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양 여성학 수업에서 특권 다루기

Teaching with Intersectionality and Privilege in the Gender Studies Classroom

Article information

Korean J General Edu. 2020;14(6):97-115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20 December 31
doi : https://doi.org/10.46392/kjge.2020.14.6.97
정재원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mahapanya@khu.ac.kr
Professor, Kyunghee University
Received 2020 November 20; Revised 2020 November 30; Accepted 2020 December 17.

Abstract

초록

이 논문은 청년 세대 젠더 갈등 문제가 확산 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특권을 다루는 구체적인 교육 방법을 모색해 보고자 하였다. 여성 피해자, 남성 가해자라는 이분법적인 도식을 넘어서 다양한 억압체계와 젠더의 관계를 성찰하며, 복잡한 억압의 그물망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는 특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교수법을 탐색해 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차별과 특권에 대한 페미니스트 페다고지의 이론적 쟁점을 살펴보고, 수업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교육 모듈을 제시하였다. 교육 모듈은 3가지 주제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모듈은 교차성에 기반한 특권을 인식할 수 있도록 정체성을 탐색하는 과정이며, 두 번째 모듈은 특권을 가시화하기 위한 특권 걷기 실험을 진행하며, 세 번째 모듈은 성별화된 특권 목록을 작성해 보는 과정을 통해서 성인지 감수성을 향상시킨다. 본 연구는 청년 세대 젠더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성별 인식의 간극을 좁히고 타인에 대한 깊은 공감과 배려를 향상시킬 수 있는 교육방법에 대해서 탐색하였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Trans Abstract

Abstract

This paper aims to search for educational methods to deal with privileges as an alternative in Korean society, where the issue of youth gender conflict is spreading. Beyond the dichotomous scheme of female victims and male perpetrators, this paper considered various oppressive systems and gender relationships, and sought to explore some teaching methods that enhance the understanding of the privilege of self-awareness of one’s position in the complex web of oppression. To this end, the theoretical issues of feminist pedagogy on discrimination and privilege were examined, and the education modules applicable to the classroom were presented. The training module consisted of three theme: the first module is the process of exploring identity so that you can recognize privileges based on intersections. The second module conducts “privilege walking” experiments in order to help students visualize privileges, and the third module heightens gender sensitivity by illustrating a list of gender-based privileges. This study is meaningful in that it explored educational methods that foster a deeper empathy and consideration for others in the face of serious gender conflicts experienced among the younger generation.

1. 서론

대학에서 여성학 강의가 처음으로 개설된 시기는 1960년대 후반 미국이다. 그 시기는 인권운동과 반전운동, 여성운동 등 사회변혁 운동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였다. 신좌파운동(New Left Movement)이 사회전반의 변혁을 위한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진보적인 여학생들과 학자들을 중심으로 기존의 학문에서 여성의 경험이 배제되었다는 점을 인지하면서 사회변혁뿐만 아니라 학문 영역에서의 변화를 요구하게 되었다. 여성의 경험을 분석할 수 있는 커리큘럼과 교수법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많은 대학에서 여성학 강좌를 개설하게 되는 기폭제가 되었다(김승경⋅이나영, 2006: 42). 이와 함께 당시 미국 대학에서 구성원의 ‘다양성(diversity)’ 정책이 전개되기 시작하면서 이를 반영할 수 있는 여성학 강좌가 개설되기 시작하였다. 즉, 당시 백인 남성이 지배하는 대학에서 여성, 흑인, 소수인종, 경제적 약자 등에 대해 대학 문호를 개방하는 소수자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이 전개되면서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는 새로운 커리큘럼이 시급하게 요청된 것이다.

Maher & Tetreault(2011)는 미시건 대학교 사례를 통해서 미국 대학의 다양성 정책은 크게 다섯 단계로 전개 되어 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1단계는 백인 남성이 아카데미를 지배하는 단계로서 교원 중에 여성이 거의 없는 시기를 의미한다. 2단계는 1971년 미시건 대학교 여교수들이 연방정부에 성차별 고소장을 제출한 것을 계기로 대학 여성위원회가 설립되었고 소수자 우대 정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되는 시기이다. 3단계는 대학의 규범과 문화에 도전하는 시기로서, 여성학 및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면서 페미니즘이 새로운 이론과 지식을 생산하기 위한 학문적 작업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시기이다. 4단계는 다양성과 우수성을 대학의 제도적 사명으로 연결하는 시기로서, 1980년대 후반에는 대학이 다양성을 지향하지 않으면 훌륭한 대학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 되면서 여성⋅유색인종 교원이 증가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5단계는 다양성 담론의 중심에 있는 특권과 자격에 대한 논쟁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시작한 시기로서 구성원들에게 보이지 않는 특권에 대한 자각을 하도록 요청되며, 취약한 집단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이다(Frances A. Maher & Mary Kay Thompson Tetreault, 2011: 283-292). 즉, 미국 대학의 다양성 정책이 1단계에서 5단계까지 전개되는 과정은 대학 구성원의 다양성, 즉 성별, 인종, 민족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이 증가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커리큘럼의 변화와 다양성을 대학 혁신의 주요한 동력으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의 방향은 동질적인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만 있을 때보다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이 함께 있을 때 교육적 효과가 더 높다는 판단에 기반한다. 대학 인적 구성이 다양해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문화에 대한 편견이 줄어들 수 있으며 상대로부터 배울 수 있는 자연스러운 교육적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다양성 확보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어 왔다(염철현, 2017: 24)1).

한국 대학 역시 학생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임진택 외(2015: 24-5)에 따르면, 한국은 대학 입학전형에서 학생 구성의 다양성을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추진되어 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즉, 하나는 개인 역량의 다양성 즉 개성을 강조하는 선발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배경의 다양성 즉 기회균형의 선발이다. 그 결과 점수 위주 선발 이외에 어학, 과학, 리더십, 예⋅체능 특기자 전형 등과 같은 특별 전형, 농어촌학생과 저소득층(국민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재외국민과 외국인, 특성화고교졸업자와 특성화고졸재직자, 장애인, 지역 인재 모집, 대학 독자적 기준에 따른 국가보훈대상자, 다자녀, 다문화가정, 조손가정 등 다양한 배경을 갖춘 학생을 선발하는 모집이 운영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학생들도 많아지면서 대학 구성원들은 다양한 국적과 문화적 특성을 지닌 학생들로 구성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면서 중요하게 점검해보아야 하는 것은 대학 구성원의 다양성 그 자체가 자동적으로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학습할 수 있는 교육적 기회로 연결될 수 있느냐이다. 최근 언론에 소개된 대학 내 갈등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현실의 심각성을 짐작해볼 수 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계단 강의실 변경을 요청하였지만 비장애인 학생들의 반대로 무산된 사건2),, 성소수자 신입생 환영 현수막이 훼손된 사건3),, 홍콩시위를 놓고 한국 대학생들과 중국 유학생이 충돌하는 사건4)이 있었다. 이러한 사례는 대학의 다양성 의제가 구성원을 다양화하는 것을 넘어서 차별에 대한 민감성을 높여야 하는 과제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예전과 다르게 대학 구성원이 다양해진다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며, 구성원들간의 긴장도 역시 높아질 수 있다. 다양성이 긍정적인 교육적 효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다양한 차별에 대해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고, 혐오가 아닌 상호 존중과 공존을 위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어떠한 교육과 제도적 대응이 필요한지 시급히 점검해야 할 때이다.

대학의 구성원들이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의식이 높다면 대학 공동체는 연대와 상호 존중의 공간이 아니라 갈등과 긴장이 높아지고 타자에 대한 조롱과 혐오 정서가 확산 되는 공간이 될 위험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윤서⋅안윤정(2016)은 서울에 있는 대학생 총 391명의 성찰보고서 분석을 통해서 대학생들의 잠재적 차별대상과 편견의식을 분석한 바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내재된 일상적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차별대상으로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가정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태도, 성차별, 외모차별, 학벌주의, 장애인, 노숙자, 노인,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의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사회에서 대학생들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차별의식이 증폭된다면 더 큰 갈등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학생들의 차별의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청년 세대의 성별 간 인식 격차는 ‘젠더갈등’ 으로 진단될 정도로 매우 심각한 사회 현상이 되고 있다.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과 미투운동으로 촉발된 페미니즘의 확산은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로 이어졌고, 페미니즘 관련 서적과 교육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로 이어지는 일명 ‘페미니즘 리부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반페미니즘 정서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청년 남성들의 반페미니즘 정서는 “20대 남성의 피해의식과 분노”, “20대 남성의 마이너리티 자의식 탄생”(천관율⋅정한울, 2019)으로 진단되기도 한다. ‘젠더갈등’을 어떻게 볼 것이냐를 둘러싸고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많은 청년 여성들이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수용하고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고 있는 반면 많은 청년 남성들을 중심으로 반페미니즘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연희원(2018: 175)은 “현재 대학가는 반페미니즘의 정서가 거센 동시에 적지 않은 청년 여성들과 소수의 청년 남성들이 온라인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며 사회 전반의 성차별적 의식의 변화를 주도하는 젠더 담론 격돌의 장”이 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청년세대 내에서 젠더 이슈를 둘러싼 성별 인식의 격차가 크다는 것은 청년 세대 남성과 여성에게 제대로 된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 격차 해소를 위한 교육이 활성화 되어야 하며, 남녀 간의 인식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교수법에 대한 연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마경희 외, 2020: 엄혜진, 2019).

