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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General Edu > Volume 15(4); 2021 > Article
최소주의 인성교육

Abstract

인성교육진흥법 공포 후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모든 학교 현장에서 전방위적으로 수행된 인성교육은 사회 전반에서 목격되는 악화일로의 인성 실패 양상을 거꾸로 되돌리는 데 성공하고 있는가? 누구도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성교육의 성과를 자랑하는 연구 업적들은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양쪽의 이 괴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성교육이 외눈박이 상태로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고 밖에 이해할 길이 없다. 우리는 인성교육진흥법 공포 전후로 다채롭게 시도되고 있는 인성교육 담론과 프로그램의 근본 전제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은 지금까지의 인성교육의 근본 전제 하나를 대치할 새로운 패러다임의 인성교육으로 ‘최소주의 인성교육’을 제안하고자 한다. 최소주의 인성교육은 “기본적으로는 하는 것이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라는 패러다임을 “기본적으로는 안 하는 것이 하는 것보다 낫다.”라는 패러다임으로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 이 새 패러다임은 인성교육이 책임 회피의 악순환의 핵심 고리로 말려드는 것을 막아줌으로써 인성교육의 역리를 극복하게 해줄 것이다.

Abstract

After the promulgation of the Character Education Promotion Act, one is left asking the question: is character education, which is currently being conducted in all directions and at all levels, from elementary schools to universities, actually succeeding in reversing the deteriorating character failures seen throughout society? I think it’s fair to say that it would be difficult for anyone to answer this question positively. Nevertheless, research papers boasting the many successes of character education have continued to pour in. How can this disparity be explained?
In order to adequately answer this question, one must understand that character education is missing a key component. Therefore, we need to reexamine the fundamental premise of the discourses and programs surrounding character education in its various applications, both before and after the promulgation of the Character Education Promotion Act.
This paper intends to propose ‘minimalistic character education’ as a new paradigm of character education-one that will replace the fundamental premise found in the type of character education we’ve been implementing thus far. Briefly put, minimalistic character education starts by changing the paradigm: “Basically, doing is better than not doing” to the paradigm: “Basically, not doing is better than doing.” This new paradigm will enable us to overcome the paradox found in the current manifestation of character education by preventing it from becoming a key link in the vicious cycle of avoiding responsibility.

1. 들어가면서

인성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2015년 인성교육진흥법이 마침내 공포되면서 인성교육의 방향과 구체적인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연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1)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발표된 교육방법과 사례도 이미 차고 넘칠 지경이어서 적어도 효과적인 인성교육 방안에 관한 한 더 보탤 연구가 남아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성과를 자랑하는 연구가 여전히 다채롭게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인성교육이 한 방향으로 수렴되지 못한 채 중구난방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인성교육진흥법 공포 후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모든 학교 현장에서 전방위적으로 수행된 인성교육이 사회 전반에서 감지되는 악화일로의 인성 실패 양상을 멈추거나 되돌리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누구도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국부적 성공과 전반적 실패 사이의 이 괴리는 인성교육이 단지 겉만 번드레하게 요식적으로 수행되고 그 성과가 이현령비현령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인성교육이 외눈박이 상태로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고 밖에는 이해할 길이 없다. 우리는 인성교육진흥법 공포 전후로 다방면에서 시도되어온 인성교육 담론과 프로그램의 근본 전제를 재검토할 시점에 이르렀다.
본 논문은 현재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인성교육의 근본 전제 가운데 하나에 의문을 제기하고, 대안으로 ‘최소주의 인성교육’이라는 인성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하고자 한다. 필자는 먼저 인성교육을 법으로 공포하기까지 국가 정책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평가하고, ‘인성’을 둘러싼 개념적 혼란과 인성교육이 안고 있는 어려움을 짚어본 후, 인성교육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를 도출한 다음, 최소주의 인성교육을 통해 필자가 의도하는 패러다임의 변화와 그 의의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먼저 밝혀둘 것은 본 논문은 인성교육의 한 패러다임, 다시 말해 인성교육과 관련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도 당연하게 거의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입각하여 실제 교육을 수행해왔던 근본 가정 가운데 하나를 주제화하고 이를 문제 삼는 데 초점을 맞추려 한다는 점이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물론 기존 패러다임에 입각한 인성교육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것이 기존 인성교육 방법이나 인성교육 자체의 폐기를 함축하지는 않는다. 필자가 의도하는 것은 이미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는 기존의 인성교육이 패러다임의 변화를 통해 새롭게 조명되고 그리하여 부작용은 최소화하면서 내실은 더욱 다지는 교육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2. 인성교육에 대한 국가 정책의 변화 과정

