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제자해> 서두의 철학적 사유에 대한 고찰

A Study on the Philosophical Ideas of the Introduction of 『Hunminjeongeum』 <Jeja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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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General Edu. 2025;19(1):183-203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25 February 28
doi : https://doi.org/10.46392/kjge.2025.19.1.183
김부연
동덕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zinggaboo@naver.com
Assistant Professor, Dongduk Women's University
이 논문은 2022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분야 신진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22S1A5A8051397).
Received 2025 January 27; Revised 2025 February 11; Accepted 2025 February 17.

Abstract

이 연구는 <제자해>에 서두에 반영된 철학적 사유의 전거(典據)를 분석⋅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두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재구함으로써 <제자해> 서두의 의미를 정교하게 이해하는 데 기초적 논의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첫째, <제자해> 서두에 표현된 역학 및 성리학 관련 내용들의 전거(典據)가 되는 대표 문헌은 ≪주역≫ <계사전>, 주돈이의 ≪태극도설≫, 소옹의 발언을 포함한 ≪황극경세서≫ 등이다. 둘째, 사회⋅문화적 배경을 고려하여 명(明)이 존숭하는 사상계 동향을 수용하고, 송학(宋學) 사상의 발로인 ≪주역≫과 송학을 집대성한 『성리대전』의 의미를 <제자해>의 서두에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전략을 사용한 것임을 밝혔다. 셋째, ”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 상형의 제자 원리를 문자학적 제자 원리로 이해하기에 앞서 훈민정음 창제의 철학적 인식과 사유를 통해 상형의 제자 원리를 먼저 파악해야 함을 밝혔다. 넷째,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인 ‘상형’의 발상은 역학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었다. 훈민정음의 ‘상형’ 원리는 ≪주역≫에서 중요시하는 상(象)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밝혔다.

이 연구를 통해 <서두>에 집약된 훈민정음이 추구하고자 했던 철학적 기조를 살필 수 있으며, <제자해> 서두의 의미를 보다 깊고 정확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훈민정음』 해례본과 문자 훈민정음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다.

Trans Abstract

This study analyzes the biography(典據) of philosophical ideas described in the introduction of <Jejahae> and logically analyzes the semantic relationship of the introduction. This provides a basic discussion for accurately understanding the meaning of the introduction of <Jejahae>.

As a result, first, the representative texts that become the biography(典據) are ≪Zhouyi (周易)≫ and 『Seongni Daejeon(性理大全)』. Second, considering the social and cultural background, we accept the trends of the Ming Dynasty's ideological world, and introduce ≪Zhouyi(周易)≫ and Song Neo-Confucianism(宋學), the originators of Song Neo-Confucianism(宋學) The meaning of 『Seongni Daejeon(性理大全)』, which is a compilation of A strategy of intensive expression was used in the introduction of <Jejahae>.

Third, before understanding the disciple principle ‘Sanghyeong(象形)’, we must first understand the disciple principle of ‘Sanghyeong(象形)’ through the philosophical ideas of the creation of Hunminjeongeum.

Fourth, the disciple principle of Hunminjeongeum ‘Sanghyeong(象形)’ is closely related to “images in Zhouyi,” which is important in ≪Zhouyi (周易) ≫.

Through this study, it is possible to examine the philosophical tone that Hunminjeongeum sought to pursue as summarized in the introduction of <Jejahae>. and We will gain a deep and accurate understanding of the meaning of the introduction to <Jejahae>.

1. 서론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세계의 언어학자들의 극찬과 인정은 상당하다. 언어 연구학으로 세계 최고인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언어학 대학에서 세계의 모든 문자를 놓고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등을 기준으로 한 순위에서 한글이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또한 유네스코(UNESCO)가 1988년부터 2002년까지 말뿐인 언어 2,900여 종에 가장 적합한 문자를 찾는 연구를 진행했는데 최고의 평가를 받은 것 역시 한글이었다. 이렇게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세계가 주목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1446년에 간행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문자 훈민정음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해설서이다.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과 원리를 상세하게 설명한 문자 설명서로, 새로운 문자를 만들고 그 문자에 대해 해설한 후 표기의 실제 용례까지 붙인 책은 다른 언어의 경우에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책이 지닌 학술적⋅문화적 가치로 인해 1962년 12월에 국보 70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 10월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까지 주목을 받고 있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임을 인정받았다.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드높아지고 있다. 일반 대중을 위한 인문 교양서적으로서 『훈민정음』 해례본 관련 책들이 다량으로 출간되고 있는 상황이 이를 방증한다. 말 그대로 ‘교양서적’이란 일반 대중들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지식들을 익힐 수 있는 책을 말한다. 오늘날 한글을 사용하고 있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한글의 기원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모두 담겨 있다. 훈민정음이 어떠한 원리에 입각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분명하게 알려준다는 점에서 우리 어문 생활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책이다.

대중들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알고 싶어 하고, 알아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대중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최근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쉽게 읽는 훈민정음』을 출간하여 한문본인 해례본을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기준 번역을 마련한 바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의 내용을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기준 번역이라 하더라도 일반 대중들의 교양을 위한 수준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해례본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제자해>에서는 글자의 창제 원리를 ‘음양오행, 삼재(三才)’와 같은 성리학적 사상을 들어 설명하고 있으며, 중국의 말소리를 연구하는 학문인 성운학을 우리말에 접목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성리학과 성운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훈민정음』 해례본의 내용을 이해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 중에도 『훈민정음』 해례본을 읽는 데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부분이다. <제자해>의 첫 문장부터 철학적 내용을 개진하고 있어 <제자해>를 읽는 데 걸림돌이 된다. 그래서 <제자해> 서두 부분을 피상적으로 대하거나 아니면 그 부분만 배제하고 <제자해>의 언어학⋅문자학 내용만 이해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제자해>의 내용 중 대부분 제자 원리에 대한 이해에 편중되어 있고, 사상적 기반이 되는 철학적 사유에 대해서는 이해가 많이 부족한 형편이다.

<제자해>의 서두는 짧은 글이지만 훈민정음 안에는 세상과 만물에 대한 어떠한 인식이 들어 있는지를 말해 준다. 다시 말해 훈민정음과 그 제자 원리를 이루는 데 매우 중요한 철학적 기반을 언명(言明)하고 있다. <제자해>의 서두는 당대 중시되었던 역학 및 성리학 이론의 집결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는데, 훈민정음을 당대의 세계관과 부합해서 설명을 하기 때문에 유교 경전에 나오는 표현들이 많이 인용되고 있다. 따라서 <제자해>의 서두에 반영된 철학적 사유를 알기 위해서는 인용 표현의 전거를 확인해야 한다. 전거(典據)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는 그 전거를 바탕으로 형성된 <제자해>의 서두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동안 훈민정음과 역학 및 성리학의 관계에 대한 국어학계의 논의는 일찍부터 이루어졌다. 매우 이른 시기에 홍기문(1946), 강신항(1963)을 위시하여 197⋅80년대에 남성우(1979), 이기문(1980), 강규선(1985), 김익수(1986)이성구(1986), 신상순, 이돈주, 이환묵(1988), 유창균(1989) 등 진일보의 발전을 이루었다. 이러한 데에는 1987년 한글학회에서 학술대회 기획 주제로 다루면서 연구를 독려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후로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근래 들어 안명철(2005), 강신항(2006), 황경수(2007)백두현(2012), 김양진(2015, 2021), 심소희(2019) 등 국어학뿐 아니라 중국어학계의 연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반가운 것은 21C에 들어 김익수(2003), 김만태(2012), 곽신환(2016), 황인옥(2017), 조희영(2018) 등 훈민정음에 관심을 가진 역학계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어학자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부분의 문제를 비로소 전문적이고 심층적으로 함께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 연구는 훈민정음 안에 역학 또는 성리학 사상이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이들 사상과 훈민정음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연구는 어렵게만 간주되고 있는 <제자해>에 서두에 집중하고자 한다, 선행 연구 결과를 망라하여 그 안에 담긴 철학적 사유에 대해 조금 더 면밀하게 들여다 보고자 한다. 기존의 선행 연구가 개별적인 자료를 중심으로 거시적으로 논의되었다면, 이 연구는 미시적으로 <제자해> 서두에 반영된 철학적 사유의 전거(典據) 조사하고 전거가 되는 그 문헌들이 훈민정음 제자를 설명하는 데 어떻게 수용될 수 있었는지 재검토한다.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철학적 사유를 근거로 해서 <제자해> 서두의 논리적 의미를 재구함으로써,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인 상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를 위해 본론은 다음과 같이 구성한다. 2장에서는 <제자해> 서두에 반영된 철학적 사유의 전거(典據)를 찾아보는 작업을 진행한다. 3장에서는 2장에서 진행한 분석을 토대로 먼저 3.1.에서는 <제자해> 서두에 영향을 준 문헌들의 철학적 사유를 살핌으로써 송학(宋學)의 사상의 발로인 ≪주역≫과 송학을 집대성한 『성리대전』의 의미를 <제자해>의 서두에 집약적으로 표현한 이유를 밝힌다. 이어서 3.2에서는 이러한 철학적 사유를 근거로 해서 <제자해> 서두의 논리적 의미를 재구한다. 여기서의 핵심은 상형의 제자 원리를 역학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근거를 마련하고, 그 결과 제자 원리까지를 <제자해>의 서두로 포함해야 하는 당위성을 찾는다. 이를 통해 서두에 집약된 훈민정음이 추구하고자 했던 철학적 기조를 살필 수 있으며, <제자해> 서두의 의미를 보다 깊고 정확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훈민정음』 해례본과 문자 훈민정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다.1)

2. <제자해>의 서두에 반영된 철학적 사유의 전거(典據) 분석

[그림 1]은 『훈민정음』 해례본 가운데 <제자해> 시작 부분을 보인 것이다. 가장 먼저 첫 행에 권두 서명(卷頭書名)을 ”訓民正音解例”이라 하여 ≪해례≫가 시작됨을 보여 준다.2) 이어서 2행에 제시된 편목(編目) ”制字解”는 글자를 만든 원리에 대해 설명한 텍스트임을 알려준다. 이 가운데 <제자해>의 서두 부분을 발췌해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 1]

『훈민정음』 해례본의 <제자해> 시작 부분

天地之道∘一陰陽五行而已。坤復之間爲太極∘而動靜之後爲陰陽。凡有生類在天地之間者∘捨陰陽而何之。故人之聲音∘皆有陰陽之理∘顧人不察耳。今正音之作∘初非智營而力索〭∘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理旣不二∘則何得不與天地鬼神同其用也。正音二十八字∘各象其形而制之。3) [정음해례1ㄱ:1-1ㄴ:3]

“天地之道∘一陰陽五行而已。”라는 문장으로 <제자해>의 내용이 시작되는데, 이 연구에서는 ”正音二十八字∘各象其形而制之。”까지를 서두로 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正音二十八字∘各象其形而制之。”는 문자학적 제자 원리로 파악하여 기능상 독립된 의미 단락으로 간주하지만, 서두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해석해 보면 이 문장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이에 대해 3.2.에서 다룸). <제자해>의 서두 부분은 훈민정음의 철학적 원리와 제자 원리를 담고 있다. 훈민정음 제자의 대원칙을 밝히고 있어 매우 함축적이지만 그 나름의 완결성을 지닌다. 이 서두를 구성하고 있는 문장들 가운데 철학적 사유가 반영된 표현들을 중심으로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도록 한다.