본 논문은 청년 세대 젠더 갈등 문제가 확산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교양교육으로서 여성학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교양교육으로서의 여성학은 차이와 차별에 대한 감수성과 평등에 대한 사유체계와 교수법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민해온 역사를 갖고 있다. 여성학은 여성문제만이 아니라 다양한 억압 체계를 인식할 수 있는 인식론과 성별 권력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여 왔다. 90년대 흑인 페미니스트들에 의해서 제기된 여성 내부에 존재하는 차이와 갈등은 주요한 논쟁이 되기 시작하였고, ‘교차성(intersectionality)’ 개념의 등장으로 차별에 대한 새로운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즉, 단일한 억압을 상정할 수 없으며 우리 모두는 다양한 억압의 그물망 속에서 위치된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여성이라고 모두 피해자가 아니며, 남성이라고 모두 가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성, 젠더, 인종, 장애, 성적 지향 등 다양한 범주가 교차 되는 지점에서 차별을 성찰하고 자각해야 한다(정재원⋅이은아, 2017: 240-241). 특권이론은 바로 차별을 발생시키는 다양한 범주들이 교차하는 구조에서 우리 모두는 차별을 받기도 하지만 특권을 갖기도 한다는 인식에서 시작되었다. 부당하게 차별을 받는 집단이 있다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특권을 얻는 집단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회 정의를 지향하는 연구에서는 차별의 피해자에 주목하여 왔고 특권에 대해서는 분석하지 않았다. 차별을 둘러싼 억압과 특권의 관계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Kimmel and Ferber(2017)는 특권은 우리가 흔히 정체성으로 부르는 성별, 인종, 섹슈얼리티, 연령 등이 다층적으로 작용하는 많은 범주 속에서 인식되는 것이며, 특권에 대한 자각은 자신의 재능과 성실한 노력 이외의 것으로 이득을 얻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아닌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Michael S. Kimmel and Abby L. Ferber, 2017: ix-xiv). 특권은 교육현장에서 차별의 문제를 새롭게 다룰 수 있는 교수법으로 부상하고 있다.

본 연구는 여성 피해자, 남성 가해자라는 도식을 넘어서 다양한 억압체계와 젠더의 관계를 성찰하며, 복잡한 억압의 그물망 속에서 자신이 위치성을 자각하는 특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교수법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는 사회적 갈등을 넘어 타인과 함께 협력하고 공존하는 대학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차별뿐만 아니라 특권을 점검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분석하고자 한다. 여성학 교양수업에 참여하는 남녀 대학생들이 인식하는 다양한 정체성과 차별, 특권에 대한 인식 그리고 성인지 관점에서 분석하는 특권을 통해서 차별에 대한 깊은 성찰과 특권에 대한 책임의식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차별과 특권에 대한 페미니스트 페다고지의 이론적 쟁점을 살펴보고, 수업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교육 모듈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 연구를 통해서 대학의 교양교육으로서 여성학 수업에서 차별뿐만 아니라 특권을 함께 분석할 수 있는 교수법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서 남녀 간의 인식의 간극을 좁히고 타인에 대한 깊은 공감과 배려를 향상시킬 수 있는 교육 방향을 제시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2. 차별과 특권에 대한 페미니스트 페다고지

2.1 차별에 대한 도전

페미니스트 페다고지는 차별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되었다. 1960년대 시작된 페미니즘 제2의 물결5) 운동을 계기로 페미니스트 페다고지에 대한 고민과 탐색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여성운동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평등을 쟁취하고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하였다. 여성운동과 인권운동의 확산으로 1970년대 이후 대학에서 여성학 강좌가 증가하기 시작하였으며,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의식 고양 운동(consciousness raising)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여성의 의식고양 운동을 통해서 기존 교육철학과 커리큘럼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확산되었으며 대안적인 학습과정으로서 페미니스트 페다고지가 등장하게 되었다.

페미니스트 페다고지는 가장 오래된 차별로서 젠더 불평등의 문제를 교육적 차원에서 탐구하고 해결하려고 했다. 제도교육에서 여성이 배제되고, 주변화 되었다는 점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에서 더 나아가 교육의 주체와 대상 그리고 방법에 대해서도 전통적인 교육 패러다임을 넘어 대안적인 페다고지를 모색하였다.

여성의 의식고양(consciousness raising) 운동은 페미니스트 페다고지에 대한 본격적인 탐색을 시작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교육을 통하여 여성 스스로 자신의 차별적인 상황에 대해서 의식하게 되며, 자신의 차별 경험을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정치적 실천의 힘을 갖게 된다고 믿었다. 여성들의 힘기르기(empowerment)는 페미니스트 페다고지의 주요한 교육 목표로 설정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Freire를 선두로 하는 비평적 페다고지(Critical Pedagogy)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Freire는 의식화(consciousness raising) 혹은 해방교육(liberation education)의 선구자이다. 브라질의 문해교육을 통해서 민중들의 ‘억압에서의 해방’을 목적으로 삼았다. 민중의 삶과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의식화 시키는 일이 중요했다. Freire에게 ‘의식화’는 학습자가 잘못된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현실을 변혁시킬 수 있는 주체로 만든다는 점에서 대안적인 교육을 지향하는 핵심용어로 사용된다. 의식화는 전지전능한 교사가 학생을 대상으로 특정한 이념을 주입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기존 제도교육을 ‘은행예금식 교육’이라고 비판하고 대안으로 ‘문제제기식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즉, 교사가 모든 것을 아는 주체로서 가르치고, 학생들은 배우는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대화, 토론, 소통의 과정에서 민중들은 억압적인 현실 상황을 의식하게 되고 주체적인 인식을 획득하게 된다고 보았다(정재원⋅이은아, 2017: 233-234).

여성들이 경험하는 차별과 고통을 여성 스스로가 자각하고 성차별적인 현실을 문제제기 하는 주체적인 여성을 교육시키고자 했던 페미니스트들에게 Freire는 성차별에 도전하는 페미니스트 페다고지를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이론적 출발점이 되었다. 배유경은 Freire의 페다고지는 상당 부분 페미니즘과 유사점을 갖고 있다고 분석하는데 구체적으로 “교육의 최종 목표로 ‘인간화(humanization)’를 강조한 점, 학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과 행동을 강조한 점, 그리고 의식화되는 과정에서 개인의 삶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하고, 대화를 통해 비판의식을 일깨우는 점”이라고 분석한다(배유경, 2018: 354). 즉, 페미니스트들은 Freire의 사상을 통해서 변혁운동에 있어서 의식 고양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게 되었다. 페미니스트 페다고지의 대표적인 이론가 Bell Hooks(1994) 역시 Freire의 사상에 깊이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 프레이리는 내게 언어를 알려준 사상가입니다. 그를 알게 된 뒤 저항에서의 정체성 구조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프레이리의 말 중에 내게 혁명을 일으키는 주문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주체가 되기 위한 투쟁에 지배 대상으로서는 참여할 수 없다.”는 구절입니다. 이 말은 잠긴 문처럼 정말 난해해서 나는 내 안에서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찾으려 애를 썼지요. 그 과정에서 나는 개혁적인 비판적 사고의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프레이리는 내 정신과 마음에서 의욕을 북돋우는 교사로 자리 잡았습니다(Bell Hooks, 윤은진 역, 2008: 60-61).

