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교양교육의 융합학문적 지도 그리기 -빅히스토리의 인문학적 전환을 통하여

Mapping Twenty-First-Century General Education Based upon A Convergence Science -Humanistic Conversion of Big History

Article information

Korean J General Edu. 2020;14(6):25-37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20 December 31
doi : https://doi.org/10.46392/kjge.2020.14.6.25
박혜정
연세대학교 교양교육연구소 전임연구원, morgantown@yonsei.ac.kr
Research Fellow, Yonsei University, Research Institute for Liberal Education
이 논문은 2020년도 한국 교양교육학회 연구 프로젝트 사업에 선정되어 학회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 결과물임(KAGEDU-2020-03).이 논문은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 2019S1A5C2A04083293).
Received 2020 November 20; Revised 2020 November 30; Accepted 2020 December 17.

Abstract

초록

빅히스토리를 과학기술의 급변의 시대에 조응할 수 있는 융합교양의 화두로 삼는 것은 분명 교양교육의 21세기 학문적 지도를 그리는 데 유용할 수 있다. 물리학에서 역사학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총동원되어서 현생 인류와 세계의 기원을 규명, 설명하려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융합의 규모가 곧 가장 바람직한 융합교양의 내용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교양의 핵심이 여전히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의 종합적 역량을 증진한다는 고전적 목표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빅히스토리는 인문학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현재 빅히스토리의 컨셉은 과학교양의 강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빅히스토리의 인문학적 전환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는 빅히스토리와 마찬가지로 시공간적으로 거시적이고 학제융합적인 접근을 하면서 패러다임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깊은 역사와 인류세 담론에서 얻을 수 있다. 깊은 역사와 인류세 담론은 빅히스토리의 제설혼합주의적 특성과 달리 인간의 주체성과 문화에 대한 주목과 성찰로부터 시야를 확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제공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21세기적 정의에서 불가결한 전제조건은 그가 이미 지질적 동인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행위와 문화가 이제껏 지향해온 인류 사회의 문제 해결이라는 목표는 전 지구적 내지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인류의 미래뿐 아니라 지구의 미래는 과학기술 발전에 달려있다. 좋은 인류세의 주장처럼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과학기술은 충분히 개발될 수 있다. 그러나 기후역사학 연구들이 보여주었듯이 인류의 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해온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사용을 결정하는 인간들 간의 관계와 문화적 틀이었다. 21세기 교양교육은 이제까지의 인간중심적인 인간의 이해를 극복하고 지구, 환경, 기술과의 관계 속에서 한층 개방적으로 재구성된 유랑적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기여해야 할 것이다. 빅히스토리, 깊은 역사, 인류세 개념은 이러한 새로운 인간상과 이를 연구하기 위한 학문으로서의 교양교육에 ‘커다란’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Trans Abstract

Abstract

Big History could be definitely helpful for mapping out general education as a convergence science in the 21st century. The reason for this is that Big History is the largest research and education field, combining almost all the natural sciences and humanities. However, the scale of convergence does not guarantee the most desirable content of convergence science. As long as the core of general education lies in understanding human beings and improving their total competence which used to be the classic goal of general education, Big History needs to be converted in favor of the humanities. The current form of Big History would contribute to strengthen a natural science-oriented general education.

The clue to the humanistic conversion of Big History can be drawn from Deep History and Anthropocene discourse, which are in the process of expanding the time-and-space purview, and testing out the interdisciplinary approaches such as Big History. Unlike the syncretic feature of Big History, Deep History and Anthropocene discourse have the full potential of expanding our perspective by paying deep attention to human subjectivity and culture. In the 21st century-definition of human beings, we must take into account the fact that we ourselves became a geological force. The goal of human behavior and culture, which has thus far been oriented towards solving society’s problems, needs to be extended to the global and cosmic level.

The future of not only human beings but also of our planet depends on the development of science and technology. According to the argument of ‘Good Anthropocene’, we already have enough potential to develop advanced technology to stop Global Warming. As the research of historical climatology has shown, however, it is not technology itself, but social relations and the cultural framework that determine how technology is used to develop solutions to society’s problems. General education in the 21st century should overcome the anthropocentric understanding of human beings and contribute to establishing a nomadic identity based upon a more open interaction with the globe, environment, and technology. Big History, Deep History and Anthropocene discourse could serve as a ‘big’ usher for general education based upon a convergence science which will explore a new picture of human beings.

1. 서론: 융합교양의 중요성과 필요성

급변하는 과학기술 시대를 맞아 편협한 전공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개별 학문분과의 경계를 초월한 일반교육 혹은 교양교육이 주도하는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은 상식적 주장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교양교육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이러한 전환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할 콘텐츠 혁신이 교양교육의 분야에서 제대로 일어나느냐가 인류 사회가 직면한 도전에 대한 응전의 관건이다.

