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삼한습유』의 주요 대목과 현대적 관점으로 읽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삼한습유』는 작품의 구성, 짜임새 등은 물론이며,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쳐내는 문장력과 논리적 사유 체계는 현대의 시각과 관점으로도 높게 평가된다. 전공, 비전공을 망라하여 『삼한습유』와 작가 김소행을 재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본고는 이 장에서 『삼한습유』의 주요 대목 가운데 현대적 관점으로 논의가 가능한 부분을 소개하고 이를 고전문학 교육에서 활용할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본고가 소개할 대목은 향랑의 부(父)가 향랑의 결혼 상대자를 선택하면서 딸과 향랑 모(母)에게 의견을 묻는 대목이다. 이때 향랑 모와 향랑은 서로 다른 대답을 하면서 논쟁이 시작된다. 향랑 모와 향랑의 답변을 통해 19세기 당시 결혼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이들의 결혼관이 현대적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의 일이야 가장이 맡는 것, 지아비가 계신데 아녀자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천하의 악은 가난보다 심한 것은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소진(蘇秦)은 그의 아내에게서 예로 대우받지 못했고, 주매신(朱賣臣)은 아내에게 버림받았습니다. 태공(太空) 같은 성인도 가난을 참지 못하고 떠나는 아내에게 부끄러웠고, 열자(列子) 같은 성인도 아내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노래자(老萊子)의 처는 땔나무를 해서 겨우 입에 풀칠했고, 한유(韓愈)의 처는 배고프다 울었습니다. 가장 나쁜 것이 여섯 가지인데 가난이 그 중 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런 까닭에 자로(子路)가 슬프다고 탄식하였고, 태사공은 오래도록 가난한데도 인의를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부끄럽게 여길만하다고 하였습니다.
동쪽 집의 자제가 비록 올바르게 산다고 하지만 옛사람의 말에 ‘가난하면 예를 차릴 수가 없으니, 예는 재물이 있는 데서 생기고 재물이 없으면 폐하여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가 없어지면 제수를 마련하지 못하여 제사도 받들지 못하고, 제기를 갖추지 못한 맛있는 음식도 올리지 못합니다. 대저 산 사람을 봉양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에게 예를 갖추지 못한다면 비록 효성스러운 자식, 사랑받는 손자라도 자기 마음을 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처자식을 버리고 이웃과의 교유도 끊어지게 될 지경에 이르면 예의를 좋아하지 않게 되는데 오랑캐는 더욱 심합니다. 그렇게 되면 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울릴 수 없게 됩니다.
서쪽 집의 자제는 비록 드러난 행실이 없으나 사람이 성품이란 그렇게 많이 차이가 나지는 않습니다. 저 사람이 이 사람보다 조금 나은 것에 불과하지요. 대저 부자의 경우 사람들이 이를 원망하여 악을 드러내지만, 그 역시 다른 사람과 비슷할 뿐이지요. 그러므로 ‘부자가 되면 어질지 못하다’고 양화(陽貨)가 말했지만 부유하면서도 베풀기를 좋아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범려(范蠡)는 천금을 세 번이나 벌 정도로 부유했지만 어짊을 잃지 않고 친척들을 구휼했으며, 만석군의 집은 말을 앞세우지 않고 몸소 행하여 그 시대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이승수, 서신혜, 2003, pp. 16-18).
향랑은 어려서부터 총명했는데, 장성하면서 미모가 점점 뛰어나게 아름다워지고, 문사(文辭)에도 솜씨를 드러내어 인근에 향랑의 소문이 자자하였다. 성년이 되기도 전에 혼인을 청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에 두 사람이 매파를 보내 혼인을 청했는데 한쪽은 가난하지만, 행실이 바른 사람이었고, 다른 쪽은 부유하지만,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향랑의 아버지는 딸을 시집보내기 전에 이를 아내와 의논하고 이때 향랑의 어머니는 부유한 사람에게 시집가기를 원한다고 답변한다. 위의 대목은 향랑의 어머니가 향랑이 왜 부유한 집에 시집을 가야하는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부분이다. 기실 향랑 모의 답변은 『사기』, 「화식열전(貨殖列傳)」의 내용과 거의 흡사한데, 이는 김소행이 「화식열전』의 내용을 인용하여 자신이 생각을 피력했다고 판단된다.
