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의 은유적 형식을 활용한 창의적 글쓰기 수업 모듈 -비동일성에 주목하여 살아있는 은유를 활성화하기

Creative Writing Class Module using the Metaphorical form of Modern Poetry -Focusing on Non-identity and Activating a Living Metaphor

Article information

Korean J General Edu. 2023;17(2):97-114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23 April 30
doi : https://doi.org/10.46392/kjge.2023.17.2.97
고명재
계명대학교 강사, myung0613@naver.com
Part-Time Lecturer, Keimyung University
이 논문은 2021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21S1A5B5A17050383)
Received 2023 March 20; Revised 2023 April 02; Accepted 2023 April 17.

Abstract

본 연구는 창의적인 글쓰기 능력을 신장시키기 위한 수업 연구로, ’살아있는 은유’의 작동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본 연구는 특정한 수업 모듈을 제시하고 이를 수업 현장에서 적용시켜 그 성과와 한계를 검토하고자 했다.

통상적으로 ’은유’와 ’글쓰기 교육’을 연계시킨 기존 연구의 문제점은, 은유의 보편적인 개념을 피상적으로 수용하여, 수업에 적용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본 연구는 이렇게 아무런 검토 없이 ’유사성’을 중심으로 답습되어온 ’은유의 개념’이 아니라, 차이성과 비동일성을 부각시키는 ’살아있는 은유’의 개념에 주목하고자 했다. 이러한 은유야 말로 새로움과 창의성을 촉발시킬 수 있는 사유의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본 연구는 시론과 시 창작론에서 주목해온 은유 및 병치은유의 개념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또한 근래에 창작되고 있는 한국의 현대시를 수업의 자료와 모듈로써 활용하였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학생들이 해당 수업 모듈을 활용함으로써, 창의적인 표현과 논리적인 해설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해당 수업 모듈은 단순히 창의적인 표현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서 자아의 개념과 정체성의 탐색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확장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Trans Abstract

This study, as a class study to enhance creative writing ability among students, tried to use the operation method of ’living metaphor’. In this process, this study presented a class module and applied it in the classroom to review its achievements and limitations.

The problem with existing studies that usually connect ’metaphor’ with ’writing education’ is that they accept too lightly the universal concept of metaphor and apply it to classes. This study tried to pay attention to the concept of ’living metaphor’ that highlights ’difference and non-identity’, rather than the ’concept of metaphor’ that has been connected to ’similarity’ without any review. This is because the metaphor entails a structure of thinking that can trigger novelty and creativity.

In this process, this study focused on the concepts of metaphor and diaphor, which were noted in the theory of poetry and the theory of poetry creation. In addition, Korean modern poetry, which is being created as of late, was used as a reference material and as a module for the class. Through this process, this study confirmed that creative expression and logical commentary are possible by using the corresponding class module. In addition, this study confirmed that such a class module can lead to self-concept and identity exploration beyond simply creating creative expressions.

1. 서론

본 연구는 예술분과에서 주목해온 ’은유’와 관련된 성과들을 일반 대학글쓰기의 교육 현장에서 활용해보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본 연구는 창의적인 글쓰기를 유도할 수 있는 ’은유의 작동 방식’에 주목고자 했다.1), 즉 단순히 수사학이나 언어학적 대상으로서 연구 되어온 은유가 아니라, 예술 분과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진 창작 방법으로서의 은유에 주목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글쓰기 수업 모듈’로 구성하여, 다른 집단에도 적용시켜보고자 했다. 실제로 이러한 융합적 수업 모듈은 창의성 교육 개발에 있어서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2) 본 연구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은유적 사고의 작동 방식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수업 모듈을 구상, 수행, 점검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이와 관련하여 본 연구는 우선 현재 국내 대학교양글쓰기 강좌의 주된 커리큘럼에 대한 단점과 한계를 지적하고자 한다. 현재 국내 주요 대학의 글쓰기 과목은 대부분 ’글쓰기의 과정적 절차’ 혹은 ’논리적 ⋅ 합리적 글쓰기’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김현정, 2018) 이러한 글쓰기 커리큘럼은 의사소통 능력의 향상과 정합성 및 논리성의 신장을 목적으로 한다.

문제는 이러한 글쓰기 교육 과정이 ’합리적인 글쓰기’ 영역에 경도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글쓰기 교육 과정이 ’창의성 신장’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강조만 하고 있을 뿐, 실질적인 수업 모듈의 개발에 있어서는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3) 특히 현재 한국의 교육 과정을 염두에 두면 이러한 커리큘럼은 매우 큰 문제점을 낳는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수학능력시험을 중심으로 한 교육 과정을 통과한다. 그리고 대학에서 접하는 글쓰기 과정 역시 ’정답 찾기’에 가까운 ’합리적인 글’을 쓰는 과정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교육 과정은 실질적으로 ’사유의 전환’이나 ’새로움을 창출’하는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든다. 경직된 구조로 이루어진 글쓰기 과정과 독창성을 부여하지 않는 수업 틀은 개개인이 문화생산자로 발돋움하고 있는 현 시대와는 매우 크게 유리되어 있다. 이처럼 현재 대학 글쓰기의 현장에는, 학생들에게 ’창의적인 글쓰기’를 생산할 수 있는 구조적인 수업의 틀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또한 몇몇 연구가 특정한 수업 방식을 제안하지만 그 성과물의 창의성 수준을 살펴보면, 그 효과가 상당히 미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 연구가 여러 예술 형식 중에서도 은유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은유는 많은 연구에서 이미 검증되었듯 직관적이고 보편적이라는 장점이 있다.(Kövecses, 2002) 은유는 학생들에게 아주 많은 배경적 설명이나 이론적 설명 없이도 어느 현장에서나 손쉽게 소통이 가능하고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우 효율적이다. 이는 ’은유 변이’와 관련된 논의만 살펴보아도 확인이 가능하다. 우리가 은유를 사용하는 양상은 굉장히 유동적이고 탄력적이다. 다양한 맥락과 상황에 따라 은유는 무한한 변이가 가능하다. 이와 관련하여 은유를 활용한 수업 모듈은 다양한 환경에서 활용될 수 있다. 즉 그 확장성이 매우 뛰어나다.

둘째, ’은유적 사고’는 글쓰기로 표현하기에 매우 적합한 표현 방법이다. 은유 개념의 연원이 ’수사학’과 ’시학’에서 비롯되었듯, 은유는 언어-표현 매체와 친숙하다. 이는 은유를 통해 글쓰기를 수행하는 것이 큰 괴리 없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뜻한다. 특정한 아이디어를 생성하고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과정이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에 이는 글쓰기 수업 모듈로 적합하다.

셋째, 은유는 단순하면서도 매우 효과적인 ’창의성의 생성 장치’다. 은유는 단순히 ’동일성(비슷함)’을 발견하여 그것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에 사유하지 못했던 “새로운 닮음을 창조”하고 “세계에 대한 새로운 측면을 보여주는”(강선아, 2016:46)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특히 ’비동일성’ 즉 ’차이성의 가시화’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본 연구는 여기에 주목하여 수업 모듈을 구상하였다. 즉 은유는 새로운 관계의 양상을 드러내는 상호-연관의 장치이며, 고정적이고 경직된 언어의 운용을 넘어서서 예상 밖의 현실을 창조해내는 사유의 형식이다. 이는 창의성을 신장시킬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덧붙여 본 연구가 글쓰기 수업 과정을 모듈(Module)식4),으로 구상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모듈식 수업 구성은 첫째, 특정한 주제에 따라서 매우 명확한 완결성을 지니고 있기에, 저마다 상이한 글쓰기 수업 과정에서 탄력적으로 적용이 가능하다. 한 학기 내에서 부담 없이 적용이 가능하고 유동적으로 구성을 변경할 수 있기에 활용도가 높다. 둘째, 짧은 기간 내에 단일한 과정이 마무리되기에 수업의 집중도가 굉장히 높고, 풍부한 체험의 제공과 즉각적인 피드백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글쓰기 교육의 현장에서는 학생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빠르게 확인하고 피드백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모듈식 수업은 이에 적합하다. 이처럼 모듈은 “자기완결적이라는 점, 정량화가 가능하다는 점, 표준화되어 있다는 점, 공유 가능하다는 점을 전제”(정재영, 2014:518) 하고 있기에 교육 개발에 있어 매우 효율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 연구는 은유적인 형식의 대표적인 산물인 현대시와 다양한 매체-텍스트를 활용하여 구체적인 수업 모듈을 제시하려 한다.5) 이는 유연한 사고와 새로움을 산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모듈이 될 것이다. 이에 앞서 본 연구는 ’창의적인 은유’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를 우선 살필 것이다. 즉 단순히 ’은유’를 활용하기만 했던 기존 연구들의 관점과는 달리, ’은유에 관한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토대로 이를 수업의 모듈로 활용해 보고자 한다.

2. 본론

2.1. 은유 관련 선행연구 검토 및 문제 제기

현재 은유를 토대로 한 글쓰기 관련 연구는 크게 세 가지 동향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첫째, 인지언어학 혹은 언어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은유 행위를 분석하는 연구.6), 둘째, 은유의 사유 체계를 중심으로 그것의 창의성과 효과를 설명하는 연구.7), 셋째, 은유의 창의성을 기반으로 글쓰기 교육에 적용 ⋅ 확장시키려는 연구.8)

이러한 선행연구의 흐름에서 본 연구가 차별성을 지니는 지점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기존 연구에서 빈번하게 반복되어온 ’언어학적 은유 이론(개념적 은유 이론)’을 벗어나서 새로운 관점에서 은유의 창의성을 탐색할 것이다. 둘째, 기존 연구가 자주 보여주는 ’기대효과’와 ’결과물’ 사이의 괴리를, 효율적인 수업 모듈을 통해 해소할 것이다. 셋째, 예술 분과의 창작법으로 간주되어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했던 시론 및 시창작론의 성과들을 글쓰기 교육에 적극 수용함으로써 학제간의 교류와 융합적 가능성을 제시할 것이다.