(1) 天地之道∘一陰陽五行而已。 [정음해례1ㄱ:3] (천지의 도는 오직 음양 오행일 뿐이다.)

<제자해>의 첫 문장으로서 훈민정음 제자에 대한 철학적 근본 원리를 가장 먼저 내세우고 있다. ”천지의 도(道)는 오직 음양과 오행뿐이다.”라고 하여 ‘而已(~뿐이다)’라는 표지를 사용해 철학적 근본 원리를 매우 강하고 단호한 어조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철학적 원리를 토대로 한 훈민정음 제자(制字)에 대해 설명하겠다는 의도를 나타낸다. 이 첫 문장은 철저히 역학적 사유에 기반한 내용인 만큼 그 전거(典據)가 분명히 존재할 것으로 보이는데, 기존 국어학계의 논의에 따르면 ≪주역≫주<계사전> 상 5장의 첫 대목에 기술된 ”一陰一陽之爲謂道”(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는 것을 일컬어 도라고 한다.)를 <제자해>에서는 ”天地之道 陰陽五行而已”(천지의 도리는 오직 음양뿐이다.)라고 바꿔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이상 홍기문, 1946남성우, 1979; 강신항, 2010; 김만태, 2012).

≪주역≫ <계사전>에는 많은 명제들이 기술되어 있는데, <계사전> 상의 5장 첫 대목인 ”一陰一陽之爲謂道”가 핵심 명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계사전>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구절이라 전한다. ≪주역≫ <계사전>에 따르면 ‘한 번 음이 되었다가 한 번 양이 된다’는 것은 음과 양 사이에 변화하는 관계를 말한 것인데, 단순한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음과 양이 갈마드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는 것을 ’도(道)’라고 하였으니 ‘일음지(一陰之)’와 ‘일양지(一陽之)’ 그 자체가 ‘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음지(一陰之)’와 ‘일양지(一陽之)’가 갈마들어 음양 사이에 소멸하고 성장하며 조화를 이루거나 상호 전환하는 것이 바로 ‘도(道)’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도’는 음양 사이에 드러나며 음양이 교대하는 관계, 음양의 미묘한 변화, 음양의 상호 전환하는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이것이 一陰一陽之爲謂道”의 진정한 의미이다. 이렇게 본다면 음양의 도는 자연의 이치대로 만물을 고무시키고 추진하며 변화시키고 자라게 하여 생장을 돕는다.

이처럼 ≪주역≫주<계사전>에 ”一陰一陽之爲謂道”라는 명제를 분명히 제시함으로써 음양을 주역의 도(道)로 삼았다. ≪주역≫은 음양의 이치를 말한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一陰一陽之爲謂道”라는 명제의 파급 효과는 대단하다. ”一陰一陽謂之道”에 대해 정이천(程伊川)은 ”道非陰陽 所以一陰一陽道也”하고, 주회암(朱晦庵)은 ”陰陽只是陰陽 道是太極 所以一陰一陽者也”라고 주석을 내었다. 이러한 내용은 ≪주자어류≫4) 권 94의 122조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問: 一陰一陽之爲謂道是太極否

曰: 陰陽只是陰陽 道是太極 蓋所以一陰一陽者也

(물었다.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는 것을 도라고 한다는 말은 태극을 가리킵니까?

답했다. ”음양은 음양일 뿐이다. 도가 태극이니 대개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게 하는 자이다.)

이 외에도 『성리대전』 권 12에 수록된 ≪황극경세서≫ 6권 중 문인들의 기록이라고 알려진 <관물외편> 하에서도 ≪주역≫의 ”一陰一陽之爲謂道”에 관한 주석이 자세히 담겨 있다.

一陰一陽之爲謂道 道無聲無形不可得而見者也 故假道路之道而爲名 人之有行必由乎道 一陰一陽天地之道也 物由是而生由是而成者也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는 것을 도라고 일컫는다. 도는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어서 깨달아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길이라는 뜻의 도라는 글자를 빌려서 이름으로 삼았는데, 사람이 다닐 때 반드시 길로 다니기 때문이다.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는 것이 천지의 도이다. 만물이 이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이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주자 및 주학자들의 주석을 종합해 보면 ”一陰一陽” 자체가 ‘도(道)’가 아니고, ”一陰一陽” 되는 것, ”一陰一陽” 하게 하는 것이 ‘도(道)’이다. 세상 만물과 모든 일, 사람을 포함한 천지자연의 본질적인 속성이 바로 ‘음양의 도’인 것이다. 한편, ”天地之道 一陰陽五行而已”의 문체와 관련하여 박동규(2001, p. 127)에서는 ≪황극경세서≫에 나오는 일부 문장을 변형시켜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立天之道曰陰與陽 立地之道曰柔與剛 天地之道 不過陰陽剛柔而已

(‘천의 도를 세워 음과 양이라 하고, 지의 도를 세워 유와 강이라고 한다.’라고 하였으니 천지의 도는 불과 음양과 강유일 뿐이다.)

위 문장은 ≪황극경세서≫ 3권 <관물내편> 1에 기술된 주석인데, 이 문장의 첫 구절 ”立天之道曰陰與陽 立地之道曰柔與剛”은 ≪주역≫ <설괘전(說卦傳)> 2장5),에 ”昔者聖人之作易也 將以順性命之理 是以立天之道曰陰與陽 立地之道曰柔與剛 立人之道曰仁與義”6),7),이라고 한 말 가운데 ”立天之道曰陰與陽 立地之道曰柔與剛”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주역≫을 지은 성인이 하늘의 도는 음양으로 확립했고, 땅의 도는 강유로 확정했다는 사실을 직접 인용하면서 이 말에 의거하여 ‘천지의 도는 불과 음양과 강유일 뿐이다(天地之道 不過陰陽剛柔而已)’라는 주석을 내놓은 것이다. 박동규(2001)에 따르면 이 주석 부분을 <제자해>에서 ”天地之道 一陰陽五行而已”로 변형시킨 것이라 보았는데, 두 문장 모두 천지의 도는 음양강유 혹는 음양오행뿐이라는 입장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표 1>과 같이 두 문장은 구조와 표현이 대단히 유사한데, 문장의 유사함을 올바로 파악하려면 표현의 양식만 가져온 것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먼저 형식적 측면에서 두 문장 모두 어조사 ‘而已’를 사용하여 문장을 종결하고 있다. 한문 문장에서 ‘而已’는 문장 끝에 놓여 ‘~뿐이다’, ‘~에 불과하다’, ‘~에 지나지 않는다’ 등의 뜻을 나타내며, 한정의 종결사로서 한정 부사와 호응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자해>의 ”天地之道 一陰陽五行而已”에서는 ‘而已’가 부사 ‘一’(오직)과 호응되며, ≪황극경세서≫의 ”天地之道 不過陰陽剛柔而已”에서는 ‘而已’가 부사 ‘不過’(불과)와 호응을 이룬 것을 볼 수 있는데, ‘而已’가 사용되는 한문 문장의 일반적 특징을 두 문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두 문장 모두 ‘천지의 도(天地之道)’를 설명한 것으로 이 ‘天地之道’에 대한 개념 규정을 명확히 하고자 ‘而已’를 사용함으로써 ‘天地之道’가 의미하는 바를 분명하게 한정한다.

≪황극경세서≫의 문장과 <제자해>의 문장 비교

그 다음으로 의미적 측면을 보면 두 문장 모두 자연의 이치와 천지 만물의 변화 법칙에 의거한 철학적 사유의 맥락에서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당대 ‘天地之道’에 대한 정확한 개념 이해가 전제된 상황에서 본질적 의미를 훼손하지 않고, ‘天地之道’의 개념을 일반화하여 가장 핵심적인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사용된 어휘에서 ‘陰陽五行’과 ‘陰陽剛柔’에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그 의미는 역학적 지식에 기반한 것으로 일맥상통한다. 결과적으로 이 두 문장이 의미 및 형식은 거이 일치하는 동형 구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제자해>의 ”天地之道 一陰陽五行而已”는 ≪황극경세서≫의 ”天地之道 不過陰陽剛柔而已”를 단장취의(斷章取義)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 <제자해>의 ”天地之道 一陰陽五行而已”의 본질적 의미는 ≪주역≫ <계사전>에 근저(根底)를 두고, 이를 명확하게 정리한 ≪황극경세서≫의 표현 방식을 취한 것일 가능성도 열어 둘 필요가 있겠다.

(2) 坤復之間爲太極∘而動靜之後爲陰陽。 [정음해례1ㄱ:4] (곤괘와 복괘 사이가 태극이 되고, 이것이 움직이고 멈춘 후에 음양이 된다.)

<제자해>의 두 번째 문장 또한 두 개의 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기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앞절인 ”坤復之間爲太極”의 전거는 소옹의 발언이라 하고, 뒷절인 ”而動靜之後爲陰陽”의 전거는 주돈이의 ≪태극도설≫이라고 보고 있다. 이 문장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뒷절인 ”而動靜之後爲陰陽”부터 해당 전거를 살펴보도록 한다.

먼저 ”而動靜之後爲陰陽”에 관해 주돈이의 ≪태극도설≫과 유사하다는 논의는 홍기문(1946), 강신항(2006), 곽신환(2016), 황인옥(2017) 등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유지되어 오고 있다. 이 구절의 전거라 믿고 있는 『성리대전』권 1에 수록된 ≪태극도설≫의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動極而靜 靜而生陰靜極復動 一動一靜互爲其根 分陰分陽兩儀立焉 陽變陰合以生水火木金土 五氣順布四時行焉 五行一陰陽也 陰陽一太極也 太極本無極也

(무극이면서 태극이다. 태극이 동하여 양을 낳고, 동이 극에 달하면 정한다. 정하여 음을 낳고, 정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한다.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하는 것이 서로 뿌리가 되고, 음으로 나뉘고 양으로 나뉘어 양의가 이루어진다. 양이 변해 음에 합하여 수, 화, 목, 금, 토가 생성되며, 오기가 두루 퍼져 사시로 나간다.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며,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기존 연구에서는 ≪태극도설≫의 ”太極動而生陽動極而靜 靜而生陰靜極復動 一動一靜互爲其根 分陰分陽兩儀立焉”이라고 설명한 내용을 <제자해>에서 ”太極而動靜之後爲陰陽”으로 요약한 것이라 보고 있다. 이는 ‘태극’이 ‘동(動)’해서 ‘양(陽)’을 만들고, ‘동(動)’이 극에 달하면 ‘정(靜)’이 되고, ‘정(靜)’에서 ‘음(陰)’을 만들고 ‘정(靜)’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動)’한다는 순환 이론에 기반을 둔 것이다. 또한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멈추는 것이 서로 뿌리가 되어 음으로 갈리고 양으로 갈리어 양의가 맞서게 된다고 하고, 다시 양이 변하여 음에 합하여 오행이 생긴다 하였다.

