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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General Edu > Volume 14(4); 2020 > Article
대학 교양교육으로서의 인권 교육 -문학을 통한 인권 교육의 가능성

초록

전문화된 직업교육이 강화되고 시장논리가 강하게 적용되면서 대학 교육의 가치와 역할이 왜곡되는 현상에 대한 비판으로 교양교육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교양교육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인 시민교육의 중요성 또한 강조되고 있으며, 성숙한 시민의식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인 인권의식과 그에 대한 교육의 가치와 필요성 또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대학에서 진행되는 인권 교육은 대부분 법질서를 알려주는 차원의 형태로만 진행된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인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법적 권리를 알려주는 교육과 함께 인권을 문화적으로 습득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문학이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 본 연구의 요지이다. 문학은 사회적 관습이나 문화와 같이 법적 심판과 처벌의 대상이 되기에 모호한 영역까지 다룰 수 있으며, 또한 가해자=처벌, 피해자=보상과 같은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죄책감이나 반성과 같은 윤리 차원의 문제처럼 법이 관여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무엇보다 독자로 하여금 문학 작품을 통해 이런 것들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하나의 결론이나 정답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기도 하며, 스스로 옳고 그름 바람직한 태도 고민하고 선택하게 한다.
이처럼 문학은 법이 다룰 수 없거나 다루지 않는 다양한 문제를 모두 살필 수 있으며, 또한 강제적 언어로 구성된 법의 방식과 달리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합리적인 사고와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개개인의 인권감수성을 향상시키는데 최적의 방법이며, 그런 점에서 문학을 통한 인권교육은 교양교육의 의의를 충족시키기에 적합한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Abstract

Education and specialized vocational education have been strengthened over the years. For one, market logic has been strongly applied to these fields. Also, the voices calling for the strengthening of liberal arts education are getting louder. Finally, people are becoming more critical of the seemingly distorted value of a college education and its role in society. Against this backdrop, citizen education, which plays an important role in liberal arts education, has also been emphasized. Furthermore, the heightened awareness of human rights which is one of the elements composing mature civic consciousness, along with the value and necessity of educating society about these rights has also been emerging. However, most of the current human rights education at universities is limited in that it is conducted only in the form of law and order. In order to overcome this limitation, we need an education system allowing for students to learn about human rights culturally, as well as from a purely legal perspective. The main point of this study is to show that literature can accomplish this task. For literature can pinpoint various problems that the law can’t adequately deal with, and it is the best way to heighten people’s awareness and sensitivity to individual human rights. It does so by making readers find the problems by themselves, and then to engage in rational thinking and choice-making, unlike the methods used in the more legal approaches to the study of human rights, which often seem dehumanized thanks to the forced and unnatural jargon that they employ.

Key Words

Liberal Arts; Human Right Education; Citizen Education; Literature; Human Rights Sensitivity

1. 교양교육으로의 인권 교육

대학에서의 교육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직업인이나 전문가를 길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전공교육과 폭넓은 교양을 쌓고 전인(全人)으로서의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을 돕는 교양교육이 그것이다. 그러나 대학에서의 교양교육이 담당하는 역할과 그것의 목적과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진지한 사회적 논의 과정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1) 여기에 신자유주의의 가치가 사회 전체를 장악하면서부터 대학 교육 역시 시장 논리에 따라 전문화된 직업교육에만 열중하였고, 자연스럽게 교양교육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논의는 배제되어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최근 이런 왜곡된 현실 상황에 대한 비판과 성찰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다시금 교양교육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분명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논의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교양교육의 역할 중 하나는 바로 시민교육, 즉 훌륭한 공동체의 시민을 육성하는 것으로, 이는 대학 바깥 사회의 변화와 요구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대학의 교양교육이 시민성 함양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비단 요즘 우리 사회에서만 제기된 것은 아니다. “책임 있는 인간과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전인을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변종헌, 2012: 200)는 교양교육의 중요성은 1945년에 발표된 하버드대학교 교양교육위원회의 General Education in a Free Society라는 보고서에서 이미 언급된 것이다. 자유인과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기르는 것이 교양교육의 진정한 가치라는 이러한 주장은 이처럼 오래 전부터 제기된 것이지만, 전문적인 지식과 기능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는 오늘날 역설적으로 그 가치가 더욱 주목받게 된 것이다.
이처럼 대학의 교양교육이 시민성 함양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한 사회의 구성원이 민주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시민역량이라고 했을 때, 이러한 시민역량에는 윤리의식과 공동체 참여, 다문화에 대한 포용성, 평화 등과 같은 다양한 개념이 포괄되어 있다(정충대, 정해철, 2012: 136). 인권 또한 민주시민으로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인권 교육이야말로 지나친 공동체주의 내지 국가주의로 변질될 염려가 있는 시민교육에 대해 개인의 권리보장이 먼저라는 인권의식을 확보해 줄 수 있으며, 민주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연대성을 실천으로 옮기는 동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시민 교육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김녕, 2018: 148-149).
또한 학생들과 교수들의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인권 교육의 필요성과 효과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교수 90% 이상이 인권 과목을 교양과목이나 전공과목 내에서 확대하거나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학생들도 교양(98%)이나 전공(84%)에서 인권 강좌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답한 학생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였다. 또한 인권 강의를 듣고 난 학생들 중 98% 이상이 인권의식 향상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답하였다(국가인권위원회, 2014: 140). 그러나 인권 교육의 중요성과 교수⋅학생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권 교육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물론 대학에서의 인권 교육이 과거에 비해 양적으로는 확대되는 추세지만 아직도 인권 교육이 개설되지 않은 대학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2014년 고등교육기관에서의 인권 교육 실태를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우리나라 대학 중 50%는 인권 관련 과목을 한 과목도 개설하지 않았다.2)
여전히 절대적인 강좌수가 부족하다는 문제 외에 인권 교육과 관련해서 고민해야 할 또 다른 문제로는 개설된 인권 관련 강의의 대부분이 특정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많은 대학에서 교양으로 개설된 인권 강의의 과목명과 그에 따른 분류 현황을 살펴보면, ‘인권과 정의’, ‘현대사회와 인권’, ‘인권의 이해’ 등 인권 일반에 관한 내용이나 사회적 내용을 앞세운 과목이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이 ‘인권과 법’, ‘헌법과 인권’, ‘범죄와 인권’, ‘국제사회의 인권과 법’ 등 법이나 범죄와 관련된 과목이었다.3) 이러한 특징은 중⋅고등학교 교육에서부터 진행된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에서 현재 이루어지는 인권 교육 또한 법질서 교육의 차원에서 권리 개념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대부분이다.4) 즉, 인권과 관련된 지식을 설명하는 인지적 형태의 강의가 주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강의는 수업시간에 습득한 지식이 자연스럽게 실제 인권 현장에서 필요한 구체적인 행위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실제로 인권 관련 교양 강의를 진행하면서 학생들의 인권의식과 인권감수성을 살펴본 결과 인권과 관련된 기본적 권리와 이론 등에 대해서는 상당한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구체적인 행동과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의 학생들에게서 발견되는 한계였다. 다시 말해 학생들에게 인권 문제는 어디까지나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지식의 차원일 뿐 일상에서의 행동과 실천의 차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이었다.5) 법 교육을 기반으로 하는 인권 교육 방식의 또 다른 한계는 법으로 다룰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윤리나 관습, 문화 등으로 불리는 법 바깥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인권 문제는 배제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갖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권을 법적인 권리로 인식하게 하는 교육과 함께 혹은 그보다 우선하여 인권을 문화적으로 습득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일방적으로 제시되는 법 지식 위주의 강의와 법으로 규정된 문제만을 다룰 수밖에 없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한 것이다. 지식과 이론 위주의 수업에 익숙한 학생들에게는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에서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합리적인 사고와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연습이 필요하며, 아울러 법적 인권담론이 다룰 수 없거나 다루지 않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피해자와 가해자를 중심으로만 사고하는 법적 인권담론의 특성상 사건의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닌 이들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서는 소홀할 수밖에 없으며,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보상과 처벌이 법적 인권담론의 주를 이루는 만큼 사후적인 문제 해결의 형태일 수밖에 없으며, 그 또한 일회성에 그칠 수 있다는 한계를 지적할 수 있다. 인권 문제를 다루는 모든 논의의 궁극적인 목적은 애초에 인권 침해에 해당하는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법의 역할 뿐 아니라 풍부한 인권감수성을 지닌 개개인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문화적으로 습득한 인권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인권적 민감성을 신장시켜 인권적인 사회를 구성하는데 보다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으며, 법률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인간관계나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허수미, 2008: 66). 이에 본 연구에서는 개개인의 인권감수성과 인권의식을 향상시키고 인권 지향적 사회 문화를 형성하는데 있어 문학 텍스트가 훌륭한 매개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6)
법 지식을 근간으로 하는 인권 교육도 물론 필요하고 중요하다. 법으로 보장된 권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인권의식을 형성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론 중심 수업의 한계 또한 있기에 다양한 방법으로의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본 연구는 그러한 한계를 보완하는 역할로서 문학을 통한 인권교육이라는 방법론의 가능성을 확인해보고, 더 나아가 문학을 통한 인권 교육만이 접근할 수 있는 부분과 그것의 의미를 고찰하고자 한다.7)