현재 국내의 ’은유 및 글쓰기’ 관련 연구가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은, 은유를 활용하여 대상과 대상간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글쓰기 성과물을 만드는 방식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렇게 단순히 은유를 활용만 해서 ’동일성’을 강화하는 글쓰기를 수행하는 것은 ’창의성 신장’에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상당수의 연구가 은유에 관해 매우 관성적인 태도로, 개괄적으로만 접근하고 있기에 아쉬움이 크다. 이들 연구는 대부분 똑같은 이론적 틀을 활용하여 은유의 개념에 접근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국내의 거의 모든 은유 및 창의성 관련 논문이 Lakoff와 Johnson의 연구(1981)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들 연구는 ’개념적 은유 이론’을 그대로 수업에 적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연구 경향은 은유가 지닌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에 큰 걸림돌이 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Lakoff의 연구는’ 인지-언어학적 관점’을 통해 은유에 접근하는데 이들은 ’은유적 사고’가 매우 ’보편적인 인간의 사유-형식’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즉 이들은 근원영역에서 목표영역으로 개념적 전이가 일어난다는 사상(mapping)이론을 주장했다. 인간은 유사성에 의거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표현한다는 것이다.9) 국내의 창의성 및 은유 관련 연구는 대부분 이 이론을 토대로 하여, 해당 내용에 대한 점검 없이 관습적으로 은유적 글쓰기의 수업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Lakoff와 Johnson이 주장하는 개념적 은유 이론은 ’은유의 보편성 및 편재(遍在)성’을 강조하고 있기에 이들이 분석하는 은유 표현의 대부분이 창의성이 없는 ’죽은 은유(死隱喩)’라는 점이다. 인지언어학은 우리의 언어 및 사유의 운용방식이 어떻게 보편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증명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그 사례는 가장 일반적이고 관습적인 것들이 주를 이룬다.10) 그러나 이것은 창의성의 신장에는 매우 부적절하며 오히려 사고와 표현을 관습화시킬 위험성이 있다.

둘째로, 이러한 언어학의 은유 이론을 수업에 적용할 경우, 학생들이 스스로 유사성을 발견하여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실제로는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동일성(유사성)’을 토대로 은유를 만드는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기에 결과물의 창의성 수준은 매우 낮고 그 내용 역시 단순한 경우가 많다. 이는 대다수의 연구가 제시하는 학생들의 성과물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결과물은 내용이 매우 단순하고 창의적의 수준이 현격히 떨어진다.11)

이러한 선행연구의 한계를 바탕으로, 본 연구는 대학 글쓰기 과정에 은유와 관련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반복적으로 답습되어온 인지언어학적 이론을 제외하고도 은유에 관해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할 수 있는 아주 풍부한 성과가 있다. 그것은 바로 ’시론詩論 및 시학詩學’에서 다루어진 (사유-형식으로서의) 은유이다. 사실, 예술 분과에서 오랫동안 탐구되어온 은유에 대한 성찰은 ’미학’ 혹은 ’예술 분과’의 특수한 영역으로 간주되어 교양 글쓰기에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술계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창의적인 성과는, 이렇듯 누대로 축적되어온 ’은유 및 비유’에 관한 성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예술 분과에서는 (언어학에서의 접근법과는 달리) 은유의 유사성과 보편성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들은 은유가 발생시키는 ’비동일성(차이성, 차별점)’을 적극적으로 학습⋅수용한다. 바로 이 ’차이성’이야말로 “의미의 혁신이 일어나며 뜻이 넘쳐 퍼”지는 창의성의 핵심적인 자질이다.(양명수, 1999) 본 연구는 바로 이러한 ’살아있는 은유’(비관습적 은유)를 생산할 수 있는 수업 모듈을 제시하고자 한다.12)

2.2. 은유의 비동일성과 창의성

단순히 은유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창의성의 개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창의성을 촉진시킬 수 있는 은유적 사고의 작동 방식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은유의 어떤 지점에 주목해야 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시창작론에서 흔히 다루어진 ’죽은 은유(死恩諭)’ 및 ’대상 간의 거리’의 개념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죽은 은유’와 ’살아있는 은유’의 차이를 파악해야 은유의 새로운 가능성을 활용할 수 있다.

’쟁반 같이 둥근 달’, ’사과 같은 내 얼굴’, ’꽃처럼 예쁜 아이’,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 이와 같은 예시들은 이미 사회적으로 관습화된 죽은 은유(dead metaphor)다. 이런 은유들은 해당 은유를 접하는 이에게 더 이상 새로움을 제시하지 못하고, 그저 일반적인 관습구의 차원에서 선택되어 활용되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죽은 은유’나 ’일반화된 은유’를 사용하는 이유는, 사물에 빗대어 개념이나 사유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다.13) 그리고 이것이 바로 언어학적 관점에서 은유를 분석해온 시각이다.

통상적으로 언어학적 관점에서 은유는 동일성(유사성)14)에 주목되어 분석되었다. 즉 ’A=B’라는 형식적 구조를 통해 이질적인 두 사물(혹은 관념)을 결합시킬 때, 해당 비유는 유사성에 근거를 두고 형성된다. 이를테면 ’그는 성실한 소다’라는 문장은, 원관념A(그)와 보조관념B(소)를 결합시킴으로써 ’추상적인 의미(성실함)’를 좀 더 자세하고 생생한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이 은유 표현의 토대로 기능하는 것이 바로 ’동일성(유사성)’이다. 즉 ’그’라는 사람이, 성실하게 일을 하는 ’소’와 유사하다는 것이 은유 표현의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러한 은유가 그다지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해당 은유 표현에서 두 대상 사이에는 적절한 긴장이 존재하지 않고, 너무 쉽게 의미의 유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빗대어지는 두 대상 간의 미적 거리(distance)가 지나치게 가깝기 때문에, 해당 은유는 너무 쉽게 그 의미가 파악되고, 참신함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본 연구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이렇게 ’동일성’을 공고하게 만드는 은유는 ’개념을 쉽게 설명⋅전달’하는 것에는 용이하지만, ’창의성을 생성’하는 데에 있어서는 걸림돌이 된다. ’동일성’에 주목하여 은유를 만들면 해당 은유는 너무 쉽고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다. 아래의 <표 1>은 수업 중, 무작위로 학생들을 지목 한 뒤, 특정한 대상(원관념)을 지정해주고 ’유사성’을 의식하면서 ’은유 표현’을 만들어 보라고 했을 때 얻게 된 결과물이다.

학생들이 창작한 관습화된 은유 표현의 예시.

<표 1>에 나타나는 ’은유 표현’은 동일성(유사성)에 기초하여 만들어졌기에 내용이 매우 평이하고 일반화된 개념들을 답습하고 있다. 각각의 문장들은 끝까지 읽지 않아도 내용을 예상할 수 있을 만큼 상투적이고 관습적이다. 두 대상간의 ’유사성’을 중심으로 ’은유표현’을 만들면 이렇게 창의성의 수준은 떨어진다. 즉 앞서 살핀 ’개념 은유 이론(사상 이론)’과 같은 관점을 적용하여 은유 표현을 만들면, 창의적인 표현과 사고는 촉발되지 않는다.

반대로 창의성을 강조하는 예술 분과에서는 언어학과 상이한 관점에서 은유를 이해해왔다. 오래전부터 시론(詩論)에서는 은유의 창의성을 ’차이성 속의 유사성(similarity of difference)’으로 인식해왔다.(김준오, 2011:176) 즉 은유는 유사성뿐만이 아니라 차이성을 가시화함으로써 종전에 보지 못한 새로움을 제시한다. 이는 미학적 관점에서 연구자들이 ’은유 표현’ 자체에 주목한 결과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낯선 것들의 결합을 발견했을 때 (…) 없었던 세계의 윤곽이 생겨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유사성보다 차이성에서 비롯되는 발견”인 것이다(엄경희, 2016: 28-29).

흔한 예로 이육사의 「절정」에서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라는 은유를 들 수 있다. 이 은유 표현은 100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은유’로 기능한다. ’겨울’이라는 추상적 대상과 ’강철로 된 무지개’라는 중층적 대상은 차이와 이질성이 큰 대상이다. 이를 강제적으로 결합시킬 때, 우리는 이 은유 표현이 고정된 의미의 체계를 교란시키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즉 이육사의 은유 표현(겨울=강철로 된 무지개)은 엄정한 시간적 배경인 일제강점기(겨울)를 은유하는 동시에, 그 속에서 굳건한(강철로) 희망(무지개)을 연결시키고자 하는 독립에의 의지가 병치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적 해석에도 불구하고 해당 은유 표현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왜냐하면 표현된 대상들(겨울-강철-무지개)이 ’비동일성’, 즉 ’차이성’을 강하게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겨울, 강철, 무지개’는 이질성이 심한 대상이다. 이를 은유 표현으로 강제적으로 결합시킬 때 우리는 이 대상들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즉 낯선 대상들의 차이성 속에서 새로운 의미의 연관을 발견하고 거기에 다양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15)

이처럼 차이가 두드러지는 은유 표현은 기존의 관습적인 의미의 체계를 흔들고, 새로움을 생산하게 한다. 바로 이것이 ’차이성 속의 유사성’을 형성하는 시학 및 시론에서의 은유 개념이다. 이렇게 ’비동일성(차이성)’을 부각시키는 은유는 매우 높은 창의성 수준을 보여준다. 기존의 관념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개념을 창출하며, 개성을 내포한다.16), 그렇다면 이렇게 차이성을 부각시키는 은유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 그것은 ’유사성’보다는 ’낯설고 이질적인 대상의 결합’에 집중할 때 효과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 그 결합의 양상을 아주 쉬운 예시로 제시해보면 <표 2>와 같다.

결합을 통해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은유의 예시

<표 2>의 a,b,c는 모두 은유의 작동 양상과 같이, 서로 다른 대상(개념)이 결합을 통해 새로운 의미 체계를 산출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즉 ’이질적인 대상 간의 결합’이 새로움을 생성하고 있다. a와 b는 각기 전혀 다른 두 관념을 결합함으로써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물의 탄생’을 보여준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차이성(비동일성)’이 강할수록 새로운 대상(관념)이 더 효과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b의 경우 일반적으로 ’접착제’에 요구되는 ’높은 점착성’을 포기하고, 오히려 이질적인 ’낮은 점착성’이라는 개념을 결합시킬 때, 새로운 용도의 사물(포스트잇)이 탄생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시 속의 은유 표현(c)은 훨씬 더 자유롭고 과감한 도약이 가능하다. c는 ’가을’이라는 감상적인 계절 개념에 ’개 같은’이라는 속어 표현을 결합하여 매우 새로운 시간관을 보여준다. 통상적으로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든가, ’낭만적인 시간’의 관념과 결합되지만, 시인은 여기에 ’개 같은’이라는 강렬한 속어 표현을 결합시킨다. 이러한 강제적 결합(은유 표현)을 통해 우리는 삶의 고통이라는 처절한 감정을 매우 공격적이고도 강렬한 형태로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차이성을 부각시키는 은유의 결합 양상은 새로운 유사성을 유추⋅발견하도록 한다. 즉 “은유는 어떤 대상을 다른 용모로 뒤집어씌움으로써 그 대상에 의해 그 원모습을 지워버리고”(김준오, 2011:189-190) 새로운 현실을 환기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이유로 ’비동일성’을 중심으로 은유를 생성하는 방법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현재 창작되고 ’현대시 텍스트’17),의 다양한 사례를 살피고 이를 수업에서 활용했는데, <표 3>의 시들은 실제로 학생들에게 ’은유적 사고의 창의성’을 이해시키기 위한 예시로 활용하였다. 우선 시의 본문을 읽고 각각의 시의 ’제목’을 함께 유추하는 과정을 가졌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살아있는 은유의 ’차이성 속의 유사성’이라는 특징을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살아있는 은유’를 활용하고 있는 시 텍스트 예시

