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시대 역사 교양교육 -기후사를 통한 역사교양의 융합적 전환의 모색

History General Education in the Era of Convergence : Seeking Change by Climate History

Article information

Korean J General Edu. 2023;17(5):11-24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23 October 31
doi : https://doi.org/10.46392/kjge.2023.17.5.11
박혜정
연세대학교 교양교육연구소, 연구원, morgantown@yonsei.ac.kr
Research Fellow, Reserach Institute for Liberal Education, Yonsei University
이 논문 또는 저서는 2022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22S1A5C2A04093488)
Received 2023 September 20; Revised 2023 October 03; Accepted 2023 October 16.

Abstract

역사교양의 융합적 전환은 분명 교양 역사학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마당에 교양과 융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격이지만, 기후사는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효과적인 사냥 도구로 쓰일 수 있다. 본고에서는 기후사의 역사교양적 전환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논의하였다. 먼저, 역사 콘텐츠의 생래적인 융복합적 성격에 힘입어 아날사학, 지구사, 빅히스토리로 꾸준히 이어져온 융합적 실험과 새로운 방법론적 혁신을 살펴봄으로써 역사학의 융합학문적 성격을 확인하였다. 이어진 장에서는 융합학문의 첨병으로 회자되는 빅히스토리가 아닌 기후사에 주목하여 왜 이 새로운 역사학 장르가 역사교양의 융합적 전환을 견인할 더 큰 잠재력을 갖는지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는 기후사를 융합과학이 아닌 융합교양 콘텐츠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으로 고려해야 할 세 가지 논제로서 기후과학, 기후 담론, 지구시스템을 키워드로 다루었다. 종국적으로 본고에서는 기후사가 학생들이 작금의 학술적, 정치적 담론과 거리를 두고 실제 역사적 사건을 통해 조망, 판단함으로써 새로운 성찰, 판단, 대응 능력을 함양할 수 있는 최적의 융합교양 콘텐츠라고 주장하였다.

Trans Abstract

Although making the history general education convergent can be compared to hunting two birds with one stone - due to the fact that history general education is not well established yet - climate history could serve as a pertinent tool for doing this sort of hunting. This paper discusses the multifarious aspects of climate history for convergent general education in three steps. The first section reviewed the convergent experiments and new methodological discussions continued from Annales and global history through ‘Big History.’ In result, it confirmed the inherently convergent character of history content itself. In the following section, this paper payed full attention to climate history, not Big History, which is often cited as a front runner of convergence science. It also discussed why this new field of history has a bigger potential to lead the convergent shift of history. The last section was devoted to three subject matters, i.e. climate science, climate discourse, and the earth system, which need to be considered in the process of developing climate history as a convergent general education content, not as the content of a convergence science. Eventually, this paper came to the conclusion that climate history is the best content for convergent type of general education, due to the possibility that it could lead students to develop a new thinking and responding skill by keeping distance from the current academic and political discourses and by making their own judgments based upon historical events.

1. 서론: 역사 교양교육의 현주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향한 교육혁명, 특히 교양교육의 강화를 위한 융복합적 콘텐츠 개발과 창의적 교수법 개발 논의가 거의 모든 분과학문에 걸쳐 활발히 진행되고 상전벽해급의 혁신이 회자되지만, 역사교양교육계는 무풍지대처럼 조용하다. 문사철이 주도해온 인문 교양교육과 과학 교양교육 간의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에서 문학이나 철학에 비해 역사학은 여전히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의 안정적인 칸막이 뒤에 안주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국내 대학에 미국 교양교육 모델이 도입되면서 <서양문명사(Western Civilization)> 유형의 교과목이 대표적인 역사 교양교과목으로 정착한 이래로, 필자가 소속해있는 연세대학교의 경우, <한국문명사>와 <동양문명사>가 추가되었다. 이러한 문명 개관적인 교양교과목 외에 다양한 역사 주제를 다루는 강좌들이 신설되었다지만, 기본적으로 삼분과 체제에 기댄 역사교양 콘텐츠가 압도적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와중에 서양문명사를 필수 교양교과목으로 도입했던 미국의 역사 교양교육은 국내와 매우 대조적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2016년 미국역사학회에서 학과장 혹은 사학과 행정관계자를 대상으로 5년 넘게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로 같은 구조의 다양한 교양교육 모델 속에서 역사학은 도처에 편재해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커리큘럼 속 역사학이 담당하는 기능에 대한 정의가 매우 빈약하여서 역사교과적 정체성의 소멸 경향을 뚜렷이 보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물론 가장 전통적인 코어 커리큘럼 모델에서는 미국사와 세계사가 여전히 가장 일반적인 교과목으로 공고히 자리하고 있다. 코어 커리큘럼의 강자 중 하나인 시카고 대학의 서양문명사와 세계문명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1960/ 70년대 이래 가장 지배적인 교양교육 모델로 자리잡은 배분이수제 시스템에서 역사교과는 인문학 혹은 사회과학 범주로 편입되면서, 특히 시민교육(education for citizenship)의 일부로 정착한 경우가 많다. 특기할만한 경향은 시민교육에서 중시되는 다양성 교육이 역사 콘텐츠를 대체하거나 누락시킨 채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역량 중심의 소중핵 커리큘럼 구성을 특징으로 하는 스레드 내지 클러스터형 모델이나 콘텐츠와 학과보다는 학습성과와 목표 중심으로 구성된 좀 더 복잡한 루브릭형 교양교육 모델로 들어가면 역사교과목은 더욱 강하게 타교과 영역과 통합된다. 이 경우에 학생들은 굳이 역사교과를 선택하지 않고도 소중핵 역량을 성취하거나 자신의 학업 목표에 맞는 교양을 쌓을 수 있다(Jones, 2020).

역사교과적 정체성이 교양교육에서 점차 희미해져가는 데 대한 역사학계의 비판적인 목소리도 주목할만하지만, 대세는 이미 불가역적인 수준으로 뚜렷해 보인다. 차별적인 역사적 콘텐츠보다 역량을 우선하는 커리큘럼 구성이 미국대학협회(AAC&U)에서 2005년 이래 10년간 추진한 LEAP(Liberal Education and America’s Promise) 캠페인을 통해 대폭 강화되어왔기 때문이다. LEAP으로 축약되는 필수 학습성과는 빅퀘스천과 연계된 다양한 분야의 지식 축적, 문제해결력 향상으로 수렴되는 지적, 실천적 역량 함양, 공동체 활동 및 실제 문제 관련 비교과 활동을 통한 인적, 사회적 책임감 강화, 전공과 교양을 가로지르는 학업성취와 종합을 포함한 통합/응용지향적 학습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1),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교차적 통합을 내세우는 빅히스토리는 바로 이러한 LEAP 역량 성취에 최적화되어있는 교과목이라는 논리로 대학 교양교육의 영토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대표적인 신생 역사교양 콘텐츠에 해당한다(Benjamin, 2016, pp. 120-121).

