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자율선택제와 지속가능한 교양교육
The Autonomous Major Selection System(AMSS) and Sustainable General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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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본 논문은 전공자율선택제의 시행에 따른 교양교육의 과제와 방향을 가늠해보는 데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전공자율선택제는 과연 교양교육의 발전을 견인하는 힘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만약 작동할 수 있다면 교양교육의 방향은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하며, 교육의 내용과 방법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해명하는 것이다. 흔히 학부교육은 진입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전공교육과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교양교육으로 구분된다. 전자가 사회진출을 용이하게 하는 교육으로 유용성, 단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후자는 삶의 보편적 토대를 확보하는 교육으로 자유로운 탐구정신에 기반한 지속성에 무게를 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전공자율선택제는 단기적 측면의 사회 요구에 부합하는 인력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측면에서 진입가능성에 무게를 둔 정책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전공자율선택제의 도입이 필연적으로 학부 교양교육과정에 대한 큰 틀의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입학 단계에서의 무전공 학생과 더불어 전체 학생들에게 체계적이고 균형잡힌 교양교육을 어떻게 시킬 것인가 하는 것은 교양교육 차원에서 시급한 현안문제다.
학부교육 차원에서 전공자율선택제는 전공자율선택에서 출발하여 전공자율설계 및 전공자율완성이라는 과정을 거친다고 볼 수 있다. 본 논문은 이 같은 일련의 과정 중에서 전공자율선택제의 출발점이 될 1학년 교육에 한정시켜 다룬다. 우선 전공자율선택제가 교양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정교하게 분석한다. 여기서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보편교육을 지향하는 교양교육이 전공자율선택제 모집 학생을 위한 특수교육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이고, 둘째, 전공자율선택제 모집 학생을 위한 교육에서 자유교육의 이념과 가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이며, 셋째, 전공자율선택제를 교양교육과 전공교육간의 긴밀한 연계를 확보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가이다. 다음으로는 전공자율선택제 아래서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교양교육 영역은 자유학예교육이라는 판단 아래 기초학문 중심의 자유학예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교육내용 및 방법의 측면에서 점검한다. 마지막으로 전공자율선택제로 인해 촉발된 고등교육의 새로운 국면에서 지속가능한 교양교육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Trans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roles and directions of general education in the wake of the implementation of the Autonomous Major Selection System (AMSS). More specifically, this paper aims to elucidate whether or not AMSS can work as a force that drives the development of general education, and if so, what should be the direction of general education, and what should be the content and method of education. Undergraduate education is often divided into two types: major education, which focuses on employability, and general education, which focuses on sustainability. While the former is an education that facilitates entry into society and focuses on usefulness and short-termism, the latter is an education that secures a universal foundation for life and emphasizes sustainability based on the spirit of free inquiry. In this respect, AMSS seems to be a policy that weighs on employability in the sense that it focuses on fostering human resources that meet the needs of society in the short term. Moreover, considering that the introduction of AMSS will inevitably lead to major changes in the general education curriculum, how to provide a systematic and balanced general education to all students, including undeclared majors at the entrance stage, is an urgent issue for general education.
At the level of undergraduate education, AMSS can be seen as a process that begins with autonomous major selection and continues through the process of autonomous major design and completion. This paper focuses on first-year education, which is the starting point of AMSS. First, the paper analyzes in detail the impact of AMSS on general education. There are three main questions. First, how will general education, which aims to be a universal education, carry out special education for undeclared major students; second, how will the ideal and values of liberal education be implemented in the education of undeclared major students; and third, can AMSS be used as an opportunity to ensure a closer link between general education and major education? Next, it examines the direction of liberal arts education centered on the basic disciplines in terms of educational content and methodology, based on the judgment that liberal arts education is the area of general education that should be most emphasized under AMSS. Finally, it explores the possibilities of sustainable general education in the new phase of higher education initiated by AMSS.
1. 들어가는 말: 대학환경의 변화에 따른 전공자율선택제의 도입
전공간의 벽 허물기와 융합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 전공자율선택제가 본격적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전공자율선택제는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할 때 특정 학과로 입학하지 않고 일정 기간 전공탐색기를 거친 후에 전공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제도다. 수도권 51개 대학과 국립대 22개 대학의 전공자율선택제 선발 비율이 교육부의 권장 비율인 25%를 넘어서 약 29%에 육박할 정도로 많은 대학들은 이 제도에 사할을 걸고 있는 형국이다. 정책적 타당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넘어 교육부의 재정지원과 인센티브를 확보하기 위한 절박함이 이 비율에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등교육이 시장의 힘에 과도하게 의존함으로써 대학의 학문적 진실성(academic integrity)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던 버달(R. Berdahl)에 따르면, 대학의 자율성(institutional autonomy)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개념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 대학이 추구하는 목적과 프로그램에 대한 추진방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으로서의 절차적 자율성(procedural autonomy), 대학의 추구하는 목적과 프로그램 자체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으로서의 실체적 자율성(substantive autonomy), 마지막으로 개별 학자가 가르치고 연구할 때 어떤 처벌이나 해고를 두려워하지 않고 진실을 추구할 수 있는 학문의 자유(academic freedom)가 그것이다(Berdahl, 1990). 이러한 구분에 따른다면 교육부의 무전공 입학 정원 확대 요구는 추진과정에서 재정지원이라는 긴박한 수단을 사용함으로써 대학의 절차적 자율성을 무너뜨렸고, 나아가 내용적 자율성에까지 영향을 미침으로 대학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전통적 핵심 가치인 학문의 자유와 의미의 중첩을 이루는 내용적 자율성은 대학마다 특성화된 교육전략을 마련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일정 정도 확보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전공자율선택제가 학생 모집에 대한 절차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교육과정에 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으며, 결국 이 정책의 성패는 학생모집이나 관리가 아니라 교육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전공자율선택제는 학생의 전공선택권을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학과, 전공 간 벽허물기를 통해 대학혁신을 유도하는 제도이지만 모집단위 광역화라는 고등교육 정책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렇게 새롭거나 파격적인 정책이 아니다. 대학 내 견고한 학과제 패러다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고등교육 정책은 이미 두 번의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안고 있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1972년 공표된 「고등교육에 관한 장기종합계획안」에 의거, 1973년부터 1980년까지 시행했던 실험대학 사례다. 학생선발을 학과중심에서 대학별, 학부별, 계열별로 다변화하여 운영상의 효율화를 도모하고, 광역형 교육과정을 구성하여 전공학과간의 장벽을 제거하려 했던 실험대학 정책은 인기학과 쏠림 현상, 실험대학 운영에 필요한 지원책 미흡, 인력수급계획의 단기적 혼란 등으로 1985년 학과제 모집으로 복귀하였다. 단적으로 학부제 정책의 첫번째 실패사례라고 할 수 있다(강명구, 김지현, 2010; 윤승준, 2021).
