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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General Edu > Volume 18(6); 2024 > Article
문명전환의 시대와 글로벌 민주주의의 위기 -그 의미와 세계시민교육에 주는 시사점

Abstract

이 논문은 문명전환의 시대와 글로벌 민주주의의 위기가 어떤 의미인지, 또 그것이 세계시민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향후 ‘논의의 방향성’ 설정의 차원에서 살펴본다. 이때 문명전환의 시대는 문명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인 주체, 가치, 체제의 재구성을 요구하나, 글로벌 민주주의의 위기는 문명 전환의 실천인 정치와 그 주체인 시민의 죽음을 가져왔음을 논한다. 이에 따라 향후 세계시민교육은 가치중립적이고 정치성을 배제하는 교육모델의 정립과 기법의 개발에 치중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때 위기 인식을 공유하는 주체로서 세계시민교육 수행자들을 조명하고, 이들의 ‘변혁적 교육 실천론’에 대한 탐구에 기초한 교육 비전과 전략을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what the era of civilizational transformation and the crisis of global democracy mean, and what it means for global citizenship education, from the perspective of setting the ‘direction of discussion’ in the future. At this time, it is argued that the era of civilizational transformation requires the reconstruction of the subject, value, and system, which are the core elements that constitute civilization, but the crisis of global democracy brought abouth the death of politics, which is the practice of civilization transformation, and the citizens who are its subjects. Accordingly, it is argued that future global citizenship education should go beyond focusing on the establishment of educational models and development of techniques that are value-neutral and exclude politics. And at this time, this paper propose to shed light on global citizenship education practitioners as subjects who share awareness of the crisis and seek educational visions and strategies based on exploration of their ‘transformative educational practice theory’.

1. 문명과 민주주의를 함께 문제 삼는 이유

문명과 민주주의를 함께 문제 삼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명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며, 민주주의는 근⋅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정치의 지배적 형태이지만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또 이익과 이념과 제도 등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는 문명전환의 시대와 같은 대변동기에는 정치의 중요성이 한층 더 강화되기 때문이다. 특히 강자와 약자 간의 힘의 불균형을 전제로 한 현실 세계에서 민주주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해야 인권과 복지와 같은 인류문명의 보편적 가치가 전환의 과정과 이후의 시대에도 지켜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미래의 민주주의와 이를 위한 대학의 세계시민교육을 논하기 위해서는 문명 세계와 민주주의의 현실에 대한 이해와 파악을 필요로 한다.
문명은 단지 (특히 물질적으로) 발전된 상태 그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문명은 사전적 정의로 사회생활의 조직이 완성된 상태나 상황을 가리키는 바, 문명은 이를 가능케 하고 특정한 방식으로 주조한 가치체계와 주체 그리고 공동체 질서의 작동에 있어 특정한 방식의 지배양식(지배 이데올로기-계급-체제)을 낳고, 그것에 기초해 작동한다. 따라서 문명 전환을 논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지배양식이 구성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민주주의는 문명이 낳은 지배양식(demos+kratos) 중 하나이다. 특히 근⋅현대 문명이 전 근대적 문명에서의 전환을 거쳐 다시 창출한 (보편적 지위에 오르고자 ‘했던’ 혹은 여전히 오르고자 ‘하는’. 그러나 작금의 시대에 와서는 위기에 처했다고 여겨지는) 지배양식이다. 즉, 민주주의는 문명의 주요 현상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문명의 차원과 수준에서 논해져야 한다.
하지만 문명과 민주주의는 각기 전환기와 위기라는 진단이 내려져 있으면서도 함께 논의되고 있지 않다. 문명전환론과 민주주의 위기론은 각기 긴급함과 절박함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이고 거시적인 시야와 시선의 확보로 이어지고 있지 않다.
문명전환론의 주종은 고령화-인공생명-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지속적 심화와 갈등의 고조-기후위기-4차산업혁명(인공지능혁명)-우주개척의 본격화 등 인간과 사회와 자연 생태계에 걸친 ‘환경의 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차지하고 있다(심광현, 2019). 하지만 문명의 전환을 위해서는 지배양식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크게 부각되고 있지 않다. 그저 근⋅현대 문명의 지배양식에 근거해 변화에 대한 주체들의 적응 능력만을 문제 삼고 있다. 전환을 논하면서도 기존 체제의 유지 및 재생산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즉, 과연 그런 시각과 접근이 바람직하고 가능한지 그리고 진짜 문명의 전환을 이룰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미약하다.
민주주의 위기론 역시 마찬가지다. 대체로 정치를 선거게임으로 한정한 현실 특정 정치세력들의 반지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행태에 초점이 맞춰져 논의되고 있다. 주로 ‘정치엘리트들이 어떻게 경쟁하는가’라는 형식과 외양적 태도 문제에 주로 초점을 맞춰 민주주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문명전환의 시대라는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다시 조망하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지 않다.
이는 문명 전환의 향방을 두고 이익과 이념과 제도 등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갈등이 고조되고 심화될 것임을 고려할 때, 또 누가 문명전환의 향방을 결정하는 데 주도력과 영향력을 어떻게 발휘할 수 있을지가, 특히 ‘민(民)’이 그런 위상과 역할을 차지하고 수행할 수 있는 기회와 역량을 보유하고 발휘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관련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기존의 제도 정치와 주체를 인정하면서 대안 이념과 전환 전략을 담지한 주체의 형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여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전환을 요구받는 현실 세계의 힘의 관계를 다시 재생산할 수밖에 없고, 결국 전환 아닌 전환 혹은 파멸로의 전환에 불과한 것으로 귀착될 우려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여 본 논문에서는 문명 전환과 글로벌 민주주의 위기의 의미를 문명과 민주주의의 큰 역사적 흐름과 그것이 반영되어있는 어원적 개념, 그리고 그것에 비추어 본 현실 세계의 양상에 관한 담론 현황에 우선 초점을 맞춰 논의코자 한다. 그리고 이것이 대학에서의 세계시민교육에 주는 시사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2. 문명전환 시대의 의미: 정치의 복원에 대한 요구

