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최근 대학에서 AI를 사용하여 시험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학생들이 다수 발각됨에 따라 AI 사용과 관련한 논란이 멈추지 않고 있다(
전율, 2025). 과제나 시험 답안 작성 등을 위해 AI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학생들과 창의성 및 학술 윤리의 확보 차원에서 AI 사용을 금지하는 교수자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두려운 것은 학생들이 AI를 활용하게 되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AI가 학생들의 사고력과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저하시키는 장애물이 될 것이라는 염려를 모든 교수자는 떨쳐 낼 수 없을 것이다. 사실 학생들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 불안감과 정신적 압박감을 느끼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만 AI가 등장하면서 그 현상이 보다 전경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쩌면 기계 때문에 인간의 뇌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리라는 이러한 위기 의식이 표면화된 지금 시점이야말로 교육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AI는 우리에게 왜 우리가 교사로서 학생들 앞에서 서야 하는가에 관한 이유를 다시 묻고 있다. 교육의 경험에 고유하고 대체 불가능한 것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왜 가르치는가?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 수 있는가? 과연 교육의 본질은 무엇인지 근본적인 성찰의 기회를 AI 시대 교육은 제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AI로 인하여 사고 행위는 훨씬 더 복잡해지고 있다. 이 문제는 학생들뿐 아니라 교수자들에게도 더 이상 피할 수 없고 직시해야 할 문제다.
이 논문은 바흐친의 대화성 이론에 기대어 대학 교양 교육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의 교육학적 잠재력을 대화적 접근을 통해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본 연구에서는 바흐친의 대화성과 이종 언어성의 개념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을 최종적 지식 제공자가 아니라, 학생들 간의 협력적 대화와 지식의 공동 구성을 촉진하는 대화적 행위자로 재개념화한다. 이어 H 대학교 교양 과목 <영화로 보는 사회 이슈> 수업에 이러한 학습자-AI의 대화적 상호행위 모델을 구현할 수 있는 방안을 탐색하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이 AI가 생성한 콘텐츠와 비판적으로 상호작용하도록 이끌 수 있는 교육학적 가능성을 본 연구는 모색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다각적 관점을 통합하고 인식론적 역량을 기르면서도, AI에 대해 포괄적, 윤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될 것이다.
교양교육 분야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방안에 관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다.
서민규 외(2024)는 생성형 AI 시대 인간을 탐구하는 인문교양교육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들에 따르면 그 방법으로 인문고전을 중심으로 하는 텍스트 비판, 분석, 창의적 문제해결 교육으로의 다변화와 과학, 기술 그리고 예술의 영역을 넘나드는 진정한 의미의 융합교육이 필요하다. 본 연구는 기존 논의를 보완하면서도 바흐친의 대화성 개념을 활용하여 교양 교육 차원에서 학생이 의미 구성의 자원으로서 언어를 매개로 생성형 인공지능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고찰한다. 바흐친의 연구를 바탕으로 AI와 학습자의 대화적 상호작용 모델(AI and Learner’s Dialogic Interaction Model, ALDIM)을 제안하고 이를 실제 교양 교과목 맥락에 맞게 수업 모형으로 구체화하려 한다.
최근 생성형 AI를 단순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행위자’로 간주하는 연구들(
박승일, 2025:
박양주, 2025)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신유물론적 관점(
박양주, 2025)에서는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의미가 생성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AI 역시 교육적 행위자로 재위치화될 수 있음을 논의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본 연구는 바흐친의 대화성 개념을 통해 생성형 AI를 ‘대화적 행위자’로 개념화한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와 차별화된다. 바꾸어 말해 본 연구는 기존 연구들이 AI 활용의 기능적 측면(효율성, 자동화)에 주목한 것과 달리, 인간- AI 상호작용을 ‘언어적 사건’으로 해석하고 그 교육적 의미를 규명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본 연구는 문헌 분석과 이론적 모형 설계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특정 교과목에의 적용 가능성을 사례 기반으로 탐색하는 질적 연구의 성격을 지닌다.
2. 바흐친의 대화성과 이종언어
대화적 상호작용의 이론적 기반은 20세기 초반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의 대화성에 관한 연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별적 발화 행위인 파롤(parole)에 비해 형식의 시스템인 랑그(langue)를 강조하였던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의 구조주의 언어학을 추상적 객관주의라 비판하며 바흐친은 언어가 본질적으로 대화적임을 강조하였다. 바흐친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발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타인의 발화에 대해 화자 스스로 자기 자신을 지향하면서 해당 맥락에서 그것의 적절한 위치를 찾는 것을 의미한다. 이해하는 과정에 있는 발화의 각 단어에 대해, 우리는 말하자면 우리 자신의 일련의 응답하는 단어를 생성한다고 그는 보았다. 따라서 발화의 구별 가능한 각 의미 요소와 전체 발화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다른 능동적이고 응답적인 맥락으로 번역된다. 요컨대 바흐친의 관점에서 모든 진정한 이해는 본질적으로 대화적(dialogic)이다. 의미는 단어 그 자체에 속하지 않는다. 바흐친의 대화주의적 관점에 의하면 본원적으로 의미는 화자들 사이에 위치해 있다. 즉, 의미는 능동적이고, 응답적인 이해의 과정에서만 실현된다. 의미는 단어에 있지도 않고, 화자의 영혼에 있지도 않으며, 청자의 영혼에 있지도 않다. 그보다 바흐친은 의미는 특정 음성 복합체의 물질을 통해 생성되는 화자와 청자 사이의 상호작용의 효과로 보았다(
Bakhtin, 1994, pp. 25-37). 모든 발화는 화자와 청자, 발화자와 수신자 사이의 상호 관계의 산물이다. 언어-발화의 실제 실재는 추상적인 언어적 형태의 시스템도 아니고, 고립된 독백적 발화도 아니며, 그것을 실행하는 심리생리학적 행위도 아니라, 발화 속에서 실행되는 언어적 상호작용의 사회적 사건이다. 바흐친의 말을 빌리자면 언어의 기본 실재는 대화적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
Bakhtin, 1994, pp. 48-60).
