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양교육으로서 자기소개서 수업에 관한 질적 연구 -교수자의 성찰적 내러티브 기술을 중심으로

A Study on Teaching for Writing a Self-introduction -Focusing on the lecturer’s reflective narrative

Article information

Korean J General Edu. 2022;16(5):113-127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22 October 31
doi : https://doi.org/10.46392/kjge.2022.16.5.113
임이랑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 imleelang@jbnu.ac.kr
Lecturer, Chonbuk National University
Received 2022 September 20; Revised 2022 October 04; Accepted 2022 October 18.

Abstract

이 글은 대학 교양교과를 담당하는 필자가 자기소개서 수업 현장에서 교수자로서 겪는 한계와 곤란이 무엇인지 성찰적 내러티브 기술을 통해 점검한 질적 연구이다. 필자의 교수(teaching) 행위를 분석한 결과 몇 가지 문제가 발견되었다. 첫째, 학생들이 몰입할 만한 작문의 여건과 상황은 충분히 마련해주지 못한 채 과도한 성취목표를 설정한 점이다. 둘째, 자기소개서라는 작문과제의 곤란도를 수업의 면면에서 지나치게 반복하여 강조한 점이다. 셋째, 자기소개서의 항목을 기계적으로 분류하고 그 항목에 따른 예문을 또한 편향적으로 제시한 점이다. 즉, 필자의 수업은 ‘자기소개서 작성의 어려움과 복잡함’에 매몰되어 결국 학생들의 성취도 부진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필자는 다음과 같은 점을 유념하면서 수업의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먼저 취업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 격차를 보다 세심하게 고려하여 수업 설계에 반영하려 한다. 학년별로 취업에 대해 느끼는 예민함의 편차가 크기 때문에 수강생의 학년 분포를 살펴 수업의 성취목표를 유연하게 조정하고, 특히 신입생 위주의 수업에서는 자기소개서가 요구되는 취업 이외의 상황들을 확장적으로 예시하고자 한다. 아울러, AI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자기소개서와 관련한 공학논의들이 다양하게 발표되고 있으므로 좋은 자기소개서를 판별할 수 있는 딥러닝 모델 개발과 같은 주요 논의는 수업 현장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이와 같이 보다 정교하고 다채로운 교수법의 변화를 통해 자기소개서에 대한 학생들의 막연한 두려움이 상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Trans Abstract

This study is a qualitative research that examines the limitations and difficulties experienced as an instructor in the field of a self-introduction class through the use of reflective narrative technology. As a result of analyzing my teaching, my class was buried in the ‘difficulty and complexity of writing a self-introduction’, resulting in the poor achievement of students. Accordingly, I tried to find ways to improve the class while keeping the following in mind. First, the dimness in the students’ perception when it comes to their future employment is considered more carefully and reflected in the class design. In addition, with the advent of the AI era, various engineering discussions related to self-introductions are being announced. Thus, major discussions, such as developing a deep learning model that can identify good self-introductions, will be actively used in the class. It is hoped that the students’ vague fear of self-introductions can be offset through more sophisticated and colorful changes in teaching methods.

1. 서론

최근 10년간 제출된 학위논문만 수십 편에 이를 만큼 자기소개서 연구는 현재까지 꾸준하고 활발한 양상으로 지속되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기존 연구(2010년대 이전)가 주로 국어 혹은 국어교육 관련 전공자에 의해 시도되었던 데에 비해 최근 10년 동안에는 컴퓨터공학, IT경영학, 사회학 등등 새로운 학문 영역에서 자기소개서를 논제로 삼고 있는 점이다. 예컨대, 자기소개서와 관련한 이공계열의 논문은 학교, 기관, 기업 등에서 합격-불합격한 자기소개서 자료를 수집해 빅데이터 분석을 진행하는 방식에 기초하면서, 이러한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자기소개서에 적합-부적합한 어휘, 어구 등을 추출하여 시사점을 제시하는 논의가 한 유형을 이룬다(김세준, 2019; 김영준, 2020; 장진후, 2019). 여기서 더 나아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자기소개서를 직접 판별할 수 있는 AI 프로그램 개발까지 시도하는 연구도 있다(김영수 외, 2020; 이용준 외, 2021; 이형용, 2020; 임준묵 외, 2020).

이러한 연구경향성은 앞으로 대학을 비롯한 초중고교에서 자기소개서에 대한 교수학습이 이루어질 때 반드시 참고되어야 할 시대적 변화라고 생각한다. 자기소개서는 더 이상 인사채용 담당자 즉, 사람이 읽는 글이 아니게 되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최종 면접까지 가는 과정에서 인사 담당자가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를 검토할 기회가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판별 프로그램이 상용화 된다면 우선 채용규모가 큰 대기업, 공공기관 등에서 1차 합격자를 분류하는 여과장치로 활용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

한편, 자기소개서 연구를 학교급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대입 자소서와 관련한 고등학생의 작문 사례 연구가 전통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경우는 학교 현장에서 교사로 재직한 자신의 교수(teaching) 경험에 토대하여 작성한 수업 사례 연구의 성격이 두드러지고 그렇기에 교육대학원 등에서 발표된 졸업논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김민주, 2018; 박선애, 2016; 조윤경, 2017; 허효정, 2022). 해당 논문들은 현직 종사자들이 직접 연구자의 역할을 겸하며 개별적인 교수 경험을 생생하게 기술하고 있는 질적 연구가 많다는 점에서 저마다 그 가치와 의미장이 분명한 연구라고 생각한다.

대학 교양교육의 영역에서는 대학 글쓰기 교재에 자기소개서 단원이 수록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엽부터 자기소개서의 중요성이 본격적으로 부각되면서 교양교과로서 글쓰기 수업 사례 보고가 꾸준하게 이루어져 왔다. 대학생 자기소개서는 특히 취업과 직결될 수 있는 글인 만큼 효과적인 지도법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논의가 많았다. 우선 내용 면에서 몇 가지 유의미한 사례를 정리해보면, 성찰적 글쓰기로서 자기소개서 작성법을 탐색한 사례(최면정, 2018), 자기소개서의 장르를 규명하려는 시도(김록희, 2019; 김지오, 2020), 자기소개서의 항목별 세부 지도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사례(정우진, 2017; 정은아, 2022), 자기소개서의 제목 혹은 소제목의 유의미성에 주목한 사례(이형근, 2017; 최정혜, 2019), 자기소개서 평가기준 설정에 대한 논의(이은홍, 2018)를 들 수 있다. 아울러 대학생 자기소개서 연구를 대상 학습자의 특성에 따라 구분해보면, 기본적으로 한국인 학습자가 가장 많지만 최근에는 외국인 유학생(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등) 대상 작문교육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자기소개서 쓰기 연구(김윤희, 2021; 안숙현, 2020; 최보르미, 2019; 하흔흔, 2021)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이다. 또 이와는 반대로 한국 학생이 외국 대학에 지원할 때 써야 할 자기소개서에 대해 다룬 논의(이윤선, 2015)까지 있어 인상적이었다.