부연하면 주돈이는 태극의 움직임과 고요함[動靜]을 통하여 현실로 구체화되어 드러난 양상이 음양이라는 양의(兩儀)이며, 이 음양은 다시 변합(變合)을 통해 오행과 만물을 이룬다고 보았다. 또한 음양에서 오행이 생겨나는 것에 대해 주돈이는 ‘양의 변화와 음의 결합[陽變音合]’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주돈이에 있어서 음양과 오행은 만물을 화생(化生)시키는 요소가 된다. 이처럼 태극, 동정, 음양의 작용이 다른 다섯 가지의 작용[五行]으로 충만함으로써 사시가 운행한다. 그러나 오행은 어디까지나 음양의 운동을 상세히 표현한 것이지 본래 음양과 다른 것은 아니며, 음양 또한 태극의 운동을 상세히 표현한 것으로 본질적으로 태극에 그 근본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五行一陰陽也 陰陽一太極也].

위 ≪태극도설≫의 내용과 아울러 반드시 함께 살펴봐야 할 문헌이 있는데 바로 ≪주역≫ <계사전>이다. 이 문헌에서 ‘태극(太極)’이라는 용어가 가장 처음 등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8)

(역에는 태극(太極)이 있는데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가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이 팔괘(八卦)를 낳았다.)

위의 내용은 ≪주역≫ <계사전> 상에 기록되어 있는데 태극에서 양의와 사상, 그리고 팔괘가 나온다는 위 구절은 역괘(易卦) 발생을 압축적으로 말한 것이다. <계사전>에서는 태극이 음양으로 나누어지고 다시 사상이 되고 팔괘가 결정되며 팔괘가 있으면 곧 길흉(吉凶)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역≫ <계사전>의 작자는 우주 생성의 과정을 말했을 뿐 직접적으로 태극을 명확하게 규명하지는 않았다. ‘태극’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생성 변화하는 모습을 음양, 사상, 팔괘를 통하여 표현하고 있고,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원리로서 태극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태극도설≫과 비교해 보면, 주돈이는 ≪태극도설≫에서 태극이 동정을 반복하여 음양을 낳고 오행을 낳으며 천지만물이 생겨남을 말하고 있는 데 반해 ≪주역≫ <계사전>에서는 음양에서 오행이 나온다고 하지 않고 단지 사상에서 팔괘가 나온다는 설명만 하였다. 그리고 ≪주역≫에서 보여주는 변화는 주로 음양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데 비해 ≪태극도설≫에서는 태극의 동정(動靜)의 과정을 통한 음양의 파생을 설명한다. <계사전>에서 말하는 ‘태극’은 양의, 사상, 팔괘의 원류, 즉 세상만사와 모든 만물의 원류(源流)로 이해되는 데 비해 ≪태극도설≫에서의 ‘태극’은 우주 만물의 시원(始原)이면서 동시에 생성 원리이자 순환 원리를 상징한다.

이렇듯 ≪주역≫ <계사전>은 ‘태극-양의-사상-팔괘’로 이어지는 순차적 전개를 통해 우주 생성의 과정을 표현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태극’이라는 개념에 대해 철학적으로 논의할 만한 정의가 아직 없었다. 하지만 북송대 주돈이에 의해 그 전기가 마련된다. 당시 성행하던 도가와 불교의 우주론을 받아들인 주돈이는 처음으로 태극과 음양오행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우주 생성의 체계를 규정했다. 이로 말미암아 비로소 태극과 음양오행이 중요한 철학적 범주로 포함되기 시작한 것이다(이상 김만태, 2012, pp. 61-62 참고).

이처럼 주돈이의 ≪태극도설≫에서 제시된 우주론은 ≪주역≫ <계사전>에서 한 단계 진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주돈이는 그의 우주론을 전개하는 데 한대(漢代)에 융성했던 음양오행설과 ≪주역≫ <계사전>의 문장을 합치시켜 ‘무극⋅태극→음양→오행→만물’로 발전하는 만물 생성의 이론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런데 태극은 음양오행이 생겨나도록 작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작용을 주관하는 주체를 표현하는 명칭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주돈이는 만물의 생성 변화를 주관하는 형이상학적 원리의 개념으로 ‘무극(無極)’이라는 용어를 그의 우주론 체계에 끌어들이게 되고, ≪태극도설≫의 첫머리에 이러한 형이상학적 세계의 본체를 ‘無極而太極’으로 표현한 것이다.9), 결과적으로 무극은 모순과 대립을 지양한 완전한 조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의 오관(五官)을 통해서는 파악될 수 없는 존재의 근원이며 또 시간적 제약성으로부터 초월해 있다.10) 그러므로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우주의 본체는 ‘무극(無極)’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극은 모든 존재를 창출해 내는 모태로서 실재한다. 이러한 무극은 생성의 근원자로 파악되는 동시에 생성의 단초로 이해되기도 하는데, 이 생성의 단초로 이해될 때는 ‘태극’이라 말한다. 따라서 무극과 태극은 그 실제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다만 무시무종(無始無終)의 형이상적 본질의 근원자로서의 입장에서는 ‘무극’이 되고, 유시유종(有始有終) 생성의 단초의 입장에서 보면 ‘태극’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무극과 태극의 관계는 동일성과 차별성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그 근거에서 보면 동일하나 그 작용의 측면에서는 차별적이기 떄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관계를 주돈이는 ”무극이면서 태극이다(無極而太極)”라고 언표한 것이다(이상 함현찬, 2007, pp. 72-80 참고).

이와 같이 주돈이의 ≪태극도설≫과 그의 이론적 토대가 되는 ≪주역≫ <계사전>에서 ‘태극’에 대한 개념과 의미를 살펴볼 수가 있다. 그런데 <제자해>에서는 이 ‘태극’을 ”坤復之間爲太極”이라 설명하고 있다. 서두 두 번째 문장의 앞절에 해당하는데, 이에 관하여 이 구절의 출처가 소옹(邵雍)의 발언이라 전해진다(이상 권재선(1988), 박동규(2001), 곽신환(2016), 조희영(2018) 등).11), ”坤復之間爲太極”의 전거가 소옹의 발언이라 할 수 있는 근거를 정리해 보면 첫째, ≪태극도설≫에서는 ‘坤復之間’을 가지고 무극을 설명하지 않았고, 『성리대전』에 수록된 어떤 문헌에서도 ‘坤復之間’을 ‘태극’(혹은 ‘무극’)과 직결한 설명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조희영(2018, p. 128)에서의 주장과 같이 ‘곤복과 복괘 사이’를 ‘무극’이라 의미를 부여한 사람은 소옹뿐이며, 이것은 그의 ‘64괘방원도’로만 설명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

『성리대전』에 수록된 소옹의 책 ≪황극경세서≫에는 직접 나와 있지는 않지만, 『성리대전』 권 12에 실린 주희의 ≪역학계몽≫ 2 <원괘획>에 ”坤復之間乃無極”이라는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진한 글씨체 및 밑줄 필자).

惑問: 無極如何設前

朱子曰: 邵子就圖上說循環之意 自姤至坤是陰含陽 自復至乾是陽分陰 坤復之間乃無極 自坤反姤是無極之前

(어떤 사람이 물었다. 무극 이전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주자가 대답했다. 소옹은 <원도>에서 순환의 뜻을 설명했다. 구괘에서 곤괘에 이르기까지 음이 양을 품고 있고, 복괘에서 건괘에 이르기까지 양이 음을 나눈다. 곤괘와 복괘 사이가 무극이고, 곤괘에서 구괘까지 돌아가가는 것이 무극 이전이다.)

위 주자의 대답에서 ”坤復之間乃無極”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邵子就圖上說循環之意”이라 하여 소옹의 설명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말해 준다. 여기서 ‘무극’의 개념을 소옹의 ‘원도(圓圖)’로 설명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때 ‘원도’는 소옹의 ‘64괘방원도’를 일컫는다.12)

[그림 2]가 바로 소옹의 ‘64괘방원도’인데 그림을 보면 복괘(復卦)에서 건괘(乾卦)까지는 원도의 왼쪽에 자리 잡고 있다. 양효 ‘’가 많고 음효 ‘’가 적어 양의 영역이다. 그리고 구괘(姤卦)에서 곤괘(坤卦)까지는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음효 ‘’가 많고 양효 ‘’가 적어 음의 영역이다. [그림 2]에 표시된 사각의 도형은 필자가 표시한 것으로 ‘곤괘(坤卦, )와 복괘(復卦, ) 사이’, 즉 ”坤復之間乃無極”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림 2]

<찬도지요>의 64괘방원도(윤용남 외 2018[2권], p. 305)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태극’이라는 용어가 ≪주역≫의 <계사전>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소옹은 ‘태극’이 무엇인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그 존재를 괘를 가지고 밝히고자 하였다. 그래서 채택된 것이 ‘곤괘와 복괘 사이’이다. 여기서 ‘곤괘와 복괘 사이’는 공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만나는 지점으로 곤괘에서 복괘로 넘어가는 때를 의미한다. 그리고 소옹은 ”坤復之間乃無極”이라 하여 ‘태극’ 대신 ‘무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림 2]에서 64괘 괘도상 곤괘(坤卦)로부터 구괘(姤卦)까지 거꾸로 올라가는 지점이 ‘무극 전(無極前)’임에 대하여 곤괘(坤卦)에서 복괘(復卦)에 이르는 지점이 ‘무극(無極)’이다. 이렇게 ‘곤괘와 복괘 사이’를 ‘무극’이라고 한 것은 음기가 막 사라지자마자 양기가 처음으로 생기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며, 그 지점에서 볼 수 있는 형상이 없기 때문에 ‘없을 無’를 써서 ‘무극’이라 말한 것이다.13) 이처럼 소옹은 음양이 서로 만나는 지점을 가지고 ‘무극’을 논하였다.

이와 같이 소옹의 ‘64괘방원도’를 통해서 설명되는 ”坤復之間乃無極”를 <제자해>에서는 ”坤復之間爲太極”이라 표현하였다. 곤괘와 복괘 사이가 태극이라 함은 곧 음기(陰氣)의 성장이 멈추고 양기(陽氣)가 자라나는 시점, 즉 생명이 태동하기 시작하는 때가 바로 ‘태극’이다. 그래서 모든 자연의 주장이 되는 근원을 ‘태극’이라 규정한 것이다[坤復之間爲太極]. 이러한 본원(本源)이 되는 ‘태극’이 동(動)하고 정(靜)한 작용을 거쳐 ‘음양(陰陽)’이 생겨난다는 것이 뒷절의 내용이다[而動靜之後爲陰陽].

<제자해> 서두의 두 번째 문장 ”坤復之間爲太極而動靜之後爲陰陽”은 앞절과 뒷절 모두 인용 표현을 사용하여 의미 간에 긴밀한 연결 관계를 보인다. 이 문장이 ‘태극’과 태극에 의한 ‘음양’의 발생 과정을 기술한 내용으로, 앞절에서는 ‘태극’이 무엇인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그 존재를 밝힌 것으로 소옹의 발언을 취하여 ”곤괘와 복괘 사이가 태극이다.”라고 하였고, 뒷절은 이러한 ‘태극’이 ‘동(動)’과 ‘정(靜)’의 작용을 거쳐 생긴 ‘음양’의 과정을 말하고 있다. 태극의 동정(動靜) 과정을 통해 음양이 파생한다는 ≪태극도설≫에 기반하여 ‘음양’이 생긴 것은 ‘태극’의 작용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한 것이다.

(3) 故人之聲音∘皆有陰陽之理∘顧人不察耳。 [정음해례1ㄱ:6-7] (그러므로 사람의 말소리에도 모두 음양의 이치가 있는데, 다만 사람이 살피지 않았을 뿐이다.)

