤 이를 통해 인간과 인간의 사회가 재규정되는 역전이 시계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최초의 시계가 성당에 배치되었음을, 그리고 성당의 공간적⋅권력적 중심성을 나란히 놓고 보면 과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금속을 가공한 정밀한 기계의 발전은 유럽에서 자연과학의 발전과 상호작용하며,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창조를 꿈꾸도록 이끈다. 이처럼 발칙한 욕망, 그리고 장난감과 사치품의 교차물이 이른바 ‘오토마타(automata)’다. 시계와 같은 어원을 갖는 이 자동기계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그 동작을 재현하는 장치였고 기계장치의 복잡성과 정밀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전설적인 오토마타 제작자였던 보캉송(Vaucanson, J.)은 심지어 생명체의 온전한 창조를 시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이병태, 2021, pp. 167-184). 인간과 생명의 창조를 향한 욕동은 과학과 상상의 지평을 가로지르며 당시에 강렬하게 증폭되고 있었다. 갈바니(Galvani, L.)의 ‘동물전기’12,), 즉 정전기의 발견은 호문쿨루스(Homunculus)나 골렘(Golem)의 전설을 이어받으며 생명 창조의 꿈과 상상을 자극했다. 오토마타, 과학적 발견, 오랜 전설 등은 뒤얽혀 괴테(Goethe, . W.)의 파우스트나 셸리(Shelly, M. W.)의 프랑켄슈타인, 호프만(Hoffman, E. T. A.)의 모래사나이 등을 스치며 더 넓고 깊은 서사의 역사를 구축하고 다시 욕망과 상상의 확장을 자극한다.13)

금속가공기술자들은 전문적인 분야가 정립되기 전에 시계, 총포 등을 함께 생산한 것으로 전해진다(Cipola, C. M., 1967/2013, p. 83). 인간의 피조물에 언제나 욕망이 담지됨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금속가공기술과 자동기계의 발전이 심지어 살상의 욕구까지 외화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14), 아울러 연산 등 인간의 추론 능력 가운데 일부 또한 시계의 경우와 유사한 외화의 과정을 거친다. 금속가공기술을 바탕으로 17세기 파스칼이 최초의 계산기를 제작할 수 있었고, 뒤이어 라이프니츠(Leibniz, G. W.)도 계산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비약은 배비지(Babbage, C.)에 의해 이뤄진다. 그가 설계한 계산기는 단순 연산을 넘어 알고리즘이 전제될 뿐 아니라 정보의 저장까지 가능한 장치였기에 현대 컴퓨터의 기원을 연 것으로 평가되곤 한다.15) 이는 인간 지능의 외화 역시 하루아침에 발생한 사건이 아님을 말해준다.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로봇’은 이 모든 전사를 집약한 존재다. 하지만 ‘로봇’은 어떤 의미에서 특정한 기능을 하는 가시적 대상으로, 특이한 개체들로 존재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이병태, 2021, p. 174). 19세기에 이미 “국가-기계”를 개념화한 철학자가 있었음은 인간의 사회, 제도, 조직, 관계망 등을 특정한 목적을 위해 작동하는 지능형 장치로 바라보는 시선이 생각보다 오래된 것임을 말해준다. 예컨대 유어(Ure, A.)는 산업혁명기의 ‘공장’을 하나의 기계 장치로 간주하는 사유를 전개한다.16,) 마르크스(Marx, K.)는 자본론에서 유어의 이름을 자주 거론하는데(Marx, K., 1976/2015, pp. 503~684),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유어의 공장은 단순히 건물과 기계를 통칭하는 게 아니며, 노동자의 자리, 노동과정 등의 재조직화까지 아우르는 것이었다. 즉 인간의 대표적인 활동인 노동은 이 새로운 기계에 의해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된다. 나아가 삶을 지탱하는 활동의 재조직은 일정하게 인간의 의식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간단없이 움직이는 기계는 가령 ‘근면’의 가치를 전면화했을 뿐 아니라 이후 더 깊은 내면화를 이끌며 여전히 작동하는 까닭이다.17)

