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시대, 교양교육 텍스트로서 <구운몽> 읽기

Reading Kuunmong: The Cloud Dream of the Nine as a Liberal Arts Education Text in the Metaverse Era

Article information

Korean J General Edu. 2022;16(5):69-85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22 October 31
doi : https://doi.org/10.46392/kjge.2022.16.5.69
박은정
영남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pej21@yu.ac.kr
Professor, Yeungnam University
Received 2022 September 20; Revised 2022 October 04; Accepted 2022 October 18.

Abstract

본 연구의 목적은 메타버스 개념을 활용한 <구운몽> 읽기 수업 사례를 고찰함으로써 고전 읽기 수업의 방법을 모색하고 교양교육 텍스트로서 <구운몽>의 가치를 재조명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고전 읽기를 제대로 수행하게 하기 위해서 교수자는 무엇을, 어떻게 읽힐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본 수업에서는 시대적 흐름과 학생들의 흥미를 고려하여 <구운몽> 읽기에 메타버스 개념을 접목하였다. 읽기에서는 완독의 중요성, 현재적 관점의 읽기, 자서전적 읽기, 엮어 읽기 등을 강조하였다. 조별 토론과 동료 피드백을 강화함으로써 학생들의 참여와 흥미를 제고할 수 있었다.

<구운몽>의 꿈속 세계와 메타버스 가상세계의 유사성에 대한 설명을 통해 학생들은 <구운몽>에 보다 흥미롭게 접근하고 텍스트의 주제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학생들은 <구운몽>을 읽고 쓴 에세이에서 사랑과 소통의 방식, 욕망을 대하는 자세, 경험과 행동의 중요성, 현실감 상실의 문제, 통합적 사유의 중요성 등을 주제로 다루었고 이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탐색해 나갔다. 이 문제들은 교양교육의 목표나 <구운몽>의 주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메타버스의 자장 안에서 <구운몽> 읽기 수업이 교양교육의 목표 달성과 <구운몽> 이해에 기여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Trans Abstract

By examining a series of classes engaged in the reading of Kuunmong: The Cloud Dream of the Nine with the concept of the metaverse in mind, this study aims at developing a method of how to instruct students when it comes to reading the classics. This study also aims at getting students to rediscover the value of Kuunmong as a liberal arts education text.

In order to ensure that students read difficult classical literature properly, an instructor needs to choose a proper work carefully and to consider how best to let the students read it. In our classes, reading Kuunmong was connected to the concept of the metaverse, taking into consideration the times in which we live, along with the interests of the students. In the reading part, the importance of actually finishing the reading, reading from the view point of the present world, autobiographical reading, reading together with related works, and so forth, were emphasized. Reinforcing group discussion and peer feedback increased the students’ participation and interests.

Through the explanation of the similarities between the dream world of Kuunmong and the virtual world of the metaverse, the students approached Kuunmong with more interest and understood the themes better. In addition, in essays they wrote after reading Kuunmong, they dealt with many related topics, such as the methods of love and communication, the attitudes toward desires, the importance of experiences and actions, the problems of losing one’s sense of reality, and the importance of integrated thinking. They also explored the solutions to these problems. These topics are not very different from the goals of liberal arts education and the themes of Kuunmong. In this regard, we can confirm that reading Kuunmong using the concept of the metaverse can contribute to the achievement of such goals and to improving the understanding of Kuunmong as a text.

1. 서론

‘어떤 관점에서 보면 21세기의 진정한 시작은 2000년이 아니고 2020년이라고 볼 수 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충격과 함께 20세기의 세계 질서가 비로소 시작되었듯이, 2000년부터 2019년까지는 단지 20세기의 연장선을 경험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21세기의 진정한 시작이 2020년부터라고 하는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김대식, 2022: 10-11).’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예정된 변화를 앞당긴 것이다.

그동안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 시대, 뉴노멀 시대 등의 이름으로 불린 변화의 흐름 가운데 팬데믹과 더불어 급부상한 키워드가 바로 ‘메타버스’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사회 각 분야의 대면 활동은 축소되거나 온라인상의 비대면 활동으로 전환되었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가 메타버스 플랫폼을 통해 팬들과 만나고, 대학들은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하여 입학식을 개최하였으며, ‘페이스북(Facebook)’은 사명을 ‘메타(Meta)’로 변경하였다. 관련 기술이 아직은 부족하고 그 정체성도 모호한 측면이 있지만 바야흐로 메타버스 시대임은 쉽게 부인하기 어렵다.

시대와 매체의 변화는 교육 목표와 방향성에 대한 재점검 및 새로운 교육 방법의 모색을 요구한다. 실제로 팬데믹 상황으로 인한 비대면 활동이 가장 많이, 가장 급격하게 이루어진 분야가 교육 분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교양교육은 시대와 매체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디지털 원주민 Z세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이러한 고민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고, 그런 만큼 다양하고 심도 있는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메타버스 시대 교양교육의 방향성으로 크게 메타버스 기술 기반 교육, 메타버스 시대 문제 해결 교육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자는 교수자가 메타버스 기술을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하여 교육적 효과를 높일 것인가 하는 문제이고, 후자는 메타버스 시대가 필연적으로 노정하게 되는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디지털 기술 사용 방법의 교육이나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교수법만이 아니며, ‘우리의 일상적인 디지털 기술(의 사용)은 우리가 문화와 사회, 정치경제와 세계를 이해하고 살아가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학생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김상민, 2022: 61).’는 견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후자의 문제와 관련하여, 교양교육에서 한국의 고전소설 <구운몽> 읽기 수업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구운몽>의 줄거리를 거칠게 정리하면, 성진이라는 불제자가 술을 마시고 팔선녀를 만난 후 세속적 욕망을 품게 되고, 꿈속에서 양소유로 환생하여 그 욕망을 모두 충족하였지만 말년에 허무감을 느끼고, 꿈을 깨어 성진으로 돌아오면서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구운몽>은 조선 시대 김만중이 창작한 고전소설로 문학성과 재미를 모두 갖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대에 인기리에 유통되었으며 근대 이후 줄곧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인정하는, 명실상부한 한국의 대표 고전이다. 이러한 평가는 교양교육 텍스트로 <구운몽>을 다루는 일차적인 이유로 충분하다.

이에 덧붙여 메타버스 시대에 특별히 <구운몽>을 주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현실(성진)-꿈(양소유)-현실(성진)’로 이어지는 <구운몽>의 환몽구조가 ‘현실-가상세계-현실’로 이루어지는 메타버스의 구조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구운몽>이 성진과 양소유 그리고 여덟 여인의 서사를 통해 사랑, 욕망, 소통, 관계, 꿈과 현실, 삶과 죽음 등 다채로운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는데 이는 메타버스 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의 현재적 고민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접점에 착안하여 메타버스를 매개로 교양교육에서 <구운몽> 수업을 진행해 보았다.

<구운몽>은 그 문학사적 위상만큼이나 관련 선행 연구가 엄청나게 축적되었고, <구운몽>을 텍스트로 한 교육 관련 연구도 상당수 있다. 하지만 대학에서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즉 대학 교양교육에서 <구운몽>을 텍스트로 활용한 사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권혁래(2009)는 ‘읽기와 쓰기’라는 교양 과목에서 <구운몽>, <최척전>, <김영철전>, <춘향전> 등 우리 고전소설 작품을 읽기 텍스트로 제시하여 수업을 진행하고 그중 <구운몽>을 사례로 소설 교육 방법을 모색하였다. 김대식김효주(2014)는 ‘명저 읽기와 글쓰기’ 수업을 통해 대학생의 자아 성찰과 가치관 정립을 위해 <구운몽>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논의하였다. 이 연구들을 통해 <구운몽>이 대학 교양교육에 유용한 텍스트라는 점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수업 사례에서는 여기에서 한발 나아가 시대의 흐름이나 학생의 관심사에 부합하는 메타버스 개념을 접목함으로써 위대한 고전이지만 읽기가 쉽지 않았던 <구운몽>에 학생들이 보다 흥미롭게 접근하게 하고, <구운몽> 읽기와 관련 수업 활동을 수행하면서 메타버스 시대 자신들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해보고자 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메타버스 개념을 활용한 <구운몽> 수업 사례를 고찰함으로써 고전 읽기 수업의 방법을 모색하고, 교양교육 텍스트로서 고전소설 <구운몽>의 가치를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2. 메타버스 시대, 교양교육과 <구운몽>

2.1. 메타버스 시대, 고전 읽기와 <구운몽>

메타버스가 교육계의 중요한 키워드로 대두되면서, 미래 교양교육은 메타버스 등 새로운 에듀테크놀로지의 수용에 대해 유연한 관점을 견지하면서 교양교육에서 중요하게 추구해 왔던 인성, 창의성, 소통 능력 함양이라는 교육 목표를 구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OECD(2015)의 Education 2030 Project는 이런 맥락에서 주목을 요한다. 이 프로젝트는 DeSeCo 프로젝트(2008)의 성공 지향적, 결과 중심적인 핵심역량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차원에서 시도된 것으로, 학문적 성과나 결과뿐만 아니라 전인적인 성장과 과정에 역점을 두는 교육을 지향한다. 이때의 성장은 학생 스스로가 교육의 주체로서,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 속에서 내적 성숙을 이루어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변화를 고려해 볼 때 미래 교육에서 교양교육의 중요성과 책무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의 교양교육은 교양교육의 고전적 이념인 이론과 실천의 통합, 학문적 세계와 일상적 삶의 세계의 연결, 자기 자신의 욕망을 건강한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는 성찰 능력을 새로운 세대가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의 내용과 방식을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회복탄력성과 공존의 리더십을 키워주고, 소통과 협업 역량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정연재, 2022: 292-295).

