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교육과 포스트휴먼 인문과학

General Education and Posthuman Human-Science

Article information

Korean J General Edu. 2020;14(2):35-44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20 April 15
doi : https://doi.org/10.46392/kjks.2020.14.2.35
Professor, H-LAC, Daejeon University
김응준
대전대학교 H-LAC 교수
본 논문은 2019년 한국교양교육학회 추계학술대회 발표문을 수정 및 보완한 논문임.
Received 2020 March 20; Revised 2020 March 22; Accepted 2020 April 14.

Abstract

초록

포스트휴머니즘 시대는 과학기술 시대이며 이 시대는 실용적 과학기술이 보편화되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교양교육, 특히 인문교양교육은 그 본연적 속성을 변화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왜냐하면 포스트휴머니즘 시대는 인문학의 추상적 사유 가능성과 과학기술적 경험 증명성을 상호 연결하여 인간과 과학기술이 공존하는 시대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을 이해하는 것을 교양교육의 보편적이며 본원적인 의미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인문학은 관념적 내지는 형이상학적 인간이해라는 추상적 영역에서 벗어나 실증적 인간 연구로 전환되어야 하며, 교양교육 또한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수용할 수 있는 교육체계를 구상해야 한다. 리버럴아츠교육은 전통적으로 이질적 지식과 학문영역의 유연한 조합을 보편적 일반교양으로 제시하여 전인적이며 자유로운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양성한다. 즉, 리버럴아츠교육은 그 내용적 그리고 체계적 구성상 이질적인 학문과 지식을 포괄할 수 있는 유연한 수용력을 갖는 교육방식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과학기술 시대의 교양 뿐 아니라 인문학의 과학화 그리고 과학의 인문화라는 통합적 보편교육으로 구축된다. 그리고 이는 교양으로서 인문학 자체의 자기이해이기도 하다.

Trans Abstract

Abstract

The Posthuman era is a period in which practical science technologies are more widely used. Thus, general education, especially general education for the Humanities, is being asked to change its fundamental properties. Because of the special meaning of the Posthuman era, this time frame describes the era in which human beings and science technologies coexist by connecting the possibility of the abstract thinking of the Humanities and the probability of scientific experience. It is also considered to be the universal and fundamental meaning of general education.

Seen in this light, the Humanities should make a transition to empirical human science. General education should also accept this periodical demand. Traditionally, a Liberal Arts education suggested a flexible combination of heterogeneous knowledge with academic discipline as a universal general education, with the goal of turning out, so to speak, both whole an free human beings. In other words, a Liberal Arts education should be a system with a flexible capacity; one which encompasses both heterogeneous knowledge and certain academic facets in both contents and its construction.

1. 들어가는 말

교양교육은 보편적이며 일반적인 교육인 동시에 인간과 인간 삶의 조건을 이해하고 나아가 주체적이며 자유로운 의사결정 능력을 함양한 전인적인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과 교육체계를 포괄하는 교육을 의미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교양교육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그리고 인간을 위한 교육이념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과학기술 시대에 진입한 현 상황에서 교양교육이 추구하는 전인적 인간양성이 과연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소위 포스트휴머니즘이라 불리는 과학기술적 세계관은 보편적이며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보다는 전통적 인간의 보편성을 해체하고 과학기술적 관점에 입각해 인간을 재구성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교육영역에서 이 과정은 전통적인 학문분야와 전공영역의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한편으로는 전통적 개별지식의 유효 수명 감소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식과 정보의 급속한 증가라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보편적이며 전인적인 인간 양성이라는 교양교육의 의미를 재성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변화하고 있는 삶의 조건과 환경 속에서 교양교육, 특히 인문교양교육의 의미가 여전히 유효한지 또는 인문교양교육의 새로운 의미는 가능한지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우선 포스트휴머니즘의 개념적 속성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포스트휴머니즘이 어떻게 인문교양교육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지 그리고 과학기술시대 인문교양교육의 현실적 대안 가능성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포스트휴머니즘의 개념적 속성

