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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General Edu > Volume 15(1); 2021 > Article
대구⋅경북지역 3개 대학 교양교육과정의 변천 1970~2000

초록

본 연구는 1970년대부터 2000년까지 10년을 주기로 대구경북지역의 경북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영남대학교의 3개 대학의 교양교육사를 살펴보았다. 1970년대는 선택가능한 교양과목의 수가 현격하게 적다는 특징을 가진다. 당시에는 법정 교양과목이 규정되어 국가적 구속력이 강하고, 대학은 인적, 물적 자원 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거의 모든 과목이 필수로 지정되어 이수 학년 및 학기가 정해지고 선택과목이더라도 계열별로 지정되어 학생의 선택권은 극도로 제한되었다.
1980년대는 대학의 양적 질적 발전과정에서 교양 전담기구가 폐지되는 위기를 맞는다. 당시 대학의 입학 정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교양교육에 대한 단대나 학과의 결정권이 강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1980년과 1984년에 영남대와 경북대의 교양학부가 각각 폐지되었고 대구가톨릭대학교의 경우에는 이 시기 내내 전담기구가 부재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학교에 따라서는 교양과목이 일반 학과의 전공과목과 구분되지 않는 상황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1990년대는 체계적 구조화의 진전으로 특징지어지는데, 이것은 경쟁, 자율성, 다양성의 강조라는 시대적 흐름과 부합한다. 여러 규제들의 폐지를 전후로 하여 대학은 각 대학의 이념을 대표하는 필수교양을 부과할 수 있었으며, 교양교육의 영역을 확정하고, 백 개에 이를 정도로 방대해진 다양한 선택과목들을 하위 분야로 구분하면서 교양과목 운영체제를 정비하게 된다. 영남대의 기초교양, 균형교양, 자유교양, 전공교양의 구분은 한 가지 대표적인 성과이다.
이 외에도 전공기초 학습과 교양교육의 관련 문제와 다방면의 흥미를 기르기 위한 균형의 문제를 각각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추가적으로 다루었다. 30년간의 역사가 보여주는 다양한 경험 중에서 특히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교양선택 과목의 수가 30년 동안 최대 열 배에 가깝게 증가하였다는 점, 독립적 기구로서의 교양학부가 존폐를 거듭한다는 점, 교양학부가 없어진 상황에서 각 학과의 교양과목 운영권이 확대되었다는 점, 교양교육의 영역구분이 점차 체계화되어왔다는 점, 교양과 전공의 공통분모가 되는 전공기초 학습의 영역의 위상 정립이 필요하였다는 점, 대학의 고유한 교육이념이 교양필수의 영역에서 표현되었다는 점 등등. 본 연구는 각 시대별로 세 대학이 보여주는 대략적인 경향을 파악하는 데에 국한하였으나, 향후 이러한 주제들을 중심으로 하여 각 학교의 고유한 역사적 경험에 대한 상세한 검토와 분석이 요청된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briefly the historical transition of liberal arts education at 3 universities (Kyungpook Univ., Daegu Catholic Univ., and Yeungnam Univ.) in the Daegu-Kyungpook area, from the 1970s to the 1990s. First, in the 1970s, these three universities put severe restrictions on the right of course selection for students. Most courses were mandatory and the number of courses was significantly small. Second, it can be said that in the 1980s the independent department supervising liberal arts education underwent a crisis, for two universities abolished their Department of Liberal Arts Education. As a consequence, the identity of liberal arts education suffered in that its courses were then derived from other majors in other departments. Lastly, in the 1990s sections of liberal arts education were systemized as a whole, and carried the peculiar educational ideal of each university. Besides, experiences of liberal arts education accumulated over more than one generation also promoted this process, along with the social atmosphere of autonomy and diversity in the 1990s.
During these 30 years, the number of courses increased almost tenfold, and the Department of Liberal Arts Education rose and fell, and rose again. In addition to this, the sections of liberal arts education were more and more systemized, while the range of the students’ selection also widened. All of these experiences should be more closely analyzed for each year and at each of these colleges. This study only broadly reviewed some changes in liberal arts education during these periods. To achieve the ideals and goals put forth by liberal arts education in our time, further historical reflection and deliberation in this area is vitally needed.

Key Words

liberal arts education; mandatory course of liberal arts; optional course of liberal arts; Daegu Catholic University; Kyungpook Univerisity; Yeungnam University; history of liberal arts education

1. 서론

전인교육 또는 인성교육으로서의 교양교육의 정체성과 위상이 강화되고, 교양 전담기구로서의 교양학부나 센터가 활발하게 설립되면서, 교양교육에 관한 연구도 다방면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대학교육의 미래에 관한 논의가 주로 서구의 담론을 수용하는 데에 그치고 우리 내부로부터의 폭넓은 토론과 성찰에 기반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교양교육에 관한 활발한 연구는 그야말로 고무적인 일이다. 교양교육을 중심으로 삼는 학회지들이 연이어 창간되고, 그에 관한 논의를 본연의 책무로 여기는 연구진들과 공동체가 확산되는 것은 교양교육뿐만 아니라 한국 대학교육 전반에 커다란 이론적 활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 교양교육의 역사적 과정에 관한 연구는 대학교육의 특수성을 고유한 맥락 속에서 파악하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당장의 문제해결이나 정책계발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안목에서 대학교육을 이해하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된다. 또한 그것은 교양교육 연구의 영역간의 적절한 균형을 잡고 지평을 확대한다는 점에서도 필요불가결하다.1)
기존에 교양교육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취급한 사례 연구로는 김순임 외(2013), 염철(2011), 이정옥(2017)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대체로 2000년대 이후의 과정을 주된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현행 교양교육 체제 개편과 관련하여 과거 약 10년 동안의 추이를 부분적으로 살펴보는 것에 목적을 둔다. 반면에 2000년대 이전 시기를 다룬 연구는 아쉽게도 매우 드물다. 해방후 약 50년간의 교양교육의 역사가 마치 공백으로 남아있는 듯한 위기감 속에서도, 한국 교양교육의 전반을 해방 이후부터 포괄적으로 정리한 정혜령(2000), 196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서울대 교양과정부의 설립과 폐지의 과정을 고찰한 최종철(2007), 1946년부터 1954년까지를 한국 교양교육의 형성기로 규정하고 그로부터 교양교육의 목표, 내용, 구조 등의 면에서 특징을 도출한 백승수(2012), 1950년대 교양철학 교재의 저자 및 구성의 사례를 고찰한 박종린(2013), 1946년부터 연세대학교 교양교육의 역사를 미국식 모형 이식의 시기, 교양교육의 약화의 시기, 교육교육의 재강조의 시기의 세 시기로 나누어 분석한 이보경(2019) 등의 연구물들은 이와 관련된 드문 성과로 꼽을 수 있다.
본 연구는 한국 교양교육사의 기초를 위한 하나의 시도로서 1970년대부터 2000년까지 총 30년간 대구⋅경북지역의 경북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영남대학교2)의 3개 대학의 교양교육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파악하고자 한다. 지난 30년간 각 대학의 교육과정 요람상 나타나는 여러 가지 변화는 한편으로는 대학별 차이와 특수성을, 다른 한편으로는 각 시대의 과제와 한계라는 일반성을 보여준다. 역사적 고찰 그 자체가 미래지향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개척하고자 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과거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역사를 반추함으로써 얻는 이론적 식견과 사고의 틀은 우리가 미래의 방향을 모색할 때 의존할 수 있는 유일한 자산이다. 이 30년간의 교양교육의 시대별 특징을 분명하게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앞으로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이때까지 교육은 무엇을 해왔는가’ 하는 질문에 대답함으로써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그 이전에 임의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 연구는 경북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영남대학교의 교양교육사를 각 대학의 교육과정요람을 약 10년마다 한 편씩 선별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으로 구성되었으나, 몇 가지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첫째로, 기존 연구중에서 여러 대학의 교양교육을 수십년에 걸쳐 추적 종합한 사례가 거의 없는 까닭에 본 연구는 엄격한 역사학적 방법론이나 축적된 연구사적 배경없이 편의적으로 분석의 틀을 설정하였다. 3개 대학을 포괄함으로써 해당 시기의 특징을 다각도로 드러낼 수 있지만, 대학 간의 차이에 대한 엄밀한 비교는 본 연구의 범위를 벗어난다.3) 둘째로, 본 연구는 약 10년마다 해당 년도의 교육과정요람을 한 편씩 분석하는 데에 그쳤기 때문에 10년 주기 내의 다양한 변화를 포착할 수 없다. 이것은 애초에 10년을 단위로 대략적 경향을 포착하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70-80년대의 경우에 교육과정요람이 거의 망실된 경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셋째로, 교육과정요람에 나타난 특징은 매우 제한적인 사실들에 불과하다. 본 연구는 교양교육의 시수, 과목, 구분, 선택방식 등을 시론적으로 살펴보는 데에 그쳤다. 보다 심도있는 연구를 위해서는 요람뿐만 아니라, 당시 관련자들에 대한 면담 등 질적 연구나 강의노트, 공문, 회의자료 등을 폭넓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그러한 심층적 연구를 위한 선행 작업으로서, 여기서 밝혀진 각 학교별 특징과 시대적 경향성 등은 이후 심층 연구의 주제나 문제의식의 설정에 의미있는 시사점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이하 먼저 2장에서는 1970년대의 세 대학의 교양교육의 특징을 학생의 선택이 매우 제한되어있다는 사실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이 시기는 ‘자율적 선택의 제한’의 시기로 명명할 수 있으며, 세 대학의 상황은 당대 한국 대학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당시에 교양교육의 정체성이 불분명하였던 하였던 만큼, 전공을 위한 기초 학습과 교양교육 간의 관계도 함께 취급한다. 3장에서는 교양교육의 운영 주체를 중심으로 1980년대의 특징을 살펴본다. 세 대학 가운데 두 개 대학에서 기존의 교양학부가 폐지되면서 학과나 단대 중심으로 교양교육이 운영되었다는 점에서 1980년대를 ‘교양 전담기구의 위기’의 시기로 부를 수 있다. 대학의 발달과정에서 교양 전담기구가 오히려 설 자리를 잃게 되는 상황은 타 대학에서도 발견되며, 시기적으로 대체로 70년대와 80년대에 이러한 경우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 시기에 교양선택 과목의 학문간 균형을 위한 운영체계의 사례도 함께 소개한다. 4장에서는 1990년대의 특징을 ‘체계적 구조화의 진전’으로 규정하고 교양교육을 체계화하는 다양한 시도들을 고찰하기로 한다. 여기서는 교양교육은 어떤 영역으로 구분될 수 있는지, 교양선택 과목들은 어떤 범주아래 묶이는지 등의 문제를 주로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이상의 논의를 간략하게 요약하고 교양교육의 과거와 미래의 전망 사이의 연속선을 확인한다.