먼저, 향랑의 아버지가 던진 결혼 대상자의 조건으로 향랑 모의 답변은 ‘부유함’ 즉 경제력을 갖춘 남성이 향랑의 배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향랑 모의 답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혼 생활이 경제력과 밀접하다는 것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소진, 주매신, 태공이 가난 때문에 아내에게 버림받았던 사례, 열자나 한유와 같은 성인도 가난 때문에 아내를 힘들게 했던 예시는 경제력이 없는 남성과 결혼할 경우, 여성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또한 ‘예는 재물이 있는 데서 나오고 재물이 없어지면 폐한다’고 하는 『사기』의 말은 가난하지만, 현명하다는 동쪽 집 남성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낸다. 반대로 양화의 말을 인용하면서 ‘부유하면서도 베풀기를 좋아한다면 그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느냐’며 부유한 동쪽 집 자제를 긍정한다. 이로써 향랑 모는 ‘천하에 가난보다 심한 악은 없다’는 자신의 견해를 토대로 딸 향랑이 부유한 동쪽 집 남성에게 시집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인의 이야기를 들은 향랑의 아버지는 향랑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는데, 이때 향랑은 ‘총명함이 부유함보다 낫다’고 답한다. 향랑은 아버지의 질문에 돈보다는 남편의 총명함, 지혜로움에서 그 답을 찾으면서 향랑 모와는 상반된 견해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향랑이 결혼 상대자의 조건으로 돈보다 총명함과 지혜를 우선으로 꼽은 이유는 무엇일까?
총명함이 부유함보다 낫습니다.
…중략…
저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입어 조금이나마 경사(經史)에 통하고 거칠게나마 대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여인은 남을 따라야 하는데, 출가 전에는 아비를 따르고 출가해서는 지아비를 따릅니다. 아버지께서 물으시니 어찌 감히 한때의 부끄러움으로 제 한 몸의 큰 계획을 그르치겠습니까. 대저 부부가 있는 후에야 부자가 있으니, 부부란 온갖 조화의 근원이요 백성을 낳는 시초입니다. 그런 까닭에 하늘의 도는 남자가 되고 땅의 도는 여자가 됩니다. 남자가 보호하고 기르며 여자는 그 뜻을 받들어서 가도(家道)가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주역』에서도 ‘항(恒)’을 말하였습니다. ‘항’은 넓고 두텁고 오래가서 처음과 끝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질거나 그렇지 못함은 빈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덕혜(德惠)는 밥상을 이마 높이로 하며 남편 앞에 올렸고, 소군(少君)은 항아리를 들고 나가 물을 길었습니다. 세상에서 일컫기를, 배필이 어질기를 구할 뿐 가난함을 근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혼인을 위하여 부부가 즐겁게 사는 것은 스스로 마음먹기에 달려있을 뿐입니다. 진실로 절행이 없으면서 길러줌을 받으며 다만 끝까지 자기 몸을 보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남도 천히 여길 것입니다. 지아비가 재주 없는 것은 곧 여자의 불행임을 『종풍(終風)』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승수, 서신혜, 2003, pp. 19-20).
향랑은 모친과 다르게 배우자의 조건으로 ‘총명함’을 꼽았다. 향랑은 ‘배우자가 어질다면 가난을 근심하지 않는다’는 세상의 말을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피력한다. 부부가 결혼하여 즐거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마음먹기’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까닭에 향랑은 배우자의 총명함을 결혼의 첫째 조건으로 내세운다. 총명하고 어질어야 마음먹은 것을 실천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향랑은 부자가 되는 일은 부부가 먼저 존재해야 실현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부부가 집안의 기초이며 근원이기에 부부가 바로 서야 부자도 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부부에 대한 향랑의 생각은 부부의 역할로 구체화 되면서 가도(家道)로 이어진다. 부부 가운데 남편은 하늘을, 아내는 땅의 역할을 함으로써 각자가 맡은 도리를 다할 때 가도(家道)가 형성되며, 그 중심에 남편이 존재해야 함을 강조한다. 여기서 향랑의 생각을 유추할 수 있다. 남편이 집안을 이끌어가는 중심이기 때문에 총명하고 어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향랑은 『주역』의 항(恒)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논지를 강화한다. ‘항’이란 늘 그대로, 같은 성질을 유지하는 항상성을 의미한다. 외부적 현실이 변한다고 하더라도 그 고유성을 잃지 않고 본래성을 지키는 것이 바로 ‘항’인 것이다. 향랑은 어질고 총명한 남편을 만나 결혼한다면 삶이 비록 고되고 힘들더라도 외부적 요건에 흔들리지 않는 ‘항’의 마음을 잘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실 빈부(貧富)라는 형식적 조건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항’의 마음을 갖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항의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향랑은 이를 간파하고 외부적 조건인 부유함보다는 ‘항’을 유지할 수 있는 내적 조건 즉, 총명함을 결혼 대상자의 중요한 조건으로 꼽았다고 할 수 있다.
