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 교육의 교육적 성과 검증을 위한 공동 연구 -국내 4개 대학의 교육성과 진단을 중심으로
Collaborative Research on the Educational Outcomes of Classical Reading Education : Focused on Diagnosing the Educational Performance of four Korean Univers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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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고전읽기 교육의 새로운 부상은 최근 교양교육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이 연구는 고전읽기 교과목을 수강하고 있는 국내 4개 대학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전-사후 설문조사를 통해 고전읽기 교육의 성과를 진단하고, 그 결과를 분석함으로써 고전읽기 교육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수도권 2개 대학과 충청권 및 대구⋅경북 지역에 각각 위치한 1개 대학, 총 4개 대학에서 2023학년도 2학기에 고전읽기 교과목을 수강한 학생 총 33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고전읽기 교육은 대학별 교과목 운영의 특성이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독해역량은 물론 의사소통역량, 창의역량, 문제해결 효능감을 모두 증진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고전읽기 교육은 상황이나 맥락에 따른 읽기, 텍스트에 대한 입체적 읽기, 추론적 읽기 능력을 함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전읽기 교육은 함께 수업을 듣는 동료 학생들과의 토론 및 토의, 성찰적 글쓰기를 통해서 내용에 대한 정확하고 깊이 있는 이해는 물론 자신이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내용이나 의미까지도 새롭게 찾아내게 함으로써 스스로 성장하고 성숙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와 같은 경험은 학생들의 창의역량 함양 및 문제해결 효능감 증진이라는 결과와 맞물리면서 고전읽기 교육의 성과를 뒷받침하였다. 고전읽기 교육은 또한 학업에 대한 학생들의 개인적 흥미만이 아니라 상황적 흥미까지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학업에 대한 학생들의 이와 같은 의지와 태도의 변화는 능동적 학습 태도를 형성하는 것과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연구를 통해 고전읽기 교육은 사고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깊게 하며,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갈증을 충족시켜 줌으로써 자신의 삶과 학업에 대한 의지와 자세를 새롭게 한다는 성과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그러한 교육성과가 특정한 개별 대학 차원에서 확인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지역에서 각기 다른 수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4개 대학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고전읽기 교육의 보편적 성과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교육성과를 야기하는 구체적인 요인들에 대한 보다 정치한 분석과 효율적 교육 방법에 대한 모색은 후속 과제이다.
Trans Abstract
The new rise of classical reading education is one of the important features of liberal arts education in recent years. This study aims to diagnose the performance of classical reading education through pre- and post-surveys of students taking classical reading courses at four universities in Korea, and analyze the results to determine what specific outcomes classical reading education can achieve. Based on a total of 339 students who took a classical reading course in the second semester of the 2023 academic year at four universities, two in the Seoul metropolitan area and one each in the Chungcheongbuk-do and Daegu/Gyeongbuk regions, the results showed that classical reading education promotes not only reading comprehension but also communication, creativity, and problem-solving efficacy, despite the characteristics and differences in the course operation of each university. In particular, classical reading education was found to foster contextual reading, the three-dimensional reading of texts, and inferential reading. Through discussions and debates with classmates, reflective writing, and reflection, the classical reading experience allows students to grow and mature by developing a precise and in-depth understanding of the text, as well as through the discovery of new content and meanings that they hadn’t noticed before. These experiences, coupled with the results of fostering students’ creativity and increasing their problem-solving efficacy, support the benefits of classical reading. Classical reading has also been shown to positively change students’ personal and contextual interest in academics. This change in students’ willingness and attitude toward academics is very important because it is closely linked to the development of an active learning approach. This study confirms that classical reading education has the effect of broadening and deepening thinking, stimulating and satisfying intellectual curiosity and thirst for knowledge, and renewing students’ commitment and attitudes toward their lives and their studies. In particular, the fact that these outcomes were not identified at the level of individual universities, but were common to four universities in different regions, serving students at different levels, and operating in different ways, proves this study to be an objective confirmation of the universal outcomes of classical reading education. A more politicized analysis of the specific factors that drive these outcomes and the search for effective teaching methods is a future task.
1. 서론
미국 대학의 고전읽기 교육 전통은 유럽 백인 남성 저자의 책을 필수로 읽게 한다는 데 대한 저항과 비판이 거셌음에도 불구하고 10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고전을 읽고 토론하게 하는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독립적이고 충족할 만한 그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며, 다른 곳에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을 얻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교육보다도 유의미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Bloom, 1987). 4년 동안 전공도 시험도 없이 오직 고전 200권을 읽게 하고 토론하게 하는 것이 교육과정의 전부인 세인트존스 칼리지는 2018년 미국에서 가장 미래 지향적인 교육을 실시하는 대학으로 뽑혔다. 파나이오티스 카넬로스 총장은 이를 일러 ‘인문 교양교육의 역설(liberal arts paradox)’이라고 하였다(Panayiotis, 2018).