두 번째는 1995년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 개혁 방안」을 계기로 2000년대 학부제가 대학에 광범위하게 도입된 경우다. 당시 정부는 모집단위 광역화를 대학평가 및 재정지원과 연계시킴으로써 학부제는 대학에 급속도로 확산된 바 있다. 예를 들어 2008년의 경우 학부제가 국공립대학 26개 대학 가운데 23개 대학, 사립대학교 경우 135개 대학 중 98개 대학에서 시행된 것을 감안한다면 당시 학부제 정책은 열풍에 비견될 만큼 광범위하게 실행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인기학과 쏠림현상, 무리한 학과통폐합으로 인한 운영상의 문제, 전공교육 부실 등의 이유로 학과제로 복귀하는 대학이 늘어나게 되면서 학부제 정책은 다시 한번 실패를 경험하게 되었다(강명구, 김지현, 2010).
이제 학과제 패러다임의 경직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교육부의 전공자율선택제가 재등장하게 되었다. 2023년도 고등교육법 개정안에 의거한 정책으로 모집유형만 세분화되었지 취지는 이전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학령인구 감소라는 심각한 위기상황이 이미 두 번의 실패를 경험한 모집광역화 정책을 재소환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학 현장에서 전공자율선택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크다. 특히 그 우려는 제도 자체에 대한 우려뿐만 아니라 운영상의 우려 모두에 걸쳐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1), 전공자율선택제의 본격적 시행에 앞서서 두 차례나 실패한 정책이 재등장한 배경이 무엇이며, 과거의 정책을 통해 우리가 철저하게 점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2)
본 논문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본 논문은 전공자율선택제를 통해 교양교육의 중요성을 입증하고 지속가능한 교양교육의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과 전략이 필요한가를 분석과 대안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3), 흔히 대학교육은 진입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전공교육과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교양교육으로 구분된다. 전자가 사회진출을 용이하게 하는 교육으로 유용성, 단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후자는 삶의 보편적 토대를 확보하는 교육으로 자유로운 탐구정신에 기반한 지속성에 무게를 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전공자율선택제는 교육부의 첨단학과 증원정책과 더불어 단기적 측면의 사회 요구에 부합하는 인력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측면에서 대학정책의 무게중심이 진입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뚜렷한 징후로 보인다.4), 일찍이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학문분야에만 관심을 기울이면서 자유교육이 경시되는 현실을 ‘조용한 위기’(silent crisis)로 비유했던 누스바움(M. Nussbaum)은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대다수의 국가가 이윤 창출에 적합한, 유용하고 고도로 응용된 기술개발을 통한 단기 이익의 추구를 선호하는 데 비롯되었다고 진단한 바 있다(누스바움, 2011). 전공자율선택제의 도래를 앞두고 누스바움이 말하는 ‘이익창출을 위한 교육’이 ‘전인적인 유형의 시민정신을 위한 교육’을 압도하는 현상이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무엇보다 전공자율선택제의 도입이 필연적으로 학부 교양교육과정에 대한 큰 틀의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입학 단계에서의 무전공 학생과 더불어 전체 학생들에게 체계적이고 균형잡힌 교양교육을 어떻게 시킬 것인가 하는 것은 교양교육계가 당면한 시급한 현안문제다. 본 논문은 이 같은 문제를 전공자율선택제의 주요 타깃이 될 1학년 교육에 한정시켜 다루어보고자 한다. 우선 전공자율선택제가 교양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교양교육의 이념적 측면과 영역별 측면에서 정교하게 분석하고(2장), 전공자율선택제 아래서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교양교육 영역은 자유학예교육이라는 판단 아래 기초학문중심의 자유학예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점검할 것이다(3장). 마지막으로 전공자율선택제로 인해 촉발된 고등교육의 새로운 국면에서 지속가능한 교양교육의 가능성을 살펴볼 것이다(4장).