문명전환 시대는 정치의 복원을 요구한다. 문명 자체의 속성, 특히 그것을 이루는 구성 요소의 측면에서 볼 때 그러하다. 또 정치의 본래적 성격에 비추어 볼 때도 그렇다. 전환의 실천적 경로와 방식의 비결정성과 미지성(未知性) 때문이기도 하다.
문명(civilization)은 시민이라는 주체에 의해 안과 밖의 경계가 확정된 자기완결적 공동체, 또 그것을 유지 재생산하는 특정한 질서를 의미한다. civilization이라는 말의 어원과 전형 그리고 역사적 용례에 이미 시민(civil:시민의, 시민에 의한~)과 그들이 주도해 만든 특정한 문화적 규범을 갖춘 공동체(civility=community)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문명적 질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고 유지된다. 또 특정한 물질적(지리적)-비물질적(문화) 공간을 창출한다. 협소한 공간에 한정되어있지도 않다. 세계라는 공간을 형성한다. 지역과 지역이 연결되어지고 문화를 공유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이 과정은 전쟁과 정복 등 폭력적 행태를 동반한다. 전쟁과 정복은 문명사에서 예외적이지 않다. 예외적인 것은 오히려 평화와 평등이다. 혁명도 예외적이다. 그래서 문명은 단지 밝음과 화려함, 진화와 성장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고대, 중세는 말할 것도 없고, 앞선 시대를 다 합친 것보다도 비약적이고 눈부신 성장을 이루고 자유와 평화와 평등을 중시하는 질서, 즉 민주공화적 헌정체제로 이해되는 근⋅현대 역시 마찬가지다. 탈현대 혹은 초현대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전환 시대 역시 그렇다.
전환(trans+formation/transformation)이란 무엇인가?1) 변화(change), 이행(transition), 개혁(reform), 리셋(reset), 혁명(revolution) 등이라고 하지 않고 전환이라고 명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환이라는 규정은 그 무엇도 확정된 게 없음을 의미한다. 확정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전환은 ‘진행 중인(역동적인) 변화=이행=과도기’ 특성을 지니지만, 그것이 계속 진행형일지 아닐지도 모른다. 또 개혁과 리셋 혁명의 요소를 지니기도 하지만, 그 반대의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의미 구성이 완료된 혹은 그 확장과 축소가 봉쇄된 개념으로 다루면 안된다. 전환은 경계 간의 횡단성, 관통성, 초월성을 지니는 구성적 변동이다. 그것을 통해 ‘새로운 새로움’이나 ‘낡은 새로움’ 혹은 ‘새로운 낡음’이나 ‘낡은 낡음’ 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는 틀과 형태와 구조, 즉 세계와 삶의 질서를 새로이, 다르게 세우는 변동이다.
전환은 위기(crisis)를 전제로 하거나 내장하고 있기도 하다. 생과 사, 위험과 기회의 두 측면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극화된 팽창의 소멸점 혹은 새로운 팽창의 기원이 될 갈등의 폭발(팽창) 혹은 해소(소멸)가 일어날 결절점을 만들어내고 내장한다. 즉, ‘특이점(singularity)’이 형성된다. 하나의 거대 순환이 종료되거나 시작되는 기원이 만들어져 간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이러저러한 연관-연계-연결되는 사건들을 구성 요소와 재료로 삼는다.
전환의 시대에는 기성 문명(우리가 문제 삼는 문명은 근⋅현대 문명)의 질서를 구축한 주요 관점과 개념들의 관계 구조, 특히 이분법적 대당구조가 흔들리지만, 대당구조 자체의 흔들림일지, 아니면 새로운 대당구조의 등장을 위한 흔들림일지 예측이 어렵다. 주체 vs 객체, 인간 vs 반(反)인간(기계-동물), 지구인 vs 외계인, 진실(사실) vs 허구(거짓), 과학 vs 비과학, 실제 vs 가상 등등의 구분이 흐릿해지고 모호해진다.
여기서 문명의 의미를 다시 짚을 필요가 있다. transformation(전환)이란 표현은 이미 문명 차원과 수준의 변동을 전제로 하고 있다. 또 전환이라는 말의 의미를 세계와 삶의 질서와 연관시켜 정의할 때, 이미 문명과 연결되어진다. 세계와 삶의 질서가 곧 문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문명의 전환을 ‘시대’라고 규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문명은 오랜 그리고 넓은 시⋅공간적 지평 속에서 만들어진다. 바로 이것이 ‘시대’라고 규정한 이유다. 시대는 ‘자르다’와 ‘잘라냄’(그리스어 템노temno, tome)의 의미를 지니는 시간time을 그 개념 속에 포함한다. 그런데, 시대는 시간의 ‘흐름’(시간을 뜻하는 그리스어 chronos에 담겨져 있듯이) 속에 다다른 혹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는, 그래서 또다시 도달할 미지의 시간대(가령 우주의 시대)를 포함하기도 한다. 그래서 시대는 그 안에 이미 여러 시간을 내장하고 있다. 동태성과 역동성을 지닌 전환의 개념에 어울리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문명전환과 관련한 현상과 그 담론들은 4차산업혁명(인공지능혁명), 기후위기, 우주개척 등등이다. 문명전환 시대 이전의 문명충돌과 세계화 담론의 시대 이후 지속되어 온 국지전, 테러, 이주-난민 등의 문제도 있다. 이주-난민 문제는 민주주의 정치의 위기와 관련해 거론되는 ‘극우 포퓰리즘’의 배경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 현상과 사건 하나하나를 분리시켜 볼 때는 ‘문명’의 수준과 차원의 특징을 포착할 수 없다. 저런 현상들이 어떻게 문명전환의 시대로 묶여 질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즉, 개별 현상과 사건을 엮어서 볼 관점과 틀이 필요하다. 이때 문명의 핵심 요소를 추출하고, 그것을 조망의 틀로 삼을 수 있다.