<표 3>에 제시된 시들의 제목은 무엇일까. 이는 시의 ’본문’에 해당하는 내용과, 이를 해명(혹은 함의)하는 ’제목’ 사이의 차이성을 사유하면서 읽을 때 매우 창의적이고 흥미롭게 읽힌다. 우선 답을 말하자면 ’시A’의 제목은 바로 「스무 살」(서윤후, 2016)이다. “세상에서 가장 빨리 끝나는 폭죽”은 “스무 살”이라는 이질적인 관념과 결합되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비동일성(차이)을 부각시키는 은유’이다. “은유에서의 유사성은 동일성과 이질성의 결합이다. (...) 은유의 유사성이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에 의해 생겨난다.”(권혁웅, 2010: 258.) 즉 우리는 ’유사성과 차이성’ 사이의 긴장을 감지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또한 ’시 B’의 제목은 「늦가을」(「박순원」,2008)이다. 시의 내용은 단순히 짜장면을 먹고 아무 문제없이 가게를 잘 나오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헛헛함과 무언가를 빠뜨린 것 같은 찝찝한 정서를(“혹시 빼놓은 것은 없나 (...) 너무 서두른 것은 아닌가”) 우리는 실제로 ’늦가을’에 느끼고는 한다. 사실 ’중국집에서의 식사’와 ’늦가을’은 아주 이질적인 관념이지만, 우리는 언어를 통해 이를 은유적 구조로 결합시킴으로써, 창의성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위의 시들은 각각 차이성을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은유를 활용하고 있다. 즉 ’제목’과 ’내용’ 사이의 거리를 이용하면서 ’병치 은유’18)의 작동 방식을 통해 두 관념(제목-내용)의 결합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를 감상하는 향유자는 부각되는 ’차이성’과 논리적으로 연결되는 ’동일성’을 동시에 인식하면서, 해당 시들의 창의성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연구자는 실제로 수업에서 ’시 A’의 제목과 ’시 B’의 제목을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유추해보라고 했는데, 「스무 살」의 경우는 ’다이어트, 빅뱅, 탄산, 첫사랑, 첫키스’와 같은 매우 참신한 제목을 만들어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늦가을」의 경우에는 ’수능시험장, 주식투자, 대장내시경검사’ 등 매우 흥미로운 제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요한 점은 이렇게 특정한 모듈을 제시하면, 학생들이 얼마든지 ’차이성과 유사성’을 동시에 빚어내는, 창의적인 사유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차이를 지닌 결합’을 만드는 ’은유적 사고’는 예술분과에서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다.19), 서로 다른 개념이나 대상을 결합시키는 ’개념적 혼성’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광고에서도 자주 활용된다. 본 연구자는 수업 모듈을 적용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광고계의 ’은유적 성과’들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20) 이는 학생들이 ’수업 모듈’을 수행하기 전에 은유적 사고의 체계를 손쉽게 이해시키는 데에 매우 용이했다.

위의 사례처럼 은유 표현은 서로 다른 것들의 ’긴장을 지닌 결합’을 유발한다. 즉 서로 다른 두 대상을 결합시킴으로써, ’차이성 속의 유사성’을 사유하게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각과 전망을 확보 할 수가 있다. 이를테면 [그림 1]의 광고는 ’구두’와 ’거울’ 그리고 ’구두약’이라는 세 가지 개념의 혼성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광고 속 오브제의 서사적 인과를 추측하게 된다. 즉 해당 광고의 제품을 사용하면 구두를 거울처럼 반짝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림 2][그림 3]은 사회적,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게 만든다. 이를테면 [그림 2]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에게는 계단이 에베레스트와 같은 ’높이’(계층화, 단절, 분리, 차별)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림 3]은 무분별한 산림개발이 사막화를 만들어낸다는 숨은 인과성을 드러낸다. 이 광고의 은유가 참신하고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유사성(동일성)’이 우선하는 것이기 보다는, 대상들 간의 ’차이성(비동일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21) 이처럼 ’살아있는 은유’는 ’차이’를 통해 새로움을 형성하고, 이 사이에서 ’유사성’을 유추하게 만들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논증적인 훈련도 가능하게 한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살아있는 은유 표현’ 수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업 모듈’의 형태로 제시해 보고자 한다.

[그림 1]

거울 + 구두 = 구두약 광고

[그림 2]

계단 + 에베레스트= 장애인 교통권의 현실문구: “누군가에게는 이 계단이 에베레스트입니다.”

[그림 3]

사막 + 나무의 나이테 = 산림 파괴와 사막화에 관한 메시지

2.3. ’살아있는 은유’를 활용한 수업 모듈

폴 리쾨르는 일찍이 ’살아있는 은유’의 창조적인 역량을 삶의 가능성으로 지적하였다. 그는 “은유를 비유라는 좁은 틀에서 해방시키고 은유적 진리라는 이름으로 그 ’존재론적 격정’을 복원시키고 은유를 삶과 연결시키려”(김한식, 앞의 글, 69)했다. 즉 은유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실존적 상황을 그려내는 것이며,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을 새로운 형태로 정립하고 나아가게 만드는 가능성이라는 것이다.22)

그렇다면 이러한 ’살아있는 은유’를 어떻게 수업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만약 학생들에게 막연하게 ’창의적인 은유 표현’을 쓸 것을 요청하면, 학생들은 큰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따라서 ’특정한 형식을 갖춘 수업의 모듈’이 필요하다. 즉 학생들이 과정을 수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창의적인 은유를 쓸 수 있도록 유도하는 모듈이 필요하다. 따라서 연구자는 모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고려하였다. 첫째, 앞서 살핀 내용처럼 적절한 긴장 관계(차이성과 유사성을 생성)를 지닌 은유. 즉 ’살아있는 은유’를 쓸 수 있도록 유도하는 모듈이 될 것. 둘째, 학생들이 큰 어려움 없이 은유의 작동 방식을 경험하고 활용할 수 있는 모듈이 될 것. 셋째, ’창의적인 은유 표현’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수합 ⋅ 정리 ⋅ 연결해내는 ’논리적 글쓰기의 과정’도 수행 가능한 모듈이 될 것.

이를 바탕으로 본 연구의 수업 모듈은 거시적으로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해당 모듈은 학기 중 1주~2주 안에 완결이 가능한 독립적인 모듈로, 각각의 과정은 다음과 같은 순차로 구성되었다. 이중 1단계에 해당하는 내용은 앞선 과정에서 충분히 설명이 되었고, 본 절에서는 2~3단계의 과정을 구성한 의도와 구체적인 수행 방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 연구의 거시적인 수업 모듈은 <표 4>와 같은 순차로 진행되었으며, 2~3단계에 해당하는 내용은 아래에서 서술할 것이다. 다만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본 연구의 3단계 모듈은 전혀 다르게 분리해서 활용이 가능하며, 이외에도 반드시 ’글쓰기’ 모듈이 아닌 형태로도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테면 2단계의 과정을 ’시 쓰기’가 아니라 ’발표, 표현, 연극, 춤’의 형태로 수행할 수 있고 자아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인성교육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3단계의 과정 역시 변용이 가능하다. 즉 ’글쓰기’를 수행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토의, 논의, 몽타주 만들기, 그림으로 전달하기 등 매우 다양한 형태로의 활용이 가능하다.

수업 모듈의 전체 과정 요약

앞서 설명했듯 시창작 및 시론의 분과에서는 은유의 창의적인 기능을 오래전부터 활용해왔다. “은유에는 연결어가 없는 만큼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결합 상태가 직접적이다. 직접적인 만큼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강한 탄력이 생긴다. 그 탄력은 두 개의 관념이 가지고 있는 차이성과 유사성이 서로 부딪치며 이룩해내는 새로운 의미론적 전이와 의미 발생의 자장(磁場)이다.”(오규원, 1990:276) 즉 앞서 학생들이 보여준 예시처럼(표 1) 동일성(유사성)을 의식하고 이를 토대로 뻔한 은유 표현을 만들기보다는, 새롭게 ’차이성’을 빚어내고 긴장도 및 탄력을 만들어내는 ’은유 모델’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본 연구는 특히 비동일성을 토대로 하는 ’병치은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이와 관련하여 본 연구는 진은영 시인의 「나는」(진은영, 2008)이라는 텍스트의 구성 방식을 수업 모듈로 채택하여 활용하게 되었다.23)

나는

너무 삶은 시금치, 빨다 버린 막대사탕, 나는 촌충으로 둘둘 말린 집, 부러진 가위, 가짜 석유를 파는 주유소, 도마 위에 흩어진 생선비늘, 계속 회전하는 나침반, 나는 썩은 과일 도둑, 오래도록 오지 않는 잠, 밀가루 포대 속에 집어넣은 젖은 손, 외다리 남자의 부러진 목발, 노란 풍선 꼭지, 어느 입술이 닿던 날 너무 부풀어 올랐다 찢어진

우선 기법적 ⋅ 구성적 측면에서 위의 시를 살펴보겠다. 위의 시를 구성하고 있는 작법의 기본 토대는 ’병치은유’이다. 병치은유는 “병렬과 종합을 통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은유의 한 형태”로, “서로 다른 사물들이 당돌하게 병치됨으로써 빚어지는 ’새로운 결합’의 형태”다. “여기서 의미론적 운동은 실제적이든 상상적이든 시인이 자기 체험의 어떤 특수한 면들을 통해서 병렬되는 요소와 그 요소의 종합으로 이룩된다.”(김준오, 위의 책: 183) 즉, 위의 시에서 다양하게 열거되는 대상 및 관념은, 차이만을 부각시키며 산개되는 개념이 아니라, ’나’라는 ’종합적인 개념’을 구성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즉 이 시는 ’~하다’라는 종결어미 없이, 다종다양한 사물과 상황을 열거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의 제목인 「나는」은 주어에 해당하고 시의 내용은 사실상 모두 ’술부’에 해당한다. 이렇게 이 시는 ’나’라는 주체의 설명하기 어려운 내적 상태와 사적(私的) 역사를 은유의 병치로 수행해내고 있다.