이렇듯 자기소개서는 이미 방대하게 축적된 연구사가 입증하고 있듯이 그 교수법과 관련해 논의되어야 할 제반의 문제들은 사실상 거의 다루어진 상태라고 보아도 될 듯하다. 다만, 취업시장에 이미 AI 면접관이 실제로 등장했고 머지않아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도 AI 프로그램에 의해 당락이 판별될 것으로 전망되는 현 시점에서 특히 구직활동에 나선 대학생이 써내야 할 자기소개서의 요건과 유의점은 새롭게 모색해볼 필요가 있으리라 본다. 또,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학습자의 성격은 국내에서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은 물론 해외 유학을 준비하는 한국인 학생으로까지 점차 다양해지고 있는 데에 비해 자기소개서 수업을 직접 운용하는 교수자에 대한 연구는 본격적으로 시도되지 않은 점도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남는다.

이에 본고는 대학 교양교과목을 담당하는 교수자가 자기소개서 수업을 할 때 겪는 한계와 곤란이 무엇인지, 문제 상황에서는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 그러한 교육적 처치는 학습자의 성취를 어느 정도로 이끌었으며 반면 어떤 한계 속에 머물러 있는지 등 교수자의 입장에서 자기소개서 수업을 수행하며 의식했던 점을 자기반성적으로 분석하는 질적 연구를 시도해보려 한다. 즉, 이 글에서 필자는 대학 교양교과의 수업에서 직접 자기소개서 단원을 지도했던 현직 종사자이면서, 동시에 질적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로서의 역할을 겸한다. 이와 같은 연구방법은 ‘응용 질적 연구’의 한 유형으로 ‘현직자연구’ 방식에 해당한다. 현직자연구는 현직의 효과적 수행 방법과 수행의 향상 방법을 찾아 자신들의 직업 활동을 좀더 잘 수행하기 위한 연구법이며, 이 연구를 통한 변화의 수혜자는 현직자의 학생이라는 점에서 유의미하다(로버트 보그단⋅사리 놉 비크렌(2020; 324-325)).

필자는 2019년부터 2022년 1학기까지 4년제 종합대학인 A학교와 3년제 전문대학인 B학교에서 담당했던 교양교과목 <글쓰기>, <글쓰기와 의사소통>, <의사소통능력>의 수업을 종합적으로 회고하면서, 자기소개서 단원의 교수 행위를 개인 내러티브를 서술하는 사고구술법을 활용해 점검하고자 한다. 특히 이 글은 ‘자기소개서 수업에서 충분한 교육적 성취를 이루는 데에 실패한 원인이 무엇인가’를 유념하면서 교수자로서의 성찰적 내러티브를 진솔하게 기술하는 데에 역점을 둔다. 이를 통해 필자는 그동안 수행해온 자기소개서 수업의 문제를 스스로 진단하여 앞으로의 교수 방향을 재설정하려 한다. 따라서 본고는 1차적으로 연구자로서의 필자가 이 글에서 학술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수렴하는 데에 목적을 두는 한편, 현직 종사자로서 교육 현장에 본고의 논의내용을 신속하게 적용하여 수강생에게 보다 더 실효성 있는 자기소개서 수업을 제공하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는다.

2. 연구 설계 및 연구 방법

2.1. 연구 참여자

질적 연구의 연구 설계 과정에서 연구 참여자에 대한 정보는 대개 생애사적 기술을 바탕으로 제시된다. 특히 학위논문의 경우, 연구 참여자의 내력이 유년기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매우 상세하고 확장적으로 서술된 사례가 많다. 이는 연구자가 연구 참여자들 각각의 정체를 충분하게 이해한 뒤 본격적인 논지 전개를 이어가야 하는 질적 연구의 보편성으로,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 간의 신뢰 형성이 한 목적인 작업이라고 이해된다. 그러나 이 글은 한정된 지면에서 논의를 마무리해야 하는 학술 소논문의 형식이고 또한 연구 참여자가 곧 본고를 작성하는 연구자 자신이라는 ‘현직자연구’의 특수성을 가지므로 생애사적 기술은 대폭 축소해도 무방하리라 본다.

다만, 현직 종사자로서의 연구 참여자인 필자의 신분적 정체를 요약하면 대학에서 교양교과목을 담당하는 강사라는 점, 올해로 3~4년차에 접어드는 초임자라는 점, 모교 강의를 시작으로 현재는 타교 출강도 겸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아울러 연구자로서의 필자는 학부 및 석사과정까지 국어교육학을 전공했고 박사과정에서 국어국문학으로 전향했음을 밝혀둔다. 이러한 내력은 연구자로서의 필자가 내용학과 실용학의 영역에 두루 관심을 가지며 연구생활을 지속해가고 있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수업의 영역에서 현직자의 교수행위 분석을 질적 연구로 시도한 사례는 매우 희소하고 더욱이 현직자연구 방식은 선례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므로 본고는 현직자연구 방식의 질적 연구를 대학 교양교과에 적용해보려는 시론에 가깝다. 필자가 이러한 연구를 시도해보려는 데에는 전술한 바와 같이 연구자로서 다소 독특한 이력을 가진 점이 동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국어국문학으로 학위를 받은 경우 대개 내용학 연구자로서의 성향이 강한데 필자는 내용학 연구에 충실하는 한편 교육학 전공자로서의 정체성도 잃지 않으려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교육학과 같은 실용학의 영역에서 주로 시도되는 질적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또한 신규 강사로서, 교수자로서의 전문성 신장이라는 시급한 문제에 당면해 있으므로 필자는 자전적 내러티브 기술에 기반한 반성적 논의를 필연적인 연구과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2.2. 자료 수집 및 분석 체계

필자의 교수 행위를 분석하기 위해 본고에서 취합한 자료는 다음과 같다.

(가) 강의 기록: 교재 및 강의노트

(나) 강의 영상: 비대면 수업의 증빙자료로 보관 중인 녹화 영상

(다) 수강생이 작성한 자료: 자기소개서 작문지, 설문지

(라) 수강생 면담 영상: 줌(ZOOM)을 통해 이루어진 일부 학생과의 개별면담 자료

우선 (가)는 기록 자료이므로 필요에 따라 그 자체를 직접 인용하는 방식으로 활용한다. (가)의 교재는 A와 B대학에서 각각 개발한 공통교재들을 말한다. 이 글에서는 해당 교재들에 제시된 내용, 강의 준비를 위해 필자가 교재에 메모한 내용, 교재 외 공간에 따로 작성한 강의노트의 내용을 수업 관련 기초 기록물로 활용한다. (나)는 (가)를 보완하는 자료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2020년 1학기부터 2021년 2학기까지 2년 동안 진행한 수업은 그 증빙을 위해 필수적으로 녹화해두어야 했다. A대학에서는 줌(ZOOM) 프로그램을 활용한 실시간 화상 강의를 위주로, B대학에서는 사전 제작 동영상 업로드 방식의 강의를 진행했다. 필자는 이 가운데 자기소개서 단원의 수업 영상을 열람하여 수업 중 발언했던 내용을 상세하게 복기할 수 있었다. 복기한 내용 중 유의미한 대목은 ‘수업 전사’의 방식을 통해 적극적으로 이 글에 인용하고자 한다.