페미니스트 페다고지는 비평적 페다고지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지만 동시에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면서 독자적인 교육론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즉, Freire를 선두로 하는 비평적 페다고지는 교육을 계급투쟁의 맥락에서만 바라보며, 교육의 목표가 ‘인간화(humanization)’이지만 그 개념이 모호하며 남성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받게 된다. 계급뿐만 아니라 성별 등과 같은 사회적 위치에 따라서 세상을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분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배유경, 2018: 355). 남성과 다른 여성의 욕구와 경험에 주목하게 되었고 이에 기반한 새로운 교육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으로 Belenky(1985)는 여성의 지식이 남성과 다르게 구성된다는 입장에 기반하여 여성 의식발달의 특수성을 설명하였다. 크게 다섯 단계의 변화 과정을 통해서 자기 성찰적인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그 다섯 단계는 바로 1. 침묵 2. 각인된 앎의 방식 3. 주관적 앎의 방식 4. 절차적 앎의 방식 5. 구성적 앎의 방식이다. 여성이 외부의 권위에 복종하는 단계로부터 주어진 인식의 방식을 거부하고, 지식을 얻고 소통하며, 최종적으로 모든 지식을 맥락적이고 연결된 것으로 보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달론적 접근은 여성의 지식은 남성과 다르게 구성된다는 본질주의적 입장에 근거하고 있다(정민승, 2004: 190-191 재인용). 남성과 다른 여성만의 인지발달 과정이 있다는 인식은 여성 학습자들이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현장에서 배제되거나 차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성에게 적합한 교육 방법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여성들의 경험에 대한 자각 그리고 그 경험이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며 역사적인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기 위해서 대화와 참여, 토론이 강조되었다.

2.2 다층적 억압과 교차성

페미니스트 페다고지는 전통적인 교육이 남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성이 주변화되고 배제되었다는 비판으로 시작되었다. 여성의 경험을 분석 대상으로 인식하였으며, 남성 중심의 교육제도에서 차별받아 온 여성들을 위한 교육방법에 대한 모색으로 이어졌다. 1960년대 시작된 여성의 의식 고양 운동은 페미니스트 페다고지가 여성을 위한 여성교육이라는 인식을 강화시켰다. 남성과 다른 여성 경험과 여성 의식의 특수성에 주목하기 시작하였으며 여성의 목소리(voice)와 경험(experience)은 페미니스트 이론과 페다고지를 형성하는 핵심 토대가 되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이러한 인식에 도전하는 문제의식이 등장하였다. 여성들 간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다. 여성들이 경험하는 차별이 과연 동일한가와 관련하여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흑인 페미니스트를 중심으로 흑인 여성이 겪는 차별의 특수한 경험을 설명하면서 기존의 여성 경험이라고 설명되었던 것은 사실 백인 중간계급 여성의 경험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페미니즘 제2의 물결을 주도했던 미국의 여성운동은 백인 중간계급 페미니스트들이었으며 자신들의 경험을 모든 여성의 경험으로 보편화하여 인식했다는 흑인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Collins(1990)는 그의 저서 <흑인페미니즘 사상>을 통해서 기존의 페미니즘이 흑인여성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흑인여성의 비가시성을 결과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 미국의 수많은 백인 페미니스트 학자는 대체로 흑인여성을 동료로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흑인여성의 사상이 역사적으로 억압되었다는 점은 페미니즘 이론에도 뚜렷한 영향을 끼쳤다. 누락은 억압의 한 패턴이다. 전체 여성 집단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더라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이론의 주창자들이 백인, 중산층, 서구 출신이라는 사실로 인해 커다란 한계를 지닌다(Patricia Hill Collins, 박미선⋅주해연 역 2009: 29).

Collins는 미국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대다수의 미국 흑인여성이 경험하고 있는 억압의 구조와 연결된다고 보았다.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국적/민족, 종족, 젠더 억압의 긴밀한 통합의 결과로 아프리카계 후손인 여성들이 미국 흑인 가정과 공동체 내부에서 서로 관계를 맺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즉, 미국 흑인 여성의 경험을 통해서, 인종, 젠더, 계급, 섹슈얼리티, 민족은 억압의 형태로 함께 얽혀서 미국 특유의 지배 매트릭스를 생산한다고 보았다.

  • 특정한 지배 매트릭스를 단일한 권력체계의 틀로 보거나, 교차하는 억압의 틀로 보든 간에, 그것은 서로 긴밀히 연결된 권력의 네 가지 영역을 통해 조직화 된다. 네 가지 영역이란 권력의 구조적, 훈육적, 헤게모니적, 대인관계적 영역이다. 각 영역은 특정한 목적이 있다. 구조적 영역은 억압을 조직하고, 훈육적 영역은 그 억압을 관리한다. 헤게모니적 영역은 억압을 정당화하며, 대인관계적 영역은 매일매일의 체험과 개개인의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Patricia Hill Collins, 박미선⋅주해연 역 2009: 449).

흑인여성들이 경험하는 것이 단일하지 않은 것은 바로 ‘지배 매트릭스’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인식 그리고 다양한 지배 매트릭스가 교차하는 과정을 통해서 억압의 틀이 구성된다는 인식은 Collins에 의해 “흑인 페미니즘 사상”으로 명명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페미니즘의 부상으로 남성과 여성의 젠더 불평등뿐만 아니라 여성 간 차이를 구성하는 나이, 인종, 종족, 국가, 계급, 성적 지향성, 장애 여부 등의 사회적 범주들이 어떻게 여성들의 현실을 다르게 만드는지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Crenshaw가 흑인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의 특수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교차성’(intersectionality) 개념은 기존과 다른 새로운 관점에서 여성의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개념이 되었다. 미국의 페미니스트이자 법학 교수인 Crenshaw가 교차성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1989년 흑인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차별의 특수한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당시 제너럴모터스에서 정리해고된 흑인 여성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차별금지법 위반 소송을 제기한 사건에서 Crenshaw는 법률이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별개로 다룬다고 비판하면서 차별받는 사람들의 처지를 교차로에 서 있는 상황에 비유하며 교차성 용어를 사용했다고 한다(정진희, 2016: 38). 이후 Crenshaw(1991)는 논문을 통해서 교차성 개념을 소개하게 되는데, 유색인종 여성이 겪는 폭력의 경험은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가 교차한 산물이라고 주장하였다.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이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서 설명하지 못함으로써, 인종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진영에서는 성차별을 재생산하게 되고, 성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진영에서는 인종차별을 재생산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흑인 여성의 경험을 통해서 흑인 여성이 사회관계 속에서 차지하는 다중적 정체성과 다층적 입장을 분명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Crenshaw, 1991: 1241-1299).

‘교차성’(intersectionality) 개념은 흑인 여성의 경험을 구성하는 구조적 요인으로서 젠더와 계급, 인종이 교차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것으로 출발하였지만 흑인 여성의 경험을 넘어서 다양한 차별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1990년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교차성 이론은 여러 억압의 동시성과 교차성에 주목하였다. 계급, 젠더, 인종, 섹슈얼리티, 나이, 장애유무 등이 특정한 억압구조를 구성하며 이러한 여러 체계가 맞물려 사회조직을 구성한다고 본다. 즉, 각 항목이 특수한 하나의 억압구조를 구성하며 이러한 각 억압구조가 서로 맞물려 작동하며 종종 서로를 통해 강화되면서 사회적 억압의 전체 체계를 특정하게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하게 맞물려 서로를 통해서 강화되는 여러 억압구조는 개인과 집단의 삶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교차한다. 교차성 이론은 계급, 젠더, 인종, 섹슈얼리티 등 억압체계들 간의 위계를 설정하는 대신 이 억압체계들이 서로 맞물리며 서로를 강화하는 방식에 주목한다(박미선, 2014: 112).

교차성 이론의 등장으로 페미니스트 페다고지의 핵심 이슈는 달라지게 되었다. 한 개인이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젠더 정체성을 어떻게 습득해 가는가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서 젠더가 인종, 섹슈얼리티, 계급, 장애 등과 같은 다른 사회적 범주들과 교차하면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정체성을 분석하기 시작하였다. 여성이라는 단일한 범주는 도전을 받으면서 여성들 간 인종, 계급 차이에 대한 몰이해가 기존의 차별구조와 억압체계를 공고화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페미니스트 페다고지는 계급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비장애인중심주의, 이성애중심주의, 가부장제에 도전함으로써 인간을 ‘여성’ 혹은 ‘남성’으로만 환원하는 문제를 경계하고 있다.

다양한 억압의 동시성과 교차성에 주목하면서 이와 관련된 연구가 축적되자 특권 이론이 등장하게 되었다. 복합적인 억압의 체계에서 개개인들은 억압을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특권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이다. 다양한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고 자신이 지녔을지 모르는 특권을 점검하는 것은 2000년대 들어서 차별에 도전하는 새로운 교육법으로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Karen Silverman, 2013: Priscilla Dass-Brailsford, 2007: Ann Curry-Stevens, 2007).