시대와 세대가 변화하면서 교양교육의 지형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인 교양교육의 목표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아니며, 그 방향성에 대한 모색이 심화되고 교양교육의 중요성은 오히려 부각되고 있다. 특히 교양교육에서 고전 읽기와 글쓰기 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현재 교양교육의 대상인 Z세대의 경우, 정보와 동영상 매체의 홍수 속에서 읽기 능력과 비판적 사고를 통한 주체적인 문제 해결 능력이 심각하게 저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문해력 문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다.

고전 읽기의 중요성은 강조되는데 이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낮고 읽기 역량 또한 높지 않다. 지금은 이들 사이의 간극을 메워 나가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교양교육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Z세대 대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읽혀야 하는가, 즉 텍스트와 교수법에 대한 모색이 필요한 것이다. 이에는 무엇보다 학생들의 관심사와 흥미가 고려되어야 한다. 고전은 훌륭한 텍스트이니 무조건 읽으라고 할 것이 아니라 텍스트와 읽기 방법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고, 학생들이 텍스트를 흥미롭게 끝까지 읽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본 수업 사례에서는 한국의 고전소설 <구운몽>을 텍스트로 선정하였다. 메타버스 시대, 고전 읽기 텍스트로 왜 <구운몽>인가, 그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구운몽>은 <춘향전>과 함께 한국 고전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동서고금이 그 가치를 인정한 텍스트이다. 둘째, 메타버스 개념과 접목을 통해 <구운몽>을 보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고 작품의 환몽구조와 주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셋째, <구운몽>은 메타버스 시대가 노정하는 사회 문제와 대학생 개인 문제의 해법을 탐색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수업 진행과 논지 전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구운몽>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정리한다.

스무 살 성진은 남악 형산 연화봉에서 불법을 전파하는 육관대사의 수제자이다. 어느 봄날, 스승의 심부름으로 용궁에 갔다가 용왕이 권하는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돌다리에서 만난 팔선녀와 수작을 부리고 헤어진다. 그날 저녁 팔선녀를 떠올리며 불가의 적막함을 느끼고 세속적 욕망을 품었다가 곧 반성한다. 그러나 성진을 부른 육관대사는 성진이 술을 마시고 여인들과 수작하고 속세를 마음에 품었기에 몸과 말과 뜻 세 가지 공부가 단번에 무너졌다며 혼을 낸다. 육관대사에 의해 지옥으로 추방된 성진은 염라대왕 앞으로 끌려가고, 뒤이어 끌려온 팔선녀와 함께 인간 세상에 환생한다.

성진은 당나라 수주현 양 처사와 유씨 부인의 아들 양소유로 태어난다. 양소유는 어렸을 때는 연화봉 기억이 있었으나 점점 자라 부모 은혜를 알게 되면서 그 기억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양 처사는 원래 세상 사람이 아니라며 10살 소유를 두고 집을 떠난다. 열네댓 살 무렵 양소유는 과거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선다. 그리고 팔선녀의 환생인 진채봉, 계섬월, 정경패, 가춘운, 적경홍, 난양공주, 심요연, 백능파를 차례로 만나 인연을 맺는다. 그녀들을 2처 6첩으로 맞이하고 자녀들을 얻었으며 전쟁에서 승리하여 승상의 지위에까지 오른다. 70살 무렵 은퇴 상소를 올리고 종남산 취미궁에서 지내게 된다. 어느 늦가을, 양소유가 처첩들과 취미궁 서편 누대에 올라 퉁소를 부는데 그 소리가 옛날과 달리 구슬프다. 두 부인이 그 이유를 물으니, 부귀영화를 누리던 천고의 영웅들도 지금은 없다 말하고, 나이 들어 매일 밤 부들방석 위에서 참선하는 꿈을 꾼다 하며 자신이 불가와 인연이 있는 듯하니 불생불멸의 도를 얻어 인간 세상의 괴로움을 벗고자 한다고 말한다. 처첩들도 양소유의 뜻을 받들어 한잔 술로 전별하겠다고 한다.

그때 홀연 나타난 불승이 지팡이로 난간을 두어 번 세게 치니 흰 구름이 누대를 감쌌다가 걷히면서 처첩이 모두 사라지고 양소유는 젊은 불승 성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성진은 양소유의 삶이 일장춘몽이었음을 깨닫고 이는 육관대사가 부귀영화와 남녀 정욕이 모두 헛된 것임을 알게 하고자 한 것이라 생각한다. 성진이 사부의 가르침에 감사하자 육관대사는 성진과 소유 둘 중 누가 꿈이고 누가 꿈이 아니냐며 반문한다. 성진이 설법으로 가르침을 달라 하는데, 이때 팔선녀도 와서 연지와 분을 지우고 머리를 자르고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 육관대사는 『금강경』을 가르치고 성진과 여덟 비구니는 깨달음을 얻는다. 육관대사가 떠난 후 성진은 연화도량에서 불법을 베풀고 마침내 모두 극락으로 간다.

2.2. <구운몽> 읽기 수업 설계 및 진행

영남대학교에서는 대학혁신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교양 교과목 ‘위대한 책 위대한 생각’을 개설하여 몇 학기 동안 운영하였다. 이 과목은 문학, 인문⋅예술, 사회과학, 자연과학 4개의 분야에서 각각 위대한 책을 선정하여 읽고 비평적 에세이를 작성하는 것이다. 4개의 분반이 개설되고 각 책의 담당 교수자가 3주씩 돌아가면서 수업을 진행하는 팀티칭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3학점 3시간 절대평가 과목이며 평가는 제출한 에세이를 대상으로 하였다.1), 도서는 학교에서 구매하여 도서관에 비치하고 학생들이 대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2)

전체 수업 설계 단계에서 각 분야별 책을 선정하였는데, 번역서나 고전문학 텍스트는 번역 또는 역주의 문제와 관련하여 어느 출판사의 도서를 구매할 것인지에 대한 추가 결정도 필요하였다. <구운몽>은 17세기 후반 창작된 고전소설로 현재 다양한 현대어역 텍스트가 출간되어 있다. 소설 작품이기 때문에 완독이 선행되어야 향후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텍스트 선정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특히 본 수업은 국어국문학 전공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어서 원전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상대적으로 읽기 쉬운 텍스트를 선정하고자 했다.

출간되어 있는 현대어역 텍스트를 비교한 결과, 교양이라는 본 수업의 취지와 텍스트의 정확성 및 가독성을 함께 고려하여 문학동네 출판사본 <구운몽>(정병설 옮김)을 선택하였다. 이 텍스트는 한자어를 최대한 쉽게 풀어서 번역하였다는 점, 각 회 아래에 원래는 없는 소제목을 붙여 지루함을 덜고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텍스트를 완독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막상 읽어보니 생각했던 것과 달리 어렵지 않게 읽히고 재미있다고 했다. 한 수강생은 다른 출판사의 책을 대출해서 읽다가 문학동네 <구운몽>을 다시 읽게 되었는데 가독성의 차이가 크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3)

3주 6차시 수업의 진행 과정은 ‘읽기-토론하기-에세이 쓰기’의 3단계로 구성되지만 개별 수업 진행은 교수자의 재량에 따라 이루어졌다. 필자의 구체적인 수업 일정을 <표 1>에 제시한다.