전사(transcribe)는 현장작업에서 수집한 자료를 추후 분석을 위해 깨끗하고 체계적으로 새롭게 받아 적는 것을 뜻한다. 전사작업은 질적자료의 훌륭한 분석작업 과정으로서 역할을 한다(김영천, 2010:439-441). 본고는 현직자연구이기에 필자가 수행한 과거의 수업들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소환해서 ‘객관화’하는 데에는 얼마간의 한계가 노정될 수밖에 없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녹화된 강의영상을 복기하며 주요 대목을 전사하는 작업을 통해 이 글은 기억에만 의존한 단순 수업후기 이상의 가치를 가지게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즉, 본고의 전사 방식은 교수 행위의 당사자로서 본인 스스로 직접 자신의 수업내용과 발언을 핍진하고 면밀하게 관찰⋅검토한다는 점에서 메타적인 작업이라는 의미가 있다.

(다)는 수강생이 작성한 자료이기에 자료 전반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의미 있는 사례를 제시하되 수강생에게 미리 ‘동의’를 얻은 자료에 한해서만 공개한다. 필자는 2019년 1학기를 제외한 모든 수업에서 설문지 회수 과정을 통해 수강생들이 작성한 글과 설문지 답변내용에 대한 활용 동의여부를 조사했다. 조사 방식은 설문지 하단에 “위 설문에 응답한 내용과 그동안 수업에서 과제로 제출한 글은 향후 ‘글쓰기 수업’의 사례 연구를 위한 논문 작성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제시한 뒤 동의/비동의 란에 자유롭게 표시하도록 했다. 대부분의 학생이 동의했으나 일부 비동의를 선택한 학생이 있기에 연구 윤리에 따라 해당 학생의 자료는 이 글에 인용하지 않는다.

(라)는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었던 초기에 수강생이 작성한 글에 대한 첨삭지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일부 학생들과 줌(ZOOM)을 통한 개별첨삭 및 면담을 진행했던 상황을 녹화한 영상자료이다. 설문지를 통해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전반적으로 수렴할 수 있지만 일대일 면담은 지면에 한정된 응답에 비해 더욱 생생하고 구체적인 의견을 듣게 되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해당 녹화영상에서도 일부 유의미한 발언을 했던 수강생의 의견은 이 글에서 일부 인용할 계획이다.

위와 같이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 수업의 기본 정보를 정리하면 먼저 A대학에서는 2019년 1학기, 2020년 1학기~2022년 1학기까지 총 6학기 동안 17개의 분반을 담당했다. 분반별 정원은 30명으로 거의 모든 분반이 정원을 채운 상태로 진행되었으므로 수강인원을 가늠하면 대략 500명이다. 4년제 종합대학인 A대학 수강생의 소속 학과는 기계⋅신소재⋅토목공학 등의 이공계열, 경영⋅경제⋅회계학 등의 상경계열, 독일학, 윤리교육학, 역사교육학 등의 인문계열로 다양하다.

B대학은 2021년 2학기부터 출강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정규수업 2학기와 계절수업 2학기를 담당했다. 정규수업은 분반당 정원이 50-60명인 총 5분반을, 계절수업은 20- 30명 정도의 2분반을 맡아 전체 수강인원은 300명 정도이다. 3년제 전문대학인 B대학 수강생들은 방사선학, 병원전산관리학, 간호학, 치위생학, 물리치료학과와 같이 이공계열 전공이 주를 이루나 일부는 식품영양학, 뷰티케어학, 유아교육학과의 학생도 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본고는 종합대학 및 전문대학의 2개 학교에서 총 800명 가량의 다양한 수강생을 지도한 3년간의 교수 경험을 회고하는 작업이다. 800명이 제출한 자료 자체에 방점을 두어 이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양적 연구도 어려운 일이겠지만, 의미 있는 사례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각 사례마다 교수자가 문제적으로 인식했던 지점을 기술하는 질적 연구 역시 적절한 연구방법을 모색하기는 쉽지 않다. 방대하고 다층적인 교수 경험을 효율적으로 분석할 만한 체계와 기준을 설정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우선 필자의 강의 연차에 따라 분석 시기를 초기-중기-후기로 나누고, 각 수업의 수행과정을 도입-전개-정리로 구분하여 자료 분석의 기본 틀을 마련하고자 한다. 내용 면에서는 그동안 필자가 수행한 교수 행위의 중점을 간략히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려 한다. 이와 같은 기준에 따라 필자의 강의 연차별로 변화해온 교수 행위의 양상을 종횡으로 교직하여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위의 <표 1>에서 확인되듯이 수업의 기본적인 전개 과정 즉, ‘도입-전개-정리’의 체계와 그 세부요소는 고정적으로 유지되는 축이다. 따라서 중요하게 살펴볼 부분은 ‘초기-중기-후기’의 구분에 따른 교수 행위의 변화인데 세 시기의 구분은 단순한 년도의 구분만이 아니다. 필자가 그동안 수업을 수행하면서 ‘계획-실행-관찰-반성’의 사이클을 크게 3회차에 걸쳐 반복했다고 판단한 데에 따른 것이다. 즉, ‘초기’의 교수 경험을 통해 실행-관찰한 내용을 토대로 1차적인 수업 반성을 했고, 그 결과를 반영하여 ‘중기’에는 새로운 계획을 수립해 실행했다. 그런 다음 중기에 관찰된 교육적 성취와 한계를 반성적으로 점검하여 다시 ‘후기’의 수업 계획을 마련한 뒤 실행-관찰-반성을 수행했다는 의미이다. 이에 따라 ‘초기-중기-후기’의 시기별로 교수 행위의 중점이 달라지거나,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거나, 기존 내용이 더욱 세분화되는 일련의 변화들은 원문자의 음영 등으로 표시했다.

강의 연차에 따른 교수 행위의 변화 양상

본고는 이와 같이 <표 1>에 제시한 내용과 분석 체계를 유념하면서 다음 3장에서 본격적으로 필자의 교수 행위 양상을 분석하려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필자가 수행한 교수 행위의 변화 양상을 관통하는 ‘변인’이 무엇인지 보다 명료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3. 교수(teaching) 행위의 양상 분석

3.1. 과도한 성취목표 설정 및 몰입 맥락 조성의 불충분

주로 신입생을 대상으로 개설된 교양 글쓰기 및 의사소통 교과목의 영역 안에서 자기소개서 수업을 진행할 때 설정할 수 있는 적절한 성취목표란 무엇일까. 혹자는 교양교과로서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본격적인 구직 활동에 나선 대학생이라면 진로⋅직업 탐색과 관련한 교과를 따로 수강하거나, 교내외의 각종 취업센터에서 제공하는 유료 컨설팅 서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교양교과에서 이뤄지는 자기소개서 수업의 성취목표는 까다로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 개개인이 필요에 따라 각자 유료 서비스를 찾으면 될 일이라는 식의 접근은 다소 무책임하게 들린다. 전국 대학에서 글쓰기를 교양 필수교과목으로 지정하고, 그 안에서 다루는 단원 중에는 ‘자기소개서’가 또한 필수적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유료 서비스를 이용할 의사가 없거나 여건이 닿지 않아 이용할 수 없는 학생이라면 사실상 교양 글쓰기 수업은 자기소개서와 관련해 경험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학습기회가 될 것이다. 신입생 대상 교양 글쓰기 수업에서 이루어지는 교수학습 과정에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점은 인정하지만, 해당 수업은 대다수의 학생이 자기소개서에 대해 학습하는 유일한 경험일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인식하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자기소개서 수업을 도입하곤 했다.