대자연에서 사람의 말소리로 대상이 좁혀지는 부분이다. 천지 만물이 음양에 입각해 있다고 하였으니 사람의 말소리도 음양에 입각해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사람의 말소리에 음양의 이치가 있다 하였고, 음양의 이치는 천지의 도[天地之道]임을 볼 때 ‘사람의 말소리[人之聲音]’는 음성학⋅음운학적 차원이 아닌 역학적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聲)’에 관한 역학적 사유를 피력하려면 이에 관련된 지식 기반이 필요한데, 『성리대전』에 수록된 문헌 중 ‘성(聲)’에 관한 논의는 소옹의 ≪황극경세서≫에서만 찾을 수 있다.

소옹의 ≪황극경세서≫가 훈민정음 창제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에 대해 처음 제기한 논의는 홍기문(1946[下], p. 144)에서이다. 이후 많은 후속 연구에서 소옹의 ≪황극경세서≫에 성음(聲音)을 중시한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이상 강신항, 1963; 남성우, 1979; 이기문, 1980유창균, 1989; 김익수, 2003; 곽신환, 2016; 황인옥, 2017조희영, 2018 등). 『성리대전』 권 8에 실린 ≪황극경세서≫ 2 <찬도지요> 하의 ‘성음창화(聲音唱和)’에서 ‘성(聲)’의 중요성이 나타난다(진한 글씨체 및 밑줄 필자).

西山蔡氏曰…物有色聲氣味 唯聲爲盛 且可以書別

(서산 채씨[채원정]가 이르기를…만물에는 색⋅성⋅기⋅미가 있는데 오직 성(聲)이 가장 뚜렷하고 또 글로 구별할 수 있다.)

邵伯溫曰…物有聲色氣味 可考而見 唯聲爲甚 有一物則有一聲 有聲則有音 有律則有呂 故窮聲音律呂以窮萬物之數

(소백온이 이르기를…사물에는 소리, 색깔, 냄새, 맛이 있어서 살펴볼 수 있는데 오직 소리가 가장 분명하다. 하나의 사물에는 하나의 소리가 있고, 소리가 있으면 음이 있고, 율이 있으며, 여가 있으니 성⋅음⋅율⋅려를 연구하여 만물의 수를 궁리한다.)

邵伯溫系術曰…至于聲色形氣 各以其類而得焉 可考而知 聲音爲甚 聲者陽地 而生於天 音者陰也而出乎地 知聲音之數而後萬物之數覩矣 知聲音之理而後萬物之理得矣

(소백온이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이르기를…성⋅색⋅형⋅기에 이르러서는 각각 그 종류에 따라 얻는다. 모두 고찰하여 알 수 있지만 성음에서 가장 잘 알 수 있다. 성(聲)은 양(陽)이고 천(天)에서 생겨나고 음(音)은 음(陰)이고 지(地)에서 생겨난다. 이 성음의 수를 안 뒤에야 만물의 수를 본다. 성음의 이치를 안 뒤에 만물의 이치를 안다.)

소옹의 후배인 채원정(蔡元定)이 말한 대목과 선친(先親)인 소옹의 이론을 잇고 있는 소백온(邵伯溫)의 두 개의 주석에서 ”오직 소리가 가장 분명하다(唯聲爲甚)”라고 하였고, ”성음의 이치를 안 뒤에 만물의 이치를 알 수 있다(知聲音之理而後萬物之理得矣)”라고 하여 성음의 중요성을 명확히 말해 준다. 만물을 식별할 수 있는 네 가지 장치인 ‘성(聲), 색(色), 기(氣), 미(味)’에서 ‘성(聲)’이 만물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이를 통해 만물의 이치를 파악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역학(易學)에서 성운학(聲韻學)을 도출한 사람이 소옹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이론은 이른바 수리(數理)로서 우주 만물의 생성과 구성의 원리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우주 만물의 이치를 알려면 먼저 성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인데, 성음에 만물의 이치가 들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이에 입각해서 성음 체계의 수리(數理)를 밝히고자 하였다. 그래서 사람의 말소리[聲]가 색(色), 기(氣), 미(味)와 함께 인체(人體)의 도를 갖추는 적극적인 부분들이기 때문에 천지의 도(道)나 만물의 정(情)을 구명(究明)하자면 먼저 성음의 이치부터 고구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은 소옹의 관점을 요약하면 사람의 말소리는 음양오행의 이치가 내재한 자연의 본질적 현상 중 하나이므로 성음을 통해 만물의 이치와 수를 궁구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친다. 사람의 성음(聲音)의 원리야말로 모든 만물의 이치가 다 이 안에 들어 있다고 주장하는 소옹의 관점이 <제자해>에서 ‘사람의 말소리에도 음양오행의 이치가 내재해 있다’고 한 ”人之聲音∘皆有陰陽之理”에 반영되지 않았을 리 없다.

(4) 今正音之作∘初非智營而力索〭∘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 [정음해례1ㄱ:7-1ㄴ:1] (이제 정음을 만든 것도 처음부터 머리를 써서 애써 찾아낸 것이 아니라, 말소리에 따라 그 원리를 깊이 탐구했을 뿐이다.)

이 부분부터 <제자해>의 중심 화제인 문자 제자로 초점이 바뀐다. 세종이 어떤 인식으로 훈민정음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천지 만물 중 생명을 지닌 것들에 음양의 이치가 담겨 있으니 사람의 말소리에도 그 이치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凡有生類在天地之間者∘捨陰陽而何之。故人之聲音∘皆有陰陽之理∘顧人不察耳。<正音解例1ㄱ:5-7>). 정음을 지은 것도 애초에 지혜를 꾀하고 힘써 찾아낸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말소리에 담긴 그 이치를 다하였다고 말한다. 여기서 사용한 ”智營而力索”이라는 표현이 ≪황극경세서≫에 나온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바이다(이상 권재선, 1988; 강신항, 2006, 2010; 박동규, 2001; 곽신환, 2016조희영, 2018 등).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성리대전』권 7에 수록된 ≪황극경세서≫ 1 <찬도지요> 상의 ‘복희시획팔괘도(伏羲始畫八卦圖)’에서 동일한 표현을 찾을 수 있다.

西山蔡氏曰: 大傳曰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八卦定吉凶 吉凶生大業

其法自一而二 自二而四 自四而八 實則太極判而爲陰陽 陰陽之中又有陰陽 出於自然 不待智營而力索也. 其敍首乾而尾坤者 以陰陽先後爲數也(진한 글씨체 및 밑줄 필자)

(서산 채씨가 말했다. ‘대전’에서 말하기를 ”역에는 태극이 있으니 태극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사상이 팔괘를 낳고, 팔괘가 길흉을 정하니 길흉이 큰 사업을 낳는다. 그 법은 1에서 2가 되고, 2에서 4가 되고, 4에서 8이 되지만 실은 태극이 갈라져 음양이 되고 음양 속에 또 음양이 있는 것이니, 자연에서 나오는 것이지 지혜로 도모하고 억지로 찾은 것은 아니다. 그 순서가 건괘를 첫머리로 하고 곤괘를 끝으로 한 것은 음양 선후로 수를 삼았기 때문이다.)

서산 채씨가 한 말에 ”智營而力索”이라는 표현이 그대로 나오는데, 단순히 표현의 양식만 가져온 것인지는 맥락 안에서 따져봐야 한다. ‘복희시획팔괘도’는 팔괘를 낳는 법을 말하고 있는데, 우선 서산 채씨가 언급한 ”大傳”이란 ≪주역≫ <계사전> 상을 말하며,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八卦定吉凶 吉凶生大業”은 <계사전> 상 11장에 기술된 내용 일부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여기서 ‘태극’은 ‘양의’, ‘사상’, ‘팔괘’의 원류(源流)가 되어 ‘태극’은 1, ‘태극’이 ‘양의’를 낳아 2, ‘양의’가 ‘사상’을 낳아 4, ‘사상’이 ‘팔괘’를 낳아 8이 되는데, 이는 자연에서 나온 것이지 지혜로 도모하고 억지로 찾은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이처럼 팔괘를 낳는 법이 ”出於自然不待智營而力索”라는 데 대해 조희영(2018. p. 130)에서는 소옹이 강조하는 자연성을 명확히 말해 준다고 하였다.

<제자해>에 표현된 ”智營而力索〭” 또한 자연성에 기반한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새 문자를 만드는 데 온갖 지혜를 동원하고 억지로 애써서 찾은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 곧 사람의 말소리에 담긴 이치를 좇아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대단히 현상학적이고 자연과학적인 사고를 말해 주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된 표현이다. 훈민정음 제자에 관해 ”智營而力索〭”이라는 표현을 직접 인용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자연의 이치에 기반한다. 이 대목을 그대로 인용한 것 역시 훈민정음의 자연성을 강조하기 위함으로, 천지자연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지 인위적인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말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제자해>에 인용된 ”智營而力索〭”은 단순한 단장취의(斷章取義)가 아니며, ≪황극경세서≫ 1 <찬도지요> 상 ‘복희시획팔괘도(伏羲始畫八卦圖)’가 분명한 전거가 된다.

“今正音之作∘初非智營而力索〭” 그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인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는 바로 앞 문장의 ”人之聲音∘皆有陰陽之理”와 직결된다. 성음(聲音)에 내재된 음양의 이치를 깊이 탐구하여 정음을 지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 표현을 통해 새 문자를 소리글자로 만들 수 있었던 근간(根幹)을 엿볼 수 있다.

‘성음(聲音)’에 대한 논의는 ≪황극경세서≫ 2 <찬도지요> 하에서 더 찾을 수 있는데, 상관(上官) 양만리(楊萬里)가 한 말에서 ≪황극경세서≫의 성음론이 높이 평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上官氏萬里曰…惟皇極用聲音之法 超越前古 以聲起數 以數合卦 而萬物可得而推矣

(상관 만리가 이르기를…오직 ≪황극경세서≫에서 성음(聲音)의 방법을 사용한 것은 과거를 초월하여 성(聲)으로 수(數)를 일으키고 수로서 괘(卦)에 합치하게 되어 만물을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상관 양만리의 주석을 통해 ≪황극경세서≫의 성음론이 옛날 성음에 관한 법칙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소옹은 성리학자이면서도 그의 아버지 소고(邵古)의 영향을 받아 사람의 성음(聲音)에 관심을 가졌고, 이를 역수(易數)로 설명하고자 하였다. 종래의 ≪절운(切韻)≫계 음계(音系)를 나타내는 운서(韻書)들과는 음운 고찰 태도를 달리하여, 12세기 개봉 지역(송의 수도)의 현실음을 올바르게 나타낼 수 있는 운도(韻圖) <황극경세 성음창화도(皇極經世聲音唱和圖)>를 창안하였다.14), <성음창화>의 ‘창(唱)’과 ‘화(和)’는 ‘天聲唱地音’ 또는 ‘地音和天聲‘의 의미이다. 소옹은 운류(韻類)와 성류(聲類)를 차례로 병합시키고 변수(變數)나 화수(化數)의 음절수에 합치시켜서 세상의 모든 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현해 냈다(심소희, 2019, p. 243).