3주 6차시 수업 일정

1차시에는 읽기 방법과 <구운몽> 해제에 대해 강의하고 이와 관련하여 조별 활동을 진행하였다. 읽기 방법과 관련하여 다음의 사항을 강조하였다. 첫째, <구운몽>은 소설 작품이기 때문에 완독이 중요한데, 환몽 구조의 특성상 더욱 그러하다. 둘째, 조선 시대에 창작된 작품이지만 현재적 관점에서, 지금 우리 시대의 문제와 연관 지어 읽을 필요가 있다. 셋째, 자신의 관점에서 자서전적 읽기를 시도해야 한다. 자서전적 읽기란 동일한 텍스트를 읽어도 각자 ‘자기만큼’ 읽고 해석한다는 의미이다. 작가의 의도대로 읽을 수도 없고 꼭 그렇게 읽을 필요도 없다. 넷째, <구운몽>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다양한 텍스트를 엮어 읽으면 좋다. 문자 텍스트가 아니어도 상관없다.4), 그 밖에 텍스트를 흥미롭게 읽는 방법으로 등장인물 캐스팅해 보기, 등장인물 되어 보기 등을 소개했다.5)

<구운몽> 해제 강의에서는 <구운몽>의 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구운몽>은 <춘향전>과 함께 한국 고전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당대에 필사본, 방각본, 그림 <구운몽도> 등 다양한 형태로 유통되며 많은 인기를 끌었다. 소설이 나부랭이 취급을 받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상층인 왕에서부터 하층 여성인 기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에게 사랑받았다. 근대 이후에는 교과서에 지속적으로 수록되었고, 10여 개 이상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독자들을 만났다.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도민준이 <구운몽>을 ‘조선이 낳은 신개념 판타지 소설로, 해리포터보다 400년 앞섰지만 그것보다 모자랄 게 없는 작품’이라고 극찬하여 새삼스럽게 <구운몽>이 회자되기도 했다.’ 이러한 내용은 <구운몽> 읽기의 동기 부여 차원에서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1차시에 학생들에게 활동지를 제공하고, 학생들이 텍스트를 읽는 동안 작성하여 이를 조별 토론과 에세이 쓰기의 자료로 활용하도록 하였다. 활동지에는 간략 줄거리 정리, 주요 인물의 특징과 만남 과정 정리, 키워드 추출, 논의점(질문) 선정, 인상적인 대목과 그 이유 정리, 엮어 읽기 텍스트 정리 등이 포함되었다. 1차시 조별 토론 시간에는 <구운몽>에 대한 사전 이해나 느낌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학생들은 <구운몽>이 중요한 작품이라는 점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텍스트에 대한 선험적인 이해도는 별로 높지 않았다. 제목과 관련하여 ‘<구운몽>은 꿈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제는 인생무상이다’ 정도만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성진, 양소유, 팔선녀 등 주인공 이름이나 관계 등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작품이라 한 번쯤 읽어보고 싶었다고도 했다.

2차시와 3차시에는 교수자가 작가와 주요 선행 연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학생들은 읽은 부분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였다. 작가와 관련하여 남해 유배문학관, 노도 김만중 문학관 등을 소개함으로써 흥미를 유발하고자 하였다. 연구사는 최대한 소략하게 정리하였다. 비전공자에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고, 학생들이 선행 연구의 관점에 견인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텍스트는 3차에 걸쳐 나눠 읽기를 하여 읽기 부담을 줄였다. 4차시 에세이 초고 쓰기 수업에는 텍스트를 완독하고 오도록 하였다.

4차시에서 6차시까지는 에세이를 쓰고 고치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4차시에는 에세이 쓰기에 대해 강의한 후 학생들이 초고 쓰기를 하도록 했다. 4차시 수업을 마치면 학생들은 온라인 과제방과 토론방에 초고를 제출하고, 교수자는 과제방에 학생들은 토론방에 댓글로 피드백을 한다. 5차시에는 교수자와 학생들이 초고에 대해 공개 피드백을 실시하고, 학생들은 피드백 내용을 반영하여 수정한 원고를 다시 토론방에 제출한다.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의 수정본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온라인 피드백을 실시한다. 6차시에는 교수자가 수정본과 동료 피드백에 대한 공개 피드백을 실시하고 학생들은 이를 참고하여 퇴고한 후 완성된 원고를 과제방에 제출한다.

‘읽기-토론하기-에세이 쓰기’를 독립적이고 순차적으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 전반부는 읽기와 토론하기가, 후반부는 에세이 쓰기와 토론하기가 병행되는 식으로 하였다. 교수자의 강의를 최소화하는 대신 매 시간 학생들이 모둠별 토론 활동을 하게 하고, 특히 다른 교수자와 차별적인 방법으로 온라인 동료 피드백을 여러 차례 실시하였는데, 이 활동들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았다.6), [그림 1]은 학생들의 동료 피드백 내용 중 일부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7)

[그림 1]

학생 동료 피드백

학생들은 텍스트를 나누어 읽는 동안 여러 번의 조별 토론을 통해 읽은 부분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면서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다양한 해석이나 시각을 공유하였다. 이때 사전 작성한 활동지가 유용하게 활용되었고, 토론 활동은 에세이의 주제를 선정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게 작용하였다. 그리고 학생들은 동료 피드백을 실시하고 수용하는 것에 상당히 적극적이었고 실제로 이 활동이 에세이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를 통해 조별 토론과 동료 피드백 활동이 읽기와 쓰기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교양교육에서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는 소통과 협업 역량 함양에 유용한 교수법이라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3. 메타버스 시대, 교양교육 텍스트로서 <구운몽>의 가치

3.1. <구운몽>을 이해하는 수단으로서 메타버스

본 수업의 읽기 단계에서는 학생들이 <구운몽>이라는 과거의 텍스트에 흥미롭게 다가가게 하기 위해 현대의 개념인 메타버스를 활용하였다. 메타버스는 1992년 출간된 닐 스트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서 처음 사용된 단어이다. ‘초월’을 뜻하는 그리스어 ‘Meta’와 ‘세상’을 뜻하는 영어 ‘Universe’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로, 소설에 나오는 가상세계의 이름이 바로 메타버스이다. ‘아바타’라는 말도 이 소설을 통해 가상세계 캐릭터의 의미를 가진 용어로 대중화되었다(김상균⋅신병호, 2021: 32-34).8) 릴리⋅라나 워쇼스키의 영화 <매트릭스(1999)>에 나오는, 컴퓨터가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가상세계 ‘매트릭스’ 역시 메타버스 이미지와 어느 정도 상통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은 영화 속 가상세계 ‘오아시스’를 통해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메타버스를 가장 근접하게 묘사하고 있다. 소설에서 출발한 메타버스 개념이 과학기술을 만나면서 영화와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다.

미국의 미래학협회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는 메타버스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라이프로깅(Life-logging), 거울세계(Mirror Worlds), 가상세계(Virtual Worlds)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증강현실은 현실 속 공간에 디지털로 구현한 정보나 물체를 입혀서 보여주는 것이다. 라이프로깅은 현실 속 정보를 디지털로 기록 및 공유하는 것을 의미하며, 거울세계는 실제 세계의 정보를 통합하여 확장시킨 가상세계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가상세계는 특정한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경험을 제공하는 가상의 공간을 의미한다(김보은⋅김민지, 2021: 42-44).

네 가지 유형 중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가상세계이다. 가상세계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메타버스 개념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가상세계에서는 자신만의 아바타를 창조할 수 있다. 아바타는 자신을 대신하는 캐릭터로, 현실 인물은 아바타를 통해 현실적 제약 때문에 불가능했던 일들을 하기도 하고 사회적 자아에 억눌린 제2, 제3의 자아를 표출하기도 한다. 어떤 이유로든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상세계는 참으로 매력적인 세계이다.

사람들이 가상세계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데 두 가지 정도가 많이 거론된다. 첫 번째는 가상세계가 현실에서 충족하기 힘든 ‘인정 욕구’를 풀도록 해 준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가상세계가 인간의 본질 중 하나인 ‘재미’를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도한 경쟁 사회 속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업이나 사회생활에서 좀처럼 인정을 받기 어렵다. 그런데 게임이나 가상세계에서는 비교적 쉽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인정 욕구를 채울 수 있다. 그리고 가상세계는 현실과는 다른 감각적 자극을 다양하게 제공함으로써 몰입감을 느끼게 하고 이는 재미로 이어지게 된다.