포스트휴머니즘은 과학기술과 인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정도에 따라 트랜스휴머니즘적 관점과 포스트휴머니즘적 관점으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이 두 관점은 모두 휴머니즘적 인간 이후의 인간, 즉 포스트휴먼을 추구한다는 외형적 공통점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 내용적 의미는 상이하다. 개괄적으로 말하자면, 트랜스휴머니즘이 과학기술적 인간 지배와 그 보편적 타당성을 계몽주의적 사상과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밀의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취하는 반면 포스트휴머니즘은 과학기술시대에 상응하는 새로운 인간이해와 더불어 과학기술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의미를 구성하기 위해 후기구조주의적 해체이론과 포스트모더니즘 나아가 문학이론과 예술 그리고 문화철학적 담론과 연결되는 양상을 보인다(Loh, 2018: 33). 물론 광의적인 의미에서 트랜스휴머니즘을 포스트휴머니즘의 부분적 종속개념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속성적 차이를 주목한다면 두 개념을 휴머니즘 이후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두 가지 별개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하다. 포스트휴머니즘적 과학기술 시대 인문교양교육의 의미를 살펴보기 전에 우선 두 개념의 속성적 차이가 무엇인지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은 과학기술을 사용해 자연존재인 인간의 한계와 경계를 극복하고 이를 통해 인간 존재 자체를 인간적 그리고 비인간적 주체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으로 자연주의적이며 진화론적 입장을 강조한다. 일례로 에스판다이어리는 더 이상 인간에 속하지 않는 새로운 인간유형을 제시하는데, 이 유형의 인간은 자연적 진화와 발전을 초월한 성장과 발전의 구성체적 인간을 의미한다(Esfandiary, 1989: 135). 즉, 트랜스휴머니스트들에 따르면 과학기술 사용은 궁극적으로 자연적 존재의 의미와 한계를 넘어서는 인간향상(Human Enhancement)으로 이어지며, 이는 곧 자연 진화의 과학기술적 극복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은 인간선택(Human Selection)으로 대체된다. 그 사례로 제시되는 것이 유전적 향상, 약물적 향상, 성형수술과 같은 형태학적 향상이다(Sorgner, 2016: 28). 이러한 과학기술적 인간 향상은 각 개개인의 자유를 넘어 인류의 보편적 균등성으로 이어진다고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본다. 전통적 휴머니즘이 개인의 윤리적 개념을 포괄한 보편성을 추구한다면 트랜스휴머니즘은 개인 윤리보다는 개인의 육체적 향상과 이를 통한 인간 종 자체의 향상과 발전에 우선권을 둔다. 또한 전통적 휴머니즘이 개인의 수양과 교육을 통한 장기간의 도덕적 인간 양성에 초점을 두었다면, 트랜스휴머니즘은 과학기술을 통한 단기간의 향상에 주안을 둔다. 따라서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과 세계에 대해 물질적(material)이며 자연주의적인(naturalistic) 입장을 취한다. 그러므로 과학기술을 활용한 인위적 진화는 트랜스휴머니즘의 중요한 세계관적 수단이 된다. 또한 이에 따르면 육체와 정신의 합일 보다는 두 가지를 분리하여 육체의 인간에 주목하는 것이 정당성을 획득한다.

이러한 과학기술 보급과 보편적 적용을 위해 트랜스휴머니즘은 계몽주의적 사상과 연결되는데, 이 경우 계몽은 합리적 인간의 보편적 사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적 합리성에 근거한 이성과 계몽을 의미하는 것으로 실용적, 기계적 이성을 의미한다(김응준, 2017: 203). 따라서 전통적 휴머니즘적 인간이성과 인간이해는 거부된다. 특히 트랜스휴머니즘은 물질주의적 일원론, 즉 물질적 정보의 축척과 분석이라는 정보주의(Informationism)적 입장을 취한다(Loh, 2018: 17). 이러한 트랜스휴머니즘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은 철저히 물질적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나 과학기술적 지식과 정보가 적용되는 대상이 된다. 이는 자연적 인간이라는 한계 내지는 자연성을 극복하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과학기술적 보철, 약물적 치료 나아가 죽음이라는 한계 또한 과학기술적 처리대상이 된다. 이러한 개념적 속성에 따르면 트랜스휴머니즘은 전통적 휴머니즘과 결별하며 새로운 인간상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휴머니즘과의 결별이 아니라 과학기술시대라는 생존적 조건 변화와 그에 따른 새로운 인간 이해 변화를 요구하는 관점이 있는데 이는 소위 포스트휴머니즘이라 불린다. 전통적 휴머니즘이 비물리적 정신과 물리적 육체의 긴장관계 속에서 인간을 파악하고자 한다면 포스트휴머니즘은 과학기술적 환경 속의 인간이라는 조건아래에서 육체와 정신의 새로운 조합과 이에 따른 인간 이해를 시도한다. 이를 위해 포스트휴머니즘은 포스트-인간중심주의(Post-Anthropocentrism)적 입장을 취하는데, 이 경우 전통적인 휴머니즘적 주체와 객체의 관계는 여기서 그 유효성을 상실한다. 일례로 자연-문화와 같은 이원론은 해체되지만 이것은 전통적 관점과 의미를 거부하는 트랜스휴머니즘적 관점과는 달리 전통적 관점을 현재적 의미로 새롭게 재해석하고 재구성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또한 포스트휴머니즘은 관념적, 인식론적 인간이해를 과학기술 시대의 변화된 현실에 상응하게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다. 이에 따르면 전통적 학문영역이나 학문분야는 그 유용성과 의미를 상실하는 대신 이질적 학문영역의 조합을 통한 새로운 학문영역과 지식의 재구성 그리고 새로운 세계관적 이해가 제시된다. 이는 전통적 휴머니즘 담론 영역의 확장을 의미할 뿐 아니라 그 대상과 관점의 변화 및 재구성 요구를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브라이도티는 일종의 확장적 휴머니즘을 주장하는데, 이 관점에 따르면 동물이나 인간은 모두 생명체라는 범주에 속하게 되는 동시에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전통적 휴머니즘은 그 대상을 너무 협소하고 배타적으로 설정했다고 비판된다. 또한 포스트휴머니즘 시대는 관념과 정신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육체라는 물리적 대상에 집중하는 소위 조에중심적인 전환(Zoėcentric Posthuman-Turn)의 시대임을 주장하면서 브라이도티는 전통적 휴머니즘의 시각을 확장 및 보충할 것을 요구한다.1) 이러한 포스트휴머니즘은 전통적 철학적 인간중심주의를 비판적 내지는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즉 전통적 관점의 해체와 더불어 새로운 관점을 형성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변화된 현실과 조건, 즉 과학기술을 지배하는 인간 또는 이와 반대로 인간을 지배하는 과학기술 중심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과학기술과 함께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인간과 과학기술의 공생(Symbiosis) 및 공진화(Co-Evolution) 관계를 포스트 인간이해의 요소로 바라본다.