이처럼 정교한 측시 기계의 우연한 출현은 사물, 그리고 생물⋅인간⋅사회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상상과 성찰을 고무했을 뿐 아니라, 정치적 야욕이나 전쟁, 과학과 기술의 발전, 경제적 발전과 사적 소유욕의 폭증, 전설과 상상 등과 상호작용하며 인간의 정체성, 나아가 사회적 특징까지 변화시켰다. 디지털 시대, 그리고 그 기술적 배치 또한 미증유의 수렴적 특징을 드러내며 기호와 취향, 문화와 예술, 교육과 노동 등 전 사회적 관계망을 새롭게 구축하고 있다. 방적기를 넘어 공장 그 자체, 그리고 국가까지 하나의 기계로 간주했던 사유는 이미 ‘인간’을 더 큰 기계의 일부로 간주하며 배면화하는 특징을 드러낸다. 이는 산업화와 자본주의 확장의 한 장면을 성찰한 것이지만, 현재 우리의 현실은 이 장면이 전면화된 상태에 도달한 듯하다.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지능형 장치’, 로봇은 이런 의미에서 인간이 마주하는 단순한 대상들로 분산되어 있는 게 아니며, 인간 그 자체를 포함하는 더 막대한 존재일 수 있다. 전술한 철학적 성찰, 문학적 상상, 과학과 기술의 발견들이 흐릿한 ‘미래’를 그리며 또 지향하는 것이었다면, 우리에게 그 미래는 도래한지 오래된 현재다. 전술한 기술지배시대의 전사, 정점의 기술들을 집약하는 ‘로봇’이라는 존재는 이처럼 우리 자신을 재성찰할 수 있는 중대한 창이다. 중대하기에, 그리고 어쩌면 현재 강화되고 있는 편향을 보정하기 위해, 이 창은 교육의 장에서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더욱 활짝 개방될 필요가 있다.

3. 나가며: 전환시대 문맥의 교육 자원화

글머리에 언급했듯이 최근 공개된 MIT의 정책개요는 AI의 지배력이 아무런 제재 없이 확장되는 현재의 추세를 근원적으로, 그리고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정책적 대응 내지 제안 가운데 실효성 측면에서 단연 눈에 띄는 내용을 갖추고 있었다. 초안18),임에도 불구하고 발생 가능한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려는 진지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의 규제 및 법률 체계가 AI에 관해 적용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적용될지, 그리고 감당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Huttenlocher, D., Ozdaglar, A., Goldston, D., 2023, p. 6)”하다면서도, 규제기관의 창출, 문제발생시 책임소재에 대한 대응 등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점은 분명했다. 특히 전문가들의 통찰인 만큼, AI 시스템의 개발, 배포, 사용 등의 국면을 변별하여 접근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존의 관련 사례를 적절하게 참조하여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대책을 이끌어내고자 했다.19)

전반적으로 신뢰할 만한 접근임에도 불구하고, AI 규제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토로함은 사실 솔직한 고백이라 할 수 있다. AI 시스템이 빠른 속도로 범용화됨에 따라 새로운 변화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이를 토대로 향후의 전망을 선명하게 제시하기란 어렵다. 새로운 기술의 확산이 다양한 인간적⋅사회적 기제들과 조우하여 상호작용하면서 일으킬 변화와 파장은 가늠하기 곤란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교차하는 경우의 수가 일단 막대하고, 예상했던 파급의 정도도 예단할 수 없다. 예컨대, AI의 교육적 활용이 강화되리라는 사실은 예측할 수 있지만, 그 영향력의 심도는 미리 알 도리가 없다. 기존의 교육적 체계를 보완하는 정도일 수 있고 대부분 그러하길 희망하지만, 심리적 의존도 등 예기치 않은 측면에서 대단히 큰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도 부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MIT의 고백은 외려 상당히 영리한 것에 해당한다. 발생할 문제의 성격 및 정도를 가늠하기 어렵다면, 유일한 대안은 어떤 문제든 이를 관장⋅처리할 수 있는 관련 규정 및 전담 기관을 마련하는 형식적⋅절차적 대응뿐이다. 실제로 이 정책개요는 그같은 규정 및 기관의 창출에 집중하고 있다.

나아가 그 한계나 성과와 무관하게, 이 보고서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일정한 전언을 건네준다. 무엇보다 국내의 경우 이처럼 집중적이며 체계적인 대응 시도가 취약한 수준임을 환기하도록 이끈다. 물론 4차산업시대가 초래할 다양한 부작용에 대한 보도 또는 논의 등 문제의식 자체가 전무한 것은 아니지만, 파편적으로 제기될 뿐 이를 집약하여 지속적이며 체계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시도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근원적이며 비판적인 성찰 및 대응은 차치하더라도 실질적인 대비책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여전히 미약함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이처럼 비판과 규제의 토대 마련이 적극적으로 시도되지 않음을 고려하면, 4차 산업시대의 전면화를 외치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더욱 크고 일방적인 것이 된다.