따라서 바흐친에게 추상적인 언어적 관계보다는, ‘언어의 삶’에 내재한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힘을 이해하기 위한 장소인 구체적, 역사적인 발화가 중요하다. 모든 발화나 텍스트는 이전 텍스트들에 대한 응답이며 동시에 미래의 응답을 예상한다. 발화나 텍스트들은 언제나 서로 간에 대화를 나누며, 시공간을 가로질러 끊임없는 발화적 소통의 연쇄를 형성한다. 하나의 발화나 텍스트 안에서도 여러 목소리와 담론이 공존하는 현상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바흐친은 이를 이종언어성(Heteroglossia)으로 정의하고 있다. 모든 언어 사용의 대화적 성격은 의미 형성이 다양한 목소리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역동적이고 진화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각각의 목소리는 고유한 관점과 맥락을 제공하며, 하여 단일한 발화나 텍스트에도 항상 복수의 목소리가 내재되어 있다. 바흐친에 의하면 이러한 목소리의 이종적 복수성은 대화가 위치한 사회적⋅이데올로기적 다양성을 반영한다. 단일언어는 언어적 통일화와 중앙집중화 및 언어의 구심력(centripetal forces)의 역사적 과정에 대한 이론적 표현이다. 공통의 단일언어는 올바른 문법 같은 언어적 규범의 체계를 형성한다. 반면 언어는 단지 엄격한 의미의 형식적 언어적 표지로만 계층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데올로기적 언어들로도 계층화되어 있다. ‘사회 집단’의 언어, ‘직업적’ 및 ‘장르적’ 언어, ‘세대의’ 언어 등이 이종 언어들의 예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이질 언어들은 구심력 옆에서 언어의 원심력(centrifugal forces)으로 끊임없이 작동하면서, 언어적-이데올로기적 탈중앙집중화와 분산의 과정을 추동한다. 언어가 살아있고 발전하는 한, 계층화와 이질언어는 확대되고 심화되며 언어의 역동성을 보장한다고 바흐친은 언급한다(
Bakhtin, 1994, pp. 73-79). 요컨대 바흐친의 이종언어성 이론은 의미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와 텍스트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성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3. AI와 학습자의 대화적 상호작용 모델
그렇다면 바흐친의 대화성과 이종언어에 대한 관점은 AI와 학습자의 상호작용 과정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바흐친의 연구를 바탕으로 AI와 학습자의 대화적 상호작용 모델(AI and Learner’s Dialogic Interaction Model, ALDIM)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Tang, 2025).
3.1. 학습자의 내적 텍스트
학습자는 AI가 생성한 발화나 텍스트와 상호작용할 때, 그 과정에서 과거에 접한 텍스트로부터도 영향을 받는다. 학습자가 이전에 경험한 텍스트들은 현재에 환기되면서, AI가 생성한 텍스트를 학습자가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 과거의 텍스트는 화자가 과거에 경험한 텍스트 자원, ‘내적 텍스트(Innter Text)’라 할 수 있다. 학습자는 AI가 생성한 텍스트를 해석할 때 “이 정보는 내가 다른 곳에서 읽은 것과 어떻게 일치하는가? 어떤 내용이 내 이해력에 도전하거나 나의 기존 지식을 확장하는가?”라 묻게 된다. 이러한 반성적, 메타 인지적 질문을 통해, 학습자는 AI 생성 콘텐츠의 적절성, 정확성, 잠재적 편향을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3.2. 학습공간의 상호작용 맥락
학습자가 프롬프트에 명령문이나 의문문을 입력할 때, 이러한 첫 번째 프롬프트 입력물은 결코 독립적인 텍스트라 할 수 없다. 수업 주제에 관한 교수자의 설명, 정보가 담긴 교재, 학생이 작성 중인 활동지나 보고서, 그리고 참조를 위해 제공되는 영상 콘텐츠 등 다양한 서로 다른 텍스트들과 병치되는 상황 하에서 이를 고려하면서 학습자는 프롬프트를 입력하기 때문이다. 상호작용의 맥락에는 참여 중인 다른 동료 학습자의 목소리, 노트북이나 아이패드 혹은 사이버캠퍼스 같은 온오프라인의 학습 도구들도 포함된다. 학습자가 입력하는 첫 번째 프롬프트 입력물은 본원적으로 자기 완결적인 ‘첫 번째 텍스트’라 할 수 없다. 대화 관계에 놓인 관련 텍스트 및 물질적 대상과 학습자와의 상호작용 결과물이 바로 프롬프트 텍스트인 것이다. 어떤 프롬프트든 물질세계 속 인간 경험의 산물이다. 텍스트이건 이미지이건 모든 것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AI의 마법 같은 위력 앞에서 우리는 어쩌면 배움의 근원적인 의미를 담은 이러한 학습공간의 대화적 상호작용 맥락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AI가 생성하는 출력물이 물질적 현실에 맥락화될 수 있도록 상호작용의 대화적 맥락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생성형 AI를 최종적 지식 제공자가 아니라 교수자, 동료 학습자, 교재, 물리적 도구와 공간 등 학생들이 경험하는 수많은 대화적 대상의 한 명, 대화적 행위자로 바라보는 것은 지식의 역동적 구성, 이해가 끊임없이 협상되고 진화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3.3. 학습자와 AI의 인터페이스