2. 전공자율선택제가 교양교육에 미치는 영향
2.1. 자유전공제도와 확장된 형태로서의 전공자율 선택제
전공자율선택제는 입학 단계에서는 무전공, 자유전공 모집을 추진하고, 재학 단계에서는 학사구조 유연화, 교육과정 개편, 전공 및 진로탐색을 위한 지원체계 구축을 모색하는 정책으로 대학 졸업 후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학생들이 다양한 교육경험을 쌓아 융합형 인재5),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교육부, 2024). 특히 입학 단계에서의 무전공 유형의 추진은 전공자율선택제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며, 본격적인 전공 진입 이전의 교육이 교양교육과 직결된다는 측면에서 그동안 축적해온 교양교육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주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공자율선택제 이전에 이미 많은 대학에서 특정 전공을 미리 정하지 않고 전공탐색 이후에 전공 및 학과를 선택하는 자유전공학부 혹은 자율전공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자유전공학부는 학과제 학사구조 속에서 학부제 이념을 구현하고자 하는 매우 독특한 한국형 학사구조 양태로서(강명구, 김지현, 2010), 광역화된 모집단위, 광역화된 교육과정 속에서 폭넓은 교육을 지향하는 외국대학과 달리 견고한 학과제 안에서 부분적으로 학부제 이념을 구현한다는 측면에서 이미 갈등과 대립의 요소를 내재하고 있다. 국내 대학에서 자유전공 혹은 자율전공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제도를 운영하는 대학 중 대부분이 1학년 과정으로 운영하면서 학생의 전공선택과 학과배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은 이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정연재 외, 2023). 문제는 자유전공 제도가 학생들의 전공선택권 강화와 학문탐구의 다양한 기회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큰 장점을 가지고 있는 제도이지만 특정 전공학과로의 쏠림 현상, 원하는 전공에 진입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 졸업 이후 취업시장에서의 공급과잉 등 한국적 맥락에서 자유전공 제도가 가지는 한계 역시 뚜렷하다는 점이다. 전공자율선택제가 자유전공제도의 확장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본격적인 시행에 앞서 점검해보아야 할 중요한 사안인 셈이다. 특히 교양교육의 측면에서 볼 때 자유전공 제도의 핵심은 학생들에게 지식과 학문 그 자체의 가치를 제대로 탐색하게 하고 전공 진입 이후에도 건강한 대학생활과 바람직한 학업을 추구하는 원동력을 제공해야 하기에 교양교육의 전통과 가치를 현재적 맥락에서 잘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자유전공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많은 대학이 1학년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는 만큼 교양교육의 가치와 맥락이 제대로 투영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전공자율선택제 도입에 앞서 교육의 분절화, 기능화를 극복하고 학생들에게 생각의 자유, 지적 안목의 확장, 창의융합적 사고능력을 심어주기 위한 교양교육 차원의 노력이 각별히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2.2. 전공자율선택제와 교양교육의 이념, 교양교육과 전공교육의 관계설정
전공자율선택제가 교양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하는 데 있어 우선적인 문제는 이 제도를 교양교육의 이념에 비추어 살펴보는 것이다. 첫 번째로 보편 교육을 지향하는 교양교육이 전공자율선택제 모집 학생을 위한 특화 교육을 어떤 방식으로 수행하는가의 문제다. 주지하다시피 교양교육이 일반교육(general education)의 맥락에서 정의된 것은 ‘자유인 양성’이라는 자유교육(liberal education)의 목표에서 자유인을 계층적 의미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배제’에서 ‘포용’으로 교육적 지향점을 전환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해 교양교육이 일반교육의 맥락에서 이해된다는 것은 특정 엘리트 계층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에게 통용되는 교육의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경험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벨, 1994; 손동현, 2019; 정연재 외, 2023). 이러한 측면을 고려한다면 전공자율선택제 모집 학생을 위한 특화된 교양교육을 공통된 교육경험을 지향하는 교양교육에 어떻게 잘 녹여낼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전공자율선택제 모집 학생을 위한 교양교육에서 자유교육의 이념과 가치를 어떻게 구현하는가의 문제다. 단적으로 자유교육은 자유로운 결정능력을 장려하고, 지적 편협성과 편견을 초래하는 지식의 전문화 경향으로 탈피하며, 삶의 유용성에 기반을 둔 도구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우며, 무엇보다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 속에서 자유를 실현하는 교육이다(정연재 외, 2023). 따라서 교양교육이 자유교육으로 개념화될 때는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유, 지적 안목의 확장을 도모하는 자유교육의 성격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문제는 전공 진입 이전이라는 한정된 기간 동안 자유교육의 이념을 교육현장에서 제대로 구현하는가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전공자율선택제 아래서 교양교육과 전공교육의 관계가 새롭게 설정될 수 있는가의 문제다. 한마디로 전공자율선택제를 교양교육과 전공교육 간의 대립관계를 해소하고 양자간의 긴밀한 관계설정을 요구하는 제도적 변화로 수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전공자율선택제 아래서 전공교육과 교양교육은 양립불가능하다는 입장도 교양교육과 전공교육의 연계를 전제하나 교육의 핵심을 전공교육 쪽에 두는 입장도 결정적인 한계를 지닌다. 전자의 경우 교양교육의 내재적 가치와 순수성을 지킬 수 있으나 지나치게 배타적인 것이, 후자의 경우 교양교육이 전공교육의 수단으로서의 가치밖에 지닐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교양교육과 전공교육과의 연계를 전제하면서 교육의 핵심을 폭넓은 교육(broad education)으로 방향을 맞추는 것이다. 사회의 전문화, 지식의 분절화에 따른 편협한 관점을 극복하고 교육의 공통분모 설정과 폭넓은 교육의 잠재력을 구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전공자율선택제 아래서 교양교육과 전공교육은 자유로운 배움에 입각한 교육적 전통을 함께 수립하는 공동의 작업이 필요하다. 일례로 듀이(J. Dewey)가 『민주주의와 교육』에서 강조했던 바, 즉 당장의 사회적 요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직업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율적 인간을 양성하는 데 교육의 두 주체가 함께 힘을 모으는 것도 좋은 방향이 될 것이다. 그는 학생들이 장차 종사하게 될 직업을 미리 정하고 정확하게 그것에 들어맞는 준비를 시키기 위하여 교육하는 것은 현재의 발달가능성을 해치는 것이며, 장차 올바른 직업생활을 위한 준비도 잘 시켜주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나아가 이러한 방식의 교육은 고정된 방식의 기계와 같은 지식을 길러줄지는 모르나 직업에서 지적인 보람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기민한 관찰, 조직적이고 창의적인 계획 등의 능력을 길러주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이러한 듀이의 입장을 적용해본다면 전공자율선택제 아래서 전공교육 역시 전문적인 직업 분야와 관련된 기술적 효율성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전락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듀이, 2017). 따라서 교육의 지속가능성과 확장성을 염두에 두고 양자간의 공통분모를 확보하는 전략이 현 시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2.3. 전공자율선택제 도입에 따른 교양교육의 영향
전공자율선택제 도입에 따른 교양교육의 영향을 살피는 데 있어 또 하나의 방식은 한국교양기초교육원(2022)에서 제시한 대학 교양기초교육의 표준 모델을 활용하는 것이다. 교양기초교육과정은 크게 자유학예교육, 기초문해교육, 체험소양교육으로 구분된다. 부연설명하자면 자유학예교육은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학문적 탐구 성과를 두루 습득하여 인간의 현실적인 삶의 기반과 여건, 그리고 이를 토대로 구현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세계에 관한 총괄적인 지적 조망을 갖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두며, 특히 학문중심형과 주제중심형으로 구분된다. 나아가 기초문해교육은 대학교육 및 평생교육을 위해 필요한 사고 능력과 문해 능력 등 기초학업능력을 함양하는 교육으로, 의사소통, 사고, 정보문해, 기초과학/수학 및 양적 추론 등의 세부 영역으로 구분된다. 마지막으로 체험소양교육은 학문 탐구의 궁극적 목적과 전제가 되는 포괄적 의미의 인성교육이다.
