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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General Edu > Volume 18(3); 2024 > Article
기초학문 위기와 교양문리대학의 필요성

Abstract

본 논문은 교양과 전공의 조화, 담론하는 교양과 전문성을 두루 갖춘 지식인의 창출이라는 대립하는 목표가 대학의 탄생 이후 원천적으로 가진 내적 모순이라는 시각에서 기초학문 위기 문제에 접근한다.
이 글은 4차 산업혁명과 AI 시대로 불리는 오늘날의 시점에서 한국 사회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왜 기초학문이 중요한가라는 ‘원론적’ 관점을 재확인하고, 한국 대학의 위기, 즉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엄혹한 상황적 현실을 고려한 대학과 기업의 상호의존성을 추구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고민하면서 단위 대학의 경쟁 체제에서 탈피하고 한 사회의 대학생태계를 재구성하는 대학 개혁의 방안으로 교양문리대를 제안한다. 또한 이러한 대학체제의 교육과정을 구체화하여 이 학사구조에서 채택할 교육과정으로서 교양기초, 교과기초융합, 신리버럴아츠융합의 세 단계를 통하여 복고적인 교양주의가 아닌 새로운 지(知)로서 신리버럴아츠의 창출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기초학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Abstract

This paper addresses the inherent contradiction in universities since their inception, which involves the harmonization of discourse between liberal arts and specialized education and the creation of intellectuals with a blend of both general and specialized knowledge. Instead of resorting to traditional liberal arts approaches, this paper proposes a solution to the crisis in foundational studies from the perspective of creating a new paradigm known as “New Liberal Arts,” overcoming the internal contradictions fundamentally present in universities. Alongside this perspective, this paper reexamines the importance of foundational studies in today’s context, taking into consideration the current crisis in Korean universities. It acknowledges the harsh reality of university restructuring and seeks practical approaches that account for the interdependence between universities and businesses, proposing a university reform framework. The paper suggests the establishment of a liberal arts and sciences college (LASC) as a realistic solution to reconstruct the university ecosystem within a society. Within this academic structure, this paper outlines a three-stage curriculum involving the classical liberal arts, foundational convergence education curriculum, and New Liberal Arts.

1. 서론: 한국사회의 발전 수준과 학문 체계

대학의 위기는 대학인이라면 수십 년째 듣는 주제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진짜 위기다. 특히 모든 대학의 위기라기보다는 지방대학의 위기다. 이는 학문의 위기와 같은 고상한 위기가 아니라 수요 공급의 불일치에서 나오는 생존권의 위기다. 생존권 위기에 휩싸인 대학사회는 대학의 이념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다.
구조개혁 평가가 없어진 현재 시점에서 수도권 대학은 상대적으로 여유롭다. 그런데 갑자기 무전공모집을 대학지원의 전제조건으로 한다고 한다. 2024년 1월 언론에 발표된 교육부의 정책연구 시안에 의하면 수도권 대학과 (지방) 거점 국립대, 국가중심 국립대의 경우, 무전공 선발을 확대하여야 대학혁신지원사업과 국립대학육성사업의 지원에서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취지는 ‘학생이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확대하고 미래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대학 내 학과 간 벽을 허물고 자율전공선택제를 확대’하는 것이다. 이에 의하면 대학단위로 무전공모집(예: 자유전공학부)을 한 후, 대학 내 모든 전공(보건의료, 사범계열 등 제외)을 자율 선택하는 유형1을 5% 이상(26년부터는 10%로 증가)하고, 계열 또는 단과대학별로 모집한 후 해당 계열 또는 해당 단과대학 내의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하게 하는 유형2를 20%(25년부터는 25%)를 해야만 인센티브 지급의 대상이 된다.
이 정책의 일차적 효과는 학생의 선택권 확대다. 문제는 이 경우 소위 응용분야의 인기학과로 몰리게 되어 비인기학과가 소멸하게 되는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또 소멸되는 비인기학과로는 기초학문 분야(인문학, 자연과학)가 대부분이므로 문제가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면 대학에 기초학문이 없어지게 될 텐데, 이런 대학을 과연 대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대학이 무엇인가라는 대학의 이념이 문제가 된다.
이에 비판적인 견해는 이미 2009년 도입한 자유전공 제도의 실패 사례를 들어, 왜 15년 전 실패한 정책이 반복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정말 왜 계속 반복되는 것일까? 이전의 경험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데도 이런 시도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단순히 찬/반을 넘어서 무엇인가 핵심적 문제가 없는지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학술적 검토를 해보면 이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대학이 출현하여 발전하면서 대학이 현대화되고 유니버시티가 멀티버시티로 되면서 산업과 교육, 기초학문과 응용학문, 교양과 전공 등의 쟁점은 보편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미국 대학에서, “대학과 기업은 그 아이덴티티에서 날로 서로 거리를 증폭하고 이질적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또한 상호의존성을 높이고 있다.”(Kerr, 1994) 여기에 왜 실패한 무전공 선발 확대 정책이 학생의 선택권 확대라는 명분으로 계속 반복되는가라는 점에 대한 실마리가 있다. 이 문제는 단순히 우리나라 대학 정책에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라 대학 그 자체에 내재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이는 대학과 기업, 학문과 산업의 관계 문제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될 수 밖에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한 나라의 운명이 좌우될 수도 있다. 이광주(2018, p.83)는 대학과 기업, 대학과 산업의 상부상조의 희망과 반대로 대학 내에서 제기된 ‘이의제기’라는 역사를 통해 - 68학생 운동 - 도달된 여러 가지 사회적 합의 중 <버컬리의 철학>(1966.3)에서 제안된 ‘인문주의적 교양과 담론의 학풍을 복원해야 한다’는 철학을 강조한다. 즉 “담론하는 교양과 전문학의 조화, 교양과 전문성을 두루 갖춘 지식인의 창출, 이것은 오늘날에도 유럽과 미국 대학의 최대의 과제로서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추구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를 단순히 복고적인 교양주의와 달리 새로운 지(知)의 창출이라는 관점에서 위치 지운다.
이 글은 위의 관점을 지지하면서 새롭게 덧붙여진 현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대학 위기라는- 이 포함된 맥락 속에서 위의 과제를 논의해보고자 한다. 논의의 초점은 오늘날의 시점에서도 왜 기초학문이 중요한가라는 ‘원론적’ 관점을 재확인하고 (2절),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엄혹한 상황적 현실을 무시하지 않고 이를 고려한 대학과 기업의 상호의존성을 추구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으로서 대학체제를 고민하며 (3절), 이러한 대학체제의 교육과정을 구체화 (4절) 해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단위 대학의 경쟁 체제에서 탈피하여 한 사회의 대학생태계를 재구성하는 대학 개혁이 필요함을 주장할 것이다. 그러한 개혁의 핵심적 내용으로 교양문리대를 제안한다.