가장 가시적으로 대화적 상호작용이 확인되는 장소는 학습자와 AI의 인터페이스 공간, 프롬프트 창이다. 프롬프트 창의 채팅을 통해 학습자와 AI 간의 텍스트 교환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 의해 학습자와 AI 사이에서 사회적 교류가 생성되고 그 속에서 언어적 소통과 상호작용이 연쇄적으로 발전한다. 학습자는 AI가 이전 대화에서 제시한 주요 구절이나 인용을 다시 참조하여 새로운 프롬프트를 작성할 수 있다. 전방조응이나 후방조응의 메타 담화 표지를 활용하여 이전 교환 내용을 상기시키거나(“앞 단락을 수정해줘”) 향후 응답을 지시할 수도 있다(“다음부터는 … 방식으로 답해줘”). AI 또한 채팅 세션 동안 학습자의 발화를 임시 저장함으로써 이후 대화에서 보다 맥락적으로 풍부한 응답을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메모리 기능을 활용하여 이전 교환을 명시적으로 참조하면서 AI는 향후 대화에서 더 맞춤화된 응답을 학습자에게 제시할 수 있다. 따라서 AI가 생성한 텍스트는 그것이 구성되고 사용되는 상황적 맥락으로부터 고립된 상태에서는 선험적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보다 AI 생성 텍스트는 인간과의 상호작용 맥락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사용자인 학습자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한에서 비로소 AI 생성텍스트는 의미를 갖는 객체가 된다.
3.4. 대규모 언어 모델의 내재적 대화성
OpenAI의 GPT, 구글의 BERT와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LLM)은 방대한 텍스트 코퍼스에서 추출한 대량의 데이터셋을 가지고서 훈련된다. 어떤 단어를 이해하기 위해, 모델은 먼저 그 단어가 훈련 데이터의 모든 텍스트에서 다른 단어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트랜스포머 아키텍처(transformer architecture)’라 불리는 계산 기법을 활용하여, LLM은 이러한 단어들 간의 관계를 벡터로 변환한다. 이 벡터는 단어 또는 단어 연쇄가 함께 출현할 확률을 복합적으로 나타낸다. 텍스트를 생성할 때, 모델은 이 값들을 이용하여 사용자 입력에 가장 적절한 단어 연쇄를 계산한다. 이러한 대규모 훈련 데이터 기반의 계산 덕분에, LLM은 단어들 간의 관계를 패턴을 통해 이해하고 생성하게 된다(
박태웅, 2023).
LLM의 텍스트 생성 과정은 바흐친의 대화적 상호작용의 과정을 반영한다. 모델은 개별 단어를 고립된 실체로 취급하지 않고, 그것들을 다른 텍스트의 배경 속에서 더 큰 상호연결적 의미망의 일부로 인식한다. 더구나 사용자가 AI와 상호작용할 때, 입력하는 텍스트는 보통 모델의 피드백과 미세조정(fine-tuning)에 활용된다. 결과적으로 사용자 집단의 집합적 목소리에 의해 모델의 매개변수가 영향을 받아 언어 패턴의 생성 양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렇듯 AI 생성 텍스트는 고립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 텍스트들이나 사용자의 프롬프트에게서 추출된 파편들을 확률적으로 계산하여, 인용의 모자이크를 재구성함으로써 생성된다. 인간의 발화와 마찬가지로 AI가 생성한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 네트워크로부터 파생된 내재적 담론과 목소리의 영향을 받는다. 요컨대 AI 생성 텍스트 역시 발화 속에서 실행되는 언어적 상호작용의 사회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확률에 기반해 상호텍스트성의 네트워크를 참조하여 출력물을 AI가 생성한다는 점은 교육적으로도 중요하다. AI가 거짓말을 하는 현상, 환각(Hallucination)은 훈련 데이터 속 단어⋅이미지의 통계적 빈도에 모델이 의존하는 한 불가피하다. 이 점이 수업 중 강조될 수 있다면 학습자들은 AI가 내놓는 결과를 과도하게 맹신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활용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을 것이다.