첫 번째 자유학예교육이다. 전공자율선택제 도입에 따라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교양교육 영역이기에 주목을 요한다. 주지하다시피 전공자율선택제의 일차적 목표가 학생들에게 융합적 교육경험을 제공하는 것인 만큼 교육내용에 있어 융합성은 가장 중요한 고려의 대상이다. 대학 차원의 융합교육이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균형잡힌 이해에 초점을 맞춘 기초학문 교육에서 출발해야 하고, 교양교육 차원에서 기초학문 교육은 자유학예교육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면, 자유학예교육은 전공자율선택제 아래서 융합적 특성, 이른바 융합적 사고와 역동적 학문탐구 능력을 함양하는 토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담당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기원에서 제안하는 자유학예교육의 두 가지 유형, 즉 학문중심형과 주제중심형을 교육현장에서 제대로 구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상당 수의 자유학예 교과목이 교양교육과정 내에서 배분이수제로 이루어지는 만큼 융합적 사고능력 함양과 융합전공의 연계성 확보를 위해 편성과 운영 측면에서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첨단 응용학문의 발전이 기초학문의 견고한 토대에서만 가능하다는 인식을 대학 내부에서 공유함으로써 양자간의 시너지가 극대화될 수 있는 교육과정 설계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두 번째는 기초문해교육이다. 기초문해교육을 리터러시 교육, 언어교육의 측면에서 본다면 양자는 전공기반 학생과 무전공기반 학생 모두 공통된 교육경험을 확보해야 하는 영역이기에 전공자율선택제 아래서 큰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기초문해교육을 전공진입을 위한 기초를 제공하는 교육으로 이해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례로 이공계열 학과를 희망하는 학생들의 경우 기초과학 및 수학(BSM, Basic Science & Mathmatics) 교육은 성공적인 전공진입을 위한 필수요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공 진입 이전의 기간 동안 기초 과학 및 수학 교과목을 교양교육과정이나 전공교육과정 내에서 적절하게 편성, 운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체험소양교육이다. 체험소양교육 역시 전공자율선택제 아래서는 큰 영향이 없어보인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현재 교기원 모델에서 진로 교과목은 신입생 세미나 유형으로 간주되면서 체험소양교육 영역에 포함되고, 운영방식 또한 비교과 프로그램으로 권장되고 있으나 국내 대학의 체험소양교육의 내용을 살펴보면 신입생 세미나, 학사지도, 진로설계 등 ‘대학 적응 및 진로’ 교과목이 76.5%를 차지할 만큼 압도적이다(김선영 외, 2023). 우리 대학의 교양교육 기관이 1학년 교육까지 전담하면서 교과 차원의 신입생세미나 교육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 나아가 전공자율선택제가 진로교육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포괄적 의미의 인성 함양 교육을 표방하는 체험소양교육의 세부영역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해보인다. 종합적으로 고려해본다면 전공자율선택제 아래서 교양교육은 내용적으로 자유학예교육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교양교육의 가치를 입증해야 하는 과제뿐만 아니라 BSM 교과목과 진로 교과목을 기존 교양교육과정에서 적절하게 편성하고 운영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3. 전공자율선택제 아래서 교양교육의 방향과 원칙
3.1. 교양교육의 가치에 대한 재성찰_자유교육 가치의 재정립
전공자율선택제의 본격적 시행에 앞서 중요한 것은 이번 기회를 교양교육의 측면에서 가르칠 것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가에 대한 깊은 반성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전공자율선택제가 넓은 배움의 세계에서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교육적 측면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본다면, 이러한 전환의 책임은 폭넓은 교육을 표방하는 교양교육이 주축이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공자율선택제를 통해 교양교육은 성공적인 전공 진입을 위한 수단적 가치를 넘어 자유교육에서 유래하는 본래적 가치를 이 제도 속에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전공자율선택제라는 정책을 고등교육의 완결된 형태로서의 교양교육, 이른바 교양교육의 내재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지속가능한 목표를 정교하게 수립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서구 대학이 표방하는 자유교육의 이념은 지속가능한 교양교육을 위한 내재적 가치를 확보하는 데뿐만 아니라 전공자율선택제 모집 학생을 위한 교육이념을 정립하는 데 참고할 만하다. 특히 서구 대학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점, ‘미래를 위한 열정적 탐색,’ ‘배움에 대한 도전적 확장,’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폭넓은 교육’은 전공자율선택제 모집 학생을 위한 교육방향을 정립하는 데 매우 유용할 것이다.
우선 학부교육의 탐색적 국면과 기본기를 강조하는 예일대학교의 교육 철학이다. 예일대학교는 학부 수준에서 구현할 수 있는 자유교육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설정하면서 대학과 대학교육을 철저하게 학생중심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자유학예교육은 미리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될 것을 전제하지 않고 폭넓고 엄격하게 훈련된 지성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배움에 대한 접근은 대학을 탐색의 시기, 호기심을 발휘하는 장소, 새로운 관심사와 능력을 발견할 기회로 간주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대학교육은 결코 주어진 특정 직업에 필요한 능력을 훈련하여 준비하는 것을 지향하지 않는다. 대신 핵심 목표는 추후 학생들이 어떤 직업을 선택하더라도 이를 훌륭히 감당해 낼 수 있도록 해주는 지식과 기술을 준비시키는 것이다(Yale college, 2009).