메타버스를 이루는 주요 특성에 대해서는 연구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정리하고 있지만 대체로 연속성, 실재감, 상호운영성, 동시성, 경제 흐름, 경험의 확장이 일어나는 공간 등을 들고 있다. 메타버스상의 다양한 경험과 기록들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고, 기술적인 기기와 양방향 내러티브를 통해 물리적 접촉 없이 실재감을 느낀다. 메타버스를 통해 얻는 정보와 경험은 현실 세계와 연동해서 상호 보완 관계를 이룬다. 또한 여러 명의 사용자가 동시에 하나의 메타버스 세계관에서 활동한다. 그리고 메타버스는 돈의 흐름이 존재하는 공간이면서 경험의 확장이 일어나는 공간이다(김상균⋅신병호, 2021: 52-71).

메타버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구운몽>을 읽으면 메타버스와 <구운몽>의 구조적 상동성에 놀라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구운몽>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물론 메타버스의 가상세계에 해당하는 <구운몽>의 꿈속 세계는 컴퓨터 기술을 매개로 한 것이 아니며, 당연히 이 둘은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기술적인 부분과 경제적인 부분을 제외한다면 메타버스와 <구운몽>은 충분히 함께 논의할 만하다.9)

앞서 줄거리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구운몽>은 현실의 성진이 꿈속에서 양소유가 되었다가 다시 현실의 성진으로 돌아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실의 성진은 젊은 불승인데 봄날과 술과 여덟 여인에 취해 평소 느끼지 못했던 금기를 느끼고 세속적 욕망을 꿈꾸게 된다. ‘남자가 세상에 태어나, 어려서는 공자와 맹자의 책을 읽고, 커서는 요임금 순임금 같은 성군을 만나며, 밖으로 나가서는 대장군이 되고, 들어와서는 정승이 되어, 몸에는 비단옷을 걸치고 허리에는 붉은 띠를 늘어뜨리며, 임금께 절하고 백성에게 혜택을 베풀어야지. 또 눈으로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귀로는 환상적인 소리를 들으며, 영화로움이 극에 이르고 후세에 이름을 길게 드리워야지. 이것이 바로 대장부의 일이야. 아아, 그런데 우리 불교는 한 바리때의 밥과 한 병의 물, 몇 권의 불경, 그리고 백팔염주뿐이라. 덕이 높고 도가 오묘하지만 적막함이 심하고 그저 맑기만 할 뿐이라. 설령 불가의 큰 법을 깨우쳐 스승의 도통을 잇고 부처가 되어 연꽃 위에 앉는다 해도, 넋이 한 번 연기 속에 흩어지고 나면 성진이 세상에 있었음을 누가 알리오?’(김만중 지음⋅정병설 옮김, 2013: 24-25)

잠재되어 있던 성진의 욕망은 꿈속 양소유의 삶을 통해 완벽하게 실현된다. 이를 메타버스와 연관 지어 보면, 성진의 꿈속 세계는 현실에서는 추구하기 어려웠던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충족하게 해 주는 가상세계이고, 양소유는 성진의 또 다른 자아이자 아바타라고 볼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꿈속 양소유의 세계도 메타버스와 같이 실재감, 연속성, 상호운영성, 동시성 등의 특징을 가진다. 그리고 양소유는 꿈속 세계의 경험을 통해 인정 욕구를 충족하고 재미를 추구하며 경험의 확장을 이룬다. 이러한 특징들이 <구운몽>에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메타버스 가상세계에 해당하는 꿈속 양소유의 세계는 현실보다 훨씬 더 ‘실재감’을 가지는 세계이다. 성진의 세계는 꿈을 꾸기 전이라는 점에서 현실인데, 이 현실은 환상적인 분위기에 선녀와 용왕이 등장하는 등 비현실적이다. 반면 양소유의 세계는 꿈속이라는 점에서 비현실인데, 당대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현실 그 자체이다. 왜냐하면 <구운몽>은 중국 당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양소유의 세계는 당대 조선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게 묘사되기 때문이다. 현실이 비현실적이고 꿈속 비현실이 더 현실적인 것, 이는 <구운몽> 환몽구조의 중요한 특징으로 거론되어 왔다.10)

<구운몽>에서 양소유의 세계는 성진의 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지 않고 어느 정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현실과 ‘연속성’을 가지고, 양소유의 경험이 성진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상호운영성’도 지닌다. 양소유가 티베트 군대와 전쟁을 치르던 중 반사곡에서 꿈을 꾸게 되는데 그 꿈속에서 연화봉에 오르고 육관대사를 만난다. ‘소유가 수레에 오르자 금세 형산 아래에 도착했다.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돌길을 올랐다. (…) 험준한 봉우리를 넘어 산꼭대기에 이르니 절 하나가 있었다. 깊고 그윽한 절집에 승려들이 모여 있었다. 노승이 방석 위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경문을 외우며 설법을 하고 있었다. 노승은 푸르고 긴 눈썹을 가지고 있었고 야윈 몸에는 맑은 기풍이 흘렀다. 오랜 연륜을 느낄 수 있었다. 소유를 보더니 제자들을 이끌고 계단을 내려와 맞았다.’(김만중 지음⋅정병설 옮김, 2013: 155-156)

또 말년의 양소유는 부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나이 들어 벼슬에서 물러나 여기에 온 후, 매일 밤 잠이 들면 꿈속에서 부들방석 위에서 참선을 했소. 필시 불가와 인연이 있는 듯하오.”(김만중 지음⋅정병설 옮김, 2013: 263-264) 양소유는 매일 밤 꿈속에서 성진이었던 자신의 모습을 만난 것이다. 성진이 양소유로 환생한 후 자라면서 연화봉을 잊었다고 했지만, 양소유의 세계에서 성진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이처럼 꿈속 꿈 즉 양소유의 꿈을 통해 양소유의 세계와 성진의 세계는 경험과 사유를 공유한다. 무엇보다 현실에서의 욕망이 꿈속 세계에서 실현되고, 꿈속의 경험과 깨달음이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두 세계는 ‘상호보완적’이다.