우리나라에서는 덕성여자대학교가 1969년 이후 지금까지 고전을 읽고 토론하게 하는 교육을 교양필수로 시행해 오고 있으며(차지영, 2022), 2000년대 이후 고전읽기 교과목을 교양교육과정에 필수 혹은 선택으로 편성하는 대학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글쓰기 교육 중심의 기초교육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임과 동시에 교양교육의 본령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로도 이해할 수 있다(윤승준, 2021).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김선영 외, 2023), 대학의 교양교육이 글쓰기, 영어, SW와 같은 기초학업능력 교육과 대학생활 적응 및 진로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전읽기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대학이 눈에 띄게 많았다. ‘의사소통교육 Ⅰ’ 영역에서 글쓰기 교과목 다음으로 많이 개설되는 교과목이 고전/명저 읽기 교과목이었던 것이다. 분석 대상 60개 대학 가운데 27개교(44.3%)에서 필수 혹은 선택으로 고전/명저 읽기 교과목을 개설하고 있었고, 교육 목적을 고려하여 절대평가를 적용하고 있는 경우도 31.7%나 되었다.
고전읽기 교육의 활성화와 함께 그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2013년 이후 늘어나기 시작한 고전읽기 교육 연구는 2020년 이후 대학에서의 고전읽기 교육을 중심으로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박준범, 2023b). 고전읽기 교육에 대한 최근의 연구 동향은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① 고전 교육의 의의와 방향에 대한 연구: 정인모(2007), 손승남(2013), 구자황(2015), 이국환(2017), 이원봉(2017), 이하준(2018), 김주언(2019), 안현효(2019), 최애순(2020) 등
② 고전 교육 사례 연구: 이경희(2017), 김수경(2019), 조혜경(2020), 김연숙(2020), 윤승준(2021), 오진영(2022), 이현영(2022), 박준범(2023a) 등
③ 고전 교육을 통한 인성 교육이나 사고 교육에 관한 연구: 신희선(2013), 이하준(2014), 박현희(2019), 최용호(2023) 등
④ 고전 교육 또는 수업 방법에 관한 연구: 강옥희(2016), 김유미(2021), 조혜경(2022), 고지영(2023), 임연정(2023) 등
⑤ 인공지능이나 미디어를 활용한 고전 교육: 유경애(2023), 이채영(2024) 등
⑥ 권장 도서에 관한 연구: 천정환(2021), 김정숙, 서연주(2022) 등
⑦ 고전 교육의 학습 효과 및 교육 성과에 관한 연구: 권순구(2020), 유경애, 이채득(2020), 권순구, 윤승준(2020, 2021) 이용화, 이유정(2021) 등
⑧ 고전 교육에 대한 연구사적 검토: 이재현(2009), 이황직(2011), 이명실(2014), 최윤경, 한수영(2021), 박준범(2023b) 등
기존 연구는 고전읽기 교육의 의의와 가치, 필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하고, 고전읽기 교육을 위한 교과목 개발이나 개별적인 운영 사례, 교육 방법 및 교육성과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⑦ 고전읽기 교육의 학습 효과 및 교육 성과에 관한 연구는 주로 개별 대학의 사례를 분석하거나 유학생과 한국인 학생 간의 학습 변인과 교육 성과를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 결과 개별적 사례에 기초한 고전 교육의 성과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다양한 집단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비교 분석을 통해 고전읽기 교육의 성과를 보편적으로 입증해 낸 연구는 그동안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연구는 이와 같은 연구사적 검토 위에 고전읽기 교육의 보편적 교육 성과를 실증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고전/명저 읽기 교과목을 교양교육과정에 개설⋅운영하고 있는 국내 4개 대학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연구한 결과이다.
2. 분석 대상: 대학별 고전읽기 교육의 실제
고전읽기 교육의 방법은 고전 텍스트 전체를 통독하게 하는 방법과 텍스트의 일부를 발췌하여 부분적으로 읽고 토론하게 하는 방법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수강생의 학년에 따라 신입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과 전체 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 수업으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고전 텍스트의 의미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는 수렴적 교육 방법과 고전 텍스트에 대한 현대적 해석에 초점을 맞추는 발산적 교육 방법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이 밖에도 텍스트 자체에 몰입하게 하는 교육 방법과 영화나 기타 관련 리뷰 등 텍스트 외적 자료를 다양하게 활용하도록 하는 교육 방법 등 다양한 교육 방법이 있을 수 있다(손승남, 2013; 이하준, 2014; 조혜경, 2020). 대학 혹은 교강사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어떤 교육 방법을 택하든 고전읽기 교육은 ‘읽기’, ‘발표와 토론/토의’, ‘쓰기’를 수업에 통합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4개 대학도 이 점에서는 예외가 없었다. 각 대학의 고전 교육 목표와 수업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1. A대학의 <이해와 소통 세미나>
수도권에 위치한 A대학은 2023년 4월 1일 기준 재학생 5,385명에 전임교원 209명이 재직하고 있는 소규모 사립대학이다. 졸업학점 130학점 가운데 교양교육과정에서 36학점 이상을 이수하도록 하는 A대학은 소규모 고전 세미나 교육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대학으로, 지금도 <이해와 소통 세미나>(3학점)를 교양필수 교과목으로 개설 운영하고 있다.