교양교육을 정의하거나 교양교육의 강화 필요성을 이야기할 때 흔히 전공교육과의 차별성을 강조하지만,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해갈 학문 분야들은 서서히 융합학문으로 변신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최근 융합학문을 주도하는 추세는 NBIC로 불리는 나노(Nano), 바이오(Bio) 정보(Info) 인지(Cogno) 중심의 과학기술분야를 서로 합쳐서 창의적인 연구결과를 내놓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 과학기술과 인문학을 결합하는 확장적 융합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도 뚜렷하다. 2002년 NBIC 융복합연구를 국가전략으로 천명하고 연간 130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하고 있는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연합 역시 2004년 NBIC 지식생산뿐 아니라 이러한 지식의 사회적 활용 및 그에 대한 사회적 저항까지 정책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려는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1)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이 2000년도 초반부터 문이과 구분을 없애고 문리융합형 연구와 교육을 대학개혁의 핵심으로 추진하는 방향전환을 시작했다. 한국도 2009년 융합연구를 국가과학기술 발전의 6대 전략의 하나로 명시하고, 동년도 재탄생한 한국연구재단을 통해 인문사회-과학기술 분야의 학제간 융합연구 지원을 강화할 수 있는 기초적인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상태이다. 즉 기존 교과부 산하 연구지원 기관들에게 각각 지원하던 인문사회와 과학기술 연구지원을 연구재단을 통해 일원화한 것이다. 연구재단 내에 기초연구본부의 융합과학단과 인문사회본부의 문화융복합단을 설치함으로써 국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인문사회와 과학기술 양측의 관점과 방법론을 통한 공동연구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융합과학이라는 새로운 바람은 교육 현장에도 도달하고 있다. 필자가 소속된 연세대학교의 경우만 보더라도, 7년 동안 성공적으로 운영되었던 융합과학적 교양과목 <위대한 유산>과 그 후속편으로 개설된 <활과 리라>을 꼽을 수 있다. 자연과학자와 인문학자의 코티칭 형태가 아니더라도 자연과학 주도의 융합과학적 내용의 교양교과목 개설도 활발하여 <문명과 질병>, <삶과 성>과 같은 교과목들이 학생들의 높은 관심 속에 운영되고 있다. 이들 융합과학적 콘텐츠의 교과목의 공통점은 생물학이다. 인간의 생명현상을 다루기 때문에 다른 자연과학 분야보다 인문학과의 융합에 도전하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는 생물학이 ‘인간’을 공통분모로 삼아 인문학과의 융합을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교과목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융합과학의 교육적 실천 자체로서보다는 이접(離接)적 사고능력을 제고하는 촉진자로서의 역할에 있다. 21세기가 요청하는 창의적 사유력과 소통력은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갖는 콘텐츠를 플랫폼으로 삼아서 최대한 상상력과 추론적 사고력을 확장하도록 자극하는 형태의 수업을 통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함양될 수 있다. 교육 차원에서 융합학문이 각광 받고 또 받아야 할 이유는 융합을 통해 산출되는 새로운 지식적 내용 자체이기보다 융합을 통한 사고력의 무한 확대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21세기 교양교육이 그 규모와 방식의 문제를 막론하고 융합교양교육을 지향해야 하는 것은 자명해보인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말안장 위의 시대(Sattelzeit)’로 불린 근세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르네상스 인문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교육 혁명이 일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전 방위적인 격동기를 살아남을 나침반을 얻기 위해 15세기인들은 신에게 기대기보다 인간 자신의 능력과 활동으로 관심을 환기하고 이를 확대하고 심화하는 쪽을 선택했다. 고대 그리스 자유시민의 지적 활동에 기반한 3학(논리, 수사, 문법) 4과(산술, 기하, 천문, 음악) 가운데 상위 범주에 해당하는 3학은 르네상스기에 역사, 철학, 문학으로 개편된다(김응준, 2020; 40).

이러한 인문주의적 교육 혁신의 핵심은 기술적 역량에 집중했던 전통적인 삼학의 방향을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교양(virtu)의 함양으로 방향 전환을 했다는 데 있다. 말이 달리는 방향은 알지 못한 채, 오직 광폭의 질주만을 인지했던 15세기인들처럼 오늘날의 현대인 역시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과학기술의 혁신 소식만 접할 뿐 그 세부적 내용도 그것이 가져올 궁극적인 변화나 결과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시대적 격차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인들이 말을 모는 단순 기술이 아니라 기수 자신의 총제적인 역량 함양에 눈을 돌렸던 것처럼 21세기의 말 안장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변혁의 방향도 크게 다르지 않다.

21세기의 말 안장 시대에 필요한 교양은 무엇이고 이를 교육하고 심화할 교양교육의 내용과 형식은 무엇인가? 현재의 학문적 지각변동으로 보나 르네상스기에 교양교육이 부상한 맥락과 비교해 보나, 21세기형 교양교육이 융합교양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방향성만큼은 뚜렷해 보인다. 현재의 교양교육은 그것이 내세우는 교육 목표의 포괄성에도 불구하고 전공교육의 기초 혹은 하위범주로서 정렬되어있다. 교양교육이 고유한 학문적 정체성 혹은 지도를 갖고자 한다면 전공학문적 경계에 따라 정렬된 구도를 과감히 벗어나서 융합교양으로서의 독창적인 지도를 새로이 그려야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과학기술적 격변의 시대는 이러한 혁신에 성공한 교양교육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청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21세기 융합교양으로서의 교양교육의 학문적 지도의 밑그림을 최대 규모로 그려볼 수 있는 지렛대로서 빅히스토리의 가능성과 한계점을 동시에 살펴보며 해법을 모색해볼 것이다.

2. 21세기 융합교양의 학문적 지도 빅히스토리

빅뱅부터 현대사까지 포괄하는 빅히스토리는 최대 규모의 초학제적 융복합적 학문 및 교육 분야이다. 물리학에서 역사학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총동원되어서 현생 인류와 세계의 기원을 규명, 설명하려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는 창의적이고 융복합적인 교육의 필요성 인식과 맞물려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미국 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 교양교과목으로서 그 영토를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융합학문의 첨병이라 할만한 빅히스토리는 자연계의 이해와 인간 사회의 이해를 종합하려는 17세기 과학혁명 이래의 지적 전통을 현대 학문적 수준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수준에서 계승하고 있다. 비록 이후 학문 발전은 전문적 분화의 길을 걸었지만, 근대 학문의 태동은 자연과학이 달성한 새로운 지식체계와 인식론적 방법론적 자극을 인문학계가 열광적으로 수용하고 응용하는 가운데 일어났다. 빅히스토리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융합과학과 융합교육의 물결은 종국적으로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전문적 분립을 고착시키는 방향으로 귀착되었던 19세기 독일의 역사주의 논쟁, 정신과학 논쟁, 혹은 신칸트학파 논쟁과 달리 진정한 의미의 종합 학문의 지평을 새로이 열어줄 충분한 잠재력과 조건을 갖고 있다.

다만 빅히스토리는 거의 모든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그 학문적 지도는 다분히 자연과학 편향적이다. 무엇보다도 빅히스토리의 콘텐츠는 빅뱅으로부터 생명의 탄생을 다루는 전반부의 물리학, 천문학, 지질학, 화학, 생물학적 내용과 인류의 등장 이후를 다루는 후반부의 인류학, 고고학, 역사학, 사회학 분야의 내용이 복잡도의 증가와 중력의 작용이라는 단순한 법칙 외에는 별다른 연계성 없이 병렬 결합된 구조를 보이고 있다. 또한 인류 사회의 발전을 빅뱅 직후 결정된 근본적인 법칙의 연장선 위에서 파악하려는 일방향적인 기원론의 서사가 지나치게 강하다.

요컨대, 크리스천의 빅히스토리에서 인간 역사는 크게 농업문명 시대와 현대문명 시대로 나뉘는데, 전자의 기술 관심은 현대 이전 세계에서 가장 큰 교환 네트워크를 만들어낸 농업문명 시대의 장기적 경향들에 있고, 후자의 기술 관심은 소위 ‘현대혁명’을 만들어낸 일련의 변화를 살피는 데 있다. 서사 구조나 방식은 거시적 데이터와 통계자료를 동원하여 비교하고 일반적 특징을 도출하는 사회과학적 방법론에 주로 기대고 있다. 또한 서사 내용을 선별하는 잣대도 철저히 빅히스토리의 핵심어 중 하나인 ‘복잡도의 증가’에 맞추어져 있는데, 예컨대, 이주 문명이 아니라 아프로-유라시아 권역의 농업문명이 가장 효과적이고 광대한 정치, 군사, 이데올로기, 경제적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현대의 세계체제를 “가장 거대한 규모에서 집단학습 과정을 규정하고, 장기적 혁신의 지형도와 속도를 결정하는” 단위로 서술하는 식이다(크리스천, 2013; 435).