정리해보면,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과학기술은 항상 타자화된 대상이었다. 그러나 타자로서의 과학기술은 항상 인간중심주의에 내재된 잠재태였는데, 이것이 발화한 것은 근대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처 오늘날의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으로 불리는 과학기술적 세계에서이다. 이러한 과학기술시대는 인간의 모습 뿐 아니라 비인간(Nonhuman), 즉 사물, 정보, 기술 자체를 구분하지 않는 세계관을 말하며 인간은 이러한 세계 속에서 인간이 아닌 것들과 함께 존재한다. 이러한 과학기술 시대의 과학기술적 세계관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관점이 보편적 교양교육, 특히 인간 그 자체를 이해하고자 하는 인문학과 관련되는 경우 교양교육은 시대적 변화에 상응하는 새로운 교육적 의미 구성을 요구받게 된다.

분명한 것은 트랜스휴머니즘의 경우 과학기술적 낙관주의가 지배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기저에서는 휴먼을 과학기술적 휴먼으로 대체하고 진화론적이며 물질적인 인간 변형 내지는 인간 향상을 통해 인간의 자연적 한계가 극복된 새로운 인간 유형 그리고 탈진화된 인간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전통적 인간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라 과학기술적 전략을 활용한 프로그램이 인간 교육 프로그램을 대체한다. 이 경우 교양교육 나아가 전통적 인문학은 트랜스휴머니즘적 관점과 충돌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반면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의 자연성이 소멸된 탈자연화된 인간을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과의 연결 속에서 발전하는 인간 그리고 시대적 환경적 요건에 적합한 새로운 인간이해 모델을 산출하고자 한다. 이 경우 전통적 인간 교육 프로그램은 그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현실에 상응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보충 및 확장되기를 요구한다. 이러한 두 개념의 속성적 차이를 고려해 본다면 교양교육으로서 인문학이 포스트휴먼시대에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 포스트휴먼비평 관점이다.

3.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의 인문학과 과학

일반적으로 교양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식견과 태도를 겸비하는 것이라면 이는 특정 전공이나 전문영역에 대한 지식보다는 보편적 인성 내지는 주체적인 삶과 자기 결정적 활동을 위한 능력과 연결된다. 또한 단순 객관적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는 능력을 의미한다면 교양은 보편적 전인적 인간형성 추구와 동질화된다. 그러므로 자유교육(Liberal Education)은 특정분야의 특정 전문지식을 소유한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결정적인 능동적 주체를 양성하는 것이다. 이 교육은 전문적 지식만을 소유한 인간이 아니라 전인적 인격체로서의 인간을 양성하는 일반교육(General Education)과 연결되어 특정 사고와 지식에 얽매이지 않은 전인적 인간과 인격체를 형성하고자 한다.

하지만 소위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에는 이러한 교육이념이 시대적 요청과 부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자연적 존재로서 인간 한계 극복이라는 포스트휴머니즘적 관점에서 보자면 전통적인 보편교육 내지 전인교육은 여전히 인간에 대한 믿음과 확신에 근거한 것으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자 퇴화된 이념으로 판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과학기술과 인간의 상호작용과 연계성에 대한 피상적 판단에서 비롯된다. 왜냐하면 과학기술과 인간의 상호작용은 이 두 개의 주체를 어떠한 하나로 합체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 주체의 공존과 인정을 통한 공진화라는 확장적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과 과학기술의 복잡해진 관계성에 주목하는 것이 휴머니즘 이후 인간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상상력과 창의성, 과학적 실증성과 객관성 나아가 인문학적 논리성과 비판력은 과학적 사유의 기반이자 동시에 인문적 사유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대립적 개념이라기보다는 한편으로는 실용성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론적 사유라는 실현 층위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이질적 속성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과학과 인문학은 그 기본적 토대를 공유하는 두 가지 본질적 속성을 포스트휴먼 시대에 재발견 내지는 보다 더 명확하게 만든 것이다.