국가 수준의 인성교육 정책이 시작된 것은 1995년 5⋅31교육개혁에서부터이다(김재춘 외, 2012; 천세영 외, 2012: 38-39; 손경원, 2016: 103). 당시 교육개혁위원회는 9가지 국가교육개혁 과제 중 네 번째 과제로 ‘인성 및 창의성을 함양하는 교육 과정’을 제안하였고, 중점 과제로 ‘실천위주 인성 교육 강화’를 그리고 그 하위 과제로 1)학교 급별에 따른 인성 교육 실시, 2)인성교육 방법 개선, 3)청소년 수련활동 및 봉사활동 ‘종합생활기록부’에 반영, 4)유아교육에서 인성교육 강화, 5)매스컴의 교육적 기능 강화를 제안하고 있다(교육개혁위원회, 1995). 이 시기 인성 교육의 중요한 특징은 중점 과제에서도 나타나듯이 ‘실천위주’라는 점이다. 이것은 지식위주의 도덕 교육만으로는 인성을 함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진단에 근거한 것이다. “도덕적 행위나 실천과 유리된 도덕적 사고나 지적 판단 과정만을 강조”하고 “도덕적으로 통합된 인간다운 인간”을 만드는 데는 무관심했다는 것이다(장성모, 1996: 6). 5⋅31교육개혁에서는 인성교육을 전인 교육 및 인간 교육으로 규정하고 이를 위해 지성뿐만 아니라 정서와 행위 측면에서의 인성 도야 방법론 마련에 전념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인성과 인성교육에 대한 철학적, 교육학적 관심을 촉발시키고 다양한 교육 방법을 탄생시키는 촉매제가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적 목적에 의해 인성이 갈가리 분해되고, 파편화되면서 인성을 위한 교육이라기보다는 교육을 위한 인성이라고 할 만한 논의들이 양산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원죄를 안고 있기도 하다.
인성교육에 대한 국가적 개입은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후인 2009년 11월 교육과학기술부가 창의⋅인성교육자문위원회를 출범하고, 두 달 뒤에 ‘창의와 배려의 조화를 통한 인재 육성: 창의⋅인성교육 기본 방안’을 발표하면서 다시 본격화되었다(교육과학기술부, 2009a; 교육과학기술부, 2009b). 이 방안에서 인성은, 그 앞에 붙은 창의에서 볼 수 있듯이, ‘창조적 인적 자본’ 육성이라는 상위 목표를 위한 수단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이 방안의 검토 배경에 “국가의 경쟁력은 결국은 창의적 인재의 경쟁력이며, 기업 등 인재의 최종 수요자도 창의성과 인성을 겸비한 ‘훌륭한 전문인’을 요구”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것, 둘째, 인성의 핵심요소로 ‘배려’를 강조하면서 배려의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다양성 수용과 기초질서 준수’를 들면서 이러한 인성을 함양하는 것 “또한 선진국 진입 및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자본”이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구체적 정책으로는 크게 교과 내 영역과 외 영역에서 인성교육을 실시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교과 내 영역에서는 기존의 도덕과 외에도 국어, 사회, 실과, 미술, 음악, 체육 같은 과목에서도 인성교육을 접목하려 시도했고, 교과 외 영역에서는 체험 중심의 인성 교육을 위해 ‘특별활동’과 ‘재량활동’을 통합한 창의적 체험활동이 편성되어 실시되었다. 인성이 창의성 함양을 위한 곁들이 정도로 이해되고 있는 이러한 상황은 한편으로 인성교육이 국가의 정책 방향에 의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성을 희생양으로 삼아 국가적 제의를 거행해야 할 만큼 청소년 문제가 국민의 심각한 관심사로 아직은 부각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주기도 한다.
인성교육 강화가 다시 부각된 것은 3년 뒤인 2012년이다. 주목할 것은 이번에는 인성교육 활성화가 학교폭력 근절 종합 대책의 한 방안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교육부, 2012). 마침내 학교폭력에 대한 책임의 제1희생양으로 인성이 제단 위에 올려진 것이다. 이번 조치에서는 인성교육의 범위가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로 확장된다. 심지어는 인성교육을 대학 입학과 연계시키는 작업으로까지 이어진다. 인성 관련 학생부 기재를 내실화하고, 입학 전형에 반영하도록 한 것이다. 성적이라는 강제가 인성을 교육하는 효과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결국 법이라는 강제를 인성교육과 연계하는 움직임으로까지 나아간다.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하자는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인성교육 강화라는 멈출 수 없는 바퀴는 결국 2015년 1월 20일 인성교육진흥법의 공포로 종착점에 이르렀다. 이 법은 인성교육을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며 타인,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으로 정의하고, “핵심 가치⋅덕목”으로는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마음가짐이나 사람됨과 관련되는 핵심적인 가치 또는 덕목을 설정하고, 뒤이어 “핵심 역량”을 핵심 가치⋅덕목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실천 또는 실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공감⋅소통하는 의사소통능력이나 갈등해결능력 등이 통합된 능력으로 규정하고 있다(인성교육진흥법 제2조).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되었다는 것은 이 법에 의해 강제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법이 강제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첫째, 정부는 인성교육진흥위원회를 설립해 5년마다 인성교육 종합계획을 수립하여야 하며, 둘째, 종합계획에 따라 17개 시⋅도 자치단체장과 교육감은 연도별 인성교육 시행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하며, 셋째 학교의 장은 매년 초 인성교육 계획을 교육감에게 보고하고 인성에 바탕을 둔 교육과정을 편성, 운영해야 하며, 넷째, 교사는 인성교육 연수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고, 사범대⋅교대 등 교원 양성기관은 인성교육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필수 과목을 개설하여 운영하여야 하며, 마지막으로 국민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인성교육에 관한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야 한다. 법 제정 이후의 인성교육의 문제는 4절에서 본격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고, 그 전에 먼저 ‘인성’을 둘러싼 개념적 혼란과 인성교육이 안을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짚어보도록 하자.