그러나 인류가 이미 지질학적 힘이 되어버린 ‘인류세(Anthropocene)’를 계기로 또 다른 임계점에 도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기원론적 서사로는 앞길을 도모하기 어렵다. 빅히스토리는 분명 인류가 인류세의 도전을 포함한 현재에 어떻게 이르게 되었는가에 관해서 규모가 다른 우주적 기원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이제 지구의 운명을 거머쥐게 된 인간과 인간 사회의 역동적 변화 가능성과 그 방향 모색을 위해 영감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는다. 빅히스토리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는 지나치게 유물론적이고 거시적이다.

전대미문의 21세기적 빅퀘스천의 해법은 복잡계의 원칙으로부터 자동으로 산출될 가능성보다 인간이 앞으로 만들어갈 역사를 통해 창발될 가능성이 크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규모는 인간 세계와 생태계를 뛰어넘어 지질학적 수준에 이르고 있지만, 인류세의 해법은 오히려 인간의 종(種)적 차원의 책임 있는 행동에 전적으로 달려있게 되었다. 즉 우주가 아니라 인간과 그 사회문화를 이해하는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인류 사회가 전대미문의 생태적 지질적 위기에 직면해 있음에도 인간 간의 사회문화적, 권력적, 이해관계적 관계망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따라서 빅히스토리가 21세기 교양교육의 학문적 지도에 밑거름이 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인문학을 더하는 방식으로는 곤란하다.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화두로 과학기술과 인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으로 대별되는 새로운 담론이 부상 중에 있다. 양 담론은 대체로 과학기술시대의 조건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그리고 전통적 휴머니즘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에 따라 담론적 내용을 달리하지만, 둘 다 내용적으로 기존의 인간중심주의를 포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즉 트랜스휴머니즘이 과학기술을 활용한 인간의 종적인 향상과 발전에 주안점을 두는 물질주의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인간관에 기대어 전통적 휴머니즘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있다면, 포스트휴머니즘은 결별이 아닌 확장적 이해를 추구하면서 전통적 인간중심주의의 극복을 목표로 한다. 특히 포스트휴머니즘은 과학기술과 관련해서 “… 기술 중심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과학기술과 함께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인간과 과학기술의 공생 및 공진화 관계”를 새로운 인간 이해의 핵심으로 파악함으로써 트랜스휴머니즘과의 차별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김응준, 2020: 37).

이러한 인간중심주의 극복의 시대적 요청은 빅히스토리와 만나 한층 확장될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고 육체와 정신을 날카롭게 구분해온 전통적인 관념적 휴머니즘이야말로 빅히스토리가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관이기 때문이다. 빅히스토리적 관점으로 보자면, 인간의 진정한 기원은 우주적 에너지에 있으므로, 인간의 독립적이고 동질적인 정체성에 기반한 인간 이해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확장적 지평을 제공해줄 수 있다. 일찍이 들뢰즈나 료타르와 같은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은 인간의 동질화된 통일적인 정체성 개념을 비판하며 이를 타자와 세계와의 관계에서 좀 더 개방적인 ‘유랑적(nomadic) 정체성’ 개념으로 대체할 것을 주장했다(Lash, 1992: 261-277).

빅히스토리는 타자와 세계와의 관계를 관념적 혹은 당위적 차원 이전에 물리적 차원에서 재설정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는 강력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연결된다’는 커머너(Barry Commoner)의 생태학의 제일 법칙이2) 빅히스토리를 통해 최대 규모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휴머니즘의 관점은 인간 문명의 복잡성에 관해 역사의 진보와 문명적 혁신 혹은 문화비판적인 병리성 정도를 논의할 수 있겠지만, 빅히스토리는 우주적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의 고도화된 문명의 근본적인 취약성과 인간 문명의 존립 자체의 조건을 이야기하며 전통적 휴머니즘과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우주적 규모의 성찰을 요청한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요청을 고려하여 빅히스토리를 인문학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고찰하고자 한다.

3. 빅히스토리의 인문학적 전환을 위한 세 가지 방법

3.1 빅히스토리적 세계사

빅히스토리의 인문학적 전환에서 가장 큰 난경은 시간 규모의 차이이다. 일례로 생물학자 레즈닉(David Reznick)은 이렇게 말한다: “지질학에서 ‘갑자기’가 의미하는 것에 대한 하나의 유용한 시각은 오늘날 세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여섯 번째 멸종기의 한 가운데 있다. … 현 멸종기는 거대 포유류의 쇠락과 함께 홍적세에 시작되었다. … 지질학적 기록이 그것을 이처럼 명확히 보존하고 있음에도 우리가 대변동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생명의 시간 틀과 지질학적 기록의 시간 틀 사이의 차이 때문이다. 우리에게 백 년은 긴 시간이다. 화석 기록에서 십만 혹은 백만 년은 찰나처럼 보인다.”(Chakrabarty, 2018: 30).

이러한 시간적 규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빅히스토리를 인간의 세계사 속으로 들여와야 한다는 요청은 환경 위기의 확산세 속에 더욱 거세졌다. 지구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력이 갈수록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오늘날의 인간에게 이전의 나약한 존재로 되돌아갈 수 있는 선택권은 없다. 우주생물학자 그린스푼(David Grinspoon)의 책 제목대로 이제 지구는 인간의 손에 달려있고, 인간은 이 권력을 조심스럽고 책임감 있게 사용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Greenspoon, 2016). 크리스천의 『시간의 지도』를 극찬하며 서문을 썼던 맥닐(William H. McNeill)은 1990년대 말부터 자연의 역사와 세계사를 합친 ‘통합생태학적(ecumenological)’ 접근을 주장해왔다(Schäfer, 1993: 52). 그는 특히 세계사학자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우리가 통제할 수 없고 어렴풋이 이해할 뿐인 과정, 즉 우리 자신을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평형계[강조는 역자]의 … 복층들을 교란시키는 가장 거슬리는, … 극강의 요인으로 만들어놓은 과정에 깊이 연루되어있다는 점에서 … 우리는 … 우리의 선조들과 일체이다. …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관한 명민한 역사서술은 인간 생존의 기회를 개선시켜줄 수 있다”는 확신에서였다(McNeill, 2002: 5).