[수업 전사 자료-1] (2020-1학기)

우리 수업에 1학년이 아닌 학생도 몇몇 있지만 대체로 다들 신입생이죠? 수능을 막 치르고 올라왔기 때문에 취업은 아직 생각하기도 싫을 수 있겠어요. 그치만 취업난이 심각하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하시죠? 그래서 아마 예전 신입생들과 지금 여러분은 취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벌써부터 각종 동아리나 스터디 가입해서 취업준비를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렇죠? 그럼 취업을 위해, 구직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소위 스펙, 좋은 졸업장과 높은 어학점수 같은, 화려한 이력 자체가 취업을 결정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아요. 오늘부터 공부하고 실습해볼 자기소개서가 취업을 결정하는 아주 중대한 요소입니다. 비슷한 이력으로 경쟁할 때 자소서가 지원자의 당락을 결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력서가 다른 지원자에 비해 좀 약하더라도 자소서가 인상적이면 그 사람이 최종합격자가 되는 경우가 실제로 많습니다. (중략) 그러니 지금 당장 취업을 준비할 게 아니라 하더라도 이 수업에서 나중에 활용할 자소서의 초고 정도를 작성해본다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수업 전사 자료-2] (2022-1학기)

자소서 쓰기를 학생들이 참 어려워 하는데, 뭐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지금 이렇게 신입생이 대부분인데 제가 항상 취업에 대해서만 너무 강조했던 게 별로 동기부여 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은 거 같더라고요. 특히 지금 이 분반은 사범대 학생들이라 자소서에는 더 관심이 없죠? 그런데 자소서라는 게 꼭 구직과정에서만 요구되는 건 아니에요. 여기는 역사교육과, 일반사회교육과가 많으니까 그쪽을 예로 생각해보면, 대학생활 동안에도 교내 박물관 같은 데서 학예사 선생님 지도 받으면서 일종의 근로장학생 형태로 연구경험을 쌓아볼 수 있거든요. 그러자면 그것도 일단 자소서와 이력서가 필요해요. (중략) 또는 사범대 학생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교육기행 같은 기회들이 있잖습니까? 일종의 해외연수죠. 선진국 학교 방문해서 교육정책 같은 거 공부해볼 수 있는 기회인데, 요즘 해외연수나 유학은 찾아보면 다 국비로 지원받아서 다녀올 수 있어요. 근데 그런 기회를 잡으려면 우선 자소서를 잘 쓰는 게 아주 중요한 절차인 거죠.

밑줄을 중심으로 [수업 전사 자료-1]을 분석하면, 필자는 우선 수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취업난’이라는 말을 언급하며 학생들의 위기의식을 자극하고 있다. 이것은 신입생임에도 ‘벌써 각종 취업 준비 동아리나 스터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발언으로 이어져 결국 극심한 취업난으로 인해 대학생의 구직 시기가 앞당겨진 현실을 환기한다. 그러면서 필자는 구직과정에서 이력서보다도 더욱 중대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자기소개서임을 여러 번 강조한 다음, 이 수업에서 그 ‘초고’를 마련해볼 것을 권고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본격화 하고 있다. 여기서 교수자가 의도한 초고란 향후 구직과정에서 직접 활용할 수 있을 만큼 기본적인 내용과 형식 면의 완성도를 갖춘 글이라는 점을 부연했었다.

이러한 교수 행위는 대학생들이 당면해 있는 취업 현실을 고려한 동기유발 전략이었지만 우선 취업 스트레스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접근한 점이 학생들을 불편하게 했을 수 있다는 후회가 남는다. 또한 무엇보다 자기소개서 작성의 필요성을 오직 취업 문제로만 국한해서 발언하고 있는 점이 큰 문제로 인식된다. 자기소개서의 경우 특정 대상에게 선택받기 위해 ‘자기소개를 해야만 하는 상황’을 가상으로나마 전제해야 실습이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는데, 신입생 위주로 구성된 수강생들에게 취업 문제만 반복해 언급한 것은 패착이 아닐 수 없다. 즉, 학생들이 자기소개서 작성 상황에 몰입할 수 있을 만한 자연스러운 맥락이 충분하게 마련되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필자는 모든 학기에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기소개서 수업의 문을 열었고 가장 최근 학기(2022-1학기)에 와서야 조금 다른 경우를 뒤늦게 추가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수업 전사 자료-2]에서 보듯이 사범대 학생은 임용시험 제도 안에서 제한적인 구직 활동을 하게 되므로 다른 전공에 비해 자기소개서 작성의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특수성을 고려하여 대학생활 중에도 경험할 수 있는 박물관 근로연구생 지원, 교육기행 지원과 같은 취업 이외의 여건을 제시했으나 해당 학과 학생들이 제출한 자기소개서를 종합할 때 작문 상황의 몰입에 뚜렷한 도움이 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교수자의 유도에 따라 박물관 학예업무 지원을 가상으로 전제한 뒤 자기소개서를 작성한 학생이 있었지만 단 한 사례에 그쳤으며 사범대 위주의 분반은 타 전공 수강생들에 비해 자기소개서 제출률이 현저하게 낮았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자기소개서 수업의 도입부에서 필자는 학생이 다양한 지원 상황을 상정하여 각각의 방식으로 작문에 몰입할 수 있을 만한 맥락을 충분히 예시하지 못했다. 취업 현실을 부각하는 데에만 너무 치중한 나머지 학생들의 동기를 효과적으로 자극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동기유발 전략의 문제를 안은 채로 수업 목표는 ‘완성도 있는 초고 작성’이라는 어려운 성취 기준을 제시한 점 또한 무겁게 성찰해볼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A학교의 신입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업 상황에 좀더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는 B학교(3년제 전문대학) 수강생들이 보인 반응은 조금 달랐다. 특히, 졸업학점 관리 등의 이유로 계절수업을 수강했던 3학년 막 학기 학생들의 경우는 ‘가장 인상적인 작문 실습’을 묻는 설문에 ‘자기소개서’라고 응답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 이유는 대개 ‘실용성’으로 수렴되었다. 이것은 취업 현실과 관련해 자기소개서의 중대성을 강조하는 동기유발 전략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라는 방증이 될 수 있다. 다만 그러한 교수 행위가 실질적으로 학생에게 가 닿으려면 구직 활동에 임박한 고학년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라는 전제가 먼저 성립해야 한다는 점을 유념하고자 한다.

3.2. 과제 곤란도에 대한 반복적 강조

본격적인 수업 ‘전개’에 들어가면 우선 각 대학에서 간행한 교재의 내용에 따라 이론적 설명을 진행한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활용하는 기본적인 서술전략과 실제 집필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점을 상세하게 확인하고 인지하도록 하는 과정이다. 필자는 비교적 교재 내용에만 충실했던 초기를 거쳐, 중후기에는 따로 강의노트를 작성한 뒤 해당 내용을 요약해 수업 현장에서 판서를 통해 전달하는 방식으로 보다 실효성 있는 자기소개서 작성법을 안내하기 위해 고심했다.

[교재 및 강의노트] (2020-1학기 ~ 2022-1학기)

  • - (교재) 자기소개서 작성 시 유의사항 : 구체성, 참신성, 간결성

  • - (강의노트) 자기소개서 요건을 내용/표현/태도 면으로 구분해 정리함.