2. 법의 경계 너머에 만연한 일상의 인권침해

  •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 (제32조 1항)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제32조 3항)
헌법상으로는 노동자의 권리를 이렇게 규정해두고 있지만, 사실 이 짧은 문장은 현실의 노동현장에서는 그 힘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 분명 인권을 침해하는 문제적인 행동이지만 관행이나 문화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정당화되고 묵인되면서 법의 위력을 넘어서는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강명의 소설 「알바생 자르기」는 법조문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서 노동 현장에 만연해 있는 부조리한 관습을 보여주며 우리가 ‘당연’이라 불렀던 모습들에 대해 의문을 갖도록 한다. 제목 그대로 알바생 혜미가 회사에서 해고되는 과정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이 소설에서 독자의 눈에 가장 먼저 띄는 것은 직장 상사들의 눈에 비춰진 알바생 혜미의 근무태도다.
  • (가)

    ― 거의 다 왔는데 좀 늦을 것 같아요. 지하철이 중간에 멈췄어요. 죄송합니다.
    15분가량 지각한 여자아이는 은영을 향해 고개를 한번 숙이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날은 오전에 일이 많아서 화장실을 갈 틈조차 없었다. 은영이 떠안게 된 회계 업무는 분량 자체는 대단치 않았지만 일들이 월말에 몰린다는 점이 문제였다. 고개를 들어 건너편을 봤더니 여자아이가 무료한 표정으로 마우스 버튼을 까딱까딱 누르는 모습이 보였다. (또 뮤지컬과 일본 여행 정보 검색하나? 이번 마감을 하고 나서 천천히 회계일을 좀 가르쳐 볼까?)(장강명, 2019: 16-17)
    (나)
    ”내가 사장 달고 서울에 와서 처음 거래처 사람들 만나고 인사할 때 그중 한 명이 그러더라고. 문 앞에 있는 아가씨 자르라고. 회사에 들어온 고객들이 그 아가씨 얼굴 보고 첫인상 안 좋게 갖는다고 말이야. 그런데 내가 그 아가씨를 처음 봤을 때 똑같이 생각했거든. (…) 내가 앞에서 어슬렁거리니까 최 과장은 뭐 시키실 일 있느냐고, 급한 거면 자기가 하겠다고 하잖아. 나는 여태까지 그 아가씨가 그러는 걸 본 적이 없어. 사무실에 손님이 와도 불러서 시키기 전에는 차 한잔 내오지를 않아.”(장강명, 2019: 21)
알바생 혜미는 결국 해고 통보를 받는다. 근무 기간 2년을 채워서 정규직으로 만들면 회사에 부담이 된다는 것이 해고의 명분이었지만, 진짜 이유는 잦은 지각과 불성실하고 불친절한 근무 태도였다. 그런데 이런 갑작스러운 해고 상황에 대부분의 독자들은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위 인용문과 같은 부분을 통해 혜미의 불성실하고 나태한 모습을 계속 접했기에 독자들은 혜미의 해고 통보가 전혀 당황스럽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여전히 ‘노동자’보다는 ‘근로자’라는 단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지하철 고장을 이유로 잦은 지각을 하고, 사장을 비롯한 회사 사람들에게 불친절한 표정을 보이며, 다른 직원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점심도 매번 혼자 먹는 혜미의 행동은 직장 생활에는 부적합한 것이며, 따라서 해고의 사유로도 충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8)
심지어 해고 과정에서 혜미가 보이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해고 통보를 하기 미안했던 상사 은영은 혜미를 고급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서 밥을 사주고, 선물 받은 뒤 한 번도 쓰지 않은 명품 스카프를 작별 선물로 건네기까지 하지만 돌아오는 혜미의 반응은 정식으로 해고 통보서를 주지 않았기에 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혜미는 3개월치 임금을 현금으로 받고 사직서를 쓰는 권고사직의 형태로 처리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은 성실히 해내지 않은 채 자신의 권리만 앞세우는 혜미의 모습은 ‘근로자’로서의 자의식으로 충만한 이들에게는 황당함을 넘어 낯설기까지 하다.
그리고 두 달이 더 지났을 무렵 또 한 번 혜미는 은영을 비롯한 직장 상사와 독자들을 당황하게 한다. 자신이 회사에 다니는 동안 4대 보험에 가입이 되지 않았으니 그만큼의 돈을 자신에게 달라는 요구를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해고가 아니라 권고사직의 형태로 그만두었기에 3개월치 임금을 더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4대 보험료를 부담하지 않은 것을 빌미로 그 돈까지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혜미의 요구는 “검은머리 짐승은 거두는 거 아니라더니”라는 은영의 말처럼 당돌함을 넘어 염치없는 행동으로까지 비춰진다. 결국 은영은 사장에게 알리지 않고 자신의 사비로 얼마간의 돈을 주는 것으로 조용히 상황을 수습한다. 게다가 합의금을 받으러 온 혜미는 경력증명서에 자신의 직함을 ‘스태프 어시스턴트’가 아닌 ‘어드미니스트레이터’로 바꿔 줄 것을 요구하며 또 한 번 은영을 당황하게 만든다.