경제적 이익 등에 기반한 외침이 전술했듯이 교육의 장에 불러일으키고 있는 파랑 또한 이런 점에서 달리 볼 필요가 있다. 교육의 장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현실, 이에 따르는 교육프로그램의 사회적 요구, 전환적 이론의 유행 등에 그대로 조응하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 완전히 새로운 ‘인간관’ 및 ‘세계관’과 인간 중심의 서사가 나란히 교육의 자원으로 통합됨은 다양하고도 상반된 관점들이 무리 없이 양립했던 전례를 고려할 때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이같은 관점들과 함께 새로운 기술적 자원들의 교육적 유입이 거세게 이뤄질 때 나타난다. 현재의 변화를 긍정하며 삶의 정향, 가치관 등에서 특정한 편향을 낳을 수 있는 까닭이다. 첨단 기술의 교육적 유입은 전공 영역을 불문할 뿐 아니라, 교양교육의 장 역시 전술했듯 상황이 다르지 않다. 현실의 변화에 조응하는 교육적 전환의 의미는 평가절하하기 힘든 것이지만, 이같은 자원들의 전격적 배치가 의도와 달리 깊이 있는 비판과 성찰을 차단하는 효과로 이어지지 않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교육의 장에서 지금 나타나고 있는 급격한 변화는 그 같은 우려를 기우로 그치게 하지 않을 듯하다.

따라서 현재의 거센 변화에 편승하기보다, 혹은 어쩔 수 없이 이 추세를 좇더라도 위와 같은 시대적 흐름의 맹목성을 똑바로 마주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인간관이나 세계관을 고수하면서 급격한 변화를 비판하도록 이끌어야 함을 강변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현실적인 문제를 십분 고려하더라도, 급변하는 세상을 살아갈 세대에게 자신들이 자리한 역사적 문맥을 자각하도록 함은 간과하기 어려운 교육적 무게를 지닌다는 뜻일 따름이다. 특히 교양교육의 장에 이와 같은 정향에 기반한 교육적 자원의 개발 및 배치는 긴요하다고 여겨진다. 기술적 토대의 수용이 전공 영역에서 강화되며 특화형 융합 전공도 속속 신설되는 상황에서, 비판적 성찰의 여지는 교양교육의 영역 위에 정위될 수밖에 없고 또 교양교육의 영역이라야 좀 더 다채롭게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이러한 성찰의 지평을 개방하는 일은 인문학적 또는 융합적 사유와 반추의 힘이 아니라면 달리 동력을 얻을 곳이 없으리라 확신한다. 이를 통해 구축될 수 있는 넓고 깊은 통찰력은 누구보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다. 첨단기술의 영향력이 막대하게 증폭된 시대는 바로 그들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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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1)

결론부에 “AI에 대한 추가적인 투명성과 감독은 유익한 AI의 발전과 확산을 촉진하는 데 필요하며, 모든 미국인을 위한 AI의 잠재적 유익성을 완전히, 그리고 순조롭게 실현하는 데 필요하다(Huttenlocher, D., Ozdaglar, A., Goldston, D., 2023, p. 7)”는 사실이 재차 명시된다.

2)

교육부고시 제2023-24호(2023.8.31.) ‘첨단(신기술)분야 등 모집단위별 입학정원 기준 고시’는 대분류 1) 항공⋅우주, 미래 모빌리티(Aerospace/Mobility), 2) 바이오헬스(Bio Health), 3) 첨단부품⋅소재(Component), 4) 디지털(Digital), 5) 환경⋅에너지(Eco/Energy)를 명시하고, 대분류 카테고리 별로 1) 항공⋅드론, 미래자동차, 지능형로봇, 우주, 2) 바이오헬스 3) 차세대반도체, 차세대 디스플레이, 첨단신소재, 이차전지, 3D프린팅, 나노, 4) 인공지능, 빅데이터, 차세대통신, 사물인터넷, AR,VR, 블록체인, 사이버보안, 양자, 클라우드, 핀테크, 5) 에너지신산업, 에코업, 스마트시티, 스마트건설, 스마트공장, 스마트팜, 스마트⋅친환경선박 등 28개 분야를 ‘첨단기술’ 분야로 명기하고 있다. 법제처 법령정보센터, https://law.go.kr/LSW/admRulLsInfoP.do?admRulSeq=2100000228190)

3)

이에 따라 여러 논제들이 포괄적으로 다뤄지며 치밀한 논증적 구성을 지향하지 않았음을 미리 밝혀 둔다.

4)

교과목명은 “메카필로소피아 ; 인간화된 기계와 기계화된 인간 ‘사이’”이며, 이 글에 소개된 내용은 주제화하여 제시하기 적절한 것으로 국한된다.