빅히스토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청하는 융합적 사고력 함양을 위한 최적의 콘텐츠를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 미국 못지않게 국내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김기봉, 2022).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위한 과학교양 관심이 폭증하면서, 인간의 모든 학문을 자연과학 중심으로 총동원하는 빅히스토리가 매우 선도적이고 혁신적인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는 것도 일조하고 있다. 그러나 빅히스토리가 서점가의 일반교양 차원을 넘어서 대학의 교양교육으로 성공적으로 입성할지는 미지수이다. 융합적 콘텐츠로 보나 다루고 있는 시공간적 규모로 보나 학생들이 대학 4년 동안 역사 교양교과목 하나만 이수하고 졸업해야 한다면 빅히스토리가 최선의 선택이라는 논리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등교육과정에서와 달리 좀 더 전문적인 콘텐츠를 보장해야 할 대학교육에서는 빅히스토리를 제대로 가르칠 교수자가 빈곤하고, 팀티칭도 여의치 않다. 사실 빅히스토리가 LEAP 역량 함양에 최적화되어있다고 주장할만한 이유는 교수자가 선도적 학습자(lead learner)의 역할을 맡고 실제 수업은 학생 프로젝트 기반으로 운영되는 ‘리틀 빅히스토리’라는 빅히스토리 특유의 교수법에 있다. 그러나 국내 대학의 빅히스토리 수업은 거의 모두가 강의형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교양교과목이 대체로 대형화되어있기 때문이다. 현재 빅히스토리가 주로 자연과학자들에 의해 교수되고 있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빅히스토리의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교양교육의 융합적 혁신을 주도할 플랫폼으로 제대로 기능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견된다.

본고는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 외에도 빅히스토리를 반드시 역사교양의 가장 미래지향적 플랫폼으로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중요한 것은 융합적 사고력의 함양이지 빅히스토리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삼분과 체제에만 얽매여 있는 역사교양의 융합적 전환의 길을 모색함에 있어서 자연과학 비중이 압도적인 빅히스토리를 최선의 출구로 삼기보다 역사학 자체가 본래 융복합적 학문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미래지향적인 융합교양으로서의 역사교양의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본고는 21세기 기후위기의 시대에 대학을 넘어 대중교양적 관심사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기후를 역사교양의 융합적 전환의 모두로 삼아서 기후교양을 21세기 기후위기 시대의 삶을 준비할 ‘생존교양’의 플랫폼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본문의 첫 장에서는 사학사적으로 아날 역사학, 지구사, 빅히스토리를 살펴보며 역사학의 융복합적 면모를 확인하고, 이어지는 장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역사교양의 융합적 전환을 위한 플랫폼으로서 기후사를 검토할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기후교양의 내용적 핵심을 포스트휴머니즘적 관점과 연결하여 확장적 차원에서 성찰하고자 한다.

2. 융복합학으로서의 역사학

역사학이 다른 학문과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의 종합학문적 성격에 있다. 철학과 더불어 가장 긴 학문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역사학 역시 근대학문의 전문화 추세 속에서 이데올로기, 국경, 연구방법, 대상에 따른 분화적 발전과정을 겪었다. 그럼에도 인간의 인식과 경험을 총망라하는 종합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의 본질이 완전히 소실된 적은 없었으며 시대적 계기와 조건에 따라 새로운 조합의 융복합적 실험을 지속해왔다.

근대 역사학의 융합적 전환을 위한 유의미한 첫걸음은 아날 역사학이 내디뎠다. 랑케 사학이 역사학을 문학과 철학에서 분리시켜 전문학문으로 탈바꿈시켰다면, 아날학파는 역사학의 지평을 확장하는 방식을 통해서 역사학에 대한 과학의 도전에 응전했다. 랑케 사학을 계승한 독일의 역사학은 뒤늦게 1960년대에 가서야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역사학과 접목시키지만, 프랑스의 아날학파는 거꾸로 역사학을 사회과학 속으로 들여가 인간 과학(science de l’homme)으로 만들었다. 아날학파로 분류되는 역사학자들은 아날학파라는 명칭을 꺼리고 아날정신을 더 강조하는데, 그 핵심은 1929년 창간된 ‘사회경제사연보(Annales d’histoire économique et sociale)’에서 학제간 연구로 지칭되었다. 아날은 역사학의 학문적 경계를 고집하기보다 19세기 중반 이래로 급속히 팽창하던 사회과학과 융합하여 과학적인 방법론에 의한 ‘전체사(histoire totale)’ 서술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아날이 선택한 길은 앙리 베르가 1900년에 창간한 ‘역사종합잡지(Revus de synthèse historique)’의 정신과 뒤르켐 학파의 규칙과 법칙에 기초한 통일성의 원리를 통합하는 것이었다(르펠, 1994, pp. 170-174).2) 전자의 실증주의적이고 절충주의적 지향성이 20세기 이후 화두가 된 불확실성에 좀 더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면, 후자는 결정론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예외성보다 보편적 법칙과 규칙을 지향할 수 있는 실용적인 도구들을 제공해주었다.

이후 아날정신의 포럼에 해당했던 잡지의 명칭은 두 번 더 바뀌지만 아날은 오늘날까지도 역사학을 중심으로 경제학, 사회학, 인류학, 언어학, 기호학, 정신분석학, 문화예술학을 아우르며 가장 폭넓은 학제간 연구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그 덕분에, 독일의 사회사가 1990년대에 들어와 문화사적 패러다임 전환 속에 위기를 맞았던 것과 달리 아날학파는 문화의 물질적 토대를 강조하는 아날 특유의 문화사, 미시사, 망딸리떼 역사와 같은 영역들을 개척하며 여전히 건재하다. 오늘날 기후위기의 시대에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기후사가 아날 2세대 학자로 분류되는 라뒤리(E. Le Roy Ladurie) 연구로부터 시작된 것 역시 이러한 융합지향적인 아날 정신의 산물이었다.3)

아날 이후 역사학의 또 다른 융합적 전환의 기회는 지구사(global history)의 부상을 통해 찾아왔다. 아날 역사학이 과학혁명 이래 높아진 과학의 도전에 학제적 연구를 통해 응전하고자 한 시도였다면, 지구사는 1990년대 동구권 몰락 이후 본격화된 지구화 시대에 대한 역사학적 대응이었다. 아날 이후의 역사학은 대체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구조, 비교, 환경 등을 중심축으로 삼는 방법론적인 분화와 전문화의 길을 걸으며 아날 정신을 상실해갔다. 이후 역사학의 전문적 분화는 일국사 패러다임으로 수렴되어 강화되었다. 좁은 의미의 문화를 인간이 만들어낸 의미체계 자체로 확장하면서 패러다임의 문화적 전환을 선언한 1980년대 포스트모던 역사학도 일국사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바로 그 때문에 탈근대 논의는 탈유럽중심주의 논의로 연결되지 못했다. 경계가 있을 수 없는 자연환경을 대상으로 삼는 환경사조차 국경에 따라 편리하게 연구 대상을 나누어 깊이 다루는 데 열중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래의 지구화는 마침내 일국사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도전을 제기하였다. 이제 역사학은 갑자기 출현한 하나의 세계의 전체성과 패턴을 설명하면서도 이를 추동한 변동성, 접합성, 혼종성을 동시에 규명해야 했다.