2. 1970년대: 자율적 선택의 제한

각 시기의 교양교육은 그 이전 시기에 물려받은 기존의 교육을 출발점으로 삼으며, 결코 백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즉, 각 시기의 교양교육은 그 시대의 새로운 고민과 노력의 산물만이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 그것이 물려받은 기존의 관행과 합의에 의존하고 있다. 이 점에서 1970년대의 교양교육에 관한 연구는 일정한 한계를 가진다. 경북대는 기존의 몇몇 단과 대학이 1951년에 통합되어 국립 종합대학으로 설립되었고, 대가대의 전신인 효성여자대학교는 1953년에 초급대학에서 종합대학으로서 승격되었으며, 영남대는 대구대학(1947년)과 청구대학(1950년)을 전신으로 하여 1967년도에 설립되었다. 따라서 1950년대부터 비교가 가능하겠지만 그 때부터 1960년대까지 대구대학, 청구대학, 효성여자대학의 요람은 남아있지 않다. 세 학교의 교양교육을 함께 고찰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기는 1970년대이다.4)
대체로 이 시기의 교양교육은 과목 선택이나 기타 운영 면에서 개인의 자율성이 오늘날과 비교하여 상당히 제한된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교과 개설의 역량이나 학생 수, 경직된 사회 정치적 풍토와 관련되지만, 그와 더불어 교양교육에 있어서 과목 선택권이나 이수 시기 등의 자율성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로 필요한 것인지, 과연 어느 정도의 선택과 자율이 교양교육을 위한 최적의 수준인지에 관한 질문도 함께 불러일으킨다. 또한, 당시에는 교양과목을 전공 수업을 위한 기초로서 각 단대나 학과에서 지정하는 방식이 매우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이 점에서 교양교육과 전공교육의 관계 설정이 다소 모호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고정된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니며, 전공을 위한 기초로서의 교양의 위상을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오늘날에도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하에서 언급하겠지만, 세 대학이 보여주는 1970년대의 이러한 특징은 예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한국 대학의 전반적인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먼저, 이 시기에는 교양교육에서의 자유로운 선택권이 매우 제한되어있었다. 대가대, 영남대, 경북대의 교양교육에서 최소 이수학점은 총 42-48학점에 이를 정도로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교양교육은 법제상 전체 교육과정 총시수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적어도 양적 측면에서는 1970년대의 대학교육에서 교양교육은 오늘날에 못지않은, 또는 그 이상의 중요성을 지닌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최소 이수’라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전반적인 운영 자체가 사전에 결정되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거의 모든 교양과목은 필수이든, 선택이든 할 것 없이 반드시 특정 학년 특정 학기에 수강해야 하는 것으로 지정되어있으며, 거기에는 학생의 자율적 선택권이 매우 제한되어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소 이수의 교양과목은 개설된 전체 교양과목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당시 학생의 자유로운 선택이 제한된 데에는 선택 대상의 교양과목의 수 자체가 적다는 점과 고정된 필수교양이 강조된다는 점이 모두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대가대의 경우에 1학년 교양선택 과목인 인문지리, 법학, 사회학, 가정학, 위생학, 수학, 생물, 물리, 문학 총 9개 과목(각 2시수) 중에서 5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각 과목은 주당 1시간으로 1, 2학기에 모두 수강하게 된다. 영남대와 경북대는 이보다 조금 많아서, 영남대는 총 26개, 경북대는 총 32개의 과목을 계열별로 3, 4개 과목을 1학년때 지정하여 이수하도록 하고 있으며, 각 과목은 모두 3시수이다. 이처럼 학교별 교양과목의 개설 수에 있어서 학교 간의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오늘날과 비교하였을 때 선택과목의 수는 때로 10분의 1에 불과할 만큼 제한되어 있다.
1970년대 당시에 학교의 규모에 따른 교수진의 수나 학문적 다양성, 교과목 개발의 정도 등의 면에서 각 학교간 상당한 수준의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연 많은 수의 교양과목을 개설하여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지에 대한 대학의 입장의 차이도 없을 수 없다. 그러나 대체로 이 시기에는 주로 필수과목을 중심으로 운영하면서 교양과목 선택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참고로 이 시기에 연세대학교는 이전 시기에 존재한―1954년에는 교양필수, 선택교양, 전공필수, 선택전공의 4영역으로 구분된다―교양선택의 범주 자체가 망실되어있다(이보경, 2019: 15). 1973년 연세대의 교양교육은 국어(4시수), 영어(10), 사회과학(3), 철학개론(3), 종교(4), 한국사와세계사(3), 수학(2), 자연과학(3), 교련(6), 체육(1), 보건(1), 제2외국어(4), 한문(2), 국민윤리(2)의 총 48시수으로 구성되어있다(같은 곳: 15).5) 즉, 교양교육은 곧 필수교양을 의미하며, 학생의 선택은 실질적으로 교양필수 안에서의 제한된 유사 과목 선택이거나 아니면 기초학습을 위한 전공별 선택에 불과하다. 연세대와는 달리 본 연구에서 다루는 세 대학의 경우에 모두 교양선택의 범주는 존재하지만, 실질적인 운영면에서 같은 시기의 연세대와 유사한 면을 가진다. 연세대의 사례는 이상에서 언급한 세 대학의 특징이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상당한 일반성을 띠었음을 시사해 준다.
이와 관련된 시대적 배경으로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다. 1970년대의 산업구조상 대학졸업자들에 대한 수요는 대폭 증가하였으나, 기업과 산업체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오늘날과 같은 고도로 기능화된 전문인이 아니라 포괄적인 관리능력을 갖춘 교양인에 해당하였다. 또한, 1970년의 대학진학률은 전문대를 포함하여 5.3퍼센트에 불과하여 대학졸업자는 사회를 대표하는 보편적 지식인으로서 지위를 가졌다. 이에 따라 다양한 교과목의 선택보다는 국어, 영어, 과학, 역사, 사회학, 철학 등 기본적 소양 중심의 법정 교양과목이 강조되었다. 또한 당시 교양과목들의 획일성은 전문 지식의 분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학계의 상황을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교양교육의 과목의 다양성은 학문의 분화 발전의 과정에 즉각적인 영향을 입는다. 높은 수준의 사회적 통제가 이루어진 70년대의 정치 상황 역시 교양교육의 다양성이나 자율성을 촉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지정민, 2019: 120-125).
교양선택 과목의 경우에도 학생의 다양성이나 흥미에 대한 고려보다는 필수적 교양과목의 이수에 더 강조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양교육은 주요 학문 영역을 대표하는 교양에 대한 강조가 클수록 그 다양성과 학생 선택의 측면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영남대와 경북대에 각각 26개와 32개의 교양선택 과목이 개설되어있지만, 그 이수는 학생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계열에 따라서 3-4과목을 지정하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이 시기에 교양과목은 그것이 교양선택이든 필수이든 간에 엘리트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하는 핵심적 교양지식의 성격이 강하였으며, 이 점은 교양 교과목의 수와 그 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교양교육과 전공교육의 관련을 살펴보기로 하자. 전공학습을 위한 기초 과목이 요구된다고 할 때 그것은 교양교육의 영역에 속하는가, 아니면 전공교육이나 제3의 영역에 속하는가? 영남대와 경북대의 경우에 전공을 위한 기초지식 습득의 목적으로 교양과 별도로 계열기초공통(또는 계열공통기초)의 영역을 운영하였다. 이것은 전공에 앞서 이수해야 할 기본 교과를 계열교양 과목이나 타과의 과목, 혹은 자과의 과목에서 폭넓게 선택하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시행되었다. 영남대를 보면, 예컨대 수학과의 경우에는 계열교양에 속하는 일반물리실험, 일반화학실험 등이 계열기초공통에 속해 있으며, 국어국문과는 문학개론, 언어학개론, 문예사조사, 교육학과는 교육학개론, 교육사개론 등을 계열기초공통 과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경북대의 경우에도 계열공통기초로 계열별로 9-16시수 정도를 지정하고 있다. 예컨대 문리대의 인문계열은 문화사, 문학개론, 철학개론을, 사회계열은 사회심리학, 문헌정보학, 지역개발론, 자연계열은 화학, 지질학, 생물, 공통기초실험 등을 계열공통으로 지정하고 있다.