이런 형식적인 구성 외에도 이 시는 내용적으로 매우 풍성하고도 창의적인 해석적 여지를 거느리고 있다. 이 시는 단순히 ’은유표현’ 하나가 시 전체의 내용을 지배하기 보다는, 저마다 다른 은유표현이 축적되면서 ’나’라는 사람의 내적 내러티브를 형성하고 있다. 즉 위의 시의 화자는 은유 표현을 열거함으로써 다양한 표현들을 폭발적으로 제시하고, 독자들은 이 은유 표현을 해석해내는 과정을 통해 의미의 생성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은유를 해석하는 과정에는 논리성과 합리성이 요청된다. 이를테면 이 시의 나는 “너무 삶은 시금치”이며 “빨다버린 막대사탕” 같은 존재다. 즉 나는 형체를 유지할 수 없을 만큼 허물어진 내면을 가지고 있으며, 엉망인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촌충으로 둘둘 말린 집”인 것을 보면, 내 깊은 마음(집)을 방문한 이는 드물고. “부러진 가위”라는 표현을 통해 나는 제 기능을 못하는 사람이거나, 혹은 관계를 명확하게 잘라내지 못하는 우물쭈물한 사람이라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처럼 이 시는 해석이라는 논리적 사고 과정을 통해, 다양한 의미로 읽힐 수 있다. “계속 회전하는 나침반”인 나는 삶의 방향성을 잃었고 “썩은 과일 도둑”처럼 무언가를 훔치는 일에서조차 무능하다. “밀가루 포대 속에 집어넣은 젖은 손”처럼 나는 형편없이 달라붙기도 하는 등, 처참한 상황일 수 있다. 결국 이런 나는 “노란 풍선 꼭지”처럼 누군가와 입을 맞추며 사랑을 꿈꾸기도 했는데 “너무 부풀어 올랐다 찢어 진” 채로 사랑에 실패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은유 표현의 선행성’과 ’논리적 해석⋅연결 과정’의 순서이다. 즉 은유 표현을 과감하게 선행시키고, 앞서 시를 해석했던 것처럼 사후적으로 내적 동일성을 발견해내는 이 순서가 중요하다. 유사성(동일성)을 먼저 염두에 두고 표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표현을 선행시키고 그 속에 내재된 차이성과 동일성을 동시에 포착하며 의미를 연결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은유 표현’이 선행될 때, 발생하는 은유의 창의성이다.24)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은유 표현’의 선행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즉 ’유사성 → 은유표현’이라는 언어학적 도식을 뒤집어서, ’은유표현 → 새로운 의미 발견’이라는 표현적 도식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1) 예상할 수 없는 은유 표현을 먼저 만들어보고 → 2) 그 중에서 새로운 의미와 적절한 해석을 발굴할 수 있는 은유 표현을 선택하고 → 3) 최종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참신한 은유 표현을 논리적인 글로 해석을 하는 순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언어(표현)가 개념(내용 및 동일성)을 선행하여, 새로운 뜻을 발생시키는 현상은 선행 연구에서 빈번하게 지적된 바 있다. (양명수, 1999:29)

이처럼 위의 시 「나는」은, ’나’라는 존재자의 의미를 정의하기 위해 은유를 폭발시키듯 열거하고 있다. 이 은유의 해방적 표현을 통해 ’나’라는 제한적인 자아의 개념은 아주 넓은 층위와 입체적인 맥락으로 확장된다. 즉 새로운 발견이 무궁무진하게 출현하며 그 내용 전체가 ’나는’이라는 존재-개념으로 수렴되는 것이다. 바로 이 시의 형식적 구조(제목: 나는 = 내용: A, B, C, D, E …)를 학생들에게 그대로 제공하면서, 최대한 이질성이 강한 대상과의 강제적 결합을 요청하는 것이 본 연구의 수업 모듈이다.25), 이 단계의 구체적인 수행 과정은 <표 5>와 같다.

수업 모듈 중 2~3단계 수행 과정 정리. (나의 시 「나는」을 쓰고, 짧은 해설문 쓰기)

<표 5>와 같이 수업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진행이 된다. 1) 진은영의 「나는」이라는 시의 형식을 모방하여, ’나’와 관련된 은유 표현을 마음껏 쓰는 과정. 2) 스스로 열거한 은유 표현 중 가장 참신하고 새로운 은유만을 선별 ⋅ 선택하여 시를 완성하는 과정. 3) 이렇게 완성된 시 「나는」에서 각각의 표현들이 지닌 ’나의 정체성 및 의미’를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해석해서 전달하는 과정.26) 본 연구에서 설정한 모듈, 각각의 과정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우선 1단계는 은유 표현을 (열거를 통해) 선행시킴으로써 의미의 우연적 발생과 도약을 과감하게 허용한다. 학생들은 은유를 마음껏 열거하는 과정을 통해 흥미를 느낄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아주 창의적인 은유와 뜻이 전혀 통하지 않는 은유(실패한 은유) 그리고 죽은 은유를 무작위로 생산하게 된다. 의미의 유사성을 의식하거나, 관습적인 사유를 걷어내고 자유롭게 상상력을 폭발시킬 수 있는 것이 해당 과정의 의의이다. 2단계는 이렇게 생성된 은유를 학생 스스로가 정리하고 검토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실패한 은유’가 어떠한 지점에 의미화(논리화)에 실패했는지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즉 ’실패 교육의 경험’27),을 충분하게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당 과정은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살아있는 은유’는 어떻게 참신한 표현과 적절한 해석이 가능해지는지를 스스로 학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3단계는 이렇게 선행시킨 은유 표현을 스스로 수합하고 정리한 뒤에 내적 연결성이나 새로운 논리를 발견하여 자신의 시를 ’설명적인 글쓰기’로 해석하고 소개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들이 열거한 ’차이가 뚜렷한 은유’ 속의 새로운 질서나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합리적인 글쓰기의 능력 역시 함께 신장시킬 수 있는 것이다.28)

이처럼 본 연구의 수업 모듈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선별하여, 그 결과물을 논리적으로 해석하고 전달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29), 이는 은유 안에서 새로운 내적 논리를 발견해내는 과정으로, 스스로가 새로운 해석과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에 해당한다.30)

2.4. 모듈의 수행 과정 및 성과 검토

연구자는 해당 수업 모듈을 실제 수업에 적용하여 그 성과를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흥미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성과 사례를 직접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연구의 실효성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사례 연구의 시행 기간은 2019년 3월 이후부터 2022년 8월까지, 본 모듈을 실제 수업 과정에서 적용했다. 해당 과정은 영남대학교의 교양글쓰기 강좌인 <융복합글쓰기> 교과에서 진행이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이공계, 인문계, 예체능계와 같은 전공의 구분은 하지 않았다. 은유가 지닌 보편성을 기반으로 학과 구분 없이 모듈을 활용하고자 했다. 해당 강의에서 참여한 학생의 인원수는 수업 당 30~50명 내외로 진행이 되었고 과정은 계획대로 1~2주의 시간을 소요하여 진행이 되었다.

사례 연구 과정과 결과물의 검토를 통해 점검할 사안은 다음과 같다. 1)은유적 사고방식이 학생들에게 어렵지 않게 직관적으로 적용 가능한가. 2)학생들이 본 수업 모듈을 통해 관습적인 은유나 단순한 은유가 아닌, ’살아있는 은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한가. 3)학생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은유 표현’에 합리적인 설명과 해석을 부여할 수 있는가. 4)살아있는 은유를 열거하는 ’은유 열거 모듈’이 학생들의 실질적인 창의성 신장에 도움이 되는가. 5)수업 모듈이 글쓰기의 창의성 신장 전반에 유의미한 성과를 생산했는가. 6)이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과 한계는 무엇이 있는가. 해당 사안들과 관련해서는 성과물을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은유 표현 모델’의 효과를 확인하겠다. 성과물은 지면관계상 전문이 아닌 일부를 인용하고자 한다.

<표 6>은 이공계열 학생의 성과물이다. 이를 살펴보면 과정을 수행한 학생이 매우 신선하고 독특한 은유를 생성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31), 즉 글쓰기의 창의성은 ’개인의 재능’에 의존하는 것만이 아니라 특정한 ’사유의 구조(형식)’를 통과함으로써 얼마든지 구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표 6>의 성과에서 나타나는 은유들은 본 적 없는 드물고도 생생한 은유다. 물론 문장 차원의 결여나, 완결된 글의 구성에서는 한계들이 나타나지만 학생들은 창의적인 표현을 했고, 이러한 표현들을 스스로 논리적으로 정리해서 시에 관한 흥미로운 해석들을 보여주었다.

학생들의 성과물 예시

이를테면 자신을 “뱃속에서 스쿼트를 하다 태어난 무”에 비유하거나, “정착하고 싶은 홍길동”으로 표현하는 은유는 매우 생생하고도 참신한 은유로 비친다. 이것은 유사성을 토대로 은유 표현을 창작하기 보다는, 독특하고도 거리가 먼 대상들을 자유롭게 열거하라는 주문의 결과이다. 이질적이고 낯선 것들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이 중에서 내적 논리와 인과를 지닌 표현들을 선별하는 과정을 학생들은 매우 흥미롭게 수행했다. 그리고 이렇게 완성한 시 「나는」에 대한 해석은 논리적으로 그 내용을 구성하고 연결하는 과정이었다. 이는 B에 해당하는 대목으로, B글을 통해서 학생들은 해당 은유의 의미를 스스로 해명하고 밝히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A예시에 나타난 “86년 넘게 사랑 받는 멍멍이 이름은 다롱이”라는 대목은 은유 표현 자체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B를 통해 개인의 사적 역사를 흥미롭게 표현한것임을 알 수 있었다. 즉 이 은유 표현은 할머니를 거쳐 간 수많은 강아지들의 시간과 삶을 표현한 것이었다. 이처럼 학생들은 살아있는 은유를 통해 창의성을 구현할 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비롯한 삶의 사적 역사들을 정리하는 경험도 수행할 수 있었다.

<표 7>의 결과물 역시 매우 흥미로운 은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역시 학과와는 무관하게 수업 모듈을 잘 활용하면 매우 창의적인 사고와 표현이 가능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32) 자신의 정체성을 낯선 방식으로 열거하라는 요청에, 해당 학생은 6인 가족으로 구성된 집을 생각하다가, “코스모스 잎들 중 하나”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코스모스의 잎이 6새인 점을 찾아서 자신을 그렇게 비유한 것이다. 이처럼 가족의 구성원이 모여 하나의 “꽃”을 이룬다는 식의 비유는 내용과 형식의 아름다움을 고루 갖추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자신의 이름을 구성하는 한자어를 파자(破字) 놀이 하듯, 쪼개어서 설명하는 대목도 매우 인상적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뜻도 모르는 무식한 돌덩어리”라는 말은, 뜻 지(志) 자와, 옥돌 현(玹) 자를 파자하듯, 나누어서 은유한 표현이다. 이런 주체적이고도 개성적인 은유 표현을 학생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찾아낼 수 있었다.