문명 전개의 역사적 흔적인 어원적 의미를 살피면서 이미 언급한 바에 기초해 볼 때, 문명을 이루는 요소는 크게 주체와 문화적 규범과 공동체적 질서로 구성된다([그림 1] 참조). 누가 어떤 가치의 지향 속에서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체제를 만들어냈고 지속시켰느냐가 바로 문명을 이루는 핵심인 것이다. 가령 앞서 우리가 문제 삼는 문명은 근⋅현대 문명이라고 했다. 그럼, 근⋅현대 문명의 특징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근⋅현대 문명의 주체는 누구이며, 또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이고, 그것을 담보하는 체제-질서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 1]
문명(재)구성의 요소와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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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바로 이러한 물음들에 (전환)시대에 조응하는 특정한 방식으로 답함으로써 문명을 파괴하거나 건설하는 ‘총체적 실천 혹은 실천의 총체’이다. 문명전환 시대의 의미가 정치의 복원에 대한 요구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명의 건설과 파괴의 실천이라는 정치의 속성은 문명의 개념 정의(civilization) 그 자체에서 비롯한다. 아니, 정치의 기원과 본질 그 자체가 그렇다. 정치(politics)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polis에서 유래했다. polis는 ‘도시’ 혹은 ‘국가’라고 불릴 수 있는 자기완결적 시민공동체다. 정치는 이를 참정권을 보유한 시민 ‘계급’ 주도로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공적 실천이다. 이는 그리스에 이어 로마에 들어서는 공화제적 질서(공화국republic)를 만들어내고 유지⋅재생산하는 실천을 의미하는 res publica(공적인 것과 실천)로 이어진다. 즉, 정치는 기본적으로 문명질서를 유지 재생산하는 실천인 것이다. (기존) 문명질서의 파괴를 가져오기도 한다. 자기완결성을 갖추기 위해 전쟁과 정복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기도 하는 바, 이는 문명질서의 확장이나 새로운 문명의 등장 혹은 축소나 지체로 이어진다.
근⋅현대 문명의 형성 과정을 보자. 근⋅현대 문명은 전근대 문명을 파괴하는 일련의 ‘혁명’ 과정을 통해 건설되어졌다. 과학혁명(우주관과 세계관의 혁명)-의식혁명(계몽주의)-경제혁명(자본주의)-정치혁명(민주주의 혁명)2)이 바로 그것이다. 이 과정에서 근⋅현대 문명의 주체-가치-질서가 발현 혹은 구현된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시)민(民)-자유와 평등-민주주의(자본주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일련의 혁명이 정치혁명으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귀결의 의미는 혁명 주체의 의도성이나 사건발생의 순서가 아니라, 결국 혁명을 통한 낡은 질서의 파괴와 새로운 질서의 수립과 유지와 재생산을 위해서는 특정한 지배체제와 통치형태를 필요로 하고, 그것을 정당화하고 체제통합성을 높일 과학혁명-의식혁명-경제혁명의 소산을 재료와 자원으로 삼은 이념과 가치를 필요로 했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 필요성을 충족시키는 실천이 그 모든 혁명의 소산들을 근⋅현대 문명과 민주주의(민주정)3)이라는 특유의 질서로 총체화하는 정치였음을 알려준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왜 정치의 복원인가? 문명 파괴와 건설의 총체적 실천으로서의 성격을 상실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파괴되어질 기존 문명에 대항하는 새로이 세워내야 할 문명의 가치-주체-질서에 관해 전환의 시대가 요청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를 기성 거대 정치세력들 간의 선거게임으로 한정해놓고, 탈이념이라는 미명 하에 대안적 가치와 규범과 체제, 즉 미래 비전과 전략을 구성하는 역량을 상실했으며4), (시)민(民)과 (세계-시민)사회와 괴리된 정치계급이 기업엘리트와 결합해 정치를 사적으로 영토화하고 있다.5) 그것의 결과가 바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지속적 심화와 사회구조적 갈등이 아닌 편견의 동원에 기초해 적대적 감정 대립을 조장하는6) 정치양극화를 동반한 ‘민주주의의 위기’다.