꿈속에서 새로운 인물로 환생한 것은 성진만이 아니다. 연화봉에서 이름 없이 팔선녀로 통칭되었던 여덟 여인은 각자 자신의 이름과 개성을 가진 인물로 환생한다. 성진과 팔선녀 환생의 설계자라 할 수 있는 육관대사도 양소유가 반사곡에서 꾼 꿈에 등장함으로써 현실의 주요 인물이 모두 꿈속에 등장하게 된다. 현실의 인물들이 꿈속에서 만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인데, 이는 메타버스에서 여러 명의 현실 인물이 동시에 가상세계에 접속하여 활동하는 것과 같아서 ‘동시성’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꿈속 세계에서 양소유는 여덟 여인들과 차례로 인연을 맺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높은 지위에 오름으로써 현실의 성진이 꿈꾸었던 유가적 욕망을 성취해 나간다.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 모두에서 ‘인정 욕구’를 충족한다.11) 이 과정에 고난이나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부분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무려 여덟 명이나 되는 양소유의 여인들은 처첩 갈등을 일으키지도 않고, 양소유와 난양공주의 혼인도 갈등의 소지는 있었지만 무난하게 성사된다. <구운몽>에는 서로 속고 속이는 사건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이 역시 심각하지 않으며 웃음과 재미를 보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성진은 양소유의 삶을 통해 불제자로서는 하지 못했던, 그러나 해보고 싶었던 다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도를 닦으며 적막한 나날을 보냈던 성진과 달리 양소유는 과거를 보기 위해 길을 떠나고, 피난 중에 도술을 배우고, 시와 거문고와 퉁소를 매개로 여덟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높은 지위에 올라 가문을 일으킨다. 성진의 꿈속 양소유의 세계는 ‘경험의 확장’이 일어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진의 꿈속 양소유의 세계는 메타버스 가상세계의 특징을 상당 부분 담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환몽구조를 가진 작품은 모두 메타버스와 연관 지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삼국유사』 소재 <조신>과 비교해 보면, 환몽구조라고 해서 모두 메타버스로 읽히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조신>도 ‘현실-꿈-현실’의 구조이지만 <구운몽>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꿈속의 조신은 현실의 조신과 같은 인물이어서 아바타로 볼 여지가 없다. 그리고 꿈속 조신의 삶은 현실보다 더 고통스럽다. 원하던 여인과 만나 다섯 자녀를 얻었지만 의식주는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부부는 늙고 병들었으며 자식이 굶어 죽기도 하고 걸식하다 개에 물리기도 했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지기로 하고 각자 다른 길을 떠나려 하다 꿈에서 깨게 된다. 현실과 꿈의 연속성이나 동시성 등의 특징도 찾아보기 어렵고, 꿈을 통한 인정 욕구 충족이나 재미 추구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오히려 메타버스 세계를 그리고 있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 <구운몽>과 더 유사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인 2045년 오하이오주, 기술은 발달했으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에서 탈출을 꿈꾼다. 주인공 웨이드는 콜럼버스 빈민촌에 사는 스무 살 청년인데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이모 집에 얹혀사는 신세이다. 제임스 할리데이가 창조한 메타버스 세계 ‘오아시스’는 뭐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될 수 있는 낙원이다. 웨이드도 VR 기기를 통해 오아시스에 접속하면 멋진 외모의 아바타 Z가 된다. 할리데이가 죽으면서 미션을 남기고 오아시스에서 그것을 모두 수행하는 사람에게 오아시스 소유권을 넘기겠다고 하는데, Z는 동료들과 함께 그 미션 성취의 주인공이 된다. 그 결과 현실의 웨이드는 부와 명예 그리고 사랑도 얻게 된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오아시스는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곳으로 메타버스 가상현실 그 자체이다. 현실의 주인공은 비루한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꿈꾸지만 쉽지 않다. 하지만 가상세계에 접속한 주인공은 아바타의 모습으로 미션을 수행하고 사랑을 얻는 등 욕망을 성취해 나간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현실의 인물 여러 명이 동시에 가상세계에 접속하여 함께 활약을 하고, 그들은 현실과 가상세계를 넘나든다. 이러한 특징은 앞서 살펴본 <구운몽> 꿈속 세계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17세기 중후반을 살았던 작가 김만중이 그려낸 <구운몽>의 꿈속 세계가 21세기 메타버스의 가상세계, 그리고 가상세계를 다룬 영화와 유사성을 갖는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교과서에서 <구운몽>을 배웠고 <구운몽>과 관련된 문제를 무수히 풀었지만 <구운몽>을 친숙하게 여기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작품이 어렵거나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읽어보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과거의 이야기라는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새로운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구운몽>을 메타버스와 연관 지어 설명하고, <레디 플레이어 원> 등의 영화와 엮어 읽게 하고, 토론 과정을 통한 함께 읽기를 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은 <구운몽>을 더 ‘재미’있게 완독해 내어 ‘인정 욕구’를 충족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메타버스는 학생들을 <구운몽>의 세계로 흥미롭게 이끌고 학생들이 <구운몽>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하게 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3.2. 메타버스 시대 문제 해결 도구로서 <구운몽>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2년 이상 지속되면서 대학생들은 학업과 생활 전반에서 적지 않은 제약을 받아 왔다. 수업은 말할 것도 없고 입학식, 오리엔테이션, MT, 대동제 등 거의 대부분의 행사들이 중단되거나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 대학생이 되면 꼭 해보리라 계획했던 여행도, 동아리 활동도, 미팅도, 친구 사귀기도 모두 쉽지 않았다. 이런 단절의 상황에서 메타버스는 가상세계에서나마 경험과 소통을 가능하게 해 주는 소중한 통로가 되었다. <구운몽>에서 성진이 꿈속 양소유의 경험을 통해 현실 성진의 모자람을 채워나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갔던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메타버스 가상세계의 순기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메타버스가 이러한 순기능만 가지는 것은 아니다. 메타버스가 가지는 무한한 공간은 기존 웹이나 모바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사회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익명성에 의한 윤리적 문제, 그리고 아바타에 대한 과몰입 등이 언급된다(김보은⋅김민지, 2021: 67-68). 그리고 가상현실은 현대인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하면서, 현대인의 정체성에 혼란을 발생시켰고 반사회적 변태적 욕망의 출구를 제공하였다고 비난받고 있다. 또한 가상현실로 인해 ‘진짜’ 세계와 ‘가짜’ 세계의 구별이 모호해지면서 현실을 부정하거나 도피하려는 심리를 유발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러한 비판의 근거에는 가상현실로 인한 ‘진(眞)/가(假)’의 이원적 세계 속에서 통합적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현대인의 정신적 위기감이 반영되어 있다(전이정, 2011: 91).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메타버스의 역기능을 우려하면서, 그 순기능은 강화하되 파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메타버스 세계에 침잠하고 아바타에 과몰입하게 되면 현실 경험은 점점 축소되고 현실감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팬데믹으로 인한 일시적인 비대면 상황에서도 이러한데 메타버스 시대로 본격 진입하게 되면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본 수업에서는 고전소설 <구운몽>을 텍스트로 ‘읽기-토론하기-에세이 쓰기’ 활동을 함으로써 학생들 스스로 이러한 문제의 해법을 탐색해 보도록 하였다. 지금까지도 교양교육에서 고전 읽기는 고전의 문제의식과 지혜를 통해 지금 여기, 나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목표를 수행해 왔다. 학생들이 <구운몽>을 읽고 쓴 에세이를 통해 <구운몽>이 그들의 당면 고민과, 특히 메타버스 시대 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주는 텍스트라는 점을 확인해 보고자 한다.12)

<1> 최근 증가하는 데이트 폭력 사건은 사랑하는 여자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소유욕이 폭력으로 이어진 일이다. 그들은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스스로를 포장하여 상대를 소유할 명분을 만든다. 서로가 서로의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가라는 물음에 소설은 양소유를 대하는 여인들의 태도로 답하고 있다. 여인들은 그를 사랑하면서도 그녀들의 형제와 친구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허락한다. 이 대목은 그들은 양소유를 진심을 다해 섬기고 사랑하지만 그에 대한 소유하고자 함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양소유가 불도를 닦기 위해 떠난다는 내용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응원한다. (중략)

우리는 부모를, 국가를, 친구를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소유는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모든 사랑은 이해와 존중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양소유가 귀신과 용왕의 딸 그리고 적장까지도 편견 없이 그들을 아우르고 사랑한 대목은 사랑의 대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상이 누구이며 무엇인가에 따라 사랑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 의미가 달라져선 안 된다. 여인들 간의 우애도, 부모에 대한 사랑도, 양소유와 여인들의 사랑도 모두 이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을 깨닫게 된다면 이야기 중 어느 하나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없다.

<2> 양소유는 지역과 신분이 다른 사람, 심지어 인간도 아닌 존재까지 모두 사랑한다. 누구 하나를 편애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8명이나 되는 아내들을 데리고 살면서도 큰 다툼과 불화를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아내들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그들을 책임지고 사는 양소유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가부장적인 시대의 분위기에서도 가끔은 아내들의 놀림거리가 되고, 작은 다툼에도 꼭 나서서 중재하며 특유의 재치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이런 모습에서 보면 꼭 이성 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하고 조화를 이루고 살자는 주제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앞의 두 글은 ‘사랑과 소통, 관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랑이 쉬운 사람은 많지 않을 테고 대학생들에게도 사랑은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문제이다. 팬데믹 이후 접속은 늘고 접촉은 줄었다고들 한다. 그래서 사랑은 더욱 어렵다. 글 <1>은 양소유와 여덟 여인의 사랑 방식을 통해 사랑의 본령은 소유나 독점이 아니라 이해와 존중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양소유와 여덟 여인, 1대 8의 사랑을 현대의 독자들이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하지만 양소유는 한 여인에게 1/8의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1의 존재로 그녀들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선녀나 귀신이라 생각했던 가춘운도 사랑했고, 비늘 달린 용녀 백능파도 사랑했고, 적장 심요연도 사랑했다. 그는 편견과 차별 없이 사랑하고 사랑 앞에서 주저하지 않는다. 여덟 여인들도 양소유를 독점하려 하지 않고 그의 선택을 이해하고 지지한다. 사랑의 방식에 정답은 없겠지만 이들의 방식은 사랑을 지속하고 사랑이 보다 성숙하게 하는 데 필요한 소중한 지혜를 담고 있고 이 글은 그 점을 짚어내고 있다.13)

글 <2>는 양소유가 사랑의 문제에서만 아니라 매사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구운몽>에는 여러 번의 속임수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이는 재미의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양소유는 자신이 속임을 당했을 때도 크게 화를 내지 않고 웃음으로 가볍게 넘긴다. 여인들이 자신을 놀림의 대상으로 삼아도 크게 괘념치 않는다. 전쟁에서도 무력보다는 글을 통해 적들을 제압하고 굴복시킨다. 양소유에게서 가부장적이거나 강압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그는 외모까지 여성스러워서 여장을 하면 감쪽같이 여자로 보일 정도이다. 양소유는 여유가 있고 유머가 넘치며 ‘아니마’가 충만한 남성이다. 이러한 태도는 사랑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관계와 소통에 있어서 중요하다.