성리학에 골두해 있던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은 성운학자로서도 중요한 위치에 놓인 소옹의 이론과 그에 대해 주석을 단 학자들의 이론에 크게 주목한 것은 당연하다. 소옹의 관점에 입각해서 성운의 연구를 중시하고, 거기에서 방법론을 도입함은 무리한 과정이 아니었다. 『성리대전』의 여타 문헌에서는 없는 소옹의 ≪황극경세서≫를 통해 역학적 사유로서의 성(聲)과 성음론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게 됨으로써, 성음에도 자연의 이치가 내재해 있으니 사람의 말소리에 주목하고 이를 깊이 탐구하여 소리글자인 ‘정음’을 만들게 되는 근간이 된다. 이를 실재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당시 중국의 음운학인 성운학(聲韻學)을 섭렵하고 당시 우리말의 음운 체계를 깊이 연구하여 소리글자로서의 면모와 위상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렇게 훈민정음은 역학적 원리와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음성⋅음운학적인 체계를 갖춘 수준 높은 소리글자라 할 수 있다.

(5) 理旣不二∘則何得不與天地鬼神同其用也。 [정음해례1ㄴ:1-2]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니니 어찌 천지 귀신과 그 쓰임이 같지 않을 수 있겠는가?)

“理旣不二(이치가 이미 둘이 아니다)”라는 것은 ‘이치가 하나이다’, ‘이치가 다르지 않다’, 즉 ‘이치가 같다’는 뜻이다. 이때 이치란 ”天地之道一陰陽五行”로서 서두의 첫 문장과 호응을 이룬다. ”天地之道一陰陽五行”와 ”理旣不二”를 연결지어 보면 ”천지의 도는 둘이 아니다. 오직 음양오행뿐이다.”라는 언명(言明)이 강조된다. 천지 만물의 이치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이미 같은 ‘하나[一]’이라는 만수귀일(萬殊歸一)의 성리학적 세계관을 보여준다(김만태, 2012, p. 62). 이러한 맥락에서 사용된 표현은 『성리대전』곳곳에서 보이는데, 한 가지 예를 들어 보면 권 9에 실린 ≪황극경세서≫ 3 <관물내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天地萬物皆一本 故雖萬殊 理無異致

(천지 만물은 모두 근본이 하나이므로 만물이 갖가지로 다르지만 이치는 다름이 없다.)

위 내용은 천지 만물의 근본은 하나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당대 송학의 지배적인 관념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理旣不二” 다음에 이어지는 ”則何得不與天地鬼神同其用也”은 ”理旣不二”를 뒷받침하는 구절로서 이치가 같다는 것을 구체화한다. 앞서 ‘천지의 도는 음양오행뿐’이라고 하였으니[天地之道 一陰陽五行] 자연의 이치가 천지 만물에 모두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명제를 ‘천지 귀신과도 이치의 쓰임이 같음’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귀신(鬼神)’에 대해 곽신환(2016, p. 37)에서는 향간의 악귀와 같은 의미가 아니라 ‘귀(鬼)’와 ‘신(神)’이 각각 음과 양의 두 기운의 양능(兩能)으로 세상의 모든 길흉 선악을 주재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천지의 도가 적용되는 구체적인 설명을 ≪주역≫ <계사전> 상 4장에서 살펴볼 수 있다.

易與天地準 故能彌綸天地之道 仰以觀於天文 俯以察於地理 是故知幽明之故 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 精氣爲物 遊魂爲變 是故知鬼神之情狀

(역은 천지의 원리와 부합한 것으로 능히 천지의 도를 모두 포괄할 수 있다. 우러러봄으로써 천문을 관찰하고, 굽어봄으로써 땅의 이치를 살핀다. 이런 까닭에 어두움과 밝음의 연고를 알며, 처음을 근원으로 해서 마침으로 돌아가는 고로 죽음과 삶의 이치를 안다. 정과 기가 모여 사물이 되고, 혼이 돌아다니며 변화를 이루므로 귀와 신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주역≫은 천지의 도를 원칙으로 삼아 천지 만물의 법칙에 근거한 책임을 말한 것인데, 이 부분에서 ≪주역≫의 최고 명제인 ”一陰一陽之爲謂道”, 즉 음양의 변화가 잘 드러나 있다. 하늘과 땅, 어두움과 밝음, 처음과 마지막, 죽음과 삶, 유형과 무형, 정(精)과 기(氣), 귀(鬼)와 신(神)의 상황 모두 음양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모두 음양오행의 이치임을 설명해 준다. 여기서 ‘귀신(鬼神)’의 뜻이 드러나는데 귀(鬼)는 돌아감이요, 신(神)은 새로운 탄생과 관련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귀신의 상태를 아는 것[知鬼神之情狀]은 음양의 조화를 아는 것이요, 나아가 우주의 작동 원리를 깨닫는 것이다. <제자해>에서 말한 ”理旣不二則何得不與天地鬼神同其用也”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세상 만물과 세상의 모든 일, 사람을 포함한 천지자연의 본질적인 속성이 바로 ‘천지의 도’로서 음양오행의 이치가 동일하게 작용함을 말하고 있다.

3. 철학적 사유에 따른 <제자해> 서두의 의미

3.1. <제자해> 서두에 영향을 준 문헌들의 철학적 사유

앞서 2장에서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제자해>의 서두에 철학적 사유가 반영된 문장의 전거를 정리하면 <표 2>와 같다.

철학적 사유가 반영된 문장과 전거

<표 2>와 같이 <제자해> 서두에 표현된 역학 및 성리학 관련 내용들의 전거(典據)가 되는 대표 문헌은 ≪주역≫ <계사전>, 주돈이의 ≪태극도설≫, 소옹의 발언을 포함한 ≪황극경세서≫ 등이다. 당대 유학의 최고 경전인 ≪주역≫은 물론, 『성리대전』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 주돈이의 이론에서 취한 점이 많고, 성음(聲音)에 대한 이론은 소옹의 ≪황극경세서≫ 및 이에 대한 제유(諸儒)들의 주석에서 취한 면이 많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자해>의 서두에 이러한 문헌들이 어떻게 참고되었는지 당시 학문적⋅사상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전거(典據)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이는 그 전거를 바탕으로 형성된 <제자해>의 서두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먼저, 조선 시대 사상의 중심부로 부상한 성리학은 당시 성행하던 도가와 불교의 우주론을 수용해서 철학적으로 체계화하고자 했던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이 전기(轉機)가 된다. 이후 주희(朱熹)가 주돈이의 ‘태극(太極)’ 사상을 수용하고, 정호(程顥)의 ‘천리(天理)’ 사상과 정이(程頤)의 ‘성즉리(性卽理)’ 사상을 바탕으로 해서 장재(張載)와 소옹(邵雍)의 ‘기(氣)’ 이론을 흡수하여 집대성함으로써 비로소 성리학의 큰 틀이 완성되었다(김만태, 2012, p. 60). 조선 초 성리학을 특히 존숭(尊崇)하게 된 계기는 당시 외교⋅문화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명(明)의 사상계 동향에 기인한다. 당시 명나라의 초기 사상계 동향이 바로 송학(宋學) 사상을 집대성한 성리학이었기 때문이다. 성리학 일색의 유교 국가로 정비를 서두르고 있었던 명나라 초기 분위기가 숭유억불을 국시(國是)로 건국한 조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다.

명의 영락제(永樂帝) 시대에는 경서(經書)의 송대적 신해석의 집대성과 통일을 기원하고자 여러 학자들을 동원하여 『사서대전(四書大全)』, 『오경대전(五經大全)』, 『성리대전(性理大全)』을 편찬하였다. 이른바 ‘영락 3대전(永樂三大全)’이라 하는데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성리대전』은 송대 제유(諸儒)들의 학설을 총망라하여 집대성한 일대 백과 전서이다. 구성을 살펴보면 9종 13류로 구성되어 있다. 9종에는 주돈이의 ≪태극도설(太極圖說)≫ 1권과 ≪통서(通書)≫, 장재(張載)의 ≪서명(西銘)≫ 1권과 ≪정몽(正蒙)≫ 2권, 소옹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7권, 주희의 ≪역학계몽(易學啟蒙)≫ 4권과 ≪가례(家禮)≫ 4권, 채원정(蔡元定)의 ≪율려신서(律呂新書)≫ 2권, 채침(蔡沉)의 ≪홍범황극내편(洪範皇極內篇)≫ 2권 등이며, 이에 대한 제유(諸儒)의 주석도 함께 찬집(撰集)해 놓았다. 그리고 13류는 이기(理氣), 귀신(鬼神), 성리(性理), 도통(道統), 성현(聖賢), 제유(諸儒), 학(學), 제자(諸子), 역대(歷代), 군도(君道), 치도(治道), 시(詩), 문(文)에 대한 송유(宋儒)들의 설을 13부로 나누어서 수록하고 있다(이상 강신항, 1963 참조).

『성리대전』이 간행된 지 4년만인 세종 즉위년(1419년) 12월에 특사(特賜)의 형태로 조선에 도입되었다.15), 그 후 세종 8년(1426년) 11월에 조선의 구매 요청에 대한 명 선덕제의 하사(下賜)로 한 차례 더 도입되었고,16), 세종 15년(1433년) 12월에 조선의 자제들에 대한 명 유학 요청을 거절한 선덕제가 그 반대급부로 『성리대전』을 반사(頒賜)함으로써 도입되었다.17), 이어 조선에서는 『성리대전??의 간행과 보급에 나섰다. 세종 8년(1426년) 12월에 검토관 설순은 『성리대전』이 의논이 정통하고 여러 설들이 구비되어 있어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봐야 할 책이라 했다. 이와 동시에 과거에 응시하는 선비들과 문장을 연마하는 자들이 성리학을 연구하고 익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8), 이러한 설순의 건의가 있은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간행에 들어가 2년 3개월 후인 세종 10년(1428년) 12월에 완료되었다. 조선은 『성리대전』을 활용해서 당면한 체제 정비를 위한 이념적 근거를 확립하고자 했다. 세종 10년(1428년) 3월에 세종은 경연 진강(進講)을 위해 집현전 응교인 김돈에게 『성리대전』 연구를 지시했고,19), 김돈은 조선에 파견된 명 사신들을 찾아가 『성리대전』과 관련된 의문들을 물어보는 등 연구에 매진하였다.20), 이와 같이 세종은 직접 경연 진강에 나서는 등21), 경연을 통해 집현전의 연구 기능과 상호 작용을 하면서 『성리대전』을 정미(精微)하게 연구해 갔다(이상 최민규, 2024, pp. 150-151 참조). 이렇게 『성리대전』은 조선 유학자들의 필독 문헌으로 당대 가장 권위 있는 문헌으로 인정되었다.