계열기초공통은 그 목적에 있어서 명백히 교양이 아니라 전공교육을 위한 것이지만, 해당 학과와 관련된 타과의 과목도 이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전공 교과와 구분된다. 이런 특성에 주목하여 경북대와 영남대는 계열기초공통을 별도의 영역으로 분리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마도, 대학 전체의 교육과정을 전공과 교양의 두 영역으로 구분하는 것은 다분히 과목 관리의 편의 등을 고려한 조치일 것이다. 교양과 전공의 구분 이외에 계열기초라든가, 진로지도 등의 3, 4가지 영역으로 구분하는 것은 교양교육의 단일성을 부각시키면서 그 성격을 분명하게 확립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현재에도 많은 대학들이 교양과 전공으로 이분화하면서 교양의 범주 안에 다양한 영역들을 편입시키고 있으나, 장단점을 고려하여 여러 가지 모색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전공을 비롯한 여타 교육과 교양교육 사이의 관계가 정리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교양교육의 정체성이 확고하게 서있지 않으면 안된다. 교양교육의 목표는 무엇인가에 대한 학내의 합의와 고민이 선결되어야 한다. 교양교육의 목표가 분명하지 않다면, 편의 또는 학내의 이해 여하에 따라서 여타의 과목들과의 관계가 설정될 수밖에 없으며, 더욱이 주변 상황의 변화에 맞춰 그 관계는 매번 바뀔 위험이 있다. 2000년대의 경북대의 교양교육에 관한 한 연구에 따르면, 2004년에 신설된 ‘생활교양’의 상당한 수의 과목들이 교양교육으로서 부적절하다고 지적되어 2008년의 개편안에서 누락되었는데, 과연 이것이 교양교육의 목표에 관한 진지한 성찰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고상한 수사학적 장치일 뿐이며 실지로는 학내 세력들 간의 힘겨루기에 기인한 것인지 불분명하다(염철, 2011: 52). 이러한 문제들은 이미 1970년대부터 그 맹아를 찾아볼 수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 시기의 영남대의 계열교양과 경북대의 교양선택은 실질적으로 계열에 따라 필요한 기초 능력을 배양하는 데에 목적을 두는 까닭에 계열기초공통과 중첩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경북대의 문리대 자연계열 1학년에 교양선택으로는 수학1, 수학2, 물리학이 지정되어있으며, 계열공통기초로는 화학, 생물학, 지질학 등이 지정되어있다. 과목명만으로는 두 영역이 어떤 점에서 구분되는지를 밝히기 어렵다. 물론 문리대 인문계열의 교양선택처럼 자연과학개론이 포함되어있어서 계열공통기초와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는 경우도 존재한다. 대체로 이 시기의 교양선택이나 계열교양은 계열공통기초와의 관계면에서 있어서 분명하지 않으며, 이것은 교양과목에 대한 혼란된 인식에서 비롯된다. 계열교양을 운영하거나 교양선택을 계열별, 학과별로 지정하면서, 별도로 계열기초공통(계열공통기초)의 영역을 두는 것은 전공과 교양간의 관련성을 충분히 인정하더라도 운영체계상의 중첩을 초래한다. 이러한 혼란 또한 오늘날이라고 해서 완전하게 해소된 것은 아니다.
이상에서는 당시에 교양과목의 학생 선택권이 매우 제한되어있었다는 점, 그리고 두 개의 대학에서 계열기초공통이라는 제3의 영역을 두면서 동시에 교양선택 과목을 계열별로 지정하였다는 점을 중심으로 교양교육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연구자의 관점에서 볼 때, 특히 전자는 당시의 교양교육이 보여주는 특징적 요소이다. 학생 선택의 범위가 확장되고, 방대한 교양과목들이 개설되는 최근의 경향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이 시기는 아직 교양교육의 위상과 정체성이 온전히 자리잡지 못한 저급한 수준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단정적 평가를 최대한 배제하고, 당시의 특징을 각각 교양교육에 관한 보편적 질문과 연결지어 이해하고자 한다. 현대의 상태를 발전된 상태로, 과거를 그렇지 못한 상태로 규정한다면 아마도 역사적 성찰이 주는 시사라는 것은 대단히 평면적인 성격을 띨 것이다. 우리는 교양교육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그 당시 교육이 제기하는 질문은 오늘날까지 여전히 완결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한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 세 대학의 교양교육의 개괄적 사항을 하나의 표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학교별로 <표 1>과 관련하여 세부적인 사항을 설명하자면, 1. 먼저 1976-77년의 경북대는 교양과정부를 별도로 설치하여 3인의 전임교수를 두었으나 일반 학과와 겸임하였으며, 그 외에 교양교육위원회가 총장 직속기구로 있었다. 일반교양과목의 최소시수는 42학점이며 법대나 의대 등 몇몇 단대는 예외적으로 운영하였다. 교양선택과목은 계열별로 학년과 학기까지 특정과목이 정해져 있어서 실질적으로는 계열별 교양필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2. 다음으로 1977년의 대가대는 교양시수 48학점으로서 양적으로 최고 수준을 보여준다. 과목 선택의 다양성의 면에서 보면, 대부분의 강의가 주당 1시수로 1/2학기 연달아 수강하도록 되어있고, 영어, 국민윤리, 체육 등의 과목은 매학년(또는 1, 2학년) 반복 수강이 의무화되어있었다. 언제 어떤 과목을 몇 시수 수강할 것인가는 학교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결정되었다. 3. 마지막으로 1976-77년의 영남대는 교양학부가 교양교육 운영의 주체로서 총 6인의 전임 교수(영문, 독문, 물리학, 화학, 국어 전공 등)가 여기에 소속되었다. 교양학부는 1967년 영남대가 설립된 당해부터 설치되어 오랜 역사를 가진다. 교양교육은 총 160학점 중 교양과목 42학점으로 구성되었다. 교양공통필수 과목은 모든 단대가 과목과 시수가 동일하나 계열교양은 단대에 따라서 총 26개 과목(모두 3학점) 중에서 3-4과목을 지정하고 일부는 학생이 선택하도록 하였다. 요컨대 전체적으로 이 시기 세 대학은 운영 면에서 교양과목의 개인별 선택이 대폭 제한되고, 교양과 전공의 관계에 있어서 모호성이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표 1>
1970년대 세 대학의 교양교육 비교
경북대(1976-77) 대가대(1977) 영남대(1976-77)
교육과정 - 교양필수: 국민윤리, 국어,제1외국어1, 제1외 국어2, 제2외국어, 체육, 교련. 기타 계열별로 철학개론, 자연과학개론, 사회학, 경제학 등 2과목 지정
- 교양선택: 총32개 과목 중에서 계열별로 3과 목 지정
- 계열공통기초: 문화사, 철학개론, 문학개론, 사회심리학, 지역사회개발론, 도서관과사회, 화학, 생물학, 지질학, 지구과학, 공통기초실 험1, 공통기초실험2(계열별 9시수 3과목 또는 12시수 4과목 등)
- 교양필수: 국민윤리, 국어1, 국어2, 영어, 문화사, 체육, 철학개론, 자연과학개론
- 교양선택: 한문, 제2외국어,(인문지리, 법 학, 사회학, 가정학, 위생학, 수학, 생물, 물리, 문학 중의) 택5, 독서교양
- 대부분의 강의가 주당 1시수로 1-2학기 연속 수강으로 지정.
- 단대나 학과별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이 전체적 통일된 과정 운영
- 교양필수: 국민윤리, 국어, 영어1, 영어2, 철학개론, 국사, 체육, 교련,
- 계열교양: 4과목(예-문리대인문계열-문 화사, 한문, 자연과학개론 필수,(사회학개 론, 법학개론, 경제학개론 중의)택1). 총 26개 과목 개설
- 계열기초공통: 1학년 학과별 지정(예-국 어국문과-문학개론, 언어학개론, 문예사 조사 / 교육학과-교육학개론, 교육사개론 / 수학과-일반화학, 일반물리실험, 일반화 학실험 등)
비고 - 교양 최소 시수는 전체의 26-30퍼센트 내외로 비중이 큼
- 교양과목 개설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획일적으로 운영되어 학생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음
- 경북대와 영남대는 교양학부가 교양교육을 주관함
- 계열기초공통의 영역이 이 시기에 유일하게 나타남