따라서 인문교양교육과 관련한 포스트휴머니즘 논의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소위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과학기술의 인간지배가 아니라 과학기술과 함께 변화된 현실과 그 현실에 맞는 삶의 모습과 인간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는 포스트휴먼비평 관점이다. 포스트휴먼비평 관점은 전통적 휴머니즘과의 단절이 아니라 변화된 시대와 현실 속에서 변화하는 인간상을 이해하고 인간적 삶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자유로운 인간, 즉 과학기술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전인적 인간상을 찾고자 한다. 다시 말해 포스트휴먼비평은 휴머니즘적 인간상 극복 내지는 휴머니즘적 인간 이해로 부터의 해방과 동시에 휴머니즘의 재해석을 추구한다(Loh, 2018: 71). 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과학기술연구(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이다. 전통적 휴머니즘과 다르게 포스트휴먼비평은 과학기술연구를 인문적 관점의 보조적 종속적 의미를 넘어 동등한 단계로 격상한다. 특히 과학기술연구와 인문적 관점의 연결과 조합은 휴머니즘 이후 인간이해를 위한 범휴머니티(Pan-Humanity)를 생산하는 것으로 현재의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인간 자체를 재조명하고 재해석하는 것이다(Braidotti, 2014: 45). 다시 말해 이러한 재조합과 재해석은 인간중심주의적 휴머니즘과 과학기술적 포스트휴머니즘 사이의 우월적 위치 내지는 주도적 관점을 포기하는 동시에 인간과 과학기술을 상호 인정하고 연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과학기술연구는 과학기술적 지식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연구(Human Studies)로 이해되는 동시에 과학과 인간의 연결과 조합이라는 “하이브리드적 과학인문학 (Humanités Scientitifiques)”(라투르, 2012: 33)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화와 정보화 그리고 시장경제체제의 극단적 발전이라는 배경 하에서 생산성과 효율성 및 유용성이 지배적 세계관이 된 현재의 삶의 조건과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필연적 관점이다. 특히 인간이 아닌 것(Nonhuman)과 인간이 연결되고 조합되는 것의 의미는 휴머니즘적 인간을 고정된 인간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노마드적 인간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브라이도티는 설명한다(Braidotti, 2014: 48).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는 유기체 뿐 아니라 무기체적 형태로 존재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인간이라는 유기체와 존재적 의미를 형성한다. 무엇보다 빅테이터와 인공지능을 비롯한 정보화는 특정 영역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인간 삶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전통적인 인간중심적인 관점이 아니라 판옵틱적(Pan-Optical)인 관찰력과 통찰력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전공 학문적 지식은 그 편협성을 극복할 수 없으며 오히려 인간을 협소한 지식과 세계관을 소유한 인간으로 그 의미를 축소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협성은 곧 인문학의 소멸과 응용과학기술의 인간지배를 의미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닐 포스트먼은 인간문화와 문명의 발전단계를 제시하며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인류의 발전은 도구사용문화(Tool-Using Culture), 기술주의문화(Technocraties) 그리고 테크노폴리(Technopolies)의 단계로 구분된다(포스트먼, 2005: 70). 이 가운데 마지막 단계인 테크노폴리에서는 종교, 예술, 지성 등의 의미는 박탈되고 그 대안들 또한 보이지 않게 그리고 무의미하게 되어 과학기술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과학기술 결정론적 관점이 견고히 구축된다. 따라서 그는 이를 전체주의적 기술문화라 지적한다. 이는 과학기술 중심주의적 세계에서 쉽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인데,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르면 인문학 등의 기초학문 보다는 응용학문이나 실용학문이 절대적 가치를 획득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 속에서 그리고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요구되는 교육적 가치는 과학기술 지배적이며 전체주의적인 일방통행식의 가치관 주입이나 지식습득이 아니다. 과학과 논리의 분리가 아니라 연결과 조합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나 산업 전체에 대한 메타인지를 가능하게 한다. <…> 메타인지는 인지를 다시 인지하는 것, 즉 사고(Thinking)와 인지(Cognition)의 경로나 방식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것”(손나경, 2019: 109)을 추구한다. 또한 메타인지는 사고 유연화 및 세계관 변화로 이어진다. 비록 전통적인 분과학문과 분과학문적 개별지식이 급격히 감소한다고 하지만 이 경우 중요한 것은 지식의 소멸이 아니라 지식과 지식의 연결과 조합을 통한 새로운 지식의 하모니이다. 즉, 지식의 융합과 더불어 다학문적이며 간학문적인 연구와 지식이 보편성을 획득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포스트휴먼비평이 제시하듯 포스트휴머니즘 시대는 학제간 연구 내지는 전공영역의 지식의 벽이 완전히 허물어진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곧 총체적 삶을 구성하는 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전통적 학문영역의 경계는 사라지고 일종의 간학문성 내지는 통학문성이 대두되는데, 이때 강조되는 재구성 대상은 문화적 인간과 자연의 동일성과 같은 가치적 지시화이다. 