3.5. AI 기업의 목소리
AI를 설계, 운영하는 AI 기업의 영향력은 학습자-AI의 상호작용 과정에 반영되는 다양한 목소리 중 하나다. AI 기술은 이해관계를 가진 기업들에 의해 개발되며, 따라서 이 기업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LLM이 어떻게 작동할지를 규정하는 데 중대한 목소리를 가진다. 예를 들어, OpenAI의 ChatGPT에 사용되는 GPT 모델은 텍스트 생성과 대화를 우선시한다. 반대로 구글의 Gemini는 정보 처리와 언어 이해를 더 중시한다. 이는 각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에 따른 결과다.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로 얽힌 각 기업들의 목소리가 사용자와 AI의 상호작용 과정에 연루되는 양상을 학습자들이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교육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리라 본다.
3.6. 소결
제안된 모델은 AI를 권위적인 정답 제공자가 아니라 교육적 맥락에서 대화적 행위자로 바라보는 관점을 취한다. 학습자와 AI가 상호작용 하는 인터페이스 공간에서의 언어 사용 양상은 학습자의 내적 텍스트, 학습공간의 상호작용 맥락, 대규모 언어 모델의 내재적 대화성, 그리고 AI 기업의 목소리 등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일종의 이중언어성의 형태를 구현한다. 본질적으로 대화적인 속성을 지니므로 이러한 상호작용의 과정에는 다양한 목소리와 관점이 얽혀 있다. AI를 대화적 파트너로 위치시키는 관점은 AI 도구를 책임 있고 윤리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강조한다. AI가 대화적 상대방으로 기능할 때 학습자들은 지식 생산이 본질적으로 사회적이고 맥락화된 과정임을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AI가 합성한 응답의 관련성, 정확성, 편향을 다성적 목소리의 산물로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Tang, et al., 2024).
그러나 진정한 대화란 논리적 일관성만이 아니라, 불협화음과 유머, 리듬의 조화 속에서 인간성을 드러내는 예술이기도 하다. ‘나-너의 관계’는 공유와 공동성의 가능성을 전제하며, 이를 거쳐 ‘우리’라는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
Trausan-Matu, 2019). 훈련 데이터 속 단어⋅이미지의 통계적 빈도를 통해 AI가 인간적 의식이나 의도 없이 특정 목소리를 상호텍스트적 확률을 가지고 생성한다는 점에서 학습자와 AI의 대화 관계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바흐친적 대화 관계라 할 수 없다. 요컨대 서로 독립적이며, 결코 융합되지 않는 복수의 목소리와 의식들의 존재는 아니라는 점에서 학습자가 맺는 AI와의 관계는 ‘나-너’의 관계가 아닌 ‘나-그것’의 관계다. 이러한 한계점 또한 교육적으로 강조되어야 할 터다.
4. 수업모형의 제안
본고에서는 ALDIM 모델을 H대학교의 선택필수 교양교과목 <영화로 보는 사회 이슈>의 맥락에 맞게 수업모형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전술된 (1) 학습자의 내적 텍스트, (2) 학습공간의 상호작용 맥락, (3) 학습자와 AI의 인터페이스, (4) 대규모 언어 모델의 내재적 대화성, (5) AI 기업의 목소리 등이 이러한 교수학습 수업 모형 설계 원리의 5가지 중심축이다.
4.1. 수업모형 설계의 원리
제안되는 수업모형은 다음과 같은 설계 원리를 기반으로 제안된다.
첫째, 학습자의 내적 텍스트를 충분히 환기한다. AI 사용 이전에 다루는 영화감독의 다른 작품을 학생들로 하여금 떠올려 보게 하거나, 동일한 사회 이슈를 주제로 한 비슷한 유형의 작품들을 상기해보게 한다. 해당 사회 이슈와 관련해 학습자가 실제 일상생활에서 갈등 상황을 겪었던 적이 있는지 혹은 다른 수업에서 동일한 문제를 접해 본 바가 있는지를 학생들에게 질문해볼 수도 있다.
둘째, 학습공간을 역동적인 상호작용의 맥락으로 구성한다. 교수자는 학생들이 사회 이슈를 능동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교재, 영화 리뷰 영상, 조별 자리 배치, 디지털 협업 도구 등을 사전에 빠짐없이 준비한다. 교수자의 유인물, 교실 밖의 영상콘텐츠, 동료 학습자와 토론할 수 있는 좌석과 사이버 게시판 등은 대화적 상호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물리적, 사회적 환경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환경 하에서 교실 담화 속에 삽입된 다양한 발화 및 텍스트들은 발문, 토의, 참조를 통해 명시적으로 상호연결된다. 학습자들이 텍스트들을 읽고, 쓰고, 보고, 재구성하는 상호작용의 순간은 의미가 담화적, 사회적 실천에 의해 능동적으로 구성되고 협상되는 순간이므로 세심하게 설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셋째, 프롬프트 창은 학습자가 답을 얻기 위한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학습자 스스로 생성하기 위한 중간 경유지다. 프롬프트 창에 일회성의 명령문이나 의문문을 적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AI의 답변에 학생들이 역으로 질문을 던질 수도 있고, 비판적 논평도 할 수 있는 대화적 인터페이스 공간이 구성되어야 한다. 프롬프트에서 학생들이 발화하고, AI가 답변하며, 이에 기반해 다시 학습자들이 질문을 던지고 AI의 답변에 반응하는 과정은 일종의 생각하는 과정 그 자체임을 학생들은 성찰할 수 있다.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는 곧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와 직결된다. AI 활용과정이 사용자가 단순히 기계에 기대는 과정이 아니라 사고 과정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해야 하는 메타적 인지 과정임을 학습자가 인식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LLM의 내재적 대화성을 부각한다. AI의 답변이 통계적 확률에 기반한 예측치이므로 챗GPT가 출력물을 내놓는 과정에는 편향성과 대표성, 그리고 환각의 문제가 상존하고 있음을 학생들에게 강조한다. 데이터를 상호텍스트적 네트워크 속에서 학습할지라도 AI는 모방에 능한 앵무새처럼 가장 개연성 높은 답변을 확률에 근거해 흉내 내기만 한다(Bender et.als., 2021)는 점이 수업 중 토의되어야 한다. 동일한 프롬프트를 다른 사용자들이 저마다 각각 입력해보고 그 답변들을 서로 확인하는 활동이 이어질 수 있다.