2.3 성인지 관점에서 본 특권

오랫동안 차별에 대한 교육은 차별의 대상이 되는 주변부 집단의 이슈에 집중되어 왔다. 즉, 젠더,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에 기반한 차별의 피해 경험을 가시화 하고, 이를 둘러싼 쟁점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차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억압의 구조가 단일하지 않으며 다층적이고 교차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고, 억압/피억압이라는 이원론적인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새로운 교수법을 탐색하기 시작하였다. 차별을 만들어내는 구조는 매우 복잡하며, 구조적인 측면과 내면적인 측면이 함께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차별을 발생시키는 다양한 범주들이 교차하는 구조에서 차별을 받기도 하지만 특권을 갖기도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차별이 발생하여 부당하게 억압을 받는 집단이 발생한다는 것은 그 차별로 인해서 동시에 특권을 갖게 되는 집단도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특권이란 무엇인가? Sensoy and DiAngelo (2012)는 ‘특권’이라는 말이 운과 우연에 따른 긍정적 결과를 암시하는 의미가 아니라, 구조적 위계를 설명하는 용어라고 설명한다.

  • 일부 사람이, 다른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이익, 보호를 희생시키고 그 이상의 권리와 이익, 보호를 누림을 가리킨다. 이런 맥락에서는 특권이 행운, 운, 우연의 산물이 아니고 구조적 이익의 산물이다. 지배집단 구성원(남성, 백인, 이성애자, 건강인, 기독교도, 상류층)은 자동으로 특권을 받는다. 지배집단이 권력이 있는 지위를 차지하기 때문에 그 집단 구성원들은 사회적⋅제도적으로 유리해진다(Ozlem Sensoy and Robin DiAngelo, 홍한별 역 2016: 116).

특권이라는 것은 일부 특권층이 향유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주어진 사회 구조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동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특권에 대해 주목하지 못한 것은 주어진 조건이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럽다는 의식 그리고 특권과 차별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 결과이다. 김지혜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에서 특권의 비가시성에 대해서 “일상적으로 누리는 이런 특권은 대개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조건이라서 많은 경우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이며, “특권은 ‘가진 자의 여유’로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라고 설명한다(김지혜, 2019: 28). 특권을 발견하는 순간은 자신에게 전혀 불편함이 없는 구조물이나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될 때6)라는 것이다. 특권은 운이 아니라 지배집단 구성원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이러한 과정은 문화 안에서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체화되기 때문에 특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의식하기 어렵다. 마치 물고기가 물살이 흐르는 방향으로 헤엄칠 때에는 거의 아무 힘을 들이지 않고도 헤엄칠 수 있지만 물살을 거슬러 헤엄칠 때에는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치와 같다. 특권을 갖는다는 것은 이러한 강력한 물살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밀어 주는 것과 같다.

Kimmel은 미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종차별이나 젠더 불평등 이슈는 과거의 것이며 이제는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 사회라고 믿고 있는 현실에서 특권을 인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차별을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좀 더 개인화되고 개별화되는 과정으로 차별의 문제를 인식하기 때문에, 차별은 소수의 나쁜 사람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라 믿는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구조적 불평등을 재생산 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불평등을 발생시키는 역동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특권은 더욱 비가시화 된다. 특권이 좀 더 가시화 될 필요가 있는 이유는 특권에 대한 자각은 죄책감을 넘어서 정치화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 장애, 종교 등의 다양한 범주에 의한 차별과 특권에 대한 자각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에 저항하는 집단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Michael S. Kimmel, 2017: 1-12).

서구사회에서 특권을 개인 태도의 문제가 아닌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을 처음 제기한 학자는 백인 페미니스트 McIntosh이다. McIntosh는 1989년 “백인 특권과 남성 특권(White Privilege and Male Privilege)”이라는 논문을 통해서 차별을 철폐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하고자 한다면 특권을 둘러싼 침묵과 부정 그리고 비가시성에 대해서 밝히고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논문에서 McIntosh는 자신이 백인으로서 학교 교육을 통해서 인종차별의 부당함에 대해서는 배웠지만 백인 특권을 인정하지 않고 보지 않도록 배웠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이 매일 일상에서 경험하고 있는 백인 특권이 무엇이었는지 검토하고 46개의 목록을 만들었다. 자신이 살고 싶은 지역으로 이사를 할 수 있다거나, 미용실에서 자신의 머리를 다룰 수 있는 미용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거나, 자신의 인종 집단을 대변해 달라는 부탁을 받지 않거나, 백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그림책, 인형 등을 쉽게 구입할 수 있거나, 학대를 당할 두려움 없이 공공 숙소를 이용할 수 있는 등 다양한 사례를 들어서 이것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들은 쉽게 얻을 수 없는 “백인 특권의 배낭”이라고 불렀다.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경험의 조건들을 특권으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팽배해 있는 능력주의 신화를 깨트리기 위해서이다. 개인의 노력으로 성취하는 것과 시스템적으로 부여된 특권을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특권은 서로 연결된 모든 억압에 대한 인식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차별은 그것을 유지하는 시스템과 함께 그것과 관련된 내적인 태도를 통해서 유지된다. 즉, 미국에서 많은 백인 학생들은 인종차별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소수의 비열한 개인의 행동만 바꾸면 인종차별주의는 사라진다고 믿는데 이것은 백인 우위에 대한 망각이라고 설명한다. 특권에 대한 의식을 고양시키게 된다면 차별을 유지하는 시스템을 약화시키기 위한 행동으로 연결될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권력 시스템은 재구성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Peggy McIntosh, 2017: 28-40).

McIntosh에 의해 제기된 특권 의제는 교육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특권 페다고지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지고 있다. van Gorder는 북미와 유럽의 고등교육 기관들은 사회정의를 함양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에서 그것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 이유는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특권층이 특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처해 있는 곤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정의가 체계적으로 작동되는 것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Freire의 억압받은 자들을 위한 페다고지에서 의식화가 중요한 것처럼 이제 교육자들은 특권을 가진 학습자들이 자신의 위치를 성찰할 수 있도록 의식화를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Andrew Christian van Gorder, 2007: 8-32). Curry-Stevens는 좀 더 분명한 어조로 특권층을 위한 페다고지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우리들은 때로는 억압을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특권을 갖기도 한다는 것, 즉, 다양한 억압의 축들이 작동되는 삶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데 이것을 ‘특권의 보편적 구조’(universal construction of privilege)라고 한다. 이러한 진실은 특권을 가진 자들을 위한 페다고지라는 혁신적인 교육모델을 기존 교육에 통합해야 하는 이유이며, 이들이 ‘신념이 흔들리는 과정’(confidence-shaking process)을 교육을 통해서 경험하게 된다면 그들은 자신의 특권에 대해서 깊은 자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각이 바로 새로운 행동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변화를 위해서는 사회정의를 증진 시키기 위한 신념을 구축하는(confidence building)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한다(Curry-Stevens, 2007: 33-58).

특권 연구는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성찰과 함께 성인지 관점에서 특권과 차별의 문제를 점검하고 대안적인 관점을 제시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Deutsch(2015)는 “남성 특권 목록”을 작성한 바 있다. “남성들은 여성보다 구직 경쟁에서 여성지원자와 경쟁할 때 고용될 가능성이 더 높다거나, 성희롱에 훨씬 덜 노출되고,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폭력을 경험할 확률이 낮으며, 권력이 많은 자리일수록 남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등 남성이기 때문에 받게 되는 특권의 목록을 자세히 분석하였다(김미덕, 2017: 144에서 재인용). 김미덕은 한국 사회에서 고학력 여성 연구자의 삶에서 나타나는 특권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서 학계와 일상생활에서 특권은 남성 중심의 조직 위계와 학벌주의, 가부장제에 의한 성차별적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서 작동되는 것임을 분석하고 있다. 젠더 위계를 둘러싼 특권 구조에서 남성은 자신의 구조화된 특권을 인식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김미덕, 2017: 137-169).

다양한 차이와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강조하는 페미니스트 페다고지는 특권 문제를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Davis는 “다양성” 이슈가 증가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은 탈식민화된 교육을 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여성학 수업에서 인종, 젠더, 문화가 교차하는 것을 분석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탈식민적인 학습 과정이 가능한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으며, Davis는 학생들을 수업에 참여시키기 위한 “비미러링 페다고지”(pedagogy of unmirroring)의 가능성을 탐색한다(Dawn Rae Davis, 2010: 136-162). 교육현장에서 교수자와 학습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의 교차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탈식민화 과정일 수 있음을 제안한다.