결혼에 대한 향랑 모와 향랑의 답변은 19세기의 결혼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은 지금 결혼에 대한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향랑 모의 답변은 현재 결혼 조건으로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경제력, 자본 문제를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19세기나 지금이나 결혼 생활에서 ‘돈’의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화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결혼을 약속하기 전까지 남남이었던 남녀가 만나서 하나의 온전한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형성하기까지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제 문제들이 있을 터인데, 그것이 과연 ‘돈’이면 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인가이다. 만약 결혼이 ‘돈’으로 해결된다면 이혼하는 부부들이 많이 언급해 왔던 ‘성격 차이’는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이런 문제에 직면했을 때 향랑이 언급한 배우자의 총명함과 어짊은 결혼의 중요한 가치를 제시해 준다. 향랑과 향랑 모의 대화는 현재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결혼과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문제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향랑과 향랑 모의 결혼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은 작금의 결혼 문제를 재고할 수 있는 의미있는 대목이다. 특히 현대적 관점에서 고민해 봐야 할 문제는 ‘결혼이란 무엇인가?’, ‘부부는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 등이다. 사회의 가장 기본이 되는 공동체, 가족은 결혼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현재 청년들이 결혼을 미루거나 결혼을 포기하면서 혼자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문제들이 존재한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이 태어나면서 하나의 가족이 형성되고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인류가 지구상에 생긴 이래 오랜 시간 지속되어 왔다. 그런데 현재 가족은 변화하고 있다. 준 카르본, 나오미 칸(2016)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결혼 연령은 갈수록 높아지고, 결혼율은 갈수록 낮아지며, 결혼한 부부의 이혼율은 급등하고 있다. 점점 많은 주(州)가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고 있다. 한 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비율도 최고점을 찍었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에만 해당할까?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대한민국 청년들을 지칭하는 말로 ‘3포세대(三抛世代)’ 혹은 ‘5포세대(五抛世代)’라는 말이 있다.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을 이르는 신조어이다. 현재 젊은이들은 취업이 어려운 현실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연애는 물론 결혼을 사치라 여기는 것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준비하는 데 드는 평균 비용은 약 2억 원에서 3억 원 사이로, 평균 결혼 비용은 약 2억 635만 원이다.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이 신혼집 마련, 전체 결혼 비용의 약 79%를 차지한다(대한민국 금융소비자보고서, 2025), 현실이 이러하니 많은 청년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출산 후 육아 문제 역시 결혼을 포기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결국 대부분의 젊은 청년들이 쉽게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경제력, 즉 ‘돈’이라는 자본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으로 결혼을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데 경제력은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임이 분명하다. 결혼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력이 갖추어졌다고 하다고 결혼이 성사될 수 있는 것인가? 가족을 경제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향랑의 답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부부가 결혼한 후 즐겁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각자 역할에 충실해야 하고, 빈부와 같은 외부적 요인에 흔들리지 않는 ‘항(恒)’의 자세, 마음가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은 고전문학교육에서 고전문학 텍스트를 현대적 관점으로 어떻게 읽고 활용할지 『삼한습유』라는 새로운 텍스트를 선정하여 하나의 사례로 제안해 본 것이다. 위에서 제시한 내용 외에도 『삼한습유』에는 현대적 관점에서 논의해 볼 수 있는 다양한 거리를 담고 있다. 향랑이 효렴과 만나 귀(鬼)에 대해 논쟁하는 대목이나 향랑의 환생과 개가를 둘러싸고 벌이는 천상 논쟁 장면, 열녀가 개가할 수 있는가 문제, 천자와 마왕 전투의 장면에서 드러난 심성론 등은 현대적 시각으로 다루어도 매우 가치가 있고, 유의미한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전문학이 인과응보에 따른 뻔한 결말로 귀결되는 따분한 이야기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정확하게 읽어야 고전문학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을 읽을 것인가?’라는 물음에 선제적으로 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고전문학이 더 이상 고전문학 전공자만의 영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전문학에 대한 선입견과 거리감을 두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고전의 의미와 필요성을 깨닫게 해주고, 현대와의 연계성을 파악하는 작업이 이제는 필요하다. 기실 『삼한습유』는 비전공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텍스트는 아니다. 하지만 한정된 범위를 설정하고 이에 대한 내용을 먼저 이해시킨 후에 오늘날의 상황과 연결하는 방법을 활용한다면, 고전문학은 현대 중요한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임이 분명하다(
최윤정, 2012).