2. 학문 체계에서 기초학문의 필요성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과학기술적 격변의 시대를 맞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지식의 폭발적 증가와 융합의 가속화로 교육의 목표, 교육 내용 및 방법 등 교육 전반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방향은 교양교육의 변화 및 융합교육의 필요성으로 요약된다.
첫째, 4차 산업혁명은 초융합성, 초연결성, 초지능성의 특징을 갖고 첨단 과학기술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빠르게 융합하면서 사회에 빠른 속도로 확산하여 지식기반 사회에서 끊임없이 생산되는 새로운 지식을 배움과 동시에 낡은 지식이 되는 지식의 가치변화는 새로운 교양 교육의 필요성을 각인시켜 준다는 것이다. 기존 대학 교양교육의 프레임을 가지고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양교육은 한계에 이르러, 교육의 목표, 교육내용 및 방법 등 교육 전반을 다시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하였다(백승수, 2017, p.13-51).
둘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해갈 학문 분야에 대해서는 ‘편협한 전공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개별 학문 분과의 경계를 초월한 전공교육과 차별화된 융합학문으로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예로, NBIC로 불리는 나노(Nano), 바이오(Bio), 정보(Info), 인지(Cogno) 중심의 과학기술분야를 서로 합쳐서 창의적인 연구결과를 내놓는 것을 뛰어넘어, 과학기술과 인문학을 결합하는 확장적 융합으로 나아가고 있는 추세이다(박혜정, 2020). 일본의 경우 2000년도 초반부터 문이과 구분을 없애고 문리융합형 연구와 교육을 대학개혁의 핵심으로 추진하는 방향전환을 했으며, 한국도 2009년 융합연구가 국가과학기술 발전의 6대 전략으로 명시되었다. 또한, 연세대학교의 경우 자연과학 주도의 융합과학적 내용의 교양교과목 개설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문명과 질병”, “삶과 성”과 같은 교과목이 개발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건국대학교의 경우 통합과학과목으로 “자연과학개론”, “대학기초물리학” 등의 과학융합교육의 운영 사례가 있다(정미, 2023). 이외에도 ‘활과 리라: 생물학과 철학의 창조적 접점 찾기’, ‘과학기술과 사회윤리’, ‘과학적 사유와 문제해결’, ‘인문사회학을 위한 수학’, ‘수학-자연, 사회, 인간의 구조탐구’, ‘디자인과 수학’ 등의 교양과목들이 개발되어 운영되고 있다(손향구, 박진희, 이관수, 2018).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정책은 기초학문 교육보다는 기초학문 연구 및 융합연구에 대한 투자를 강조한다.
우선 ‘4차 산업혁명”이 인공지능(AI), 로봇공학,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자동차, 3D 프린팅, 나노기술(NT), 바이오기술(BT), 정보기술(IT), 인지과학, 신소재공학, 에너지 저장기술, 양자 컴퓨터 등과 같은 과학기술 분야의 해당 R&D 분야에 대한 투자를 증대해 왔다. 한국 정부는 기초 연구 투자 확대 기조를 유지하면서 정부 전체 R&D 투자 대비 기초 연구비를 크게 증가시켜왔으며, 이러한 경향은 최근까지 그 기조가 유지되어 최근 5년간 (’18~ ’22) 국가연구개발사업 집행액은 연평균 9.7% 증가하였다(김한울, 한혁, 2023). 특히, 기초 연구는 성격상 정부 자체가 수요자이며, 기초 연구로 획득한 지식은 공공재적 성격이 강해,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은 시장에 기대하기 힘든 시장실패가 유발되는 경우로,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인 이유로 제시되어 왔다. 기초연구는 연구 수행 기간이 길고, 성과가 불특정 다수에 공유되며, 연구투자 후 경제적 성과 도출까지 오랜 시일이 소요되는 특징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 관련 유용한 지식의 축적, 훈련된 과학기술 인력의 공급, 연구장비 및 실험방법론을 통한 기여, 혁신 주체들 간 네트워크 형성 및 상호작용의 촉진, 그리고 문제해결 능력의 향상을 통해 과학 발전에 기여한다는 장점 등에 의해 그 투자와 지원이 당연시되어 왔다.
둘째, 정부의 기초 연구 육성에 대한 의지 및 정책은 21세기 과학기술환경이 “21세기는 지식 창출 능력이 국가경쟁력의 기본이 되는 지식기반사회로, 창조적 과학기술의 지속혁신을 위한 국가간 경쟁이 본격화”되는 시기로, 기초과학에 있어 (1) 기초과학과 산업기술의 통합으로 인해 학문성에서 응용성으로, (2) 과학기술융합화에 따른 응용의 확대로 인해 연구가 개별적 연구에서 학제간 연구로, (3) 개인 창의성 중심의 연구활동이 요구되는 모방 연구에서 창의적 연구로, (4) 세계를 무대로 한 네트워크 R&D가 활성화되는 국지적 연구에서 국제적 연구로 변화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과학기술부, 2003).
그런데 기초학문 연구라는 관점에서 기초학문 활성화를 고민하고, 기초학문 연구 조차도 융합연구의 맥락에서 접근한다면 4차 산업 혁명시대의 과학기술사회에서 요구하는 융합형 인재교육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여기서 융합형 인재양성이 기초학문 부재의 상태에서도 가능할지에 대한 논의가 부재하다. 하지만 아래의 인용은 기초학문이 선진국의 조건임을 주장한다.
근대와 현대의 세계사에서 서양이 주도권을 잡고 동양을 지배하거나 영향을 행사한 것은 한마디로 서양이 기초학문을 중시해서이거나 또 근원적으로 동양과는 달리 순수 이론 학문의 영역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남경희, 1997, p.15)
그런데 기초학문의 활성화는 기초학문 교육과 연구의 연계가 중요하다. 즉 기초학문 육성은 기초학문 교육과 뗄 수 없는 관계이므로 아울러 기초학문 교육의 활성화 역시 중요해진다.
응용학문의 경우 박사인력 공급과 수요는 산업과 긴밀히 연계된다. 예를 들어 인재 수요 공급의 미스매치를 논의할 때, 기업⋅국가⋅사회에서 요구되는 주력⋅신산업 분야 인력공급이 부족하며, 배출인력에 있어서도 산업수요와 인력공급간 ‘질적 미스매치’ 현상이 발생하고 있으며, 학령 인구의 감소에 따른 대학원 유입의 감소로 석⋅박사급 인재의 수급 불안이 지속된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지적된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20). 이는 인력의 전공영역을 직업 수요와 연계한 분석이다.
하지만 기초학문의 경우 산업과 연결시켜서는 인재 육성의 필요성을 피력할 수 없을 것이다. 기초학문의 인재 수요는 대학의 교육수요와 연결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기초과학 활성화를 위해서는 대학의 교양과정에서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현대사회의 과학기술문화적 차원에 관한 교양 과학교육의 필수화 등을 통해 기초과학 교육의 수요를 증대시켜야 기초과학 연구도 활성화될 수 있다.
한편 우리가 당면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과학기술사회에서 요구하는 융합형 인재의 양성을 위해, 대학에서 진행되는 과학 교양교육은 단순히 과학 지식을 습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학, 인간, 사회에 대해 통합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성찰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신장하고 이를 토대로 문제해결 능력을 함양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정미, 2023). 그런데 현재의 교육이 인문 영역과 과학기술 영역이 분리되어 있고, 각 영역 내에서도 순수 분야와 응용 분야의 분리로 인해 4차 산업에 대응하는 교육의 측면에서 장애가 되는 한계(WEF, 2016) 속에서 융합인재 양성 교육은 그 내용상 실용적 융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오히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융합교육은 기초과학만이 아닌 인문학과 기초과학을 망라하는 기초학문 교육에서의 융합교육일 필요성이 있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격변의 상황은 과거 르네상스 인문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교육혁명이 일어난 것에 기시감을 갖게 한다. 격동기를 살아남을 나침반을 얻기 위해 15세기인들은 신에게 기대기보다는 인간 자신의 능력과 활동으로 관심을 환기하고, 이를 확대하고 심화하는 쪽을 선택하여 논리, 수사, 문법의 3학과 산술, 기하, 천문, 음악의 4과 중 3학이 역사, 철학, 문학으로 개편되었다. 이 과정에서 인문주의 교육 혁신의 핵심은 기술적 역량에 집중했던 전통적인 3학의 방향을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교양(virtu)의 함양으로 전환했다(박혜정, 2020).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융합적 사고”는 특정한 교과 지식의 단순한 전달이나 숙달이 아닌 핵심역량 속에 포함된 총체적인 사고능력을 의미하며, 이는 과학과 기술, 인문학과 예술, 의학 학문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지식을 갖추고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기존의 기술에 인간의 편의성과 감성을 극대화해 인류의 발전에 영향을 주는 사고를 의미한다1)(교육과학기술부, 2012). 융합적 인재로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치, 조선의 세종대왕, 미국 건국의 아버지 프랭클린 등은 모두 과학과 인문학을 섭렵한 융합 인재였다.
4차 산업혁명이 논의되는 오늘날 시점에서도 융합은 르네상스 시기의 융합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융합은 일종의 나선형으로 발전해야 하는 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의 융합이 기초학문을 부정하고 형성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서울 소재 대학에서 인문사회계열 학과 17개가 폐지됐다. 반면 공학 계열 학과는 23개 신설됐다. 최근 9년간 전국 4년제 대학 인문계열 학과 155개가 사라졌다. 인문계열 학과는 2012년 962개였지만 2021년 807개로 16%가량 줄었다. 특히 학령인구 감소로 학생 수가 줄면서 전체 학과 수도 줄었지만 공학계열은 2012년 1,333개에서 2021년 1,446개로 113개(8.5%) 증가하였다. 반면 자연과학계열 학과는 2019년 19개, 2020년 37개, 2021년 74개가 각각 통폐합되었다(한국대학신문, 2023).