특정 개념의 지시적 의미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의 이해와 더불어 재해석이 중요해진다. 이 경우 전통적 휴머니즘적 지시개념은 부정되는 것이라기보다는 과학기술로 인해 변화된 조건 속에서 휴머니즘적 지시개념을 해체한 후 재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간학문적 내지는 통학문적 재구성은 이질적 학문 영역과 지식의 조합을 의미할 뿐 아니라 새롭게 재구성된 학문 지식과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과학기술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포괄하는 새로운 지식과 삶의 양식 그리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유형을 헤어브레히터는 포스트인문학이라고 부른다(헤어브레히터, 2012: 253).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전통적 인간이해 내지는 휴머니즘적 인간이해를 기반으로 과학기술 시대의 요구사항을 포괄할 수 있는 인문의 과학화 그리고 과학의 인문화라는 새로운 인문학이 요구된다.2) 다시 말해 인간 연구는 인간을 추상적이며 형이상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이며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휴먼사이언스(Human Science)로 전환되어야 한다. 여기서 인간에 대한 이해는 선형적이라기보다는 비선형적이며 방계적인 모습을 드러내다. 즉, 보편성이란 개념은 일괄 적용될 수 있는 획일적 모습을 상실하고 각각의 개별적 요인들이 그 속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규칙성 내지는 연결성으로 조합되는 적용성의 속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따라서 포스트휴머니즘적 관점에서 인문학이란 전통적 인문분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문적이지 않은 이질적 학문영역 내지는 이질적 관점을 수용하고 통합(Integration)하는 속성으로 전환된다. 이는 무엇보다 대학에서 시행되는 교양교육, 특히 인문영역은 단순 지식의 전수가 아니라 지식 창출과 응용 그리고 적용할 수 있는 보편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요청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포스트휴먼시대의 주체는 비동질성(Heteronomy)과 다양성(Diversity)을 전제이자 결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단순 자유교육뿐 아니라 일반교육의 이념이 결합된 것을 교양교육이라 본다면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의 인문교양교육은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변화된 현실에 상응하는 보편적이며 일반적인 지식과 사유력을 추구하는 통합교육모델로 전환되어야한다. 이는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 그리고 인간-비인간중심주의적 대상과 관점을 포괄하는 통합적 보편 교양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교양(Bildung)이란 단순히 진리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와 삶의 가치의 다양성을 받아들여 자신의 영역이라는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손승남, 2011: 172). 다시 말해 교양은 한 인간을 본원적 의미의 인간으로 구성하는 것(bilden)이지 생존 내지는 실용적 삶에 제한된 인간으로 양성 내지는 수련하는 것(ausbilden)이 아니다. 실제로 독일어에서 이 두 용어는 확연한 의미적 차이를 보인다. ‘Bildung’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교양은 형성, 생성, 구성 또는 도야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Ausbildung’이라는 단어는 육성이나 수련 내지는 직업교육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직업교육으로서의 ‘Ausbildung’이 직업적 적합성을 확보한 실용적 인간을 추구한다면 ‘Bildung’은 자기 자신을 형성하고 도야하는 것을 기반으로 사회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의미가 강조된다. 이 경우 ‘Bildung’으로서 교양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 일원으로서의 개인이라는 조화로움을 추구할 수 있는 보편적 인간을 추구한다. 이것이 교양교육이 추구하는 본원적이며 보편적 교육이념이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의 교양교육은 한 개인의 과학기술사용을 넘어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되는 의미를 확보해야 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사용자이자 주체인 인간의 보편적 자기이해와 더불어 인간과 과학기술의 합리적 균형을 생성해야 한다는 과제가 제기된다. 이러한 교육과정은 인간의 지식과 사고력 뿐 아니라 ‘Ausbildung’에 집중하기 쉬운 과학기술 시대가 놓치기 쉬운 정서적 심미적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이는 과거의 인간상이 아니라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인간상에 대한 고민이자 동시에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Bildung’으로서의 교양교육, 즉 시의적이며 미래지향적인 교양교육이다. 나아가 이러한 인간을 교육하는 것이 포스트휴머니즘 시대 인간과 과학기술 내지는 인문학과 과학의 하모니와 통합으로 이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분과 학문적 지식 또는 실용적 직업 교육적 지식 보다는 비판적 성찰적 사유가 가능하도록 추구하는 교육이 인문학과 과학의 공통과제가 된다.