『성리대전』 가운데 <제자해>의 서두에 담긴 철학적 사유의 전거가 되는 문헌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이 책의 첫머리에 편집되어 있는 것이 성리학의 개조(開祖)인 주돈이의 ≪태극도설≫이다. 성리학은 태극과 음양 오행으로 천지 인간 만물을 포괄적으로 해명하려 하는데, 그 발단은 주돈이의 ≪태극도설≫에서 시작된다. ≪태극도설≫은 성리학의 원리를 처음으로 간명하게 설명한 기본 텍스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성리대전』 중 훈민정음 창제의 음운학적인 면에서 크게 영향을 미친 소옹의 ≪황극경세서≫이다. 『성리대전』에 수록된 ≪황극경세서≫는 모두 7권으로 구성되어 있다.22) 앞서 2장에서 이미 살폈듯이 송대(宋代)의 성리학자 중 성음(聲音)을 중시한 학자가 바로 소옹이다. 그는 주역을 발전시킨 주돈이의 ≪태극도설≫에 입각해서 성음(聲音)에 대해 설명하는데, 성음의 이치에 만물의 이치가 들어 있다고 보고, 수리(數理)로 우주 만물의 생성 원리를 설명하였다. 『성리대전』에 실린 소옹의 ≪황극경세서≫의 성음 이론은 유교 이데올로기에서 보편적인 어음관(語音觀)으로 인식되는 사상적 근거가 된다. 『성리대전』의 내용을 열심히 고구(考究)한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이 『성리대전』 안에 수록된 ≪황극경세서≫의 내용과 특징을 절대로 간과하지 않았을 것인데, 세종대의 운학(韻學)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성리대전』 외에 <제자해> 서두 내용에 전거가 되는 중요한 문헌이 바로 ≪주역≫주<계사전>이다. ≪주역≫에서 학술적 성과가 가장 높고, 철학적 의의가 깊은 부분이 바로 <계사전>이라 평가한다. 앞서 2장에서 다루었듯이 음양은 사상을 낳고, 사상은 팔괘를 낳으며 팔괘를 포개어 64괘를 만들어 인생의 길흉화복과 연결 시킨 것이 ≪주역≫이다. 만물이 생존하는 원리를 음양의 생성 작용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고 우주와 인간의 변화 원리를 음양의 상호 작용에 의해 밝히려는 것이 역학의 기본 사상이 된다(황인옥, 2017, p. 7).23) 성리학의 근원은 역학 이론에서 발달한 것으로 역학의 근본 사상은 ≪주역≫에 있다. ≪주역≫은 역학의 기본 텍스트로서 실제 모든 중국 철학은 ≪주역≫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마디로 성리학은 물론 동양 사상 전반에 걸쳐 중핵이 되고 중추 역할을 하는 경전이 바로 ≪주역≫이다.

앞서 2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제자해>의 서두에서도 철학적 사유가 담긴 문장들의 근저에 ≪주역≫주<계사전>이 근원적 핵심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였다.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데 기반이 되는 사상도 궁극적으로는 ≪주역≫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이처럼 서두의 내용은 훈민정음 제자와 관련하여 역학 및 성리학적 지식이 대단히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훈민정음』 해례본 가운데 핵심 텍스트인 <제자해>의 서두에 이러한 철학적 사유를 담은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말해 ≪주역≫과 『성리대전』에서 추구하는 역학적⋅성리학적 인식을 <제자해>의 서두에 언명한 의도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권위 있는 필자의 텍스트를 참고하고 인용하는 것은 당시 널리 인정받고 있는 필자의 권위를 활용하여 논의의 타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사회적 목적을 지닌다(권대호, 2013, p. 157). 주지하듯이 당시 명나라와의 정치⋅문화적 관계에서 새로운 문자의 제정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창제된 훈민정음인 만큼 사회⋅문화 공동체 차원에서의 용인은 매우 긴요한 동인이 된다. 명나라의 정치⋅문화적 반발을 최소화하고 조선 사대부 지식인들을 설득하려면 훈민정음 창제가 당시 학문적 논리성이나 이성적 합리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시 주도적인 성리학적 세계관과 가치 체계를 구성하는 개념과 구조로 설명하는 전략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명(明)이 존숭하는 사상계 동향을 함께 수용하고, 송학(宋學) 사상의 발로인 ≪주역≫과 송학을 집대성한 『성리대전』의 의미를 <제자해>의 서두에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제자해>의 서두 내용은 훈민정음 제자와 관련하여 역학 및 성리학적 지식이 대단히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3.2. 철학적 사유에 근거한 <제자해> 서두의 의미 구조

<제자해>의 서두는 짧은 문장들로 이루어졌지만, 그 안에는 동양 사상과 문화의 근저가 되는 역학(易學)과 이를 토대로 송대(宋代) 새롭게 창조된 성리학(性理學)을 배경으로 한 내용이 조화를 이루어 논리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주 만물의 모든 원리가 역(易)을 바탕으로 해서 발달한 태극. 음양오행 등에 있다고 생각한 송유(宋儒)들의 사고방식을 계승하여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도 이러한 당대 철학적 사유를 기반으로 훈민정음에 음양오행의 관념을 그대로 구현시켰다. 이렇듯 <제자해> 서두는 음양오행으로 일관되어 있다. 음양오행을 중심에 두고 주요 내용의 의미 구조를 분석하면 [그림 3]과 같다.

[그림 3]

<제자해> 서두의 논리 구조

[그림 3]과 같이 서두의 논리 구조는 3단계의 연역 구성을 보인다. 1단계는 대전제로 ‘천지 자연의 생성 원리는 태극으로 그 생성 작용은 음양과 오행이다.’ 이른바 ≪주역≫의 최고 명제인 ”一陰一陽之爲謂道”를 <제자해>에서는 ”天地之道一陰陽五行而已”라고 하여 ‘천지의 도’, 즉 자연의 이치를 대전제로 한다. 태극은 형이상의 근거가 되며 음양오행은 형상을 갖춘 현상이다. 태극은 음양오행을 통해 드러나며, 음양오행 속에서 조화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이어지는 2단계는 소전제로 ‘만물의 생성에 음양오행이 작용하듯이 사람의 성음(聲音)에도 음양오행이 작용한다.’ 세상 만물이 음양오행으로 구성된 것처럼 사람의 말소리도 태생적으로 내재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주역≫의 중심 사상인 태극과 음양오행이 성음(聲音)과 관계를 이루며 제자의 기본 원리로 작용한다.

마지막 3단계는 1단계와 2단계를 전제로 내려진 결론으로 ‘인간 성음에 작용하는 음양오행을 상형하여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만물이 가진 소리 중에 유독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람의 말소리(人之聲音)를 택하여 관찰하고, 관찰된 소리의 이치에 의거하여 문자를 만듦으로써 그 이치(天地之道)가 일치되도록 하였다. 이로써 <제자해> 서두의 논리는 결정적인 결론을 맺으며 마무리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항은 <제자해> 서두에 반드시 ”正音二十八字各象其形而制之”를 포함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는 문자학적 제자 원리로 이해함으로 서두의 구조상 철학적 원리 다음에 일반 제자 원리가 제시된 것으로 보고 대부분 이 둘의 의미 단락을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서두를 구성하고 있는 앞 문장들과의 연결 관계를 논리적으로 잘 따져보면 ”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는 서두에서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 된다. 바로 앞 문장 ”今正音之作 初非智營而力索〭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 특히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와 ”正音二十八字各象其形而制之”의 연결 관계에 따른 맥락 파악이 중요하다. 두 문장은 서로 분절된 것이 아니라 ‘因其聲音’으로 ‘象其形’해서 만들었다”라는 연결 관계가 나타난다. 전거(典據)를 바탕으로 조금 더 구체화하자면 세종은 성음(聲音)의 중요성을 소옹을 통해 인식했으며, 이러한 성음의 이치를 관찰하고[因其聲音而極其理], 그 관찰한 결과를 ‘象其形’하여 정음 28자를 만들었다[正音二十八字各象其形而制之]는 사실이 인과관계의 논리로 명확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논리 전개상 서두의 마지막 문장을 ”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으로 보고, 서두의 거시적 담론답게 총론 차원에서 상형의 제자 원리를 역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타당하다.24) ”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를 문자학적 제자 원리로 이해하기에 앞서 훈민정음 창제의 철학적 인식과 사유를 통해 상형의 제자 원리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다. 서두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문단이 모두 역학적 의미로 해석될 때 <제자해> 서두의 의미는 더욱 정교하고 견고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훈민정음의 상형 원리도 근본적으로 철학적 사유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인 ‘상형’의 발상은 역학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전술에서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 正音二十八字各象其形而制之”에서 ”因其聲音”으로”象其形”해서 훈민정음 28자를 만들었다는 것은 곧 ‘성(聲)’과 ‘상(象)’으로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두 문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먼저 ‘성(聲)’은 앞서 2장에서 다룬 소옹의 이론에서 취한 것으로, 만물을 식별할 수 있는 네 가지 장치인 ‘聲色氣味’에서 ‘聲’이 가장 두드러지는데[物有色聲氣味 唯聲爲盛] 이는 ‘聲’이 만물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可考而知 聲音爲甚] 이를 통해 만물의 이치를 파악할 수 있다[知聲音之理而後萬物之理得矣]고 본 것이다. 그리고 ‘상(象)’에 대한 철학적 사유는 ≪주역≫ <계사전> 하 2장에 잘 나타나 있다.

古者包犧氏之王天下也 仰則觀象於天 俯則觀法於地 觀鳥獸之文與地之宜 近取諸身 遠取諸物 於是始作八卦 以通神明德 以類萬物之情 作結繩而爲網罟 以佃以漁 蓋取諸離

(옛날 복희씨가 천하를 다스릴 때 우러러서는 하늘의 상을 관찰하고, 구부려서는 땅의 법을 살피며, 새와 짐승의 무늬와 땅의 마땅함을 보고, 가깝게는 자신에게서 취하고 멀게는 사물에서 취하여 이에 비로소 팔괘를 지음으로써 신령하고 밝은 덕에 통하며 만물의 실정을 분류하였다. 끈을 매어 그물을 만들어 사냥하고 고기 잡으니 이는 이괘에서 취했다.)

위의 내용에서 ‘상(象)’의 의미가 잘 나타난다. 복희씨(伏羲氏)가 8괘를 만들 때 하늘의 무늬 즉 천문(天文)을 살피고, 지리를 살폈으며, 새나 짐승의 문양과 땅의 특산물을 살폈다고 한 다음, 가까이는 사람의 몸에서 멀리는 사물에서 그 이치를 취했다고 하였다. 요컨대 복희가 8괘를 만들 때 멀리는 모든 사물[遠取諸物]에서, 가까이는 자기 자신[近取諸身]에게서 취하여 8괘를 지었다는 것으로, 이때 ‘취하다[取]’는 ‘본뜨다[象]’와 같은 뜻이다.

한편, ”이괘(離卦)에서 그물을 본떠 만들어 사냥하고 낚시를 하게 되었다.”(作結繩而爲網罟 以佃以漁 蓋取諸離)라는 구절에서 ‘상’에 대한 ‘모방’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괘’의 괘상은 사물의 대강이 서로 연결되어 물건이 서로 붙어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 모습을 모방해서 물고기 잡는 그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도구의 발명이 상(원형)에 대한 모방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또한 ‘상(象)’은 ≪주역≫ <계사전>에 자주 등장하는데 대체로 ‘형상’, ‘본뜨다’뿐 아니라 추상적 의미로도 사용됨을 보여 준다.

是故夫象 聖人有以見天下之賾 而擬諸其形容 象其物宜 是故謂之象

(그러므로 상은 성인이 천하의 복잡하고 깊음을 보고 그 형체와 모양을 모방하여 그 사물에 마땅한 것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를 일컬어 상이고 한다.)

