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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General Edu > Volume 16(1); 2022 > Article
한국 대학의 한국사 교양교육과 역사학

Abstract

이른바 ‘4차산업혁명’의 전개와 함께 기술발전의 속도가 빨라지고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간숙련도의 관리자가 소멸하고 중간층이 몰락하고 있다. 인문학 전공자가 갈 곳을 잃고, 대학에서 인문학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유럽에서 근대대학이 성립한 이후 교양교육은 대학교육의 비판성과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장치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인문학의 위기와 함께 대학에서 교양교육이 차지하는 위상도 함께 동요하고 있다.
해방 이후 한국대학의 교양교육은 일본식과 미국식 모델이 절충되는 가운데 가치중립적 성격이 강화됨과 함께 전공교육의 주변적 성격 역시 심화되었다. 1974년 한국사가 대학에서 법정 교양과목으로 지정되면서, 한국사 교양교육은 폭발적으로 확대되었다. 국책과목으로 지정되면서 강화된 한국사 교육의 민족주의적 성격은 1989년 국책과목에서 해제된 이후에도 어느정도 유지되고 있다. 근대역사학의 토대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비판성과 보편성 그리고 상상력을 함양할 수 있는 한국사 교양교육을 모색해나가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Abstract

With the so-called 4th Industrial Revolution, the speed of technology development is getting faster, while at rhe same time the polarization of labor market is getting worse. Therefore mid-skilled management layer is disappearing and the middle class is collapsing. There is no place to which humanities graduates to go and on the whole the humanities finds itself in crisis at university. After the modern university was established in Europe, general education had been understood as a essential device to secure criticism and universalities of university education. But with the crisis of humanities, the status of general education now stands on shaky ground.
After the Korean liberation from Japan, value neutrality and marginality was strengthened and deepened in general education at university of Korea as the Japanese and American general education model was mixing together. The study of Korean history expanded tremendously in general education, when it was designated as a legal general education subject in 1974. For that reason, nationalistic nature of Korean history was strengthened and to some degree maintained after it was released from the legal ties in 1989. However the foundation of modern historiography is now fundamentally shaky. Thus we are in desperate need to seek a Korean history general education that can cultivate criticism, universality and imagination.

1. 머리말

대학의 미래가 새로운 사회적 의제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대학은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것인가? ‘대학의 미래’를 점치는 이런 예민한 논의 가운데서 교양교육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그다지 크지 않다. 교양교육은 ‘대학의 과거’와 관련해서 주로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을 따름이다.
대학위기가 초미의 사회적 과제로 논의되기 이전, 인문학의 위기가 먼저 대학교육과 사회적 과제로 부상하였다. 미국 대학에서는 이미 1970년대부터 인문학 전공 졸업자들의 취업이 저조해지면서 인문학의 위기가 운위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이후 미국 대학에서 교양학문 즉 인문학 분야 전공자의 수는 꾸준하게 감소하고 있는 중이다. 졸업생들의 취업 문제가 대학 내 인문학의 위축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자카리아, 2015: 11-41)
한국에서도 1990년대 후반 이후 거의 동일한 이유로 대학 내 인문학 전공자들이 강한 위기의식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후 간헐적으로 인문학 위기 담론은 되풀이되었지만, 2010년대 들어 대학 자체의 위기가 부상하면서 인문학의 위기는 그 그림자 속으로 잦아들었다. 대학 자체가 붕괴의 위기에 직면한 상태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대학 내에서는 배척당하지만 대학 밖에서는 ‘열풍’을 일으키기도 하는, 딜레마에 처한 인문학의 두 얼굴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김현진 외, 2018) 어쩌면 대학 위기 담론 속에서 인문학보다 먼저 교양교육이 위기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대학 내에서 교양교육은 과연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인가? 