Kimmel and Coston은 주변화된 남성성을 탐구함으로써 특권의 교차성을 분석하고 있다. 이상적인 남성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은 이러한 젠더 규범에 적합하지 않은 주변화된 남성들을 억압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장애인 남성, 게이 남성, 노동 계급 남성의 경우 전통적인 이상적인 남성성에서 벗어난 집단이다. 젠더는 장애, 성정체성, 계층 변수와 교차되면서 다양한 차별의 양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교차성을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서 남성 젠더 특권을 줄이고, 남성성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보았다(Michael S. Kimmel and Bethany M. Coston, 2017: 161-177). 성인지 관점에서 특권을 본다는 것은 성차별의 문제를 여성 피해자, 남성 가해자로 보는 이분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차별에 민감하면서 젠더 렌즈를 통해서 특권을 이해하고 해체하는 관점을 의미한다. 여성과 남성이 동일한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인종⋅계급⋅연령⋅장애⋅성적 정체성 등에 따라서 다양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성차별은 독립적으로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차별과 분리되지 않고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며 작동된다.

3. 특권 이해와 해체

이 장에서는 여성학 교양수업에서 특권의 문제를 어떻게 수업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교수법을 탐색해보고자 한다7). 여성학 수업 사례는 2020년 2학기에 운영되었던 수업을 분석하였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고, 화상회의 프로그램 ZOOM을 이용한 실시간 강의로 운영되었다. 수강생은 여학생 55명, 남학생 10명으로 총 65명의 학생이 수강하였다.

여성학 교양수업은 페미니즘의 역사와 페미니즘 관련 기본 개념과 이론을 학습하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와 함께 매시간 핵심이슈 다루기 코너를 통해서 최근 주요하게 쟁점이 되고 있는 이슈를 중심으로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과 입장들을 공유하는 토론 중심의 수업이다. 본 연구에서 분석된 사례는 특권과 차별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진행된 사례만 중점적으로 분석하였다.

여성학 교양수업에서 특권 이해와 해체는 크게 3단계로 진행되었다. 1단계는 페미니즘 이론 전개 과정에서 교차성 개념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고, 이 개념을 통해서 자신의 삶에서 작동되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차별과 특권을 동시에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2단계는 특권 걷기 체험을 통해서 특권을 가시화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이 과정을 통해서 차별과 특권이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확인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이와 함께 차별과 특권에 대한 윤리적 책임은 무엇인지 질문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3단계는 성별화된 특권 목록을 작성하는 과정을 통해서 한국사회에서 작동되는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성별에 따라 다르게 작동되는 규범, 제도, 문화에 대해 분석한다.

3.1 교차성에 기반한 특권 인식

페미니스트 페다고지에서 교차성 개념은 단일한 범주로서 여성을 상정할 수 없으며 여성들이 경험하는 차별의 보편성을 전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차별은 인종, 계급, 성적 지향, 민족 등의 범주를 중심으로 작동되는 차별과 연결되어 있으며 여성들의 삶의 경험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보편적이고 단일한 여성억압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여성 내부에 차이와 갈등이 존재한다는 인식은 남성은 가해자이고 여성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패러다임을 넘어설 수 있도록 한다. 여성으로 억압받지만 백인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을 수 있으며, 남성이라 특권을 가질 수 있지만 장애인으로 억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교차성 개념의 핵심은 다른 구조적 억압체계와의 교차로서 젠더를 인식하는 것이다. 학습자는 단일한 정체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다양한 집합적 정체성을 가진 존재이며, 분석의 핵심은 다양한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서 개인과 구조가 어떻게 체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인식하는 것이다.

교육현장에서 교차성 개념을 적용하는 방법은 학습자의 개인적 정체성을 탐색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Worell and Remer(2003)는 개인적⋅사회적 정체성 발달 과정을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각 개인의 정체성은 집단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으며 다양한 사회적 범주에서 자신의 위치를 기술하고 확인할 수 있다. 성, 교육수준, 성적 취향, 나이, 국적, 인종, 사회계층적 지위, 제1언어, 신체적 능력, 시민권 지위 등의 범주들에서 각각은 상대적으로 사회의 유리하거나(특권) 불리한(억압) 자리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Worell and Remer는 미국문화에서 특권적인 위치에 있는 사례와 차별적인 위치에 있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즉, “당신이 자신을 남자, 미국인, 백인, 중간계층, 이성애, 영어 사용, 기독교,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 큰 키, 근육질, 강건함이라고 정의한다면, 당신은 ‘특권적 자리’에 있다는 것을 기술한 것이다. 다른 한편 당신이 자신을 여자, 검은 피부, 아랍인, 최근에 이민 옴, 이슬람교, 작은 키, 과체중이며 나이가 많다고 기술한다면, 당신은 미국사회에서 차별과 불이익을 경험하게 되는 일반적 특징들 중 일부를 기술한 것”으로 설명하면서 특권적인 사회적 위치와 가치 이하인 사회적 위치를 동시에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Judith Worell and Pamela Remer, 김민예숙⋅강김문순 역, 2004: 66-75). 이들은 특권과 억압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좀 더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그림 1]을 소개하고 있는데 수업에서 학생들은 이 도구를 활용하여 자신의 정체성들을 섬세하게 살펴볼 수 있으며 자신의 삶의 경험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분석해 볼 수 있다.

[그림 1]

특권과 차별의 상호작용하는 축

출처: Judith Worell and Pamela Remer(2003), 김민예숙⋅강김문순 역, 2004: 68

Worell and Remer가 소개하고 있는 특권과 차별의 상호작용하는 축은 미국문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한국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학생들은 자신의 특권과 차별 정체성을 찾아보는 개별보고서를 제출하기 전에 수업시간에 관련 영상을 보고 팀별 소모둠 활동을 통해서 함께 분류해보는 훈련을 받는다. 그 이후 학생들은 개별 과제를 통해서 자신의 삶 속에서 작동되는 특권과 차별의 축을 찾아보고 분석한다.

수업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인식하는 자신의 특권과 차별은 <표 2>에서 살펴볼 수 있다. 대학생들이 인식하는 특권목록 중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경제력이었다. 중상층의 경제력을 갖춘 부모님 덕분에 등록금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며, 용돈을 벌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가 없다는 학생이 많았다. 이와 함께 어학연수를 다녀오거나 골프, 요가,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경험하였다는 것 자체가 특권이라고 인식한다. 이와 함께 학생들은 재수 혹은 삼수를 해서라도 유명 사립대학에 입학하는 것 자체가 특권이 될수 있다고 보았다. 학벌위계주의 사회에서 학벌의 의미에 대해서 분석하는 학생이 많았다. 서울에 거주하거나 강남3구, 대치동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거주지가 특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보았으며, ‘정상가족’으로 화목한 가족문화도 주요한 특권 요소로 꼽았다. 이 외에도 이성애자, 남성, 비장애, 외모, 20대, 해외 거주 경험 역시 다른 이들과 구분되는 특권의 요소로 분류하였다. 반면 남학생들은 성별 자체가 특권이라고 분류한 반면 여학생들은 여성이라는 위치는 한국사회에서 차별의 대표적인 요소가 된다고 보았다. 안전, 고용, 가족 내 관계 등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경험해야 하는 차별적 요소가 많다고 보고하였다. 이와 함께 중하위층으로 등록금 고민을 해야 하거나, 지방출신, 부모님의 이혼으로 한부모 가족이 된 경우, 자신의 성정체성이 동성애자이며 양성애자이기 때문에 경험하는 차별도 보고하였다. 또한 유럽이나 미국 여행 중 동양인이기 때문에 경험했던 인종차별 사례를 분석하기도 하였으며, 왼손잡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 남학생들은 군대를 가야 한다는 것이 남성에 대한 차별이라고 하고, 여학생들중 일부는 자신이 페미니스트로서 정체성을 밝힐 때 차별을 당했다고 보고하기도 하였다.

대학생이 인식하는 자신의 특권과 차별

특권 이해와 해체 학습 모듈

3.2 특권을 가시화하기

2000년대는 교차성 개념에 기반한 정체성 정치가 사회운동 전면에 부상한 시기였다. 포용성 정치와 연대가 주요한 가치로 등장하면서 기존 사회운동에서 배척되었던 흑인, 무슬림, 동성애자 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였으며, 정체성을 중심으로 차별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특권이론은 개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별적 태도를 교육현장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이자 교수법으로 주목받게 된다. 지배의 매트릭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이 제시되었다. 특권을 ‘점검’하는 것은 우리들이 의도하지 않지만 지배구조를 유지 시키거나 때로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특권 교육은 개인의 자기 성찰을 통해서 차별에 도전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개인들이 가져야 할 책임의식을 요구하게 된다.