3.2. 『삼한습유』 주요 대목 활용 방안
『삼한습유』는 19세기 활동했던 대표적 문인 김소행이 창작한 글이다. 『삼한습유』와 「지작기』는 당대 문인의 선진적 사유를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이 매우 논증적이고, 치밀하다.
5) 또한 『삼한습유』의 주제, 작가의 문제의식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으로 19세기라는 시대에 갇혀 있지 않고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화두이다. 따라서 『삼한습유』는 전공과 교양을 모두 아우르는 텍스트로 활용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럼, 『삼한습유』의 향랑과 향랑 모의 결혼관에 대한 논쟁을 고전문학교육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제안해 보겠다.
고전은 보통 보다 쉬운 소설을 가르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가르칠 수 없다. 청소년 소설과 공상 과학 소설, 그리고 다인종 소설들은 종종 학생들의 필요성, 흥미 그리고 능력 등을 고려해서 활용해야 하지만 고전문학은 작품 그 자체로 교육적 가치가 높다. 다른 소설들이 현실 도피, 독서 요법, 오락, 사회 문제, 흥미 등 다양한 이유를 찾아서 읽는다면, 고전은 미학적 이유 하나만으로도 읽을 수 있다. 다만, 고전을 읽을 때는 그것들을 집중해서 정확하게 읽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레이먼드, J.로저스 외, 2001). 따라서 고전문학을 읽을 때는 텍스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중요하다.
글쓰기와 토론은 텍스트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이 장에서 제시하는 토론하기와 논증적 글쓰기는 텍스트에 대한 분석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분석은 텍스트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텍스트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의 문제의식과 이를 토대로 얻어진 저자의 생각 즉 주장을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또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구체적인 사례와 이유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근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문제의식과 주장, 근거, 핵심어를 찾아낼 수 있을 때 텍스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완료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6)
그런데 고전문학을 교육할 때 작품 자체에 대한 해석과 이해에 집중하다 보면, 그것의 교육적 의미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특히 학생들의 삶과 고전문학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놓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점에 착안하여 본고는 『삼한습유』라는 고전을 수업 자료로 활용할 때 이것이 학생들의 삶에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현대적 관점에서 논의될 만한 내용을 중심으로 수업을 구성하고자 하였다. 이는 『삼한습유』라는 작품이 한문장편소설이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전체 텍스트를 다루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작품의 구성이 특정 대목을 뽑아서 논의를 진행해도 작품 이해에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 수업에서 고전문학을 활용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글쓰기와 토론, 매체를 활용한 발표 등이 있다. 글쓰기에는 창조적인 글쓰기와 감상문 쓰기, 논증적 글쓰기, 비평적 글쓰기 등이 있는데, 이 중 본고가 주목하는 방법은 글쓰기와 토론이다. 텍스트 해석과 글쓰기 활동은 인문학 연구의 기초가 되는 과정이며, 이해한 내용을 완결된 글로 제시하는 것은 글쓰기 과목의 주요한 정체성이다(
황인순⋅김보현, 2017). 또한 사고를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학문의 정수이기도 하다. 토론은 타자와 대화를 통해 사회적 합일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이에 본고는 토론을 통해 학생들이 저마다의 생각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이를 토대로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기술할 수 있는 글쓰기의 과정을 고전문학교육에 배치하도록 수업을 구성하였다. 특히 앞서 제시한 향랑과 부모의 결혼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대한 텍스트를 제시하고, 이를 분석하여 읽은 후 결혼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개진하는 토론 활동과 이후 이를 정리하는 글쓰기 과정을 수업 사례로 제시하고자 한다.
토론의 경우에는 주로 조별 활동을 활용한다. 교양 교과목의 경우에는 문학적 텍스트, 특히 고전문학 텍스트 읽기 자체를 생소해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먼저, 학생 각자가 향랑과 향랑 모의 결혼관 부분을 분석하여 읽어 보고, 분석이 완료되었다고 판단되면, 학생들은 조별로 결혼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어 본다. 이때 학생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거나 발견하지 못한 내용을 정확하게 알게 된다. 또한 다른 친구들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해석의 다양성에 대해 인지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읽기의 방향을 구체화할 수 있다(
황인순⋅김보현, 2017:39).