기본적으로 유럽의 보편사와 통합사(ecumenical history)4)의 전체성 추구의 전통에서 출발하지만, 지구화 시대의 역사학은 하나의 원칙에 의한 통일성이나 보편과 특수로 손쉽게 나뉠 수 있는 분류체계에 더 이상 기댈 수 없게 되었다. 전 세계가 전대미문의 속도와 강도로 하나로 연결, 통합되는 역동적인 변화 속에서 태동한 새로운 역사학이기 때문이다. 지구사의 도전은 결국 전체성을 복잡계적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는 데 있다. ‘하나의 세계’에 대한 유포리아가 널리 확산되어있던 1995년, 시카고 대학의 가이어(Michael Geyer)와 미시간 대학의 브라이트(Christian Bright)는 그 누구보다 지구화의 복잡계적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보며 새로운 역사학 패러다임을 요청했다. 이들은 한편으로 전 지구적 통합이 가속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차이의 증식과 그로 인한 폭력 증가가 함께 진행되는 현상에서 지구화의 진면목을 발견했다. 가이어와 브라이트는 세계 전역의 복수의 과거를 소환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로 꼬아 엮은 새로운 종류의 세계사를 이러한 미증유의 시대적 변화상에 부응할 유일한 역사 패러다임으로 주장하였다(Geyer & Bright, 1985, pp. 1042, 1052-1053).

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견인할 주자로 국제관계사, 거시사, 비교사, 환경사와 같은 기성 역사학 분야가 뛰어든 것은 물론이고, 민족, 문화, 지역을 횡단하는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 교차역사(Histoire croisée)와 같은 방법론적 혁신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의 경향이 뚜렷해졌는데, 세계 전체에 대한 전체 역사를 진정 탈중심적이고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관점에서 쓰기를 열망하는 학자들이 점차 ‘거대한,’ ‘거시적,’ ‘보편적’과 더불어 ‘지구적’이란 형용사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지구사는 이처럼 여러 역사학 분야들과의 긴밀한 상호교류와 협력을 통하여 부상할 수 있었고, 지금도 이들과의 학문적 공생 관계 속에서 융합적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박혜정, 2022b, 1장).

그럼에도 융합 역사학의 대미는 지구사가 아니라 빅히스토리에 의해 장식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빅히스토리의 창시자인 크리스천(David Christian)은 아예 빅히스토리야말로 진정한 지구사라 주장한다(Christian, 2000, p. 132). 인간이 발전시켜온 모든 지식체계를 총망라하여 미래세대가 필요로 하는 창의적 지식을 창발시키겠다는 아젠다에 비추어 볼 때, 빅히스토리는 융합학문의 첨병이라 할만하다. 빅히스토리는 비코 이래 굳어진 사학사적 전통, 즉 역사연구의 대상에서 자연을 제외하고 인간이 창조한 문화에만 한정한다는 불문율을 과감히 깨뜨림으로써 역사학의 본격적인 융합적 전환의 포문을 열었다. 인간 기록에만 의존해온 역사학의 편협한 오만은 지구상의 만물에 역사가 존재하고 이것이 인간의 역사와 근본적으로 동일한 법칙을 따라 전개되어왔음을 기본 전제로 삼는 빅히스토리에 의해 붕괴될 수밖에 없다. 결국 빅히스토리로서의 역사의 동력은 인간 의지, 문화, 구조/체제적 변화, 언어 혹은 인식 패러다임이 아니라 우주 공간에서 탄생한 보편법칙, 즉 우주 빅뱅의 순간에 확정된 복잡성 증가의 법칙에 있다(Jinkina et al., 2019, p. 3).

이러한 빅히스토리 서사에 대해 역사학자가 느끼는 딜레마는 자명하다. 한편으로 인간과 인간이 만든 의미체계로서의 문화를 멀리 벗어난 전혀 다른 동인을 역사를 움직이는 본질적인 힘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낯섬을 넘어서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세로 대변되는 지구시스템 위기의 시대에 기존의 인간중심적인 역사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극복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빅히스토리의 혁명성은 자연과학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역사학의 융합적 전환에 있지 않다. 오히려 역사학이 논해온 모든 인식 전제 자체를 포기하고 프랑스 과학철학자 라투르(Bruno Laotour)가 제시한 ‘물질적 전환’을 요청한다는 점에서 화두의 급진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엄격한 의미의 융합의 관점에서 들여다 볼 때, 빅히스토리는 겉모습만큼 융합적이지 않다. 우주물리학으로부터 역사학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학문을 망라하지만, 8개의 ‘임계점’이라 부르는 시대구분에 따라 서로 다른 학문군이 정렬되는 마트료시카 인형과도 같은 서사구조 때문이다. 각 학문의 논리와 성과가 상충하지 않고 조화롭게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를 완성한다는 의미에서 크리스천은 빅히스토리를 마트료시카 인형에 비유하지만, 각 인형의 형체를 유지하면서 겹겹이 포개는 것을 융합이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빅히스토리의 이러한 비융합적인 성격은 자연과학이 지배적인 전반부와 인문사회과학이 지배적인 후반부의 대립적인 구성 자체에서 잘 드러난다. 특히 근대문명이 시작되는 마지막 임계점의 이야기는 기존의 세계사/지구사에서 해온 이야기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3. 역사교양의 융합적 전환을 위한 기후사