교양교육이 대체로 계륵과 같은 정도의 역할을 수행해왔다면, 대학에 앞서 교양교육이 먼저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지는 않을까? 위기 앞에서 가장 먼저 축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대상은 바로 교양교육이 아닌가? 해방 이후 한국 대학에서 한국사 교양교육이 거쳐온 경험은, 대학 교양교육이 가진 역사적 무게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대학의 위기 앞에서 교양교육이 처해 있는 상황을, 한국사의 경험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이를 위하여 여기서는 우선 대학 속에서 인문학이 차지하는 위상을 거시적으로 살펴보고, 이어서 근대 대학과 교양교육의 관련을 간단히 그려볼 것이다. 다음으로 대학 속에서 교양교육이 차지하는 위상을, 해방 이후 한국사 교양교육이 변화해온 양상을 중심으로 검토해보려 한다. 이런 작업을 통해 대학 교양교육과 인문학, 역사학 그리고 한국사가 맺는 건강한 관련을 고민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2. 대학, 인문학, 교양교육

지금 우리는 광범위한 ‘중산층의 몰락’을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근로자 상당수가 대개 정해진 직장도 없이 밑바닥에서 희망 없는 작업을 한다. 맨 위에서는 상위 중역 몇 명이 축소된 위계질서 내에서 신기술의 수혜를 입어 한층 더 그럴듯해지고 유망해진 업무를 도맡으며 막강한 지휘권을 행사한다.”(대니얼 마코비츠, 2020: 310) 이런 풍경이 주변의 일상에서 막무가내로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른바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중산층 몰락의 주범이다. 이리하여 2차대전 이후 서구에서 수십년간 누려왔던 중산층의 시대가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파괴적인(disruptive) 신기술의 발전은 숙련 편향의 기술진보(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로 규정되는바, 이는 노동시장의 양극화(labor market polarization)를 불러왔다. 이에 따라 초숙련 근로자가 신흥엘리트로 부상하는 반면 중간숙련도의 중산층은 점차 소멸의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직장에서 중간관리자 즉 중산층이 공동화하는 대신 비전문적인 미숙련 지원인력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중이다. 요컨대 2차대전 이후 자본주의사회의 ‘번영’을 이끌어왔던 종신고용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점차 초숙련의 엘리트들과 단기채용의 비정규직 시간제 근로자에 의해 양극화되어 가는 중이다.(대니얼 마코비츠, 2020: 161- 340) 루틴화된 노동을 담당하는 중간숙련도의 노동자층이 설 자리가 없어져버렸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는 모두 로봇과 AI가 대신하고 있는 중이다.(대니얼 서스킨드, 2020: 44-64)
4차산업혁명과 기술의 발전이 과연 실업을 가속화할 것인가? 제1차 산업혁명부터 시작된 모든 기술의 발전이 그랬듯이 약간의 유보기간을 두고 결국은 기술이 새로운 일자리를 더욱 많이 만들어낼 것이라는 낙관론이 한편에 존재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비관론이 강렬하게 자리잡고 있다. 특히 AI와 로봇의 발달로 말미암아 인간은 새로운 기회를 만들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장기간의 실업사태에 직면하여 유럽사회에서는 이미 사회적 기업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 만들기에 주목해왔다. 이제 어쩌면 생산과 소비의 가치사슬에서 벗어나 있는, 새로운 사회적 가치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회적 가치가 새로운 차원의 사회적인 직업을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라이언 아벤트, 2018: 164-198)
한편 루틴 노동의 소멸은 대학에도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중간숙련도의 관리자가 소멸하는 현상은 대학교육에 직격탄을 날린다. 2차대전 이후 기업내 실무교육이 소멸하면서, 대학이 부상하는 계기가 주어졌다. 기업내 종신고용을 이끌던 사내교육이 사라지는 대신 부상한 것이 광범한 대학교육과 전문대학원이었다. 특히 실무교육을 담당하는 법학대학원(law school)과 경영대학원(business school) 등의 전문대학원은 초숙련 엘리트의 부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이제 이런 전문대학원의 존재마저도 희미해져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 중간숙련도의 중간관리자층이 쇠퇴하면서 대학내 인문-사회과학계열 학과 출신의 입지가 극도로 좁아져버렸다.(대니얼 마코비츠, 2020: 161-340)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기 이전에 이미 이런 현상은 대학교육의 입지를 극도로 좁히고 있는 중이었다. 한국에서도 문송(“문과여서 죄송합니다”)과 같은 슬픈 조크가 대학 인문학의 곤경을 상징해왔다. 이런 현상이 4차산업혁명과 결합하면서 그 파괴력을 더욱 높여왔다. 또 전지구적으로 청년실업은 미래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는 대학 자체의 위기와 아울러 더욱 가중되고 있다. 한국의 대학은 학령아동의 감소로 지금 더욱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앞으로 10년 안에 대학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공공연히 유포되고 있다. 하지만 무크(MOOC)와 같은 온라인 디지털 교육이 더 파괴적인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또 그것이 대학 제도 안의 인문학에 미칠 파괴력은 다른 분야보다 더욱 심각할 것이다.1)
근대대학의 교양교육은 서구 중세대학의 자유7과(liberal arts)에서 유래한다. 자유7과는 문법, 수사학, 논리학으로 구성되는 3학과 산술, 기하, 음악, 천문의 4과로 구성된다. 리버럴 아츠로서의 자유7과는 법학, 의학, 신학 등의 이른바 상급학부의 준비교육을 담당하고 있었다.