[내용 구성의 유의점]

  • 1) 전반부: 진정성 있게 ‘인성(대인관계능력)’을 드러내야 함. - 성찰적

  • 2) 후반부: 적극적/효율적으로 자신의 가치와 업무능력을 ‘설득’해야 함. - 논증적

[표현(서술전략)의 유의점]

  • 1) 구체성: 주요 항목은 1개 이상의 일화(에피소드) 반드시 제시

  • 2) 대표성: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적 자아’를 ‘캐릭터’로 표현해 ‘소제목’에 드러낼 것

[태도(자소서의 정서와 분위기) 면에서 유의할 점]

  • 1) 진정성: 성장과정, 성격 및 가치관 항목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

  • 2) 적극성: 지원동기 항목에서 지원기관 및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통해 증명할 것

  • 3) (직무 관련) 효율성: 경력사항 제시할 때 직무 관련도에 따라 주요 경험만 선별할 것

자기소개서 단원의 수업이 어려운 것은 우선 [강의노트]의 기록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자기소개서 자체가 복잡한 요건을 두루 갖추어 써내야 하는 글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즉, 실제로 필자는 좋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이러한 인식을 수업 상황에서도 여과 없이 학생들에게 표출해왔다.

[수업 전사 자료-3] (2021-2학기)

수업을 할수록 제일 어려운 단원이 자기소개서라는 생각을 합니다. 너무 중요한데 가르치기도 어렵고 학생들도 쓰는 걸 엄청 힘들어해요. 왜 그러냐면, 일단 좋은 자소서가 너무 희귀하거든요. 그동안 학생들이 제출한 자소서가 수백 편인데 그중에 좋은 자소서라 할 만한 걸 꼽으라면 정말 거의 없어요. 제가 잘못 가르쳐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웃음) 이렇게 지금 빽빽하게 판서한 것처럼 자소서라는 게 갖춰야 할 요건도 너무 복잡하고 특히, 성찰과 논증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어려운 글인 거죠. 성찰이나 논증이 둘 다 만만치가 않은 사고과정이잖습니까. 그런데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한 글에서, 그것도 기껏해야 A4 2쪽 분량으로 달성해야 하니 쉽지가 않죠. 오히려 자기소개 포트폴리오를 만들라면 이렇게까지 어렵지 않을 수 있어요. (중략) 일단 자기성찰을 제대로 하는 것도 어렵고, 성찰의 결과로써 보여주는 진정성이라는 것도 마냥 솔직해서는 안 되고 아주 전략적인 솔직함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독자 즉, 채용 담당자의 마음을 움직여야 되는, 궁극적으로는 설득력이 아주 강력해야 하는 글이라는 얘기입니다.

위의 [수업 전사 자료-3]에서 밑줄이나 음영 처리한 부분을 보면 자기소개서라는 작문과제의 ‘곤란도’를 쉴새 없이 반복해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자기소개서가 어려운 글이기도 하고, 교수자로서 그 수업을 어렵게 느끼는 것도 사실이기에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토로한 것이지만 위와 같은 발언은 어떤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을까. 이 대목에서 필자는 고교 시절 문학 수업의 한 장면을 연상해보게 된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를 배울 때 당시 선생님께서는 “이 시가 표현이 단순해서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존재의 실증에 대해 다루고 있는 심오한 작품입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많은 사람들의 애송시인 만큼 필자도 그 시를 좋아하지만 당시 선생님의 발언 때문인지 필자는 아직도 그 시의 진의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수자의 발언이란 이를테면 그런 정도의 위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필자가 자기소개서의 어려움을 거듭 강조한 것은 결국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소개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생성⋅증폭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 아닌가 한다.1)

첫 학기(2019-1학기)에는 자기소개서의 중대성을 고려해 학점이 부여되는 정기과제로 제출하도록 했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결과가 필자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그때도 자기소개서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충분하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높은 기대수준을 가지지 않았었는데, 학점과 직결된 기말과제임에도 중간과제(논증글)에 비해 글의 완성도가 평균적으로 현저하게 떨어진 점이 의아했다. 동일한 수강생들이 두 번의 정기과제에서 보인 이러한 성취도 격차는 수강생 개개인의 성실성 여부보다는 과제 자체의 곤란도에 따른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에 그 다음 학기부터는 A대학의 경우 자기소개서는 정기과제가 아닌 수업 중의 수시실습으로만 진행해 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필자는 ‘본래 정기과제였지만 워낙 어려워해서 학점에 반영하지 않는 실습으로만 진행하니 너무 부담 가지지 말라. 할 수 있는 만큼 작성해보고 정 못 쓰겠으면 자기소개서 실습지는 제출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식의 발언을 하게 된다. 이는 자기소개서의 중대성을 역설했던 수업의 도입부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며 더욱이 ‘어렵지만 중요하다’와 ‘어려우니까 못 써도 괜찮다’는 논리가 서로 충돌하면서 학생들의 혼란만 자초한 셈이 되었다.

초임자로서의 의욕과 미숙함이 뒤섞이면서 결국 교수자 스스로도 길을 잃고 만 것이다. 학생의 입장을 짐작해 볼 때, 자기소개서 실습에 열성을 다해 임해야 할지 적당히 시도만 해봐도 되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을 텐데 필자는 현재까지도 이 문제에 대한 뚜렷한 답은 찾지 못했다. 이렇다 할 대안적 교수법을 마련하지는 못했지만 예컨대, B대학 자기소개서 수업에서 말하기와 연계해 ‘자기소개 영상’을 제작해보도록 했을 때 오히려 더 몰입하는 현상이 발견되기도 했다는 점을 특기해 둔다. 자신의 어린시절 사진이나 영상을 탐색하면서 학생들은 자기 자신의 성격과 취향 즉, 본인의 정체성에 더 핍진하게 다가가는 경험을 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자기소개 영상은 자기소개서에 비해 실질적 효용 가치는 떨어질 수 있겠으나 자기소개서 작성의 어려움을 상쇄할 수 있는 한 방편으로서 매개적 교수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2)

3.3. 기계적 항목분류와 항목별 예문 제시의 편향성

첫 학기(2019-1학기)에는 교재의 예시문을 분석하는 데에 치중했다. 확보된 자료가 없었기에 교재에만 절대적으로 의존하여 수동적인 교수 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점차 학생이 제출한 작문과제가 축적되면서 중후반부로 갈수록 교재 밖의 다양한 자기소개서 예문을 제시하려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한 점이 있다는 자각이 뒤늦게 들었다.

3.3.1. 기계적 항목분류로 인한 자기소개서의 유기성 붕괴

교재에 의존해 진행했던 초기 수업에서는 자기소개서 작성 시의 유의점을 주지시킨 뒤 수강생 개개인이 자유양식으로 작문하도록 했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자유양식으로 작성해 제출한 자기소개서가 지나치게 분방하고 엉성한 인상을 남기다 보니 중후기 수업에서는 자기소개서의 구성을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전반부는 성찰적, 후반부는 논증적으로 접근해야 함을 강조했다. 전반부는 다시 (1)성장과정, (2)성격 및 가치관으로, 후반부는 (3)주요 경력 및 특기사항, (4)지원동기로 세분되는 것이 자기소개서의 보편적 양식이라 공식화 한 것이다.