<3>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생긴 질문들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그 누구도 쉽게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스스로는 욕망이 살아감에 있어서 추진력이 된다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유를 갈망하여 전역지원서를 내던진 과거에 대한 후회가 조금은 누그러진 느낌을 받았다. 어리석은 욕망을 좆아가기 위해서가 아닌, 삶의 원동력을 되찾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것일 테니까.

작금의 우리들은 종종 쉽사리 성취되지 않는 욕망과 방해물에 좌절한다. 그리고 그 욕망에 대해 나에게 너무 과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을 하고 그러한 방해물에 원망을 하곤 한다. 그러나 욕망을 소유함에 대해 자책하지 않고, 우리를 힘들게 하고 방해하는 것들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들이 오늘과 내일의 우리를 뛰어다니게 만들고 고민하게 만들어 우리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난 우리에게 그것들이 치열한 청춘을 살았음에 대한 증거가 되고 앞으로의 방해물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면 한다.

<4> 우리는 우리 안에 내재한 욕망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는가. 욕망은 삶에 있어서 긍정적인 요소인가 아니면 부정적인 요소인가. 이런 이분법적인 시각은 지양하고 좀 더 건강하고 올바른 시각과 방법을 통해 욕망을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고전소설 <구운몽>의 성진이 겪은 번뇌과정과 깨달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중략)

우리의 욕망도 마찬가지이다. 욕망에 집착하여 그곳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 그것이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 판가름하며 집착하고 머무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성진이 곧 소유고 소유가 곧 성진이었듯이 내 안의 욕망도 결국은 나의 한 부분이다. 욕망을 억제하고 통제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을 억압하는 행위이고 욕망에만 사로잡혀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결국 나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행위인 것이다. 물론 불도자였던 성진이 자신 안에 있는 세속적인 욕망을 발견하고 혼란에 빠진 것처럼 우리가 우리 안의 욕망을 처음 발견하게 된다면, 혼란스럽고 당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올바르고 건강한 방법을 통해 해소해 나간다면, 이 욕망은 비로소 온전한 나로 귀결될 것이다.

<구운몽>을 읽고 ‘욕망’을 키워드로 에세이를 쓴 학생들이 꽤 많았다. 글 <3>은 직업 군인으로 복무하다가 군인의 삶에 회의감을 느끼고 전역한 학생의 글이다. 이 학생은 자유로운 삶을 욕망하여 그 길을 선택한 뒤에도 가끔 그 욕망과 선택이 어리석은 게 아니었나 자책했다고 한다. 그러나 <구운몽>을 읽은 후 성진의 욕망의 결과물인 양소유의 삶이 성진을 깨달음으로 이끌었음을 보고 자신의 욕망도 자신을 새로운 도전으로 이끄는 삶의 원동력임을 알게 되었으며 비로소 후회의 마음을 덜어낼 수 있었다고 했다. 이 학생의 경우는 자서전적 읽기와 쓰기의 적절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글 <4>는 우리 안에 내재한 욕망이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판단하고자 하는 이분법적인 시각을 지양한다. 그리고 욕망을 지나치게 억압하고 통제하는 자세, 욕망에만 탐닉하는 자세 모두를 경계한다. 자신 안의 욕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건강한 방법으로 해소해 나갈 때 그 욕망이 온전한 자신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욕망을 억압했던 성진의 삶과 욕망 추구의 극대화를 보여주었던 양소유의 삶, 그 둘의 통합과 조화를 지향했던 <구운몽>의 가르침도 이와 다르지 않다.

<5> 하지만 번뇌를 자각하고도 행동하지 않으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괴로움에 시달릴 뿐이다. <구운몽>에서는 이러한 행동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있다. 성진은 번뇌를 느끼자 “출가한 지 십 년에 이르도록 구차한 마음이 없다가 갑자기 나쁜 마음이 드니, 이 일이 내 앞길에 방해가 되지 않으리오?”라며 미래를 위해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한다. (중략)

매우 흥미롭게도, 주저하는 성진과 달리 꿈 속에서 양소유는 행동에 거침이 없다. 진채봉과 혼약을 할 때도, 정경패를 보기 위해 무작정 여장을 하고 들어갈 때도, 심지어 전쟁에 나서며 사랑하는 가춘운을 떠날 때에도 양소유는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 가장 변화가 명백한 부분은 성진이 연화봉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성진은 고작 10년의 수행에도 자신의 마음을 그저 억누를 뿐이었지만 유가적인 삶의 절정에 이른 양소유는 처첩과 부귀영화, 몇십 년의 세월을 두고도 “집을 버리고 도를 구하고자” 한다. 이러한 행동을 통해 양소유는 다채로운 경험을 하고 진실된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

<6> 작품 속에서 성진이 받은 벌은 성진이 꿈속에서 양소유로 환생해 일찍이 공명을 이루고 오래 부귀를 누리는 등 자신이 가졌던 여러 욕망을 이루고 난 후 인생이 한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성진은 부귀영화와 남녀 정욕이 모두 헛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성진이 다양한 욕망을 이룬 경험을 해보지 못한 채 꾸짖음만 들었다면 성진은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것이고,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부귀를 탐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결국 경험이 성진의 반성을 일으킨 것이다.

벌을 받기 전, 오랫동안 곧게 수련을 하던 성진의 마음이 꺾인 것에서 양소유가 되기 전의 성진은 위태로운 대나무 같고, 꿈을 깨고 난 후의 성진은 수양버드나무 같다고도 생각을 했다. 경험 없이 곧게 자란 대나무는 태풍이 불면 부러지지만, 바람이 불어 여러 번 흔들리는 경험을 한 수양버드나무는 태풍에도 잘 견디는 모습을 보여준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도 대나무에서 버드나무로 변해가며 굳세어지는 성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것이 육관대사가 성진에게 양소유의 삶을 경험하게 해 줌으로써 성진이 깨달음을 얻게 한 의도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경험과 행동의 중요성’에 대해 쓴 글도 적지 않았다. 글 <5>는 마음속의 번뇌를 자각하고 억누르려고만 했던 성진과 생각을 따라 거침없이 행동하는 양소유를 대비하고, 양소유가 행동을 통해 다채로운 경험을 했기에 진실된 자신 성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보았다. 글 <6>은 성진과 양소유를 각각 대나무와 버드나무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금기 속에서 규범적인 삶만 살던 성진은 강직하지만 그래서 부러질 수도 있는 대나무였는데 양소유의 경험을 함으로써 더러 흔들리더라도 결코 부러지지는 않는, 유연함 속에 강인함을 품고 있는 인물로 거듭났다고 본 것이다.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도 네오에게 말한다. ‘너도 나처럼 곧 알게 될 거다. 갈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의 차이를.’이라고. 머리로만 아는 것과 몸으로 직접 부딪치고 경험하여 깨닫는 것은 다르다. 교양교육도 무엇을 ‘안다’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실천할 수 있는 마음을 기르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김성수, 2021: 171).14)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너무나 많은 고전들이 독자들에게 길을 떠나라고, 사람과 세상을 만나 경험하라고,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하라고 역설한다. <구운몽>도 지금 청춘의 독자들에게 이렇게 읽힐 수 있다. 메타버스에 적용해 보면 양소유의 경험은 메타버스 가상세계의 경험에 해당하지만 그 세계의 실재감으로 인해 당대 독자들도, 지금의 독자들도 양소유의 경험을 통해 현실 경험과 실천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7> <구운몽>이라는 소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인기를 끈 것에는 이러한 인생무상적 사상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이 모두 꿈일 뿐이라는 태도는 당시 사람들에게 위로를 줬을지는 몰라도,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태도는 절대 좋은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실을 현실로 인식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구운몽>과 자주 비교되는 영화인 <인셉션>의 등장인물인 ‘멜러리 코브’(이하 맬)는 주인공 ‘도미닉 코브’(이하 코브)의 아내인데, 작중 코브는 아내인 맬을 꿈에서 깨우기 위해 ‘인셉션’이라는 무의식의 조작을 통해 맬이 계속해서 지금의 상황이 꿈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게 아내를 꿈에서 깨우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꿈이고 죽으면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서 깬 실제 현실에서도 그녀를 지배하기 시작하며, 끝내 그녀는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현실에서 자살하고 만다. 이처럼 문제 또는 갈등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다른 세계에만 집착하는 행위는 현실감을 떨어뜨려 인간을 파멸로 내몰 수도 있다. 당장 맬을 꿈에서 깨우기 위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다음 세계로 문제를 미뤄버린 코브가 결국 아내를 잃었듯이, 지금 외면한 현실은 언젠가 더 큰 재앙이 되어 인간을 덮쳐버릴지도 모른다. 즉 다른 세계인 ‘꿈’에 너무 의지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게 사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 <7>은 현실감 상실을 문제 삼으면서 ‘현실 인식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구운몽>에서 너무나 현실 같았던 양소유의 삶은 사실 꿈이었다. 이것을 보고 지금의 힘든 현실이 꿈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잠시 위로가 될 수는 있겠지만, 현실을 외면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구운몽>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그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인셉션>은 꿈과 현실의 문제를 다루지만 이는 메타버스 시대 가상세계와 현실 사이의 문제와 다르지 않다. 글 <7>은 이러한 공통점을 근거로 <인셉션>과 <구운몽>을 비교하면서 현실에 충실하게 사는 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문제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도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오아시스의 창시자 할리데이는 말한다. “내가 오아시스를 만든 건 현실에 적응하질 못해서였어. 소통하는 법을 몰랐던 거지. 난 평생을 두려워했어. 내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때 깨달았어. 현실은 무섭고 고통스러운 곳인 동시에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걸. 왜냐면 현실은 진짜니까.” 할리데이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서 오아시스를 만들었지만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그래서 오아시스를 이어받은 웨이드는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오아시스를 닫았다. 현실만이 유일한 진짜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현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8> 그렇다면 우리는 가상 공간에서 ‘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실 우리는 벌써 온라인상에서 자신을 열심히 뽐내고 있다. 가상 공간에서 우리는 일상생활과 여러 활동을 통해서 형성되고 변한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어떻게 하면 <구운몽> 속 성진과 양소유와 같이 ‘진/가’의 이원적인 세계를 극복하여 온전한 자아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가’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우리는 고정되어 있는 주체를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이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다. 하지만 아바타를 이용해 자신만의 특유한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은 좋으나 이 부분에만 너무 치우치게 되면 현실 세계에서의 자신을 잃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자신의 모습에 파묻힐 수 있다. 성진은 세속적인 세상을 마음에 품었다는 이유로 육관 대사에게 벌을 받는다. 그러나 성진은 하룻밤 꿈을 통해 세상의 헛됨을 깨닫고 육관 대사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자신이 바라던 꿈을 이루고 온 성진이 이렇게 일관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었던 이유는 꿈과 현실을 별개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생은 본래 환몽과 허영으로 이어져 있고, 그 안에서 부증불감의 참뜻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는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 멀티버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구운몽>은 단일화된 자아의 한계를 벗어나 ‘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통합하여 이상적인 자아를 구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우리는 하나의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이다. 자아 정체성은 확립하지 못한 채 자기 이상만 추구하는, 익명성을 그늘로 사용하여 허망한 삶을 꾸리는 것이 아니라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조화를 통해 궁극적인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길 바란다.