A대학의 <이해와 소통 세미나>는 인문/사회/자연⋅과학/예술 분야의 이론서와 문학작품을 읽고 토론하게 함으로써 폭넓고 균형 잡힌 안목을 갖춤과 동시에 현대사회가 지닌 문제를 극복할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력을 함양하도록 한다. 학생참여형 교과목인 이 교과목에서는 세미나 과정을 통해 합리적 의사결정 방법과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법을 터득하고, 도덕성과 공감 능력의 회복, 기술문명과 예술이 지닌 사회적 의미에 대해 숙지하게 한다. 이를 통해 창의적 능력 배양, 올바른 가치관 실현, 융합적 사고 함양을 통해 덕성을 갖춘 창의적 지식인을 육성하고자 하는 대학의 교육이념을 실현하는 데 기여해 오고 있다.
<이해와 소통 세미나>는 18~20명의 소규모 강좌로 운영된다. A대학 교양교육 전담기관 소속 전임교원(국문학, 러시아문학, 교육학)과 초빙교원은 물론 A대학 소속 전임교원(철학, 독문, 불문, 정치외교, 문화인류학, 화학 전공 등)이 담당한다. 인문/사회/자연⋅과학/예술 분야의 이론서와 문학작품 각 1편씩, 총 8권을 통독 및 발췌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텍스트는 ‘이해와 소통 세미나 선정 도서목록’에서 선정해 왔는데, 2024학년도부터는 ‘A대학 권장도서 100권’에서 선정하도록 하고 있다.1) 학생들은 읽기, 토의/토론(조별/전체), 토의/토론 논제와 관련한 보고서 작성, 학기말 서평 작성 등의 다양한 활동을 수행한다. 특히 책 리뷰나 토의/토론 주제에 대한 PPT 제작, 발표를 2차례씩 한다. 교수자는 학기말 서평에 대해 1대 1 첨삭 지도를 한다. <이해와 소통 세미나>는 비교과 프로그램인 ‘독서 글쓰기 대회’와 연계하여 운영해 왔는데, 2024학년도부터는 추가로 ‘독서토론대회’와도 연계하여 운영하기로 하였다. A대학은 소규모 고전 세미나 교육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교육 방법과 프로그램에 관한 끊임없는 변화와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교육 성과가 특히 주목된다고 할 수 있다.
2.2. B대학의 <인문고전 읽기>
충청권에 위치한 B대학은 2023년 4월 1일 기준 재학생 9,010명에 전임교원 286명이 재직하고 있는 중소규모의 사립대학으로, 졸업학점 130학점 가운데 교양교육과정에서 36학점 이상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B대학은 2016년부터 1학년 대상 필수교양 교과목으로 <읽기와 토론>(2학점)을 신설하였고 2017년부터는 전체 학년 대상의 균형교양 교과목 <인문고전 읽기>(3학점)를, 2019년부터는 <고전명작 읽기>(3학점)를 개설함으로써 기초에서부터 심화에 이르기까지 고전읽기 및 독서 교육을 체계화하여 운영하고 있다.2) 이밖에 독서클리닉, 독서토론대회, 서평쓰기 대회(1학년), 도전골든북(북트레일러 제작 대회) 등의 비교과 프로그램도 운영하여 학생들의 책 읽기를 장려하고 있다. B대학의 고전읽기 교육은 교과 교육과정과 비교과 교육과정이 다양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읽기와 토론>은 신입생 전원을 대상으로 1학기에 실시하며 30명 정원 75개의 분반이 개설되며 총 23인의 교수자(전임교원 1인)가 표준강의계획안 및 자체 제작한 교재에 의거 수업을 실시한다. 학생들은 「노인과 바다」(헤밍웨이), 「피로사회」(한병철), 「침묵의 봄」(카슨),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지글러), 「데미안」(헤세), 「레미제라블」(위고),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색스) 등을 발췌독으로 읽고 발췌노트 쓰기 후 4회에 걸쳐 칼포퍼식 독서 토론을 진행한다.
<인문고전 읽기>는 전 학년 50명 대상 강좌로, 각 주제별로 12차시에 걸쳐 주제와 관련된 고전 작품을 선정하여 발췌독하고 ‘생각쪽지’ 쓰기(매주)와 ‘인생 고전’ 보고서 쓰기(학기말)와 발표를 진행한다. 이 교과목은 고전의 현대적 적용에 중점을 둔다. <고전명작 읽기> 역시 전 학년 대상 강좌로 「자유론」, 「광인일기」, 「고도를 기다리며,」 「햄릿」 / 「페스트」, 「구운몽」, 「군주론」, 「홍길동전」 / 「오델로」, 「호모데우스」, 「제인에어」, 「사기」(교수자가 매 학기 선정) 등을 텍스트로 선정하여 통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사기」와 같이 텍스트 자체의 분량상 한 학기에 소화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부득이 부분 발췌독으로 진행한다. 통독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학습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되는 교과목이다.