역사는 그 자체가 융합적인 콘텐츠이고, 앞장에서 살펴본 대로 근대 역사학이 축적해온 융합학문적 명맥 역시 견고한 만큼, 역사교양은 다른 인문교양보다 융합적 전환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 특히 기후위기의 시대를 맞아 갈수록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기후사는 역사교양의 융합적 전환을 주도할 최적의 위치에 있다. 우선, 기후사는 역사학 내부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성장해온 환경사의 첨병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환경사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환경사의 한 분야가 아니라 처음부터 융합학문으로 태동하였다. 기후사는 오늘날 관점으로도 상당히 획기적인 자연과학과 인문학 간의 학제적 융합이 1970년대 유럽에서 ‘역사기후학’이라는 이름 하에 일어나면서 탄생하였다. 앞서 각주 5번에서 언급한 라뒤리의 유명한 연구서 『서기 1000년 이후의 기후사(Histoire du climat depuis l’an mil)』(1967)가 그 직접적인 산파 역을 담당하였다. 라뒤리는 이 책에서 해안선 얼음시트의 위치와 포도수확일을 활용하여 소빙하기 기후를 상세히 복원함으로써 소빙하기에 대한 역사학적 관심을 크게 자극하였다. 아날 역사학자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은 인간과 환경 간의 변증법적 긴장에 집중하는 환경사적 문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기본적으로 아날 역사학은 장기지속 역사에서 지리적 구조를 중시하는 브로델의 지리역사(géohistoire)와 구조주의 사학을 가장 큰 특징으로 삼기 때문이다. 라뒤리의 관심 역시 움직이지 않는 지리적 구조의 일부로서의 기후에 쏠려있었지, 기후변화가 인간사에 장기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데 있지 않았다. 그는 프롱드의 난을 1640년대의 불리한 기상조건으로 설명하는 것을 매우 불합리한 태도로 비판하였다(Ladurie, 1988, p. 289).

그에 비해 빙하학자, 화분학자, 기후학자, 역사학자 등이 협력하여 과거 기후를 복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역사기후학은 라뒤리와 달리 기후결정론적인 서술에 기우는 경향을 보여왔다. 역사기후학이라는 이름에서도 보듯이 학문적 방점이 기후학에 기울어있었기에, 역사학자들은 주로 자연과학자들의 프록시데이터를 역사기록을 통해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최근 기후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과거 자연적인 기후사의 복원 작업이 거의 자연과학자들의 소관으로 넘어가면서 역사학자들은 기후조건에 대응해온 인간의 집단적 복원력(resillience) 연구로 빠르게 초점을 옮겨갔다. 오늘날의 기후사 혹은 기후사회사와 같은 명칭은 이처럼 달라진 거리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비록 역사기후학에서 기후(사회)사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자연과학자들과의 결별이 일어나긴 했지만, 융합적 문제의식까지 소멸한 것은 전혀 아니다. 기후사는 역사기후학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학문과의 방법론적 이접을 부단히 시도해온 아날 역사학의 융합 전통의 적자에 해당한다. 기후의 ‘역사’라는 명칭을 달고 있지만, 여기서 역사란 기존 역사학에서 회자되는 역사의 의미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아날의 융합 정신이 일찍이 역사학이 아니라 인간과학의 구축을 목표로 분과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을 해체적으로 해석하고 접근했다면, 기후사적 융합은 역사 자체를 해체적으로 해석하고 접근할 것을 요청한다. 이러한 새로운 역사 이해는 역사기후학의 유산이기도 한데, 역사기후학이 기후결정론으로 자주 기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역사 변화를 견인하는 주체로서 기후시스템과 바이러스균을 인간과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사서술에서 인간사, 특히 근대사 서술의 특징적인 주체(subject) 개념과의 극명한 결별을 의미한다. ‘아래에 놓여있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subject로서의 주체는 다분히 루소의 일반의지에 의한 사회계약을 전제로 한 근대적 개념이다. 즉 일반의지에 따라 합의한 헌법과 같은 사회적 약속과 강제성 아래에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위치시킨다는 근대적인 통치 개념의 산물인 것이다. 통치자의 일방적인 강제성을 벗어나 스스로를 통치하는 국민주권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상당한 진보적 자율성을 내포하지만, 그럼에도 subject로서의 주체는 ‘아래’라는 위치값을 전제로 한 기본적으로 위계적 개념이기도 하다. 기존의 역사서술에서 인간 주체를 subject 외에 대리인(agent)으로 표현해온 용례가 그 방증이다. 사학사적으로 인간은 중세사학에서는 신, 칸트와 헤겔에서는 이성과 보편정신, 근대사학에서는 이데올로기와 구조의 대리인이었고, 포스트구조주의에 와서도 인간은 언어적 구조(langue)의 대리인으로 파악되었다. 이들 신, 보편정신, 이데올로기적 가치, 구조, 언어야말로 보이지 않는 진정한 동인이며, 인간은 이를 구현, 실행, 대표하는 대리인에 불과하다는 인식 전제가 지배해왔다(Fitzhugh & Leckie, 2001, pp. 68-73).

그러나 실제 역사 현장에서 변화를 추동하는 물리적 힘 자체로서의 행위성(agency)과 이러한 근본적 동력의 대리인으로서의 agent를 항상 뚜렷이 구분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자연사와 인간사의 근본적인 융합을 통해 훨씬 다양한 인자들을 모두 역사적 변화의 중요한 동력으로 파악하려는 빅히스토리, 깊은 역사, 기후사의 분야에서는 기존의 주체 개념 대신에 행위성이란 표현이 훨씬 자주 등장한다. 주체 개념 대신에 행위성을 사용하면 비인간적 행위성까지 아우를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간사에 국한되지 않는 모든 것의 역사로 역사 개념을 확장하는 데에도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중요하게 설명되어야 할 것은 다양한 동인과 이들 사이의 복잡한 피드백 관계이지 무엇이 더 근본적인 동인인가를 위계적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다. 라투르가 주체를 네트워크 개념으로 환산하여 인간, 생태계, 기후, 바이러스균, 기계, 문화, 제도 등을 통틀어 ‘산종적 행위성(distributed agency)의 네트워크’를 운위한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Heise, 2015, p. 40).

이렇게 볼 때 기후사의 방정식은 기존 역사학의 그것보다 훨씬 복잡할 수밖에 없고, 이 방정식의 가장 정확한 해(解)에 근접하기 위해서 학제적 융합연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조건이다. 따라서 기후사는 역사학의 한 장르이지만 고기후학으로부터 인류학과 역사사회학에 이르기까지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학제적 연구성과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이러한 기후사 연구의 학제융합적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최근 연구서로는 파커(Geoffrey Parker)의 『글로벌 위기』(2013)와 브룩(John Brooke)의 『기후변화와 지구사 경로』(2014)를 꼽을 수 있다. 특히 브룩의 『기후변화와 지구사 경로』는 지구과학, 진화생물학, 병리학계의 최근 연구성과까지 아우르고 있어서 가히 빅히스토리급 융합연구의 면모를 자랑한다.