근무태도는 물론이고 해고 과정에서 혜미가 보여준 일련의 행동은 주어진 임무는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권리만 요구하는 이기적이고 염치없는 모습이었다. 어딘가에 고용되어 월급을 받는 자라면 마땅히 주어진 모든 업무에 성실히 임하며, 상사나 동료들과도 원만한 인간관계를 가져야 하고, 개인의 이익보다는 회사의 이익과 발전을 우선시하는 것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미덕으로 인정받으며, 더 나아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알바생 자르기」는 초점화자라는 서사적 장치를 활용해 우리 사회의 이러한 관행을 소설 속에서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읽히게끔 만든다. 초점화자란 “서사적 관점을 방향 짓는 시점을 소지한 등장인물”(패트릭 오닐, 2004: 147)로, 독자가 텍스트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서사 장치 중 하나다. 독자는 대개 작가가 설정한 의도에 따라 특정 인물의 시각을 객관적 시각이라 믿으며, 그의 시선에서 텍스트 속의 사건과 다른 인물들을 바라보게 된다. 따라서 초점화자란 “독자가 제시된 서사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력한 텍스트 내적인 조작 장치”(패트릭 오닐, 2004: 168)인 것이다.
「알바생 자르기」의 초점화자는 독자들의 기대와 달리 혜미가 아니라 혜미의 상사 은영이다. 일반적으로 인권 침해 문제를 다루는 사회과학적 연구는 대부분 피해자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그러나 이 소설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라 할 수 있는 인물을 초점화자로 내세운다. 그렇다면 독자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서사 장치인 초점화자를 굳이 은영으로 설정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 (가)

    ”뚱한 표정인 건 그렇다 쳐도, 지각은 왜 그렇게 자꾸하는 거야? 아침에 자리가 자주 비어 있더라.” (…)
    ”보면 뭐 일을 하는 거 같지도 않아요. 뚱한 얼굴로 맨날 무슨 뮤지컬 사이트랑 일본 여행 사이트 같은 거 찾아 보고 있어. 점심때도 맨날 혼자 나가서 밥 먹고. 커피점에 혼자 않아서 책 읽고 그러는 거 내가 자주 봤어요.” (…)
    ”그 아가씨 그거 안 되겠네. 잘라! 자르고 다른 사람 뽑아!”
    사장의 말에 다 같이 웃었다. (자기한테 그럴 힘이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은가 봐.) 그날은 거기까지였다.(장강명, 2019: 15-16)
    (나)
    ”그 아가씨가 하는 일, 몰아서 하면 하루에 네 시간만 해도 충분한 거 아냐?”
    ”그렇긴 합니다.”
    ”그러면 저 아가씨한테 연봉을 60퍼센트 줄 테니 오전 근무만 열심히 하고 가라면 어떨까? 우리는 인건비 절감해서 좋고, 저 아가씨도 그 시간에 뭐 다른 걸 준비할 수 있으니 좋지 않겠어? 공무원 시험 같은 거.”(장강명, 2019: 19-20)
    (다)
    ”걔 불쌍하다고, 잘 봐주려고 했었잖아. 가난하고 머리가 나빠 보이니까 착하고 약한 피해자일 거라고 생각하고 얕잡아 봤던 거지.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든. 걔도 알바를 열몇 개나 했다며. 그 바닥에서 어떻게 싸우고 버텨야 하는지. 걔도 나름대로 경륜이 있고 요령이 있는 거지. 어떻게 보면 그런 바닥에서는 우리가 더 약자야. 자기나 나나, 월급 떼먹는 주유소 사장님이랑 멱살잡이해 본 적 없잖아?”
    부아가 치밀었지만 남편 말이 옳았다. (…) 사람이 제일 무섭다, 정말.(장강명, 2019: 40)
인용문에 나타난 이런 상황은 혜미의 시선에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은영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만큼 혜미의 시선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상황들, 가령 직장 상사들이나 사장의 평소 언행과 생각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술자리에서는 즉흥적으로 직원의 해고가 결정되고, 효율성을 이유로 노동시간과 임금은 손쉽게 조정된다. 그리고 소위 ‘알바생’으로 불리는 비정규직들은 그저 가난하고 머리 나쁘며, 불쌍하고 착한 존재, 그래서 ‘잘 봐줘야 하는’ 대상으로 여길 뿐이다. 은영을 비롯한 상사들로서는 이런 생각이나 언행이 그저 술자리에서 오가는 가벼운 농담이나 평소 아무 생각 없이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이겠지만, 이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이들의 일상적인 대화나 행동이 문제적이라는 사실은 소설 중반 이후부터 등장하는 혜미의 목소리를 통해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 법규를 찾아보니 아르바이트생에게도 퇴직금을 지급하게 돼 있었다. 일주일에 열다섯 시간 이상, 1년 이상 일한 피고용인이라면. 해고는 반드시 서면으로 통보해야 했다. 명확한 이유를 명시해서, 30일 전에. 회사가 이걸 어기면 지방노동위원회에 민원을 접수하면 된다. 그러면 사정에게 출석요구서가 날아간다. (…)