학생들의 성과물 예시

또한 눈여겨 볼 점은 이러한 은유 표현을 설명하는 과정(B의 내용)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자기 서사’를 구축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부모님과 목욕을 가는 에피소드라든가, 가족을 구성하는 몸(세포)으로까지 사유가 이어지는 대목은 ’나’라는 사람의 사적 역사를 구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처럼 학생들은 은유 표현을 단순히 흩뿌리는 방식으로 내뱉는 것이 아니라, 은유 표현을 종합하고 수렴해내는 논리적 과정 역시 무난하게 수행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라는 종합적인 개념을 사고하고 고민해볼 수 있다는 점 역시 본 수업 모듈의 확장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표 8><표 9>의 사례를 보면 확인할 수 있듯이, 학생들이 쓴 시 「나는」의 은유 표현도 참신하지만, 주목되는 점은 B에 해당하는 ’해설문’이 ’나 자신’에 관한 깊은 고민과 정체성의 문제로도 확장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 학생들은 은유 표현을 선행시키는 과정에서 예상할 수 없는 낯선 은유의 조합에서 흥미를 느끼고 조금은 당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선택하고 배열하여 시로 만드는 과정에서는 ’창의적인 은유’가 어떤 것인지를 스스로 감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를 해설문으로 쓰는 과정(B)에서, 학생들은 해당 은유 표현이 지닌 내적 논리와 배후 서사를 스스로 연결 지어 만들어내는 성과를 보여주었다.

학생들의 성과물 예시

학생들의 성과물 예시

이처럼 은유는, 은유 표현을 통해서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닮음을 우리가 스스로 발견하고 창조하’는 과정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33) 처음에 학생들은 무분별한 은유표현의 열거를 수행하기만 했다. 그리고 이 은유 표현의 더미 속에서 새로운 의미와 내적 인과를 발견해낸 것은 스스로였다. 즉 은유 표현들 중에서 유의미하고, 새로운 것들을 스스로 선택하여, 해당 표현들을 통해 자신만의 삶과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의미로 확장을 시킨 것이다. 사례로 든 예시 이외에도 매우 흥미롭고 개성적인 성과들이 많았다. 어떤 학생은 자신을 “198기통의 강력한 마력을 지닌 람보르기니”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학생은 이러한 은유 표현이 ’여성으로서의 자신’이 지닌 힘과 가능성을 강렬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해당 학생은 페미니즘에 관심이 깊었고, 이러한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당당하게 은유로써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또한 어떤 학생은 자신을 “보일러를 끈 뒤에 남은 열기”라고 표현했다. 이 은유 표현은 자신을 키워주고 떠난 자신의 할머니에 관한 은유라고 했다. 학생의 할머니는 뜨거운 바닥을 좋아해서 늘 보일러를 세게 틀고는 했는데, 할머니가 떠나고 난 뒤의 그 온기가 자신에게 있다는 해석을 했다. 이처럼 본 연구의 수업 모듈은 매우 다종다양한 ’사적 역사’를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큰 확장성이 있었다. 자신의 역사,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사연을 표현하는 수업 모듈이었기에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이 과정을 수행할 수 있었다. 지면 관계상 많은 자료를 모두 첨부할 수 없지만 매우 참신하고도 독특한 은유를 많이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독특한 표현을 새롭게 해석해내는 논리적인 과정 역시 매우 흥미로웠다.

수업 모듈의 한계점 역시 나타났다. 그것은 문단과 문단 사이의 내용적 결속력이 공고하게 진행되는 완결된 글쓰기에서는 해당 모듈이 한계를 지닌다는 점이었다. 즉 한 편의 글로서, 온전하게 연동되고 구성되는 ’글의 구성적 맥락’이 다소 부족한 점이 노출되었다. 이는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표현을 자유롭게 펼친 뒤, 표현들을 수합하는 방식의 글쓰기가 지닌 한계점이다. 본 모듈은 철저한 계획 하에서 치밀하게 전개되는 글쓰기에서는 다소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이는 정확한 계획과 통제 하에서 글이 전개되기 보다는, 다소 우연적이고 낯선 표현들을 토대로 하기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한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의 수업 모듈이 글쓰기의 모든 맥락을 신장시킬 수는 없다는 것 역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다만, 좀 더 글의 ’전체적인 얼개’와 ’구성’을 보강할 수 있는 지점이 현재 수업의 모듈 내에서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외에도 비문이나 어색한 표현을 다소 쉽게 쓴다는 문법적인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자유로운 표현과 창의성을 강조하다보니, 문장이 어색하거나, 틀린 문장을 쓰는 경우가 상당히 노출되었다. 이는 수업의 선행 과정에서 올바른 문장 쓰기를 더 강조해야할 것으로 보이고, 이 외에도 글쓰기를 수행한 이후 적절한 피드백을 통해서 개선될 수 있었다.

3. 결론

본 연구는 창의적인 글쓰기 능력을 신장시키기 위한 수업 연구로, ’살아있는 은유’의 작동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본 연구는 특정한 수업 모듈을 제시하고 이를 수업 현장에서 적용시켜 그 성과와 한계를 검토하고자 했다.

통상적으로 ’은유’와 ’글쓰기 교육’을 연계시킨 기존 연구의 문제점은, 은유의 보편적인 개념을 피상적으로 수용하여, 수업에 적용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본 연구는 이렇게 아무런 검토 없이 ’유사성’을 중심으로 답습되어온 ’은유의 개념’이 아니라, 차이성과 비동일성을 부각시키는 ’살아있는 은유’의 개념에 주목하고자 했다. 이러한 은유야 말로 새로움과 창의성을 촉발시킬 수 있는 사유의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본 연구는 시론과 시 창작론에서 주목해온 은유 및 병치은유의 개념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또한 근래에 창작되고 있는 한국의 현대시를 수업의 자료와 모듈로써 활용하였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학생들이 해당 수업 모듈을 활용함으로써, 창의적인 표현과 논리적인 해설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해당 수업 모듈은 단순히 창의적인 표현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서 자아의 개념과 정체성의 탐색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확장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연구의 성과를 바탕으로 실제 대학 글쓰기 교육 현장에서 본 수업 모듈이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본 연구를 바탕으로 은유에 관한 보다 다양한 관점과 활용의 사례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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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Zoltán Kövecses(2009). 은유와 문화의 만남, 김동환 옮김, 연세대학교 출판부.

Notes

1)

창의성에 대한 교육학계의 관점은 ’개인-역량-재능’ 중심에서 ’보편-역량-강화’ 중심으로 그 관심사가 이동했다. 과거에는 ’창의성’을 특정한 개인의 천재성이나 탁월함으로 간주하여 접근했지만 Guilford의 심리학회 연설(1950) 이후 창의성은 환경적 ⋅ 외부적 개입을 통해 학습되고 발현될 수 있는 것으로 그 시각이 변화했다. (김정섭, 2008:41-943 참조.) 흥미로운 점은 본 연구의 주제 의식인 은유에 관한 관점 역시, 창의성과 매우 유사한 형태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은유는 오랜 기간 천재의 수사법으로 이해되어왔으나 (김종도, 2004) 이제 은유는 ’수사학’의 차원을 넘어서서 인간의 보편적인 사유의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논의가 Lakoff와 Johnson의 연구(1981)다.

2)

실제로 최근의 김언지, 유미현의 연구(2018)는 예술 중심의 융합적인 교육을 실시할 경우, 학생들의 창의성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양한 예술 활동 및 예술 텍스트와의 접촉은 창의성 계발의 핵심적인 사안으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대학 교육에서 이는 ’심미적인 전공의 한 영역’으로만 국한되어 연구의 대상이 되지는 않고 있다.

3)

실제로 학생들은 창의성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대학에서 실시하는 창의성 교육에 대해 굉장히 낮은 만족도(이경화, 유경은, 김은경, 2010)를 보이고 있으며, 창의성 교육과 연구를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대학은 찾아보기 어렵다.(김영도, 2013:50)

4)

본래 모듈은 기기 및 컴퓨터 공학에서 중간적인 장치 개념으로 통용 되다가 최근에는 교육 공학의 수업 개발에 활용되고 있다.(박준범, 2020) “모듈이란 어느 정도 완결된 하나의 수업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교육 내용, 수업 진행과정, 평가를 모두 포함하는” 수업 방식으로 자기주도적 학습과 개별화 학습이 빠르게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배식한, 2010:195-199)

5)

본 연구가 다루고자 하는 주요 대상 텍스트(시, 광고, 자료 등)는, 연구의 시의성과 활용성을 감안하여 좀 더 현장적이고 현재적인 작금의 텍스트를 대상으로 삼았다. 이를테면 ’현대시’는 단순히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형성된 근대적 ’신체시’ 이후의 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한국 문단에서 활발하게 생산되는 근래의 텍스트를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 이는 연구의 활용도와 현재성을 최대로 높이기 위함이다.

6)

이와 관련된 연구의 대표적인 연구로는 Lakoff와 Johnson의 연구(1981)가 있고 이를 보완하는 연구로 Zoltán Kövecses(2002, 2005)의 연구가 특히 주목된다. 국내의 연구로는 임지룡(2006)의 연구가 비교적 명확하게 내용을 정리해두었다.

7)

이러한 연구로는 박병기(2004)의 연구를 기점으로 김정섭(2008), 권연진(2015), 최한희, 주서령, 김미정(2012)있고 이 중에서도 강선아(2016)의 연구는 Black의 은유 이론과 Indrukhya의 상호작용 이론을 활용하여 더욱 진전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8)

관련 연구로 박영순, 강이철(2008), 이동혁(2009), 김영도(2013), 심지연(2013), 최옥선(2015), 김현정(2017), 박원호(2018)이 있다. 이들은 은유의 창의성에 주목하여 시를 활용하거나, 비유법 등을 활용한 글쓰기 교육 방법을 연구했다.

9)

이에 대한 설명은 반복적으로 다루어져 왔으므로 본 연구에서는 해당 각주를 통해서 간략하게만 설명하고자 한다. ’사상 이론’은 이를테면 ’화’라는 목표영역을 표현하기 위해서 우리가 ’뜨거운 불’, ’증기’, ’몸속에 가득 그릇’과 같은 근원영역을 사상하여 분노의 정서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화’를 ’그릇’이나 ’뜨거움’에 사상하는 것이 굉장히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임을 볼 때 ’개념적 은유’라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사유의 형식이라는 것이 해당 연구의 주된 주장이다.

10)

실제로 Lakoff와 Johnson은 ’개념적 은유’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은유 표현’에 있어서 소홀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기도 한다. (임지룡, 2006:55 참조)

11)

상당수의 연구에서 제시하고 있는 성과물이, 특정한 개념을 다른 사물이나 개념에 비유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예를 들면 ’국문학과 전공은 벽돌 쌓기이다’라는 은유적 주제로 글을 쓰거나, 자신의 삶을 ’잡초 제거와 정원 가꾸기’에 비유하는 식으로 글을 쓰는 예가 이에 해당한다. 사실 이러한 수준의 은유적 글쓰기는 은유를 활용한 것이지 창의성을 계발하고 신장시킨 결과라고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러한 은유적 표현은 지나치게 일반화되어서 상투적이고 관습적인 글을 쓰게 만든다.