인간의 경험 대상이 될 수 없는 빅히스토리와 인간사의 거대 합명제와 같은 세계사를 접목시킬 수 있는 방법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우선, 크리스천 스스로가 러시아과학재단의 지원 하에서 러시아 학자들과 함께 쓴 『지구화의 빅히스토리』의 방식을 검토해 볼 수 있다(Jinkina et al., 2019). 러시아를 비롯한 브릭스 국가들의 지구화 시대의 역할을 위한 시나리오 개발이라는 다소 노골적인 국제정치적인 목적에서 연구된 성과이긴 하지만, 이 책은 애초에 세계사의 확장판으로 빅히스토리를 차별화하고자 했던 크리스천 구상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복잡계 이론, 재난 이론, 네트워크 이론과 같은 다양한 학문분과와 세계사를 융합하려는 노력이 책 전반에 걸쳐서 돋보인다.

지구화 개념을 빅히스토리적 틀 속에 위치시키려는 문제의식은 세계사 서술의 핵심 키워드를 담당해왔던 연결성(connectivity)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한 단계 더 확장한다. 오늘날의 고밀도의 전 지구적인 연결성은 인류사 전체와 수억 년이 넘는 생물계, 더 나아가서 우주 전체에서 진행되어온 초기 형태의 연결성과 어떻게 비교될 수 있는가? 본래 상호 고립되어있던 단위체들 사이에 상호 연결적 네트워크가 생겨난 것은 왜 중요한가? 증대하는 연결성은 어떻게 인간 사회 내 생겨난 특성들을 낳았으며 이들 특성을 생물권과 지질권 혹은 분자화학과 양자물리학 내의 현상과 비교할 때 어떤 추정이 가능한가? 이들 질문에 대해 책은 인간사 속의 지구화와 탈지구화의 파동이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진화 과정에서 일어났던 통합과 해체 주기와 매우 닮아있다는 사실을 통해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Jinkina et al., 2019: vi).

물론 책은 지구화의 역사적 과정을 일일이 생물권과 지질권에서 수억, 수천만 년 전부터 진행되어온 소위 ‘초기 지구화’와 긴밀히 얽힌 과정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본문에서 서술된 도시 문명, 국가, 제국,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의 구축을 둘러싼 인류사 속의 지구화를 서문과 결론에서 빅히스토리적 과정의 일부로 위치시켜 조망하고 연결해내는 방식을 택한다. 그간 지구화는 세계사학자들 가운데 하나의 시대구분으로서 논구되면서, 1970년대 이후로 보아야 할지 혹은 호모사피엔스의 등장 이후 지속되어온 인류사적 현상으로 보아야 할지에 관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에 반해 『지구화의 빅히스토리』의 초점은 인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지구화가 빅뱅 이후 우주적 규모의 진화 법칙과 동일한 근본 법칙을 따른 동일한 과정임을 입증함으로써, 지구화에 대한 인간중심적인 기원론을 완전히 떠나는 데 맞추어져 있다. 즉 공동체를 단위로 인간이 생각, 정보, 기술, 이야기, 상품들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교환 네트워크가 전 지구적 규모로 확대되고 네트워크 역시 다양해지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온 지구화 역시 물질들이 서로 결합하여 새로운 특성과 고유한 규칙을 갖는 좀 더 복잡한 단위체를 형성해가는 과정의 일환이라는 것이다(Jinkina et al., 2019: 3).

빅히스토리의 핵심 개념 ‘복잡성의 증가’가 빅히스토리적 세계사에도 그대로 활용되고 있지만, 물질계와 인간계를 이분법적으로 설명하는 빅히스토리 서사의 고질적인 문제는 그대로이다. 인간 활동과 우주를 하나로 연결하는 근본 법칙이 실제로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운동해왔는지 선명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천체물리학자 체이손(Eric Chaisson)이 ‘에너지 흐름(energy flow)’3)의 관점을 주된 서사축으로 삼을 것을 제안해온 이유이다.

왜 에너지인가? 다른 종과 달리 언어를 사용하는 인류가 이룩해온 정보의 교환, 연결, 축적은 도시, 국가, 제국의 건설을 통한 교환 네트워크의 확장으로부터 디지털 혁명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놀라운 지구화의 성과들을 만들어낸 핵심 동력이었다. 기존의 세계사 서술은 이것을 가능케 하고 더욱 가속화했던 요인으로 인류 사회의 상호작용 패턴에 주목하면서 주로 정치경제학적, 지정학적, 생태학적, 문화학적 차원에서 접근해왔다(박혜정, 2012: 295-327). 그러나 정보를 인간의 문화적 진화의 산물로 간주하고 정보의 내용적 측면만 중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에너지 흐름의 시각으로 들여다보면, 인간의 정보 축적 활동은 우주적 진화 과정의 첨단에 위치해 있다. 수학자 셰넌(Claude Shannon)은 일찍이 어떤 정보의 예측 가능성이 높을수록 그 정보를 저장할 공간은 줄어든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이를 이용해서 정보 엔트로피 값을 계산하는 수식을 만든 바 있다. 오늘날 데이터 과학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는 셰넌의 수식은 정보 교환/축적과 인간의 에너지 흐름 지배력 강화 간의 밀접한 관계는 물론이고 지구화로 절정에 달한 우주의 복잡도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 척도로도 활용될 수 있다.

그러면 인간이 에너지 흐름의 지배력을 강화해온 이야기는 왜 과학혁명이나 산업혁명 대신에 우주의 역사에서 시작해야 할까? 단적으로 말해서, 인간의 에너지 흐름의 지배는 우주 공간에 최초의 별들이 형성됨으로써 생겨난 ‘새로운’ 에너지 흐름의 연장선 위에서 가능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빅뱅 직후의 초기 우주는 그 높은 온도로 인해서 잠재 에너지가 골고루 분배된 낮은 엔트로피의 상태에 있었지만, 우주의 온도가 식으면서 닫힌계로서의 우주의 엔트로피는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이처럼 증가하는 엔트로피의 압력을 거슬러 좀 더 크고 복잡한 질서를 창출하는 첫 반전은 별들의 탄생과 함께 일어났다. 국지적으로 외부로부터 에너지 유입이 이루어지는 비평형적 열린계에서는 엔트로피와 에너지 흐름이 더욱 가파르게 역전되었는데, 바로 태양으로부터 에너지가 유입되는 지구에서 그러했다. 인류의 출현에 이르는 지구상의 생명현상은 이러한 열린계로서의 지구 시스템 속에서 가능한 혁명이었다. 에너지 흐름 차원에서 이러한 진화 과정은 [그림 1]의 그래프로 한눈에 파악될 수 있다(Chaisson, 2014: 6).