그럼에도 기후사는 빅히스토리와 뚜렷이 차별적인 융복합 콘텐츠인데, 바로 인문학적 문제의식을 핵으로 삼아 학제융합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빅히스토리의 ‘빅’은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 사이에 상당히 다른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자연과학자들에게 빅은 학제간의 광범한 결합, 즉 ‘횡적인’ 차원에서 광대한 규모의 매력을 발휘하는 반면에, 인문학자, 특히 역사학자에게는 빅뱅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의 ‘깊이’에 대한 호소력을 갖는다. 이런 다양한 수용에도 불구하고 빅뱅에서 시작하는 빅히스토리의 서사에서는 우주물리학, 천문학, 지구물리학, 화학과 같은 자연과학의 비중과 중심성이 압도적일 수밖에 없다. 빅히스토리의 서사는 우주에서 전개되어온 역사와 지상의 인간의 역사가 동일한 보편법칙, 즉 엔트로피 법칙과 연계된 복잡성의 증가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골자로 삼기 때문이다(Jinkina et al., 2019, p. 3).

그에 반해 기후사는 기후시스템에 관한 지구시스템과학적인 지식을 중요한 토대로 삼으면서도, 인간의 집단적 동인을 역사의 주체로 상정해온 역사학의 오랜 전통으로 인하여 기후결정론에 대해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해왔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후사 연구는 하나같이 기후시스템의 ‘사회적 결과(social consequence)’를 기후결정론에 빠지지 않으면서 설명해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최근 기후사 연구성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출간한 네이처지 논문의 18명의 저자들은 미래 기온이나 빙하량 변화는 기후과학적으로 비교적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지만, 그 사회적 결과의 예측은 매우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기후사 연구의 질적인 차별성을 여기서 찾는다(Degroot et al., 2021, p. 547).

기후시스템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사회적 결과로 초점을 옮겨간다고 해서 기후사학자들이 기후시스템에 관한 기후과학자의 연구성과를 그대로 수용하기만 해도 좋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상기의 네이처지 논문의 18명 저자들은 오늘날 기후과학 연구가 비교적 정확한 기후예측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평가하지만, 정작 기후과학자들은 ‘불확실성’을 기후과학 연구의 최대 걸림돌이자 도전으로 꼽는다. 불확실성의 문제는 비단 기후나 기온예측을 위한 모델링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기후시스템을 이해하는 틀 자체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일례로 고기후학자 러디먼(William F. Ruddiman)의 유명한 ‘조기인류세(Early Anth- ropocene)’ 테제는 인간 사회의 힘을 압도하는 거대한 자율적인 시스템으로만 이해되어온 기후시스템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열어줄 단초를 제공한다. 산업혁명이 아니라 신석기 시대의 농업혁명을 인류세의 기원으로 주장하는 조기 인류세 테제는 홀로세의 기후시스템이 인간 사회시스템과 이항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피드백 관계에 있는 ‘열린 계’라는 중요하지만 종종 망각되고 있는 사실을 다시금 환기시켜준다. 인류세 개념을 실질적으로 창시한 크루첸을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이 신석기 시대 인구수를 근거로 러디먼의 테제를 격렬히 비판했지만, 그의 주장은 놀랍게도 고고학, 식물학, 화분학, 고생태학자, 사회생태학자들의 후속 연구를 통해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지지를 확보해가고 있는 중이다(Stephens et al., 2019; Vavrus et al., 2018; Erb et al., 2018).

재차 강조하자면, 러디먼 테제의 진짜 핵심은 인류세 기원을 농업혁명으로 앞당겨 설정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집단적 행위성을 기후시스템 작동의 중요한 인자로 재발견했다는 데 있다. 이처럼 러디먼과 생태학적인 후속 연구성과에 비추어 볼 때, 오랫동안 역사기후학은 물론이고 기후사 연구의 최대 딜레마로 회자되는 기후결정론은 기본적으로 기후시스템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 부정확한 가정이라 할만하다. 마찬가지로 “기후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 기후가 아니라 기후에 적응하는 능력”이라고 한 환경사학자 애플비(Andrew Appleby)의 발언을 두고도 무조건 인간중심적이라는 낙인을 찍기 어려워진다. 기후위기를 살아남기 위한 인류의 사투에 가까운 집단적 대응은 근대에 들어와서 갑작스럽게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지 않았고 처음부터 기후시스템의 일부를 구성하는 기본 인자로서 소리 없이 생태계 전반에서 영향력을 누적해왔기 때문이다. 21세기 기후위기가 소빙하기의 최악의 구간에 해당하는 17세기 위기에 대한 유럽인들의 세계체제적 대응이 직접적으로 낳은 결과이긴 하지만(박혜정, 2023), 그럼에도 작금의 기후위기의 배후에는 수천 년에 걸친 인류의 탄소 발자국이 쌓여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비코 역사학 이래 불문율로 자리해온 자연(nature)과 문화(culture)의 이분법은 이미 신석기 혁명 때 무너졌다.

4. 기후위기 시대 ‘생존 교양’으로서의 기후사

앞장에서 기후사가 갖고 있는 융복합적 특성에 주목하여 왜 기후사가 역사교양의 융합적 전환을 견인할 최적의 위치에 있는지 살펴보았다면, 본장에서는 기후사를 하나의 전문 콘텐츠가 아닌 융합교양 콘텐츠로 전환하는 문제를 논의해보고자 한다. 필자는 기후사를 2021년도 2학기와 2022년도 2학기에 각각 사학과와 역사교육과의 전공교과목으로 교수하고 2021년도의 결과물을 역사교육 학술지에 발표한 바 있다(박혜정, 2022a). 그러나 현재진행형의 기후위기를 배경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기후사는 이를 과거사 복원 위주의 전공교과목으로만 소비하기에는 미래세대에게 너무나 위중한 콘텐츠이다. 날로 격화하는 기후변화를 생각할 때, 기후사는 몇몇 환경사학자나 환경 관련 취업준비생을 위한 교과목이 아니라 미래세대의 생존을 위해서 누구나 반드시 알아야 하는 기본적인 소양이자 범용적인 지식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기후사는 전공교과목이 아니라 오히려 교양교과목으로 더 적합한 콘텐츠이다.

미래세대를 위한 생존 교양으로서 기후사를 교수하기 위해서는 콘텐츠의 범용성과 실천적 지식에 무게중심을 두는 전혀 다른 문제의식과 교수방법론이 겸비되어야 할 것이다. 교양이란 직업 생활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뛰어넘는 근본적인 생애지식에 기반하여 함양되어야 할 역량이다. 국내의 교양교육계에서 ‘역량’은 상당한 논란을 안고 비판적으로 논의되는 개념이긴 하나, 여기서는 인간의 능력 일반을 지칭하는 광의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기후사의 융합교양적인 콘텐츠 개발에서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부분은 기후사에서 기후과학적 토대지식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이다. 2021년도의 전공수업에서는 기후과학의 비중을 절반으로 설정하여 기후사를 새로운 융복합형 역사학으로 교수하는 데 초점을 두었고, 이듬해 역사교육과 수업은 아예 융합교육을 위한 교과목이었기에 역시 기후과학을 강조하여 다루었다. 그러나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1세대인 2022년도 입학생 가운데 지구과학을 수능에서 선택한 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하면, 기후과학 파트는 융합적 사고력의 발판이 되기보다 걸림돌로 작용할 때가 더 많았다.