3. 글로벌 민주주의 위기의 의미: 정치와 시민의 죽음

글로벌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7)는 ‘정치의 죽음’을 의미한다. 또 정치의 주체(주권자)인 ‘시민의 죽음’을 의미한다. 죽음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단지 극적 효과를 누리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문명적 실천으로서의 정치에 미치지 못하는 정치, 즉 기성 문명 질서 안에서의 정치의 역할과 기능(사회갈등의 체제 내화)마저도 상실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본래 매우 ‘급진적인’ 체제이자 아이디어다. 부와 권력으로부터 소외되고 배제되어 ‘아무 것도 아닌 자들(民-people)’이 주권자인 ‘시민 계급’이 되어 지배하는 질서를 뜻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이 ‘누가 지배하느냐’에 있고8), 그가 ‘민(民)’이라고 여기는 민주주의의 (재)등장과 체제의 수립이 문명 전개의 과정에서 ‘혁명’으로 규정되는 이유다.
근대 정치혁명 발생 이후의 역사(특히 18세기말~19세기 중반)는 민주주의의 급진성을 완화 혹은 거세하는 시기이기도 했다(Hobsbawm, 1998). 즉,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변형적 수용의 역사가 전개되었다. 정치⋅경제 엘리트 계급 통치의 지속과 시민(권-특히 참정권) 범위의 제한을 위한 민주주의의 구상과 실행, 즉 대의민주주의의 등장과 정착의 과정이다. 이즈음에 모스카와 파레토와 미헬스의 정치계급론, 엘리트순환론, 과두제 철칙론 등이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의민주주의의 등장 이후 참정권에 대한 요구가 거세진 것도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다. 시민 범위의 제한에 맞선 확대의 요구는 필연적이다.
여기서 다시 상기할 것은 참정권에 대한 요구가 단지 투표라는 행위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는 것이다. 참정권에 대한 요구는 사회적 가치와 부의 ‘배분’에 관여할 권리에 대한 요구였다는 것이다.9) 하지만 대의민주주의가 정착되고 투표권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오히려 참정권의 의미가 투표 행위 자체에 맞춰지는 역설이 일어났다. 다른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의 의미 그 자체가 그런 식으로 조작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회경제적 분배와 그것을 둘러싼 사회갈등의 문제가 정치의 밖, 즉 국가행정의 영역의 문제로 특화되거나 개인의 능력에 따른 사적 문제로 간주되고 취급되었기 때문이다.10)
이를 거론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서 정치의 죽음과 시민의 죽음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위기는 결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즉, 민주주의의 위기는 근⋅현대문명의 긴 시간에 걸친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지배-피지배 동학의 결과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단지 특정 정치세력과 정치인의 등장과 집권이라는 현상에 국한해 논할 게 아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논의는 대체로 제한적이다. 정당과 선거같은 대의민주주의 제도 운용의 실태와 정치계급의 행태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11) 정치양극화와 극우 포퓰리즘을 민주주의 위기와 등치시키는 시각과 접근들이 대체로 그렇다.12) 이들에게 민주주의의 위기는 ‘극우 포퓰리스트들의 그릇된 행태’로서, 선거를 통한 ‘바람직하고 착한’ 정치세력으로의 정권교체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로 국한된다. 이러한 시각과 접근이 유효하려면 선거와 의회와 정당과 같은 민주주의의 형식과 제도 그리고 바람직하고 착한 야당 세력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목도하는 정치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선거는 정치⋅경제지배계급의 사익추구 성향의 표출을 형식적이고 절차적으로 정당화하는 의례로 전락했으며, 정당은 더 이상 (시)민 계급의 정치적 참여와 의사를 응집하고 대표하지 못한다(김윤철, 2019). 의회는 더 이상 사회 제 영역의 대표자들 간의 이견을 좁히는 협의와 숙의와 합의 도출의 장이 아니다. 그리고 보수-진보, 여-야를 가로질러 기성 정치세력들은 ‘공모관계’를 맺고 있다(Katz & Mair, 1995). ‘형해화된 제도들의 유지’(Crouch, 2005) 속에 ‘텅 비고 공허해진 민주주의’(Mair, 2013)라는 이름의 정치를 목도하고 있다(이하 논의와 관련해서는 [그림 2] 참조).
[그림 2]
민주주의와 정치의 위기 동학(dynam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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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죽음은 사회적 갈등을 공적으로 해소할 수 없는 무능함으로 인해 권위와 신뢰를 상실한 데서 완결된다. 최근 민주주의-정치의 위기에서 빠지지 않는 논의가 ‘리더십 부재와 위기’인 이유다. 권위와 신뢰를 상실한 정치는 결코 사회적 가치와 부의 배분 역량을 발휘할 수 없다. 포퓰리즘13)은 바로 이런 정치 현실에서 (재)발흥의 계기를 마련한다. 즉,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정치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포퓰리즘의 위험성은 제도를 무시하거나 우회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포퓰리즘의 위험성은 반(反)엘리트적 민의 주도성이라는 포퓰리즘의 개념과 부합하지 않는 방향으로 민을 오히려 대상화하고 망가져버린 정치 열광층과 악성 팬덤이 상호의존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특정 사회집단에 대한 적대감과 분노를 조장 동원해 정치사회적으로 배제와 혐오를 일상화한다는 데에 있다. ‘지도자 없는 민의 주도’를 특징으로 하는, 그래서 포퓰리즘 개념에 훨씬 더 정확히 부합하는 사회운동적 저항에 기초한 좌파 포퓰리즘(Mouffe, 2019)보다도 선출직 정치인의 부각과 탈악마화의 과정을 거쳐 체제와 제도 내부의 세력으로 안착한 극우 포퓰리즘이 한층 더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김새미, 최진우, 2016; 조홍식, 2015; 은은기, 2016; 박기성, 박재정 2018). 하지만 정치의 죽음은 포퓰리즘의 발흥보다 더 중대한 결과를 가져왔다. ‘갈등의 사사화’(Schattschneider, 2008)가 바로 그것이다.