3. 1980년대: 교양 전담기구의 위기

1980년대의 교양교육은 학교별로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한편으로는 1970년대에 비하여 교양과목의 다양성이 3배 이상 큰 폭으로 증가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 선택권이 학생이나 계열이 아닌, 개별 학과의 권한으로 이전되기도 한다. 1980년의 대학진학률은 그 전년대에 비하여 두 배이상 증가하였으며, 제5공화국 치하의 7.30 교육개혁 조치로 인하여 대학의 본고사가 폐지되고, 정원이 확대되는 동시에 졸업정원제가 실시되며, 대학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통제가 강화되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교양교육 또한 부침을 겪게 되었다. 과목 수의 증가 등 양적인 면에서는 성장하지만, 교양교육의 정체성을 책임지는 교양 전담기구는 일대 위기를 맞는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대학교육 전체의 확대 과정 속에서 교양교육은 그 위상의 정립에 혼란을 겪었음을 의미한다. 교양 전담기구의 운영 여하에 교육적 고려보다는 학생 통제를 위한 정치적 고려가 더 크게 작용하였다는 주장도 있지만(최종철, 2007: 215), 본 연구에서 취급하는 세 대학의 경우는 이와는 다소 다른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영남대는 1967년 대학 설립시기부터 있었던 교양학부를 1980년에 폐지하였다. 영남대의 교양학부는 경북대나 대가대와는 달리 겸임이 아닌 교양학부 전임의 교수를 6인 이상(교양학부 교수진을 겸임으로 운영한 경북대에 비해서도 2배 많음) 두었다는 점에서 교양교육의 독립성을 제도적인 면에서 강하게 보장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오랜 전통의 교양학부를 폐지한 것, 그리고 이 변화가 동일한 시기에 경북대에서도 이루어진 것을 보면, 여기에는 교양교육의 시대적 경향상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 교양학부의 폐지와 함께 두 학교 모두에서 교양과목의 운영 방식에 있어서 매우 큰 변화가 나타났다.
우선, 영남대는 ‘전공교양’ 영역을 신설하였다. 이전 시기에 교양선택 과목을 계열에 따라서 3개 과목을 지정한 것과 달리, 이 시기에는 학과별로 7개 과목을 전공교양으로 선정하였다. 이 전공교양은 학교에서 개설되는 모든 과목을 그 대상으로 한다. 각 학과의 특성에 따라서 모든 전공교양을 타과의 과목으로 선정하는 경우도 있고, 자과와 타과의 과목을 함께 포함하거나 자과의 과목만으로 선정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예컨대, 국사학과는 문화사, 윤리학개론, 사회학개론, 한국사료강독, 사적해제 등을, 교육학과는 교육학개론, 인간행동의 이해, 교육의 역사적 기초, 교육의 사회적 기초 등을, 기계공학과는 수학, 일반물리, 일반화학, 전기공학개론 등을 선택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서 학생 개개인이 선택하는 교양과목은 균형교양에 해당하는 2과목에 그치게 된다. 요컨대, 전공교양 과목은 각 학과에서 최대 7과목까지 개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성이 대폭으로 증가하였고, 학생의 선택이 아닌 학과의 선택의 중시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경북대는 교양과정부를 없애면서 이전에 계열별로 지정되던 교양선택과 계열공통기초 과목을 교양일반선택 영역으로 통합하여 학과별로 6개 과목 내외를 지정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앞서 살펴본 영남대와 상당히 유사한 방식이지만, 교양일반선택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지정하도록 한 결과로 실지로 개설된 과목의 성격은 영남대와 큰 차이를 보인다. 즉 경북대는 보편적 교양의 틀 안에서 6개 과목 전체를 타과 과목으로 개설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컨대 국문과는 1학년 1학기에 철학개론, 문학개론, 인류학을, 2학기에 교양한문, 심리학, 자연과학개론을 지정하였고 사학과는 1학년 1학기에 철학개론, 인류학, 경제학개론과 2학기에 문화사, 사회학개론, 자연과학개론을 지정하였다. 자연 계열의 경우도 이 점은 마찬가지이어서, 물리학과는 1학년 1학기에 철학개론, 수학1, 화학과 2학기에 물리학, 수학2, 통계학1 등을 지정하였다. 아울러 학생 개인이 선택하는 자유교양 과목은 중급영어, 중급독어, 중급불어, 중급중국어, 현대사조론의 총 5개로 축소되었다.
영남대와 경북대의 경우를 두고 볼 때, 이 시기는 전통적인 교양학부의 위상과 역할이 흔들리면서 과연 교양교육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관한 질문이 광범위하게 제기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교양학부 소속의 교수진이 아니라, 일반 학과에서도 충분히 교양과목을 교양과목답게 개설하고 운영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또 일반 학과의 교수진이 교양교육을 주관하려는 의지를 표명하게 되면, 아마도 자연스럽게 교양학부의 위상과 권한은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양교육의 특수성에 관한 분명한 인식이 없다면, 이러한 상황은 자칫 전공 과목과 다를 바 없는 교양과목의 양산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 시기에 영남대는 학내에서 개설되는 모든 과목을 대상으로 하여 전공교양을 지정함으로써, 교양과목이 타과의 전공과목과도, 자과의 전공과목과도 구분되지 않는 상황을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학과의 의무적인 지정으로 인하여 학생들의 선택권마저 제한됨으로써, 학생 선택에 따른 자연스러운 수급의 조정도 불가능해지면서 교양과목의 질을 관리할 방안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처럼 교양학부의 독립성이 과거보다 약화되는 경우는 유사한 시기의 서울대학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서울대는 1970년대 중반까지 교양과정부가 일종의 ‘예과’의 형태로 모든 1, 2학년 학생들을 공간적으로 분리시켜서 반으로 나누어 편성하고 교양과목을 집중적으로 이수하도록 하였다(최종철, 2007: 216-220). 이 시기에 교양과정부를 수료하기 위한 문과계 교양과목 의무시수는 총 48점으로서 국어(6시수), 영어(8), 제2외국어(6), 한문(2), 철학개론(2), 문화사(2), 인문/사회과학(10), 수학/자연과학(4), 체육(4), 교련(4)로 구성된다.6) 1975년에 교양과정부가 해체된 이후에 1980년대 내내 교양교육은 단대별로 주관하면서 행정업무는 교무처가 맡았으며 그 결과로 교양과정부 시기에 이룬 성과가 발전적으로 계승되지 못하였다(같은 곳: 223). 교육과정의 통일성, 고교교육과의 연계와 발전, 과목간 균형 등은 주관 기구의 독립성과 전문성 등이 보장될 때 가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또한 위의 영남대와 경북대의 비교에서 알 수 있듯이, 전담기구가 있는 동안에 닦여진 관행과 체계를 어느 정도로 계승하는가 하는 점에서 학교별로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한편, 대가대의 경우에는 위의 두 대학과는 다른 의미에서 중요한 변화를 보인다. 대가대의 교양선택 과목은 본래 2학점(1시수씩 1학기와 2학기에 걸쳐 운영)이었으며 총 9개 과목이 있었으나, 이 시기에는 일제히 3학점으로 바뀌어 비중있게 운영되면서 24개 과목으로 늘어났다. 또한 이 과목들은 인문계, 사회계, 자연계로 구분되어 모든 학생은 각 분야에서 균형있게 1개 과목이상을 이수하도록 되었다. 학생의 자유 선택에 따라 과목을 이수하되, 반드시 3개 분야를 모두 포괄하도록 한 것은 교양과목의 분야별 균형이라는 점에서 가장 적극적인 조치이다. 