대학을 탐색의 시기, 호기심을 발휘하는 장소, 새로운 관심사와 능력을 발견할 기회로 간주하고, 대학교육에서 특정 기간 동안 학습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것보다 학습에 대한 지속적인 토대를 부여하는 과정을 강조하는 방향은 전공자율선택제 아래서 교양교육이 지녀야 할 중요한 원칙으로 여길 만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가더라도 지속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기본기와 유연한 지적 태도가 중요하다는 점은 격변의 시기에 편협한 전문화를 극복할 수 있는 무기라는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배움에 대한 도전적 확장과 교육의 공공성을 환기시키는 하버드 대학교의 접근이다. 특히 협소한 배움의 울타리에 머무는 상아탑형 인간(ivory tower people)이 아니라 새로운 교육적 경험을 마다하지 않는 개척자형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의도를 다음과 같이 담아내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교양교육의 역할은 학생들이 하버드에서 배운 것을 하버드 밖의 삶과 분명한 방식으로 연결하고, 세상의 복잡성과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다. (…) 하버드의 학생들은 새롭고 불완전하게 이해되는 이유로 복잡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21세기의 상황에 대응하는 교양교육 커리큘럼을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이 자신의 길을 찾고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교양교육은 우리가 학문 가운데서 가르치는 모든 것이 자신의 삶과 앞으로 마주하게 될 세상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이해하게 하는 장소이다. 교양교육은 자유교육의 공적 측면이다(Harvard University, 2007).
하버드 대학에서 제시하는 교양교육은 학문세계와 생활세계의 연계 아래서의 배움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단일학문성, 학문적 깊이, 지식의 단기적 축적을 표방하는 교육적 경향을 탈피하여 학문과 삶의 세계와의 연계를 통해 폭넓은 배움을 표방하는 교양교육의 강점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학부교육의 중심축을 자유교육에 두는 가운데 복잡한 삶의 환경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기 위한 도전정신과 책임성, 평생 요청되는 자기형성능력, 장기적 측면에서의 교양교육의 효용성과 파급력을 강조하는 것은 전공자율선택제 아래서 교양교육을 굳건하게 자리매김하는 원칙으로 삼을 만하다.
세 번재는 스탠퍼드 대학 사례다. 일례로 스탠퍼드 대학 총장을 역임했던 마크 테시어-라빈은 ‘목적이 분명한 대학(purposeful university)’의 비전을 구체화하면서, 학생들이 삶을 영위하는 가운데 폭넓은 교육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 바 있다.
오늘날의 학생들은 직업을 자주 바꿀 것이고 그들에게 쓸모 있는 직업들은 급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그들의 경력은 50년 이상에 걸쳐 계속될 것이고, 그들은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효율적으로 일을 해야 할 것이다. 폭넓은 기반의 교육이 최적의 준비다. 대학교육에 관한 최근의 연구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주요 능력들을 밝혀낸 바 있다. 즉 비판적, 도덕적 추리, 창의적 표현, 다양성 존중, 그리고 결정적으로 평생에 걸쳐 적응할 수 있는 능력. 이러한 능력들은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시기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스탠퍼드의 교과과정은 이러한 통찰들을 통합시키고 있고, 우리의 첫 번째 우선적인 작업은 이러한 계획 위에서 지속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 언제나 우리는 우리 학생들이 자신들의 경력에서 직면할 문제들에 있어서 학문적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이것은 학생들을 위한 폭넓은 교육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학생들이 그들의 생애와 경력의 전 과정에 걸쳐 자유교육이 곧 직업교육이라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한다(Marc Tessier-Lavigne, 2016).
그는 고등교육에서 학생들을 전문화로 몰고 가는 강력한 문화적 힘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 변화의 시대에 폭넓은 자유교육의 중요성과 가치를 역설한다. 특히 자유교육이 곧 직업교육이라는 그의 말은 평생교육의 토대로서 지속적인 학습 촉진과 경험 형성을 위한 조건으로 교양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명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정연재, 2020).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듀이(Dewey) 역시 직업교육(vocational education)이야말로 특정 직업, 직무와 관련된 기술을 습득하는 좁은 의미의 취업교육(trade eucation)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대한 역사적, 철학적 질문을 제기하면서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대해, 타인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에 대해 충분히 탐구하는 교육임을 명시적으로 밝힌 바 있다(Dewey, 2017; Abowitz, 2006). 직업교육에 대한 듀이의 관점은 고등교육 차원에서 굳건하게 설정되어 온 교양교육과 전공교육 간의 경직된 대립관계를 넘어설 것을 요구한다. 한 개인의 능력과 적성의 발견은 성장이 계속되는 한 끊임없이 계속되는 과정이기에 자기갱신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은 고등교육 전반의 이념적 좌표로 설정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킴볼(Kimball)이 주장하는 실용적 자유교육(pragmatic liberal education)이나 자유교육의 현대적 가치를 내재적 측면과 실용적 측면에서 확보하려는 로체(Roche)의 시도는 교양교육의 확장성 측면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Kimball, 1995; Roche, 2013).
이를 종합해볼 때 자유교육을 지탱하는 조건은 비판적 지성의 함양을 추구하는 교육적 전통의 강조, 학문의 세계와 삶의 세계를 연결시키는 교육내용과 방법의 지향, 좁은 분야에서의 지식 습득을 넘어 학문의 경계를 넘어서는 포괄적 배움의 장려다. 일찍이 밴톡(Bantock)은 ”자유교과와 비자유교과를 구분하는 것은 특정한 교과 자체만을 두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떤 목적으로 가르치는가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Bantock, 1981). 전공자율선택제 도입으로 인해 심각한 난맥상을 보이는 교육현장에서 이 같은 자유교육의 정신은 전공자율선택제 아래서 교양교육이 실현해야 할 가치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주고 있다는 측면에서 다시금 음미해보아야 할 중요한 원칙인 것이다.