글 <8>은 ‘통합적 사유의 중요성’을 다루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가상세계를 다룬 <레디 플레이어 원>은 결말에서 메타버스에 대한 과몰입을 경계하며 현실만이 진짜라고 말한다. 그러나 <구운몽>은 한 차원 더 나아가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라고 단정 짓지 않는다. 꿈을 깨고 돌아온 성진이 육관대사에게 인생이 하룻밤 꿈임을 깨닫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하자 육관대사는 이렇게 말한다. “네 스스로 흥이 나서 갔고 흥이 다해 돌아왔으니, 그사이에 내 무엇을 간여했겠느냐? 또 네가 ‘인간 세상에 윤회할 일을 꿈으로 꾸었다’고 했으나, 이는 네가 꿈과 인간 세상을 나누어 본 것일 뿐이라. (중략) 어느 것이 꿈이고 어느 것이 현실인지 누가 알겠느냐? 지금 네가 성진을 네 몸으로 여기고, 네 몸이 꿈을 꾼 것이라고 하니, 너는 몸과 꿈이 하나가 아니라고 말하는구나. 성진과 소유, 둘 중에 누가 꿈이고 누가 꿈이 아니냐?”(김만중 지음⋅정병설 옮김, 2013: 267) <구운몽>은 성진과 양소유, 현실과 꿈, 진짜와 가짜,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어느 것도 둘이 아님을 말하며 통합적 사유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글 <8>은 이런 관점에서 <구운몽>을 읽어내고 이를 통해 현재 메타버스 시대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유는 <구운몽>의 결말에 가서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여관으로 변장한 양소유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선녀인 척했다가 귀신인 척했던 가춘운은 선녀인가 귀신인가 사람인가, 남장한 적경홍은 여자인가 남자인가, 죽은 척한 경패는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 등등 <구운몽>에서는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이분법적 분별이 무의미하고 불변의 절대적 진리는 없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가상세계와 현실의 조화로운 동행을 추구해야 하는 메타버스 시대 Z세대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연구자 대부분이 동의하는 <구운몽>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교양교육의 목표를 굳이 다시 거론하지 않더라도 교양교육은 대학생들이 홀로 서고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이정표를 제시하는 기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학생들이 <구운몽>을 읽고 쓴 에세이를 보면 <구운몽> 읽기가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학생들은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각자의 방식으로 <구운몽>을 읽었지만 에세이를 통해 제기한 문제의식과 결론은 누구나 충분히 공감할 만한 것이었다. 진정한 사랑과 소통은 이해와 존중에서 비롯된다는 것, 자기 안의 욕망을 진지하게 마주하면 도전과 변화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 사람과 세상을 만나고 행동하는 경험이 자신을 성장시킨다는 것, 현실의 괴로운 문제는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직면하고 고민해야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차별이나 분별을 넘어선 조화와 통합이 중요하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사유는 바로 교양교육이 목표로 삼는 키워드인 소통, 욕망, 성장, 성숙, 실천, 공존 등에 닿아 있다. 이로써 메타버스를 통한 <구운몽> 읽기는 <구운몽>에 대한 이해와 교양교육의 목표 달성 모두에 유효함을 확인할 수 있다.

4. 결론

본 연구의 목적은 메타버스 개념을 활용한 <구운몽> 읽기 수업 사례를 고찰함으로써 고전 읽기 수업의 방법을 모색하고 교양교육 텍스트로서 <구운몽>의 가치를 재조명해 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메타버스 시대의 도래와 함께 교양교육의 책무와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고전 읽기의 중요성 역시 강조되고 있다. 본 수업에서는 동서고금이 인정하는 우리나라의 위대한 고전 <구운몽>을 텍스트로 선정하고 ‘읽기-토론하기-에세이 쓰기’ 활동을 하였다. 시대적 흐름과 학생들의 흥미를 고려하여 메타버스 개념을 접목하여 <구운몽> 읽기 수업을 진행하였다.

읽기 단계에서는 완독의 중요성, 현재적 관점의 읽기, 자서전적 읽기, 엮어 읽기 등의 방법을 소개하였다. <구운몽>에 대한 해제를 통해 텍스트의 우수성과 위대함에 대해 강조함으로써 <구운몽> 읽기의 필요성에 공감하도록 하였다. 쓰기 단계에서는 동료 피드백을 여러 차례 실시하였는데 이는 소통을 통한 동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모둠별 토론하기는 읽기와 쓰기 과정과 계속 병행함으로써 학생들의 참여와 흥미를 제고할 수 있었다.

<구운몽>의 꿈속 세계와 메타버스 가상세계의 유사성에 대한 설명을 통해 학생들은 <구운몽>에 보다 흥미롭게 접근하고 텍스트의 주제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학생들은 <구운몽>을 읽고 쓴 에세이에서 사랑과 소통의 방식, 욕망을 대하는 자세, 경험과 행동의 중요성, 현실감 상실의 문제, 통합적 사유의 중요성 등을 주제로 다루었고 이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스스로 탐색해 나갔다. 이 문제들은 교양교육이 목표로 삼는 키워드인 소통, 욕망, 성장, 성숙, 실천, 공존 등에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메타버스를 통한 <구운몽> 읽기와 이어지는 일련의 활동들은 <구운몽>에 대한 이해와 교양교육의 목표 달성 모두에 유효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메타버스에 열광하는 이유가 메타버스 가상세계가 인정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재미를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정 욕구 충족’과 ‘재미 추구’ 이 둘은 사실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바이기도 하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 소수의 우수한 학생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학업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반면 <구운몽>의 성진은 꿈속 양소유의 삶을 통해 그 둘을 얻었고, 본 수업의 학생들은 <구운몽> 완독을 통해 인정 욕구와 재미를 추구하고, 성진과 양소유의 삶을 간접 경험함으로써 역시 그 둘을 어느 정도 성취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수업 진행 과정에서 어떤 학생은 <구운몽>을 읽고 ‘우리도 일부다처제로 가야 한다.’라는 다소 경직된 주장을 하기도 했다. 물론 이 또한 존중되어야 하는 견해이지만, 동료들과의 토론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존중하자.’는 유연한 결론을 스스로 도출해 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텍스트를 읽고, 함께 토론하고, 글을 쓰고 고치고 완성해 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좀 더 내밀하게 들여다보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거친 생각들을 다듬어 나갔다. 교양교육에서 ‘읽기-토론하기-쓰기’의 연계 활동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이 수업은 다시금 확인하게 해 주었다.