미국 대학을 중심으로 대학생들의 차별 감수성을 증진시키는 교육의 하나로 ‘특권 걷기’(Privilege Walks)가 실시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특권을 개인적 차원의 행운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특권은 가시화 되지 않았다. 이러한 특권을 학습자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특권 걷기이다.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직선으로 서서 진행자의 질문을 듣게 된다. 학생들은 질문에 대해서 이익(특권)을 얻었으면 앞으로 한걸음 나아가게 되고, 어려움을 겪거나 차별에 직면했다면 한 걸음 뒤로 물러서게 된다. 많은 질문이 던져지게 되고 마지막에 교실의 가장 앞에 있는 학생은 뒤에 있는 학생보다 더 많은 특권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8).

이러한 특권 걷기 활동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Silverman은 특권 걷기 워크숍을 통해서 특권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며, 특권이라는 것이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행운이 아니라는 것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와 함께 특권의 요소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덕적 평가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것 그 자체가 불공평하거나 부당하다고 평가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특권 걷기 활동이 특권을 가진 자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으로 악용 되어서는 안된다. 특권에 대한 자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일부에서는 다른 학생들보다 더 많은 특권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공격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는 사실을 소개하면서 특권 걷기의 의미가 악용되는 것에 대해 경계한다. 특권은 도덕적 평가의 영역이 아니며 사회 정의와 책임을 상기시키며, 모두에게 공정이란 무엇인지 성찰할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Karen Silverman, 2013: 19-22).

비대면 수업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특권 걷기는 어떻게 가능할까? 비대면 수업이라는 환경은 특권 걷기를 하는데 장애가 아닌 오히려 더욱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특권 걷기에서 사용되는 질문 목록은 매우 사적이며 공개적인 장소에서 밝히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참여자는 대단히 방어적이 될 수 있으며 솔직하게 반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대면 수업에서 최대한 익명성을 보장하는 환경을 만들게 된다면 특권 걷기 실험은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를 위해서 특권 걷기 실험을 실시하기 전에 모든 학생은 닉네임으로 이름을 변경하여 익명성을 보장하였으며, 비디오를 끈 상태로 실험을 실시하였다.

한국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권 걷기 실험을 하게 될 때 어떠한 질문을 해야 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특권 걷기를 위해 준비되어야 할 질문 목록은 문화적 맥락과 대상에 따라서 다르게 작성되어야 한다. 여성학 수업에서 사용했던 특권 걷기 목록은 미국과 한국에서 실시 되었던 특권 걷기 실험9),의 목록을 참조하여 한국적 맥락으로 변형하였다. 그리고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경험하는 특권과 차별의 경험 보고서를 참조하여 20개 문항으로 만들었다(<표 3>).

한국 대학생 특권 걷기 질문 목록

비대면으로 운영되는 수업은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을 통해서 진행되었다. 수강생이 65명으로 모두 한번에 활동에 참여할 수 없어서 2단계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1단계는 특권 걷기 활동지 양식을 학생들에게 전송을 하고 학생들은 교수자의 안내에 따라서 개인적으로 활동에 참여해본다. 이 활동이 끝나면 채팅창으로 각자의 점수를 채팅창에 입력한다. 1단계의 경우 모든 학생이 동시에 참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특권 걷기 활동을 통해서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자각할 수 있는 경험은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 2단계를 실시하였다. 2단계는 화면공유용 활동지 PPT(<표 4>)를 준비하였으며, 학생들은 주석달기 스탬프 기능을 활용하여 하나의 질문에 한칸 앞으로 갈수도 있고, 뒤로 갈수 있으며, 해당 사항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이 과정을 스탬프 기능을 활용하여 모든 문항에 응답을 하도록 안내하였다. 한 세션에 10명씩 참여하여 진행을 하였다. 10개의 스탬프가 0(출발선)의 각 숫자에 찍히면 특권 걷기 활동을 시작한다. 10명의 학생이 실험에 참여할 동안 다른 학생들은 각 칸의 스탬프가 움직이는 것을 관찰한다. 특권 걷기 실험이 끝났을 때 참여한 학생 중 가장 앞칸에 있는 학생은 +9, 가장 뒷칸에 있는 학생은 -6이었다. 모든 활동이 끝나고 이 활동을 통해서 무엇을 느꼈는지 소감 나누기로 마무리하였다.

특권 걷기 활동지

  • 특권 걷기를 하면서 많이 놀라웠습니다. 저는 평소에 차별받으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제가 훨씬 낮은 단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차별 또는 특권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2학년 여학생)

    처음 교수님과 실험을 시작할 때, 저는 상당히 낮은 점수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해보니, 제 생각보다 3점이나 높은 점수가 나왔습니다. 이를 통해 제가 생각보다 많은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부모님의 재산이나 유전과 같은 것들만 생각했는데 젠더와 관련된 특권을 정말 상상 이상으로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3학년 남학생)

    오늘 특권 걷기 활동에 참여하면서 나의 점수가 생각보다 높아서 당황스러웠다. 그만큼 내가 누리고 살았는데 인식을 하지 못했던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전혀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국적, 가족관계, 생활적인 부분에서도 같은 학교이지만 차이가 크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게 되어 한편으로는 충격이었다. (3학년 여학생)

    특권걷기 활동을 통해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소수자가 아니라고, 장애인이 아니라고, 임산부가 아니라고 그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외면해버립니다. 내 옆사람의 권리와 기본권, 차별금지가 보장되어야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사회가 내세우는 보편적 기준에 어긋나는 것들이 많을수록 개인이 개인 그 자체로서 존재하기를 부정당하는 사회가 바로 한국이라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한국 사회가 정한 정상인의 범주들 때문에 우리는 어떤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 그리고 차별을 당하고 있는지에 대해 인지하고 성찰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함과 동시에 억압과 차별 받는 소수자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공감하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학년 여학생)

3.3 성별화된 특권 목록

학계에서 특권 이슈를 공론화 시켰던 McIntosh는 백인의 특권 뿐만 아니라 남성 특권도 지적한 바 있다. McIntosh는 수업에서 만난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더 많은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남성 특권을 이야기할 때 거세게 저항하였다는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백인에게 백인 특권을 인정하지 말라고 가르친 것과 마찬가지로 남성에게는 남성 특권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부장적 맥락에서 비롯된다. 백인 학생들은 자신의 삶에서 인종차별이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성찰해 본 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성들은 성차별이 자신의 일상 경험에 미치는 영향력을 분석해 본적이 없다. 성차별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험이 적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남성 우위를 지속시키는 시스템에 대해서 침묵하고 부정하는 것이 성차별을 지속시키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Peggy McIntosh, 2017, 28-40). 특권 교육에 있어서 젠더는 중요한 범주로 다루어 지고 있으며 남성 특권과 여성 특권 목록을 작성하는 과정을 통해서 성차별의 문제를 좀 더 구조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여성학 수업에서는 6명씩 10개 모둠을 만들고, 각 모둠별로 남성 특권 목록과 여성 특권 목록을 작성해 보도록 하였다. 대학생이 인지하는 성별화된 특권목록은 <표 5>로 정리하였다.

대학생이 인지하는 성별화된 특권 목록

학생들은 성별화된 특권 목록을 작성해 보는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의 비대칭성에 충격을 받았다. 남성의 특권 목록이 여성의 특권 목록보다 월등히 많다는 것에 당혹스러웠다는 반응이 많았다. 남성과 여성의 특권 목록 비율을 비슷하게 맞추기 위해서 애를 쓰고 찾아봐도 찾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이와 함께 남성의 특권 목록은 제도적인 영역, 성역할, 안전, 문화 등 전영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반면 여성의 특권 목록은 특권이라기보다는 차별의 결과로 보았다. 위기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챙김을 받는 존재라거나 울어도 되는 존재라는 것은 가부장제에서 규정되는 여성성을 반영하는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여성이 남성에 비해서 “꾸밈과 치장하는 일이 자유롭다는 것”은 꾸밈노동이 강요되는 사회로 해석될 수 있고, 여성전용 주차장, 여대 역시 특권이라기보다는 소수자들이 좀 더 안전하기 위해 대항한 결과로 해석한다.