다섯째, AI 기업의 목소리 또한 토론주제로 다룬다. 동일 프롬프트에 대해 챗GPT와 제미나이로 AI 도구를 달리했을 때 어떻게 답변이 나오는지 학생들은 비교, 대조할 수 있다. 기업 중심의 AI가 학생 개인이나 대학 공동체의 사고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학생들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4.2. <영화로 보는 사회 이슈>에의 적용
4.2.1. 교과목 개요
<영화로 보는 사회 이슈>의 교과목 목표와 주차별 내용은
<표 1>과 같다.
<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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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목명 |
영화로 보는 사회이슈 |
학점 및 이수구분 |
3학점_선택필수교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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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대상 |
전학년 |
교수학습방법 |
강의식, PBL, F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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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목개요 |
영화를 바탕으로 미래사회에 떠오를 주요 이슈를 논의하고 이에 대해 여러가지 시각과 해결책을 팀 토론과 활동을 통해 논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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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목표 |
1) 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다양한 영역에서의 사회변화(과학, 교육, 사회문제, 문화 등)를 파악한다. 2) 과학이슈, 창의성 이슈, 사회문제 이슈, 문화 이슈 등을 다루며 융합적 시각으로 다각도로 이슈를 논한다. 3) 각 이슈에 대한 문제해결적 팀 활동을 통해 창의성을 바탕으로 문제해결적 관점을 학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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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 |
강의주제 및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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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오리엔테이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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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PBL의 정의와 의의: 「죽은 시인의 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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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1차~3차 산업혁명과 사회이슈: 「모던 타임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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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4차 산업혁명과 사회이슈①: 「H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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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4차 산업혁명과 사회이슈②: 「레디 플레이어 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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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창의성이란 무엇인가①: 「고흐, 영원의 문턱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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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창의성이란 무엇인가②: 「오펜하이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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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중간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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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사회이슈1. 계층갈등: 「설국열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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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사회이슈2. 인종갈등: 「겟아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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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사회이슈3. 젠더갈등: 「헤드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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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사회이슈4. 환경문제: 「씨스피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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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수강생 발표(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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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수강생 발표(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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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기말고사 |
<영화로 보는 사회 이슈> 수업은 블렌디드 교과목으로 1시간 온라인 강의 사전녹화 영상이 제공되고, 영상을 보고 온 학생은 오프라인으로 2시간 동안 수업에 참여한다. 「설국열차」를 중심으로 계층갈등의 사회이슈를 다루는 9주차 수업을 예로 삼아 본 수업모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모든 차시에 본 수업모형이 적용될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설국열차」가 인지도가 높아 설명의 가독성을 위해 9주차 수업을 예시로 든다. ALDIM의 각 단계는 바흐친의 대화적 상호작용의 요소들이 구체적 활동으로 구현되도록 설계되었다.
4.2.2. 1단계: 내적 텍스트의 활성화
영화는 수업 전 보고 오는 것으로 한다. 온라인 수업에서는 ‘계층 갈등’에 관한 사회학적 이론과 영화 「설국열차」의 인물, 시공간적 배경 그리고 주제 등이 소개된다. 오프라인 수업에서는 학생 중심의 활동이 이어진다. 초반부에 봉준호 감독의 다른 영화인 「기생충」이나 비슷한 이슈를 다룬 뉴스를 학생들로 하여금 떠올려 보게 한다. 계층갈등에 대한 자신의 이전 경험, 다른 수업에서 배운 개념 등도 상기하면서 학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이나 든 생각들을 패들릿 등에 간단히 적어보게 한다. 학생들의 짧은 글들을 교수자는 수합하여 텍스트만 제공하면 자동적으로 워드클라우드를 생성케 해주는 ‘워드아트’ 사이트에 입력한다. 워드 클라우드로 형상화된 학생들의 내적 텍스트는 차후 단계들에서 토론주제로 활용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생성형 AI 활용이 인간적 해석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 단계에서 해석을 확장하기 위한 보조적 장치임을 명확히 하기 위함이다. 인간의 해석을 출발점으로 하여 다루는 주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안내한다.