갈등의 사사화가 더 중대한 이유는 민의 대부분이 포퓰리즘의 대오에조차 가세하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즉, 참여의 비용을 지불할 역량을 보유하고 있지 못해 정치사회적 교섭력(bargaining power)의 획득 기회가 봉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약자들에게 갈등의 사사화는 사실상의 사형선고이다. ‘절반의 주권자’도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권자로서 역할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건 싸움을 해야 한다. 마치 1960년대에도 투표권을 실제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생명과 집을 내놓아야했던 미국의 흑인들처럼. 일상적 삶의 과정에서 빈번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강자와의 관계(고용자 혹은 피고용자 간의 관계 등)에서 겪어야 할 갈등을 약자에게 알아서 해결하라는 갈등의 사사화는 목숨을 내걸고 싸워보거나, 아니면 강자에게 무릎을 꿇고 살라는 무언의 계시이다. 시민일 수 없는 삶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 본질상 민에 기초한 것이기에 포퓰리즘적 성격을 내장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정당성과 우월성은 다수성 그 자체에 있지 않다. 특히 다수결에 있지 않다. 다수결은 의사결정의 방식일 뿐이다(Sartori, 1990). 민주주의에서 다수성이 중시되는 이유는 근⋅현대 문명의 시대에 들어서도, 또 정치혁명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약자가 다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근⋅현대 문명의 체제와 질서로 공인될 수 있었던 것, 적어도 ‘비교적 좋은’ 정치적 아이디어와 가치와 규범의 위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다수 속에서 다양성을 지닌 약자에 대한 존중과 보호의 의지와 결과의 도출에 있다. 그들이 실질적 주권자의 위상과 역할을 담지하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그들을 배제하고 차별하면 안된다는, 혹은 배제와 차별을 최대한 제어하고 그것이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에 기초해 있다는 것이다.14) 이것이 민주주의가 애초 반反군주정에서 시작되었으나, 이후 강자와 약자 간의 관계가 지배-피지배가 아닌 견제와 균형과 조화의 관계여야 한다는 것으로 발전된 공화주의(공화정)와 결합되어야만 했던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갈등의 사사화는 민주주의의 원칙도 공화주의와의 결합도 전혀 충족시킬 수 없게 만든다.
갈등의 사사화는 단지 시민이지 못한 약자들만 죽음으로 모는 게 아니다. 약자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삶의 현실에 있는 절반의 주권자-시민마저도 죽음으로 내몬다. 시민은 계급으로서의 집합적 정체성과 힘을 잃어버렸다. 그저 개인으로서 조명될 뿐이다. 하지만 개인은 애초에 시민계급의 집합적 정체성과 힘에 기반해 등장할 수 있었던 근⋅현대 문명의 주체 형태였다. 이때 개인은 모두가 이성을 갖춰 자유롭고 평등하고 개성을 지닌 존재이다. 하지만 지금의 개인은 그런 의미를 삭제당했다. 그저 원자화되고 고립되어 자신의 개별 능력 혹은 부모를 포함한 가족의 능력에 주로 의존해 노동, 교육, 주거⋅환경, 건강 등 삶의 모든 문제를 홀로 해결해야 하는 현실에 놓여 있게 되었다. 즉, ‘홀로주체-과잉주체’가 되어 있다. 자기계발적 주체라는 담론의 유행과 우울증이 지배적 병리현상으로 나타난 ‘피로사회’(Han, 2012) 논의가 등장한 것, 또 최근에 들어 청년 세대층마저 빚을 지며 부동산과 주식 투자자로 나선 ‘영끌 현상’이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과잉주체의 현실에 놓인 이들이 ‘자기의 경계’를 넘어 주체성의 근원을 타자에게서 찾으며 약자를 보호하고 존중하기는 어렵다. 또 그것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서로주체’가 될 가능성도 현실적으로 낮다. 문명전환의 시대에 놓여 있는 세계를 이해하고 파악해 새로운 문명 건설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도모할 가능성은 더더욱 낮다. 여기서 인류 보편의 가치를 추구할 공적 이성과 전복의 용기와 사랑의 창조성을 중시하며 문명과 정치주체로서 역능을 발휘할 시민이 들어설 자리는 매우 협소할 수밖에 없다. 개인을 결국 대의에 투신할 의지를 결여한 주체로 만든다. 그래서 개인은 대체로 시장 속의 주체로 한정되어 자산보유자-피고용자-소비자로 취급된다. 그런 중에 개인들은 보유한 일정한 수준의 자산과 교섭력을 근⋅현대 문명 주체의 최종형태, 즉 ‘유일계급으로 남은 부르주아지’가 되는데 쏟아 붓는다. 부르주아지가 되어야 삶의 근사함을 향유하며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욕망의 회로에 갇혀 버린 것이다. 이것이 갈등의 사사화가 가져온 시민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다. 욕망의 회로가 위대함과 숭고함에 대한 회의와 냉소와 거부, 그리고 웰빙과 웰다잉과 워라벨을 비롯한 보기 좋은 육체에 대한 애착 담론들의 산실이다. 시민의 죽음은 그 회로에 갇히는 삶을 선택한 대가이고. 갈등의 사사화는 그 대가의 지불을 강제하는 기제이고 역학이다.
시민의 죽음은 정치의 죽음을 장기화한다. 그리고 정치의 죽음은 시민의 죽음을 확산시킨다. 문명전환 시대라는 회오리15) 속에서도 인류 보편적 가치를 보호하거나 오히려 강화하기 위해서는 그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민주주의 위기 극복의 의미-미래 민주주의에 대한 구상과 실행의 핵심-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 정치와 시민을 부활시키는 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선거제도 등의 개선과 정치세력의 교체 혹은 새로운 등장을 통해서? 그 제한성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일까? 그 답을 교육 혹은 교육자에게서 찾을 수 있을까?