3. 기초학문 발전의 전략으로서 교양문리대학

이와 같이 기초학문이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도 불구하고 기초학문 인재 양성과 교육과정을 활성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면,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 기초학문을 육성해야 한다면 우리 현실에 맞는 합리적 전략은 무엇일까?
기초학문을 육성해야 한다는 담론은 많지만, 실제로 이를 위한 정책은 연구재단을 통한 인문사회 연구예산과 기초과학 연구예산을 통한 지원 프로그램이 주된 요소다. 이 중 기초과학 연구는 1989년 <기초과학진흥법>을 제정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정부주도의 기초연구사업별 세부추진은 과기정통부의 <기초연구사업시행계획>과 교육부의 <이공분야 학술연구지원사업 종합계획>에서 매년 제시한다. 2009년에는 <한국연구재단법>을 제정하여 한국과학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을 통합하여 산하에 <기초연구본부>를 두고 기초연구를 통합 지원하게 되었다. 해당 기초연구의 예산은 과기정통부가 수립한다.2)
우리나라의 R&D 규모는 2020년 약 93.7조원 정도인데 이 중 기초연구비가 13.4조원 수준이고, 비중은 15.7% 수준으로 2014년 이후 절대액은 증가하나 비중은 감소세다. 이 중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는 22년의 경우 2.5조원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기초연구 학문 분야는 의약학, ICT융합, 공학, 생명과학, 자연과학의 5가지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한편 학술연구 지원차원에서 접근하면 인문사회분야는 총 4,220억원, 이공분야는 총 5,147억원(2024년 학술연구지원사업 종합계획) 수준으로 지원되고 있다. 연구재단의 기초학문(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예산 규모가 작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투자를 함에도 불구하고 인문 및 자연과학의 기초학문 위기가 재생산되고 있다면 기초학문 육성의 전략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모든 학문도 마찬가지지만 기초학문은 연구와 교육의 연계가 더 중요하다. 따라서 연구를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미 연구재단의 지원 프로그램 구조 역시 이 점이 반영되어 전임교수의 연구비는 제한적인 반면, 대학원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쳐 학위를 획득한 연구자들의 취업 구조가 고려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연구자의 경우 대학원 과정에서는 학비면제 및 최소한의 연구비 지원으로도 충분하지만, 학위 이후의 취업 계획이 불명확하다면 대학원 진학을 꺼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초학문의 경우 학위 이후 취업할 곳은 대학밖에 없다.
하지만 대학의 기초학문 학과가 폐쇄되고 있는 지금 현실로 인해 결국 기초학문 연구과정은 재생산의 생태계가 끊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기초학문 활성화는 대학체제 개편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대학 정책을 단순히 대학의 구조조정 문제로, 또 학생들의 선택권 문제로 접근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교육과 연구를 연계시키는 학문 재생산의 생태계적 관점이 필요하다. 이는 연구와 교육을 통합한 대학의 존재 의미를 설명해준다. 이렇게 교육과 연구를 통합시킨 근대적 대학형태는 독일의 훔볼트 대학에서 시작한다(이광주, 2018). 여기서 훔볼트 형 대학이란 연구기능을 갖춘 대학을 말한다. 훔볼트 대학은 최초의 연구자 양성 대학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훔볼트 형 연구 중심대학에서도 강조한 것은 교양(Buildung)이었다. 한편 미국에서 대학이 만들어질 때는 교육과 연구가 분리되어 학부교육과정은 교양교육으로 구성되었다(박윤철, 2020, p.63). 미국에서의 최초의 훔볼트 형 대학은 존스홉킨스 대학인데, 존스홉킨스 대학은 연구중심대학을 설립할 때 기존의 리버럴아츠 중심의 학부교육에 대학원 교육과정을 개설하는 방식으로 대학원 제도가 정착됨으로써 학부는 교육(교양 즉 리버럴아츠), 대학원은 연구라는 분업과 연계가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구중심대학, 교육중심대학, 직업중심대학의 3분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대학이 팽창했던 시기에는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의 구분이 모호했고 모두 훔볼트식 대학을 지향했다. 이제 대학 구조조정의 시기에 오면 단일의 개별 대학이 훔볼트식 대학을 지향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이때는 단일의 대학이 아닌, 연합대학의 차원에서 연구와 교육을 통합할 필요가 제기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는 개별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이 통합되고,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이 병존한다. 이 와중에 개별 대학 간 생존경쟁은 연구와 교육에서는 연구기능의 황폐화,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에서는 기초학문의 황폐화로 이어졌다. 즉 기초학문을 보호, 육성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개별 대학 관점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규환(2018)은 지방의 대규모 사립대학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시도가 실패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관리 원칙이 달라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을 서로 관계 지울 수 있도록 대학체제를 설계할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칸트에 따르면 대학이란 곳은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와 같은 ‘상급학부’와 철학부라는 ‘하급학부’의 변증법적 통일체다.(요시미 순야, 2014, p.103)
이러한 칸트의 문제의식은 이후 끊임없이 반복되는 대학 갈등을 설명해준다. 즉 대학 내 갈등은 대학의 정의 자체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와 유사한 일본의 현실 속에서 대학의 정의,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 요시미 순야(2014)는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라는 상급학부와 철학부의 하급학부의 긴장과 대항 관계 속에서 대학이 존재한다는 칸트적 문제의식(칸트, 학부간의 논쟁)의 맥락에서 전문지식과 리버럴아츠가 서로 대립할지언정 대학 내에서는 공존하는 발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공존의 구체적 상은 전문지식이 가진 세분성의 지나침과 종합성의 부재라는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유형의 리버럴아츠의 발견을 통해, 전문지식과 새로운 리버럴아츠를 결합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질문은 새로운 리버럴아츠가 기존의 교양교육, 고전교육과 어떻게 구별되어야 하는가이다. 