2.3. C대학의 <클라시카>
대구⋅경북 지역에 위치한 C대학은 2023년 4월 1일 기준 재학생 15,756명에 전임교원 575명이 재직하고 있는 대규모 사립대학이다. 졸업학점 130학점 가운데 교양교육과정에서 30학점 이상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는 C대학은 균형교양 영역에 영역별(문학⋅예술, 역사⋅철학, 사회⋅문화, 과학⋅기술)로 <클라시카> 교과목(3학점)을 개설하고 있으며, 클라시카자유학 전공과정(경제, 과학, 문학, 역사, 정치, 철학)을 창의융복합전공으로 운영하고 있다. C대학은 고전읽기 교과목을 각 학문 영역별로 다양하게 개설하여 융합전공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한 대학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18학년도부터 개설 운영하고 있는 이 교과목은 난해한 책이라고 알려진 고전을 학생들 스스로 통독하고, 창의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신곡」(단테), 「일리아드」⋅「오디세이아」(호메로스), 「논어」(공자), 「전체주의의 기원」(아렌트), 「실천이성비판」(칸트), 「과학혁명의 구조」(쿤), 「국가」(플라톤), 「역사」(헤로도투스), 「민주주의와 교육」(듀이), 「군주론」⋅「로마사논고」(마키아벨리), 「국부론」(스미스), 「목민심서」(정약용), 「종의 기원」(다윈) 등을 다루는 이 교과목은 책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하고 내용을 철저히 이해하도록 하며 오늘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한다. 문학, 미학, 철학을 전공한 교수자가 담당하는 이 교과목은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누구나 수강할 수 있도록 하되, 1학년을 제외한 나머지 학년은 수강정원의 20%로 제한하고 있다. 대형 강의실에서 진행되는 이 교과목은 70명을 분반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토론 수업을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독서노트를 작성하게 하며, 교수자가 이에 대한 피드백을 수행한다.
2.4. D대학의 <창의와 소통>
수도권에 위치한 D대학은 2023년 4월 1일 기준 재학생 18,742명에 전임교원 914명이 재직하고 있는 대규모 사립대학이다. 졸업학점 132학점 가운데 교양교육과정에서 29학점 이상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으며, 고전읽기 교과목인 <창의와 소통>(2학점)을 필수로 이수하게 하고 있다. 이 교과목은 인간 삶의 주요 분야와 관련된 다양한 텍스트를 바탕으로, 인류의 지적 전통 위에서 자신을 성찰하면서 창의적 사고력을 증진시키고 바람직한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는 기초적인 힘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발표와 토론을 통해 타인과의 공감 능력 및 소통 능력도 키울 수 있게 하는데, 특히 고전과 현대의 명저들을 넘나들며 “나는 누구인가?”, “나와 타인과 세계는 어떻게 이어져 있는가?”, “어떠한 가치를 갖고 살아갈 것인가?”, “좋은 삶은 무엇일까?” 등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게 한다. 나아가 삶을 긍정적으로 변혁시킬 내면의 힘을 강화하고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에 대응해 나갈 지혜를 탐색하도록 한다.
『창의적 사고와 소통』이라는 이 교과목의 교재는 ‘노래-거울-춤’이라는 대주제 아래, 자신의 감각을 열어 감수성을 확장하는 과정(노래), 인간 존재에 대한 내적 성찰을 하며 행복과 자유에 대해 사유하는 과정(거울), 사회적 존재로서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춤) 등 3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마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타인의 고통』, 『지킬 박사와 하이드』, 『소유냐 삶이냐』, 『예루살렘의 아히히만』 등 고전과 현대적 저작, 그리고 영상자료 등 다양한 텍스트들이 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주제별로 3주의 시간이 배정되고, 4주차에는 시의적인 주제를 도출한 주제 확장 발표와 토론을 진행한다.
45명을 분반 기준으로 하는 이 교과목은 어문학과 철학을 전공한 10명의 전담교원과 9명의 강사가 담당하고 있다.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텍스트를 심층적으로 읽고 생각하고 감상하면서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연습을 한다. 또한 텍스트의 관점을 오늘의 삶과 연결하여, 인간과 세계에 대한 정서적 공감 능력을 키운다. 뿐만 아니라 토론을 통해 타인과 생각을 나누는 방법을 익히며 소통 능력과 균형 감각을 향상하도록 한다. D대학의 <창의와 소통> 교과목은 담당 교수진이 교육 내용을 균형적⋅체계적으로 기획하여 교재를 개발하고, 이를 기준으로 안정적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각 대학별 교과목 운영의 특성을 정리하면 <표 1>과 같다.
대학에 따라 수강 대상과 학점, 이수 방식에 차이가 있었으나, 발표와 토론/토의, 읽기와 쓰기를 중심으로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었다. 평점 간 비율의 차이는 있었으나 모두 상대평가를 적용하고 있었으며, 수강 인원과 피드백 방식에서도 일부 차이를 보였다.
3. 연구 방법
3.1. 설문조사
이 연구는 고전읽기 교육의 보편적 교육성과를 실증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고전/명저 읽기 교과목을 개설⋅운영하고 있는 국내 4개 대학의 수강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설문조사는 G사 온라인 설문 시스템을 활용하여 학생들이 링크를 클릭하고 설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연구의 주된 목적은 고전읽기 강좌의 교육적 성과를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이를 고려하여 설문조사는 학기 초(사전 설문)와 학기 말(사후 설문)에 각각 1회 실시하였다. 사전설문은 2023년 9월 15일부터 10월 9일까지, 사후설문은 2024년 11월 21일부터 12월 19일까지 진행하였다. 사전설문에는 모두 540명이, 사후설문에는 모두 382명이 참여하였으며, 이 가운데 각 설문에서 6명이 설문 응답 자료의 활용에 동의하지 않아 제외하고 두 설문에 모두 참여한 339명의 응답을 최종 분석에 활용하였다.