  • 여성을 떠올렸을 때 생각보다 특권이 많지 않다는 것이 충격이었습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혜택을 받고, 남성이기 때문에 혜택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성차별이지만, 남성의 특권에 비해 여성의 특권이 현저히 적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성에게 특권이라는 것은 여성에게 부여되는 사회적 이미지를 담고 있는 듯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는 여성을 약자, 지켜줘야 되는 존재, 수동적인 존재라고 규정하듯이 우리가 분류한 여성의 특권은 여성은 위기 상황에서 챙김을 받는 존재, 울거나 약한 모습을 내비쳐도 되는 존재 등이었습니다. 반면 남성은 현실적으로 누리는 혜택들이 많았는데요. 가령 범죄 노출에 비교적 적게 된다는 것이나 승진/임금에 있어서 혜택을 본다는 점, 육아/가사일에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 결혼 등으로 경력단절 될 위험이 없다는 점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남성이 받는 특권 모두는 여성도 마땅히 누려야 되는 것이며, 반대로 여성이 꾸미는 것의 자유 등을 가진다면 남성도 누려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다시 한번 가시적으로 남자는 사회에서 얻는 특권이 많은 반면, 여성은 누리는 특권이 특별할 게 없다는 점이 어떤 부분에서 성평등이 이루어져야만 하는지 더 잘 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학년 여학생)

  • 여대와 여성주차장은 차별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대가 생긴 것은 사회에서 남성에게 주어지는 특권들이 많기에 소수자인 여성들이 조금이라도 이 사회에 대항하려는, 모여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는 이유입니다. 특권층과는 다르게 소수자들은 뭉쳐야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요. 또한 차별이 가득한 사회에서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여대에서는 남녀공학과는 다르게 성폭력에 대한 위험이 적습니다. 여성 주차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한편,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과연 여성의 특권일까요? 이것은 여성들에게 체력을 기를 기회를 주지 않는 차별적인 사회로부터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학창시절을 생각해보면 남학생들은 점심시간마다 운동을 하고 체육시간에도 다양한 스포츠를 즐깁니다. 반면 여학생들은 꽉 끼는 교복 때문에 움직임부터 제한적이고, 체육시간에 여학생들에게 허락되는 운동이라고는 피구 정도입니다. 이처럼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체력을 단련할 기회가 남성들보다 적습니다. 따라서 기대하는 체력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그냥 여성에게는 체력을 요하는 일을 맡기지 않는 것이겠죠. 여성들이 굳이 자신만의 공간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자신의 힘으로도 멋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학년 여학생)

  • 여성이기에 혹은 남성이기에 받는 특권과 차별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남성의 특권을 찾는 것은 쉬웠지만 여성의 특권을 찾을 때는 어느 수준에 달하자 더 이상 찾지 못하고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그리고 여성의 특권이라는 것은 여성 차별과 억압의 축으로도 작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여성이 꾸밈과 치장하는 일이 자유롭다는 것은 결국 꾸밈노동이 여성에게 더 강요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발생한 특권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현대 사회 안에서는 특정 성별로 인해 갖게 된 독자적 특권 그리고 차별이라는 것은 결국 상호연관적으로 획득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성과 남성의 특권과 차별 기제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활동으로 한번도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차별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어서 저에게 특권이라는 이유로 당연시해버리면 누군가는 그것으로 고통받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2학년 여학생)

  • 우리는 누구나 갓난아이로 태어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고, 절반의 사람들이 여성으로서 삶을 살아갑니다. 남성으로 태어났든 여성으로 태어났든 여성의 삶이라는게 무엇인지 모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여성으로서의 삶이 힘들다는 것을 쉽게 깨닫지 못합니다. 좀 더 정확히는 ‘모르는 척’ 합니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존재를 계속 지워왔기 때문이 아닐까요. 성별화된 특권 목록 만들기 활동을 통해 여성으로서 20년을 살아오면서 무의식적인 차별을 겪고 있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시적으로 볼 수 없었던 또는 암묵적으로 무시되었던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 당하고 있었지만 이처 몰랐던 차별과 갖고 있었으나 자각하지 못했던 특권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 말은 쉽지만 아직 갈 길이 많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학년 여학생)

4. 결론

한국 대학에서 교양교육으로서 여성학이 제도화 된지도 40여년이 넘었다. 1977년 교양강좌로 여성학이 개설된 이후,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면서 대학에서 교양 여성학은 급속도로 확산 되었다. 당시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으며 여성의 권리를 언급하는 것조차 힘들었던 상황에서 여성의 권리 신장을 주장하는 여성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시장경제 논리가 대학에 도입되면서 대학교육에서 교양교육의 위상은 추락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인문학 전반의 위기와 함께 여성학 교양강좌는 감소하게 되었다(이나영, 2011: 74). 여성운동의 대중화와 제도화가 성공하면서 여성들의 지위는 전반적으로 이전 세대에 비해 크게 상승하였고, 여성 내에서도 수많은 계층으로 분화되면서 여성들 간의 요구도 달라지게 되었다.

여성의 삶이 과거에 비해 크게 나아졌으니 성평등은 이미 실현된 것이며 남성에 대한 역차별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여성 상위 시대’가 도래되었다는 인식이 확산 되는 동시에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추모운동 이후 20대 여성을 중심으로 미투운동, 불법촬영 편파수사에 대한 항의 시위, 낙태죄 폐지 운동이 이루어졌으며, 탈코르셋, 단톡방 성희롱, 디지털성범죄 문제 등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성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반페미니즘 정서가 나타났으며 온라인을 중심으로 성별 대립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젠더 갈등’은 한국사회에서 매우 심각한 사회 현상으로 진단된다.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20대 성인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성평등 현안 인식조사 결과 자료를 살펴보면, 20대 여성 10명 중 5명, 20대 남성 10명 중 1명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인식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20대 여성과 남성 모두 우리사회 성차별 문제에 대해 관심 있다고 응답을 하였지만, 여성 10명 중 7명, 남성 10명 중 3명만 일상생활에서 여성 대상 고정관념 및 차별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별 인식의 격차는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9: 1-6). <시사IN>과 한국리서치가 2019년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조사에 의하면, 한국 사회의 여성 차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묻는 항목에 20대 여자는 “심각하다”가 85.4%인 반면 20대 남자는 60.8%가 “심각하지 않다”라고 답했다. 이와 함께 한국에서 남성 차별 문제가 심각한지 묻는 항목에 20대 여성은 “심각하지 않다”가 56.2%인 반면 20대 남성은 “심각하다”가 68.7%로 매우 상이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천관율, 2019).

청년세대 젠더 갈등 문제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 내 페미니즘 교육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90년대 여성학은 여성들이 경험하는 차별과 고통을 사회적으로 이슈화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성매매, 성희롱, 가정폭력 등에 대해서 기존 학문에서 설명되지 않았던 새로운 개념과 관점을 제시하였으며, 남성과 여성의 삶을 되돌아보는 성찰적 관점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여성의 경제⋅사회⋅교육 분야에의 참여가 증가하고, 성평등 의식이 확산되면서 남성 가해자, 여성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접근은 성차별 문제를 설명하는데 한계를 갖게 된다. 여성 피해자화 접근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식론과 교수법에 대한 탐색이 요청되고 있다. 이 논문은 여성 피해자, 남성 가해자라는 이분법적인 도식을 넘어서 다양한 억압체계와 젠더의 관계를 성찰하며, 복잡한 억압의 그물망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는 특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교수법을 탐색해 보고자 하였다. 특권을 자각한다는 것은 노력 없이 주어진 지위에 대해서 책임의식을 갖는 것이며, 특권의 다른 축인 차별에 대해서 민감하게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McIntosh는 특권을 ‘불로소득’에 비유한 바 있다. 특권 연구는 이러한 불로소득을 발견하고 인정하고, 그것이 발생하는 사회 시스템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직면하는 세상은 능력주의 신화로 가득한 세상이며 개인은 시장주의에 기초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서열화하고 차별화하는 것을 내면화하게 된다. 능력주의 신화가 팽배한 문화에서 자신의 특권을 자각하는 것은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지만 가치 있는 일이며, 특권 연구는 새로운 지식 체계를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한다(Peggy McIntosh, 2013). 본 연구는 차별과 특권에 대한 페미니스트 페다고지의 이론적 쟁점을 살펴보고, 수업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교육 모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교차성에 기반한 특권을 인식할 수 있도록 정체성을 탐색해 보고, 특권을 가시화할 수 있는 특권 걷기 실험, 성별화된 특권 목록을 작성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특권 교육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는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교육방향을 제시하였으며, 성별 인식의 간극을 좁히고 타인에 대한 깊은 공감과 배려를 향상시킬 수 있는 교육방법에 대해서 탐색하였다는데 이 논문의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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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1)

미국 대학의 인적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법적 기반은 1960년대 사회 전반에 민권 사상이 뿌리를 내리면서 이것이 시민운동으로 확산 되면서 소수자의 민권운동과 신장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대안들을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마련되었다. 하지만 소수자 우대정책이 대학 인적 구성의 다양성 확보에 따른 교육적 이익이라는 관점과 특정 인종에게 특혜를 제공한다는 관점이 맞서면서 다양한 논쟁이 이루어졌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염철현(2017)의 논문을 참조할 것.