4. 대학의 세계시민교육에 주는 시사점: 현(現) 혹은 선(先) 위기 인식 주체의 형성과 실천

전환을 위한 위기 극복의 모든 통로가 차단되고 봉쇄된 것 같지만, 흥미롭게도 모든 부정적인 것들은 그 자체에 긍정의 틈새를 지닌다. 위안의 수사가 아니다. 인류문명 역사의 경험이 그렇다. 물리적 법칙이 그렇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 지배의 강제가 있으면 피지배의 저항이 있다. 일시적이고 찰나적인 반작용과 저항의 계기와 사건과 국면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눈을 돌려보면 그러한 계기와 사건과 국면이 이미 조성되어 있다. 이를 집약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現) 혹은 선(先) 위기 인식 주체의 형성과 실천이다. 위기에 대한 인식은 전환의 흐름에 뛰어들 의지와 힘을, 그것을 지향하고 추구하는 주체를 낳을 수 있다. 즉, 시민으로서 살고자 하는 주체를 낳을 수 있고, 만나게 할 수 있다.
위기는 ‘모순’의 표현이다. 즉, 위기는 기존 체제의 붕괴가 확실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대안의 부재로 인해 현행의 제도적 방식들 내의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 혹은 양상을 가리키기도 한다(Wallerstein, 1991). 낡은 것은 사멸해가나, 새로운 것은 오고 있지 않은 상황을 위기로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위기에 대해 가장 폭넓게 수용된 시각이고 정의일 것이다. 하지만 위기는 그런 의미만을 지니고 있지 않다. 더 나아갈 수 있다.
애초 위기는 고대 미학 및 의학적 용법에서 파생했다. 이때 위기는 드라마의 미학적 구조와 극화 과정에서 인간 삶의 딜레마와 운명의 결정적 전환점을 의미한다. 의학적 담화에서는 질병과정에서 미래를 결정하는 특정한 단계를 언급할 때 사용되었다. 즉, 위기는 ‘결정적 전환점’을 의미했다. 이것이 사회탐구의 영역에서 사회병리, 사회적 붕괴 및 해체를 인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이되었다. 이로부터 위기는 용인할 수 없으며, 해소할 수 있고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이 되었다. 즉, ‘문제해결의 의지’를 촉구하는 담론 등의 언어체계로 발전했다. 그래서 위기는 모든 양식들을 ‘주어진 것’이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고를 거부하고, 정상성의 개념 자체를 문제시하는 개념이 되었다(Holton, 1987).
이런 위기개념을 수용하고 보유하고 적용하는 이들의 발견과 연결, 그리고 연대와 협력에서 침로를 마련할 수 있다. 선별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게 아니다. 누구는 아니라는 시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선별의 감각과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누가 그런 이인지를 다양한 측면에서 찾아내고 그런 누군가를 육성하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자 스스로가 그런 누군가여야 한다.
‘미래의 민주주의와 대학의 세계시민교육’에 대해 논하는 교육자들도 바로 그런 누군가 중 하나일 수 있지 않을까? 이 물음은 중요하다. 그간 세계시민교육의 활성화와 관련한 논의들은 대체로 모형과 기법에 관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 논의들은 교육자를 교육과 분리시키고 교육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묻지 않는다. 이미 세계-시민성을 담지해 세계시민교육을 수행해야만 하는 이로 간주한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건 특정 모형과 기법과 그것에 의거한 교육이 아니라, 현장의 교육 수용자들, 그리고 그들과 만나 교육을 수행하는 ‘실제’ 교육자다(Carr & Gina, 2019).
그 교육자는 상술한 위기 개념에 기초해 작금의 문명 세계가 결정적 전환의 시대에 있음을 인식하고, 주어진 질서와 틀을 넘어선 문제해결의 의지를 갖고 해법을 모색하는 주체여야 한다. 그래서 강의실과 학교의 울타리 안에 갇혀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의 관계 맺음 속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전환하는 문명 세계에 대해 함께 물음을 던지고 답을 찾고자 하는 실천자여야 한다. 즉, 문명적 실천으로서의 정치의 복원을 꾀하는 현존하는 시민 주체여야 한다. 그런 주체이기 위해 시민(계급)으로서의 집합적 정체성과 힘을 보유하고 발휘하는 주체여야 한다. 그런 주체의 실천 속에서 세계시민교육의 활성화와 그것을 모색하는 대학의 책임성과 기여도를 높일 수 있는 길도 찾을 수 있다.