4.2.3. 2단계: 소그룹 토의
인터넷에서 교수자가 선택한 「설국열차」에 관한 리뷰 영상을 10~12분 정도 학생들에게 보여준다. 이러한 리뷰 영상은 영상콘텐츠 제작자의 관점일 뿐 보편화된 관점은 아님을 학생들에게 교수자는 설명한다. 이후 1단계에서 워드 클라우드를 통해 출현 빈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 단어들과 리뷰를 보고 배태된 반응들을 조합하여 학생들과 함께 교수자는 조별 토론을 위한 주제를 작성한다.
<표 2>와 같은 주제들이 토론주제들이 될 수 있다.
<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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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차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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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윌포드, 커티스, 남궁민수, 메이슨, 길리엄, 요나 등 등장인물을 어떻게 볼 수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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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간의 의미는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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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커티스가 행하는 혁명의 의미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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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계층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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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영화의 기타 다른 요소에 대해서 논의하고 싶은 점을 이야기해보시오. |
2단계에서는 AI를 사용하기 전에 이미 영화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와 해석적 텍스트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료 학습자와의 대화인 소그룹 토의를 거치며 학습공간의 상호작용 맥락 하에서 다층적인 목소리를 학습자는 만날 수 있다.
4.2.4. 3단계: 프롬프트 설계
3단계에서는 프롬프트 입력창을 중심으로 학습자와 AI의 상호작용이 조직된다. 우선 학생들이 참조할 수 있는 텍스트는 교수자의 텍스트다. 교수자는 먼저 ChatGPT 사용법을 설명하면서, 학생들이 챗GPT와 상호작용할 때 따라야 할 몇 가지 단계를 칠판에 적어준다. 예컨대 단계에 관한 설명은
<표 3>과 같이 제시될 수 있다.
<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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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질문 던지기: “~에 관한 맥락을 설명해 줄 수 있겠니? 특히 ~문제에 초점을 맞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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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에게 질문을 던질 때는 맥락과 초점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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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판적 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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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의 답변을 반드시 교차 검증하라. 항상 AI의 답변이 정확한 것인지 질문하는 습관을 들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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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더 깊이 질문하기 - 한 번의 질문으로 끝내지 말고 대화를 이어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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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구체적인 심화된 추가 질문을 던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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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을 활용하여 AI 답변에 덧붙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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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신의 말로 요약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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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변 내용을 단순히 복사해서 붙여넣는 것은 지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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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한 내용을 당신의 목소리를 통해 재해석하여 서술하라. |
학생들은 교수자와 동료 학습자, 영상 리뷰어 등의 발화나 텍스트를 참조하여 토론주제에 대해 맥락을 추가하고, 초점을 조정하여 조별로 프롬프트 2~3개를 설계할 수 있다. 그러나 2단계에서 제시된 토론주제를 그대로 프롬프트에 옮기게 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학생들로 하여금 맥락이나 초점이 덧붙여진 더 많은 세부 내용을 추가하여 프롬프트를 설계하게 한다. 교수자, 동료 학습자, 영상 리뷰어의 목소리 등을 프롬프트 설계에 끌어들이면서도 학생 자신의 목소리를 이에 병치하도록 함으로써, 학생들이 AI에 던지는 질문이 ‘인용의 모자이크’가 되었음을 교수자는 학생들에게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교수자는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 나의 입장을 프롬프트에 반영할 것인가?’, ‘어떤 종류의 참조 자료를 프롬프트 질문에 포함시킬 것인가?’를 물을 수 있다. 그 결과 챗GPT와의 상호작용이 학생 자신의 텍스트를 포함하여 다층적 텍스트들의 병치에 의해 매개되는 것임을 학습자는 깨달을 수 있다. 챗GPT의 답변을 비판적으로 교차검증하고, 구체적이고 심화된 연쇄적 질문을 던지며, 답변 내용을 자신의 말로 요약하는 활동을 통해 이러한 대화적 기능은 확장된다.
요컨대 학습자의 질문과 AI 응답 간의 상호텍스트적 연결을 바탕으로, 우리는 인간과 AI가 상호작용 속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하며 지식을 공동 구성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기존의 영화 기반 토론 수업은 학습자의 주체적 해석과 의미 생성이라는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해석의 다양성이 제한되거나, 특정 관점에 고정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이에 비해 생성형 AI는 방대한 텍스트를 기반으로 다양한 해석적 관점을 즉각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학습자가 자신의 해석을 상대화하고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따라서 본 수업에서 생성형 AI의 활용은 인간적 해석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습자의 해석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고 심화시키기 위한 ‘대화적 촉발 장치’로 기능한다.