4. 리버럴아츠교육: 과학과 인문 통합의 대안적 가능성?

리버럴아츠(Liberal Arts)는 고대 그리스 자유시민의 지적 활동을 의미하는데, 무엇보다 육체적 활동(Vulgar Atrs)과 대비된다. 또한 리버럴아츠는 ‘artes mechanicae’에 속하는 의학, 농업, 항해술 등 실용적 지식 추구 활동과도 대비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박병철, 2018: 102). 고대 그리스 시대 이후 리버럴아츠는 소위 3학(논리, 수사, 문법) 그리고 4과(산술, 기하, 천문, 음악) 체계로 정착되는데,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더불어 3학은 역사, 철학, 문학으로 개편된다. 이후 근대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리버럴아츠는 인문학, 예술, 사회과학 그리고 자연과학을 포괄하는 교육으로 정착하게 된다(손승남, 2011: 48). 이 교육과정은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이며 토대적인 필수 교육을 의미하는데, 이에 따르면 리버럴아츠는 특수목적학문이나 응용학문이 아니라 기초학문분야를 포괄하게 되는 동시에 이것이 교양교육의 본원적 내용을 구성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리버럴아츠교육이 특정 학문 분야가 아니라 그 학문 분야들의 연결과 조합을 중요하게 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소위 3학 4과는 각각의 학문영역에 머무르면서 각각의 논리와 세계관을 형성하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3학은 3학 간의 상호 내적 교류와 연결을 형성하고 4과는 4과 간의 상호 내적 교류와 연결을 형성하는 동시에 3학과 4과는 이질적이며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연결되고 조합되기 위한 관련과 연결성을 확보한다. 이러한 연결성 확보는 단일적 세계관과 개별적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과 조합을 통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지식과 세계관을 형성함을 의미하며 이것이 보편적 교양교육의 근원적 의미를 형성한다. 이질적 학문분야의 조합과 통합에 기반을 둔 보편 교양교육이라는 속성은 포스트휴머니즘적 과학기술시대 교양교육의 본질적 의미로 존속한다. 이러한 양상은 지식의 재조합을 요구하는데, 이때 발생할 수 있는 재조합 결과물은 전통적 지식과 매우 다른 모습을 지니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적 가치관에 상응하는 보편성을 형성한다. 특히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적 전통이 주장하는 자유, 이성, 비판 등의 개념이 자유로운 합리적 이성의 소유자인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 사회적 의미와 보편성을 추구하였다면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의 리버럴아츠는 이러한 인간들의 공동체적 사회구성, 즉 사회적 공동체적 자유인을 양성하는 교육이라는 속성을 더욱 강조한다.

물론 이 문제는 교양교육 체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문교양교육의 내용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일례로 전통적 철학, 문학 등의 학문 분과적 구분에 의한 교과구성은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에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통합적 보편 교양으로서 리버럴아츠교육, 특히 인문학은 다양한 학문영역과 그 사유체계를 넘나드는 사고의 자유를 확보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인문영역은 전통적인 휴머니즘적 관점과 더불어 확장된 휴머니즘적 관점이 구현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하는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일례로 교육 일선에서는 특정 세부 지식이나 추상적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수업방식 보다는 판옵틱적 관점을 제시하는 수업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종의 주제적 접근방식을 하나의 사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행복, 죽음, 노동, 사랑과 같은 전형적인 인문학 주제를 한편으로는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역사적이며 통시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각 주제에 대한 동시대적이며 시의적인 경험과 분석을 통해 세계관적 지평 확대와 더불어 이질적 영역에 대한 수용 지평을 확대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공시적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데, 통시적 이해와 공시적 이해의 조합과 결합은 인문적 관점과 과학적 관점의 상호 조화를 전제이자 결론으로 유도한다. 즉 해석(Interpretation)을 중심으로 하는 인문적 관점이 갖는 추상성은 분석(Analyse)을 중심으로 하는 과학적 관점이 제시하는 실증적 객관성을 통해 사유와 경험의 총합체를 구성하게 된다. 이러한 구성과 조합에 따르면 인문적 사유는 과학적 사유와 상호 보완적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따라서 주제적 분석은 학문영역의 경계를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의 지식을 포괄하는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관점은 현재의 변화에 주목하며 미래의 인간 삶과 존재 의미를 구성하는 범휴머니즘적인 확장적 휴머니즘이라는 속성을 담지 할 수 있다. 즉 인문학은 인문적인 동시에 과학기술적 사유를 통한 창의적이며 자유로운 전인적 인간 형성에 다가가는 교양의 의미를 모색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지식 추구방식은 인간중심적인 개념과 더불어 생물학이나 정보학과 같은 이질적 학문의 관점을 상호 통합하는 방식이다. 즉 관념적이며 개념적인 사고와 사유에 집중함을 넘어 실증적이며 경험적인 사유의 가능성을 통합하는, 즉 비동질성과 다양성의 방계적 사유체계를 형성하는 교육인 동시에 통합적 사유를 제공하는 학문으로의 전환이다.3), 특정 주제를 간학문적이며 통학문적 형식으로 그리고 나아가 이질적 학문 사유체계를 연계하여 조합하는 방식으로 구성하는 것은 보편 통합적 교양교육의 의미이자 리버럴아츠교육의 보편적 의미이기도 하다.4)