A대학은 서울에 소재한 여자대학교로 여학생 151명의 자료를 최종 분석에 활용하였다. B대학은 충청권에 소재한 소규모 사립대학으로 총 50명의 자료가 최종 분석에 활용되었으며, 성별에 따른 비율은 각각 25명으로 동일하게 나타났다. C대학은 대구⋅경북 지역에 소재한 대규모 종합대학으로 13명의 자료가 최종 분석에 활용되었으며, 남학생 3명과 여학생 10명으로 차이를 보였다. 마지막으로 D대학은 서울에 소재한 대규모 종합대학으로 총 125명의 자료가 최종 분석에 활용되었으며, 이 가운데 남학생은 55명, 여학생은 70명으로 나타났다. 고전읽기 강좌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1학년을 주요 수강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그 결과 이번 설문 응답자의 구성 비율에서도 1학년이 289명으로 전체 인원의 85.25%를 차지하였다. 각 대학 설문 참여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표 2>와 같다.
3.2. 측정 도구와 분석 방법
이 연구에서는 고전읽기 교육의 교육성과 측정을 위해 권순구(2020)의 고전 교육 성과 측정 도구를 사용하였다.3), 이 척도는 대학 교양 강좌로 개설되고 있는 고전읽기 교과목의 교육적 성과를 분석하기 위해 개발된 것으로, 3개 역량(독해역량, 의사소통역량, 창의역량)과 문제해결효능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전교육의 성과 분석을 위해 이전 연구에서 활용된 바 있다(권순구, 윤승준, 2020, 2021). 독해역량은 사실적 독해(예: ‘나는 책을 읽으며 중요한 내용과 중요하지 않은 내용을 구분할 수 있다’)와 비판적 독해(예: ‘나는 내가 읽은 책이 오늘의 관점에서 갖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에 관한 8개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고, 의사소통역량은 말하기(예: ‘나는 책을 읽고 책 내용에 대해 요약해 말할 수 있다’)와 쓰기(예: ‘나는 책을 읽고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에 관한 5개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창의역량은 4개 문항(예: ‘나는 책을 읽고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낼 수 있다’)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해결 효능감은 과제해결, 자료검색, 자료정리, 원인분석과 관련한 4개 문항(예: ‘나는 책을 읽고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있다’)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척도의 신뢰도(Cronbach’s α)는 독해역량이 .897, 의사소통역량이 .894, 창의역량이 .819, 문제해결효능감이 .876이었다. 이번 연구에서의 사전설문 신뢰도는 독해역량이 .910, 의사소통역량이 .885, 창의역량이 .786, 문제해결 효능감이 .786으로 나타났으며, 사후설문 신뢰도는 독해역량이 .930, 의사소통역량이 .917, 창의역량이 .827, 문제해결 효능감이 .918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고전을 활용한 교육의 주요 성과로서 학업적 흥미의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SMILES(봉미미 외, 2013)에 포함된 학업적 흥미 척도를 활용하였다. 원 척도는 초⋅중등 학생을 대상으로 개발된 것으로, 이 연구에서는 연구 대상과 강좌 특성에 맞게 일부 문항 내용을 수정하였다. 이 설문은 상황적 흥미(예: ‘이번 학기 이 강의는 나의 흥미를 유발한다’) 4문항과 개인적 흥미(예: ‘나는 강의시간 외에도 이 수업 내용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 5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인적 흥미에 관한 문항 가운데 1개 문항(‘나는 [과목]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을 제외한 8개 문항을 연구에 사용하였다.
마지막으로 수강생들의 강의만족도를 살펴보기 위해 대학 강의평가 척도(권순구 외, 2020) 가운데 ‘강의에 대한 질적 만족도’ 문항을 연구 목적에 맞게 수정하여 활용하였다. 이 척도는 모두 5개 문항(예: ‘나는 이 강의의 수업 내용에 만족한다’)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연구에서 신뢰도(Cronbachs’ α)는 사전 설문에서 .904, 사후 설문에서 .903으로 나타났다.
전체 설문 문항과 관련하여 각 문항에 대한 기술통계 분석과 각 변인에 대한 상관분석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고전읽기 교육의 교육적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각 변인별 사전-사후 평균에 대한 차이 분석을 실시하였다. 이 모든 분석에는 SPSS 27.0을 사용하였다.
4. 연구 결과
4.1. 기술통계분석
설문 문항에 대한 정규성 가정 충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기술통계 분석을 실시하고 왜도와 첨도를 확인하였다. 분석 결과 왜도는 절대값 3.0, 첨도는 절대값 10.0을 넘지 않아 정규성 가정을 충족하였다(Klein, 2005). 사전-사후설문 각 문항에 대한 기술통계 분석 결과는 <표 3>과 같다.