4.2.5. 4단계: 플랫폼별 AI의 응답 비평
AI 자체는 다성적 목소리의 네트워크 속에서 상호텍스트적 패턴을 출력물로 재현한다. AI가 내놓는 답변은 사전훈련된 데이터의 학습 결과이거나 사용자의 미세조정이 딥러닝의 매개변수에 반영된 결과다. 이러한 점은 각기 다른 인공지능 플랫폼, OpenAI의 챗GPT와 구글의 제미나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영화 속 머리칸의 지도자인 윌포드는 이중적 해석이 가능한 인물이다. 열차의 운행을 지속하기 위해 꼬리칸의 아이들을 기계의 부품으로 희생시키는 윌포드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인가? 아니면 열차 내 폭발적인 인구 증가 대비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구 증가율을 일정 정도로 조절하기 위해 꼬리칸의 사람들을 불가피하게 희생시키는 것을 선택한 공리주의적 리더쉽의 소유자인가? 동일 질문을 챗GPT와 제미나이에 각각 물었다. 답변 내용은 [
그림 1]과 같았다.
[그림 1]
챗GPT의 답변 양상은 제미나이에 비해 더 길고 정교하다. 공리주의적 변호가 정당해지려면 필요한 조건들을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에 비해 제미나이의 답변은 프롬프트 질문에서 작성된 ‘공리주의적 리더쉽’의 용어에 초점을 맞춰 답변 내용을 충실히 해설하고 있다. 20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에서도 차이는 드러난다. 챗GPT는 “누가 꼬리칸에 서 있고, 다른 길은 정말 없는지 묻는 연습을 하자… ‘엔진을 어떻게 더 잘 돌릴까?를 넘어’, ‘엔진을 더 열심히 돌리라는 주문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니라’” 등 수사학적 비유의 표현을 기교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반면 제미나이의 경우, “단순한 계층 상승(앞칸으로 가는 것)을 넘어 모두에게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새로운 사회 시스템(열차 밖)을 상상하고 설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등의 서술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제미나이의 서술은 수사적 장식미는 챗GPT보다 떨어지지만 평이한 문체로 핵심 내용을 잘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각 회사에서 차용하는 훈련데이터, 그것의 업데이트 주기, 모델구조 그리고 비즈니스 모델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학생들은 이 두 플랫폼의 응답을 비평하는 활동을 통해 AI 생성 텍스트가 여러 텍스트들의 조합을 통해 생산되며, 상호텍스트적 성격은 AI 기업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예컨대 세 가지 활동이 본 단계에서 고려될 수 있다.
먼저 학생들은 위에서 거론한 프롬프트를 입력하기 전 각 플랫폼별로 답변이 어떻게 생성될 것인지 예측해보는 활동을 수행할 수 있다. 예측된 응답 내용과 챗GPT 및 제미나이가 실제 답변한 내용을 비교 대조하는 과정에 학습자의 참여를 유도한다.
다음으로 플랫폼별 AI가 작성한 콘텐츠의 강점과 약점을 학생들이 루브릭, 체크리스트, 또는 기타 평가 기준을 활용해 평가할 수 있다. 각 텍스트의 강점과 약점을 논의하고, 인간 작성자와 AI 작성자의 차이점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마지막으로 각 텍스트의 초안을 학생들이 분석, 수정하며 개선점을 논의하는 과정을 통해 비판적 사고와 편집 기술을 함양할 수 있다. 이때 각 플랫폼별 AI의 작성 결과를 단순히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왜 특정 부분을 학생들이 수정해야 하는지 논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상의 활동들을 통해 학습자는 AI 생성 텍스트가 기존 텍스트의 목소리와 지식을 재조합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경험하게 된다.
4.2.6. 5단계: 정리
마지막 단계에서 학습자는 텍스트 간의 관계를 메타적으로 성찰한다. 수업 말미에 교수자는 AI가 학생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물을 수 있다. 지식을 심화시키는 데 AI가 공헌한 부분은 어떤 부분이 있었는지, AI에게 너무 의존하게 된 순간은 어느 시점이었는지 학생과 논의할 수 있다. 인간과 AI의 관계가 ‘나-너’의 관계인지 ‘나-그것’의 관계인지를 마무리 질문으로 제시하며 수업을 정리하는 짧은 글쓰기를 학생들은 수행하게 된다.
4.3. 수업모형 설계의 유의점
첫째, 학생 간 디지털 격차를 고려하여 디지털 기반 수업을 실현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네트워크 연결의 수월성, 인공지능 플랫폼으로의 접근성, 개별 맞춤형 디바이스 제공 등 AI 도구 사용 환경의 격차를 해소한 상태에서 본 수업이 실시되어야 한다.
둘째, 교육기관 차원에서 규정된 AI 사용의 윤리적, 법적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면서 본 수업이 실행되어야 한다.
셋째, 교수자는 AI 도구 사용에 대해 긍정하되 비판적 이해의 태도를 지속적으로 견지해야 한다. 학습자가 AI 생성텍스트를 최종 답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텍스트를 생성하기 위한 질료이자 매개체로서 가공하고 재구성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궁극적인 의미 생성자는 학생 자신으로서 학생 자신의 목소리를 중심에 두고 AI 생성 텍스트, 타자적 텍스트들을 참조하고 통합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러한 대화 수업을 통해 교수자가 학생에게 이끌어내야 할 중요한 태도는 “AI보다 나는 더 나은 답을 낼 수 있어”라는 학습자 스스로의 인간적 자신감이다.
4.4. 수업모형 적용의 예상 결과
본 수업모형이 적용될 경우 다음과 같은 교육적 효과가 기대된다.