다른 한편으로 교양교육으로서 인문학의 이러한 전환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육 시스템적인 문제 해결이 병행되어야 한다. 즉 학과 전공 중심적 교육 시스템보다는 통합적 교육을 위한 시스템이 병행되어야 하는데 이 경우 리버럴아츠 교육 시스템을 하나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리버럴아츠는 학과 구분 없이 수업을 진행하고 특정 전공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교과목을 수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리버럴아츠교육은 “기본으로 돌아가자 (Back to Basic)”를 모토로 설정하는데, 이를 위해 두 가지 조건이 요구된다. “하나는 비판적 사고, 독립적 사고가 가능하도록 인식론적 기반이 다져질 필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대학 프로그램 그 자체의 다양성”이다(손승남, 2019: 45). 특히 다양한 학문 분야의 관점을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포괄하여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즉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의 다양성과 통합성을 형성할 수 있는 보편적이며 전인적인 교육에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을 리버럴아츠교육은 제공할 수 있다.

물론 리버럴아츠 교육이 응용학문이나 특수목적 학문분야와 구분되는 것은 사실이다. 응용학문이나 특수목적 학문이 과학기술 시대의 실용적 효율성과 연결되어 있다면 리버럴아츠교육은 기본 토대교육으로서 그 의미를 확보한다. 보편적 토대교육으로서 교양교육이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에 그 의미를 확보하자면 리버럴아츠는 그 사유적 유연성과 통합성을 대학교육의 밑거름으로 제공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인문학 분야의 과학화 그리고 과학의 인문화를 구현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과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리버럴아츠교육의 기본 구상, 즉 전문 기술교육이 추구하는 사회적 실용성과 유용성 그리고 즉발성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자유인, 즉, 문학, 사상, 예술 등 다방면의 지식을 획득하여 인격적 폭과 깊이를 가진 삶의 의미를 구성하는, 다시 말해 지속성을 형성하는 교육 목표와도 상응한다(손승남, 2011: 196).

무엇보다 과학기술적 확실성과 정확성을 추구하는 과학기술적 절대주의는 스스로 이데올로기화 되어 그 나름대로 교조주의적인 모습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러므로 특정 과학기술적 전문지식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추구하는, 즉 전문성보다는 보편성을 그리고 획일성 보다는 다양성과 범용성을 추구하는 리버럴아츠 교양교육은 인간의 삶과 학술적 지식의 다양화를 인정하고 이를 교육의 내용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교육모델은 그 어떠한 종류의 이분법 내지는 이분법적 사유방식을 거부하고 통합적이며 연결적인 교육을 통한 수용적이며 포용적인 범인간적인 내지는 범휴머니티를 추구하는 포스트휴머니즘비평 모델에 상응한다. 왜냐하면 교양교육의 목표라 할 수 있는 지적 탁월성, 도덕적 판단력 그리고 심미적 경험은 교육 외적인 목표, 즉 직업기술과 인적 자원이라는 요소를 포괄하는 것이기 때문에(신득렬, 2016: 173) 과학기술적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에 교양교육의 의미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시 요구되는 것이며 그러한 실현가능성으로 리버럴아츠교육은 그 시의적 중요성을 스스로 증명한다. 단기적 취업이나 직업기술을 연마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과 교양교육이 아니라 지식과 사고의 깊이와 넓이를 추구하는 미래지향적 교육의 수행기관이 리버럴아츠교육이다. 자유교양교육이란 전인적이며 보편적인 그렇기 때문에 미래지향적인 자기 주도적 자유인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 방식이자 동시에 교육제도이기 때문이다.