교양(리버럴아츠) 중심의 학부교육과정과 전문지식 중심의 대학원 과정으로 대별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 대학에서 교양교육이 중세적 교양교육과 많이 다르듯이, 오늘날 요구되는 새로운 리버럴아츠 역시 현대 대학의 교양교육과 달라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그러한 교양교육은 현대 과학의 전문화를 경험한 후의 교양교육이어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즉 이미 베이컨(1605) 이후 현대 과학의 발현을 경험한 우리는 단순히 중세적, 근대적인 리버럴아츠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현대 과학이 가져온 성과 뒤의 한계인 전문화 주의를 극복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초학문 교육을 활성화하는 학사제도에 관한 연구로는 한국형 리버럴아츠 대학 모형에 대한 선행연구가 있다. 미국에서 유래한 리버벌아츠 칼리지는 4년 내내 교양교육을 받는 대학 학부 교육과정으로 알려져 있지만 주된 교육 영역이 인문, 사회, 자연의 기초학문 교육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부에서 기초학문 교육을 충실히 하고, 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여 전문직업인이 되거나, 교수 등 연구자가 되는 경로인 것이다(박병철, 2018). 미국형 리버럴아츠 칼리지는 학부교육에서 직업교육과 상관없는 일반교양교육을 받는 독특한 모델이지만 대학원 단계로 가면 법학, 경영학, 의학 등이 인기학과라는 점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전문 직업교육을 시작하기 전에 기초학문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 사회적 인식이라는 점이 다르다.
미국의 리버럴아츠 칼리지는 소수 정예의 고액의 교육비를 요구하는 사립 교육기관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한국과 같은 외국에서 쉽게 적용하기 어려운 모델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조건 속에서 즉 전공이 입학 때 결정되는 대규모 학부대학의 특성의 조건 하에서 대학 내 대학이라는 형태로 미국형 리버럴아츠 칼리지 모형을 도입하려는 시도 및 연구가 있다. 이러한 시도는 미국형 리버럴아츠 칼리지의 학제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가져오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 정신이란 융합적 기초학문 교육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을 한국적 현실에서 구체화하기란 매우 어려운 과제다. 백승수의 경우는 아예 독립적 리버럴아츠 대학을 제안한다(백승수, 2018). 미국형 사립 리버럴아츠칼리지가 아니라 국립 리버럴아츠 칼리지다. 우리나라도 자연과학에는 특수목적형 대학들이 존재하듯이 인문사회계의 특수목적형 대학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문사회를 자연과학에 비해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대규모 비용이 투입되는 국립 리버럴아츠칼리지 설립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게다가 소규모의 엘리트 교육이어서 대중적인 확산이 원천적으로 어렵다. 안현효 외(2022)는 단설 국립 리버럴아츠칼리지 대신으로 교양과정만 국립화한 국립교양대학을 제안하였다. 이를테면 세종시가 시도하는 대학 유치 사업에 전공과정만 있는 것에 착안하여 세종시에 1년제인 국립교양대학을 만들어 전공 학생들의 교양과정을 담당하자는 것이다. 이 실험이 성공하면 전국으로 확산하자는 계획이다. 이 계획은 단설 국립 리버럴아츠칼리지에 비하면 대중적 확산이 가능한 모델이지만 1년 교육과정에 한정되어 다음의 질문을 답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한국형 리버럴아츠칼리지 모델에서는 대학생이라면 누구든 섭취해야 할 자유교양이라는 자양분을 모든 학생들에게 제공한다는 ‘폭넓음’을 넘어서 미국의 리버럴아츠 교육기관들이 해내고 있는 ‘깊이 있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박병철, 2018, p.111).
이 문제의식 하에서 문리대를 재구성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림 1]과 같이 임현진(2012)은 한국형 기초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학사과정을 기초학문 중심의 문리대학으로 편성하고 전문직업교육은 전문대학원으로 편성하자고 주장한다. 이는 훔볼트식 연구중심대학 및 미국식 연구중심대학의 편성을 따르자는 것이다. 4년 동안 기초학문 교육을 할 수 있다면 진정한 의미의 기초학문 중심의 융합교육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모형은 법학대학원과 의학대학원 실험에서 보듯이 한국의 토양에서 성공하지 못하였다. 특히 구조조정 국면에서 기초학문이 황폐화하는 현재로서는 무엇보다 현실적 대안이 필요하다.
[그림 1]
새로운 학부, 대학원 통합 모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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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학과 모델, 즉 교수와 교육과정만 존재하고, 학과 단위 모집이 없는 기초학문 학과 모델을 제안한다. 이러한 새로운 학과는 대부분 기초학문 학과들일 것이므로 이들을 묶는 단과대학은 문리대학적 요소를 가진다. 원래 이 모델을 제안한 연구는 대전대 모델(최병문, 2017)이다. 대전대는 1년제 교양교육과정으로 혜화리버럴아츠 칼리지를 세우고 내부에 이전에 폐과한 기초학문 학과 설립안을 고려했다. 이는 손동현(2016)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것이다. 여기서 학과에는 교수와 교육과정만 있고, 학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Yale-NUS(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College의 사례(손승남, 2017)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교양교육과정이 2년이다. 즉 전공은 3학년 때 선택한다. 이로써 리버럴아츠 교육의 ‘깊이’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기초학문 학과들의 경우 기존의 학과 체제로 존립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모집단위까지 가진 기성의 학과처럼 운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때 기초학문 학과들이 심화된 교양교육과정, 또는 새로운 리버럴아츠의 실현체로서의 교양교육과정을 담는 문리대학에 소속된다면 이것이 교양문리대학 모델이다. 교양문리대학은 교양교육과정과 문리대학을 통합한 것인데 모집은 교양문리대학 단위로 모집하고 교양문리대학은 기초학문 학과를 편성하여 해당 대학교의 교양교육과정을 맡는다. 이 단과대학이 교양문리대학이라는 이름을 갖는 이유는 응용분야, 또는 전문지식 학과들처럼 학과별 모집단위를 갖지 않고 교양문리대학 단위로 모집하고 대학의 교양교육과정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교양문리대학은 사회 전체의 기초학문 재생산과 연계를 갖는 대학생태계의 일원이므로 최소 4학기의 교육과정을 가지고, 인문/사회/자연의 기초학문 교육을 충분히 이수하도록 한다. 대신 이후 학생들은 전공을 제한 없이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 학생들이 선택하는 전공은 취업과 연계된 응용학문 분야가 될 것이다. 여기서 만드는 교양문리대학은 2년제로서, 기존의 교양교육과정에 기초학문 교육과정을 추가하여 교육과정을 확보함으로써 기초학문 대학원을 육성하는 부수적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신리버럴아츠는 일상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급변하는 지식과 기술을 미래지향적인 비전 설계에 활용할 수 있는 총체적이고 창의적인 사유 역량의 함양을 위해 제안된 것이다. 아울러 이같은 “고도로 세분화됨으로써 종합적인 관점을 잃어버린 전문지식을 결합하고 여기에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부여하는”(요시미 순야, 2014, p.35) 교육을 지향하는 교양문리대학은 단순히 기계적이고 병렬적인 미시 학문의 결합이 갖는 한계를 뛰어넘어 보다 적극적인 융복합 교육을 추구하고 현재의 교육 체제에 내재한 구조적 제약을 해결하기 위한 지속적인 논의의 산물로서 신리버럴아츠를 담는 그릇이 될 수 있다.