4.2. 상관 분석
먼저 사전설문에 대한 상관 분석 결과, 각 역량은 .598부터 .768로 정적 상관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해결효능감은 모든 역량과 .598부터 .776까지, 상황적 흥미와 .383, 개인적 흥미와 .410의 정적 상관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적 흥미는 모든 역량 변인과 .340부터 .388까지, 개인적 흥미는 모든 역량 변인과 .371부터 .377까지의 범위에서 정적 상관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의 만족도는 모든 역량 변인과 .277부터 .380까지, 문제해결효능감과는 .367의 정적 상관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상황적 흥미와는 .819, 개인적 흥미와는 .764의 정적 상관을 보여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였다.
다음으로 사후설문에 대한 상관 분석 결과, 각 역량은 .419부터 .592로 정적 상관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해결효능감은 모든 역량과 .451부터 .604까지, 상황적 흥미와 .421, 개인적 흥미와 .415의 정적 상관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적 흥미는 모든 역량 변인과 .344부터 .394까지, 개인적 흥미는 모든 역량 변인과 .326부터 .364까지의 범주에서 정적 상관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의 만족도는 모든 역량 변인과 .347부터 .397까지, 문제해결효능감과는 .398의 정적 상관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상황적 흥미와는 .615, 개인적 흥미와는 .592의 정적 상관을 보였다. 동일한 변인 간 상관은 .598부터 .709로 나타났으며, 상관 분석의 구체적인 결과는 <표 4>와 같다.
4.3. 사전 설문 집단 간 차이 분석
이 연구에서는 사전-사후 차이 분석에 앞서 역량과 학업적 흥미, 강의 만족도에서 4개 대학이 사전 설문에서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F 검증을 실시하였다(<표 5> 참조). 분석 결과 모든 역량과 문제해결효능감, 학업적 흥미와 강의 만족도 모두 사전 설문에서 집단 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모든 집단이 변인과 관련하여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4개 대학의 설문 응답을 동일한 집단으로 보고 사전-사후 차이 분석을 실시하였다.
4.4. 사전-사후 차이 분석
사전-사후 차이 분석 결과에 따르면, 수강생들의 모든 역량과 학업적 흥미, 강의 만족도까지 수강 이후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표 6> 참조). 독해역량은 사전설문 평균이 5.38(SD=.86)에서 5.62 (SD=.86)로 사전에 비해 사후에 0.24 높아졌으며, 이는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t=-6.799, p<.001). 의사소통역량은 사전설문 평균이 5.48(SD=.93)에서 5.73(SD=.91)로 사전에 비해 사후에 0.25 높아졌으며, 이는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t=-5.679, p<.001). 창의역량은 사전설문 평균이 4.94(SD=.98)에서 5.37(SD=1.00)로 사전에 비해 사후에 0.43으로 다른 역량에 비해 가장 높은 변화를 보였으며, 이는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t=-8.906, p<.001). 문제해결 효능감은 사전설문 평균이 5.14(SD=1.09)에서 5.51(SD=1.05)로 사전에 비해 사후에 0.39 높아졌으며, 이는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t=-7.302, p<.001).
상황적 흥미는 사전설문 평균이 5.13(SD=1.29)에서 5.49(SD=1.29)로 사전에 비해 사후에 0.36 높아졌으며, 이는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t=-6.378, p<.001). 개인적 흥미는 사전설문 평균이 4.94(SD=1.28)에서 5.31(SD=1.26)로 사전에 비해 사후에 0.43으로 창의역량과 마찬가지로 가장 높은 변화를 보였으며, 이는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t=-6.879, p<.001). 강의 만족도는 사전설문 평균이 5.48(SD=1.10)에서 5.76 (SD=1.03)으로 사전에 비해 사후에 0.28 높아졌으며, 이는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t=-5.572, p<.001).