위 내용은 ≪주역≫ <계사전> 상 12장에 기록된 것인데 여기서 ‘상(象)’의 의미가 추상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말해 준다. 소위 ‘상(象)’이라는 것은 성인이 천하만물과 모든 일의 복잡하고도 심오한 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구체적인 형상과 모습으로 본떠 특정 사물에 함축된 의미를 상징하는 데 쓰였다. 실체적이고 객관적인 관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천하의 복잡하고 난해하고 심오한 이치를 살피는 것까지 관찰하는데, 관찰한 뒤에는 그 사물은 물론 추상적 관념까지도 그 이치에 맞게 형상화하는 것을 ‘상’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앞서 <제자해>의 서두 마지막 부분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 正音二十八字各象其形而制之”과 일맥상통하한다. ”因其聲音”으로”象其形”했다는 것이 ‘상’인데, 사람의 말소리를 관찰해서 그 말소리의 이치를 형상화하는 데까지 실현하는 것이 바로 ‘상’인 것이다.

이와 같이 ‘상’의 의미 또한 ≪주역≫에서 학술적 성과가 가장 높고, 철학적 의의가 깊다는 <계사전>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훈민정음의 ‘상형’ 원리의 발상은 ≪주역≫에서 중요시하는 상(象)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훈민정음 상형의 제자 원리도 궁극적으로는 ≪주역≫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만물을 관찰한다는 것은 단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관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의 원리를 실현하는 데까지 있다는 역학적의 관점을 철저히 수용한 결과가 바로 훈민정음임을 ≪주역≫의 ‘상(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25)

4. 결론

근래 들어 『훈민정음』 해례본이 현대어로 번역되어 대중들을 위한 교양서로 보급되고 있으나 어려운 한자어와 전문 용어로 인해 오늘날의 한글 세대들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책이다. 특히 <제자해> 서두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기표를 통해 기의를 의도적으로 표상한 것으로 내용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어려우면서 가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을 때 더욱 그러한데 기표와 기의가 연결될 수 있는 지점에서 의미 해석이 가능하다. <제자해>의 서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서두의 내용과 그것의 전거(典據)가 되는 원전(原典)과의 관계를 공고히 해야 한다. 관계를 공고히 한다는 것은 공유하거나 연결된 원전을 분명히 규명하여 파악하는 것이다. 서두에 반영된 철학적 사유의 전거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 전거를 바탕으로 형성된 <제자해>의 서두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자해>의 서두는 새로운 문자인 훈민정음의 개념과 속성을 고정 시킬 도구를 다른 텍스트에서 찾았다. 바로 ≪주역≫과 『성리대전』에서 개념과 속성을 고정할 도구를 가져와서 내용을 표상했다. 이때 ‘개념’은 ≪주역≫ 및 『성리대전』에서 훈민정음과 공통된 속성을 추출하여 언어로 정리한 것을 말하고, ‘속성’은 지시 대상인 훈민정음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말한다. 이렇게 <제자해>의 서두는 표면적으로는 독립적이지만 그 이면은 대단히 의존적이다.

이러한 까닭에 이 연구는 <제자해>에 서두에 집중하여 그 안에 반영된 철학적 사유의 전거를 분석⋅검토하고, 서두의 의미를 논리적으로 재구함으로써 <제자해> 서두의 의미를 정교하게 이해하는 데 기초적 논의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이상의 논의 가운데 중요한 내용을 요약해 결론으로 삼는다.

첫째, <제자해> 서두에 표현된 역학 및 성리학 관련 내용들의 전거가 되는 대표 문헌은 ≪주역≫ <계사전>, 주돈이의 ≪태극도설≫, 소옹의 발언을 포함한 ≪황극경세서≫ 등이다. 당대 유학의 최고 경전인 ≪주역≫은 물론, 『성리대전』 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 주돈이의 이론에서 취한 점이 많고, 성음(聲音)에 대한 이론은 소옹의 ≪황극경세서≫ 및 이에 대한 제유(諸儒)들의 주석에서 취한 면이 많다.

둘째, 사회⋅문화적 배경을 고려할 때 명나라의 정치⋅문화적 반발을 최소화하고 조선 사대부 지식인들을 설득하려면 당시 주도적인 성리학적 세계관과 가치 체계를 구성하는 개념과 구조로 설명하는 전략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명(明)이 존숭하는 사상계 동향을 함께 수용하고, 송학(宋學) 사상의 발로인 ≪주역≫과 송학을 집대성한 『성리대전』의 의미를 <제자해>의 서두에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셋째, 서두의 논리 구조는 3단계의 연역적 구성이라 할 수 있다.

  1. 천지 자연의 생성 원리를 태극으로 보고 그 생성 작용을 음양과 오행으로 보았다.

  2. 만물의 생성에 음양 오행이 작용하듯이 사람의 성음(聲音)에도 음양 오행이 작용한다.

  3. 인간 성음에 작용하는 음양오행을 상형하여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넷째, <제자해> 서두에 반드시 ”正音二十八字各象其形而制之”를 포함해야 한다. 앞 문장 ”今正音之作 初非智營而力索〭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의 연결 관계에서 성음의 이치를 관찰하고[因其聲音而極其理], 그 관찰한 결과를 ‘象其形’하여 정음 28자를 만들었다[正音二十八字各象其形而制之]는 사실이 인과관계의 논리로 명확하게 드러난다. 서두의 거시적 담론답게 총론 차원에서 상형의 제자 원리를 역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타당하다. ”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를 문자학적 제자 원리로 이해하기에 앞서 훈민정음 창제의 철학적 인식과 사유를 통해 상형의 제자 원리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다.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인 ‘상형’의 발상은 역학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훈민정음의 ‘상형’ 원리는 ≪주역≫에서 중요시하는 상(象)과 깊은 관련이 있다.

마지막으로, <제자해>의 서두 내용은 훈민정음 제자와 관련하여 역학 및 성리학적 지식이 대단히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기존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훈민정음』에 제시된 다양한 역학 및 성리학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한글 창제와의 구체적인 관련성을 고려하는 적극적 해석의 입장과 일반론이나 원칙론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소극적 반영으로 보는 입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역학 및 성리학 관련 내용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만 각 입장의 타당성을 논의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연구는 역학 및 성리학적 입장의 해석을 정밀하게 살펴보는 계기가 된다.

이번 연구를 토대로 <제자해>에 기술된 초성자, 중성자, 종성자 등에 대한 역학적⋅성리학적 내용이 <제자해> 서두의 철학적 사유로부터 어떻게 설명되고 있는지 추후 후속 연구를 기약하며, 이 논문을 통해 <제자해> 서두의 내용은 물론, <제자해> 전반과 『훈민정음』 해례본 전체에 반영된 철학적 사유를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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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1)

책명은 다음과 같이 표시한다. 각각의 개별 텍스트의 책명을 표시할 때 ‘< >’, 개별 텍스트가 의미적으로 묶여 하나의 텍스트 이룬 책명을 표시할 때 ‘『 』’,하나의 책이 다수의 여러 텍스트들로 구성된 책명을 표시할 때 ‘『 』’를 사용한다. 예) ‘≪주역≫ <계사전>’, ‘『성리대전』 ≪황극경세서≫ <관물내편>’, ‘『훈민정음』 ≪해례≫ <제자해>’

2)

권두서명 ‘訓民正音解例’가 담고 있는 부분은 모두 29장으로, ‘制字解’(1ㄱ:2~14ㄴ:4), ‘初聲解’(14ㄴ:5~15ㄴ:6), ‘中聲解’(15ㄴ:7~17ㄴ:1), ‘終聲解’(17ㄴ:2~20ㄴ:1), ‘合字解’(20ㄴ:2~24ㄴ:1), ‘用字例’(24ㄴ:2~26ㄴ:3)의 편목(編目)과 내용이 차례로 나오고, 26장 뒷면 제4행부터는 한 글자 내려서 쓴 <정인지서>가 29장 뒷면 3행까지 이어진다.

3)

천지의 도는 오직 음양과 오행뿐이다. 곤괘와 복괘 사이가 태극이 되고, 태극의 움직임과 고요함 후에 음양이 된다. 무릇 천지 사이에 생명을 지닌 것들이 음양을 버리고서 어디로 가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의 말소리에도 모두 음양의 이치가 있는데, 다만 사람이 살피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정음을 만든 것도 처음부터 머리를 써서 애써 찾아낸 것이 아니라, 말소리에 따라 그 원리를 깊이 탐구했을 뿐이다. 원리가 둘이 아니니 어찌 천지, 귀신과 그 쓰임이 같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음 스물 여덟 자는 각각 그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4)

≪주자어류(朱子語類)≫는 주희와 그 문인(門人)들의 학문상 문답을 기록한 책이다. 모두 140권이며, 여정덕(黎靖德)이 편찬한 것으로, 주자의 사후 70년이 지나서 만들어진 책이다. ≪주자어류≫는 주자의 문인들이 개인적으로 기록한 것을 수집한 것이기 때문에 주자가 직접 집필한 저서에 비해 자료적인 가치는 떨어지지만,이 문헌을 통해 당대 문인들이 어떤 사고를 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5)

<설괘전(說卦傳)>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1장과 2장은 전반부에 해당한다. 전반부의 내용은 일반적이고 전반적인 통론이어서 <계사전>의 내용과 비슷한 면이 있다(장치청, 2009下, p. 544).

6)

[현대역] 옛적 성인이 역을 지은 것은 장차 성(性)과 명(命)의 이치에 순응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므로 하늘의 도를 세움은 음(陰)과 양(陽)이요, 땅의 도를 세움은 유(柔)와 강(剛)이며, 사람의 도를 세움은 인(仁)과 의(義)이다.

7)

<설괘전>에서 성인이 ≪주역≫을 지은 목적은 인간이 성명(性命)의 이치에 따르게 하고자 함이라는 것이다. ≪주역≫에서는 하나의 괘가 육효(六爻)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에 삼재의 도를 실어 놓고 천⋅지⋅인의 도를 각각 음양(陰陽)⋅강유(剛柔)⋅인의(仁義)로 규정하였다(황인옥, 2017, p.8).

8)

이 구절에 대해 주희는 ‘역의 강령’이라고 극찬했다. ≪역학계몽≫ 2 <원괘획> “太極兩儀四象八卦 此乃學易綱領 開券第一義 孔子發明伏義畫卦自然之形體 孔子而後千 載不傳 惟康節明道二先生知之”(태극, 양의, 4상, 8괘는 ‘역(易)’을 배우는 강령이고 책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이니 공자는 복희가 괘를 그은 것이 저절로 그러한 형체라는 것을 드러내 밝혔다. 공자 이후 천 년 동안 전해지지 않다가 오직 강절[소옹]과 명도[정이] 두 선생이 그것을 알았다.)

9)

주돈이는 무극과 태극의 관계를 동정(動靜)이나 ‘生’으로 연결시키지 않고 ‘而’자로 연결시킴으로써 동시성(‘무극이면서 태극이다’)인지 순차성(‘무극에서 태극이 생겨났다’)인지 많은 논란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무엇보다 무극이라는 용어에 대한 상세한 해석이 없어 ‘무극’과 ‘태극’의 관계는 주돈이 이후 중요한 문제점으로 부각되었다(함현찬, 2007, p. 72 참고).

10)

그래서 주희(朱熹)는 ≪태극도설해(太極圖說解≫에서 “上天之載 無聲無臭 而實造化之樞紐 品彙之根柢也 故曰無極而太極 非太極之外復有無極也(하늘의 일은 소리도 냄새도 없으나 사실은 조화의 중추이고, 온갖 물건의 뿌리이다. 그러므로 ‘무극이면서 태극’이라고 하였으니, 태극 이외에 무극이 더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하여 무극을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며, 방향과 장소도 없고, 형체와 모습도 없는 존재라고 표현한 것이다.