    ”과장님, 제가 회사에 다니는 동안 4대 보험에 가입이 되지 않았더라고요. 알바몬에서 상담을 받아 보니까 그게 불법이라며, 이런 경우에 보험취득신고 미이행으로 회사를 고소할 수 있다고 합니다.” (…)
    ”고소할 필요도 없대. 무슨 노동청? 노동위? 거기다 진정만 넣으면 된대. 보험에 따라서 페널티가 다 다른데, 건강보험은 벌금이 있고, 산재보험이나 고용보험은 벌금 없이 과태료만 있대.”
    ”그러면 그 여자애가 하는 말이 다 맞는 거야?”
    ”응. 황당하지?”(장강명, 2019: 35-37)
소설 중반 이후부터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는 혜미의 목소리는 은영의 시선에서만 봤을 때는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사실과 정보를 전한다. 혜미가 전하는 정보에 따르면 서면 해고 통보서나 퇴직금, 4대 보험료에 대한 요구는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당연한 권리에 속하는 것들이며, 따라서 이것들을 요구하는 행위를 결코 이기심이나 염치의 문제로 간주할 것이 아니다. 혜미는 자신에게 주어진 당연한 법적 권리를 요구한 것이며, 그러한 혜미의 행동은 문제될 것이 없을 뿐 아니라 문제 삼아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혜미로부터 이런 사실을 전해 듣기 전까지 독자들은 은영을 비롯한 직장 상사들의 언행이 불법에 해당하거나 잘못된 것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오히려 독자들은 혜미를 불편하고 부정적인 인물로 평가하기까지 한다. 상사들의 무의식적인 대화나 행동, 비정규직을 대하는 태도 등이 대부분 관행이나 문화라는 이름으로 지금껏 정당화되고 암묵적으로 용인되어 왔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독자들 또한 그런 관행과 사회 분위이기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기에 은영의 시선을 통해 전달되는 상황과 표현들에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으며 더 나아가 피해자라 할 수 있는 혜미를 오히려 부정적으로 봤던 것이다. 이렇게 은영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명백하게 잘못된 상황들조차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겼던 독자들은 혜미가 제 목소리를 내면서 비로소 자신들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것들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만약 이 소설이 피해자 혜미의 시선을 통해 서술되었다면 이른바 ‘갑’에 해당하는 직장 상사나 사장이 일상생활에서 보여주는 문제적인 행동과 부조리한 관행 등은 오히려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없었을 것이다. 단지 혜미가 느끼는 피해와 고통만 부각되어 독자로서는 피해자를 향한 연민과 동정의 감정만이 강하게 기억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해자를 향한 그런 감정은 일시적일뿐 아니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현실 세계에서 소설에서와 같은 ‘알바생 자르기’가 재현되지 않기 위해서는 알바생 혜미가 해고당한 이후에 부당함을 제기하며 법적으로 심판하고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해 애초에 그러한 부당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알바생 자르기」는 은영을 비롯한 직장 상사들이 관행이나 사회적 분위기라는 이유로 아무런 죄책감 없이 당연하게 답습하고 있는 문제적인 언행과 태도가 바로 혜미가 처한 상황이 발생하는 근원적인 원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이를 비판한다. 법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은 채 아슬아슬하게 그 경계선 위에서 자행되는 인격모독과 인권유린의 상황들, 이른바 ‘갑질’이라 불리는 ‘갑’들의 비인간적인 행동은 분명 오늘날 혜미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가장 가혹한 인권침해의 원인 중 하나다. 문제는 이러한 행위가 소위 ‘갑’이라 불리는 한 사람의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영을 비롯한 다른 직장 상사나 동료들이 보이는 모습 또한 문제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비정규직 혹은 알바라 불리는 혜미를 향해 자신들과 같은 권리를 가진 동료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자신들보다 열등하고 낮은 위치에 있는 존재라는 차별과 배제의 시선을 보인다. ‘갑’의 폭력적인 행동에 대해서도 부정과 비판이 아니라 동조와 지지를 보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상황들은 오랫동안 관행이나 사내문화라는 명분으로 묵인되고 정당화되었으며, 법 바깥의 문제로 여겨져 제대로 된 심판과 처벌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법적 인권담론의 특성상 직접적인 가해행위라 할 수 없는 상황이 법망을 벗어난 채 되풀이되고 있었던 것이다. 혜미를 가난하고 불쌍한 임시직 직원으로 보는 은영의 태도는 분명 현행법상으로는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이런 차별적인 시선과 태도들이 모여 결국에는 알바생 혜미의 갑작스러운 해고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것들을 통해 소설은 비록 법의 잣대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충분히 타인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문제적인 태도와 생각이 일상에 만연해 있으며, 많은 이들이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무의식적으로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그에 대한 경계와 주의를 당부하는 것이다.
”예술의 핵심 역할은 관습적인 지혜와 가치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마사 누스바움, 2018: 156)는 말처럼, 소설은 현실 세계에서 오랫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논리를 향해 불편한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한다. 여전히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많은 문제는 관습이나 전통, 관행 등의 이름으로 정당화된 채 지속되고 있다. 이는 법의 힘으로도 쉽게 규제하거나 단속할 수 없는 것으로, 때로는 이러한 것들이 법의 위력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법망을 벗어난 문제적 대상들을 향해 불편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오랫동안 문학이 담당했던 역할이었다. 다수의 묵인과 공모 아래 공고해진 관행과 사회적 분위기는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라는 법조항의 문구 하나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엄격한 법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함께했던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에 있다. 법으로는 심판하거나 처벌할 수 없는 문제 혹은 다수가 오랫동안 침묵하고 동조하면서 형성해온 카르텔 탓에 문제를 인지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을 공론화하고 그에 관한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을 이끌어내는 것은 분명 법이 담당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때 문학과 같은 문화적 방법이 더 유용하고 효과적일 수 있음을 우리는 「알바생 자르기」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9)