세계시민교육을 실시하고 담당한 대학과 교육자가 ‘바로 지금 여기서’ 전환하는 문명 세계에 대해 현실의 벽과 인식 틀을 넘어서는 관점에 기초한 위기론과 대안 세계의 상을 담은 메시지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세계시민교육을 그런 실천프로그램으로 구성하는 것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 형태와 방법은 시기와 상황과 교수자와 학생들의 ‘관계적 특성’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이를 긍정적이고 집합적인 에너지로 발현시키는 세계시민교육의 구상과 실행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통일된 교육모형과 교재와 교수법의 개발에만 치중하는 데서 벗어나 교육자들의 세계관-문명관-정치관-시민관을 펼치고 벼려서 그것에 기초한 대(對)세계 실천 전략(‘글로벌 아젠다’의 선정과 해결 방도)의 마련에 주력하는 ‘교육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 가야 한다.
이때 근간에 들어 유네스코(일각)와 세계시민교육 연구자와 수행자들 사이에서 기존 세계시민교육에 대한 반성에 바탕해 강조하고 있는 ‘변혁적 교육(transformative education)실천’에 주목할 수 있다(김윤철, 2023).16)
변혁적 교육실천은 그간의 세계시민교육이 정치성을 배제하고 가치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 갈등 요소가 적은 사례를 중심으로 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기되었다. 또한 세계와 시민적 삶의 현실이 더 이상 기성 질서를 재생산하는 권력구조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기때문에, 미래의 대안 세계(화) 구상과 건설을 본격적으로 모색할 필요성이 높아진 환경에서 등장했다. 변혁적 교육은 ‘비판적 세계시민권’의 관점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시민교육의 목적을 세계화의 순기능을 강조하며 대등한 상호의존성을 토대로 다국적 기업의 형태로 구현되는 국제분업과 초국가적 협력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서, 또 변화를 위한 구호가 수사적인 수준에 그치는 것을 넘어서서 구조화된 폭력과 불평등에 따른 상호의존성을 비판하고 적극적인 참여와 행동을 요구하는 데 둔다. 그래서 세계의 현실에 대한 분석과 판단을 통해 학습자들의 참여와 성찰을 촉진하는 교육학적 접근방식을 강조하면서 비판적 문해력을 권장한다. 비판적 문해력은 비판적 성찰을 기반으로 학습자가 자신이 처한 맥락과 자신과 다른 이들의 인식론적, 존재론적 가정을 살피게 한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개인의 세계관과 주변 세계의 상호작용을 촉진해 변화의 필요성을 찾게 하고, 학습자는 자신과 더불어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참여토록 한다(박순용, 2020, 48-49). 이러한 선상에서 세계시민교육은 모순-갈등-억압의 현상과 구조를 탐색하고 합리적으로 이해해 가는 학습과정임과 동시에 그 해결점을 모색하는 문제해결의 실천과정으로서 의미지어진다(한숭희, 2020, 92-93).
특히 변혁적 교육에서 중시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교육자를 세계시민의 정체성과 학습의지를 함께 키워가는 ‘실천자’로 조명한다는 것이다. 즉,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세계 현실에 대한 비판적 독해를 통해 함께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자 자신도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문명전환 시대의 글로벌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는 ‘교학상장’의 핵심 모형에 기초한 세계시민교육의 비전과 전략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김윤철, 2023, 39-40). 여기서는 방향 설정의 논의인 탓에 다소 선언적인 수준에서 그치지만, 향후 관련 교육 연구와 실천의 쟁점을 추출해 지속적인 논의로 확장, 심화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Notes

1) 이 물음을 던지는 이유는 전환 시대를 논하면서도 그 개념적 의미를 무엇으로 삼아야 하는지, 또 그것의 필요성과 유용성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의식적 논의가 부재 혹은 미약하기 때문이다.