기후사를 융합과학이 아닌 융합교양 콘텐츠로 구성하고자 한다면 이 문제의 시정은 더욱 절실하다. 한 가지 방법은 기후과학을 역사 콘텐츠와 더욱 긴밀히 결합시켜서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기후변화를 좀 더 밀착하여 이해하고 바람직한 실천적 지식을 창출하도록 돕는 실용적인 도구로서 다루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후사의 가장 핵심 주제로 자리 잡은 소빙하기 역사를 다룰 때 기후과학적 분석과 해석을 더하면 소빙하기를 거대한 지질적인 시간 틀 속에서, 더 나아가서 우리 시대의 기후위기와 좀 더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다양한 접속면을 열어줄 수 있다. 기후과학자들은 대체로 중세온난기에 비해 소빙하기가 전 지구적으로 기온하락을 동반한 동질적인 패턴을 보였다는 사실에 동의하지만(Bo Christiansen & Fredrik Ljungqvist, 2012, p. 781), 심각한 사회적 영향을 가져올 정도의 최저기온이 실제로 나타난 시간대는 지역마다 달랐다. 즉 소빙하기의 최저기온은 동태평양 지역에서는 15세기, 북서 유럽과 북미 남동부에서는 17세기, 나머지 지역에서는 19세기 중반에 나타났다. 그에 비해 현재의 지구온난화는 전 지구적으로 동시에 확인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소빙하기의 배경을 화산폭발이나 태양 활동의 저감과 같은 단일요인에서 찾기는 어렵다(Neukom, 2019). 특히 기후과학자들은 소빙하기 중에서도 유럽과 북미에서 최대 냉각기를 기록한 17세기의 기온 변동폭에 주목하는데, 이것이 미래 기후를 예측하는 데에서 결정적인 ‘기후 민감도(climate sensitivity)’를 이해하는 데 핵심 열쇠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17세기 기후변동은 최근 1000년간의 기후사에서 여전히 가장 큰 불확실성의 영역으로 남아있다(Frank et al., 2010, pp. 507-516).

기후과학은 분명 융합학문 혹은 융합교양으로서의 기후사의 꽃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꽃의 향기는 기후과학이 인간 경험의 역사와 긴밀히 결합될 때 비로소 충분히 발휘될 수 있다. 기후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 부정론에 맞서서 인간 활동으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증명하는 데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현재 인간의 삶과 밀접히 맞닿아 있는 생생한 지식을 산출하는 데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5) 지구온난화 부정론자들이 지속적으로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공백을 지렛대로 활용한 덕분이었다. 이로써 우리는 본장에서 두 번째로 상고할 문제, 즉 융합교양의 차원을 넘어서 생존교양으로서 기후사 콘텐츠를 구성하는 문제에 도달하게 된다.

기후사를 과거 속에 박제된 지식 콘텐츠가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현재적 미래적 삶과 밀착시켜 나름의 성찰적 인식과 기후행동의 토대로 활용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기후변화 관련 학술 논의와 대중적 공론 사이를 매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소위 ‘기후 저널리즘(climate journalism)’은 하나같이 집단적인 기후행동을 효과적으로 촉발하는 데 있어서 ‘이야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의 틀로 기후변화의 문제에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해법의 방향성뿐 아니라 성패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변화 담론은 그 어느 주제보다 의견대립, 상호불신, 감정 충돌이 격하게 소용돌이치는 전장이 된 지 오래다. 라투르는 이러한 현상 자체를 ‘신기후체제’의 특징으로 간주한다.6), ‘역사의 기후’라는 논문으로 역사학계를 넘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차크라바티(Depeshi Chakrabarty)와 스웨덴의 정치생태학자들 사이의 인류세/자본세(Capitalocene) 논쟁은 그 대표적인 학술적 사례에 해당한다.7)

학술 논의에서의 공방이 이런 정도인데 일반인들이 기후문제에 대해 갖는 무력감과 혼란함은 어떻겠는가? ‘컨버전스(Convergence)’라는 미래 기술과 삶에 관한 유명 팟캐스트 쇼를 진행하고 있는 크리스트(Meehan Crist)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기후변화라는 긴급사태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 것인지를 주요 화두로 삼는다. 본인이 기후재난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 이상 기후변화는 너무나 먼 이야기이고 문제의 스케일이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무력감만 부추기는 불편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기후문제는 너무 우울해서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그가 인용한 어느 문학 비평가의 말은 너무 현실적이라 충격적이다(Crist, 2019).

따라서 기후사를 융합교양은 물론 일반교양 콘텐츠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현재 지구온난화 및 인류세 논쟁을 그대로 수업에 들여와 열린 토론의 소재로 삼기보다는 역사적 문서고를 활용하여 학생들 스스로의 판단력을 강화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후 정의나 당위성을 앞세운 기후 담론은 기후 현실에 대한 민감도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지만, 상술한 복잡성과 규모의 문제로 인하여 토론이 진퇴양난의 막다른 골목 혹은 공회전에 빠질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현 기후위기와 넓은 접속면을 가지면서 자본세 논쟁의 핵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폭증 역시 이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을 그대로 들여오기보다는 역사적 문서고를 통해서 반추하는 방식으로 다루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고 판단된다.

소빙하기는 인류가 경험한 가장 최근의 기후위기이다. 소빙하기는 13세기 초부터 19세기 중반에 걸쳐 진행되었기에 세계 곳곳에 풍부한 역사기록이 남아있고 이를 통해 기후변화가 인간 역사에 어떻게 개입하여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고, 인간은 이에 사회집단적, 문화적으로 어떻게 대응하여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바꾸고 새로운 미래의 길을 개척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최적의 역사적 문서고에 해당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빙하기의 극복은 21세기 기후위기로 가는 길을 본격적으로 열어젖혔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 행위성과 지질적 행위성의 피드백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다. 누군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역사적 경험으로서의 소빙하기는 21세기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우리가 뒤져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하게 믿을만한 참고서와도 같다. 우리 세대보다 먼저 기후변화의 격변을 통과한 근세인들의 경험은 현재의 기후 담론을 지배하고 있는 과실/책임 공방이나 도덕주의적 당위론보다 기후 행동을 위한 훨씬 효과적인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다. 과거로부터 살아있는 교훈을 길어 올릴 수 있는 깊은 시선으로 현재의 기후문제를 재조망하고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모색하기 위한 내용적, 교수법적 설계가 필요한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융합교양 콘텐츠로서 기후사에 더해져야 할 것은 기후 인식을 지구의 생명물리시스템 전체와 연결하여 확장하는 시각이다. 기후결정론적 시각이 강했던 역사기후학과 결별하고 역사학을 중심으로 거듭난 기후사는 기후시스템과 인간 사회 간의 피드백 관계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 피드백 관계가 기후시스템과 인간 사회만을 양축으로 삼아 도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이 역시 대기권, 지질권, 생물권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지구시스템 전체에서 일어나는 ‘생물지질화학적 순환(biogeochemical cycle)’8),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 위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인류세 논의조차 종종 하나의 가치(미래세대의 지속), 하나의 문제(기후변화), 하나의 목표(탄소배출 감소), 하나의 해법(재생에너지)을 중심하여 축소지향적으로 전개되면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인도의 환경운동가이자 생태학자인 렐레(Sharachchandra Lele)의 지적은 이러한 맥락에서 새겨 들을만하다(Lele, 2020, pp. 41-63).