4. 교양문리대학의 교육과정

리버럴아츠의 각 영역 편제는 당대의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변형되어 구성되었다. 기초학문으로서의 교양교육에 대해서는 이미 고대부터 그 중요성을 알고 “고대 헬라인들은 지식 최상위 목표인 지혜를 철학에서 얻으려 했으며 이를 위한 예비학습 과정을 고안하였다. 그들은 사회 지도층의 핵심역량을 리버럴아츠를 통해 함양하려고 하였고 이는 로마인들에게 전수되어 법률과 공공생활을 위한 실용적인 용도에 충당하였다.”(한철희, 2012, p.192) 리버럴아츠가 최상위 학문을 위한 ‘예비학습 과정’이자 ‘사회 지도층의 핵심역량 함양’에 필요한 교육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은 현재의 리버럴아츠에 대한 인식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더 나아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이 로마인들에게 전수되어 ‘실용적인’ 요구에 부합하게 되었다는 사실 또한 리버럴아츠의 공동체적 중요성을 이미 앞서 증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오로지 하느님을 위한 학문인 ‘신학’만이 발전했을 것으로 오해할 만한 중세 시대에도 리버럴아츠는 중요한 학문 분야로 수용되었다. 물론 신 중심적 세계관이 주류적 인식론으로 자리잡은 중세 시대에 신학이 학문 영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기독교의 보편적 수용과 확장을 위해서 신학 이외의 다양한 영역의 학문들도 폭넓게 수용하였다. 이와 같은 태도는 신학만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려는 신학 만능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 다른 기초학문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이교도의 학문을 기독교가 중심이 되어 받아들이고자 하는 특징을 지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례로 “어거스틴은 성서 학습을 위한 예비학문과 건전한 신앙적 통찰을 목표로 일곱 가지 liberal arts를 확정하여 중세 기독교인들의 지침이 되게 하였다. 12세기에 출현한 대학은 신학적인 논쟁을 겪으며 법률과 의학이라는 실제적인 학문과 함께 liberal arts를 하위적 예비학문으로 교과에 병행하였다.”(한철희, 2012, p.192) 이 때 일곱 가지 리버럴아츠는 문법, 수사학, 변증법(논리학)의 3학(Trivium)에 산수, 음악, 기하학, 천문학 4과(Quadriuium)를 더한 구성이다.
르네상스 시기는 고대 인문주의 정신의 부활을 지향한 시기로 3학은 개편되어 문학, 역사, 철학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의 맥을 잇는데 “당시 인문학자들의 내재적 가치를 존중하는 엘리트주의는 결과적으로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켰고, 오늘날의 전문직(profession)은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한 것이다. 근대성의 단초를 제공한 르네상스는 다만 인문학으로 복귀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문직의 발달은 대학의 발달과 함께 다양한 학문적 욕구를 증대”(김정래, 2009, p.9)시켰다. 이 시기 학문 영역은 더 폭넓게 다양화되었고 자연과학의 발전이 학문 영역의 확장과 다양화를 촉진시켰다.
근대는 완전한 분과학문의 시대로 전환된다. 과학의 발전이 산업혁명 시대를 거치면서 급속화되었고, 그 결과 다양한 학문 영역들이 세분화된 결과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분화되고 파편화된 분과학적 학제는 고도로 전문화된 지식을 생산하기는 하지만, 지나친 전문화로 인해 다른 학문 영역과 무관한, 고립된 상황에 빠지게 되며, 이와 같은 상황은 보다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사유와 인식의 필요성을 낳게 되고, 현재의 분과학적 체제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촉발하게 된다. 리버럴아츠의 필요성이 다시 중요하게 부각되는 이와 같은 계기를 통해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리버럴아츠는 인문학, 예술, 사회과학 그리고 자연과학을 포괄하는 교육으로 정착하게 된다.”(손승남, 2011, p.48) 근대는 인문학, 예술, 사회과학, 자연과학으로 기초학문을 포괄하는 교양교육의 영역이 체계화된다. 그러나 리버럴아츠의 운명은 이후에도 평탄하지 않았다. 대학의 실용적 기능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의 영향으로 인해 대학은 취업경쟁에 매몰되어 기업에서 요구하는 인재를 배출하는데 골몰하게 되었고, 직무교육에 치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기후위기, 신자유주의가 가속화한 불평등과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저성장과 저고용 등의 시대적 난제는 기존의 분과학문만으로는 해결이 쉽지 않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낳게 되었고, 이에 학문 간의 단절 또는 병렬적 결합의 한계를 넘어 보다 적극적인 융복합 교육이 요구되고 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글로컬 대학’의 중점 방향의 키워드 중 하나는 ‘벽 허물기’로, 지식을 활용하는 데 있어 장벽을 없애는 것이다. 