[그림 1]

특정 시스템의 진화로 본 에너지 일률밀도

그래프 상에서 인간 사회의 에너지 흐름은 수직 상승해왔다. 결국, 지구화를 추동해온 인간 지식의 축적과 연결은 새로운 기술, 새로운 공동체, 생물권과 지질권의 에너지를 지배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 간의 피드백 메커니즘의 산물이었다. 신석기 농업혁명으로 인간은 광합성을 통해 축적된 생물권의 에너지를 더 많이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가능해진 인구 증가 덕분에 인간은 마을, 도시, 국가, 제국 건설을 통해서 더 크고, 더 조밀하고 더 긴밀히 연결된 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었다. 특히 두 세기 전 인류는 수억 년 동안 지질권에 축적된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무기물 에너지 혁명을 통해 더욱 광대한 규모의 에너지 흐름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도달한 ‘인류세’의 인간은 마침내 지질학 및 생물학적 거대주기의 에너지에 맞먹을만한 에너지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Jinkina et al., 2019: 6).

빅히스토리는 일찍이 맥닐이 지향했던 이야기, 즉 인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더 큰 진화의 이야기의 일부임을 복잡성의 증가, 에너지 흐름, 사회적 중력, 집단학습과 같은 도구적 개념을 활용하여 대담하게 그려냈다. 그러나 빅히스토리는 에너지 흐름을 주된 서사 축으로 삼더라도 기본적으로 빅뱅 때 결정된 근본 법칙을 기원으로 설정하는 이야기 방식이기 때문에, 일방향적이고 일반적인 법칙성을 강조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결국 빅히스토리를 통해 역사의 기원이 우주 공간으로 크게 확장되었지만, 그곳에서 발견한 근본 법칙이 인간의 주체성(agency) 자체를 대신하거나 설명해줄 수는 없다는 것은 여전히 미제로 남아있다. 인간의 주체성 문제는 인간이 문화적, 생물학적 범주를 뚫고 지질적 혹은 지구물리적 힘(geological/geophysical force)으로 등장한 인류세에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다음 장에서는 인류세 시대에 필요한 종합적 인간 이해에 대한 논의에 앞서서 빅히스토리와 유사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한층 섬세하고 깊은 이해를 추구하고 있는 깊은 역사의 방법을 먼저 살피고자 한다.

3.2 깊은 역사(Deep History)의 방법

깊은 역사는 빅히스토리와 함께 역사시대를 넘어서 길고 거대한 규모의 인류 역사를 대상으로 삼는 거대서사의 복원을 추구하는 학문 분야이다. 빅히스토리가 빅뱅과 인류의 우주적 기원을 출발점으로 삼는 우주론적인 강조점을 갖고 있다면, 깊은 역사의 초점은 인류학적이다. 깊은 역사 연구의 설계자로 꼽히는 스메일(Daniel Lord Smail)은 하버드 대학의 중세사가로서, 인류의 먼 조상에서 출발하여 진화생물학과 인류사, 정확히는 인간 뇌의 신경역사(neurhistory)와 문화사를 결합시키는 혁신적인 발상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Smail, 2008). 깊은 역사는 우주적 규모에서 인간을 내려다보는 시선의 방향을 뒤집는다. 즉 인간 뇌와 인간 생물학(human biology)을 통해 지구 생태계의 진화를 들여다보는 동시에 인간 생리, 심리, 행동과 이에 기반한 인간의 문화, 제도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를 추구하는 접근법이다. 여기서 ‘깊은’은 인류의 조상 호미닌이 출현한 260만 년 전부터 시작하는 시간적 깊이를 일차적으로 의미한다.

깊은 역사의 획기적인 의미는 오랫동안 역사학을 지배해온 자연사와 문화사의 철저한 분리를 극복하고 궁극적으로 다윈 혁명도 붕괴시키지 못했던 역사학의 ‘인간 예외주의(human exceptionalism)’에 도전하는 데 있다. 깊은 역사의 방법은 최근의 자연과학, 고고학, 인류학의 성과를 사용하여 자연 시스템과 문화 시스템을 동일 현상으로 읽어내는 것이다. 근대 역사학은 ‘문서 없이는 역사도 없다’는 19세기 역사주의적 모토와 더불어 역사를 문화와 자연, 정신과 몸, 자유와 결정주의 간의 끊임없는 싸움으로 규정해왔다. 다윈 혁명은 인간의 사고를 신학적 인식틀에서 해방시켜주었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대중선동적인 사회적 진화론을 제외하면 사회과학과 인문학이 인간 진화의 문제를 진지하게 지적으로 논의한 적은 없다. 스메일과 문화인류학자 슈리악(Andrew Shryock)은 최근 다윈 이후 정교해진 진화론부터 고고학, 진화생태학, 화석인류학에 의해 개발된 분석기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깊은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엄청난 수준으로 발전한 오늘날, 자연 시스템과 문화 시스템에 대한 통합적 시각과 연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간주한다(Shryock and Smail, 2011: 9, 12).

자연사와 문화사의 통합의 관건은 어느 한쪽의 시각에 기울어지는 것을 철저히 거부하는 세밀한 균형 감각이다. 1990년대 뇌과학의 획기적인 발전과 함께 우리는 뇌의 수많은 특징과 함께 뇌와 몸과의 화학적 반응관계가 오랜 진화, 즉 자연선택의 역사의 산물임이 알려졌고, 역사학 내에서도 ‘생물학적 전환’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Fitzhugh and Leckie, Jr., 2001: 58-81). 문제는 어떤 종류든 변치 않는 인간의 조건을 상정하고 과거의 진화적 특성을 토대로 현재의 인간 행위를 판단하려는 과도한 생물학적 전환이다. 2장에서도 지적한 바 있듯이 빅히스토리 역시 자연과학 우선주의나 결정주의적 시각에 경도될 위험성을 안고 있으며, 빅히스토리의 인문학적 전환은 바로 이 지점에서 앞장보다 근본적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다. 역사학자들이 간과해온 우주적 과거를 발굴하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지만 그것을 인간적인 모든 것을 비추어 판단할 수 있는 거울로 사용한다면 이는 또 다른 도그마를 낳을 뿐이다.