첫째, 학습자는 AI의 응답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에서 인식론적 판단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둘째, 다양한 텍스트 간 비교⋅분석을 통해 해석의 다성성을 경험하게 된다.
셋째, AI와의 대화 과정을 메타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이 향상된다.
이러한 효과는 향후 실제 수업 적용을 통해 학습자 발화 분석, 프롬프트 변화 양상, 토론 참여도 등의 지표를 활용하여 실증적으로 검증될 필요가 있다.
5. 결론
본 연구에서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교양 교육에서 바흐친적 의미에서의 대화적 상호작용을 촉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인공지능의 교육적 활용 측면에 대해 많은 기존 연구들이 개별화 학습, 자동화된 피드백, 학습자 분석의 효율성 향상, 학습활동 및 평가 설계 면에서의 사용 등에 주목해 왔다. 그러나 사용자의 프롬프트 입력과 챗GPT가 생성하는 텍스트의 교환 양상을 언어적 대화의 사건으로 보고 이를 통해 교육학적 원리를 규명하고자 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AI가 생성한 텍스트는 프롬프트를 통해 입력된 학습자의 개별적 목소리와 인터넷의 방대한 텍스트 말뭉치에서 추출된 공동체의 목소리 모두를 포함한다. 텍스트들이 사회⋅문화적 틀 안에서 서로를 참조, 반향, 변형하는 전통적 상호텍스트성의 대화적 양상처럼 학습자와 인공지능의 상호행위 과정에서 이질적이면서도 다양한 목소리와 관점이 생성되고 확장된다. 물론 AI 생성 텍스트 내의 수많은 자료들과 그 안에 병치된 목소리들은 인간의 의도성과 의식을 결여하고 있다. 하지만 AI의 목소리가 본질적으로 인간 언어를 전유한 것이며 수많은 인간들이 수행한 입력 행위로 구성된 복합적 집합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텍스트의 접근⋅해석⋅생산⋅소통을 적극적으로 형성하는 행위자로서 AI를 바라보고 최종적 지식 제공자가 아니라 대화적 행위자로 AI를 교실에서 수용할 수 있다면 생성형 AI 사용에 대해 학생들이 비판적 태도와 자기주도적 학습 역량을 함양할 수 있는 길이 열리리라고 본다.
대화적 상대방으로서 AI를 교양교육에서 활용하는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교수자를 AI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교수자가 학생들을 대화적 상호작용에 참여시키는 능력을 보완하고 확장하는 데에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AI의 답변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수정할 수 있다. AI는 사고를 자극하는 ‘출발점(prompt)’으로 학습자가 AI의 출력을 비판⋅개선⋅확장하는 과정 자체는 학습자의 ‘사고 훈련’으로 기능한다. AI와의 첫 대화는 인간의 사고를 촉발시키는 도화선이고, 이후 다음 단계부터는 완전히 인간이 중심이 된 지식 재구성의 과정이 펼쳐지게 된다. 대화를 통해 교수자가 학생에게 이끌어내야 할 중요한 태도는 “AI보다 나는 더 나은 답을 낼 수 있어”라는 학습자 스스로의 인간적 자신감이다.
본 연구는 바흐친의 대화성, 이종 언어의 개념에 토대해 대화주의 과정으로 교양 교육의 교수 학습 과정의 원리를 고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실제 수업 적용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실증적 검증을 포함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향후 연구에서는 동일 수업모형을 적용한 실험집단과 비적용 집단 간 비교 연구를 통해 AI 활용의 교육적 효과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 대화적 접근의 가치가 보다 설득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다양한 교육 맥락과 교과 영역에서 학습자와 AI가 대화적으로 상호행위하는 양상이 실증적으로 조사되고 기록되어야 한다. 더불어 생성형 인공지능의 개입이 학생의 참여와 학습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 위하여 이론적⋅교육학적 프레임워크의 추가 개발이 요청된다.
프랑스의 저술가 로랑 듀브릴(Laurent Dubreuil)은 AI 시대 인문학의 위치를 고찰하면서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인용한 바 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최악의 시기에조차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처럼 듀브릴은 AI 시대 인문학의 처지 또한 마찬가지라 본다.
마르케스 서사의 마지막 부분은 전염의 위협이 지연된 사랑에 불가능해 보이는 지지를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AI는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생각하기 위해 필요로 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여기 있으며,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명사와 현실로 사용하여 학문을 재창조할 수 있다(
Dubreuil, 2024).
AI 시대의 초점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 “AI가 어떻게 설계되고 교실에 통합될 수 있는가”로 옮겨져야 한다. 결국 AI 시대에 수업활동에서도 더 근본적인 것은 교수자와 학습자 간의 인간적 상호작용이다. AI를 사용할 수도 있고,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이 학생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가?’이다. AI의 사용은 교육 활동이 변혁적 의미작용과 차이에 관한 탐구를 출현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을 우리에게 오히려 제기하고 있다. 재앙이 오히려 사랑을 지탱하는 아이러니한 힘이듯이 AI의 사용이 교육의 근본적인 의미를 묻고 있다는 점은 아마도 AI를 사용하는 교실에 울려 퍼지는 역설적 낙관주의의 한 장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