3. 인성과 인성교육

3.1 인성 개념이 낳은 혼란

인성교육이라는 주제와 마주할 때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왜 인품교육이나 인격교육이 아니라 인성교육이냐는 것이다. 전자가 사람의 품격(品格)을 갖추도록 교육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사람의 본성(本性)을 갖추도록 하는 교육인가? 사람의 품격은 긍정적 가치를 품고 있는 것으로서 후천적 노력에 의해 성취될 수 있으며 따라서 교육이 당연히 목표로 설정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성(性)’이라는 한자에서 보듯이 사람이 날 때부터 지닌 성질을 의미하는 본성은 가치중립적인 개념으로서 그 개념의 의미상 후천적 노력에 의해 변화될 수 없으며 따라서 교육이 목표로 설정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을 바꾸는 것을 본령으로 하는 교육이 바꿔보겠다고 겨냥하는 것이 하필이면 변하지 않는 사람의 성질이라면 이는 형용모순이 아닌가?
인성교육이 사람의 본성을 목표로 하는 교육을 의미한다면 이때의 사람의 본성은 도덕성과 같은 가치지향적 개념으로서 말하자면 ‘사람다운 (도덕적) 본성’을 의미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럴 때에만 인성교육은 바로 이러한 본성을 회복하거나 발현시키는 작업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성교육이 맹자의 성선설과 쉽게 연계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인성교육은 인간이 이미 갖추고 있는 선한 본성이 환경과 욕망 등의 여러 요인으로 가려졌다고 보고, 이 선한 본성을 가리는 장애들을 제거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게 된다.2)
사람은 도덕적 품성을 타고나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는 답이 가능할 때 인성교육이 의미가 있다면 인성교육은 출발할 때부터 성선설이라는 특정한 형이상학적 견해를 짊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일찍이 순자에게서부터 공격을 받아온, 그처럼 논란을 피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짐을 감수하면서까지 우리가 ‘인성교육’이라는 용어를 채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튼 그 경위야 어떻게 되었든, 인격이나 인품이 아니라 인성 함양을 명목으로 내세우는 교육은 우리의 오랜 유교적 전통 덕분에 성선설 친화적인 경향으로 흘러가기 십상이다. 이를테면 인간의 악한 본성을 억제하기 위해 견제와 처벌 위주의 처방을 주문하기보다는 이미 내장된 선하고 도덕적인 본성을 꽃피울 수 있도록 격려와 칭찬 위주의 처방에 치중하도록 유도한다. 그렇지만 인성교육과 성선설의 유착에서 필자가 더욱 주목하는 것은 다음의 다른 측면이다. 성선설에 입각한 인성교육은 인성 함양을 도모하는 제반 시도에 대해 낙관적 희망은 부풀리는 반면 비관적 전망은 쪼그라트린다. 달성해야 하는 선한 본성은 이미 내장되어 있고, 교육은 그 본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제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물어보자. 왜 인품이나 인격교육이 아니라 인성교육이 되었을까? 앞 절에서 우리는 인성교육진흥법을 공포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았는데, 그 과정으로부터 하나의 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성’ 또는 이의 줄임말인 ‘인성’은 ‘인격’이나 ‘인품’과는 달리 주로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된다. “인간성이 못되어 먹었다.”라거나 “인성이 안 되어 있다.”, “인성이 문제다.”, “인성이 나쁘다.”라는 등이 그 예이다. 이런 용례에서 인성은 교정해서 바꾸어야 할 대상이다. 우리는 학교폭력 근절대책방안으로 인성교육이 논의된 2012년이 인성교육 법제화가 본격 거론된 시점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성교육이 강조될 때 염두에 두고 있던 인성은 인간의 선한 본성이 아니라, 교정해야 할 개개인의 악한, 하지만 불변하는 것은 아닌, 그렇지만 상당한 정도는 지속성을 갖는 성품이었던 것이다.3) 손경원(2016: 101)이 말하듯 인성교육의 일차적인 관심사는 “청소년의 인성 실패 현상”에 직면하여 “최소한의 기본 도덕을 준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 “성인군자와 같은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인격이나 인품교육이 왜 채택되지 않았는지 쉽게 이해된다. 인격이나 인품교육은 배부른 소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것 말고도 인품이나 인격교육이 채택될 수 없었던 문화사적 상황도 무시할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유주의의 번성에 따른 덕 윤리의 쇠퇴이다. 최근에 덕 윤리에 대한 논의가 철학계에서 다시 활성화되고 있지만, 덕 윤리는 덕을 함양한다는 명목 하에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만약 국가가 덕 윤리적 성격이 강한 인품이나 인격 개념을 구호로 내세웠다면 과잉도덕에 기초한 공권력의 남용이라는 심각한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을 것이다.
인성이라는 개념은 공권력의 과도한 개입이라는 비판을 피하면서도 심각해지는 청소년의 폭력, 낮은 사회성, 이기주의 등을 진단하는 개념으로 최적이었다. 말하자면 인성교육은 인성을 목표로 하는 교육이 아니라 인성을 교정하는 교육으로서, 인간의 부정적인 품성을 없애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임을 표방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출발점이 이러한 만큼 인성교육은 인간성의 부정적인 측면을 자각하여 통제하게 하면서도 이를 빌미로 자칫 억압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소박한 형태로 진행되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교정대상으로서의 일상적 인성 개념과 오랜 유학 전통에서 익숙해진 선한 본성으로서의 인성 개념의 혼재와 결합은 인성교육을 바라보는 기본 관점을 심각하게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성선설은 인성교육의 성공에 낙관적 희망을 불어넣기에 충분했으며, 내재된 그 불변의 선한 본성을 향해 여러 인성교육이 하나로 수렴될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확산시켰으며, 어떤 형태의 인성교육이든 뭐라도 하는 것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인식을 강화시켰다.