12)

이렇게 ’살아있는 은유’와 ’차이성(비동일성)’에 주목하여 글쓰기 모듈을 구상한 사례는 박병기의 연구(2004)를 제외하고는 전무하다. 본 연구는 이러한 연구 시각을 더 확장시켜 ’비동일성’을 중심으로 한 은유 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13)

이는 고대 수사학에서 다루어진 은유의 개념만 살펴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 즉 은유란 “어떤 사물에다 다른 사물에 속하는 이름을 전용(epiphora)하는 것으로“으로(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 역, 1982: 380)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닮은 것에서 닮은 것’으로의 이동이라고 말한다.“(아리스토텔레스, 김한식 역, 2011::427-439.) 이처럼 은유는 ’유사성’을 기반으로 개념적 결합 및 이동을 수행하는 수사학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졌었다.

14)

’유사성’이라는 어휘는 시론이나 학자마다 조금씩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를테면 권혁웅은 “유사성이란 동일성의 틀 안에서 이질성을 배열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권혁웅, 2010:256) 이는 유사성이 다른 것과 닮은 것을 동시에 연결 짓는 결속의 방식임을 뜻한다. 다만 본 연구에서는 좀 더 명확한 의미의 구분을 위해 김준오와 같은 의미로 유사성(Similarity)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김준오, 2011:176) 즉 차이성을 포괄하는 유사성이 아니라 비슷한 점, 닮은 점, 동일성을 지칭하는 의미로만 유사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대상의 이질성을 드러낸다는 의미로는 차이성, 비동일성이라는 용어를 쓰고자 한다.

15)

물론 차이성과 동일성의 구분이 곧장 ’창의성 : 관습성’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은유는 서로 다른 대상의 유사성의 거리(정도)에 따라 미학적 긴장이 형성된다. 즉 두 대상 간의 동일성과 이질성이 진동하면서 미학적 긴장을 형성하는 것이다. 다만 기존 연구들에서는 지나치게 은유의 유사성과 동일성을 강조했기에 본 연구는 이와 반대로 대상의 차이와 미적 거리를 형성할 수 있는 ’비동일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16)

죽은 은유를 비판하고 살아있는 은유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태도는 현대 철학 담론에서도 잘 나타난다. “리쾨르는 철학담론에서 두 가지 유형의 은유를 구분하는데, 하나는 의미론적 결핍 상태에 있는 일상 언어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낱말을 확장해서 사용하는 경우, 예컨대 ’이성의 빛’이라는 은유가 그렇다. 리쾨르에게 그러한 은유는 철학적 담론 형성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지만 어휘와 관련된 언어 현상이기에 시적인 은유, 즉 ’만들어낸 은유métaphore d’invention’와는 차원이 다르다. 만들어낸 은유는 담론 차원에서 문자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 사이의 긴장에 근거하여 ’의미론적 혁신’을 낳기 때문에 단순한 수사학적 장식으로 환원될 수 없다“(김한식, 2019, 54-55) 이처럼 살아있는 은유는 ’새로운 개념의 창조’, ’의미론적 혁신’을 가능하게 하기에, 최근 현대 철학에서는 사유의 방식으로도 깊이 있게 연구되고 있다.

17)

본 연구가 수업의 과정에서 활용하고 예시로 든 ’현대시 텍스트’는 다음과 같은 기준 하에서 선별⋅선택되었다. 첫째, 가급적 당대에 창작되고 있는 현재적인 텍스트를 참고했다. 창의성과 관련된 교육 연구에서는 과감한 개방성이 요청된다. 따라서 시대착오적이지 않고 의미 소통이 활발해질 수 있는 근래의 시를 주로 검토하고자 했다. 이는 학생들의 흥미 유발과 소통의 측면에서도 유용하다. 둘째, 은유를 활용한 시 중에서도 의미론적 변용이 큰 사례를 중심으로 수집 ⋅ 분석 했다. 즉 원관념(목표영역)과 보조관념(근원영역)의 차이가 선명하고 그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생산할 수 있는 사례를 살폈다. 이렇게 은유를 선별적으로 수용해야 죽은 은유나 단순한 은유를 넘어선 입체적이고 창의적인 표현과 사고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셋째, 시 텍스트의 최종적인 선택은, 미학적인 성과보다는 ’사유의 전환’과 ’참신함’을 빚을 수 있는 창의성(과 활용성)을 감안하여 선택했다. 따라서 미학적인 의의보다는 예술(현대시)이 지닌 창의성을 활용하기에 적합한 텍스트를 주로 선택하였다.

18)

Wheelright는 병치은유가 “병치(juxaposition)와 혼합(synthesis)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일”이라고 말하며 “병치은유의 근본적인 가능성은 새로운 특질과 의미를 만들어내는 광범위한 존재론적 사실”로 “지금까지 묶여지지 않은 요소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존재에 이르게 만든다.”라고 설명했다. (권혁웅, 2010:232-234)

19)

“전체만이 은유를 구성한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단어의 은유적인 사용이 아니라 은유적 언표(metaphorical utterance)에 대해서 말해야 하는 것이다. 은유는 은유적인 언표에서 일어나는 두 개념 간의 긴장이 낳은 산물이다.” (질 들뢰즈, 2004:50) 즉 은유는 단순한 비유법이나, 단어의 사용 및 시 창작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의 언표행위 즉, 개념적 체계이다. 이러한 은유의 사유 체계는 글쓰기를 넘어서서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20)

이와 관련된 연구로는 박원호(2018), 박진우(2016)가 있으며 본 연구의 예시 중 그림 3은 박진우의 연구에서 재인용함.

21)

물론 여기서 발견되는 창의성이 단순히 ’차이성’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해당 은유들은 비유되는 여러 대상 간의 차이성과 동일성이 적절한 거리distance를 형성하기에 다양한 의미의 연관이 생성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권혁웅(2010), 엄경희(2016)가 있다.

22)

“은유는 단순한 장식이나 충격 어법이 아니다. 취지와 수단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특유한 진실과 통찰을 전달하며 의미를 창출하는 것이다,”(유종호, 최동호 편저, 2005:170) 즉 은유는 새로운 사유를 만드는 사고의 체계이자 방법론이다.

23)

본 연구가 이 시를 수업 모듈로 활용한 것은 네 가지 특성 때문이다. 첫째, 이 시는 유사성과 차이성을 동시에 부각시키는 ’살아있는 은유’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즉 이 시의 형식을 모방하여 학생들이 글쓰기를 수행하면 자연스럽게 ’살아있는 은유’를 구현하기 쉽다. 둘째, 이 시는 수업의 모듈로 적용하기에 매우 유리하다. 특히 은유표현을 열거시켜서 다종다양한 표현을 확보하기에 용이하다. 셋째, 이 시는 ’논리적인 글쓰기 과정’을 수행하기에도 좋다. 즉, (창의적인 표현이 주를 이루는) 자신만의 시를 창작한 뒤에, 이 시의 내적 논리와 인과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 ⋅ 설명하기에도 좋다. 넷째, 이 시는 단순히 ’시 쓰기 및 글쓰기’의 차원에 국한되는 글쓰기를 넘어서서 넓은 층위의 교육적 가치를 구현하기에 좋다. 특히 자신에 대해 다양하게 구술, 기록, 재정의하는 과정을 경험하기에 자아정체성과 관련된 다양한 고민을 해볼 수 있다.

24)

Black은 “은유는 전에 없던 새로운 닮음을 창조할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세계에 대한 새로운 측면을 보여주는 인지적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강선아, 2016:47) 이처럼 은유 표현이 창의성을 생산한다는 시각은 언어학자에게서도 지적되고 있다.

25)

또한 진은영의 「나는」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매우 다양한 ’은유 표현’을 지닌 시들을 활용할 수 있다. 지면 관계상 모든 시를 예시로 들 수 없지만, 박성우의 「두꺼비」 같은 작품은 두꺼비의 우둘투둘한 이미지와 아버지의 늙은 손이 ’병치 은유’로 활용되고 있다. 신용목의 「산수유꽃」은 ’물집=뜨거운 한 때의 시간=산수유꽃’과 같은 이미지의 병치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병치 은유’의 구조를 활용하면 아주 다양한 살아있는 은유를 만들 수 있다. 더 많은 시 텍스트의 활용과, 다양한 형태의 수업 모듈의 제시는 후속 연구를 통해 실현해보고자 한다.

26)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과정으로 모듈을 활용하였으나, 이 모듈식 구성은 언제든 변형이 가능하며 다른 방식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위의 표의 3단계 과정(산문쓰기-논리적 인과로 해석하기)을 수행하지 않고, 전혀 다른 방식의 교육적 활용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자신이 쓴 시 「나는」을 통해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 혹은 자아탐색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는 수업, 인성 교육, 그 외에도 자기 표현하기(발표 형식) 등으로의 활용은 가능하다.

27)

이와 관련하여 ’지적 성장을 위한 창의적 실패교육’을 논의한 김종백의 연구(2017)은 매우 주목된다. 이 연구는 창의성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실패경험이 창의성의 신장에서 매우 결정적이며, 유의미한 경험임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실패의 경험’은 본 연구가 제시하는 은유의 열거 및 선별 ⋅검토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28)

앞서 설명했듯 본 수업 모듈은 반드시 ’산문쓰기 과정’을 행할 필요는 없다. 본 수업의 모듈은 자유로운 변형, 대체가 가능하다. 논리적으로 자신의 시를 해석하는 것이 어렵다면, 반드시 ’정합적인 글’을 쓰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본인이 쓴 「나는」이라는 시를 토대로 자아정체성에 관한 고민, 자기 고백 및 표현 행위(발표), 자아 탐색과 관련된 글쓰기 등으로 충분히 활용이 가능하다. 본 연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창의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새롭게 표현하는 것’에 있다.

29)

이렇게 자신이 창작한 은유 표현을 스스로 인과적, 논리적으로 설명해내는 것은 ’은유적 사고 체계’에서 매우 자연스럽게 연계되는 방식이다. “은유는 상이한 두 구문 사이에 이처럼 연계 가능한 지표를 허용하며, 그 지표를 통해 구조적인 유사성을 산출한다.” 즉 ’나’라는 익숙한 대상과 아주 이질적인 ’대상’(은유표현들) 사이의 “공통되는 어떤 의미를 산출”(권혁웅, 2010:259)하는 과정은 학생들에게 ’창의성’의 신장과, 그것의 ’논리성, 합리성’을 확보하는 과정적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30)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 언어에서 살아있는 은유는 넘쳐나는 의미를 통해 무엇을 발견하게 하며 언어로 하여금 일상적인 기술 기능에서 벗어나 현실을 새로 기술할 수 있게 하는 창조적 힘을 갖게 한다.” (김한식, 2019: 55.)

31)

해당 사례로 든 학생은 글쓰기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학생이 아니었고 이공계열의 학생이었다. 이처럼 학과의 차이나 개인적 역량과 무관하게 살아있는 은유 쓰기가 가능함을 수차례 확인할 수 있었다.