3. 주체적 사유와 행동을 통한 인권감수성 형성

2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상에 암묵적으로 만연해 있는 관행과 사회적 분위기에서 비롯되는 인권침해 상황과 같이 다수의 묵인과 방관 혹은 적극적⋅소극적 지지 아래에서 자행되고 심지어 정당화되는 인권침해 문제의 경우 그 상황에 동조하거나 가담했던 개인들은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서 살펴본 「알바생 자르기」의 경우 은영이 문제의 책임자로 법정에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법적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해서 집단적 잘못에 가담한 이들은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가? 오히려 합당한 사법적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사회적으로 묵인되고 정당화되는 관습적 인권침해의 사고와 행동이야말로 제2, 제3의 인권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문제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법으로는 처벌받지 않지만 관행이라는 이유로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이러한 행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또한 자신이 그 행위에 가담했다면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법으로는 처벌되지 않는, 그러나 분명 타인의 인권을 침해한 이러한 상황에 대해 문학은 어떻게 접근하고, 또 어떤 해결방안을 제시하는가?
가령,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의 경우, 폭력의 현장에 가담했던 모든 사람들이 법정에 세워져 법의 심판을 받지는 않았다. 이들의 행위는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정당화되거나 용인되었으며, 시간이 흘러 이 사건이 법정에서 다뤄질 때도 이들은 간과되고 배제되었다. 많은 이들이 사건의 피해자와 희생자에게 동정과 연민을 보내고, 사건의 책임자를 향해 분노할 때, 문학만큼은 당시 현장에서 가해 행위에 가담한 또 다른 가해자들을 기억해낸다. 문순태의 「최루증」과 한승원의 「어둠꽃」, 강풀의 『26년』은 모두 5.18을 소재로 한 것들로, 특히나 이 세 작품은 당시 가해자의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주목한다. 그러나 소설들이 그리는 인물들 모두 80년 5월의 그 현장에 있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지만 당시 이들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와 이후 그 사건을 기억하는 자세는 결코 동일하지 않다.
문순태의 「최루증」은 80년 5월 광주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 오동섭은 1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5월만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맥박이 빨라지며, 눈물이 많아지는 이른바 ‘5.18최루증’에 걸린 인물이다. 사진사였던 그는 5.18 당시 우연히 상무관에 안치된 시신을 찍는 일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온몸이 떨리는 분노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비극의 현장을 찍은 그는 이후 정보기관에 불려가 수시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끝내 땅 속에 묻어둔 필름의 존재를 말하지 않는다. 그 후 5.18의 의미를 공식화하는 대통령 특별 담화가 발표되자 그는 오랫동안 묻어 두었던 필름을 꺼내 방송국과 신문사에 보낸다. 그리고 며칠 후 오동섭이 찍은 사진 속 사내가 동섭을 찾아온다. 그 ‘점퍼 차림’ 사내는 겁먹은 청년을 길바닥에 무릎 꿇린 채 그의 가슴팍에 총검을 들이대던 군인이었다.
  • ”물론 이 사진이 신문에 나오기 전에도 내 마음이 편했던 것은 아닙니다. 십삼 년 전의 일이 나를 늘 괴롭혔어요. 악몽에 시달렸지요. 그때 죽은 사람들이 나를 목매달아 죽이는 꿈을 수도 없이 꾸었답니다. 그래서 완전히 술에 의지하고 살았지요. 죽은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내가 더 고통스러움을 당했지요. 정말 사는 게 아니었어요. 아무도 내 고통을 모를 것입니다.”(문순태, 2012: 399)

사진 속 주인공은 자신도 그 사건 이후 고통에 시달리며 살았다고 하소연한다. 그리고 오동섭이 찍은 그 사진 때문에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되었을까봐 불안해한다. 그가 오동섭을 찾아온 이유는 사진 속에서 자신에게 폭행을 당한 젊은이의 소식을 알고 싶어서다. 그러나 동섭은 그가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책감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는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챈다. 사진 속 젊은이를 찔렀냐는 동섭의 질문에 ‘점퍼 차림’ 사내는 자신은 찌르지는 않았으며 단지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깠”다는 말을 죄의식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않는 얼굴로 태연하게 했기 때문이다.
  • ”우리는 군인이었어요. 그것도 사병이었어요. 군인이란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군인이 명령에 불복하면 어찌 되는지 모르십니까? (…) 우리가 개인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지난 세월에, 우리한테 그런 비인도적인 명령을 내렸던 상관들은 진급하고 훈장도 받고 돈도 벌고 권세 누리며 떵떵거리고 살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분하고 억울해서 죽고만 싶답니다.”(문순태, 2012: 400)

이처럼 ‘점퍼 차림’ 사내는 과거의 폭력은 모두 명령에 따른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가 하면 자신 또한 분하고 억울한 피해자라며 하소연한다. 이러한 반응은 스탠리 코언이 말한 ‘부인(否認)’의 전형적인 모습에 해당한다. 그가 말한 부인이란 사실 자체를 시인하지 않거나 잘못된 것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도 부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알고 있음에도 적극적인 조처를 취하지 않은 것이나 아예 아무런 느낌이 없거나 괘념치 않은 것 등을 모두 포괄한다. 즉, 무관심하고 냉담하며, 자기합리화를 하는 모든 행위가 바로 부인인 것이다(스탠리 코언, 2009: 9). 이러한 부인의 태도는 인권침해 상황을 악화시키며, 더 나아가 제2, 제3의 인권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에서는 이 또한 인권침해 행위로 간주된다.
물론 당시 폭력의 현장에 있었던 모든 군인들이 ‘점퍼 차림’ 사내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만은 아니다. 「어둠꽃」의 주인공들 또한 80년 5월의 광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기는 마찬가지다. 순애는 자신의 애인이 시민군 최후의 날 도청에서 죽음을 맞은 후 얼룩무늬 옷의 남자들이 자신을 잡으러 올 것이라는 공포에 시달리며 사는 인물이다. 순애의 남편 종남은 이런 순애를 놓지 못하는데, 바로 자신이 그 얼룩무늬 옷의 남자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털어놓는 순간 사람들에게 밟혀 죽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 그는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못한 채 가슴앓이를 하며 살아간다. 「최루증」의 ‘점퍼 차림’ 사내와 종남은 모두 명령에 의해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던 군인이었지만 사건 당시 이들이 보인 모습과 이후 그 사건을 대하는 태도는 분명 달랐다.
  • 이종남은 자기의 가슴에서 무엇인가가 무너져 앉는 듯한 소리를 들으며 고 상무가 가리키는 분수대를 보았다. 그는 한 건물의 옥상에서 분수대와 금남로 일대를 향해 총을 갈겨대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그는 차마 사람들을 향해 정조준을 하고 총을 쏠 수가 없었다. 쏘라는 명령을 거역할 수가 없어 그는 눈을 딱 감고 방아쇠를 당기기만 했다. 거역하면 항명인 것이었다.(한승원, 2012: 67)