3.2 성품을 바꾼다는 것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예방하기 위한 처방으로 사람의 성품을 바꾸려 할 때 인성교육은 시작된다. 여기에는 반복되는 잘못된 행동의 원인에 잘못된 성품이 있으며, 따라서 성품을 바꾸면 행동도 바뀐다는 가정이 놓여있다. 교육은 사람을 바꾸고, 인성교육은 사람의 성품을 덜 바람직한 것에서 더 바람직한 것으로 바꾼다. 문제는 인성교육이 목표로 하는 바람직한 성품이 무엇이냐이다.
우리는 인성교육진흥법의 인성교육 정의에서 바람직한 성품이 가져야할 기본 요건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인성교육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며 타인,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바람직한 성품이란 한편으로 자신의 내면을 건전하게 가꿀 수 있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 타인,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바람직한 성품 X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모종의 성품 X가 행동으로 이끌어내야 할 결과를 이야기할 뿐, 그러한 결과를 가져올 성품 X 자체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성교육진흥법은 곧이어 인성교육이 달성하고자 하는 “핵심 가치⋅덕목”과 “핵심 역량”을 밝히고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이 부분이 성품 X를 좀 더 직접적으로 기술하는 것 같다. 이 핵심 가치⋅덕목과 역량을 종합하면 바람직한 성품 X란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가치 또는 덕목”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실천 또는 실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공감⋅소통하는 의사소통능력이나 갈등해결능력 등이 통합된 능력”을 말한다.
바람직한 성품에 대한 이러한 기술을 마주하고 보면 도대체 성품이니 본성이니 인성이니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성품은 예, 효, 정직 등과 같은 가치나 덕목을 말하는가, 아니면 이를 실행할 수 있는 통합된 능력을 말하는가? 인간 성품은 겉으로 관찰되는 반복적, 습관적 행동의 주요 원인으로 가정되지만 직접 관찰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인간 성품의 정체에 대해 철학적으로는 행동주의/환원주의와 비행동주의/비환원주의 간의 대립이 있어왔다. 전자는 성품이나 본성은 그것이 결과할 관찰가능한 습관적 행동에 의해 온전히 정의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후자는 관찰되는 결과적 행동으로 온전히 환원될 수 없는 성품 고유의 내적 성향 또는 속성이 있다고 본다. 전자에 따르면 행동과 별개로 성품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성교육은 결국 행동교육에 다름 아니다. 행동교육과 구별되는 인성교육이 유의미하려면 우리는 후자의 관점에서 인간 성품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인성교육진흥법이 밝히고 있는 바람직한 성품은 ‘한편엔 지식, 그리고 다른 한편엔 의사소통능력이나 갈등해결능력, 이 둘이 하나로 통합된 능력’으로 압축된다. 왜냐하면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가치 또는 덕목은 이 통합된 모종의 능력 덕분에 실현되는 습관적 행위 내지 결과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성교육의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이어진다. 위의 가치나 덕목을 실현하기 위해 인성교육은 어떤 종류의 지식과 어떤 유형의 의사소통능력 및 갈등해결능력을 가르쳐야 하며,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지식과 이 능력을 통합할 수 있는 메타 능력은 또 어떻게 훈련시켜야 하는가? 필자가 집요하게 이러한 질문까지 던진 일차적인 이유는, 단지 행동이 아니라 성품을 바꾼다고 하는 것은 매우 다차원적이며, 경험적으로 검증하기 사실상 불가능한 영역을 다루는 것임을 재확인하기 위해서다. 성품이 바뀌면 습관이 바뀐다. 하지만 그 역도 성립할까? 많은 인성교육 연구들은 그 역도 성립한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습관을 바꾸기 위한 모종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인성교육의 소임을 다했다고 주장한다. 한 사람의 습관적 행동을 바꾸는 것이 그 사람의 성품을 바꾸기 위해 교육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어쩌면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은 십분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도대체 습관을 어느 정도로 그리고 얼마만큼 유지되게 바꾸어야 성품도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도 있다. 행동이 아니라 성품을 바꾸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인성교육의 이 도그마는 한 사람의 나쁜 행위나 습관의 원인을 온전히 그 개인의 내적 특성, 인성교육진흥법이 상술한 바에 따르면, 그 개인의 지적 능력, 의사소통능력, 갈등해결능력 및 이를 통합하는 능력에서 찾도록 만든다. 그러나 습관적 행위의 원인을 온전히 개인의 정신적 역량에 귀속시키는 이러한 관점은 마음에 대한 최근의 연구에 의해 크게 도전받고 있다. 신체화된 마음(Varela 외, 1991)이나 확장된 마음(Clark & Chalmers, 1998) 이론에 따르면 우리 마음이 매순간 펼쳐내는 지적, 정서적 역량은 두뇌의 작용만으로는 성립할 수 없고, 인간이 마주하는 자연적, 인공적 사물들 모두를 포괄하는 환경 위에서만 비로소 성립하고 작동할 수 있다. 세 자리 수 곱셈을 위해 우리에게 종이와 연필이라는 물리적 대상이 없어서는 안 되듯이, 한 개인의 습관적인 도덕적 행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와 함께 살아가는 다른 개인과 유무형의 사회 환경이 없어서는 안 된다. 말하자면 한 개인의 성품은 한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그 개인이 속한 물리적, 사회적 환경 전체의 특성이다.