5. 결론 및 논의
고전읽기 교육의 교육적 효과성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 개별 대학의 사례를 중심으로 학습자의 자아 성찰이나 인성 함양과 같은 다소 추상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져 왔다. 이번에 진행한 공동 연구는 기존 연구와 달리 서로 다른 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동일한 측정 도구를 활용해 구체적인 역량과 동기 변화를 진단함으로써 고전읽기 교육의 교육적 성과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연구 결과, 고전읽기 교육은 학생들의 독해역량, 의사소통역량, 창의역량, 문제해결 효능감을 함양하는 데 기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양필수 과목이든 교양선택과목이든, 아니면 고전에 대한 통독 교육이든 발췌독 교육이든, 이수 방식이나 교육 방법과 관계없이 고전읽기 교육은 이와 같은 역량과 효능감 함양에 실질적인 교육적 효과를 가지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의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사전-사후 비교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고전읽기 교육의 구체적인 교육 성과는 향후 고전읽기 교육, 나아가 교양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독해역량의 경우, 이번 연구 결과는 고전에 대한 대학생의 깊이 있는 이해는 물론 인식 지평의 확장과 심화에도 기여한다는 선행 연구(박현희, 2019)와 유사한 결과를 보였다. 고전읽기 교육은 읽기를 수업의 기본활동으로 전제한다.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 과제나 수업 활동의 일환으로 내용 요약이나 특정 주제에 관한 토론 혹은 토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어 학생들은 책에서 다루어지는 주요 문제에 대해 거듭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러한 교육과정의 특성을 고려할 때, 학생들의 독해역량 변화는 고전읽기 수업을 통해 얻게 되는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고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미처 발견하거나 깨닫지 못했던 고전의 의미를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와 같은 경험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성장하고 성숙했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 고전읽기 수업과 관련하여 학생들이 동료 학생들과 함께 토론 혹은 토의하는 경험을 무엇보다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그와 같은 성장 혹은 성숙을 가져다 준 계기가 동료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을 듣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있기 때문이다(박준범, 2023a). 책은 혼자 읽는 것이지만, 읽은 내용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을 주고받을 때 더 정확하고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토론 혹은 토의 활동과 함께 이루어지는 고전읽기 교육이 학생들의 사실적 독해 능력과 비판적 독해 능력의 함양에 도움이 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해역량의 하위 요인에 따른 연구 결과는 그와 같은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고전읽기 교육은 사실적 독해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보였지만, 비판적 독해에서 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였다. 특히 기본적인 사실이나 정보를 파악하는 능력(사실적 독해 설문 4, 5번)보다 ‘책이 쓰인 시대적 상황이나 배경을 고려하여 글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거나 ‘내가 읽은 책이 오늘의 관점에서 갖는 의미(또는 의의)를 파악할 수 있다.’는 문항(비판적 독해 설문 1, 2번)에 대한 응답에서 더 큰 성과를 보였다. 이 두 문항의 경우 각각 0.32점과 0.34점씩 크게 향상되었는데, 이와 같은 큰 변화는 고전읽기 교육이 단순한 읽기를 넘어 상황이나 맥락에 따른 읽기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 텍스트에 대한 입체적 읽기, 추론적 읽기, 고등 사고능력을 기르는 데 효과적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는 수도권 대규모 사립대학에서 동일한 진단 도구를 사용하여 고전읽기 교육의 성과 분석을 실시한 이전 연구(권순구, 윤승준, 2020, 2021)와 동일하다는 점에서 그 성과가 본 연구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고전읽기 교육은 수강생들의 의사소통역량 증진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것은 ‘책을 읽고 내 생각을 근거를 들어 말할 수 있다.’는 항목이었다(말하기 1번 문항, △ 0.29). 이는 고전읽기 수업이 ‘읽기’와 ‘토론/토의’, ‘글쓰기’라고 하는 활동을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비롯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고전읽기 수업은 읽기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읽은 내용에 대해 수업을 함께 듣는 동료 학생들과 토론 혹은 토의를 하도록 하고, 읽은 내용을 요약하거나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쓰도록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이 사실적 독해 문항 1번과 3번과의 연계성이다. 1번 문항과 3번 문항은 다른 것이 아니라, 책을 읽으며 중요한 내용과 중요하지 않은 내용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의 변화 정도(△ 0.33), 그리고 글의 전개 방식과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의 변화 정도(△ 0.31)를 묻는 것이었다. 책의 내용을 단순히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이해하는 능력의 변화를 묻는 문항에서 학생들의 변화 폭이 컸다는 사실은 고전읽기 교육이 학생들의 고등 사고, 정신적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등 사고능력의 변화가 이루어지면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구성하여 전달할 수 있는 능력도 향상되었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의사소통능력 말하기 1번 문항의 결과인 것이다. 고전읽기 교육은 이처럼 각 역량 간에도 긴밀한 상관성을 가지면서 학생들의 종합적 성장을 견인하는 것이다.
셋째, 이번 연구에 참여한 대학들은 토론과 토의를 고전읽기 수업의 주요 활동으로 모두 적용하고 있었다. 국내 여러 대학의 고전읽기 교육 사례를 분석한 연구(최윤경, 한수영, 2021)에 따르면, 이번 연구에 참여한 4개 대학만이 아니라 고전읽기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읽기와 쓰기, 말하기(토론)를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통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토론과 토의는 고전읽기 교육의 교육적 성과 가운데에서도 특히 의사소통역량과 창의역량의 변화를 가져오는 동인으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함께 수업을 듣는 동료 학생들과 토론하고 토의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고전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하고 깊이를 깊게 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한 과정은 학생들이 기존의 자신을 넘어 또 다른 자신으로 성장하게 할 뿐 아니라 기존의 틀을 넘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그런 점에서 창의역량이 그 어떤 역량보다도 더 큰 변화를 보였다는 사실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고전읽기 교육이 지나간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지향적 교육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이다. 이러한 결과는 선행 연구에서도 지속적으로 확인되었던 것으로(권순구, 윤승준, 2020, 2021), 이번 4개 대학의 공동 연구에서도 동일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은 고전읽기 교육의 그러한 성과를 일반화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 하겠다.