여기에 필자는 초기 수업에서 ‘성찰’의 중요성을 충분히 강조하지 않았던 점을 크게 의식한 탓에 중후기에는 성찰적 태도가 중시되는 전반부에 대한 실습을 특히 집중적으로 진행했다. A학교의 2020 개정판 교재에 따르면 자기소개서는 제11장 실용적 글쓰기에서 제시되어 있는데 필자는 이를 제4장 성찰적 글쓰기와 연계함으로써 자기소개서의 전반부 작성을 실습하는 데에만 총 2차시를 할애했다. 이러한 교수 행위는 자기소개서의 후반부보다는 전반부가 훨씬 중요하고 그 서술전략도 더욱 까다롭다는 교수자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설령 이것이 틀린 접근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와 같은 구분은 자기소개서가 통일성과 일관성을 갖춘 한 편의 유기적인 글로써 존재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는 측면이 있다. 아래는 필자가 수강생들에게 배포한 자기소개서 작문 양식인데 그 구성을 보면 문제가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그림 1]은 여러 학기의 교수 경험을 거치며 지속적인 보완 과정을 통해 마련된 틀로 2022년 1학기 수강생들에게 제시했던 양식이다.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자기소개서의 후반부 (3), (4)항목을 개조식의 단답 형태로 작성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점이다. (4)지원동기 항목에서 ‘작성 예시’를 문장형으로 나타내고는 있으나 마치 수학공식에 대입하여 문제를 풀듯이 이미 정해진 예시문의 표현과 전개방식을 일방적으로 따르도록 한 점은 결국 주어진 문항에 단답으로 답변해야 하는 (3)항목과 큰 차이가 없다. 물론 필자가 일종의 ‘작문 공식’까지 마련해본 데에는 학생들이 지원동기 항목을 작성할 때 유독 몰입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실상 지원동기 항목은 서술전략 면에서 전반부에 비해 훨씬 수월한 편인데도 많은 학생들이 곤란을 겪는 점이 안타까웠다. 필자로서는 수강생들의 실습 과정에서 관찰된 문제 현상에 대해 교육적 처치를 한 것이지만 이 방식을 앞으로의 수업에서도 유지하는 편이 적절할지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그림 1]

자기소개서 작문 양식

이에 비하면 전반부의 (1), (2)항목은 ‘소제목’ 작성을 강조한 만큼 각각 완결성을 갖춘 실제 ‘작문’을 유도한 점이 다르다. 그러나 교재의 구체적인 지면을 언급하면서 해당 지면에 제시된 문항 중 한 가지를 택해 역시 ‘답변’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재 334쪽의 빈출문항>이라 함은 ‘본인의 장단점과 입사 후 장점은 어떻게 활용되고 단점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겠는지 기술하시오’, ‘귀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상징단어와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와 같은 것이다. 이들은 기업에서 실제로 요구하는 빈출문항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자신의 ‘성격 및 가치관’을 자유롭게 서술할 수 있는 여건에 비하면 구체적인 빈출문항을 부각하여 선택을 유도한 것은 결국 주어진 고정문항에 따라 제한적인 답안만을 작성하도록 하는 교수 행위의 반복일 따름이다.

즉, [그림 1]과 같은 양식은 자기소개서의 구성요소를 기계적으로 구분하고 있기에 한 편의 글로써 자기소개서가 갖추어야 할 유기성을 해친다. 각각의 항목에 따라 답변하는 데에만 급급하다 보면 극단적으로는 항목별로 마치 다른 사람이 작성한 글처럼 분리되어 전체적인 통일성을 상실할 수 있다. 또, 성찰적 글쓰기를 강조한 ‘예비 작문’부터 ‘실전 작문’의 전반부인 (1), (2)항목까지가 실습지 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점이나, 후반부 (3), (4)항목이 개조식의 짧은 답변만 요구하고 있는 점도 학생들이 자기소개서의 구성 및 체계에 대해 오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3.3.2. ‘좋지 않은 예’와 교수자 선호 성향의 ‘감성⋅유머 예시글’ 부각

전술한 바와 같이 수업 현장에서 필자는 자기소개서 작성의 어려움을 수없이 반복해 강조한다. 학생들의 작문 실습을 위한 마지막 절차인 ‘예시문 분석’도 예외는 아니다. 앞서 수업 전사 자료를 통해 ‘좋은 자기소개서는 너무 희귀하다’는 발언을 확인한 만큼, 필자가 수업 중 학생들에게 공유한 예시문의 대부분은 ‘좋지 않은 예’에 해당한다. 교재의 예시문 이외에 필자가 수집한 학생글을 별도로 제시할 경우, 최소 10편에서 많게는 20편이 넘는 사례를 공유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자료마다 각각의 문제점을 발견해 비판했던 교수 행위는 마치 ‘이렇게 쓰면 취업에 실패한다’는 식의 겁박으로 들리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이 든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상투적 표현은 주의를 넘어 금기에 가까운 표현이라고 경고했던 것은 기본이며, 학생들이 보기에 꽤 그럴듯한 문장력과 구성을 갖추고 있는 듯 보이는 글도 실상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가감없이 분석했다. 학생들로서는 도대체 어떻게 써야 좋은 자소서인지 어렵고 막막했을 듯하다. 그런 와중에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글은 필자가 선호하는 성찰적 정서나 유머 성향이 부각된 글이었기 때문에 자기소개서 예시문 제시와 관련해 수행한 필자의 교수 행위는 다소 편향적이었다는 문제까지 지적될 수 있다.

[학생 작문자료-1]

어릴 때 좋아했던 한 TV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언가를 실험하며 그것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유익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여러 실험을 보던 중 가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가스의 배관과 어떤 가스가 배관을 통해 전달되는지를 보고 저는 그 방향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농사일을 하시며 농기구를 수리하실 때 가스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옆에 서서 구경을 하였습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불만으로 철을 자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께서는 손재주가 매우 뛰어나셔서 직접 농기구를 만들었고 가끔 저에게 여러 장난감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모습에 저는 반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동경의 대상입니다. 그렇게 꿈을 키워가며 초등학교 때에는 자주 기계를 가지고 놀거나 과학 상자를 이용해서 만들기를 하였고, 중학교 시절에는 심화된 과학을 배우게 되면서 기계와 화학이 공존하는 여러 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화학부장을 담당하여 실험 날에는 직접 나서서 친구들을 도와주었습니다. 또한 물리도 조장을 맡아 책임을 다해 조원들을 이끌었고, 이것이 매끄럽게 이어져 기계설계공학부 나노바이오 기계시스템을 전공할 수 있는 토대로 작용하였습니다.