이전, 이후의 시기와 비교해서도 모든 학생들로 하여금 3개 분야의 교양을 고르게 선택하도록 한 것은 독보적인 조치로 평가할 수 있다. 교육받은 인간이 가져야 할 ‘다방면의 흥미’는 대학의 교양교육에서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이 시기의 가장 선진적인 대답을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방면의 흥미 또는 균형교양이라는 문제는 교양선택의 영역뿐만 아니라 교양필수의 영역과도 관련된다. 영남대는 교양필수의 영역에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동일하게 철학개론을 포함하였으며, 대가대에서는 1970년대에 2학년의 교양필수 과목으로 철학개론과 자연과학개론을 이수하도록 하였다. 경북대에서는 1970년대에 자연과학개론을 경북대교의 문리대-인문계열과 사회계열-에서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지정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영남대는 균형교양이라는 이름 하에 타계열 전공교양 과목을 서로 다른 2개 계열에서 1과목씩 선택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시도들은 모두 누구나 갖춰야 하는 인문학적, 사회학적, 수리과학적 사고와 안목이 있으며, 대학교육을 통하여 그것을 균형있게 습득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특정 주제에 관한 전문적 지식보다는 해당 계열을 전체적으로 포괄하면서 고유한 접근법과 기본 개념의 위주의 강의를 개설해야 할 것이다. 각 학과의 교수진이든, 교양학부의 교수진이든 간에 각 계열의 사고방식을 대표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고안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균형교양 또는 다면적 흥미를 위한 교양교육의 취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담당 교수진을 안내할 수 있는 교양교육의 주체가 요구된다. 그 주체는 위원회의 형태를 띨 수도 있고 교양학부의 형태를 띨 수도 있겠지만, 교양교육의 목적과 취지에 관한 인식을 공유하고 관리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기구는 반드시 설치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이 시기는 전통적인 교양학부의 역할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각 학과의 교수진이 자유롭게 교양과목을 개설하고, 학과 단위로 교양선택 과목을 지정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시기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교양과목이 개설되고 교양과목에 대한 학내의 관심도가 커졌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교양과목의 개방성, 다양성의 면에서 각 학과 교수진의 적극적 참여는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조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비판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교양교육의 본질에 대한 합의와 숙고의 과정없이 다분히 편의적으로 교양과목이 개설되며,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선택 또한 학과 단위로 제한되는 문제점을 낳게 되었다. 교양교육의 개방과 관리의 올바른 조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 시기는 중요한 경험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인문, 사회, 자연의 세 계열 전체의 균형있는 교양과목의 이수를 위한 의무적 규정은 이 시기에 가장 강력한 사례가 나온다.
세 대학의 운영을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표 2>에 나타난 사항과 관련하여 각 대학별 세부적 내용을 살펴보면 1. 먼저, 1984-85년 경북대의 교양교육 영역은 교양필수, 일반선택, 자유선택의 3가지로 구분되며, 일반선택은 다시 인문계열, 사회계열, 자연계열로 나뉜다. 자유선택의 경우에 과목수가 매우 적고, 우선적으로 학과에서 지정하는 일반선택의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교양과목은 주로 학과의 관리하에 운영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1984년의 교양과정부의 폐지는 이와 긴밀한 관련을 가진다. 2. 다음으로 1983-84년 대가대의 경우를 살펴보면, 세 대학 중에서 10년간 가장 큰 변화를 겪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운영방향에 있어서 큰 변화를 보인다. 교양필수 과목은 대폭 축소되면서 교양선택 과목이 전 과목 3학점으로 바뀌면서 3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각 과목들을 이수해야 하는 시기도 1970년대에는 특정 학기가 지정되어있었지만, 이 시기에 오면 비교적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율화, 분화, 심화, 열린 선택 등의 가치가 교양교육에서 실현되는 방향으로 뚜렷한 변화가 확인된다. 세부적으로는 교양필수 27, 교양선택 9, 계열교양 6, 교양선택 9로 이루어져서, 1970년대의 교양필수 31, 교양선택 17(그러나 이중 한문, 제2외국어, 독서교양의 7시수는 선택이 아닌 의무이므로 교양필수와 실질적인 차이가 없었다)과 구성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3. 마지막으로 영남대는 1980년에 교양학부가 폐지되고 1982년에 교무처 산하의 행정부서로 교양과정수업과가 신설되었다. 교양교육의 영역구분은 기초교양, 균형교양, 전공교양의 3가지로 나누어지며, 기초교양의 31시수는 다시 법정교양 14시수와 학교선정교양 17시수로 세분화된다. 이러한 구분은 상당히 체계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다소 번다한 측면이 있는데, 이후 1990년대에는 보다 정리되어 교양교육 영역 구분의 성공적 사례를 보여준다.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교양교육의 전담기구가 폐지되거나 축소되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와 아울러 균형적 교양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려는 사례도 발견된다.
<표 2>
1980년대 세 대학의 교양교육 비교
경북대(1984-85) 대가대(1983-84) 영남대(1983)
교육과정 - 교양필수: 70년대와 유사
- 교양선택: 인문(철학개론, 교양한문, 이데올 로기비판) 사회(사회학개론, 경제학개론) 자 연(수학1/2, 물리학, 화학, 생물학, 환경과학, 통계학2) 등 28개 과목
- 자유선택: 중급영어, 중급독어, 중급불어, 중 급중국어, 현대사조론
- 학과별 교양선택 7과목 지정
- 교양필수: 국민윤리, 한국사, 체육, 국어, 영어, 제2외국어
- 교양선택: 인문(문학개론, 철학개론, 미학개론, 윤리학개론), 사회(문화사, 지리학개론, 법학개론, 경제학개론), 자연(일반수학, 통계학, 일반물리학, 지구과학, 가정학, 위생학) 중 영역별로 각 택1
- 계열교양: 1학년 학기당1과목
- 기초교양: 법정교양 14시수(국민윤 리, 국사, 교련, 체육) 및 학교선정교양 17시수(국어, 영어, 제2외국어, 철학 개론)
- 균형교양: 타계열 전공교양과목을 계 열별로 3시수 2과목 3학년때 이수
- 일반선택: 전교에서 개설되는 모든 과 목 포함
비고 - 1980년 영남대, 1984년 경북대에서 교양학부(교양과정부)를 폐지함
- 교양 과목 선택에서 학과의 결정권이 강화됨
- 교양과목의 수가 꾸준히 증가함