2)

휠체어 학생에 계단 강의실 고집한 대학생들. 조선일보. 2017.04.05.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3269374

3)

새학기 대학가서 성소수자 현수막 훼손 잇따라. 연합뉴스 2016.03.22. https://www.yna.co.kr/view/AKR20160322211700004?input=1179m

4)

‘홍콩 시위’ 놓고 韓대학생-中유학생 충돌. 머니투데이 2019.11.14.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9111408114898733&outlink=1&ref=%3A%2F%2F

5)

여성운동의 성장과 발전은 크게 3단계로 구분될 수 있다. 페미니즘 제1의 물결은 1860년대 무렵부터 1920년 무렵까지 진행된 초기의 여성운동을 가리키며, 여성의 투표권 획득을 위한 참정권 운동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페미니즘 제2의 물결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 중반까지의 여성운동을 지칭한다. 이 시기 여성운동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평등을 쟁취하고자 하였다. 제도적 평등을 요구했던 이전 여성운동과 달리 이들은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몸이나 섹슈얼리티와 같은 사적 영역에서의 평등을 모색하였다. 페미니즘 제3의 물결은 1990년 이후 대두된 여성운동으로 여성들 간의 차이를 강조한다.

6)

구체적인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교통수단 탑승을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휄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탑승 장치를 요구할 때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는 특권이다.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를 특권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결혼을 할 수 없는 동성 커플이 나타나면 그것은 특권이 된다. 또한 한국 국적을 거지고 태어난 사람이 한국에서 사는 것을 특권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한국에서 사는 자격을 취득해야 하는 외국인의 관점에서 그것은 특권인 것이다(김지혜, 2019: 28-29).

7)

3장에서 인용된 대학생들의 보고서 및 수업 피드백 내용은 익명으로 처리하는 것을 조건으로 사전에 정보활용 동의를 받은 자료이다.

8)

미국에서 진행된 특권 걷기(Privilege Walk) 실험 - What Is Privilege? https://www.youtube.com/watch?v=hD5f8GuNuGQ

한국에서도 특권 걷기 실험이 진행된 바 있으며 이와 관련 된 영상은 스브스뉴스, “소셜실험... 청년들에게 당신은 보통사람인지를 물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aLZ3bmCb_k

9)

특권 걷기(Privilege Walk) 실험 - What Is Privilege? https://www.youtube.com/watch?v=hD5f8GuNuGQ

스브스뉴스, “소셜실험... 청년들에게 당신은 보통사람인지를 물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aLZ3bmCb_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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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특권 이해와 해체 학습 모듈

주제영역 활동 모듈 수업진행
주제1. 교차성에 기반한 특권 인식 내 삶의 특권-차별의 축 찾아내기 - 교차성, 특권 개념 강의
- 개인적⋅사회적 정체성 탐색
- 동영상 시청 및 토론
- 개별 과제: ‘나’는 누구인가
주제2. 특권을 가시화하기 특권 걷기 - 교차성, 위치성 개념 강의
- 동영상 시청
- 특권 걷기 실험
- 개인 성찰
주제3. 성별화된 특권목록 성별화된 특권 목록 작성하기 - 성별화된 특권 강의
- 팀별 토론, 목차 작성
- 개인 성찰

<표 2>

대학생이 인식하는 자신의 특권과 차별

특권 차별
• 경제력 : 중산층, 등록금 및 용돈에 대한 걱정이 없음. 어학 및 다양한 취미활동 지원 • 성별 : 남성
• 학력 : 유명 사립대학 재학 • 경제력 : 중하위층. 등록금 고민, 아르바이트를 해야 함.
• 거주지 : 서울, 강남3구, 대치동 • 거주지 : 지방출신
• 가족형태 : ‘정상가족(양부모)’, 화목한 가족문화 • 가족형태 : 한부모 가족, 부모님 이혼
• 성적 지향 : 이성애자 • 성적 지향 : 동성애자, 양성애자
• 장애⋅질병 : 비장애 • 외모 : 작은 키, 과체중, 피부트러블
• 인종 : 백인(유학생) • 인종 : 동양인(해외 체류/ 여행)
• 외모 : 큰 키, 날씬한 몸매, 하얀 피부 • 왼손잡이
• 성별 : 여성 • 군대
• 국적 : 한국에 사는 한국인 • 페미니스트
• 나이 : 20대
• 해외 거주 경험

<표 3>

한국 대학생 특권 걷기 질문 목록

1. 부모님이 전문직 직업(의사, 변호사, 교수 등)을 지닌 경우 한칸 앞으로
2. 어린시절 영어 유치원에 다닌 경험이 있다면 한칸 앞으로
3. 어린시절 폭력적인 가정 환경에 노출된 적이 있다면 한칸 뒤로
4. 신체적 또는 정신적인 질병 혹은 장애가 있다면 한칸 뒤로
5. 특목고를 나왔다면 한칸 앞으로
6. 고액 과외 혹은 1:1 과외교습을 받아본 적이 있다면 한칸 앞으로
7. 선입견이나 조롱을 피하기 위해서 당신의 외모를 바꾸려고 한 적이 있다면 한칸 뒤로
8. 텔레비전에서 당신의 출신 지역, 성별, 신체를 가진 사람들을 비하하는 식으로 묘사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면 한칸 뒤로
9. 미래에 결혼 혹은 출산으로 경력단절이 될 것이 두렵다면 한칸 뒤로
10.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 경험이 있다면 한칸 앞으로
11. 등록금 대출을 받은 적이 없다면 한칸 앞으로
12. 공공장소에서 비웃음이나 폭력의 두려움 없이 연인에게 애정을 나타낼 수 없다면 한칸 뒤로
13. 밤에 골목길에서 두려움 없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면 한칸 앞으로
14. 근처의 공공화장실, 대중화장실을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다면 한칸 앞으로
15.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면 한칸 앞으로
16. 밥 약속을 잡기 전에 카드 잔고부터 확인한 적이 있다면 한칸 뒤로
17. 의식적으로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면 한칸 뒤로
18. 가족 얘기가 오갈 때 나한테도 질문할까 불안했던 적이 있다면 한칸 뒤로
19. 자신의 신체나 외모, 옷차림 등으로 인해 사람들의 노골적인 시선을 받아본 적이 있다면 한칸 뒤로
20. 미래에 자신이 종사할 분야의 상사나 임원직의 대체적인 성별이 자신과 같은 경우 한칸 앞으로

<표 4>

특권 걷기 활동지

+10
+9
+8
+7
+6
+5
+4
+3
+2
+1
0 1 2 3 4 5 6 7 8 9 10 ← 출발선
-1
-2
-3
-4
-5
-6
-7
-8
-9
-10

<표 5>

대학생이 인지하는 성별화된 특권 목록

남성 특권 목록 여성 특권 목록
• 공공 화장실을 이용할 때 불법촬영에 대한 두려움이 없음 •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됨
• 강력범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낮음 • 의복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음
• 자신의 능력으로 온전히 평가받을 확률이 높음(성별로 인한 제약이 적기 때문) • 육체적 활동(힘든 일)에서 배제
• 경력단절을 고민하지 않아도 됨 • 여성 전용 공간(여대, 주차장)
• 승진 및 임금 등에서 더 유리할 가능성 높음 • 데이트 비용에 대한 부담이 적음
• 가사노동, 육아의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움 • 재난시 먼저 구조되는 대상
• 성과 관련 주제에 대해 대화를 하기 쉬움 • 생리공결
• 연애를 자주 하는 사람은 능력자로 인정 • 꾸밈이 자유로움
• 꾸밈노동을 하지 않아도 됨
• 외모평가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기준 적용
• 흡연을 할 때 편견이 없음
• 조부모의 남아선호 사상으로 용돈 더 받고, 관심 받음
• 행위나 활동이 자유로움.
• 롤모델이 될만한 영향력 있는 남성이 많음
• 명절, 제사, 경조사에서 허드렛일은 안하고 폼나는 역할만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