다만, 조별로 이루어지는 토의와 토론이 지나치게 막연할 수 있고, 논지에서 벗어난 토론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교수자는 토론과 토의를 위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 주는 것이 좋다. 교수자는 향랑과 향랑 모의 결혼관을 정확하게 이해하였는지 확인하고, 학생들이 두 사람의 의견 중 어느 쪽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지 판단하게 한다. 조별 활동을 진행할 때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인지하기 위해서 교수자는 향랑 모가 주장한 현실적 조건인 부유함과 향랑이 주장한 내적 조건인 초명함과 지혜로움 중 어느 것이 중요한 가치인지 학생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도록 한다.
토론 후 의견이 정리되면, 지금까지 나누었던 생각들을 종합하여 한 편의 완결된 글을 써보도록 한다. 글쓰기는 토론의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결혼관과 배우자의 조건 등을 논지가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작성해 본다. 『삼한습유』를 고전문학교육의 텍스트로 선정한 만큼 글쓰기에서 저자 김소행의 글쓰기 방법을 참조하면 좋다.
구체적으로 『삼한습유』를 활용한 글쓰기는 김소행의 글쓰기를 모델로 학생들의 글쓰기에 형식적인 방법을 활용해 보는 방법과 『삼한습유』의 주요 대목을 뽑아서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작성해 보는 방법이 있다. 혹은 두 가지 방법을 모두 활용해도 좋다. 이러한 방법은 대학생에게 필요한 글쓰기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되, 다양한 논거를 활용하여 설득력을 갖추는 논증적 글쓰기에 해당한다. 논증적 글쓰기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글쓰기라고 할 수 있는데, 주장은 새롭되〔창신(創新)〕,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는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타당한 내용〔법고(法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소행의 글쓰기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삼한습유』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김소행의 논증적인 글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내용 중에는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이 논쟁을 벌이는 장면들이 다수 등장한다. 주목할 부분은 논쟁의 내용 중에 철학, 과학, 종교, 역사 등 방대한 지식이 거론되어 논지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김소행이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기 위해 전고를 활용함으로써 논지를 강화하는 글쓰기 방법을 활용한 것인데, 이것이 법고(法古)에 해당한다.
법고가 탄탄해야 주장(견해)이 힘을 얻을 수 있다. 김소행은 자신의 견해를 강화하기 위해 구체적인 이름이나 문헌 내용을 나열하는 단순한 방법도 활용하였는데, 상당한 분량의 지식을 나열할 경우 독자를 압도하는 힘을 갖는다(
서신혜, 2003). 또한 『사기』, 『삼국유사』 등 문헌에 소개된 소재를 가져와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문헌의 내용을 비틀어 소설에 활용하는 방법도 보여주었는데, 이 역시 법고를 활용한 글쓰기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김소행은 법고를 전제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였다. 향랑과 향랑 모의 견해차가 드러난 대목에서도 향랑은 『주역』의 ‘항’ 개념, 덕혜와 소군의 사례, 『시경』의 종풍 등 법고를 토대로 결혼 대상자의 총명함과 지혜로움이 결혼의 조건이라고 내세울 수 있었다. 여기서 향랑이 내세운 주장, 남편의 총명함과 지혜로움이 바로 창신이라고 할 수 있다.
향랑이 환생하기 전 효렴을 만나는 대목 역시 김소행의 ‘법고창신’의 글쓰기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효렴은 향랑이 죽은 후 조문을 짓는데 이때 향랑이 효렴을 찾아온다. 효렴은 죽은 향랑이 자신을 찾아오자 어떤 몸으로 찾아온 것인지 궁금해한다. 향랑은 ‘귀란 형제가 없는 것으로, 언뜻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모호한 말로 답을 한다. 그런데 이야기가 계속되자 향랑은 장자방(張子房)의 고사, 『논어(論語)』의 구절 등 다양한 전거를 인용하면서 ‘사람들이 스스로 살피지 못하는 것은 귀가 있기 때문’이라고 귀의 존재를 긍정한다. 여기서 김소행은 귀신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기 위해 향랑의 입을 빌어 다양한 전고를 제시함으로써 논지를 강화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이는 앞서 살펴본 법고를 토대로 창신을 드러낸 글쓰기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창조적인 글을 쓰기 위한 전제는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열린 사고로 대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이 옳은 것이라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나’의 생각이 어떻게 구성된 것인지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나(주체)’의 위치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자동화된 관념에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것이다(
최윤정, 2012:337). 이런 측면에서 『삼한습유』는 김소행의 문제의식, 사회적 시선과 굴레에서 벗어나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구성된 것인지 냉철하게 판단함으로써 이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생성되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검증의 절차를 철저히 거친 논증적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주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김소행의 ‘법고창신’의 글쓰기 전략은 논증적 글쓰기의 한 모델로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