[학생 작문자료-2]

…저를 뽑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제가 경영학과에서 배운 짧은 지식에 비추어보면 확실한 것은 기업의 모토는 이윤을 놓치지 않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를 놓치는 것은 이 회사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큰 이윤을 놓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다른 회사에 가서 큰 이윤이 되겠습니다…

[학생 작문자료-1]은 기본적인 문장력이 탁월한 경우는 아니지만 유년 시절부터 현재까지 담담하고 진솔하게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이 한 편의 동화처럼 따뜻한 정서를 환기하면서 놀라운 유기성으로 완결된다. 사실 공대생의 자기소개서에서 어릴 때부터 과학 상자 만들기를 좋아했다, 물리⋅화학부장을 맡았다는 식의 서술은 흔히 등장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지원자가 동경하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한 유년의 기억이 생생하게 그려진 덕분에 후반부의 투식적인 표현마저도 진정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에 필자는 주저 없이 모든 수업에서 강조하기를, 자신의 성장과정과 현재의 전공을 연계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기 서사를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글이 동화적 감수성을 좋아하는 성향의 필자에게는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자기소개서일지라도 필자와 다른 성향의 채용 담당자가 보기에는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글일 수 있다. 수업 상황에서는 이런 점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학생 작문자료-2]는 유머와 재치가 지원자로서 자신의 개성이라고 인지하고 있다면 굳이 그것을 감추고 진지한 태도만 드러내려 할 필요는 없다는 맥락에서 제시한 글이다. 자기소개서에서도 간혹 유머를 활용하면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는 의도인데, 위의 예시문은 적절한 유머가 녹아있는 자료라고 보기에는 모호한 점이 있다. 필자에게는 지원자의 자신감과 패기가 어느 정도 흥미롭게 수용되었지만 역시 필자와 다른 성향의 인사 담당자라면 불쾌함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런 시도는 자칫 가볍고 신중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인상을 남길 수 있으니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였으나, 학생들로서는 자기소개서가 갖춰야 할 진지함과 개성적 매력 사이에서 적잖은 혼란을 느끼지 않았을까 한다.

필자가 이처럼 ‘좋지 않은 예’, ‘교수자의 선호 성향에 편중된 예’를 부각했던 점 때문인지 비교적 문장력이 좋았던 학생들마저도 자기소개서 실습지에는 여백이 많았다. 아래는 코로나19로 전면 비대면 수업이 이뤄지던 시기에 일부 학생들과 줌(ZOOM) 프로그램을 통해 화상으로 개별첨삭을 진행했던 녹화 영상을 전사한 것이다.

[개별첨삭(면담) 전사 자료-1]

교: ○○아, ‘다색볼펜이기보다는 성능 좋은 단색볼펜으로’ 이거 소제목으로 너무 좋더라. 나중에 자소서 낼 일 있으면 꼭 써먹어.

학: 아 근데 저는 좀 너무 유치한 거 같아가지고…

교: 아닌데? 니가 작성한 성장과정 내용이랑 너무 잘 호응하는 제목이라 좋은데 왜?

학: 그래도 좀 더 진지한 느낌으로 수정하고 싶었는데 사실 생각이 더 안 났어요.

[개별첨삭(면담) 전사 자료-2]

교: ○○이는 ‘성찰적 글쓰기’를 되게 열심히 했더라. 근데 그거 예비 작문에서 그렇게 열심히 써 놓고 왜 밑에 성장과정이랑 쓸 때 하나도 활용을 안 했어?

학: 그게요, 처음엔 윗부분에 맞춰서 자소서도 썼는데 읽을수록 좀 오글거려서 다 다시 썼어요.

교: 아이고 고생했겠네. 근데 여기 내가 첨삭해놓은 것처럼 (첨삭파일 화면공유 중) 성장과정에 너가 쓴 내용은 오히려 예비 작문에 썼던 비유를 가져오는 게 더 적절할 거 같거든?

학: 아 그래요? 그럼 또 다시 써야 돼요?(웃음)

교: 아니 이제 종강했으니까 뭘 다시 써서 나한테 내고 그럴 필요는 없지.(웃음) 나중에 자소서를 진짜 써야할 일이 생겼을 때 지금 이거를 다시 찾아보면서 그때 잘 판단해서 활용하면 좋겠다는 거지.

[개별첨삭(면담) 전사 자료-3]

교: ○○아, 자소서 쓰는 거 많이 힘들었니? 학기 내내 열심히 하길래 자소서도 살짝 기대했는데 앞부분은 아예 빈칸이라 좀 놀랐네.

학: 막판에 시험기간이랑 겹쳐가지고.. 죄송해요.

교: 아 그래, 제일 바쁠 때 학점에 들어가지도 않는 자소서까지 내라고 해서 내가 미안하다.(웃음)

학: 아니에요.(웃음)

교: 근데 다른 항목은 오히려 조금씩 썼는데 왜 ‘성장과정’이, 그게 제일 고민됐어?

학: 네. 거기가 자소서 시작이라 성찰 그런 거 잘 드러나야 한다고, 제일 중요하다고 하셔서 차라리 맨 마지막에 쓰려고 남겨놨었어요.

위 세 학생과의 개별첨삭 면담을 종합할 때, 이 학생들은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독서량과 문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각각의 이유로 자기소개서 작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학생1은 ‘소제목’의 표현이 ‘유치해서’ 고민이고, 학생2는 힘들게 작성했던 성찰적 ‘예비 작문’ 내용이 ‘오글거려서’ 정작 자기소개서는 새로 쓰는 수고를 겪었으며, 학생3은 자기소개서 전반부(특히 ‘성장과정’ 항목)의 중요성을 너무 잘 인지하고 있는 나머지 작문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위 학생들이 유념하고 있는 문제를 필자의 교수 행위와 관련해 환언하면, 소제목에서 인상적인 비유를 통해 지원자 자신을 캐릭터화할 것, 예비 작문에서 1차적으로 정리한 성찰 내용을 실전 작문에 연계 활용할 것, 자기소개서는 후반부보다 성찰적 태도가 부각되는 전반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세 학생은 모두 수업에 성실하게 참여했기에 필자의 교수 행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수업에서 필자가 자기소개서의 작문요건을 설명하던 순간부터 다양한 예문을 제시하며 실습을 독려하던 장면까지 수업의 모든 맥락에서 끊임없이 환기되었던 ‘과제 곤란도’의 문제로 수렴된다. 작문과제로서 자기소개서 쓰기의 어려움을 내내 강박적으로 발언한 결과, 평소 글쓰기를 좋아해 온 학생마저 어쩌면 필요 이상의 부담을 느끼며 좌절하게 되었다는 점을 무겁게 되새겨야 할 것이다.

결국 자기소개서 작성에 대한 두려움 증폭은 성취도 부진이라는 결과로 이어졌고 이것은 다시, 해당 학기에 수강생이 작성한 자기소개서에 대한 비판적 피드백을 통해 악순환의 고리를 생성했다. 자기소개서 수업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소서는 너무 어렵다”는 무한 돌림노래를 부르짖은 결과, 필자는 지난 수년 간 만났던 800여 명의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자기효능감’을 심어주게 되었다. 학생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잘 지도해보려 했던 열의와 성심이 뜻밖의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제 필자는 처음으로 돌아가 AI 면접관, 자기소개서 판별 딥러닝 모델이 등장함에 따라 변화되고 있는 현실을 다시 상기해본다. 이러한 시의성을 유념하면서 필자가 앞으로 새롭게 지향해 갈 교수 행위의 향방을 결론 짓고자 한다.