3.2. 교양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대한 재성찰
앞에서도 밝혔듯이 전공자율선택제 도입으로 가장 영향을 받는 교양교육 영역은 자유학예교육이다. 자유학예교육은 교양교육의 본령이자 핵심이다. 자유학예교육은 인간이 직면하는 가장 중대하고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지속적 성찰을 통해 인간성을 함양하는 교육이자, 횡단적 사고와 역동적 탐구행위를 통해 학문성을 증대시키는 교육이다(정연재, 2022). 무엇보다 전공자율선택제 교육의 출발점으로서 자유학예교육은 외적 자연의 세계, 인간의 사회적 세계, 인간의 내면세계를 자유롭게 횡단하며, 널리 배우고 자세하게 묻는 박학심문(博學深文)의 정신을 심어주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정연재, 2021). 분과학문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는 점에서 넓게 배워야 하고, 분과학문이 도저히 시도할 수 없는 근본적인 질문도 집요하게 재기해야 한다는 맥락에서다.
대학은 여전히 학과 중심의 견고한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우리가 직면하게 될 도전적인 과제는 결코 전공이나 학과 단위로 조직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육이 파편화된 범주의 지식을 효과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지적 횡단성에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6) 일례로 글로벌 관점이 국가와 국경을 넘어 사고하는 것이라면, 융합적 관점은 학문의 경계를 넘어 사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학예교육은 교육정책의 변화 가운데서도 교양교육의 훼손될 수 없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보존해야 하는 영역이자 탈경계 시대 융합적 사고의 자양분 역할을 하는 분야라 할 수 있다.
자유학예교육은 3학 4과의 역사적 변천과정에서 인간의 내면세계와 사회적 세계, 외적 자연의 세계에 대한 탐구를 각각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와 연결시킨 바 있다. 주지하다시피 말중심의 3학(word-based Trivium)은 언어를 주축으로 표현, 설득, 분석 등을 통해 마음의 경작을 이끄는 지식체계이고, 수중심의 4과(number-based Quadrivium)은 수를 토대로 산술, 측정, 증명 등을 통해 사고의 심화와 확장을 이끄는 지식체계다. 3학이 미미한(trivial) 상태에서 벗어나 인문 연구(studia humanitas)로 재정립되어 오늘날의 인문학으로 자리매김되고, 4과가 전문학문으로 격상되어 오늘날 자연과학의 기초를 이룬 것은 오늘날 기초학문 중심의 교양교육, 이른바 자유학예교육이 교육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형성한다. 특히 이러한 정당성은 전공학문으로서의 기초학문과는 다르게 횡단적, 융합적 학문탐구의 방법론을 구축하여 융합성의 조건을 충족하고, 기초학문의 성과를 인간 가치와 생활세계와의 밀접한 연계 속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연결성의 조건을 충족하는 선에서만 확보될 수 있다(정연재, 2021)
자유교육의 구조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던 스콧(R. A. Scott)의 관점을 차용한다면 자유학예교육은 현재적 맥락에서 세 부분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첫째는 3학의 현대적 변형으로 ‘우리가 만드는 세계’(The world we make)다. 단적으로 인문학, 사회과학을 토대로 인간의 문화적 세계를 탐구하는 영역으로 인간이 구축한 문명과 제도와 가치체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된다. 둘째는 4과의 현대적 변형으로 ‘우리가 만나는 세계’(The world we meet)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자연과학을 토대로 자연세계를 탐구하는 영역으로 과학 분야에서 사용하는 수학적, 실험적 방법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우리가 만나는 세계와 우리가 만드는 세계를 매개하는 사고의 시스템(the systems of thought)으로 학생들의 메타인지와 정신적 유연성을 갖출 수 있는 고차원적 사고방식의 구축을 필요로 한다(R. A. Scott, 2014). 이러한 재구성의 관점은 융합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전공자율선택제 아래서 자유학예 교과목을 편성하고 운영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될 만하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만드는 세계’로서의 인문학과 사회과학, ‘우리가 만나는 세계’로서의 자연과학을 중심으로 교과목을 편성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방식으로서 도전적이고 융합적인 주제선정과 읽기, 쓰기, 말하기를 전방위로 구사하여 진지한 탐구자세와 고차원적 사고방식을 구축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진정한 융합교육은 지식전수와 암기라는 정형화된 패턴에서 벗어나 기초학문의 토대 아래 주제중심학습, 메타인지를 함양하는 사고교육을 지향할 때 가능하다. 따라서 전공자율선택제 아래서 자유학예교육은 기초학문 중심의 집중 학습과정으로서 여러 학문에 걸친 주제를 중심으로 폭넓은 지식과 고차원적 사고능력을 함양하여 전공 진입 이전에 융합적 안목을 충족시키는 교육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무전공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자유학예교육은 한정된 수의 교과목에서 학문횡단적, 주제중심적 방향을 구현해야 하는 부담감과 책무를 지니고 있다. 특히 전공자율선택제 아래서 자유학예교육은 다음과 같은 사항에 더욱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첫째, 전공자율선택제 학생들이 자칫 범할 수 있는 학문과 전공의 경계를 확고히 하려는 욕구를 자제시키고 그들의 지적 안목을 확장시킬 수 있는 주제중심 교육이 필요하다. 주제중심교육이란 전공학문의 좁은 시야를 벗어나 타학문에 대한 관심과 지적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주제를 선정하고, 학생 스스로 탐색, 이해, 적용을 통해 주제를 심화시킬 수 있는 교육을 말한다. 한마디로 특정 학문에 대한 전문 지식 습득에 목표를 두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을 통해 학문과 삶의 연계성에 주목하여 자유로운 탐구를 장려하는 학습이다.
둘째, 전공자율선택제 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전공에 대한 합리적 결정능력을 위해 유연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갖추게 할 필요가 있다. 자유전공학부 운영사례에 비추어볼 때 전공자율선택제 모집 학생들 대부분이 무전공 입학을 자유로운 전공탐색의 기회로 삼기보다는 본인이 염두에 두고 있는 전공에 진입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지로 간주할 가능성이 많은 만큼, 학생들을 수동적이고 타성에 젖은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여 적극적인 사고를 유도하는 교육, 기능적 차원의 학습을 넘어 충만한 지적 경험을 향유할 수 있는 교육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정연재 외, 2023).