3.3 인성교육이 달성하고자 하는 바람직한 인간 성품의 구성 요소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바람직한 성품의 구성요소들로 어떤 것들이 제안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사실 많은 논문들이 인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에 대해 일치를 보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홍석영, 2013; 김민수, 2014), 각자 다른 맥락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을 제안하고 이를 인성교육의 중심에 둘 것을 논증하고 있다. 물론 백화제방의 덕목들을 정리하여 하나의 흐름을 찾고자 하는 진일보한 시도도 없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손경원(2016: 107-111)은 국내외 여러 연구자들이 제시한 인성의 핵심 덕목을 정리한 후 다음 두 가지 점에서 부분적으로 합의를 이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인성은 가치지향적이며 도덕적인 성격이다. 둘째, 인성의 구성 요소에는 덕과 역량이 모두 포함된다. 인성교육 담당자 및 연구자들이 이 두 가지에 모두 합의할지는 미지수이다. 특히 인성의 구성 요소에 덕과 역량이 모두 포함된다는 두 번째 합의점은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손경원, 2016: 112) 여러 방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설령 이 두 합의 모두를 인정하더라도 이것만으로는 인성교육의 구체적인 방향을 가늠할 길이 없다. 구체적으로 어떤 덕과 역량을 핵심 구성 요소로 놓느냐에 따라 인성교육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인성의 구성 요소를 가장 풍부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보여준다고 생각되는 두 연구를 소개함으로써 중요한 구성 요소들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살펴볼 것은 강선보 외(2008)의 연구이다. 이 연구는 먼저 인성교육의 내용과 방법이 동서양의 철학적, 종교적 견해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규정되는지를 매우 꼼꼼하게 정리해줌으로써 인성교육이 가질 수 있는 내용적, 방법적 스펙트럼을 거의 모두 망라하여 보여주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이를 비판적으로 종합하여 급변하는 21세기 상황에 적합한 인성의 구성 요소를 다음 일곱 개로 정리하여 안내하고 있다(강선보 외, 2008: 16-21).
  • 1) 관계성 - 상호 관계적 삶을 추구하는 공생인

  • 2) 도덕성 - 도덕적 통합성을 추구하는 인격인

  • 3) 전일성 - 인간의 모든 측면이 조화롭게 발달한 전인

  • 4) 영성 - 초월적인 것을 체험하는 영성인

  • 5) 생명성 - 온 생명을 살리는 생명인

  • 6) 창의성 - 삶과 상황을 재창조하는 창의인

  • 7) 민주시민성 - 공동체에 참여하는 민주시민

이 논문은 이어서 이 일곱 가지 구성 요소를 함양하기 위한 각각의 교육 방법을 자세하고도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친절 앞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일곱 개나 되는 이 요소들을 어떻게 빠짐없이 모두 갖출 수 있단 말인가?’라는 반문이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다음 질문들이 우리를 더욱 위축시키고 뒷걸음치게 만든다. 이 일곱 개가 서로 어떻게 체계적으로 관련되는가? 이 가운데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가? 모두를 고르게 체화해야 하며 하나도 빠트려서는 안 되는가? 각 인성 요소를 교육하는 순서는 어떻게 정해야 하는가, 동시적인가 순차적인가? 물론 이 일곱 요소를 함양하기 위한 기획은 단기 프로젝트가 아니라 성인이 될 때까지 또는 평생에 걸친 장기적 프로그램으로 마련될 것이므로 우리 삶의 과정 과정에 자연스럽게 녹여 넣을 수 있다고 답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성교육에 질식당하는, 또는 이것저것 챙기느라 전전긍긍하면서 또 일부 요소는 목표에 못 미쳐 괴로워하는, 또는 일치감치 포기하고 건성으로만 그 프로그램에 응하는 우리 삶의 모습이 가시지는 않는다.
바람직한 성품의 구성 요소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구조화한 연구로는 리코나가 도식[그림 1]으로 제시한 좋은 인성(good character)의 요소들을 들 수 있다(Lickona, 1991: 53; 조상식, 2015: 142에서 재인용). 이 도식은 인성에 대한 세 가지 대표적인 접근인 인지적, 정서적, 행위적 접근을 반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좋은 인성의 열다섯 가지 세부 요소들은 도덕적 앎, 도덕적 느낌, 도덕적 행위라는 세 범주로 분류된다. 리코나의 인성 도식은 인성교육의 방향을 일곱 가지가 아니라 크게 지, 정, 의 세 가지로 간소화했다는 점에서 강선보 외(2008)보다는 활용이 간편해 보인다.
[그림 1]
리코나의 좋은 인성의 요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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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인성교육이 정확히 무엇을 겨냥해야 하는지 여전히 많은 부분이 불투명하다. 이 도식에서 세 개의 원이 서로 쌍방향 화살표로 연결된 것은 세 방향의 인성교육이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리도록 진행하라는 뜻인 것 같다. 그렇다면 장성모(1996)의 구분을 빌려 이렇게 질문해보자. 이 세 범주의 맞물림은 덧셈 방식인가, 곱셈 방식인가? 덧셈(가법) 방식이라면 각 범주의 각 인성 요소들은 별개로 교육될 수 있으며 따라서 인성교육의 과제는 각 요소들을 골고루 발전시켜 이를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된다. 반면 곱셈(승법) 방식이라면 각 요소들은 별개로 존재하는 과정이나 실체가 아니라 인성의 상이한 측면을 기술하는 ‘개념’일 뿐이며 따라서 이 요소들은 인성교육이 겨냥해야 할 것이라기보다는 달성해야 할 결과이다. 따라서 이 경우 인성교육의 과제는 이 요소들 전반의 질적 수준을 동시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전인적 교육 프로그램4)을 마련하는 것이 된다. 제대로 된 인성교육은 요소들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곱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이것이 장성모의 결론이다. 필자는 여기서 장성모의 잘잘못을 논의할 생각은 없다. 필자는 다만 이 논란에서 다음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인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찾고 이것들을 체계적으로 구조화한다고 해서 그것이 수월한 인성교육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마치기 전에 리코나의 도식에서 또 하나 확인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리코나 도식은 인성의 문제를 지, 정, 의라는 이른 바 마음의 능력 및 기능의 문제로 국한시킴으로써 개인 차원의 문제 해결 관점을 여전히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4. 인성교육의 근본 문제