실제로 빅히스토리를 포함한 ‘거대 이야기(The Great Story)’ 운동4),의 열성 지지자들은 우주적 시각 혹은 진화의 역사로부터 출발해서 ‘하나의 이야기를 요청하는 하나의 세계’를 주장하거나, 보편적 인간성을 주장하기까지 한다(Rue and Goodenough, 2009; Swimme and Tucker, 2011). 거대한 이야기 운동의 출범에 직접적인 영감을 제공한 『사회생물학』과 『통섭』의 저자 윌슨(Edward O. Wilson) 역시 인간 본성과 사회심리학, 자유의지와 결정주의, 과학의 통일과 같은 문제들의 논의하는 과정에서 많은 오해의 소지를 남겼다(Sideris, 2016: 94)5).

깊은 역사는 빅히스토리나 다음 장에서 살펴볼 인류세 개념과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종(種)적인 이해로부터 출발하지만, 인간에 대한 본질주의적 이해나 인간적 특성의 환원주의적이고 동질적 묘사를 경계한다. 이러한 세밀한 반대균형을 위해 깊은 역사가 방법론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생물의 발생을 점진적 분화의 산물로 이해하는 ‘후성설(epigenesis)’이다. 사회생물학자와 유전학자들은 진화 과정에서 적응(adaptation)을 주로 강조하면서 선택적 진화 혹은 굴절적응(exaptation), 부산물(spandrel)6),, 단속 평형(punctuated equilibrium)7),은 오랫동안 백안시해왔다. 모든 특성과 행동이 적응의 결과물이고 모든 적응은 유전자에 암호화되어있다는 내용의 다윈 진화론과 멘델 유전학의 근대적 종합 테제를 편향적으로 원용해온 결과였다(Smail, 2008: 126, 128, 130).

1979년, 고생물학자 굴드(Stephen J. Gould)와 진화생물학자 르원틴(Richard Lewontin)은 적응의 절대 우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특성이 적응의 산물이라는 사회생물학의 적응주의 테제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이 주장한 ‘팡글로시안 패러다임’에 의하면 우리의 코는 안경을 쓰기 위해 진화하지 않았고 안경 쓰는 행위를 위한 유전 정보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인간은 자연선택의 산물로 설명될 수 없는 수많은 행동들에 뇌를 사용하는데, 우리 뇌가 안경을 쓰는 행위를 비롯해 잡다한 행위들을 망라할만큼 크고 복잡하게 진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굴드는 이러한 과정을 1981년에 ‘선택적 진화’로 명명했다.8)

인간과 동물 모두에서 일어나는 선택적 진화란 애초에 특정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진화했지만 나중에는 완전히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게 된 특성을 의미한다. 특히 인간 뇌는 적응성의 기능들을 계속 수행하는 것 외에 문명사회 속에서 수많은 선택적 진화를 진행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선택적 진화의 한 가지 강력한 동력이 ‘재미’인데, 인간 뇌는 동물과 비교될 수 없는 수준으로 재미있는 행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되먹임 시스템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좋은 소설을 읽거나 강렬한 영화를 보면 감정으로 인해 몸이 전율케 되는 것은 순전히 선택적 진화의 결과이다(Smail, 2008: 127). 인간의 문화와 문명은 바로 이러한 신경생리학적 기초 위에서 가능했고, 거꾸로 인간의 문화와 문명은 오늘날 우리 인간의 형태(phenotype)와 형질을 결정지었다. 스마트폰을 도구가 아닌 뇌와 신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장기처럼 사용하는 ‘포노사피엔스’라는 신인류의 등장은 디지털 문명의 산물이다(최재붕, 2019). 따라서 생물학과 문화학은 전적으로 수렴적 관계에 있다.

적응주의자와 선택적 진화론자들 간의 논쟁은 지난 30여 년간 치열하게 이어졌지만, 사실 다윈의 진화론 자체는 종의 본질적, 보편적 속성을 주장할 근거를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다윈에 따르면, 종이란 자연적 본질을 갖는 고정된 단위가 아니며, 다리와 지느러미와 같은 형태학적 단위에도 본질적 정체성을 상정할 수 없다. 미생물학이나 생화학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들로서는 하나의 집단적 행위자이자 별개의 단위로서의 인간에 대한 종적인 차원의 시각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미지인데, 이들이 보기에 인간이란 산호초와 마찬가지로 복수의 종들의 집합체이다. “우리 인간의 DNA의 99.9%는 일치하지만, 우리의 미생물 세포들은 50%밖에 유전적 개요를 공유하고 있지 않다.” 미생물학과 생화학의 시각으로 말하자면 인간을 ‘우리’라고 부르기도 어렵다(Thomas, 2014: 1595).

깊은 역사의 균형추는 역사서술에서 배제되어왔던 자연을 새로운 과거로 발굴해서 크리스천의 빅히스토리처럼 ‘마트료시카 인형’의 가장 안쪽의 작은 인형으로 추가하는 데에 만족하지 않는다. 깊은 역사의 종착지는 인간과 뇌의 진화에 대한 정교한 독해를 통해서 역사학을 오랫동안 지배해온 자연과 문화의 이분법을 해체하고, 인간을 자연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의 통합적 산물, 즉 자연적 시스템이자 문화적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깊은 역사적 이해는 인류의 진화 과정을 인간의 뇌와 신체, 생태계, 문화적 요소로 통칭할 수 있는 음식, 친족 관계, 도구, 언어와의 ‘공진화적 소용돌이(coevolutionary spiral)’로 파악하는 과정에 도달하게 된다(Shryock and Smail, 2011: 12, 16). 여기서 깊은 역사가 강조하는 것은 생명과 진화의 기원이 아니라 프랙탈 구조의 소용돌이이다. 기원에 집착할수록 근대 역사서술이 그랬듯이 일방향적이고 점층법적 서사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복잡성의 증가를 이야기하는 빅히스토리는 이런 측면에서 근대의 진보사관과 닮아있다. 빅히스토리와 달리 깊은 역사는 선택적 진화의 계기로서 문화와 문명적 현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법칙이 아닌 인간의 주체성, 역사의 우연성, 변화, 변이의 경로종속적 성격을 전면에 부각시킬 수 있는, 즉 인문학적 논의와 접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확대해 놓았다.