4. 1990년대: 체계적 구조화의 진전

1990년대의 교양교육은 그 이전 시기에 비하여 더 정련되고 안정된 체계를 보여준다. 반 세기 전후의 교양교육의 경험이 축적된 결과, 교양교육의 기본 방향이 확립되고 그 본질을 온전하게 구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여러 시도가 이루어졌다. 또한 이러한 변화를 촉진하는 사회 전반의 개혁적 분위기도 형성되었다. 특히 1995년 교육법 시행령 119조 3항의 교양과목의 총시수의 30퍼센트 배정 규정이 폐지되고, 1996년 대학설립운영규정이 제정되면서 대학설립준칙주의가 도입되었으며, 1998년 고등교육법시행령이 새롭게 실시되어 이전의 규제 위주의 조항들을 대체하였다. 또한, 1995년의 5.31 교육개혁을 통하여 보다 폭넓은 수준에서 초중등교육과 고등교육 전반의 자율성과 경쟁을 장려하였고, 동시에 94년에 대학종합평가인정제도를 실시하면서 정부 차원에서 ‘대학의 다양화와 특성화’를 중심으로 고등교육 개혁을 유도하였다(최광만, 2001: 10). 이러한 변화는 교양교육의 변화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7) 다만, 본 장에서는 주로 1995년 이전의 교양교육을 비교하였으며, 5.31개혁 이후의 조치들이 교양교육에 본격적으로 반영되는 것은 90년대 말과 2000년대 이후를 기다려야 했다.
이 시기에 영남대는 교양교육의 체계적 구조화의 측면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거둔다. 영남대는 교양을 총 4가지 영역으로 구분하는데, 이것은 이전 시기에 비하여 가장 세분화된 구분이다. 흔히 교양은 교양필수와 교양선택으로 구분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구분은 수강의 방식에 의한 것일 뿐 여러 교양과목 간의 성격상의 차이를 직접 나타내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사실상 교양교육의 영역간 구분은 교양교육의 정체성이나 통일성, 그리고 각 대학의 교육이념과 관련된 매우 까다로운 사안이다.
우선 이 시기의 영남대에 주목하자면, 교양교육은 기초교양, 균형교양, 자유교양, 전공교양이라는 틀을 통하여 교양의 다양한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본래 한국의 교양교육은 해방 이후 중핵 교육과정의 방식과 학문계열별 배분이수의 방식을 혼합한 모형을 취해왔으며 오늘날까지 많은 대학에서 이러한 방식을 따르고 있다(백승수, 2012: 332-343). 즉 중핵 교육과정은 국어, 외국어, 문화사, 철학개론, 자연과학개론, 체육 등의 필수 과목이며, 학문계열별 배분이수는 말 그대로 계열별로 1-2과목씩 이수하여 균형있는 교양을 기르는 취지로 운영된다. 이러한 체제는 그것이 40년대 및 50년대의 교육법에 의하여 일괄적으로 시행된 것인 만큼, 다양한 각도에서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가령 중핵과정은 그것이 어째서 중핵으로서의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한 교육 주체와 학교 차원의 진지한 고민과 결정을 필요로 한다. 관습적으로 중핵을 차용할 경우에 그것은 교양교육을 형식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또한 이러한 체제하에서는 학생의 흥미나 특수한 전문 지식들이 교양과목에 반영되기 어려우며, 전공교육과의 관련도 매우 불분명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구체적으로 영남대의 기초교양은 국어, 영어, 제2외국어, 철학(현대사회와 철학, 철학의 이해, 인간과 윤리 중 택1, 2학점), 역사(한국의 역사인식, 한국문화사, 한국근현대사, 세계문화사 중 택1, 2학점)로 이루어진다. 한국사회의 민주화의 진전과 더불어 이때까지 법정 교양으로 지정된 교련이나 국민윤리, 국사 등의 과목들이 폐지되면서 학교 자율에 맡겨졌고 이 자리를 메울 새로운 영역과 과목들이 선정된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할 것은 철학과 역사를 기초 교양으로 포함시킨 점이다. 철학과 역사가 교양의 핵심 부분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겠으나, 이것을 여타의 분야와 분명하게 차별화하여 기초 교양으로 지정하여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한 것은 대학 차원에서의 교육적, 정책적 판단을 보여준다. 각 대학의 교육이념을 반영하면서 철학이든, 과학이든, 독서든 간에 특정 분야의 과목을 개발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노력으로 보인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각 대학은 실질적 교육과정을 통하여 대학의 특성과 장점을 학생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며, 교양교육의 기초교양 분야는 해당 대학의 고유한 교육철학을 드러낼 훌륭한 통로가 될 수 있다.
기초교양이 기존의 중핵 교육과정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균형교양은 계열별 배분이수 영역에 해당한다. 다만 자유교양이 별도로 설치됨에 따라서 균형교양은 해당 계열의 개념과 안목을 대표하는 보편적 성격의 강의안을 구안할 수 있으며, 역으로 자유교양은 다양한 흥미에 부응하고, 교수자의 최신 성과를 반영하는 융통성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다. 전공교양은 전공과의 연계성을 고려한 기초학습을 위주로 하며 별도의 영역으로 독립할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 운영의 편의상 교양의 범주 안에 포섭된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자의 관점에서 볼 때, 학생들의 진로와 관련된 기술적 영역을 제외하면 교양은 이 네 가지 영역으로 충분히 포괄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 네 가지 영역을 구분함으로써 각 영역은 자신의 목적에 충실한 내용과 방식을 계발할 수 있는 안정적인 테두리를 얻게 된다.
영남대는 이러한 성과를 기반으로 하여 2001년에 대학교육협의회 주관의 대학평가에서 교양교육분야 우수 대학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우수 대학 선정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기초교양, 균형교양, 자유교양, 전공교양이라는 영역 구분이 교양교육의 다양한 성격을 반영하여 명확하게 설정되었다는 점, 그리고 철학과 역사라는 본 대학의 핵심적 교양교과가 모든 학생에게 필수로 부과되는 제도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철학과 역사는 직접적인 강좌명은 아니며, 서로 다른 강좌명의 서너 강의가 철학과 역사에 각각 포함된다. 그러나 기초교양으로서의 공통점이 있는 만큼, 일반 학과에서 개설되는 전공과목으로서의 철학, 역사 관련 교과와는 구분되는 방식으로 일정한 절차를 거쳐서 개발하였으리라는 기대를 해 볼 수 있다. 또한, 교양교육 우수 대학으로 선정된 다음 해에 영남대는 교양학부를 20년만에 부활시키고 2007년에 기초교육대학을 신설하기도 하여 교양교육의 주체를 확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대가대의 경우에는 교양필수로 국어, 영어, 제2외국어 이외에 철학, 수학, 윤리학, 한국사를 지정하였다. 여기서 철학, 수학, 윤리학, 한국사는 계열별로 나누어 선택적으로 지정된다. 즉, 인문사회 및 예체능계열은 철학을, 자연계는 수학을, 가정대, 약대, 미대는 윤리학(미대는 그 외에 한국사 중 택1)을 지정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표면상 기초교양으로 철학과 역사를 지정한 영남대와 유사해 보일 수 있으나, 실제 운영면에서는 차이가 크다. 이것은 학교의 교양교육관이라든가, 교양교육의 기초에 관한 학교의 입장을 나타낸다기보다는 이전 시기에 교양선택 과목을 계열별로 지정하였던 것과 더 유사하거나 또는 그 중간지점에 위치한다. 예컨대 인문사회계열은 철학을 필수로 하고, 자연계열은 수학을 필수로 함으로써 각 계열의 기초학습에 도움을 주는 동시에 주요 교양을 습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대학의 고유한 교양교육관을 반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교양필수와 전공교양을 결합하는 시도로서 한정된 의의를 가진다.