32)

해당 사례의 학생은 체육학과 학생으로 독서 경험이 적고 글쓰기 경험이 적었음에도 위와 같은 결과물을 쓸 수 있었다.

33)

이와 관련하여 Indurkhya의 상호작용 이론이 주목된다. 그는 “닮음 창조 은유”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관습적 은유나 유사성에 의거한 은유를 구분한다. 이 이론은 일종의 투사(projection) 작용을 통해 목표와 근원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닮음을 우리가 스스로 발견하고 창조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강선아, 2016) 즉 아주 엉뚱한 대상들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새롭게 설명하고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은유의 창조적 연결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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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학생들이 창작한 관습화된 은유 표현의 예시.

대상 (원관념) 유사성 빗대는 대상 (보조관념) 학생들이 만든 은유 표현
꾸준함 성실함 느림 거북이 나는 거북이다. 거북이처럼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비록 늦더라도 나는 꼼꼼하게 길을 걸으며 내 꿈을 이룰 것이다.
이중성 양면성 광대 가면 나는 광대다. 나는 슬퍼도 웃는 척하고, 친구들 앞에서는 늘 행복한 척 한다. 하지만 가면을 쓰고 있다.
사회 광활함 중용 바다 사회는 온갖 사람들이 섞이는 바다다. 여기엔 오염수도 맑은 물도 강물도 섞인다. 우리 하나하나가 그렇게 바다를 만든다.
우울증 만성적 전염성 감기 우울증은 정신의 감기다. 현대인들은 우울증을 쉽게 앓고 이러한 감정은 감기처럼 전염된다.
지속성 성실성 힘겨움 마라톤 언덕 삶이라는 마라톤을 끝까지 완주하고 싶다. 언덕이 펼쳐져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달릴 것이다.

<표 2>

결합을 통해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은유의 예시

- 대상 (관념)A 결합 대상 (관념)B 결합의 결과로 나타난 새로운 개념 (새로운 물건 및 관념의 탄생)
a 의자 + 바퀴 휠체어
b 접착제 + 낮은 점착성 포스트잇
c 가을 + 개 같다 (속어)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매독 같은 가을”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중에서) 가을에 관한 낭만적⋅감상적인 기존의 관념을 전복하는 새로운 인식을 제공함. 삶의 고통을 새로운 시간적 개념과 공격적인 언표행위로 제시함.

<표 3>

‘살아있는 은유’를 활용하고 있는 시 텍스트 예시

시 A 시B
세상에서 가장 빨리 끝나는 폭죽을 샀다 짜장면을 먹고 단무지 한 조각을 집어 반을 잘라먹고 또 짜장면을 먹고 단무지 반 토막을 마저 먹고 물을 마시고 입을 훔치고 일어나 짜장면 값을 내고 문을 밀고 나오며 혹시 뭐 빼놓은 것은 없나 순서가 바뀌지는 않았나 너무 서두른 것은 아닌가

[그림 1]

거울 + 구두 = 구두약 광고

[그림 2]

계단 + 에베레스트= 장애인 교통권의 현실문구: “누군가에게는 이 계단이 에베레스트입니다.”

[그림 3]

사막 + 나무의 나이테 = 산림 파괴와 사막화에 관한 메시지

<표 4>

수업 모듈의 전체 과정 요약

모듈 수업의 단계 해당 내용
1단계: 개념 이해 과정 ‘살아있는 은유’의 개념적 이해. (1주차)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은유’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한 소개 과정. 이 과정에서는 앞서 언급했듯 광고 및 다양한 시 텍스트의 사례를 보여주고 학생들이 자연스럽고 직관적으로 은유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도록 한다.
2단계: 창의적 표현 과정 은유 표현을 선행시키기 (1~2주차) 은유 표현을 최대한으로 실험해보는 ‘자아 은유 열거’ 과정. (진은영 시인의 시, 「나는」을 형식적으로 활용함.) 이는 창의성을 폭발시키듯 자유롭게 열거하는 과정을 통해 생각지도 못했던 자아의 상태나 개념을 정의(definition)하고 이를 발견⋅서술⋅구체화하는 과정이다. (여기에는 진은영의 「나는」 이 외에도 다양한 은유 표현의 시들로 변형⋅활용이 가능하다.) 본 연구에서는 「나는」만을 중점적으로 활용했으나, 박성우의 「두꺼비」, 신용목의 「산수유꽃」, 박연준의 「밤, 비, 뱀」 등 필요에 따라 다른 병치 은유의 구조를 지닌 시들은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다.
3단계: 논리적 결합 과정 은유표현을 선택하고 내적 논리와 인과성을 만들어 글로 쓰기 (2주차) 열거한 은유 표현들을 종합적⋅논리적으로 엮어내는 과정. 자신이 만든 다양한 은유 표현 중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새로운 은유 표현을 선택, 배열하고. 그 은유 표현의 의미들을 새롭게 파악하여 산문의 형태로 논리적으로 설명해내는 과정.

<표 5>

수업 모듈 중 2~3단계 수행 과정 정리. (나의 시 「나는」을 쓰고, 짧은 해설문 쓰기)

단계 대표내용 구체적인 수업 과정의 내용 및 의의
1 은유표현 열거하기 (표현 선행) ‘나는’이라는 제목으로, 예시의 시처럼, 나에 관한 은유 표현을 마음껏 열거하기. - 창의성을 폭발시키는 단계. 의미를 미리 예상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브레인스토밍처럼 열거하기. 은유 표현을 개념화 과정보다 선행시켜서 표현부터 만드는 과정.
2 시 쓰기 과정 (선택 및 배열) 열거한 은유 표현 중 가장 창의적이고 새로운 표현을 선택⋅배열하여 개별 작품 「나는」을 완성시키기. (죽은 은유 및 지나치게 소통이 어려운 은유는 폐기하기) - ‘은유 표현’의 적합성을 스스로 판단하고, 의미 연관을 창조하는 과정. 이를 통해 실패한 은유를 참고하고, 자기 주도적인 실패교육을 경험하는 단계.
3 산문 쓰기 과정 (수렴 및 해석) 자기가 쓴 「나는」 이라는 시를 논리적인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기. - 합리적이고 관점에서 자신이 만든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수렴⋅전환⋅전달하는 과정. 자신의 시에 쓰인 창의적인 표현을 논리적으로 해석하고 전달하는 소통의 과정임. 이 과정에서는 논리적인 해설의 역량이 요구된다. 자신의 엉뚱하고도 독특한 은유 표현을 합리적으로 해석하고 확장하는 과정.

<표 6>

학생들의 성과물 예시

성과물1 : ‘「나는」을 쓰고, 해석하기’ 과정 (학생의 글 일부)
A 학생의 창작시 「나는」 뱃속에서 스쿼트를 하다 태어난 무, 차 밑으로 들어간 축구공, 잠들지 못해 벽에 만드는 그림자, 86년 넘게 사랑 받는 멍멍이 이름은 다롱이, 몰래 버린 일기장, (중략) 트랙을 힘차게 달리는 바람과 공기, 골라 쓰는 가면, 평생 먹을 알마겔, 구매할 수 있는 시간, 언제부터 작동이 된 건지 알 수 없는 우울 시계, 눈물 많은 사이코패스, 정착하고 싶은 홍길동.
B 창작시에 관한 해설문 (산문) 이 시 속의 ‘나’들은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작지만 강한 근육들이다. 나는 아주 튼튼한 다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뱃속에서 스쿼트를 하고 나왔다고 들을 정도로 아주 굵고 튼튼한 다리. 그렇게 튼튼한 두 다리로 잘 살아내고 싶었다. 오빠들이 아파트 단지에서 축구를 하다 주차된 차 밑으로 들어간 축구공을 가져오는 건 가장 덩치가 작은 나의 일이었다. 늦은 밤 잠들지 못할 때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으로 그림자놀이를 해주는 가족이 있었다. 할머니 댁에는 할머니의 세월만큼 많은 멍멍이들이 지나갔다. 모든 멍멍이들의 이름은 다롱이. 같은 이름을 부르는 것이 어쩌면 이별의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이었을까? (중략) 속도를 내며 달리던 트랙을 참으로 좋아했고, 오직 속도를 내야 느낄 수 있는 트랙 위의 유일한 공기를 마셔본 적이 있다. 지나고 나서야 그때를 행복이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하 내용 생략)

<표 7>

학생들의 성과물 예시

성과물2 : ‘「나는」을 쓰고, 해석하기’ 과정 (학생의 글 일부)
A 학생의 창작시 「나는」 코스모스의 잎들 중 하나, 하늘의 수많은 별자리들 중 하나, 나는 인생을 살아가는 뜻도 모르는 무식한 돌덩어리, 돌덩어리 밑에 있는 수많은 모래들, 나는 떼 묻은 헌 옷들 사이에 있는 새 옷, 나는 눈 맑은 사슴, 몸속의 한 떼, 몸속 수많은 세포들 중 하나, (하략)
B 창작시에 관한 해설문 (산문) 시의 처음에서 코스모스 잎과 별자리를 언급한 이유는, 내가 6인 가족 중 막내이기 때문이다. 시를 쓰면서 6개를 상징하는 물체가 없을까 하다가 코스모스의 잎이 6개인 것을 확인하고 글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인생사는 뜻도 모르는 돌덩어리’라고 언급했는데 이 문장은 사실 나의 이름을 풀어쓴 것이다. 내 이름은 뜻 지 자에, 옥돌 현 자를 쓰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뜻과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부모님은 최대한 안전한 삶을 바랬고 나는 아무거나 도전을 시도해봄으로써 무리한 도전을 해보고 싶은 아이였다. 인생에 답은 없지만 부모님의 말을 좀만 더 수용했다면 뜻을 더 알 수 있었지 않았을까 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그리고 ‘나는 떼 묻은 헌 옷들 사이에 있는 새 옷, 나는 눈 맑은 사슴’이라는 글을 쓴 이유는 부모님의 삶에 희망적이고 순수한 아이이고 싶기 때문이다. 좀 더러워 보일 수 있겠지만 떼를 이 글에 쓴 이유는 나는 자주 부모님이 목욕을 할 때 등의 떼를 밀어준다. 그 떼를 볼 때마다 더럽다는 생각보다는 나로 인해 고생한 흔적으로 보이고 삶의 피로가 축적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시로 썼다. 우리 몸 중에서 개인적 생각으론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단위가 세포라고 생각한다. 이에 나는 부모님의 한 세포로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기 때문에 ‘몸 속 수많은 세포들 중 하나’라고 썼다. (하략)