근대 이후 유럽대학에서는 일반적으로 대학 입학을 위한 대학 예비교육과정에서 자유7과를 흡수하여 교육하게 된다. 유럽의 후기 중등교육이 대학 예비교육을 중심으로 성립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직업교육이 후기 중등교육에 편입되면서 유럽의 후기 중등교육은 대학 예비교육과 직업교육의 두 갈래로 분화되었다. 부르주아 자녀들이 인문주의 교양을 배우기 위해 다니는 ‘일반교육 중등학교’와 노동자에게 필요한 기술과 문해교육을 노동자계급 자녀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직업교육 중등학교’로, 유럽의 중등학교는 재구성되었다. 요컨대 유럽의 중등교육 모델은 계급적 성격이 강한 복선형 체제로 구성되었는데, 하위계급의 직업준비 교육과 상층계급의 대한 진학교육으로 분절되었던 것이다.(안홍선, 2017)
이처럼 대학진학을 준비하는 중등학교에서 진행된 유럽에서의 교양교육은 부르주아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주의 교육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유럽대학에서의 교양교육은 부르주아를 중심으로 하는 강한 계급적 성격을 탈피하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게다가 자유7과를 중심으로 한 교양교육이 대학 예비교육에서 시행되었으므로, 유럽의 대학은 대개 전공을 중심으로 한 3년과정으로도 충분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 시기 유럽의 대학에서 교양교육은 대학에서 학문의 비판적 성격 및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대학의 성격 면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독일의 철학자 칸트와 헤겔의 논의를 통해 19세기 독일 나아가 유럽에서의 교양교육 논의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근대대학에서 교양교육이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유용한 논의를 제공해준다.
교양교육의 비판적 성격은 칸트의 대학론에서 잘 드러난다. 칸트는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 등의 상급학부가 대중들의 요구로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성의 원리에 입각한 하급학부 즉 철학부의 비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학의 건강성과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급학부가 주도하는 ‘합법적 논쟁’이 필요하며, 하급학부와 상급학부 사이의 논쟁이 중지되어서는 안된다. 또 비판적 성격을 가진 하급학부에는 역사지식을 다루는 분야와 순수이성을 다루는 분야를 포함하여 인간지식의 모든 부문이 함께 갖추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임마누엘 칸트, 2012; 박정하, 2020)
반면 헤겔은 대학에서 학생들의 독창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교양교육을 통해 보편성을 함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회변화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독창성을 가진 인재를 대학에서 교육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특수성에 함몰된 전문성을 독창성의 세계로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편성에 대한 개방적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서정혁, 2020) 이처럼 19세기 독일 나아가 유럽 대학에서는 대학교육의 비판적 성격과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양교육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었다.
이런 방식의 교양교육은 대학교육이 미국으로 수입되면서 한 번의 커다란 전환을 거친다. 19세기 미국에서는 대학 예비교육 과정을 수용할 중등학교가 없었다. 이에 따라 대학 내에서 보통교육 혹은 교양교육(general education)이라는 방식으로 대학 예비교육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은 교양교육과 본과의 전문교육 과정을 중심으로 2단계로 구성하게 되었다. 여기에 그때까지 미국에는 존재하지 않던 연구과정을 별도의 과정인 ‘대학원’으로 개설한 대학도 나타나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존스홉킨스대학을 효시로 설립되기 시작한 이른바 ‘대학원 중심대학’이 바로 이것이다.(허준, 2020: 70-85)
하지만 미국의 대학은 매우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커뮤니티 칼리지(2년제 초급대학), 리버럴아츠 칼리지(인문학 중심의 기초학문대학), 전공교육 중심의 일반대학, 연구중심대학 등 다원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대학은 하나의 모습이 아니다. 연구중심대학에서 진행하는 심화된 연구의 토대를 구성하는 것이 리버럴아츠라는 인식이 강하고, 따라서 리버럴아츠 칼리지 출신이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의 주요한 공급원이 된다. 피더 스쿨(feeder school)로서의 리버럴아츠칼리지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미국의 주요대학에서 교양교육은 20세기 내내 매우 중시되었는데, 서구문명의 유산과 현대문명의 영향을 강조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 중산층 부르주아지의 문화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다니엘 벨, 1994)
한편 동아시아지역 특히 일본형 제국대학 모델에서는 대개 2차대전 이후 미국형 모델을 수용하였고, 수용과정에서 커다란 혼란이 일어나게 된다. 원래 독일대학을 주요 모델로 한 일본의 제국대학에서는 3년 과정의 이른바 ‘구제 고등학교’ 혹은 경성제국대학 등에 만들어진 대학 예과에서 유럽식 교양교육이 시행되었다.