2) 정치혁명-민주주의 혁명은 ‘권력관계 변동’, 즉 사회적 힘의 관계 변화로서의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 문명의 전환(완수)는 그러한 변동을 요구하는 바, 문명 구성 요소 전반에 걸친 총체적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고, 그러한 변화가 수반하는 갈등 해결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때 힘은 물질적-비물질적 차원에 걸쳐 만들어지고 행사되어야 하는 바, 그래야 ‘물리력(강제)+이데올로기(동의)’의 복합물인 ‘헤게모니’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의 문제와 그것을 필요로 하는 권력의 속성에 대해서는 Althusser(1998)Poulantzas(1978)를 참조. 헤게모니 개념에 대해서는 Laclau & Mouffe(2012) 참조.

3) 데모크라시(democracy)는 어의 그대로 번역하면 ‘민주정’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목표가 ‘민주정부’ 수립이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한국과 같은 후발 민주국가들의 경우 민주정을 우선은 이념(가치와 규범)의 형태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에 민주주의로 번역해 불렀던 것이 굳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4) 정치세력(특히 사회민주당 계열의 세력)들의 이와 같은 역량 상실과 관련해서는 Piketty(2019) 참조.

5) 이에 대해서는 Crouch(2005) 참조. 크라우치는 이를 ‘post-democracy’로 개념화하고, 정치계급과 기업엘리트 유착의 전형을 ‘공기업 등의 사유화(privatization)’에서 찾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를 시장과 경제의 독립성이라는 허구를 지향하며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있기도 하다.

6) 정치적 갈등은 사회적 균열구조-계급 이념 종교 지역 인종 등-에 기초한 집단화된 세력 간의 다툼으로서 지배와 피지배 간 힘의 관계와 체제 유지 및 재생산의 방식에 영향을 주는 다툼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최근의 정치적 갈등은 대체로 그것과 상관없는 (준)기득권 집단들-통치엘리트 및 정치계급 내부- 간의 정파 다툼(진영 갈등)의 성격이 강하다.

7) 여기서 글로벌 민주주의의 위기는 일국적 민주주의와 구별되는 다른 영역과 층위와 성격의 민주주의를 의미하기 보다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에 걸친 글로벌 차원에서 보편적 현상을 이루고 있음을 가리킨다. 즉, 분석적 개념이라기보다는 현상을 묘사하고 서술한 것이다. 따라서 아래 본문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민주주의로 바꿔 쓰도록 한다. 한편 인류문명은 글로벌 민주주의라고 일컬을 별도의 지배(통치)형태를 가진 바 없으며, 창출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현실에 놓여 있다.

8) 다만 그의 지배가 정당성을 얻기 위해 ‘무엇을 위해 지배하느냐’와 ‘어떻게 지배하느냐’의 문제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현재 운위되는 민주주의 위기는 누가 지배하느냐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무엇을 위해 지배하느냐, 어떻게 지배하느냐에 걸친 전반적 위기다. 하지만 최근의 민주주의 위기론은 대체로 어떻게 지배하느냐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거나, 세 가지의 문제가 누가 지배하느냐를 중심으로 정돈-정열되어있지 못하고 혼종되어 있다.

9)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 유규오(2018) 참조. 이 책이 민주주의 교육에 기여하는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차티스트 운동은 투표권 획득 운동이 아니라, 부의 배분에 관여할 권리, 즉, 정책결정권 획득 운동이었다. 지금은 투표권의 행사가 그러한 의미에서 조명될 수 있는지에 대해 검토해야 할 때이다.

10) 능력주의로 번역되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의 문제를 의미한다. 메리토크라시의 개념적 의미와 (가상적) 역사성에 대해서는 Young(2020)을 보라.

11) 이와 같은 문제 의식과 관련해서는 정진영(2018)을 볼 것.

12) 특히 미국 트럼프의 등장을 계기로 한 민주주의 위기 논의들이 그 예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Levitski & Daniel(2018); Snyder(2018)를 보라. 이들과 달리 글로벌 자본주의의 속성에서 민주주의 위기를 다루는 논의도 있다. Kuttner(2020)는 월스트리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 요구를 회피한 힐러리를 비판하고 있으며, 그것을 트럼프에게 패배한 요인으로 짚고 있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커트너의 관점과 맥을 같이 한다.

13) 포퓰리즘의 역사적 기원과 개념에 대해서는 Taggart(2017)를 볼 것.

14) 즉 슘페터의 ‘최소정의 민주주의’의 의미도 재규정되어야 한다. 선거의 주기적 실시와 정치엘리트 교체 가능성에서 찾아질 게 아니라, 선거와 정치엘리트 교체의 결과가 약자에 대해 호의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 특히 민주주의의 형식을 갖춘 사회에서는 그러하다.

15) 문명전환의 시대와 같은 대변동기에는 이익-이념-제도 등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된다. 근간에 들어 세계 곳곳에서 계급 이념 종교 지역 인종 젠더 세대 등등 이러 저러한 균열에 기초한 갈등이 동시적이고 복합적으로 등장한 이유다. 이런 갈등의 격화 상황에서 정치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특히 민주주의 정치가 중요하다. 강자와 약자 간의 힘의 균형과 조화의 정도를 높이고, 그것을 위한 강자에 대한 약자의 견제의 힘이 민주주의 정치를 통해 작용하기 때문이다.

16) 변혁 교육은 ‘전환’ 교육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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