앞서 ‘점퍼 차림’ 사내는 당시 아무렇지 않게 개머리판으로 청년의 머리를 가격했다고 했지만, 80년 5월 당시 광주에 투입된 모든 군인들이 ‘점퍼 차림’ 사내처럼 생각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어둠꽃」의 종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차마 사람들을 향해 정조준을 할 수 없어 눈을 감고 방아쇠를 당기는, 소극적이지만 주체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본능적 욕구를 이겨내고 다른 선택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부인의 행동이 선택불가능의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선택에 따른 것임을 설명해준다. 스탠리 코언이 부인의 심리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보인 가장 큰 이유 또한 이 때문이다. 즉,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군인이라는 점에서 ‘점퍼 차림’ 사내와 종남은 다르지 않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자신의 양심과 이성에 따라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도의를 저버리지 않는 다른 선택지를 찾아낸 종남과 같은 인물이 있는 한 ‘점퍼 차림’ 사내의 행동이 정당화되거나 용서되기란 어려운 것이다. 그 역시 얼마든지 종남과 같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명령이기에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었다거나 ‘아무 생각 없이’ 명령에 따랐다는 변명이 더 이상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아이히만을 통해 충분히 학습된 것이기도 하다.
사건 이후 이들의 삶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오동섭이 신문에 제보한 사진을 발견하기 전까지 ‘점퍼 차림’ 사내는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살았던 것에 비해, 「어둠꽃」의 종남은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 제대를 한 다음 고근홍 상무 밑에서 일을 하면서부터서야 그는 자기를 비롯한 수많은 군인들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깨달음마저도 발설할 수가 없었다. 자기가 그때 그렇게 그 도시에 투입되어 총칼을 휘둘렀다는 사실을 참회하는 투로 털어놓는다 하더라도 자기는 사람들한테 밟혀죽게 될 것 같았다. 그 비밀은 응어리가 되어 그를 자나 깨나 아프게 고문을 하곤 하였다. 그가 정신질환을 가진 순애를 버리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아내가 장차 그 병을 여의든지 여의지를 못하든지, 자기는 그 아내를 자기의 운명처럼 안고 살아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이 자기가 지은 죄를 몇백 분지 일만큼이라도 삭감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한승원, 2012: 70-71)

종남은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비난과 책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기에 가족에게조차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심지어 고양이 소리만 들어도 자신의 총에 맞아 죽은 혼령이 그 고양이로 환생한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불안해한다. 하지만 그는 「최루증」의 ‘점퍼 차림’ 사내와 달리 자신이 겪는 그 고통을 “당연히 받아야 할 형벌”로 여기며 기꺼이 감내한다. 5.18 이후 정신병에 걸린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것 또한 과거에 대한 반성과 부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종남의 이런 행위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변명하기에 급급했던 「최루증」의 ‘점퍼 차림’ 사내와는 분명 다르다. 적어도 그는 자신의 행동이 문제적인 것이었음을 자각하고 그것에 대한 후회와 반성, 책임 있는 행동을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종남 역시 자신의 과거를 당당하게 시인하고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적극적인 행동으로까지는 나아가지는 못한다.
그에 반해 강풀의 웹툰 <26년>에는 종남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문제를 바로 잡으려 노력하는 인물이 등장한다.10) 대기업 회장인 김갑세는 80년 5월 당시 제3공수여단 군인으로 광주에 투입되어 어쩔 수 없이 광주 시민들을 사살하게 된다. 이후 그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살아가던 그는 5.18 희생자들의 가족을 모아 전두환을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 전두환의 자택으로 들어가는 데까지는 성공하지만 끝내 암살 계획은 실패하고 만다. 김갑세는 비록 사건 당시에는 가해자의 위치에 놓여 있었지만 이후 자신의 행동을 자책하고 반성하며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의 명예와 재산은 물론이고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법적으로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가해자에 대한 사적복수를 시도하며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으려고 애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고백할 용기가 없어 주저하는 「어둠꽃」의 종남과 비교했을 때 김갑세가 보여주는 사과와 반성 그리고 문제 해결의 의지는 가해자가 보여주어야 할 바람직한 모습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용된 문학 작품들은 모두 5.18민주화항쟁을 소재로 한 것들로, 그 중에서도 특히 당시 광주에 투입된 군인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것들이다. 독자는 세 편의 문학 작품을 통해 당시 맡았던 임무는 비슷했지만 그 사건 이후의 삶과 과거의 사건을 대하는 태도는 서로 다른 세 명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너무나 상이한 이들의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과 판단을 하게끔 한다. 비록 이들은 집단적 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에 가담하긴 했지만 법의 처벌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은 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행동은 법이 아니라 개인의 양심과 도덕의 영역으로 넘어오게 된다. 독자는 문학 작품을 통해 이러한 인물들을 보면서 비록 당시에는 가해 행위에 가담했지만 이후 자신의 잘못을 어떻게 인식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그들을 향한 시선과 평가가 달라질 수 있으며, 따라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최루증」의 ‘점퍼 차림’ 사내처럼 죄책감이나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대응하기 위해 아예 그러한 정보를 차단해버리거나 정당화하려는 부인의 심리는 무의식적 방어기제의 일종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꽃」의 종남이나 <26년>의 김갑세처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타인의 고통에 기꺼이 공감하고 자신의 책임과 잘못을 시인하는 이타적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독자는 문학 속의 다양한 인물들을 비교해보며 깨닫게 되고, 자연스럽게 이들 중 어느 편이 더 바람직한 모습인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11)
이처럼 문학은 법이 다룰 수 없거나 다루지 않는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낼 뿐만 아니라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고민하게 하고 윤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한다. 비록 법의 처벌 대상에 속하지는 않지만 공모와 묵인과 같은 소극적인 형태로 타인의 인권 침해에 연루되는 일은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이때 그 소극적 가해자 중 하나가 내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무의식적 방어기제의 일종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의식적 반응이며 많은 이들이 그러한 반응을 보인다고 해서 이것을 당연하고 옳은 선택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 문학은 무의식적으로 부인하려고 하는, 하지만 마냥 부인하거나 모른 척 해서는 안 되는 불편한 상황을 독자들이 마주하게 함으로써 옳고 그름에 대해 고민하고 판단해 볼 것을 요구한다. 법의 영역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던 문제를 도덕과 윤리의 차원에서 고민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잘못된 행동에 대해 적극적인 반성과 책임의 자세를 가질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때 문학이 요구하는 방법은 정언명령과 같이 강제성을 띤 법의 언어와 달리 행위자 스스로 판단하여 선택하도록 하는 것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결과로 수렴되는 법의 논리와 달리, 문학은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복수(複數)의 세계를 특징으로 한다. 법의 언어가 종(種)으로서의 인간 전체, 보통명사로서의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면 문학이 다루는 대상은 고유성과 개별성을 가진 하나하나의 인간이다. 다시 말해 문학은 동일한 상황에서도 서로 다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개별자로서의 인간 개개인의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복수성은 독자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여 독자 스스로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든다. 무조건적 명령의 형태가 아니라 주체적인 사고와 선택을 전제로 행위의 정당성을 마련할 때 그 행위는 보다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때 비로소 인권감수성이 향상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권 문제를 대하는 문학의 방법이자 문학적 인권담론의 역할이다.