4. 결론

자기소개서 수업에서 필자가 수행한 교수 행위를 반성적 내러티브 기술로 점검한 결과 몇 가지 문제가 발견되었다. 첫째, 학생들이 몰입할 만한 작문의 여건과 상황은 충분히 마련해주지 못한 채 과도한 성취목표를 설정한 점이다. 둘째, 자기소개서라는 작문과제의 곤란도를 수업의 면면에서 지나치게 반복하여 강조한 점이다. 셋째, 자기소개서의 항목을 기계적으로 분류하고 그 항목에 따른 예문을 또한 편향적으로 제시한 점이다. 이상의 문제를 바탕으로 향후 필자는 현직자로서 다음과 같은 점에 더욱 유의하여 수업 수행의 향상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먼저 취업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 격차를 보다 세심하게 고려하여 수업 설계에 반영할 것이다. 특히 학년에 따라 취업에 대해 느끼는 예민함의 편차가 매우 크다는 점을 분명하게 확인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수강생들이 신입생 위주인지 고학년은 어느 정도 분포하는지 잘 살펴서 자기소개서 수업의 성취목표를 유연하게 조정하려 한다. 예컨대, 신입생이 많은 수업이라면 한 편의 글을 전체적으로 꼭 ‘완결’해야 한다는 부담을 걷어내는 것부터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신입생들에게는 취업 문제 이외의 다채로운 맥락들 즉, 각종 공모전, 대회, 국내외 연수, 단기 아르바이트 등 자기소개서가 요구될 수 있는 상황을 더욱 구체적, 확장적으로 예시해야 한다. 이 경우에는 각 상황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자기소개서 양식과 예시문항 등을 새롭게 수집해 제시하면서 학생들이 작문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교수 행위도 수반되어야 하겠다.

또한, AI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자기소개서와 관련해서도 빅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다양한 공학논의들이 발표되고 있으므로 해당 논의를 수업 현장에서 긴요하게 활용해보는 것도 필자의 교수 행위를 개선하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자기소개서는 여전히 성찰이나 설득과 같은 어려운 작문과제로서의 본질을 내포한 글이지만, 한편으로는 주어진 요건에 맞추어 답안을 작성하는 ‘기술적인 글’이기도 하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해볼 필요가 있다. 실상 자기소개서는 탁월한 문장력이 요구되기보다는 주어진 문항에 주어진 분량으로 적절한 태도를 갖추어 답변내용을 효율적으로 구성하는 전략을 익히는 것이 관건이다. 따라서 평소 작문 자신감이 부족한 학생이라도 자기소개서는 기본적인 서술전략과 기법, 주의해야 할 몇 가지 태도를 익히면 향후 구직과정에서 자기소개서 때문에 곤란을 겪을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동기부여가 필요한 것이다.

예컨대, 공학논의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단어나 구 단위의 빅데이터 자료를 활용해 불합격한 자기소개서에 자주 등장했던 상투적 표현들을 직접 바꾸어 쓰는 기술적인 훈련을 작문 실습의 일환으로 시도해 볼 만하다. 태도나 정서 면에서도 지나친 왜곡, 과장, 미화의 사례와 관련해 수집된 빅데이터가 존재하므로 이들이 학술 논의의 장에만 머물러 있지 않도록 수업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해보려 한다. 이와 같이 보다 정교하고 다채로운 교수법의 변화를 통해 자기소개서에 대한 학생들의 막연한 두려움이 상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자기소개서는 취업문을 돌파하기 위한 필수 요소이며, 더욱이 직업인으로의 삶을 늦출 수도 당길 수도 있는 결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고, 그런 만큼 그것을 잘 작성하기란 너무도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필자가 지금껏 고수해온 이러한 교수 지침은 이 글을 마쳐가는 현 시점에서 다시 돌이켜볼 때 어느 정도는 해체된 것이 아닌가 한다. 연구자이자 현직자, 초임자로서 ‘이 연구의 수혜자는 학생이다’라는 현직자연구의 본령을 상기하면서, 이 글에 늘어놓은 미숙한 고민들이 수업 현장으로 되돌아가 의미 있게 공명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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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1)

이와 관련해서는 중고등학교의 국어⋅문학 교과에서 ‘고전소설’ 수업이 진행될 때 다수의 교수자들이 고전의 중요성과 더불어 고전 공부의 어려움을 강조함으로써 결국 고전 작품에 대한 학습자들의 기피 현상을 가중시켰다는 문제를 함께 생각해볼 만하다(박수진, 2018 참조).

2

본고에 대한 심사의견 중 대학 교양과정 내에서 자기소개서가 자리하고 있는 위치와 기능을 먼저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취업 목적’의 자기소개서와 ‘자기 성찰적 글쓰기’의 일환으로 다루어지는 자기소개서가 요구하는 수업 내용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수행한 자기소개서 수업은 대체로 전자에 해당하지만 최근 B대학에서 ‘자기소개 영상’을 제작해보도록 했던 교수 행위는 수강생의 ‘자기 성찰’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후자의 방식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본문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B대학 수강생들에게 적용해본 교수법이 어느 정도 교육적 효과를 보인 만큼 향후 자기소개서 수업에서는 취업을 전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써보는 ‘자기 성찰글’로서의 자기소개서 실습도 함께 시도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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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강의 연차에 따른 교수 행위의 변화 양상

초기(2019년) 중기(2020-2021년) 후기(2022년)
도입 동기유발

목표설정
①취업난으로 구직시기 앞당겨진 대학생활 여건 언급
②학점 반영 정식과제임을 안내
①취업난으로 구직시기 앞당겨진
대학생활 여건 언급
❷학점 미반영 수시실습임을 안내
❶취업난으로 구직시기 앞당겨진
대학생활 및 구직 외 여건을 추가로 예시
❷학점 미반영 수시실습임을 안내
전개 이론 작문요건
설명
③자소서의 서술전략 설명 및 작성의 어려움 강조
④교재 내용에 한정해 설명
③자소서의 서술전략 설명 및 작성의 어려움 강조
❹교재 내용에 추가해 설명
③자소서의 서술전략 설명 및 작성의 어려움 강조
❹교재 내용에 추가해 설명
예시문
분석
⑤교재 예시문만 분석 ❺직전학기 수강생 제출자료를 매학기 추가해 분석 ❺직전학기 수강생 제출자료를 매학기 추가해 분석
실습 수강생
작문
⑥전후반 구분 없이 한편의 통글로 작성하도록 유도 ❻-㉠전후반 구분 후 항목별 서술
전략이 다름을 인지하며 작성
하도록 유도
❻-㉡성찰
적 글쓰기와 연계된 전반부의 중요성 강조
❻-㉠전후반 구분 후 항목별 서술
전략이 다름을 인지하며 작성
하도록 유도
❻-㉡성찰적 글쓰기와 연계된 전반부의 중요성 강조
❻-㉢후반부는 작문 공식에 대입해
서술하도록 유도
교수자
피드백
⑦비공개 개별평가 후 학점 부여 ❼-㉠공유할 만한 사례 선별해 공개피드백
❼-㉡면담식 개별평가 시도
❼-㉠공유할 만한 사례 선별해 공개피드백
정리 마무리 ⑧총 2차시로 비교적 짧게 마무리 ❽총 4~5차시로 확장적 수업을 진행한 뒤 마무리 ❽총 4~5차시로 확장적 수업을 진행한 뒤 마무리

[그림 1]

자기소개서 작문 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