지금까지 간접 경험의 대명사는 독서였는데 메타버스 가상세계가 그 영역에 등장했다. 메타버스 가상세계를 통한 경험은 요즘 같은 비대면 시대에 적지 않은 효용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이 독서를 온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독서만 강조할 수도 없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어느 것이든 다양하게 섭렵하고 체험함으로써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데 도움을 얻었으면 한다. 성진(性眞)이 꿈속 ‘인간 세상에서 잠시 노니는[少遊]’ 소유(少遊)의 여정을 통해 자신의 ‘참된 본성[性眞]’ 성진(性眞)을 찾은 것처럼 말이다.

<구운몽>은 한국 고전소설의 백미라는 이름에 걸맞게 어느 시대든 어느 세대에게든 나름의 의미로 다가갈 수 있는 텍스트이다. 그런데 본 수업의 과정과 결과물을 보면, 특히 메타버스 시대 대학생들에게 더욱 유의미한 텍스트임을 생각하게 된다. 학생들이 살아가다 보면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해 헤맬 수도 있고 일의 실마리를 풀지 못해 난관에 부딪힐 수도 있을 것이다. 이 학생들이 걸어가면서 수없이 마주하게 될 인생의 갈림길에서 <구운몽>을 떠올리고 다시 펼쳐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때의 해답을 <구운몽>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고전이 그렇듯이 <구운몽>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텍스트이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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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1)

(초고 5점+완고 20점)×4회=100점

2)

이번 학기에 읽은 책은 『구운몽』과 『에크리』(자크 라캉, 홍준기 외 역, 새물결, 2019.), 『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신현호, 한겨레출판, 2019.),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김은령 역, 에코리브르, 2011.)이다.

3)

<구운몽>을 텍스트로 한 선행 교양수업 사례에서는 고려대민족문화연구소본과 민음사본을 사용하였다. 전자는 원문과 현대어역이 상하 또는 좌우로 편집되어 있어 전공자에게 좀 더 유용한 텍스트라 할 수 있고, 후자는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인데 문학동네본에 비해 한자어 표현을 한자 병기와 각주로 처리한 부분이 많아서 비전공자들이 읽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4)

교수자는 엮어 읽기 텍스트로 영화 <매트릭스>, <레디 플레이어 원>, <서복>, 소설 <달러구터 꿈 백화점> 등을 소개하였다. 영화 <매트릭스>와 <레디 플레이어 원>은 메타버스 개념을 설명하기에 더 없이 좋은 텍스트이다. 이용주 감독의 영화 <서복(2020)>은 죽지 않는 삶을 꿈꾸며 만든 복제인간 서복을 통해 삶과 죽음의 문제를 성찰하고 있다. <구운몽>에서 말년의 양소유가 인간의 유한한 삶을 깨닫고 불생불멸의 도를 추구하면서 결국 성진으로 돌아와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두 작품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지점이 있다. 이미예 작가의 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2020)>은 잠들면 입장할 수 있는 곳에 꿈을 파는 백화점이 있고, 그 꿈을 통해 사람들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일들을 이룬다는 이야기이다. 전반적인 설정은 판타지이지만 꿈속은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구운몽>의 설정과 유사하고, 현대의 꿈 이야기라는 점에서 <구운몽>과 엮어 읽을 만한 텍스트로 소개하였다.

5)

읽기 방법과 관련하여 강남순(2022, 171-188)조현우(2010, 61-75)의 논의를 참고하였다. 강남순은 데리다의 읽기 방법을 자서전적 읽기, 개별적 사건으로서의 읽기, 인내심 있는 읽기, 정밀한 읽기, 해체적 읽기로 정리하였다. 조현우는 교양교육에서 학생들이 고전소설을 좋아서 읽을 수 있도록 만들게 하기 위해 현재적 가치와 관심사에서 출발해야 하고, 자신의 관심에 기반을 둔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방식으로 읽어야 하며,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6)

강의평가 결과를 보면 학생들 대부분은 이 수업의 취지와 담당 교수자의 열의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토론 활동과 피드백이 유익하다는 내용이 많았다. 그런 만큼 토론 활동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수업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각 교수님들께서 정말 열의를 가지고 수업을 해주신 덕분에 글쓰기 실력이 전보다 많이 향상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교수님께서 코멘트를 자세하게 주셔서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학우들과 함께 토론하는 시간이 있어서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데 도움이 됩니다. 조별 활동을 장려해 주세요. ◌◌◌, ◌◌◌ 교수님 말고는 강의가 교수님 말씀 중심으로 진행되어 아쉬웠습니다.’

7)

네 번째 피드백 내용은 실명이 거론되어 있어서 필자가 편집하였다.

8)

그러니까 히로는 전혀 다른 곳에 존재하는 셈이다. 그는 고글과 이어폰을 통해 컴퓨터가 만들어낸 전혀 다른 세계에 있다. 이런 가상의 장소를 전문 용어로 ‘메타버스’라고 한다. 히로는 메타버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임대 창고에 사는 괴로움을 잊게 해 주기 때문이다(닐 스티븐슨⋅남명성 옮김, 2008: 37). 그가 보는 사람들은 물론 실제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건 광섬유를 통해 내려온 정보에 따라 컴퓨터가 그려낸 움직이는 그림에 불과하다. 사람처럼 보이는 건 ‘아바타’라는 소프트웨어이다. 아바타는 메타버스에 들어온 사람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자 사용하는 소리를 내는 가짜 몸뚱이이다.(닐 스티븐슨⋅남명성 옮김, 2008: 52)

9)

전이정(2011: 90-97)은 <구운몽>이 컴퓨터와 같은 물리적인 매개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으로 구성되는 가상 체험, 가상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으로 이해한 바 있다.

10)

이는 영화 <매트릭스>의 구조와 동일한 것이다. <매트릭스>에서 현실은 2199년, 가상현실은 영화 개봉 당시인 1999년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현실이 비현실적이고 가상현실이 더 현실적이다. 이강옥(2013, 59)은 <매트릭스> 세계관이 불교와 상당 부분 상통한다는 점을, 박지윤(2013, 117)은 <매트릭스>와 <구운몽>의 구조가 닮아있다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11)

여덟 여인을 차례로 만나고 점점 더 높은 지위로 오르는 양소유의 행적은 게임에서 단계별 미션을 수행하는 것과도 유사하다.

12)

본고에 소개된 예시 글은 에세이를 작성한 학생들의 동의를 얻고 수록하였음을 밝힌다.

13)

사랑은 <매트릭스>와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이다. <매트릭스>에서 트리니티가 사랑에 빠지는 남자가 매트릭스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그’였고, 트리니티는 두려움 없이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오아시스의 창시자 할리데이는 용기가 부족하여 사랑하는 여인 키라와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할리데이의 후회를 알게 된 주인공 웨이드는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용기 내어 사랑하는 사만다에게 고백한다.

14)

다치바나 다카시는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백과전서파의 철학자인 콩도르세가 “교육의 목적은 현 제도의 추종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라고 했던 말을 인용하여, 교양교육은 무엇을 ‘안다’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실천할 수 있는 마음을 기르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김성수, 2021: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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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3주 6차시 수업 일정

주차 차시 교실 활동 학생 개별 활동
1 1 읽기 방법, <구운몽> 해제, 조별 토론 <구운몽> 읽기, 활동지 작성
2 <구운몽> 강의, 조별 토론 <구운몽> 읽기, 활동지 작성
2 3 <구운몽> 강의, 조별 토론 <구운몽> 읽기, 활동지 작성
4 에세이 작성법 강의, 초고 쓰기 초고 온라인 과제방⋅토론방 제출, 온라인 교수자⋅동료 피드백
3 5 초고 교수자⋅동료 피드백 수정본 온라인 토론방 제출, 온라인 동료 피드백
6 수정본 교수자 피드백 완고 온라인 과제방 제출

[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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