4. 인권 교육의 매개로서의 문학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대학에도 시장논리가 강하게 적용되면서 교육의 가치와 기능은 왜곡되고 편향되었다. 그 결과 많은 대학은 전문화된 직업교육에 집중하였고, 상대적으로 교양교육에 대한 관심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 나아가 교양교육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도 점점 부족해졌다. 이런 상황에 대한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다시금 대학 교육 본래의 역할과 기능을 되찾아야 한다는 반성의 목소리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목소리 중 하나가 교양교육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목소리는 시민 사회의 역할이 강조되고 그에 따라 성숙한 시민의식을 함양하는 것이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거론되는 대학 바깥의 요구와도 맞물려 대학의 “교양교육이란 사회 혹은 공동체에서 살아가는데 요구되는 올바르고 건전한 자질을 갖춘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며, 또한 개인적 삶에 있어서 자신의 인간성을 향상시키고 보다 더 자유로운 인간이 됨으로서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김태영, 2014: 178)이라는 교양교육 본래의 역할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인권의식과 그에 대한 교육의 가치와 필요성 또한 같은 이유로 부각되었다. 사실 인권교육은 그 자체가 하나의 기본적 권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인권교육을 구체적으로 획득하고 국가로부터 보장받아야 할 권리로서 개념화해 왔다. 1948년에 반포한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해 1994년 유엔총회에서 선포된 ‘유엔 인권교육 10년’은 인권교육을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 규정하며 각국 정부에 이에 관한 이행체제를 마련할 책임이 있음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김녕, 2013: 19). 이처럼 인권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는 바이나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실상은 여전히 이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인권 관련 강의가 많지 않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강의 역시 인권에 해당하는 권리를 ‘알려주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학생들이 실생활에서 인권적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권에 관한 지식을 알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러한 지식을 기반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른바 ‘인권감수성’을 형성하고 풍부하게 하는 교육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감수성이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다양한 자극이나 사건에 대하여 매주 작은 요소에서도 인권적인 요소를 발견하고, 적용하면서 인권을 고려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인권문제가 개재되어 있는 특정 상황에서 그 상황을 인권 관련 상황으로 지각하고 해석하며, 그 상황에서 가능한 행동이 다른 관련된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알며,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인식하는 심리과정”이며, 이러한 인권감수성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바로 “인권을 옹호하는 행동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 과정”이기 때문이다(김녕, 2013: 41-42).
본 연구는 그동안 지식 전달 위주의 인권교육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었던 영역, 즉 인권감수성을 자극하고 함양하는 매개로 문학을 제안한다. 정치적 의제를 들고 문학에 접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종종 제기된다. 그러나 시민교육에 있어 문학과 예술이 상당히 유효한 매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 마사 누스바움은 “무익하고 매력 없는 극단적인 미학적 형식주의를 옹호하지 않는 다음에야 이런 주장을 정당화하기는 어렵”고, “서양의 미학 전통은 그 역사 전체에 걸쳐 인물과 공동체에 강한 관심을 보여왔다”(마사 누스바움, 2018: 142)며 문학의 공적인 역할과 가치를 강조한다. 누스바움뿐 아니라 민주주의나 인권 등의 가치를 주장하는 많은 사상가들은 근대 민주주의의 발흥과 같은 시기에 발흥하고 민주주의를 뒷받침한 장르인 소설에 큰 관심을 가지며 시민성의 매체로서 문학의 역할에 주목하기도 한다(마사 누스바움, 2018: 150).
누스바움을 비롯한 많은 사상가들이 주목한 문학의 가치와 역할은 2장과 3장의 예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문학은 사회적 관습이나 문화와 같이 법적 심판과 처벌의 대상이 되기에 모호한 영역까지 다룰 수 있으며, 또한 가해자=처벌, 피해자=보상과 같은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죄책감이나 반성과 같은 윤리 차원의 문제처럼 법이 관여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무엇보다 독자로 하여금 문학 작품을 통해 이런 것들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하나의 결론이나 정답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기도 하며, 스스로 옳고 그름 바람직한 태도 고민하고 선택하게 한다는 점이야말로 문학을 매개로 한 인권 교육의 특징이자 의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 교양교육에서 시민교육과 인권교육이 담당하는 비중과 책임져야 할 역할이 무겁고 중요한 만큼 그것들을 실제 강의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하고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할 것이다. 본 연구 또한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문학이 인권감수성을 향상시키고 실천과 행동에까지 이르게 하는 데 훌륭한 매개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해보았다. 이러한 가능성을 기반으로 보다 다양한 형식과 유형의 인권교육 방법에 대한 연구와 개발은 이후 계속해야 할 과제로 남겨두는 바이다.