그 밖에 교양교육의 체계적 구조화에는 교양의 영역별 구분뿐만 아니라 교양선택 과목의 하위 분야 구분도 포함된다. 이 시기에는 세 대학 모두에서 각각 계열별-인문, 사회, 자연 또는 예체능 추가-로 구분하여 교양과목을 각각 20-30개 내외로 개설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먼저, 경북대는 총 96과목의 교양과목을 개설하여, 과목의 수가 많은 만큼 여러 과목들을 일정한 틀로 구획하여 제시하고 관리할 필요가 제기되었다. 경북대는 인문계열 23개, 사회계열 22개, 자연계열 33개, 예체능계열 18개를 개설하였으며, 인문계열은 다시 한국어와 문학영역, 외국어 영역, 역사 및 철학분야로 나누고, 자연계열은 자연과 그 관리 및 기초과학 분야로 나누었다. 즉 경북대는 인문, 사회, 자연, 예체능의 계열에 따라 크게 4가지로 나눈 후에 다시 인문을 3개, 자연을 2개로 세분화하였다. 이것은 그 이전 시기나 여타 대학이 아무런 구분을 하지 않거나, 아니면 인문, 사회, 자연의 최대 3개 영역으로 나누어 제시한 것과 비교할 때, 매우 입체적인 구분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교양과목의 선택이 학과나 계열이 아닌 개별 학생에게 상당한 정도로 위임되고 그에 따라 교양과목이 100개 이상으로 다양해지는 이후의 추세에 따라서 교양과목을 일정한 틀로 구분하여 개설하는 것은 점점 불가피한 경향이 되었을 것이다. 경북대의 사례는 이 면에서의 선례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학문 분야의 명칭을 적용하였으며, 학교가 지향하는 특별한 이념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지로 2000년대에 오면, 대가대는 교양을 인문, 사회, 자연, 예체능, 세계화의 5개 분야로 구분한다. 여기서 세계화는 본 대학이 목적의식적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분야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경북대도 10년 후에는 본래의 구분을 다소 수정하여, 언어와 문학, 역사와 철학, 사회와 세계, 자연과 생명, 체육 및 여가생활, 직업능력 개발 등으로 과목 구분 방식을 개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교양과목의 구분은 한편으로는 시대의 변화와 요구를 반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교양교육의 보편적 가치를 반영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과제는 때로 서로 모순될 수 있다. 앞에서 경북대의 학문 분야별 단순 구분은 보편적 성격에 치중하여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따른 대학의 고유한 방향은 보여주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2000년대의 대가대는 세계화의 영역을 새로 만들었으며, 이것은 당시의 시대적 풍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에는 대가대뿐만 아니라 경북대도 사회와 세계라는 영역을, 영남대도 세계문화와 외국어 영역을 새로 설치하였던 것을 보면 가히 ‘세계화’가 당시 교양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화두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관점을 달리하면 이것은 대학교육이 표준적 모형으로 ‘동형화’되는 현상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정부 주도의 법제적 구속으로 인한 획일화가 이전 시기 교양교육의 특징이라면, 2000년대는 공식적, 비공식적 통로를 통하여 세계사회의 주류적 담론이 반성의 과정없이 일방적으로 수용되어 진정한 대학의 다양성을 가로막았다(부향숙, 2012: 37-38). 2001년 대학교육협의회에서 세계시민으로서의 소양, 의사소통능력과 통합적 사고를 제시한 것이나 서울권 S대학의 교양교육 개요에서 그와 유사한 방향의 목표를 제시한 것(같은 곳: 43) 등은 이러한 동형화의 경향이 본 연구의 세 대학에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이와 같이 교양교육의 보편적 가치, 시대적 요구, 특정 대학 고유의 이념은 교양과목의 분야 구분에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한편으로는 보편적 가치를 살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동시에 대학의 고유한 이념을 반영한다는 과제는 결코 단기일 내에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양교육의 역사와 철학에 관한 고민, 학내 성원들의 깊이있고 민주적인 토론과, 교양교육 관련 책임자의 오랜 경험과 전문성의 함양 등등 다각도의 노력이 쌓여야 비로소 보편적 가치, 시대적 요구, 대학의 교육이념의 3자의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 세 대학의 전반적 운영은 다음과 같다.
대학별로 <표 3>과 관련된 세부적인 사항을 살펴보면, 1. 먼저 1994-95년 경북대는 일반교양 과목을 필수와 선택의 두 가지로 비교적 간명하게 구분하였으며, 교양과목의 영역 구분을 간소화한 것 이외에 그다지 두드러진 특징을 보이지 않는다. 다만 교양선택의 개설 과목의 수는 계속 증가하여 총 96개 과목(3시수)으로 이루어졌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96개 과목을 묶는 세부적인 구분이 마련되었다. 2. 다음으로 1990년 대가대는 교양필수와 계열교양을 통해서 교양교육의 방향을 확립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즉, 교양필수로 철학, 수학, 윤리학, 한국사의 각 3학점 4과목을 부과함으로써 본 대학 고유의 교양교육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또한, 계열교양은 균형잡힌 교양의 습득을 목표로 하여, 인문계, 사회계, 자연계의 세 영역에서 총 9시간을 이수하도록 하여 이전 시기에 비하여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 또한 교양선택 과목은 이전 시기의 24개 과목에서 72개 과목으로 증가하였다. 3. 마지막으로 1990-91년 영남대는 기초교양 총 17시수를 이수하도록 하였고(국어 4시수, 영어 6, 제2외국어 3, 철학 2, 역사 2), 균형교양은 타계열에 속하는 과목에서 1과목씩 2-6시수를 이수하도록 하였다. 자유교양과는 달리 균형교양에 속하는 과목들은 비교적 해당 학문 분야의 보편적 원리와 개념을 다루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자유교양으로 인문사회 계열은 3과목 6시수, 자연 계열은 1과목 2시수를 이수하도록 하였는데 비교적 학생의 흥미와 전문 분야의 지식을 고려한 강좌들로 구성되었다(총 49개 과목-매스컴과 사회, 북한의 정치와 사회, 물의 과학, 민족연희 등). 그밖에 전공교양은 실질적으로 1학년을 위한 기초 전공에 해당한다.
<표 3>
1990년대 세 대학의 교양교육 비교
경북대(1994-95) 대가대(1990) 영남대(1990-91)
교육과정 - 일반교양과목은 필수와 선택으로 구분
- 일반교양과목의 이수 학점은 졸업 필 요 학점의 30퍼센트(몇 개 학과 및 단대 예외)
- 교양과목구분: 인문(한국어와문학, 외 국어, 역사 및 철학의 세부 3개 영역), 사회(사회와인간), 자연(자연과 그 관 리, 기초과학의 세부 2개 영역), 예체능 의 96개 과목
- 교양필수: 국어, 영어, 제2외국어,(철학, 수학, 윤리학, 한국사 중의) 1과목 계열별로 지정
- 학과지정교양: 1학년학기당 1과목
- 계열교양: 인문, 사회, 자연계에서 1과목씩. 학년 학기 미지정
- 교양선택: 현대중국론, 여성과 사회, 도서관 정보이용론, 상업경영학, 미술의 이해, 생명 의 신비, 국제관계구조론 등 72개 과목
- 기초교양: 국어, 영어, 제2외국어, 철학(현대 사회와 철학, 철학의 이해, 인간과 윤리 중 택 1), 역사(한국의 역사 인식, 한국 문화사, 한국 근현대사, 세계문화사 중 택1)
- 균형교양: 균형교양과목 중에서 인문사회계 열은 타계열에서 3과목, 자연계열은 1과목)
- 자유교양: 각2학점 총49과목
- 전공교양: 학과별 7개 내외 개설
비고 - 교육영역이나 과목구분이 보다 체계적으로 정비됨
- 개설 과목의 수에 있어서 학교별 차이는 있으나 전체적으로 계속 증가함
- 학과보다 학생의 선택의 범위가 더 커짐