기후변화를 지구시스템의 일부로 위치 지음으로써 학생들의 시스템적 사고를 자극하기에 적합한 자료로는 스톡홀름 회복력 센터의 록스트룀(Johan Rockström)과 호주국립대학의 스테픈(Will Steffen)이 이끈 지구시스템 연구팀에서 2009년도에 개발하고 2015년에 업데이트한 지구위험한계선(planetary boundaries) 모델을 꼽을 수 있다. 이 모델은 인류 문명의 발전을 가능케 한 홀로세 지구시스템의 회복력을 9개의 지표(기후시스템, 오존층, 해양, 생물다양성, 토지, 담수, 영양소, 신물질, 에어로졸)를 사용하여 측정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글로벌 청지기 활동의 활성화를 목표로 고안되었다. 이들 한계선 가운데 4개는 이미 무너진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과학자들은 가장 우려스러운 붕괴로 생물다양성을 꼽는다(Steffen et al., 2015; Rockström & Gaffney, 2021/2022, pp. 121-139). 한 학기 동안 기후사 콘텐츠를 다루면서 지구시스템 전체를 함께 다루기는 시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내용적으로도 산만해질 위험이 높다. 과학적 수치에 기반한 지구위험한계선 다이아그램을 활용한다면, 기후시스템과 지구시스템의 상호유기적 관계를 명료하게 시각화화하고 학생들의 시스템적 사고력을 자극하는데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5. 결론

역사교양의 융합적 전환은 분명 교양 역사학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마당에 교양과 융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격이지만, 기후사는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효과적인 사냥 도구로 쓰일 수 있다. 본고에서는 기후사의 역사교양적 전환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논의하였다. 먼저, 역사 콘텐츠의 생래적인 융복합적 성격에 힘입어 아날사학, 지구사, 빅히스토리로 꾸준히 이어져온 융합적 실험과 새로운 방법론적 혁신을 살펴봄으로써 역사학의 융합학문적 성격을 확인하였다. 이어진 장에서는 융합학문의 첨병으로 회자되는 빅히스토리가 아닌 기후사에 주목하여 왜 이 새로운 역사학 장르가 역사교양의 융합적 전환을 견인할 더 큰 잠재력을 갖는지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는 기후사를 융합과학이 아닌 융합교양 콘텐츠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으로 고려해야 할 세 가지 논제로서 기후과학, 기후 담론, 지구시스템을 키워드로 다루었다. 융합교양으로서 기후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다소 우회적인 논의를 전개한 셈인데, 흔히 역사학과는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융합과 역사학 내에서도 생소한 기후사라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융합교양 콘텐츠로서의 기후사의 가능성과 도전이 분명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 선택한 구성이었다.

21세기 역사학은 근대 역사학 출현 이후의 민족사 패러다임으로는 답할 수 없는 빅퀘스천들을 마주하고 있다. 차크라바티는 유명한 논문 「역사의 기후」(2009) 출간 이래 인류세의 새로운 역사학을 정립하기 위한 학술적 모색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로서는 차크라바티 스스로 인정하듯이, 그가 인류세의 역사학으로 제안한 ‘부정적 보편사’는 내용이 공허하여 윤리적 조언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Chakrabarty, 2021/2023, p. 82). 그럼에도 새로운 역사학을 시작해야 할 필요는 분명해 보이는데, 인류세로 부르는 작금의 시대만큼, 인간의 역사적 시간과 지질적 시간이 하나로 중첩, 수렴되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임계점의 시간을 지나며 서서히 드러나게 될 전대미문의 지질적 규모의 위기와 도전 앞에 서 있다.

역사학은 본래 문제 해결에 방점을 두는 실용적인 관심과는 거리가 먼 성찰의 학문이다. 근대에 들어와 진보주의적 목적론이 역사학을 지배했던 적도 있었지만, 역사학의 본질은 특정 목적이나 가치 지향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사건과 경험을 토대로 시간에 대한 질적인 성찰, 즉 역사적 시간 속의 ‘변화’ 자체의 탐구에 있다. 역사학이 시대에 따라 보편을 찾거나 정치의 시녀 노릇을 하다가도, 귀납적인 검증과 해체주의적 성찰의 디폴트 상태로 되돌아올 수 있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역사학의 이러한 지적 자산은 21세기 인류의 최대 공통 위기로서의 기후변화와 인류세의 문제를 다루는 데에서 기존의 방식과 지식으로는 풀 수 없는 빅퀘스천들에 대한 창의적인 해답을 찾아나서는 데 유용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기후사가 학생들이 작금의 학술적, 정치적 담론과 거리를 두고 실제 역사를 통해 조망, 판단함으로써 새로운 성찰, 판단, 대응 능력을 함양할 수 있는 최적의 융합교양 콘텐츠라고 주장하였다.

기후위기와 관련한 교양콘텐츠와 지식은 이미 차고 넘치는 수준에 있다. 베스트셀러 『거주불가능의 지구』(2019)의 저자 웰리스 웰즈(David Wallce-Wells)는 우리 시대의 기후변화는 이미 단순히 하나의 이야기 수준을 넘어서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거대담론이 되어버렸다고 말한다(Wallace-Wells 2019). 문제는 『거주불가능의 지구』를 포함해서 이 무수한 콘텐츠와 담론이 지구종말론 톤의 경고성 이야기로 일관하거나, 자본세와 같이 과실과 책임 공방에 치우친 도덕적 이데올로기적 논쟁 속에 소모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시의성이 위중한 사안이라 할지라도 이래야만 한다는 당위성만 내세워서는 설득력 있는 기후 행동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독일의 대표적인 환경사학자 라드카우(Joachim Radkau)가 최근 스웨덴의 유명한 기후행동 운동가 툰베리(Greta Thunberg)가 전 세계 80명의 저자와 함께 내놓은 화제작 『기후책(Klima-Buch)』(2022)에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이 책의 구호 “‘모든 것이 달라져야 한다 - 지금!’이야말로 실제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을 무릅쓴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Radkau, 2023, p. 209). 그의 관찰과 경험으로 볼 때 1970년대 이래 환경운동의 극적인 성과는 “네트워크적 사고와 실용적인 우선순위 사이의 영원한 상호작용”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작지만 중요한 변화를 일구어온 것은 늘 구체적인 목표에 대한 집중을 통해서였다는 것이다(Radkau, 2011/2022, p. 251 이하). 그런데, 『기후책』은 487쪽에 달하는 규모를 자랑하면서도 오늘날 기후변화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실용적인 잠재력을 갖고 있는 태양에너지에 대해서는 정작 원자력보다도 적은 1/4쪽 수준의 관심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는다(Radkau, 2023, p. 209).