인성교육은, 태생적으로 존재하는 본성을 회복해서든, 상당한 지속성을 갖는 어떤 성질이나 역량을 후천적으로 획득해서든, 선한 성품을 갖추도록 함으로써 각 개인이 자발적으로 도덕적 행위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제는 인성교육이 선한 쪽으로 변화시키고자 겨냥하는 이 성품이라는 것이 경험 너머에 존재한다는 데 있다. 나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이 선한 성품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관찰을 통해 직접 확인하거나 측정할 수 없다. 우리는 한 사람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관찰함으로써 그가 그러한 성품을 갖추었는지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의 성품이라는 블랙박스에 대해 인성교육은 시작부터 검증불가능한 많은 가정 위에서 출발하며, 그 가정 위에서 그 블랙박스를 부분적 또는 전반적으로 변화시켜보려 하며, 또 그 가정 위에서 자신의 교육적 시도가 갖는 효과를 평가한다. 각자의 가정에 따라 인성교육은 겨냥하는 변화를 다르게 설정하며,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처방도 다르게 내리며, 그 처방이 유효한지를 판단하는 기준도 다르게 정한다. 문제는 인성교육 종사자가 가정하는 블랙박스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누구는 그 블랙박스가 여러 층위로 구조화되어 있다고 하고 누구는 하나의 층위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누구는 이 블랙박스를 부분부분 변화시켜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전체를 한꺼번에 변화시켜야 한다고 한다. 누구는 이 블랙박스와 직결되는 물리적 조건이 두뇌뿐이라고 하고, 누구는 두뇌를 포함한 신체 전부라고 하고, 누구는 신체를 포함한 각종 자연적, 인공적 환경 전체라고 한다. 이 말은 곧 인성교육의 내용, 방법, 효과에 대해 어떤 합의된 결론도, 어떤 합의된 검증과정도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달리 보자면, 악용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어떤 활동이든 인성교육의 일환으로 규정할 수 있고 또 그 교육의 효과를 입증하는 논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필자가 본 논문에서 특히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다음, 즉 이러한 취약성을 안고 있는 인성교육에 인성교육진흥법이 더해지면서 생겨나는 문제들이다. 법이 시행된다는 것은 인성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국가가 강제하고 또 필요에 따라 그것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의 성품과 양심에 대한 교육인 인성교육에 국가가 개입할 경우 제일 먼저 드는 우려는 국가가 인성을 빌미로 양심의 자유를 비롯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인성교육진흥법이 이러한 우려를 십분 반영하여 제정되었으므로 아마도 이는 지나친 걱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염려는 여전히 남는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높인다는 본래적 목적보다는 국가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부차적 목적에 의해 인성교육이 교묘하게 왜곡될 가능성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2009년에 발표된 인성교육 강화 방안을 보더라도 국가경쟁력의 향상을 위한 사회적 자본 확보의 일환으로 인성교육이 창의적 인재 양성과 나란히 거론되고 있으며, 그 덕분인지 다양성 수용과 기초질서 준수가 인성의 주요 내용으로 등장한다. 또 특정 집단이나 계급에 편향된 가치들을 강요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빼놓을 수 없다. 인성교육진흥법에서 강조하는 여덟 가지 핵심 가치⋅덕목인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에 대해서도 너무 보수적 가치만을 강조한다(권의섭, 2015: 30)는 지적이 많았다.
국가적 차원에서 인성교육이 법제화될 때 발생할 무엇보다도 심각한 병폐는, 필자가 보기에, 청소년 범죄와 일탈, 학교 폭력, 자살 등 각종 청소년 문제의 원천이 해당 청소년 개인의 성품에 있다는 것이 공식화된다는 것이다. 인성교육을 법제화하는 순간 국가는 청소년에게서 나타나는 각종 사회적 문제의 일차적 책임을 청소년 개개인의 성품과 이를 돌봐야 할 교육으로 돌릴 수 있게 된다. 더불어 관련법을 단지 제정, 공포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마땅한 의무를 다 했다는 알리바이를 확보하게 된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면피의 논리가 사회의 모든 구성원으로 확산된다는 데 있다. 각 개인은 이제 주변에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사건의 원천을 그 사건 당사자의 인성 실패로 돌림으로써 자신을 모든 책임으로부터 면제시키며, 사건 당사자에게 더욱 강한 인성교육을 주문함으로써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믿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의무 이행의 알리바이가 성립하도록 국가가 공식화해주었기 때문이다. 교육계도 면피의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성의 실패에는 가정과 사회가 더 큰 몫을 한다는 점을 역설함으로써 교육 실패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가정과 사회로 거리낌 없이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12년에 교육부가 발표한 인성교육 활성화 대책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학교폭력 근절 종합 대책의 한 방안으로 발표된 이 대책에는 인성교육의 범위를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로 확장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국가, 개인, 교육종사자 모두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장치로 인성교육을 활용하는 상황에서 인성교육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인성교육이 강조될수록 문제당사자 개인의 성품은 더 집중적인 주목을 받고 악마화되며, 다른 개인들은 교정에 저항하는 그 성품에 비난과 경멸의 강도를 높이고 더 높은 통제를 요구함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는 착각과 만족감을 얻게 된다. 물론 그런 비판과 경멸의 대상이 된 당사자에게 이것이 좋은 영향을 미칠 리는 만무하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악순환이 완성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는 현재의 인성교육이 이 악순환을 증폭시키는 중요한 고리로 엄연히 동작하고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일선 교육 현장에서 어떤 방식의 인성교육이 시도되고 또 그로부터 얼마나 큰 교육적 성과를 거두고 있든 그러한 인성교육의 전체적인 공과는 바로 그러한 교육이 이 악순환 속에서 야기하는 과까지 반영하여 평가되어야 한다. 우리는 늘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일선 교육 현장의 인성교육 프로그램이 거둔, 또는 거두었다고 추정하는 그 성과가 과연 이 악순환으로 발생하는 과오를 상쇄할 만큼 큰가? ‘그렇다’라고 대답하려면 적어도, 사회 전반의 인성 수준이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데 구성원 다수가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 전반에서 목격되는 악화일로의 인성 실패 양상이 개선을 향해 역전되기는커녕 하향 추세를 멈추었다고 볼 징표도 찾기 어렵다. 뭔가 했다고 생색낼 수 있는 자기 교육프로그램의 조그만 성과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우리는 인성과 인성교육을 더욱 역겨운 것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5. 최소주의 인성교육