11)

이황(李滉)의 ≪계몽전의(啓蒙傳疑)≫(1557)에서도 소옹이 “坤復之間爲太極也”라 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 밖에 여러 조선 역학서에서 곤괘와 복괘 사이를 무극(태극)이라 설명한 것은 소옹임을 밝히고 있다(이상 조희영, 2018, p. 129 참고).

12)

‘64괘방원도’는 ≪황극경세서≫ 서두에 있는 <찬도지요(纂圖指要)>에 수록되어 있다. <찬도지요>는 채원정(蔡元定, 1135-1198)이 지은 것으로 강절의 핵심을 도설로 요약한 것이다. <찬도지요>에 수록된 도설로는 ‘복희시획팔괘도’, ‘팔괘정위도’, ‘팔괘중위육십사괘도’, ‘육십사괘방원도’, ‘양구음육용수도’, ‘경세역연도’, ‘경세천지사상도’, ‘경세천지시종지수도’, ‘경세육십사괘수도’, ‘경세일원소장지수도’, ‘경세사상체용지수도’, ‘성음창화’ 등이 있다.

13)

무극에서 볼 수 있는 형상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는 ​『성리대전』 권 11에 수록된 ≪황극경세서≫ 5의 <관물외편> 상에서 “無極之前陰含陽也 有象之後陽分陰也(무극 이전에는 음이 양을 품고, 상(象)이 있은 뒤에는 양이 음을 나눈다.)”라고 하여 상이 있은 뒤에 비로소 양이 음을 나누게 되니, 무극에서는 상이 없다는 사실이다시 한 번 확인된다.

14)

이 운도는 그의 후배 채원정(蔡元定)이 간략화하여 ‘십성십이음창화도(十聲十二音唱和圖)’라는 이름으로 『성리대전』 권 8에 수록되어 있고, 이어서 여러 학자들의 주해가 달려 있다.

15)

세종실록 6권, 세종 1년 12월 7일 정축 세 번째 기사: 경녕군 이비와 찬성 정역, 형조 참판 홍여방 등이 북경에서 돌아왔다. 황제가 기린⋅사자⋅복록과 수현사와 보탑 사의 상서로운 그림 5축을 하사하였다.… 어제 서문이 붙은 신수 ≪성리대전≫과 ≪사서대전≫과 ≪오경대전≫ 및 황금 1백 냥, 백금 5백 냥, 색비단⋅채색비단 각 50필, 생명주 5백 필, 말 12필, 양 5백 마리를 하사하여 별나게 총애하였다.(敬寧君裶 贊成鄭易 刑曹參判洪汝方等回自北京 皇帝就賜麒麟 獅子 福祿 隨現寺 寶塔寺祥瑞之圖五軸…特賜御製序新修《性理大全》四書五經大全及黃金一百兩 白金五百兩 色段羅彩絹各五十匹 生絹五百匹 馬十二匹 羊五百頭以寵異之) 출처: 국사편찬 위원회 조선왕조실록(https://sillok.history.go.kr/id/kda_10112007_003)

16)

세종실록 34권, 세종 8년 11월 24일 계축 첫 번째 기사: 진헌사에 첨총제 김시우가 칙서를 받들고 돌아오니…그 칙서에 말하기를, “조선 국왕에게 칙유하노라. 이제 임금에게 사서오경 및 ≪성리대전≫ 1부 도합 1백 20권과 《통감강목》 1부 도합 14권을 내려 주니, 이르거든 받을지어다.”하였다.…처음에 윤봉(尹鳳)이돌아갈 적에 임금이 대전⋅사서오경⋅≪성리대전≫≪송사≫ 등의 서적을 청구하였기 때문에, 시우가 돌아올 적에 황제가 특별히 하사한 것이다.(進獻使僉摠制金時 遇 奉勑而回…其勑曰 勑朝鮮國王 今賜王五經四書及 ≪性理大全≫ 一部共一百二十冊 ≪通鑑網目≫ 一部計十四冊 至可領也…初尹鳳之廻也 上請(大全)四書五經 ≪性理大全≫≪宋史≫等書籍 時遇之還 帝特賜之)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https://sillok.history.go.kr/id/kda_10811024_001)

17)

세종실록 62권, 세종 15년 12월 13일 임술 세 번째 기사: “주본을 보니 자제들을 보내서 북경의 국학이나 혹은 요동의 향학에 나아가 글 읽게 하고자 한다고 하였으니 또한 선을 힘쓰고 도를 구하는 마음을 볼 수 있어서 짐이 매우 가상하게 생각한다. 다만 산천이 멀리 막히고 기후가 같지 아니하여 자제들이 와도 혹은 오래도록 객지에 편안히 있기 어려울 것이며, 혹은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정을 양쪽이 다 이기지 못하게 될 것이 염려된다. 본국 내에서 취학하여 편의하게 하는 것만 같지 못할 것이니, 지금 왕에게 ≪오경사서대전≫ 1책, ≪성리대전≫ 1책, ≪통감강목≫ 2벌을 보내니, 자제 교육에 쓰게 하여 왕은 나의 지성스러운 마음을 본받으라.(覽奏 欲遣子弟 詣北京國學或遼東鄕學讀書 且見務善求道之心 朕甚嘉之 但念山川脩遠 氣候不同 子弟之來 或不能久安客外 或父子思憶之情 兩不能已 不若就本國中務學之便也 今賜王五經四書大全一部 ≪性理大全≫ 一部 ≪通鑑綱目≫ 二部 以爲敎子弟之用 王其體朕至懷)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https://sillok.history.go.kr/id/kda_11512013_001)

18)

세종실록 34권, 세종 8년 12월 8일 정묘 다섯 번째 기사: 검토관 설순이 계하기를 “신이 황제가 주신 ≪성리대전≫을 보건대 그 글이 진서산의 ≪갑집≫을 모방한 것 같으나, 의논이 정통하고 여러 설이 구비되었사오니 진실로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익히 보아야 할 것입니다. 원컨대 이 책을 간행하여 널리 펴서 과거에 오를 연한 선비들로 하여금 습독하게 하여 이학을 연구하게 하실 것이오며, 또 문장을 하는 자들도 반드시 이학에 정통해야만 비로소 능히 크게 통달할 것이옵니다.” (檢討官偰循啓曰 臣見皇帝所賜 ≪性理大全≫, 其文似倣於眞西山 ≪甲集≫ 議論精通 衆說該備 誠學者所當熟玩也 願刊行廣施 使登科年少之儒習讀 硏窮理學 且爲文章者 必精於理學 乃能大達)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https://sillok.history.go.kr/id/kda_10812008_005)

19)

세종실록 39권, 세종 10년 3월 2일 갑신 세 번째 기사: 윤대를 행하고 경연에 나아갔다. 임금이 집현전 응교 김돈에게 이르기를 “≪성리대전서≫가 지금 인쇄되었는지 라, 내가 이를 시독해 보니 의리가 정미하여 궁구하기에 쉽지 않으나 그대는 정상한 사람이니 마음을 써서 한번 읽어 보라.”하니, 김돈이 아뢰기를 “스승에게 배우지 않으면 쉽사리 궁구해 볼 수 없지마는, 신(臣)이 마땅히 마음을 다하겠습니다.”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비록 스승을 얻고자 하나 진실로 얻기가 어렵다.”하였 다.(輪對 御經筵 上謂集賢殿應敎金墩曰 ≪性理大全≫書 今已印之 予試讀之 義理精微 未易究觀 爾精詳人也 可用心觀之 墩曰 非因師授 未易究觀 然臣當盡心 上曰 雖欲得師 固難得也)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https://sillok.history.go.kr/id/kda_11003002_003)

20)

세종실록 40권, 세종 10년 4월 16일 무진 네 번째 기사: 직 집현전 김돈에게 명하여 통역인 대호군 김청⋅판관 이변과 더불어 《성리대전어록》을 두 사신에게 물으니 대답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선생들은 허물하지 마시오. 감히 망령되어 말할 수 없습니다.”하였다.(命直集賢殿金敦 與譯語大護軍金聽 判官李邊 問 《性理大全語錄》 于兩使臣 不能對 乃曰 先生休過 不敢妄說)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https://sillok.history.go.kr/id/kda_11004016_004)

21)

세종실록 55권, 세종 14년 2월 6일 을미 첫 번째 기사: 경연에 나아가서 처음으로 ≪성리대전≫을 강의하였다.(經筵始講性理大全)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 록(https://sillok.history.go.kr/id/kda_11402006_001)세종실록 63권, 세종 16년 3월 5일 임오 첫 번째 기사: 경연에 나아가 ≪성리대전≫의 강독을 마쳤다(經筵畢講性理大全).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https://sillok.history.go.kr/id/kda_11603005_001)

22)

1~2권이 <황극경세>, 3~4권이 <관물내편>, 5~6권이 <관물외편>이며 마지막 7권에는 외서(外書)라는 이름으로 <어초문대>가 수록되어 있다. <관물내편>은 소옹이 직접 저술한 것이며, <관물외편>은 문인들의 기록이라 알려져 있다.

23)

역학 사상은 크게 상수학(象數學)과 의리학(義理學)으로 나뉘는데, 의리학은 ≪주역≫이 갖는 철학적이고 윤리적이며 도학적인 면이 강조된다. 상수학은 상징과 기호를 정확하게 해석하여 ≪주역≫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실증적인 기초를 마련해 준다(이상 김익수, 2003, p. 325 참조).

24)

상형의 원리 또한 철학적 인식 안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입장의 연구를 찾아보면 안명철(2005)김만태(2012)를 주목할 수 있다. 전자는 국어학계 연구로 훈민정음 상형의 본질을 도상적(圖像的) 기호론으로 접근했고, 후자는 철학계 연구로 음양오행론과 삼재론을 바탕으로 자음자와 모음자의 상형 원리를 다루었다. 이들 연구 모두 <제자해>의 서두 내용만을 가지고 이들의 논리적 관계에 대해서는 면밀하게 접근하지는 못했다.

25)

왕식(王植)의 ≪황극경세서해(皇極經世書解)≫에서 “만물을 관찰하는 것은 단지 관찰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반드시 그것을 모두 실현하는 바가 있어야만 하니 이것이 만물을 관찰하는 실제이며 궁극적인 목표이다(蓋觀萬物者 非但觀之而已 必有所以盡之 此觀萬物之實際與其究竟也).”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윤용남외, 2018[2권], p. 410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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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훈민정음』 해례본의 <제자해> 시작 부분

<표 1>

≪황극경세서≫의 문장과 <제자해>의 문장 비교


<표 2>

철학적 사유가 반영된 문장과 전거

철학적 사유가 반영된 문장 전거(典據)
1) 天地之道∘一陰陽五行而已。 ≪주역≫ <계사전>

2) 坤復之間爲太極∘而動靜之後爲陰陽。 소옹의 발언과 ≪태극도설≫

3) 故人之聲音∘皆有陰陽之理∘顧人不察耳。 ≪황극경세서≫

4) 今正音之作∘初非智營而力索〭∘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 ≪황극경세서≫

5) 理旣不二∘則何得不與天地鬼神同其用也。 『성리대전』

[그림 3]

<제자해> 서두의 논리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