3.3 인류세와 역사기후학

빅히스토리의 인문학적 전환을 위한 마지막 컨셉은 인류세와 역사기후학을 활용한 전환이다. 지구가 날로 뜨거워지면서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도 1980년대 이후로 급격히 뜨거워졌다. 그 대표적인 산물이 ‘인류세’이다. 인류세 개념은 2000년 멕시코에서 있었던 학술대회에서 기후화학자 크루첸(Paul Crutzen)이 즉흥적으로 제안하면서 탄생했다. 그러나 지질시대 개념으로서의 인류세는 여전히 지질학적 입증이 필요한 가설에 불과하다. 새로운 지질시대가 국제지질과학연합(International Union of Geological Sciences: IUGS)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를 입증할만한 새로운 지층의 존재가 입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지질학자가 아닌 기후화학자의 제안으로 출발한 독특한 이력에 걸맞게, 인류세 개념은 크루첸이 제안한지 20년이 지난 지금 지질학을 넘어서 학문적, 여론적으로 공통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그럼에도 빅히스토리나 깊은 역사에서 기후변화나 인류세는 아직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 인류세는 완신세(Holocene) 이후의 새로운 지질연대이기에, 빅히스토리의 30%도 차지하지 않는 인류사의 부분 중에서도 현대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현재 인류세의 기원 논의는 대략 9가지의 주장으로 나뉘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연구자들이 가장 많이 동의하는 인류세의 기원은 1950년대의 ‘대가속기(Great Acceleration)’이다. 따라서 빅히스토리에서 인류세에 큰 비중을 두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깊은 역사는 빅히스토리보다 상대적으로 최근 역사를 다루기에 인류세 담론과의 접점이 훨씬 넓을 수 있지만, 지질학적 행위자로서의 인간은 깊은 역사의 일차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다만, 빅히스토리는 최근에 들어와 인류세와 기후변화의 문제를 각자의 서사틀 속에 포함시키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9)

그러나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인류세나 기후변화의 논의 비중 자체가 아니라 누차 언급해온 빅히스토리의 서사 구조, 즉 전반부의 자연과학적 설명과 후반부의 인문학적 설명이 상호 고립적인 병렬구도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크리스천의 『시간의 지도』에서 대기권(atmosphere)은 1부의 ‘지구의 기원과 역사’라는 장에서 대기권의 형성(116~120쪽), 2부 ‘지구의 생명’에서 산소 비중이 적었던 초기 지구의 대기권, 빙하기(216~219쪽)에 관한 내용에서 주로 다루어진다.(크리스천, 2013) 그러나 종의 역사를 지나서 인간의 역사로 진입하면서 대기권 혹은 기후는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진다. 즉 기후뿐만 아니라 전반부의 중요한 축을 구성했던 지질생태학적 시각은 역사시대의 논의에서 사라지고 기후를 포함한 대기권 변화와 인류사는 유리된다.

그러나 기후재난과 대기권 변화는 인류의 삶에 늘 큰 영향을 미쳐왔고, 지구온난화에 이르는 대기권 변화는 산업화 이후 가속화된 자본주의 발전과 사회적 불평등과 밀접한 관계에서 새로운 특이점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질생태학적 시각과 설명의 퇴장은 오늘날 지구온난화와 환경 위기의 발언대 확대에 치명적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근본적인 대처를 포함한 모든 논의는 단기적인 시간틀이나 인간과 사회 중심적 시각에 입각해서는 한 걸음도 제대로 떼기 어렵다. 지구온난화 시대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질생태학적 시각을 역사시대에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는 데 깊숙이 들여오면서도 이제 지질적 행위자가 되어버린 인간의 새로운 주체성을 진지하게 논하는 작업이다.

그러면 인류세 담론은 왜 빅히스토리를 인문학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유용한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가? 인류세는 지질연대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지질학적 시간의 척도로서가 아니라 지구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력을 측정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인류세는 맥닐(John R. McNeill)과 같은 환경사학자들을 비롯한 인문학자들이 대거 참여하여 관련 담론을 이끌고 있는 유일한 지질연대 개념이다. 인류세 개념이 지질학적 검증이 완료되기도 전에 빠르게 문화적 개념으로 이미 학계에 정착하게 된 것은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강력한 호소력 때문이다. 지구화학자 랭뮤어(Charles H. Langmuir)와 브로커(Wally S. Broecker)가 “인간 문명은 최초로 단일 종에 의한 전 지구적 공동체를 구축했고, 수천 년간의 자원축적물을 파괴했으며, 대기권 구성인자를 변화시켰고 4차 행성 에너지 혁명과 대량멸종을 유발했다. … 행성적 차원의 변화를 가져올 잠재적 가능성은 거의 생명의 출현 혹은 산소의 증가가 일으켰던 변화만큼이나 크다”고 말할 때,(Chakrabarty, 2018: 26) 이들의 주장은 이미 이들이 인용하고 있는 과학적 사실들의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엄청난 호소력을 발휘한다.

더 나아가 인류세 개념은 여타 학문적 개념과 달리 학문의 경계를 넘어 언론과 여론에서도 활발히 논의되고 이러한 공론적 논의가 거꾸로 학문 담론에 강하게 유입되면서, 기존의 학문과 문화적 공론 간의 경계까지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공론적 열기와의 밀접한 공명 덕분에 현재 인류세 담론은 과실과 책임에 관한 도덕적 논쟁에 압도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자본세(Capitalocene)’와 ‘좋은 인류세’ 논쟁을 꼽을 수 있겠다.

그러나 인류세 담론이 빅히스토리의 인문학적 전환의 고리로 작용해야 할 보다 실질적이고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인류세 담론의 확산과 더불어 역사, 정치, 사회적 논의조차도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서 행성 중심적 시각과 사고틀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성이 폭넓은 공감을 얻게 되었지만, 아울러 지구에 미치는 인간 활동의 영향력이 급증한만큼 인간과 사회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더더욱 중요해졌다. 자본세 담론의 주장대로 도덕적 죄의식과 책임감을 인류 전체의 종(種)적인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은 책임의 주체를 오히려 흐릴 수 있다는 경각심도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자본세와 같은 개념을 매개로 또 다른 세계정치적 분쟁과 갈등의 소모전을 치르기에는 현 기후변화 상황이 너무 시급하고 위중하다. 보다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주체성의 모색 차원에서도 우리는 책임 주체 집단의 구분보다는 집단적 주체로서의 인류의 대응에 주목하여 집단학습의 메커니즘을 강화하는 쪽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것이 역사기후학(Historical Climatology)이라는 연구 및 교육 분야이다. 역사기후학은 세 가지 방향의 연구로 동시에 진행되고 있고, 관련 연구 성과에 바탕한 강의 개설도 빠른 증가세에 있다.10), 근대 기상학이 확립되기 전의 문서자료에 기반하여 과거 기후를 복원하는 작업, 과거 기후변화상과 이변이 사회, 경제, 농업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는 작업, 그리고 기후의 인식에 대한 문화사적 연구가 이에 해당한다.(Brázdil et al. 2005: 366) 빅히스토리의 인문학적 전환과 관련하여 가장 유의미한 연구 방향은 마지막의 기후의 문화사이다. 첫째나 둘째 유형의 연구에만 머문다면 자연과학 중심의 빅히스토리의 서사 방식을 크게 벗어나기 힘들다. 과거 기후의 재구성이 목적지나 출발점이 되는 첫째와 둘째 유형의 연구의 경우, 인간 사회에 미치는 기후변화의 결정주의적인 영향이 주로 부각되고, 주체로서의 인간의 위치는 축소되기 쉽다. 그러나 지구온난화의 위기에서 더 중요한 관심사는 기후변화에 대한 인간과 사회의 취약성과 탄력적 회복력 모두 균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일차적으로 자연 현상이지만, 동시에 기록, 재현, 집단기억을 통해 문화적으로 주조, 굴절, 복제되는 사회, 문화적 구성물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영어권 연구자들은 위험(hazard)과 재해(catastrophe)을 구분하면서 ‘자연재해’라는 표현을 문제시한다.(Freytag, 2006: 397) 자연계의 극단적 사건을 재해로 인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기 때문이다. 결국 기후의 문화사적의 입장에서 보자면, 기후변화의 후자적 측면에서 실천적, 생활양식, 구조적 차원의 사회변화들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것이 기후변화 자체를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기후위기의 해법도 여기서 모색되어야 한다.