자신이 져야 할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벗어날 수단이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붙잡지 않기란 무엇보다도 어렵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져야 할 책임을 피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인성교육은 바로 이러한 수단이다. 나의 책임을 피교육대상자에 돌리면서도 교육이라는 신성한 업무를 수행한다고 치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만큼 안성맞춤인 수단도 없다.
인성교육의 사회적 역할이 본성상 이처럼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면 인성교육에 첫 발을 내딛는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가? 적어도 하나는 분명하다. 새롭게 시도될 인성교육은 적어도 책임회피의 알리바이가 되지 않도록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주는 것이야 한다. 필자는 이를 가능케 하는 방안으로 ‘최소주의 인성교육’을 제안하고자 한다. 필자가 ‘최소주의’라는 생소한 이름을 제안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인성교육의 현재 패러다임 중 하나, 다시 말해 인성교육을 수행하려 할 때의 기본자세를 바꾸고 싶기 때문이다.
인성교육의 효과에 대해 무수히 많은 의문이 제기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인성교육 강화의 흐름을 조금도 위축시키지 않는 데는 ‘아무리 그래도 교육을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근본 가정이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일부 문제가 있다고 해서 아무 것도 안 하겠다는 것은 완벽하게 못 할 바에는 아예 안 하겠다는 미성숙한 이분법적 사고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족하지만 조금이라도 이득이 크면 시도하고 그 이득을 키우는 방안을 계속해서 찾아가는 것이 성숙한 자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법제화 상황에서 진행되는 인성교육에 이런 자세를 견지할 희망이 있는가? 인성교육이 책임 전가의 악순환을 증폭시키는 고리로 계속 존속하는 한 희망은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사회 전반의 인성 수준이 계속 하향 곡선을 유지하는 가운데 인성교육은 점점 단기적, 가시적 효과를 겨냥한 전시형 교육으로 전락할 것이고, 그로 인한 공허감을 위선으로 채우는 인성 추락의 양상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일한 희망은 최소주의 인성교육에 있다. 최소주의 인성교육은 가장 먼저, “기본적으로는 하는 것이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라는 패러다임을 “기본적으로는 안 하는 것이 하는 것보다 낫다.”라는 패러다임으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 이것이 인성교육 전반에 일으킬 변화는 분명하다. 이 새 패러다임은 인성교육을 준비하고, 수행하고, 평가하는 매 과정에서 그 교육이 안 하느니만 못한 경우는 아닌지를 늘 자문하도록 하고, 또 그 관점에서 자신의 활동을 점검하도록 요구한다.
인성교육에서는 왜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을 기본 값(default)으로 놓아야 할까? 필자는 쾌락주의의 역설이 인성교육에도 유사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얻으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얻고자 하는 것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쾌락을 최대화하려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심 없이 염려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쾌락을 못 얻을 가능성이 더 큰 것이 대표적이다. 인성교육도 유사한 구조의 역설을 피할 수 없다. 예컨대 배려의 성품을 가르친다고 해보자. 배려(配慮)는 말 그대로 상대를 나와 동등한 짝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배려를 교육하는 순간 나와 피교육자는 동등한 관계에서 바꾸는 자와 바뀌어야 할 자의 일방 관계로 변모한다. 배려의 한 파편을 전수하고 그 성과를 피교육자에게서 확인하는 기쁨을 맛보면서 동시에 나는 그와 나 자신을 배려와는 거리가 먼 삶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최소주의 인성교육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이 인성교육의 기본 조건임을 항상 명심하고 자신이 하려는 교육이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 되는 것은 아닌지 늘 조심하도록 함으로써 이 역설을 벗어나려는 시도이다.
그렇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는 경우가 되지 않도록 최소주의 인성교육에서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교육이 책임 회피의 알리바이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최우선의 명령인 이상 인성교육의 기본 방향은 이 명제일 수밖에 없다. 최소주의 인성교육은 각종 인성 실패의 책임 소재를 나 자신을 포함한 ‘우리’에게서 찾는 교육이어야 한다. 타인의 잘못이 나의 잘못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사회의 같은 일원으로서 자신이 타인의 그 잘못에 어떻게 가담하고 있는지 철저히 분석하며, 그리하여 문제 타개를 위해 우리가 함께 변화할 방안을 모색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앞에서 본 것처럼 인간의 마음에 대한 최근 연구는 우리 마음이 신체화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신체 밖에까지 확장되어 있음을 더욱 여실히 보여준다. 