교육부가 공지한 ‘대학 내부(학문⋅학과 간) 벽 허물기, 대학-지자체-연구소 간 벽 허물기, 대학-산업계 간 벽 허물기, 국내-국외 간 벽 허물기’(교육부, 2023a, p.8) 등은 분과학문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혁신이 필요하다는 교육계의 자각의 산물인 셈이다. 이에 교육부는 다변화된 사회수요에 대응하고 학생의 다양한 교육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유연한 학사 운영, 혁신을 주도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내부 체제 개편을 요구하고 JA(Joint Appointment) 교원(학과-학과, 대학-대학, 대학-산업체 공동 소속으로 임용하는 교원), 우수 교원 임용을 위한 교원 승진⋅인센티브 재설계, 무(無)학과제도⋅융합전공⋅자기주도설계 전공(concentration), 기초교양 학부-전공탐색기간, 복수전공 활성화 등을 강조하고 있다(교육부, 2023a, p.9). 시대적 요구를 수용한 혁신적인 융합 체계의 도입처럼 보이는 이와 같은 정책은 자칫 잘못하면 그 취지와는 달리 비인기 학문, 즉 취업률과 무관한 것으로 여겨지는 교양과 기초학문이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교양과 기초학문을 중심으로 다양한 지식을 균형있게 함양함으로써 시민사회의 교양있는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 역량을 함양하고, 지속가능한 과학 발전의 초석을 놓을 수 있는 ‘교양문리대학’의 교육과정을 설계해 보고자 한다.
여기서 제안하고자 하는 ‘교양문리대학’ 모델은 ‘교양’과 ‘기초학문’ 분야가 중심이 되는 교육과정이다. [그림 2]에서 알 수 있듯이 교양문리대학 교육과정 구성 방향은 교양과 전공의 기초가 되는 교육 콘텐츠의 유기적 결합을 지향하고 분절적 수강 구조를 넘어 개인의 역량을 체계적으로 향상해 나갈 수 있도록 기초부터 심화과정까지 유기적이며 융합적인 교육과정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에 부합하도록 교양문리대학의 교육과정 영역은 기본교육으로 《교양기초》교육, 전공기초교육으로 《교과기초융합》교육, 주제별심화교육으로 《신리버럴아츠융합》교육을 설계한다. 《교양기초》교육은 가장 기본이 되는 교육으로 고전적인 의미의 리버럴아츠 교육의 성격을 가지며, 주체적 사유와 비판적 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교과목을 통해 전인적 성장을 도모하는 기본교양교육과정이다. 그리고 《교과기초융합》교육은 현대과학 등장 이후의 기초학문 교육의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전문역량과 자기주도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세계탐구와 통찰력 향상을 위한 기초학문교육과정이다. 《신리버럴아츠융합》교육은 《교양기초》교육과 《교과기초융합》교육과정을 이수한 이후의 심화과정으로서, 이 교육과정에서는 문제해결과 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하고 공유, 소통, 융합의 유기적 과정을 지향한다. 이 구성 방향을 기준으로 교양문리대학 교육과정을 설계해 본 예시는 [그림 3]과 같다.
[그림 2]
교양문리대학 교육과정 구성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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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교양문리대학 교육과정 구성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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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토대가 되어야 할 기초교육은 직업관련 교과목이나 응용 교과목이 아니다. 한국교양기초교육원이 2022년에 제시한 교양기초 교과목의 기본요건 중 적극적 기준의 일부 내용을 보면 “교양기초 교과목은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전 영역에서 공인된 학술적 가치를 갖는 과목이어야 하며, 학생이 학문 간 상호관계를 이해하고 이를 동시대의 삶의 방식으로 수용토록 해야 한다.” 그리고 “교양기초 교과목은 그 학술적 수준이 대학교육 전반에 미치는 것이어야 한다. 체험 교육의 중심이 되는 인성 함양 교과목은 지덕체의 조화로운 발달을 꾀할 수 있도록 지식의 습득과 인격의 연마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한국교양기초교육원, 2022, p.8)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교양문리대학의 교육과정 또한 “학생이 학문 간 상호관계를 이해하고 이를 동시대의 삶의 방식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하며 “그 학술적 수준이 대학교육 전반에 미치는 것”이어야 한다는 ‘한국교양기초교육원’의 기준을 기반으로 한다.
먼저 대학의 교과과정은 교양교과목, 기초학문교과목, 전공교과목으로 구성될 것이고, 교양문리대학은 이 중 교양교과목과 기초학문교과목들로 구성될 것이다. 교양교과목과 기초학문 교과목은 각각 필수교과목과 선택교과목으로 구분된다.
가장 기초가 되는 《교양기초》교육과정의 예시는 <표 1>과 같다. 《교양기초》교육과정은 <기초교양>으로 ‘사고와표현’, ‘글로벌의사소통’, ‘인성’, ‘정보처리’, ‘수리’ 영역을 구성하고 각 영역 아래에 관련 교과목을 편성한다.
<표 1>
《교양기초》 교육과정 예시4)
영역 교과목 비고
기초교양 사고와표현Ⅰ 글쓰기 <기초교양> 교과목은 각 2학점으로 구성하며 영역별로 1과목, 총 10학점을 이수하도록 한다.
<고전기반교양> 교과목은 각 3학점으로 구성하며 3과목, 총 9학점을 이수하도록 한다. (총 19학점)