<표 8>

학생들의 성과물 예시

성과물4 : ‘「나는」을 쓰고, 해석하기’ 과정 (학생의 글 일부)
A 학생의 창작시 「나는」 경비실 뒤의 별꽃무리, 책을 찢어 만든 귀마개, 껍질이 너무 딱딱한 미루나무, 아무도 모르는 오솔길, 돌을 끼워 놓은 녹슨 문, 오래된 트로피 광택제, 당신의 눈물, 새벽에 먹는 식사, 풀색의 꿈, 갈망하는 눈빛, 교실 바닥에 구르는 잠, 차가운 복도의 신문지, 손에 잡힌 무지개, 체로 거른 기름방울, 쉽게 물들어 우는 도화지, 100% 에탄올, 갑자기 날아온 비눗방울, 담길 바에야 증발해버리는, 문이 열린 유리온실, 나는 산 아래의 사람.
B 창작시에 관한 해설문 (산문)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책읽는 것을 좋아했고, 학교가 끝나고 놀러가지도 않아서 혼자 하교하곤 했습니다. 짧은 다리로 혼자 하교하는 길은 무척 길었지만 심심하지는 않았습니다. 길가에 핀 들꽃이나 곤충들을 보면서 다녔기 때문이죠. 그중 아파트 경비실 뒤에 핀 별꽃을 좋아해서 그 앞에 오래도록 앉아있던 기억이 납니다. 공부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원하는 것도 늘 쉽게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를 편애하시는 선생님들과 이를 따갑게 바라보는 또래들의 시선은 대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때마다 책장을 넘기면 뒤에서 들리는 소리들을 무시할 수 있었고, 저는 “책을 찢어 만든 귀마개”를 끼고 그 속에서 안온을 찾았습니다. 점점 저는 공부에 집착했고 그런 제 자신에 도취하면서 마치 곁가지 없이 위로만 자라는 “미루나무”처럼 인생은 혼자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는 또래의 관심사와는 거리가 멀었고, 공부에 관심이 없는 친구들에게 성적 고민을 털어놓기란 어려웠습니다. 이전에 숲속을 걸으면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 아닌, 외진 곳에 혼자 남겨진 “오솔길”이 무척 외롭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아무도 모르는 오솔길”처럼 외로웠고, 열리지 않도록 “돌을 끼워 놓은 녹슨 문”처럼 속 이야기를 잘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성과에 집착했으며 학년이 올라갈 수록 이전보다 공부가 잘 안되는 것에 괴로워했습니다. 이전에 이루어 놓은 것을 계속 곱씹으면서, 마치 진열장의 “오래된 트로피”(오래된 트로피 광택제)들을 매일 꺼내 닦아주듯이 과거의 저를 그리워하면서도 질투했습니다. 제 유일한 이해자는 저의 어머니였습니다. 모든 힘든 상황에서도 이겨내도록 도와주셨고, 돌아보니 저보다 더 괴로웠던 분은 어머니셨던 것 같습니다. “새벽에 먹는 식사”는 늘 새벽에 공부하고 돌아왔을 떄 주무시다가도 항상 기운내라고 밥을 차려주셨던 어머니의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덕분에 저는 “풀색의 꿈”을 이루길 “갈망하는 눈빛”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잠을 거의 자지 않아서 학교에 가면 늘 걸음이 무거웠고, 저는 이는 “교실바닥에 구르는 잠”이 제 발을 잡아당긴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자율학습 시에도 교실이 늘 시끄러워서 겨울에도 복도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서 공부하기도 했는데, 뛰쳐나가고 싶던 저를 항상 붙잡아두는 것은 부모님의 응원과 이루고 싶은 꿈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이 인생의 끝이자 목표는 아니었지만, 처음 대학에 갔을 때에는 마치 신기루같던 “무지개”(손에 잡힌 무지개)가 고체가 되어 손으로 잡아낸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이제서야 저는 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도전하기를 좋아하고, 각 역할마다 이름을 붙인다면 수많은 이름이 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수많은 역할을 가진 사람들이 결국 저인 것처럼, 체로 걸러 흩어져도 하나로 뭉쳐지는 “기름방울”(체로 거른 기름방울)이 저와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쉽게 흥미를 가지고 시작에 망설임이 없다는 것은, 시들해지는 것도 쉽기 마련입니다. 바닥에 흘리면 바로 증발해버리는 “100% 에탄올”처럼 저는 변덕스러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타인의 슬픔에도 쉽게 공감해 눈물을 흘리는 저는, 마치 물방울에도 쉽게 울어버리는 “도화지”(쉽게 물들어 우는 도화지)와도 비슷합니다. 대학에서 마음이 맞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면서 성격도 활달하게 바뀌었고, 팡팡 터지는 비눗방울과 비슷하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남녀노소 “갑자기 날아온 비눗방울”에 즐거워하듯이 무리에서 사회자 역할을 자처하는 제가 즐겁다는 평가가 인상깊게 남았었습니다. 저는 규칙이나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통에 “담길 방에야 증발해버리는” 액체처럼 자유로운 사람이고 싶습니다. 학생 때 저를 돌아보면 부모님의 보호 속에서 안전하게만, 그리고 저의 세계라는 우물 안에서 오직 하나만 보면서 달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유리 온실”은 열렸고, 저는 밖의 세상에 한 발자국 내딛으며 조금씩 변하는 제 모습을 체감했습니다. 하나의 산을 넘은 저는 또다른 산의 바닥에 서 있으며, 새로운 산을 오르는 등산객이 될 것입니다.

<표 9>

학생들의 성과물 예시

성과물5 : ‘「나는」을 쓰고, 해석하기’ 과정 (학생의 글 일부)
A 학생의 창작시 「나는」 고리 없는 토성, 겨울에 내리는 장마, 풀 묻은 가위, 꽁꽁 언 등산로, 순간의 악행, 예고 없는 심호흡, 습관적 러브레터, 이름을 막 지운 유실물, 호기심 많은 탈취제, 불구의 몸부림, 욕조 속 전기 콘센트, 누구에게나 질타 받는 유행가, 한지로 메운 벽, 머드 축제 속에서의 흰 양말, 백두산 위의 지진 대피소, 화상 입은 익사자, 투명한 안개, 개미집 속 샹들리에, 더듬거리는 다짐, 그러나 묵묵히 안색을 바꾸는 매일의 한강.
B 창작시에 관한 해설문 (산문) 이 시는 내가 삶을 대하는 방식, 내가 겪었던 뭉툭한 일화들을 짧게 담고 있다. 나는 ‘그럭저럭’의 태도를 바탕으로 인생을 살아온 탓에 고생 끝에 낙을 본 감동적인 성공 일화나, 눈물을 빼는 특별한 사연이나, 기적 같은 일을 겪은 경험 등이 딱히 없다. 만일 누군가가 읽는다면 지루해할 것이 분명한 이 글은, 한때 나에게 전부였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토성은 일반적인 행성의 모습과는 달리 주변에 고리를 두르고 있다는 특이점을 바탕으로 널리 알려진 행성이다. 이러한 토성의 모습을 나에게 빗대어 본다면, 나는 마치 “고리 없는 토성” 이다. 남다르게 앞세울 만한 정체성이나 특색을 일체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는 각자의 궤도를 찾아 질주하고 비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보며 내 모습이 꼭 “겨울에 내리는 장마” 같다고 생각했다. 알다시피 장마는 여름 철에 발생하는 자연 현상의 고유한 이름이다. 이처럼 나는 줄곧 내 삶 자체가 꼭 있으면 안 되는 곳에 꾸역꾸역 머무르는 이방인이나 방랑자의 처지와 비슷한 것 같다고 느꼈다. 나는 “풀 묻은 가위”처럼, 굳이 가져다 쓸 필요 없는 무용한 존재였다. 마음을 먹는다면 쓸 수야 있겠지만, 주변에 멀쩡한 가위들을 두고 풀 묻은 가위를 닦아서 쓰고 싶어하는 번거로운 사람은 당연하게도 없었다. 말과 행동이 아니더라도 눈빛에서 여실히 알 수 있었다. 내 앞날은 “꽁꽁 언 등산로”처럼 아득했고, 주어진 길마저 잘 오르지 못한 나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미끄러져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그 등산로 입구, 그러니까 새로운 도전과 기회의 입구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예고 없는 심호흡”을 시작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갑작스런 심호흡과 같은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꽤나 벅찬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변하지 않는 진심은 드물었고, 우리는 드물지 못해 겨우 “습관적 러브레터”가 되었다. 감정이 이성을 닮아가고 이성은 감정을 닮아가 마침내 둘이 뒤섞였을 때, 나는 예고되지 않은 심호흡은 오히려 숨이 차게 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눈빛 뿐만이 아닌 행동과 말로 고스란히. 대개의 경우 “순간의 악행”은 꾸준한 선행보다 끈질기게 기억된다. 만남은 마치 “순간의 악행”이었다. 모른 척 곁을 내어준 대가로 나는 그 사람의 “이름이 방금 막 지워진 유실물” 이 되어 나뒹굴었다. 잔향처럼 남은 기억들을 ‘탈취’하려 맨몸으로 꽁꽁 언 등산로에 올랐지만, 그저 “불구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호기심 많은 탈취제”는 내 곁에 남는 법을 몰랐다. 제 볼일을 잊은 채, 잡을 새도 없이 멀리 멀리 떠나가고 흩어졌다. 탈취제 없이도 멀쩡히 생활할 수 있게 된 건 대략 2년이 지난 후였다. 그 2년의 기간을, 나는 “욕조 속의 콘센트” 라고 요약하고 싶다. 감전의 충격과 맞먹는 미련의 파장이 두려우면서도, 몸을 담그고 있는 욕조에서 차마 벗어날 수 없던 시간들은 나에게 온갖 부류, 온갖 정도의 비참함을 선사했다. 결국 콘센트의 수명은 다했고, 시간은 약효가 아주 느린 약 노릇을 했다. 시간이 흘러, 대학 원서 접수 날을 앞두고 나는 지금의 내 전공인 철학에 한창 빠져있었다. 나에게 있어 철학은 시도 때도 없이 듣고, 들리는 유행가였다. 비록 “모두에게 질타 받는 유행가”였지만. “한지로 메운 벽” 너머 걸러지지 않은 목소리들은 하나같이 나를 만류했다. 앞날을 설계하고 철저히 계산하는 사람들 속에서 난 내가 “머드 축제 속에서 흰 양말”을 신은 애처럼 처한 상황을 인식할 줄 모르는 멍청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먹고 싶은 음식은 한 달이 지나도 무조건 먹어 줘야 하는 지독한 사람이었다. 예로부터 나의 관심이 닿는 것들은 모두 “백두산 위의 지진 대피소” 꼴이 되었다. 그러니까, 내 철학 사랑은 이미 아무도 쉽사리 범접하고 개조할 수 없는 영역이 된 지 오래였다. “한지로 메운 벽” 은 끝내 찢어지지 않았고, 나는 벽 너머 들리는 선명한 만류의 목소리들을 좋게 말하면 뿌리 삼아, 나쁘게 말하면 소음 삼아 뻔뻔하게 철학과에 원서를 넣었다. 그렇게 나는 이 학교에 오게 되었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