이 말은 곧 한 개인의 성품이라는 것이 한 개인의 두뇌나 신체에 한정되어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최소주의 인성교육은 인간 성품의 이러한 본성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렇게 말하면 최소주의가 결과적으로는, 자기 이름에 걸맞지 않게, 기존 교육보다 더 큰 도덕적 책무를 개인에게 지도록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새로운 책무가 추가되었다는 점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은 기존 책무에 새 책무를 하나 더 추가하거나 기존 것을 새 것으로 바꾸려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제안하는 것은 패러다임 차원의 변화이며, 이를 통해 의도하는 가장 핵심적인 조치는 최대도덕을 지향하는 기존의 인성교육을 모두 최소주의적으로 재해석하여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너에게, 그리고 나에게 배려의 성품을 가르쳤던 기존의 인성교육은 최소주의에서는 배려를 위해 우리가, 다시 말해 너와 내가 함께 해야 할 것을 찾고 만들어가는 교육으로 바뀌게 된다. 최소주의 인성교육은 종래의 가치⋅덕목을 가르치되, 그와 관련된 성품을 키우기 위해 이른바 인간성 또는 인간 이성의 승리를 요청하지 않는다. 승리를 요청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의 실패를 비난하거나 책망할 일도 없다. 가치⋅덕목에 대해 혼자서 책임을 질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책임을 지도록 하며, 그것의 함양을 위해 서로에게 도움을 구하도록 한다. 최소주의 인성교육에서는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이 모두 대등하게 ‘우리’를 이룬다. 그러므로 둘을 교육자와 피교육자로 나누는 교육이라는 일방적 활동은 최소화된다. 이것이 최소주의가 갖는 두 번째 의미이다. 말하자면 최소주의는 타인과 나 개인으로 향하는 시선을 최소화하고 그 대신 그 시선을 최대한 그 둘 사이로 향하게 하는 인성교육이다.
최소주의 인성교육에 따르면 사람의 성품을 원하는 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일정한 교육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포기된다. 꼬리가 몸통을 맘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듯이, 삶 전체의 산물인 성품을 그 삶의 한 꼬리에 불과한 교육이 맘대로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교육만큼 사람을 비인간적으로 대할 위험이 큰 것도 없다. 왜냐하면 교육은 인간을 일정한 방향으로 바꾸고자 하는 작업인데, 그처럼 일정한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면 그런 존재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성품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는 낙관적 희망을 피력한다면 필자는 오르테가 이 가세트(Ortega y Gasset, 1957: 27)의 다음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항상 더 이상 인간이 아니기 직전에 있음, 이것이 인간의 정확한 의미이다.” 필자는 이것이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의 출발점이라 생각한다. 이는 인간이 인간됨 교육에 결코 굴복하지 않음을 무엇보다도 잘 상기시켜준다. 인간을 자기 입맛에 맞게 재단할 수 있고, 또 재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는 나쁜 소식이다. 그렇지만 희소식도 있다. 이는 인간이 어떤 막다른 골목에서도 이를 타개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갈 창조적 역량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다. 단, 숨은 길을 단지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타개하는 것이 우리의 과업이 되는 이러한 상황에서는 너와 내가 함께 변화해야 하며, 그러기 전에 먼저 너와 내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 교육은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가는 작업이 아니라 새로운 목적지를 만드는 작업이다. 새로운 목적지 앞에서는 너도 낯설고 나도 낯설고 그 낯선 것 앞에서 우리 모두는 동등하게 취약하다. 진정한 인성교육은 바로 이 점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최소주의 인성교육은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에 입각하여 인간을 인간적으로 다루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며,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 되지 않는 유일한 인성교육 방법이다.

Notes

1)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분석한 윤가영 외(2020: 124)에 따르면 2020년 6월 기준 한국교육학술정보원(RISS)에서 ‘인성교육’으로 검색된 논문은 총 7,967편이며 이중 2010년 이후 발표된 논문이 6,278편, 2015년 이후 발표된 논문이 4,058편(KCI 등재지 논문은 2,809편)이다. 대학 인성교육 연구 동향을 분석한 이기용(2021: 1582)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0년까지 RISS에서 KCI 등재후보지 이상의 학술지에서 ‘대학 인성교육’으로 검색된 논문은 443편이었다.

2) 예를 들어 김유리 외(2016: 1)는 “인성이란 내재적인 것으로 스스로 발현되고 드러날 수 있도록 이를 방해하고 왜곡하는 문제들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의 변화를 제기”한다고 밝히고 있으며, 강선보 외(2008: 1)도 인성을 한편으로 “인간이 도달해야 할 이상적인 인간다운 성품”이라고 하면서 동시에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규정하고 있다.

3) 장성모(1996: 16)도 일찍이 “인성교육이 수많은 사회적 병리현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강조”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4) 이러한 프로그램의 한 예로 권의섭(2015: 31)은 “민주시민교육을 통한 인성교육”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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