글로벌의사소통 영어, 제2외국어

인성 시민교육

정보처리 코딩

수리 양적추론

고전기반교양 사고와표현Ⅱ 호메로스, 일리아드오디세이 / 헤르도토스, 역사 / 플라톤, 국가 / 공자, 논어 / 마키아벨리, 군주론, 로마사논고/ 단테, 신곡 / 정약용, 목민심서 / 다윈, 종의기원/ 스미스, 국부론 / 쿤, 과학혁명의구조 / 칸트, 실천이성비판, 듀이, 민주주의와교육
<기초교양>의 ‘사고와표현’ 교과목으로는 글쓰기 교과목을 편성하고, ‘글로벌의사소통’ 교과목으로는 영어, 제2외국어 교과목을 편성, ‘인성’은 시민교육, ‘정보처리’는 코딩, ‘수리’는 양적추론 교과목 편성이 가능하다. 이 영역은 학문탐구와 자아정체성 형성의 기본이 되는 역량 형성의 기본과목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총 10학점(각 2학점)을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필수교과목으로 지정한다.
<고전기반교양>은 고전을 중심으로 한 교육과정으로 인문, 사회, 자연과학 영역의 고전들을 텍스트로 한다. <고전기반교양>은 ‘강독 중심형’과 ‘세미나형’을 각기 운영한다. 고전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담지하고 있는 지혜의 보고이며, 시대적 요청과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여 끊임없이 재해석될 수 있다(최명문 외, 2017, p.65). 게다가 <고전기반교양>의 경우 현재의 형태로 분화되기 이전의 통합 학문적 지식과 지혜를 담고 있는 고전 및 다양한 학문 영역의 고전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종합적 사고역량 함양의 기초를 다질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신리버럴아츠융합》교육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시이기는 하지만 이 교육과정에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아, 헤르도토스의 역사, 플리톤의 국가, 공자의 논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단테의 신곡, 정약용의 목민심서, 다윈의 종의기원, 스미스의 국부론,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칸트의 실천이성비판, 듀이의 민주주의와 교육 등을 텍스트로 하는 다양한 교과목을 편성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기반교양>은 1과목 3학점으로 3과목(9학점)을 필수로 이수하도록 한다. 최종적으로 《교양기초》교육과정은 최소 8과목 19학점을 이수하도록 한다.
《교과기초융합》교육과정은 각 전공의 기초가 되는 교과목들로 구성된다. 인문, 사회, 자연의 카테고리 안에 문학⋅예술, 철학⋅역사, 사회⋅법, 정치⋅경제, 기초과학, 자연과학의 6개 영역을 분류하여 3학점 교과목들을 편성한다. 예시는 <표 2>와 같다. 전공기초 교과목을 중심으로 편성한 《교과기초융합》교육과정은 학문 분야에 따라 기초적인 교과목을 편성하여 학생들이 관심있는 분야의 기초 교과목을 다양하게 수강할 수 있도록 구성한다. 이 교육과정은 1학년 2학기와 2학년 1학기에 걸쳐 최소 3영역 이상, 10개의 교과목을 수강하고 30학점을 이수하도록 설계함으로써 학생들이 다양한 기초지식을 습득하고 다학문적 관점을 통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역량 향상을 도모한다. 영역별 균형있는 수강을 위해 최소 3영역 이상이라는 기준을 두되, 최소 기준 아래 학생이 자기주도적으로 자신의 흥미와 비전에 부합하는 교과목들을 선택하여 수강하게 하고 일부 교과목은 프로젝트 과목으로 구성하여 학생의 자기주도적 역량 향상도 도모한다.
<표 2>
《교과기초융합》교육과정 예시5)
영역 교과목 비고
문학 예술 한국 문학의 이해 중국 문학과 동양 사상 각 교과목은 3학점으로 구성하며, 최소 3영역 이상 선택하여 10과목, 총 30학점을 이수하도록 한다. (총 30학점)
일본 국가의 과거와 현재 아프리카 문학
서양 문학의 이해 남미 문학의 환상적 리얼리즘
미학이론과 근대 예술사 섹슈얼리티와 문학
동서양 미술사 스튜디오 예술과 연극
음악으로 떠나는 동서양 기행 창조적 미디어 디자인
영미문학의 이해

철학 역사 즐거운 철학 이야기 고대 그리스 철학
서구 형이상학의 이해 세계의 종교
서양 철학과 변증법 죽음이란 무엇인가?
한국사 특강 서양 근대사와 식민주의
동양사 입문 역사 속의 다문화
서양사 입문 전체주의의 기원
중세의 세계 여성사와 여성학

사회 법 지역사회 심리학 국제분쟁론
인간과 사회 사회복지정책론
인간의 진화와 인류학 법과 인권의 이해
사회과학탐구방법론 마음의 이론

정치 경제 인간과 경제 인간행동경제학
경제학 원리 정치적인 것 행하기
정치학의 기초 권력, 정체성, 저항
고전으로 보는 정치사상사 현대 정치사상사

기초 과학 기초물리학 재미있는 화학 이야기
기초화학 물리학과 큰 질문들
기초생물학 위대한 수학 정리에 대한 입문
기초지구과학 확률과 통계
기초논리학 컴퓨터 과학의 위대한 착상들

자연 과학 빅데이터와 커뮤니케이션 환경공학론
선형대수론 에너지와 생태체계
AI응용수학 앎의 방식으로서의 통계학
유전체학 & 생명공학 물리학과 양자역학
2학년 2학기 과정인 《신리버럴아츠융합》교육과정은 주제별로 설계하였다. 이 교육과정은 심화융합교육과정으로 인문⋅사회⋅자연과학의 통합형 횡단형 교과를 지향한다. 기초학문을 중심으로 학술성 및 보편성을 확보하고, 이론과 현장을 결합하는 창의융합적 내용으로 구성한다. 예시는 <표 3>과 같다. 5개 영역은 ‘이야기와캐릭터’, ‘미적가치’, ‘역사와사회’, ‘문명의대화’, ‘과학과패러다임’ 으로 구분되며, 각 영역에서 각각 1과목씩 필수 이수하도록 한다. 이 교육과정은 《교양기초》교육과정과 《교과기초융합》교육과정의 기초교육을 토대로 이를 융합, 재분류하여 주제에 따라 다섯 영역으로 설계하였다. 각 영역들의 문제의식 가령, 인문, 사회, 예술과 자연과학이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융합되는 상호학문적인 교육과정을 구상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총체적이고 다층적인 관점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 향상을 도모하는 교육과정이다.
<표 3>
《신리버럴아츠융합》교육과정 예시6)
영역 교과목 비고
이야기와 캐릭터 세계문학과 비교문학
디아스포라 문학과 민족문학
철학과 가치
인간 자유의 본성과
악의 문제 전지구적 자본주의에서의 일과 일상생활
각 교과목은 3학점으로
구성되며, 영역별로
한 과목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총 15학점)