Notes

1) 이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에는 교양교육에 대해 이러한 편견이 만연해 있기도 하다. 먼저, ‘교양교육’이라는 명칭부터 다의적으로 이해되어 교양교육의 이념 및 목적에 대해 상대적인 여러 견해들이 엇갈리고 있으며, 이에 관해 뚜렷한 원칙을 세우기도 힘들다는 것과 교양교육은 학문적 엄정성이 떨어져도 무방하다는 생각, 그리고 교양 과목은 일반인이 취미나 일상생활의 필요에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나 혹은 시사성이 있는 주제를 적절히 다루는 ‘일반인의 교양’을 위한 것으로, ‘비학술적인 것’을 내용으로 할 수도 있다는 생각, 마지막으로 교양교육은 대학 교육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여분의 교육’으로 시행하는 것이라는 생각 등이 교양교육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이라 할 수 있다.(손동현, 2010: 22)

2) 대학 인권교육은 물론 과거에 비해서는 양적으로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2년도 전국 국공립사립대학교에 대한 인권 관련 교과목 개설 현황 설문조사 결과, 조사 대상 306개 대학 중 132개 대학에 총 525개의 인권 관련 교과목이 개설되어 있으며, 이는 2002년에 비해 8.3배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대학교 인권교과목 10년새 8배↑…525개 강좌 개설」, 『연합뉴스』, 2012.12.11.)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 중 50%는 인권관련 과목을 한 과목도 개설하지 않고 있다는 문제는 여전히 지적되고 있다.(국가인권위원회, 2014: 140)

3) 대학에서의 인권교육 현황을 조사한 백승민의 연구에 따르면, 2009~2018년까지 전국 167개 대학에 개설된 인권 강의 901개 중 553개가 교양 과목일 정도로 ‘인권교과의 교양화’가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러한 교과목을 영역별로 분류한 것을 살펴보면 이른바 중⋅고교 커리큘럼에서 사회과 과목(정치, 경제, 법, 사회 등)에 속하는 과목이 504개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백승민, 2019: 80-83)

4) 실제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중.고등학교에서의 인권교육은 법질서 교육의 차원에서 권리 개념을 나열하는데 치우쳐 있어, 인권교육이라기 보다는 기존 질서에 대한 사회화에 강조점이 맞춰진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이용교, 2004: 94)

5) 필자는 2012~2013년 동안 서울의 S대학에서 인권에 관한 교양강의를 진행한 바 있으며, 이러한 결론은 당시 수업을 통해 확인한 사실이다.

6) 본 연구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서사 장르인 소설만을 대상으로 하였지만, 본 연구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비단 소설뿐 아니라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 희곡을 비롯해 최근 유행하는 웹툰이나 웹소설 등 모든 장르의 서사를 대상으로 해도 무방하다. 상상력을 기반으로 타인의 삶을 경험하고 공감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경험은 소설이라는 특정 서사 장르가 아니라 모든 서사 장르 공통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실제 수업에서는 영화와 드라마, 웹툰 등 다양한 장르의 서사를 활용하고 있는데, 장르에 따라 학생들의 선호도는 약간의 차이를 보였지만 텍스트 내용을 이해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인권감수성이 함양되는 과정 면에서는 눈에 띄는 차이가 드러나지 않았다.

7) 이후 본론에서 설명하는 내용과 분석 대상이 되는 문학작품은 필자가 현재 경남 G대학의 문학 관련 교양수업에서 실제로 진행한 내용과 커리큘럼, 그리고 수업에서 학생들의 반응 등이 반영된 것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8) ‘부지런히 일하다’는 의미의 ‘근로(勤勞)’는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은 채 국가를 위해 그저 ‘부지런히’ 일할 것을 강요하기만 했던 과거의 시대정신이 반영된 것인데 반해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노력을 들이는 행위’를 뜻하는 ‘노동(勞動)’은 노동하는 사람의 주체적 의지가 전제된 개념으로 노동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더 많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9) 실제로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읽고 난 뒤 많은 사람들이 노예제 반대운동에 나섰으며, 『올리버 트위스트』가 세상에 나온 이후 노동집약형 공장 시스템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앵무새 죽이기』가 출판된 이후 흑인 인권운동이 사회적으로 확산된 것도 같은 경우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가까운 예로는 공지영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도가니』에 공분한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한국사회에 형성되어 있던 침묵의 카르텔을 깨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그 결과 이른바 ‘도가니법’이라 불리는 법 개정을 이루어낸 것을 꼽을 수 있다.

10) 문학의 범주에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이고 웹툰이나 웹소설 등도 포함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대학생 독자들을 위해서는 이런 유형의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도 있다.

11) 일반적으로 문학은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의 입장에 서게 하고, 또 그들의 경험과 마주하게” 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역사 및 사회과학적 글쓰기가 갖지 않는 혼란을 가져다준다.”(마사 누스바움, 2013: 33) 문학의 이러한 특성을 활용해 실제 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기성의 교육과정이나 언론을 통해 쉽게 접하지 못했을법한 목소리를 담은 텍스트를 제공하여, 기존의 사고나 시각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고 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목소리의 텍스트를 읽기 전에 먼저 익숙한 목소리나 시각을 먼저 보여주고 자연스럽게 두 시각을 비교하도록 하는 등 커리큘럼 구성면에서의 전략뿐 아니라 토론과 발표, 글쓰기와 피드백과 같은 수업 방법 측면에서의 전략도 필요하다. 결국 본 연구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인권교육의 효과가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문학’이라는 사고와 소통의 매개뿐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도 중요한데, 그것이 바로 토론과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 강의를 진행할 때 학생들에게 수업에 참여하기 전에 소설을 읽고 그에 대한 감상문을 작성하도록 했는데, 이때 ‘소설의 어떤 인물에 가장 공감했는가’, ‘소설 내용 중 가장 불편했던 점은 무엇인가’,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은 주제는 무엇인가’와 같이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구체적인 항목을 제시해준 것이 텍스트에 대한 학생들의 몰입도와 이해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수업 시간에 토론과 발표를 하는 과정에서도 높은 성취도와 만족도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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