5. 나오는 말

한국교양기초교육원이 제시한 학문 분야별 교양교육 영역 구분은 인문학의 경우 “①한국문학, 외국문학, 예술 ②역사학, 철학, 종교학, 문화 탐구”로 구분되어 있다.5) 이 경우 인문학은 다분히 전통적 관점에 기반을 두어 분류되고 있다. 이러한 분류는 포스트휴머니즘적 과학기술 시대의 복합성과 다양성에 상응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문학은 과학기술 시대의 변화하는 인간상 내지는 포스트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와 세계관을 담아내기 힘들기 때문이며 나아가 이러한 구분 및 분류는 다분히 현재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관점, 즉 과거 지향적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주제별 교양교육 영역 구분이다. 여기에는 “과학-기술: ①자연 및 과학, ②기술의 본성 및 성과. 인간: ③인간의 본성 및 조건, 문화 및 문명: ④문화현상과 현대문명, 현실: ⑤사회적 현실, ⑥역사적 현실, 가치: ⑦인륜성 탐구와 도덕적 추론, ⑧종교적 가치, ⑨미학적 가치”로 구분되어 있다. 이 주제적 선별은 기존의 전통적 지식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시대의 변화된 현실을 인식하고 이해하기 위한 창발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이는 현재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이며 과학기술시대를 살아가는 자율적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양성하기 위한 시의적 교육이라는 의미를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교육공학적 정량화 내지는 산술적 수치화와 지표화는 가능한 지양되어야 교양교육, 특히 인문학의 본원적 의미에 접근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과학기술시대 인문학 나아가 교양교육은 수리적 통계나 평가지표에 의해 보편적 지식이나 전인적 인간의 세계관을 측량하고 수량화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과학기술 시대의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고 이를 통해 휴머니즘 이후 인간의 본질과 의미를 생각하는 자유로운 인간 양성을 추구해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측량 가능한 산술화된 교육평가와 지표화 보다는 교육 내용에 대한 이해와 사유에 대한 평가방식을 증대 도입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교양교육의 완성은 외적인 형상에서 부터가 아니라 내적인 자기 완결성에서부터 외형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라투르와 브라이도티의 견해처럼 과학기술 시대에는 보편적 일반화(universal)의 의미에서 바라보는 전통적인 대학(University)을 넘어서는, 즉 총체적 다양성(multiversal)의 대학(Multiversity)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라투르, 2012: 131, Braidotti, 2014: 178) 그리고 이것이 곧 포스트휴머니즘 시대 인문 교양교육의 본원적 의미와 상응하기 때문이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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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라투르 브뤼노. 2012;과학인문학 편지, 이세진 옮김, 사월의 책
3. 박 병철. 2018;리버럴아츠칼리지의 형성과 비전 그리고 한국형 리버럴아츠칼리지의 미래. 교양교육연구 12(1)한국교양 교육학회; :99–121.
4. 박 병철. 2019;리버럴아츠 교육과 한국의 교양교육. 교양교육 연구 13(1)한국교양교육학회; :163–180.
5. 손 나경. 2019;과학소설을 통해 배우는 서사적 추진력 - 과학소 설 대상 교양교육 과목의 설계와 검토. 교양교육연구 13(5)한국교양교육학회; :103–128.
6. 손 승남. 2011;인문교양교육의 원형과 변용. 교육과학사
7. 손 승남. 2017;한국형 리버럴아츠(K-LAC)의 가능성 탐색. 교 양교육연구 11(1)한국교양교육학회; :13–37.
8. 손 승남. 2019;유럽 리버럴아츠 대학의 최근 동향. 문화교류연구 8(2)한국국제문화교류학회; :49–68.
9. 신 득렬. 2016;교양교육. 겨리
10. 이 진우. 2013;테크노인문학. 책세상
11. 포 스트먼닐. 2005;테크노폴리, 기술에 정복당한 오늘의 문화, 김균 옮김. 궁리
12. 헤 어브레히터, 슈테판 . 2012;포스트휴머니즘, 인간 이후의 인간 에 관한 문화철학적 담론, 김연순, 김응준 옮김. 성균관대학 교 출판부
13. Braidotti Rosi. 2014;Posthumanismus. Campus Verlag
14. Esfandiary Feredioum. 1989;Are you human? Warner Books
15. Loh Janina. 2018;Trans- und Posthumanismus. Junius Verlag
16. Sorgner Stefan, Lorenz . 2016;Transhumanismus. Herder Verlag

Notes

1)

푸코의 “생체권력(Biomacht)” 또는 아감벤이 제시하는 “비오스(Bios)”와 “조에(Zoė)”의 관계는 모더니즘 시대의 위기와 종말을 의미하는 동시에 인간이 아닌 다른 것의 등장을 의미한다고 브라이도티는 주장한다. 예를 들어 생명과 죽음 같은 전통적 이원론의 경계는 불투명하게 되고 대립적인 요소는 상호 보완적인, 즉 이질적 요소의 재조합으로 이어지며, 이것이 포스트휴먼 비평 담론의 시작점이라고 브라이도티는 설명한다. (Braidotti, 2014: 43)

2)

이진우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삶의 조건 변화를 첫째 과학기술 우호적 분위기, 둘째 과학기술과 인간의 공진화 그리고 셋째 휴머니즘의 자기수정과 맞물려 있다고 본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인문영역도 과학기술과 인간이라는 범주를 포괄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소위 테크노인문학의 등장을 주장한다. (이진우, 2013: 132)

3)

예일대학은 독서를 기반으로 한 주제 중심적이며 통합적 사유를 추구하는 수업진행 사례를 보여준다. “Yale-NUS College의 강좌는 18-20명의 학생들이 1명, 혹은 2명의 교수의 지도를 받는 세미나의 방식으로 진행되며, 학생들은 매주 12-16시간을 수강하게 된다. 학생들은 미국 대학에서처럼 고전적인 서적을 읽어야 하지만 그 외에도 인문학, 사회과학, 계량적 사유 그리고 다량의 데이터에 대한 해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손승남, 2017: 20)

4)

“리버럴아츠 교육의 특징은 (1) 사회를 이끌 리더십을 지는 시민 양성 (2) 탁월한 인성 (3) 사회적 규범 준수 (4) 고전에 대한 이해 (5) 전통적 가치의 이해 (6) 진리 탐구 및 표현 (7) 그 자체가 목적인 교육이념 등이다.” (박병철, 2019: 107)

5)

http://konige.kr/sub02_08.php 2020년 1월 28일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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