넷째, ‘과제해결, 자료검색, 자료정리, 원인분석’에 관한 문항으로 구성된 문제해결 효능감 역시 이번 연구에서 눈에 띄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효능감은 개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에 관한 주관적 믿음으로 정의되며(Bandura, 1994), 학습 상황에서 성취나 학습 태도를 예측하는 데 유용한 변인으로 알려져 있다(Pajares, 1996). 이번 연구에서 고전읽기를 활용한 강좌를 수강한 학생들의 문제해결 효능감이 높아진 것은 교양 강좌로서 고전읽기의 교육적 유용성을 지지하는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문제해결 효능감의 증진은 고전읽기 수업 자체의 성과로 중요한 것이지만, 이후 학생들의 학습 성취와 태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의를 갖는다. 이러한 긍정적 학습 경험과 태도는 대학에서 학업을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창의역량과 문제해결 효능감의 각 문항에 따른 응답 결과, 이번 사전-사후 조사 결과에서 가장 변화의 폭이 컸던 문항은 창의역량의 4번 문항(△ 0.66)과 2번 문항(△ 0.48)이었다. 창의역량 4번 문항은 ‘나는 책을 읽고 책에서 논의되지 않은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2번 문항은 ‘나는 책을 읽고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낼 수 있다.’였다. 뿐만 아니라 문제해결 효능감 가운데 ‘나는 책을 읽고 관련된 문제(과제)를 해결할 자신이 있다.’(△ 0.44), ‘나는 책을 읽고 관련 문제(과제)와 관련된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자신이 있다.’(△ 0.40), ‘나는 책을 읽고 관련된 문제(과제)의 발생원인을 파악할 자신이 있다.’(△ 0.38) 이들 세 문항에서 학생들은 커다란 변화를 보였다. 고전읽기 교육은 고전 텍스트에 담긴 지식이나 사실을 학습하는 교육이 아니라, 토론과 토의를 통해 고전에서 제기하는 문제를 다각적으로 이해하고 입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고의 폭과 깊이를 더해 줌과 동시에 앞으로 당면하게 될 문제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맞서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교육인 것이다. 세인트존스칼리지가 미국 대학 가운데 가장 미래지향적인 교육을 하는 대학으로 선정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섯째, 고전읽기 교육의 성과는 학생들의 학업적 흥미 제고로 이어지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학업적 흥미가 높아진 점은 강의 만족도의 변화와도 연계해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학습자의 학습 태도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Hidi & Renninger, 2006). 학업적 흥미의 외적 요인인 상황적 흥미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으로는 교수자 및 교수 방법을 대표적으로 거론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자칫 지루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고전읽기 강좌에서 학생들의 상황적 흥미가 높아질 수 있었던 것은 강의를 준비한 교수자들의 노력과 효과적인 수업 운영을 위한 고민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사전설문에서 학생들의 강의만족도 평균이 다른 변인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사전-사후 강의만족도 평균의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서 높게 나타났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이다. 독서와 토론 활동을 주요한 방법으로 활용하는 고전읽기 교육은 학습자로 하여금 배우는 내용을 흥미롭다고 여기게 하며, 공부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몰입하도록 하고 관련 내용을 더 알아보고 싶을 정도로 동기를 유발하는 효과를 갖는다(김지영, 김종민, 2021). 고전읽기 교육은 이처럼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성취감을 충족시켜 주는 교육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큰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
이번 연구는 4개 대학의 사례를 통해 고전읽기 교육의 성과를 보편적으로 진단하고 확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대학마다 고전읽기 교과목의 구성이나 운영상의 특성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고전읽기 강좌가 학생들의 역량 변화와 효능감 및 학업적 흥미 제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고전읽기 교육이 교양교육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이번 연구에 참여한 각 대학의 교과목 구성이나 특성 가운데 어떠한 측면이 고전읽기 교육의 성과에 어느 정도 작용하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은 이 연구가 가지고 있는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부 대학의 참여 학생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점 역시 이 연구가 안고 있는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연구 결과가 더 큰 설득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전읽기 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과 고전읽기 교육을 받은 학생 간의 교육성과에 대한 비교 연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 문제를 포함해서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 고전읽기 교육 현장을 구체적으로 비교 분석하는 연구, 즉 이수 방식이나 성적평가 방식, 강의 규모에 따른 교육 성과의 차이, 토론이나 토의, 세미나 진행 방식에 따른 교육 성과의 차이, 통독과 발췌독에 따른 교육 성과의 차이, 텍스트 중심의 수렴적 교육과 텍스트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의 문제 해결에 관심을 기울이는 발산적 교육에 따른 교육 성과의 차이 등의 문제는 후속 과제로 남겨둔다.4)
References
Notes
A대학의 ‘권장도서 100권’ 목록은 해당 대학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읽기와 토론>, <인문고전 읽기>, <고전명작 읽기> 강좌에서 다루는 텍스트의 선정은 추천도서 100선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 추천도서 100선은 중립성(20), 대중성(30), 잠재성(30), 핵심역량과의 관계성(20)을 기준으로 교원, 교직원, 학생 등 구성원의 추천을 받아 도서선정위원회가 최종 결정한다. B대학의 ‘추천도서 100선’은 해당 대학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고전 교육 성과 측정 도구의 개발 및 타당성 검증 과정과 관련해서는 권순구(2020)에서 자세히 보고한 바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한 경개만 제시하고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권순구(2020) 참조.
나아가 이와 같은 연구 성과를 토대로 고전읽기 교육의 구체적인 모델, 교수학습 방법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탐색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