5. 결론

본 연구에서는 1970년대부터 2000년까지 10년을 주기로 하여 세 시기 동안 3개 대학의 교양교육사를 살펴보았다. 이 시기 동안 각 대학들은 다양한 특징들을 내보이면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 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시도들은 때로는 전혀 다른 방향을 취하기도 하고, 때로는 시기적으로 엇갈리면서 세 대학간의 상당한 시차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볼 때, 10년을 주기로 하는 각 시기는 자율적 선택의 제한의 시기(1970년대), 교양 전담기구의 위기의 시기(1980년대), 체계적 구조화의 시기(1990년대)로 규정될 수 있다. 1970년대는 선택가능한 교양과목의 수가 현격하게 적다는 점에서 이후의 시기와 확연하게 구분된다. 당시에는 법정 교양과목이 규정되어있어서 국가적 구속력이 강하고, 대학은 자율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시설, 자원, 교수진 등 여러 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또한 1970년의 대학진학률 자체가 5퍼센트에 불과할 정도로 대학생의 수도 오늘날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면 다양한 교양과목에 대한 학생의 자유로운 선택이 상당히 제한되었다는 점은 단지 3개 대학만이 아니라 그 당시 한국대학의 교양교육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증적 연구가 없더라도 이와 같은 사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본 연구는 3개 대학의 사례를 통하여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논증하고, 그에 기반하여 이 시기를 자율적 선택의 제한의 시기로 규정하였다는 의의를 가진다. 아마도 1950-60년대의 교양교육 역시 이와 동일한 동일한 특징을 띨 것으로 예상되며, 1970년대는 1980년대의 교양과목의 가파른 증가와 극적으로 대비되는 마지막 시기이다.
1980년대는 교양 전담기구의 위기로 규정한 것은 이에 비하여 다소 제한적인 의미를 가진다. 물론 1980년과 1984년에 경북대와 영남대의 교양학부가 폐지된 것은 마땅히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꼽혀야 한다. 대학의 정원이 증가하고 그에 따라 다양한 학과들이 생겨나고 단대나 학과중심의 운영체계가 자리잡으면서 그 과정에서 교양 전담기구는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대가대의 경우에 교양학부가 폐지된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 내내 부재하였다는 점에서 넓게 보아 전담기구의 위기로 포괄할 수 있다. 그러나 서울대의 경우에 교양과정부가 1975년에, 연세대는 교양학부가 1976년에 폐지되었으므로 다소의 시차가 있다. 그러므로 엄격하게 말하여 1980년대를 교양 전담기구의 위기로 규정하는 것은 본 연구의 세 대학의 경우(특히 경북대와 영남대의 두 대학)로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각 대학의 설립 이후 전통적으로 운영되어온 교양 전담기구가 대학의 발달과정에서 오히려 그 존재 가치가 위협당하는 역사적 경험을 한다는 점, 그 정확한 시기는 학교에 따라 다르다는 점 정도의 시사점을 이상의 논의를 통하여 얻을 수 있다.
1990년대는 체계적 구조화의 진전으로 특징지어지는데, 이 또한 문민정부 시대의 경쟁, 자율성, 다양성의 강조라는 흐름에 부응한다. 대학을 감독하던 여러 규제들의 폐지를 전후로 하여 대학은 기존의 법정 과목들이 사라진 자리에 각 대학의 이념과 부합하는 필수교양을 부과할 수 있었으며, 이제 백 개에 이를 정도로 방대해진 다양한 선택과목들을 몇 가지 하위 분야로 구분하면서 교양과목 운영체제를 정비하게 된다. 여기에 우수대학 선정이라든지 인정제도 등은 그러한 자생의 노력을 더욱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영남대의 기초교양, 균형교양, 자유교양, 전공교양의 구분은 한 가지 대표적인 성과이며, 경북대와 대가대 역시 이전 시기보다 입체적인 구분을 통하여 교양과목을 운영하게 된다. 나아가, 3개 대학뿐만 아니라 여타의 대학들도 이러한 변화를 기반으로 하여, 1990년대 말부터 대거 교양 전담기구를 설립하고 ‘세계화’, ‘정보화’ 등의 시대적 화두에 부합하는 각 대학 고유의 교양교육 체제를 확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 외에도 위의 시기 규정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전공을 위한 기초학습의 문제와 다방면의 흥미를 기르기 위한 균형의 문제를 각각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다루었다. 사실상 다양한 세부적 자료들이 보여주는 여러 중요한 주제들을 시기 구분이나 일반화라는 잣대로 일괄적으로 걸러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본 연구에서는 일차적으로 3개 대학의 교양교육과정의 공통적 시기별 특징을 도출하고 최대한 그것을 보편적 흐름으로 이해하고자 하였지만, 동시에 요람상 나타나는 각 대학의 세부적인 운영상의 특징들도 아울러 기록하는 데에 주의를 기울였다. 자료의 분석과정에서 제기된 다양한 주제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재요약할 수 있다. 즉, 1. 교양과목의 이수를 결정하는 학생의 선택권은 어느 정도로 보장되어야 하는가, 2. 전공을 위한 기초 학습은 교양과 전공 중의 어느 편에 속하는 것이 적절한가, 3. 교양교육은 별도의 학부가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학과의 교수진 전체가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 4. 다방면의 흥미를 기르기 위한 교양교육의 균형은 어떤 방식으로 추구되어야 하는가, 5. 교양교육은 영역별로 어떻게 구분될 수 있으며 각 영역간의 관련은 무엇인가, 6. 교과목 개설시 교양과목들은 어떤 기준에 의하여 분류될 수 있는가 등등.
각 시기의 세 대학의 교양교육은 이 질문들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그 시기에 각 질문에 대한 온전한 해답이 제시된 것은 아니며, 이상의 질문들은 해당 시기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위의 질문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서, 우리는 지난 시기의 성과와 한계 속에서 오늘날 교양교육의 현실을 조망할 수 있다. 대학교육에 관한 역사적 성찰은 과거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답해야 할 질문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준다(지정민 외, 2011: 143)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각 시대는 나름의 과제와 소명을 가지고 충실하게 교육에 임해왔다. 시대적 한계 속에서 나름의 문제점들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터무니없거나 무성의한 실책이 아니라 상당한 정도로 불가피한 것이었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제한되고 법정교양으로서 많은 과목들이 반복적으로 요구되던 시기에는 새로운 강의의 개설과 그 선택에 있어서 자유로운 학생의 권리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양성과 자유라는 대학 운영의 원리는 대학을 둘러싼 사회적, 정치적 조건 속에서 다르게 구현된다. 또한 교과 개발 및 운영과 관련된 대학 자체의 역량과 경험 또한 교양교육 운영의 방식을 좌우하는 중요한 객관적 조건이 된다.
30년간의 역사가 보여주는 다양한 경험 중에서 교양선택 과목의 수가 30년 동안 최대 열 배에 가깝게 증가하였다는 점, 독립적 기구로서의 교양학부가 존폐를 거듭한다는 점, 교양학부가 없어진 상황에서 각 학과의 교양과목 운영권이 확대되었다는 점, 교양교육의 영역구분이 점차 체계화되어왔다는 점, 교양과 전공의 공통분모가 되는 전공기초 학습의 영역의 위상 정립이 필요하였다는 점, 대학의 고유한 교육이념의 표현 방식으로서 교양필수의 영역이 활용되었다는 점, 전체 대학, 단대, 학과, 학생의 수준별로 교양과목에 대한 선택권이 서로 나뉘었으며 이들 간에 적절한 조화가 요구된다는 점, 교양과목의 계열별 균형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 등등의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하나의 원칙이나 이론에 따라 일괄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대학 교육에 관한 공리적, 기술적 논의만 무성할 뿐 대학 교육의 본질과 관련된 축적된 철학적 성찰이 부재한 형편이다(서보명, 2011: 10). 역사적 성찰은 더더욱 취약한 형편에 놓여있으며, 교양교육의 운영면의 발전과 혁신을 위해서는 각 학교의 고유한 역사적 경험에 대한 검토와 분석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이제, 향후 대학의 교양교육이 새롭게 당면하게 될 질문은 어떤 것이겠는가? 실용과 효율은 전세계적으로 대학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렸다고 평가된다(Washburn, 김주연 역, 2011). 물론 팬데믹과 4차 혁명이 가져온 전대미문의 새로운 상황에서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생존의 방안을 찾는 일은 더없이 중요한 과제이다. 그렇다면 이제 뉴노멀 시대의 교양교육은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뉴노멀의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가? 아마도 기술적, 방법적 부분에 있어서 오늘날 이때까지와는 전혀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컨대 ‘온라인의 상호작용을 구현하기 위한 교수법의 개발’과 같은 뉴노멀의 질문만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질문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유효하며, 그 질문에 들어있는 교육적 함의를 더욱 충실하게 탐색해 나감으로써 ‘과연 교양인은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길러질 수 있는가’라는 교양교육의 항구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 시대의 소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Notes

1) 임수민(외)에 따르면 교양교육에 관한 기존의 연구물들은 특정 분야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으며, 전 학문영역을 고르게 포괄하는 균형을 취할 필요성이 있다(2020: 26). 여기서는 주로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의 연구 대상 강좌간의 균형을 지적하지만, 최신 교수전략이나 최신 교육과정이론 등과 구분되는 역사학적 접근 역시 학문적 균형을 위하여 반드시 요청된다. 특히 요람 등의 관련 자료가 충실하게 관리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개별 대학의 자료들을 취합하고 정리하는 연구자들의 노력이 절실하다. 이것은 다소 번다하더라도 세부사항을 충실하게 기록해야 하는 기초 연구이다. 또한, 많은 대학에서 교양교육의 역사가 반 세기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관련 당사자들의 사적 기록의 수집과 면담 등의 질적 연구도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2) 이하 본문에서는 각각을 순서대로 경북대, 대가대, 영남대로 표기한다.

3) 본 연구자는 3개 대학 가운데 1개 대학의 교양교육과정을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고찰한 바 있으며, 그 결과를 보다 확대하고 보완하려는 취지에서 본 연구가 이루어졌다. 1개 대학의 교양교육과정의 변천만으로는 포착되지 않았던 특징들이 3개 대학의 조합을 통하여 더 분명하게 부각될 수 있다. 기존 연구 중에서 1950년대의 서울지역 3개 대학의 철학과의 설치 과정을 분석하고, 교양철학 교재를 비교한 박종린(2013)의 연구가 본고와 유사한 방향을 취한다. 다만, 박종린의 연구는 한 시기에 국한하여 특정 학과를 대상으로 삼은 반면에, 본 연구는 세 시기에 거쳐 교양교육과정 전반을 확인하고자 하므로 구체적인 방법론상의 유사점은 없다.

4) 1950년대의 자료로는 1957년 경북대 요람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5) 이 중에서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은 해당 분야의 몇몇 과목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을 것이나, 그 선택과목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사와세계사는 1965년의 인문과학계의 명칭을 바꾼 것이다.)

6) 인문/사회과학과 수학/자연과학은 각각에 속하는 여러 과목들로 다시 구분되는 것으로 보인다. 즉 1968년부터 교양교과서를 공통적으로 활용하였는데, 교양교과서에는 14종이 있었으며 물리, 화학, 생물 등의 교과서가 지나치게 수준이 높아서 개편이 필요하다는 등의 기록이 있다(같은 곳: 218).

7) 5.31 교육개혁 논의에는 교양학점의 하향 조정, 선택과목의 확대, 진로지도의 강화 등이 언급되어있다(같은 곳: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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