셋째, 전공자율선택제 아래서 자유학예교육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학생 스스로 융합적 안목을 형성할 수 있는 교육방법론을 적극적으로 도모할 필요가 있다. 인간 본성, 사회제도와 문화, 외적 자연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관점을 연결하여 문제해결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은 자유학예교육의 융합성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미네르바 대학이 1학년 교육의 핵심을 어떤 학문 분야를 공부하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고능력을 기르는 데 역점을 두면서, 1학년 교육을 기존의 사고체계를 완전히 바꾸는 뇌수술(brain surgery)에 비유한 대목은 매우 인상적이다(<조선일보> 2024년 5월 6일자). 이러한 맥락에서 전공자율선택제 아래서의 자유학예교육은 질문에 대한 변혁적 경험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답에 초점을 맞춘 교육의 익숙함으로부터 탈피하여 답에 가리워진 질문을 집요하게 탐색하는 교육으로의 전환이라는 맥락에서다. 정답을 찾기 위한 속도전에서 탈피하여 진전된 질문과 답변 속에서 주제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능동적 학습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전공자율선택제를 기점으로 학생중심의 능동 학습환경(Student-Centered Active Learning Environment)을 조성하고, 과정지향적 탐구학습(POGIL, Process Oriented Guided Inquiry Learning)에 역점을 둘 필요가 있다(D. G. Mulcahy, 2010).
전공자율선택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됨에 따라 교양교육의 목표가 더욱 선명해졌다. 교양교육은 궁극적으로 학생들의 독립적인 학습능력을 함양하는 곳이자 학문적 상호작용의 진원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7), 이를 위해 교양교육의 방향은 질문을 일깨우는 교육적 경험에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동참시키는 것에 두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전공 진입에 앞서서 다양한 계열의 학생들이 자유롭게 학습하고 교류하는 체험을 독려함으로써 전공학문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하고 자연스러운 융합문화가 조성하는 계기를 촉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전공자율선택제가 단기적인 측면의 교육적 성과를 강하게 요구할 것이 분명하지만 이러한 단기적 요구에 맞서 장기적 측면에서 학생의 성장을 도모하는 교양교육은 학생들의 독립성을 키우는 데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철학자 가다머가 강조하듯이, ”교육에서 결정적인 것은 궁극적으로 성장하는 세대로 하여금 자기활동성을 통해 자기가 지닌 결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능력을 길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H-G. Gadamer, 2004).
전공자율선택제 도입에 따라 교수자 역시 교육현장에서 역할 변화가 두드러질 것이다. 교수자의 경우 변화된 환경에서 어떻게 교육적 전문성을 발휘하여 학생들의 학습을 촉진하고 그들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무전공 기반 학생들이 전공기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대학에 소속된 일원으로서의 안정감을 갖고 균형잡힌 대학생활, 의미 있는 학습성과를 통해 성취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전공자율선택제 아래서 교양교육이 학문의 지경을 넓히는 탐험의 장(場)을 제공해야 한다면, 관련 교수자에게는 학생들의 지적 탐험을 장려하는 촉진자, 학생들의 학습을 지원하는 학습설계자의 역할은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최화숙, 박지희, 2024).
4. 나가는 말: 지속가능한 교양교육을 위하여
지금까지 전공자율선택제 도입으로 인해 교양교육에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지, 예상되는 변화의 과정에서 교양교육이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는 교육적 공간은 어디에서 확보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전공자율선택제는 교양교육 차원에서 보자면 코로나 팬데믹 이후 등장한 커다란 위기임에 틀림없다. ”전통적인 대학 경험을 온라인 학습으로 대체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고, 그 경험을 모든 진취적인 개인에게 제공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때다. (…) 우리에게 필요한 혁명은 우리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뛰어나고 똑똑한 학생을 대학 캠퍼스의 몰입적이고 양육적인 환경에 연결하는 것이다(R. Johnson, 2013).” 로버트 존슨의 언급은 변화 속에서 고등교육이 취해야 할 방식을 다시금 일깨우고 있다. 비용과 효율성이 압도하고 있는 교육적 현실 속에서 가치 있는 교육을 위한 방향은 대학 캠퍼스가 학생들의 학업적 성공을 위한 약속과 헌신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복(D. Bok) 역시 팬데믹을 거치면서 학부생의 정신건강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현상황을 목도하면서 대학이 학생교육에 대한 더 높은 기대치(higher expectation)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더 높은 기대치’란 학생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기술과 자질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기술과 자질에는 인성, 회복력, 창의성, 타인과 협력하는 능력, 책임감, 명확한 목적의식, 확고한 윤리적 원칙 등이 포함된다(D. Bok, 2020). 대학이 더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차적으로 관심을 쏟아내야 하는 분야가 교양교육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전공자율선택제는 교양교육의 본질적 경험을 단기간에 압축적으로 구현해야 하는 제도로서 매우 힘겨운 도전이 될 것이다. 따라서 전공자율선택제 정책과 관련한 가장 중요한 현안문제는 이 정책이 기대하고 있는 교육적 효과를 확보하기 위해 교육을 어떤 방향으로 혁신할 것인가이다.
전공자율선택제의 성공조건은 분명하다. 대학은 광역화된 모집에 부합하는 광역화된 교육과정과 학사구조를 정립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할 교육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교육정책이 이미 확고히 자리잡은 학사구조에 교육을 담아내는 방식이었다면, 앞으로는 혁신적인 대안을 통해 기존의 학사구조를 깨뜨리는 도전적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격변의 시대 편협한 전문화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을 인지하는 가운데 폭넓은 교육의 장(場)으로서 교양교육에 주목하여 이에 대한 교육적 지원을 충분히 함으로써 전공교육의 혁신까지 이르게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만약 전공자율선택제를 학령인구감소에 대비한 자구책으로, 재정지원사업의 인센티브 확보 수단으로만 생각하여, 체계적인 교육과 학생지원을 소홀히 한다면 학생의 학습효능감 저하와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은 불가피할 것이다.