독일의 1세대 환경사학자인 라드카우는 역사학적인 관점을 살려서 환경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온갖 당위성과 절대 가치로 무장한 하나의 이야기로 우겨넣으려고 애쓰기보다는 평행선을 달리는, 가능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아서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러나 현재 기후변화의 진행 속도, 규모, 정도는 역대 그 어느 환경운동보다 조속한 일방향적인 행동을 요구하기에, 다양성보다 보편성의 화두가 더 절실한 것도 사실이다. “요컨대 단지 가난한 자들의 연대보다는 더 넓은 연대의 정치가 필요하다” (Chakrabarty, 2017/2022, p. 179). 놀랍게도 이것은 포스트식민주의의 대표역사학자 차크라바티의 말이다. 다만, 그가 제안하는 부정적 보편사는 행성적 차원을 지구적 차원 위에 더해져야 할 ‘옥상층’으로 강조하면서도 양 차원의 중첩성과 피드백 관계보다는 충돌을 핵심으로 삼는다. 따라서 그는 “기후변화가 자본주의의 역사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자본주의 위기와 달리 이 위기에는 부자와 특권층을 위한 구조선이 없다”고 단언한다(Chakrabarty, 2017/2022, p. 175).

지구적 차원과 행성적 차원의 연결성보다는 충돌성에 주목하는 차크라바티와 달리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장 록스트룀은 기후변화의 해법이 얼마나 사회불평등 문제의 해결과 긴밀히 결합된 문제인지를 설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Rockström & Gaffney, 2021/2022, pp. 225-244). 차크라바티의 관점으로 보자면 이 역시 태양에너지 개발과 마찬가지로 지구적인 것이 행성적인 것을 흡수하려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행성적인 차원에만 매달려서도 구체적인 해결책을 얻기 힘들 것이다.

그러면 21세기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해결책을 구하는 과정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라드카우의 조언대로 실행 가능한 구체적인 목표에 집중하는 것일까 혹은 차크라바티처럼 행성적 차원의 보편사의 지평을 여는 것일까? 올여름 영국 레딩대학에서 만난 국립대기과학센터장 울나우(Steve Woolnough)는 작금의 기후변화를 둘러싼 갑론을박에 대해 기상학자로서 어떤 견해를 갖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하는 과학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유의미한 행위이기보다 진짜 유의미한 일을 위해 사용되는 데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차크라바티가 인용한 아렌트(Hannah Arendt)의 노동, 작업, 행위에 관한 삼중 구별(Chakrabarty, 2021/2023, pp. 22-29)을 묘하게 상기시키며, ‘행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의 말대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최종 행위는 기후과학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행동의 영역에서 결정될 것이다. 후자를 위한 토대를 닦을 기후교양이 우리 모두에게 절실한 이유이다. 긴 호흡의 기후사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기후교양이라면 쏠림 없는 성찰과 단단한 실천 의지를 고양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기후교양을 통해 논쟁의 공회전에 종지부를 찍고 기후행동에 다함께 나서지 않는다면 지구시스템 스스로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물론 인류의 입장 따위는 고려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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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1)

AAC&U, Liberal Education & America’s Promise, 2005. URL: http://www.aacu.org/leap (2023년 10월 12일자 확인)

2)

아날학파 전체에 대한 가장 좋은 입문서로는 Burke, 2015를 꼽을 수 있다.

3)

오늘날까지 기후사 교과서로 평가받고 있는 그의 기후사 책은 Emmanuel Le Roy Ladurie, Histoire, du climat depuis l’an mil, Paris: Flammarion, 1967. 영역본은 Times of feast, times of famine: a history of climate since the year 1000, New York: Doubleday, 1971로 처음 출간되었다.

4)

보편사와 달리 통합사는 우리에게 낯선 개념이다. 통합사는 모든 인류의 행위가 신의 섭리와 같은 하나의 원칙 아래 있고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될 수 있다는 종교적 색채가 강한 가정에서 출발하지만, 기본 컨셉에 있어서 보편사와 마찬가지로 보편지향적이다.

5)

물론 이 부분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Rockström & Gaffney, 2021/2022이 가장 좋은 예이다.

6)

신기후체제란 라투르가 러브록의 가이아 테제를 소환하여 전 지구적 생태학적 위기를 지칭하기 위해 제시한 개념이다. 구기후체제에서는 인간이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자신이 존재하는 물적인 조건들과 점차 분리되어왔다면, 신기후체제에서 이러한 이분법이 철저히 붕괴되어서 인간의 지구와의 관계가 인간의 미래를 결정하는 인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Latour, 2017, p. 295.

7)

자본세에 대한 차크라바티의 반론은 Chakrabarty, 2017/2022, pp. 175-179; Chakrabarty, 2021/2023, pp. 32-35, 342을 참고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 해러웨이(Donna Haraway)를 필두로 환경사학자 무어(Jason W. Moore), 인문지리학자 말름(Andreas Malm)과 혼보그(Alf Hornborg)가 이끌고 있는 자본세 담론은 기후위기를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로 보고, 종적인 차원의 인간의 책임을 거론하는 것은 진정한 책임의 소재를 흐릴 수 있는 친자본적 논리라고 비판한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차크라바티가 역사의 혁명적이고 해방적인 행위자를 포기했다고 비난한다.

8)

브리태니커 사전에 의하면, 모든 생체(living matter)의 본질적 요소들이 순환되는 자연적 경로가 있는데, 생물지질화학적 순환이란 각 순환의 생물적, 지질적, 화학적 측면을 가리키는 축약형 표현이다. 각각의 생물지질화학적 순환은 크게 두 개의 풀을 갖는데, 하나는 크고 천천히 움직이는 비생물적인 영양분의 저장 풀이고 다른 하나는 생태시스템의 생물적 측면과 비생물적 측면 간의 빠른 교환과 관련된 작지만 훨씬 활발한 순환 풀이다. https://www.britannica.com/science/biogeochemical-cycle (2023년 10월 12일자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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