미적 가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오브제와 이미지
인식으로서의
예술 예술과 환영 : 일상과 예술의 관계
예술과 인류학

역사와 사회 영상스토리텔링쓰기
범죄와 처벌
권력과 특권
현대 이민과 다음 세대
커뮤니케이션의 정치

문명의 대화 글로벌 도시의 문화적 건설
문화적 다양성과 정체성
예술경영과 문화정책
세계정치와 문명의 충돌
공간, 장소, 차이

과학과 패러다임 바이오 프로세서
천체물리학의 개척자들과 논쟁들
네트워크와 계산체계
생명공학과 뇌과학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현재 대학은 이와 같은 ‘교양문리대학’ 모델을 운영할 여건이 열악하다.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교양교과목과 지속가능한 연구기반 조성을 위한 기초학문 분야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경제적이고 경쟁적인 현실적 우려로 인해 이 분야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나 운영이 힘든 형편이다. 그 결과 교육목표, 학사구조, 모집단위, 교육과정 및 교육여건 등이 교양과 기초교육을 지향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과 융합을 지향하는 교육모델은 끊임없이 연구되고 개발되어야 한다. 급변하는 21세기의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현대사회에서 자신과 사회에 대한 관계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어 가는 힘을 가진 주체적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소통, 협력, 융합, 창의 역량을 함양시켜줄 수 있는 교양교육과 기초학문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본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교양기초》교과과정, 《교과기초융합》교과과정, 그리고 《신리버럴아츠융합》교과과정을 운영하는 ‘교양문리대학’을 대안으로 모색하였다. 이를 통해 현재의 분과학적 학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학의 체제개편에 대응하여 교양과 기초학문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논의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물론 편성할 교과목과 내용, 교과목들 간의 체계적인 위계 등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 더 면밀하게 논의되어야 할 과제로써 향후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5. 결론: 교양문리대학의 의의

레딩스는 <폐허속의 대학>에서 수월성(excellence, 탁월성)의 대학과 리버럴한 지성이라는 두 가지 개념이 대학에서 충돌하고 있다고 한다. 새롭게 정의되는 대학의 미래상과 관련하여 레딩스는 “수월성이 지배하는 대학에서 자유를 재정의하는 것”(요시미 순야, 2014, 재인용, p.296)이 과제이며, 결국 대학은 ‘의견불일치의 공동체’로서 “일반화된 학제적 공간이 아니라 학문상의 결합과 이반이 반복되는 일종의 이듬”으로서 리버럴한 지성을 재정의하고 제도화하여야 한다. 이것이 새로운 단계의 리버럴아츠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리버럴아츠를 담는 교육제도는 기존의 리버럴아츠 칼리지(LAC: Liberal Arts College)가 아니라 문리대학을 교양과 통합한 교양문리대학(LASC: Liberal Arts and Science College)이라 할 수 있다. LASC는 문과대학, 자연과학대학 그리고 사회과학대학의 기초학문에 해당하는 전공이 모여 하나의 학사단위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기존의 단과대학 틀을 깨고 이들 기초학문의 학과 소속의 교수를 모아 하나의 학사단위로 구성할 때 가능해진다(손승남, 2017, p.26).
이 경우 국립교양대학(안현효 외, 2022)이 1년제 교양교육과정으로 가지는 한계, 즉 깊이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고, 국립리버럴아츠칼리지(백승수, 2017)가 가진 한계, 즉 넓이의 문제도 해결하여 한국적 상황에서 깊이와 넓이를 같이 구현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LASC로의 전환은 기초학문의 고사에 대처하는 장기적 방안이 될 뿐만 아니라 LASC 교수인력을 지속적으로 충원해야 하므로 학문후속세대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홍성기 외, 2016).
교양문리대학은 본 논문의 서론에서 제기된 문제, 무전공 입학의 확대와 관련한 논쟁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교양과 기초학문을 통합한 교양문리대학에 모집단위 규모를 확대하여 무전공입학 규모를 늘리면서 이 교육과정에는 기초학문과 교양을 충실하게 교육시키는 교육편제 개편을 단행한다. 동시에 전공을 선택하는 3학년 때에는 응용학문의 전공 선택을 자유화하여 무전공 입학자들이 대학 졸업 후 필요한 직업을 자유로이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교양문리대학의 교육과정에서는 인문자연학사(Liberal Arts and Science Major)를 부여하고, 응용학문 학과로부터 학위를 추가하여 복수학위를 기본으로 운영함으로써 기초교육과 직업교육을 동시에 증빙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즉 전자의 학위에서는 교육과정을 중시하고, 후자의 학위에서는 산업수요를 중시할 수 있다. 교양문리대학의 교양문리 교육과정을 통해 기초학문 교과가 확보되면 기초학문 교육의 저변이 확대되어 기초학문 대학원 과정이 활성화될 것이다. 이는 기초학문 연구의 활성화 계기가 되어, 결과적으로 기초학문에서의 세계적이고 선도적 연구가 가능한 조건이 될 것이다.

Notes

1) 본고에서 강조하는 “융합적 사고”는 문제나 아이디어를 전체적으로 고려하고 다양한 요소의 상호 연결성과 상호 작용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총체적 사고를 의미하는 것으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균형있게 습득하고 그 연관성에 대한 ‘통찰적 발견’을 통해서 기존의 지식을 융합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출”(한국교양기초교육원, 2022; 4)하는 교기원의 “융합적 사고 역량”과 일맥상통한다. 본고에서 설계하고 있는 신리버럴아츠는 이런 점에서 창의적 문제해결 역량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융합적 사고 역량 함양을 지향하고 있다.

2) 한국연구재단은 <기초연구본부>외에 <인문사회연구본부>가 있어 인문사회 분야 기초연구를 지원한다.

3) 출처는 임현진(2012), 한국대학의 현주소:기초교육의 강화를 위한 제언, 교양교육연구 6(3), 307.

4) 출전: ‘대구대학교 성산교양대학(S-LAC) 교양교육과정체계’(대구대학교, 2023)를 바탕으로 일부 변형하여 설계

5) 출전: ‘서울대학교(2022), 대구대학교(2023), 경희대학교(2023)’의 교육과정을 참고하여 교과목을 선정

6) 출전: 교기원 표준 편성 체계 및 ‘김지현, 신의항(2017), 대학의 학부 교육-세계 대학의 우수 사례, 교육과학사’를 참고하여 교과목을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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