사회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교과선택, 보다 좋은 직업을 선택하기 위한 전공선택은 채용방식에 대한 기업의 획기적 개선과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전공자율선택제의 최대 난제인 학생들의 전략적 선택과 이에 따른 전공쏠림 현상을 극복하기 어렵다(황인석, 2024). 전공쏠림 현상을 중력에 비유한다면, 그 중력을 거스를 수 있는 의지와 힘은 대학과 사회가 공유된 책임 아래 함께 노력해야만 확보가능할 것이다.
교양교육의 차원에서는 더욱 무거운 과제가 자리잡고 있다. 반복해서 언급하였지만 전공자율선택제가 명시적으로 융합인재 양성을 표방함으로써 융합성을 대표하는 교양교육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단일학문성을 표방하는 전공교육 지원과 단기적 측면의 사회요구에 부합하는 인력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정책임을 부인할 수 없다. 교양교육 차원에서 중대한 위기가 도래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공자율선택제가 교육현장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확실한 것은 기초학문에 토대를 둔 교양교육, 이른바 자유학예교육을 현재적 맥락에서 재구성하여 융합적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이 학생의 성장과 긴밀히 연결될 때 비로소 위기 극복의 길이 열릴 것이다.
References
Notes
제도 자체에 대한 우려는 이미 두 번의 실패를 경험한 정책으로 전공자율선택제가 대학 내부의 자발적 요구가 아니라 교육부의 강제와 외적 환경변화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대학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고, 무엇보다 교육부가 경직된 정책 방향을 강요함으로써 대학 특성화보다는 대학의 동형화 (isomorphization)로 귀결될 것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며, 제도의 운영에서 나올 수 있는 우려는 전공자율선택제 모집 학생의 관리 소홀로 인한 소속감 결여 및 중도탈락 문제, 쏠림 학과 및 쏠림 제외 학과의 극단화로 인한 교육의 질 하락 문제, 쏠림 학과에 대한 지원책 미흡, 쏠림현상에 소외되는 소규모 학과의 지원문제 등 기존 모집광역화 정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던 문제에서 나오는 우려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의 실패를 경험한 정책인 만큼 정교한 계획과 실천이 동반되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홍후조(2004)는 학부제 패러다임의 장점으로 전공간 폐쇄성 완화, 교수의 학생유인을 위한 선의의 경쟁효과 등을 제시하였고, 단점으로는 전공교육의 체계성 저하, 유사전공 통합에 따른 운영상의 난점, 전공선택 실패, 전공 필수 축소에 따른 전공교육의 불균형, 졸업이수학점 하향으로 인한 취업에 필요한 전문지식 결여, 실용학문으로의 쏠림, 학생 소속감 및 정체감 결여, 학사 행정의 복잡성 등을 제시한 바 있다. 모집단위 광역화 정책의 장단점이 분명한 만큼 전공자율선택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선결과제 역시 명시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본 논문에서 교양교육(General Education)은 자유교육에서 유래하여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형성되어 온 포괄적 형태의 교육을, 자유교육(Liberal Education)은 자유인 양성을 위한 교육이념을 담고 있는 교육으로 유용성에 근거를 두지 않는 교육을, 자유학예교육(Liberal Arts Education)은 실용학예와의 대립구도 속에서 자유교육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교육내용을 강조하는 교육의 의미로 사용한다. 또한 교양교육이 미국적 맥락에서 ‘교육받은 시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교육의 보편성, 확장성, 통합성을 강조했던 경향을 지칭할 경우 일반교육(General Education)으로 명시하였다.
학생의 전공선택권 보장을 강조하는 전공자율선택제는 교양교육과 전공교육의 연계를 전제하나 교육의 핵심을 전공교육에 두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구도 아래서 교양교육은 전공교육의 수단, 이른바 성공적인 전공진입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가치밖에 지닐 수 없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으며, 교양교육의 내재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만큼 희박해질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전공자율선택제 도입을 위해 내건 융합인재는 전공 선택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학문 간, 산업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 블러(Bic Blur) 시대에 적합한 인력을 양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단적으로 인재육성의 핵심이 산업구조 변화에 탄력적으로 반응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연한 전공 선택과 융합적 교육경험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에 전공자율선택제 아래서 교육은 별도의 중대한 책무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대학교육협의회(AAC&U)는 포스트 팬데믹 세계에서의 교양교육을 논하는 가운데 지식의 파편화와 전문화는 오히려 현시대의 교육적 경향에 부합하지 않다는 점을 밝히면서 팬데믹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도모하는 교양교육의 가치를 부각시켰으며, 교양교육이 지향하는 학문탐구에서의 통합적 안목은 교육혁신의 견인차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팬데믹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면, 학문 분야의 전문화로 인해 생산된 파편화된 지식이 우리 상황에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팬데믹 이후 세계에서 점점 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통합된 이해가 필요하다. 새로운 형식의 교육과정과 교육적 통합을 실현하면 자유 학예를 고등교육과 지식 생산의 최첨단으로 되돌릴 수 있다. 학부 교육과정에서 학문 분야의 전문화와 대학원 및 전문 교육의 전통적인 패턴을 완화하면 도덕적 삶, 직장 및 시민적 삶에 대한 폭넓은 준비를 원하는 학생들의 요구에 보다 잘 부합하는 혁신의 문이 열릴 수 있다(Adams, W. D., 2022: 24).”
통상적으로 자유(freedom)와 자율(autonomy) 개념은 구분된다. 제약이나 간섭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의지의 자유로움이 자유라고 한다면, 자율은 행위자의 진정성이 담긴 규칙을 수립하고 이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단적으로 자율은 책임이 수반되는 개념이다. 교육부에서 전공자유선택이 아니라 전공자율선택이라는 용어를 표방했다고 한다면 결국 이 제도는 진정한 의미의 학생중심교육을 실현하는 가운데 학생들의 학습책임성을 강화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학생의 성장과 자기주도적 학습태도를 길러주는 교양교육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