5)

소재 및 주제의 확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방법론이다. 글쓴이 또한 텍스트 등의 독해를 넘어 실험이나 실습이 수반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으나,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수준에 있을 뿐이다. 따라서 현재로선 체계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

6)

글머리에 언급한 MIT의 정책보고서가 전형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이 보고서는 기존의 규제시스템을 토대로 AI로 인한 문제들에 대응하는 방안, 즉 기존 시스템의 확장을 제안하고 있다(Huttenlocher, D., Ozdaglar, A., Goldston, D., 2023, pp 6-9).

7)

‘로봇’은 이 글에서 일반적인 함축과 다소 다르게 사용된다. 즉, 표준화된 공학적 정의와 상관없이, 4차산업시대의 기술적 총아들, 예컨대 AI, 관련 하드웨어, 네트워크 등을 통칭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각각의 부문기술들은 분별하기보다 통일적으로 작동하는 하나의 현상으로 간주할 때, 분산된 기술들이 일으키는 변화의 수렴적 효과를 거시적이며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까닭이다. 이는 한 시대의 경향을 독해하려는 목적을 위한 것일 뿐이어서, 개념적 모호성에 따른 문제가 있을 수 있다.

8)

이와 관련하여, ‘융복합’적 지향의 제도적 강박과 무관하게 주제의 성격 자체에서 통섭의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는 점은 일견하기에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의 학문적⋅교육적 수행은 상당히 고단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견고한 전공 및 분과 학문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일은 어쨌든 막대한 부하를 감내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에서 다양한 전공들이 복합적으로 교차하는 교양교육이야말로 이 테마를 교육적 자원으로 마주하기에 가장 적절한 바탕이라 할 수 있다.

9)

이같은 성찰과 상상은 다시 ‘로봇’을 비롯하여 기술적 진보의 향방에 투영된다.

10)

라 메트리(La Mettrie, J. O.)의 인간기계론은 1747년 간행되었다. 그는 인간이 “기계가 된다는 것”, 즉 ‘생물학적 기계로 정의됨’이 종래의 인간 규정과 배치되지 않음을 역설했다(La Mettrie, J. O., 1748;1996/2020, p. 116).

11)

칸트(Kant, I.)가 인간의 사유 구조와 작동을 낱낱이 드러내고자 했고, 헤겔(Hegel, F.)이 역사의 전개를 특정 텔로스를 향한 프로세스로 설명하고자 했던 점을 염두에 둔 서술이다.

12)

갈바니의 발견은 프랑스 대혁명에 비유될 만큼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고 한다(Friedell, E., 1925/2015, p. 25). 참고로 죽은 개구리의 다리가 정전기에 의해 움직이는 것을 관찰한 게 그의 발견과 상상의 출발점이었다.

13)

연관된 문학적 상상은 릴라당(L’Isle-Adam, A. V.)의 미래의 이브, 차펙(Capek, K.)의 R.U.R, 등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14)

신분제의 몰락이나 근대국가의 탄생 또한 총포 등 무기의 발전과 일정하게 연동한다.

15)

참고로, 현대 컴퓨터의 발전 또한 철학적 성찰과 무관하지 않다. 이진법과 미적분, 계산기의 등장과 발전은 ‘연산’을 뛰어 넘어 분할과 집적을 통해 인간 사유를 외화⋅기계화하는 상상으로 이어진다. 20세기 초 논리학의 발전은 프로그래밍 언어의 기반이 되고, 튜링 머신의 구상은 현대 컴퓨터의 직접적인 기원을 이룬다. ‘생각하는 기계’에 대한 튜링의 상상은 당대의 수학, 기술 등의 발전을 토대로 ‘신학적’ 비판 등과 맞서야 했다(Turing, A., 2004/2019, pp. 82-84). 이런 점에서 그의 구상은 이 글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복합성, 즉 기술과 상상, 사회적 기제들의 교차운동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16)

하지만 유어가 직접적으로 공장을 기계장치로 동일시했던 것은 아니다. 유어는 특히 생산성과 효율성의 측면에서 매뉴팩처 시스템을 긍정적으로 본 듯하다.

17)

장 드 브리스(De Vris, J.)는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에 수반되는 ‘근면혁명(Industrious Revolution)’을 개념화한다(이영석, 2012, p. 61).

18)

표지에 ‘initial draft for circulation’임이 명기되어 있다. 아울러 11월 28일자 ‘버전’임을 밝히고 있어 문건이 추후 지속적으로 수정⋅보완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Huttenlocher, D., Ozdaglar, A., Goldston, D., 2023, p. 1).

19)

예컨대 AI 시스템이 변용⋅확장되는 경우, 오픈소스일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 등을 모두 고려하려 하고 있고,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대응 사례 및 구글북 케이스 등 기존 사례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Huttenlocher, D., Ozdaglar, A., Goldston, D., 2023, pp.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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