4. 결론

빅히스토리를 과학기술의 급변의 시대에 조응할 수 있는 융합교양의 화두로 삼는 것은 분명 교양교육의 21세기 학문적 지도를 다양하게 그리는 데 유용할 수 있다. 물리학에서 역사학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총동원되어서 현생 인류와 세계의 기원을 규명, 설명하려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융합의 규모가 곧 가장 바람직한 융합교양의 내용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교양의 핵심이 여전히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의 종합적 역량을 증진한다는 고전적 목표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빅히스토리는 인문학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현재 빅히스토리의 컨셉은 과학교양의 강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빅히스토리의 인문학적 전환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는 빅히스토리와 마찬가지로 시공간적으로 거시적이고 학제융합적인 접근을 하면서 패러다임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깊은 역사와 인류세 담론에서 얻을 수 있다. 깊은 역사와 인류세 담론은 빅히스토리의 제설혼합주의적 특성과 달리 인간의 주체성과 문화에 대한 주목과 성찰로부터 시야를 확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제공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21세기적 정의에서 불가결한 전제조건은 그가 이미 지질적 동인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행위와 문화가 이제껏 지향해온 인류 사회의 문제 해결이라는 목표는 전 지구적 내지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인류의 미래뿐 아니라 지구의 미래는 과학기술 발전에 달려있다. 좋은 인류세의 주장처럼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과학기술은 충분히 개발될 수 있다. 그러나 기후역사학 연구들이 보여주었듯이 인류의 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해온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사용을 결정하는 인간들 간의 관계와 문화적 틀이었다. 21세기 교양교육은 이제까지의 인간중심적인 인간의 이해를 극복하고 지구, 환경, 기술과의 관계 속에서 한층 개방적으로 재구성된 유랑적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기여해야 할 것이다. 빅히스토리, 깊은 역사, 인류세 개념은 이러한 새로운 인간상과 이를 연구하기 위한 학문으로서의 교양교육에 ‘커다란’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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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1)

미국에서 시작된 NBIC 기술융합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하면서도 미국의 인간능력증강(Human Enhancement)에 주로 맞추어진 초점을 경계하고 기술의 사회적 영향과 정책적 대응을 고려하는 차별적인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https://cordis.europa.eu/project/id/28837/reporting/es; https://cordis.europa.eu/project/id/28334/reporting/pl (2020년 11월 20일자 확인).

2)

생태학의 4가지 법칙은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연결되어있다, 모든 것은 어디론가 가야만 한다, 자연이 최선을 알고 있다, 공짜 점심 같은 것은 없다”이다: Commoner, 1971: 29-42.

3)

에너지 흐름이란 에너지 일률밀도(energy rate density)와 거의 같은 개념이다. 단위 질량 당의 에너지 흐름을 에너지 일률밀도라 할 수 있는데, 에너지 흐름을 말할 때 암묵적으로 단위 질량 당이라는 조건을 포함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명확히 설명해주신 김항배 교수께 감사 드린다.

4)

거대 이야기는 140억 년의 우주, 지구, 생명, 문화의 진화에 관한 서사로서 우주사와 인류사, 과학과 종교를 포괄적 형태로 결합하는 방식에 기대고 있다. 빅히스토리는 이 새로운 장르 자체를 단독으로 대표하지 않으며, 우주 이야기, 진화의 서사시, 우주적 진화 등 다양한 명칭의 분파들과 나란히 이 장르를 대변하고 있다. http://thegreatstory.org/what_is.html(2020년 11월 20일자 확인).

5)

윌슨은 『사회생물학』 출간 이후 시달렸던 ‘유전자 결정론자’라는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 본성에 대하여』(1978)를 저술하여 퓰리처상 수상까지 성취했지만, 그의 생물학적 결정주의에 대한 비판은 현재까지도 끊이지 않는다.

6)

형태학적 혹은 대사학(metabology)적으로 적응적 특성에 연결된 부산물로서, 인간 두뇌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Smail, 2008: 128.

7)

종의 출현은 한 종이 조금씩 진화해서 다른 종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에 변화가 거의 없거나 매우 적은 오랜 기간의 평형상태(equilibrium)가 지속되다가 드물지만 어떤 큰 사건을 겪으면서 하나의 종이 둘로 분기하는 것과 같은 대규모 변화를 통해 일어난다고 설명한 진화생물학 이론이다: https://biologydictionary.net/punctuated-equilibrium/ (2020년 11월 20일자 확인)

8)

팡글로스 패러다임은 볼테르의 에세이 ‘팡글로스(Panglos) 박사’에서 우리의 코가 안경을 쓰기 위해 진화했다는 박사의 주장에 착안해 명명되었다. 굴드의 혁신적인 두 논문은 Gould and Lewontin, 1979: 581-598; Gould and Vrba, 1981: 4-15.

9)

본문 2장에서 참고한 크리스천의 초기 빅히스토리 책에서는 인류세라는 개념이 등장조차 하지 않지만, 최근 출간한 Christian, 2016에서는 인류세 문제를 다루는 섹션을 별도로 마련하고 있다. 참고로 빅히스토리에서는 1950년대를 인류세의 시작점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인류세 논의는 산업혁명 시대가 낳은 환경오염에만 초점을 맞추어 경고하는데 그치고 있다.

10)

Teaching Cliamte History https://www.historicalclimatology.com/features/teaching-climate-history (2020년 11월 20일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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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특정 시스템의 진화로 본 에너지 일률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