유럽 모델을 변형한 일본의 교양교육은 2차대전 이후 미국형 교양교육 모델로 변화해갔다. 일본에 파견된 미국교육사절단은 일본의 대학교육이 지나치게 전공교육 중심일 뿐만 아니라 직업교육에도 그다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대신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일반 교양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신주백, 2010) 이리하여 일본대학에는 맥아더 점령 이후 미국 대학의 교양교육 모델이 전면적으로 수용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대학 교양교육은 유럽과 미국의 교양교육이 가진 계층적 성격을 탈각시킴으로써, 대학교육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유럽과 미국의 리버럴아츠가 가진 귀족적 혹은 부르주아적 성격을 완전히 탈각시켜 중립화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1980년대 미국에서 교양교육의 성격을 둘러싸고 전개된 문화전쟁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교양교육을 중립화시킴으로써 일본대학은 1960년대 이후 대중교육의 시기로 접어들 수 있었던 것이다.(요시다 아야, 2020; 이정옥, 2015)
한국에서는 일본의 제국대학 모델과 미국대학 모델이 혼란스럽게 절충되는 과정을 거쳤다. 미군정기를 거치면서 한국 대학에는 대학단일화 정책이 시행되었고 교육과정 운영도 미국식으로 크게 변형되었다. 곧 전문학교와 대학 예과 등의 제도를 전부 폐지하고, 모두 수업연한 4년의 대학으로 단일화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강명숙, 2002; 강명숙, 2003) 또 대학 교육과정의 운영에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는데, 학년제 대신에 학점제가 또 독일식 강좌제가 아니라 미국식 학과제가 도입되었다. 게다가 교양교육도 필수과목제도가 도입되었으며, 정부 수립 이후에 결국은 교양교육 ‘법정주의’가 채택되었다.(강명숙, 2002) 대학교육은 고등교육 출발단계의 미숙성과 함께 다양한 혼란상을 노정하였지만, 일단 일반 교양교육이 필수제도로 강제되었던 것이다.(백승수, 2012)
하지만 한국대학의 교양교육은 다양한 ‘실험의 연속’이라고 표현되듯이, 안정적인 제도로 정착하는 데까지는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다. 1950년대 이후 교양교육은 대체로 경시되었으며, 1970년대 시행된 실험대학의 자유교양교육은 국가주의에 의해 크게 오염되었던 것으로 평가된다.(이정옥, 2015) 또 한국대학의 교양교육이 파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서울대가 ‘교양과정부’(1968-1974)를 설치했다가 폐지한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교양교육은 대부분의 대학에서, 교육제도의 형태상으로는 통합구조와 분산구조 사이를 그리고 교과과정의 조직에서는 집중이수와 분산이수 그리고 절충형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다.(최종철, 2007)
이에 따라 한국 대학의 교양교육은 주변화되었다. 1970년대 이후 국가주의에 의해 오염되었고, 1980년대 이후에는 상업주의에 의해 또 크게 훼손되었다. 1974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 사이에 교양 필수과목은 국사, 교련, 국민윤리, 체육 등 4과목으로 정해졌다. 이들 4개의 국책과목은 국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대학에 강제로 배치되었는데, 이 시기 정권과 학생들의 갈등 요소로 부상하기도 했다.
한편 1980년대 이후 대학폭발에 크게 기여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중립화되고 주변화된 대학의 교양교육이었다. 시간강사를 기용하여 대규모로 진행할 수 있는 따라서 싼 값으로 많은 시간을 배분할 수 있는 교양교육은, 대학의 대중화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 대학의 교양교육은 전공교육을 예비하는 것이 아니라 “학점을 채우는 값싼 잡종교육”이 되었다. 그리고 ‘잡종’의 구성은 정권과 시대의 성격에 따라 변화하기도 하고, 구성할 수 있는 강의의 가격에 따라 변화하기도 하였다.
한편 가중되고 있는 대학의 위기는 주변화되어온 교양교육을 더욱 주변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한다. Liberal arts로부터 General education을 거쳐 ‘교양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온 한국의 대학 교양교육은, 이처럼 ‘국가주의’와 ‘상업주의’의 세례를 흠뻑 받은 채 잡종교육의 이름으로 주변화되어 버렸다. 이제 교양교육을 자신의 문제로 끌어안고 고민하지 않으면, 대학은 결코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없을 것이다. 교양교육을 주변화하고 더욱이 원거리 유배보내는 방법은 미봉책 이상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교양교육과 관련하여 대학의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우선 연구중심대학, 교육중심대학, 지역사회 중심대학(community college) 등으로 대학을 다원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거의 모든 대학은 천편일률적으로 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내실을 가진 연구중심대학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대학도 이제 자신의 존재 의의와 목적을 명확히 해나갈 필요가 있다.
다수의 대학을 리버럴아츠 중심의 티칭스쿨로 만드는 것도, 한국대학을 다원화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이미 일부 대학에서 리버럴아트 칼리지로 방향을 전환하려는 시도를 하거나, 리버럴아츠 칼리지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변화라고 할 것이다.(손승남, 2017; 백승수 2018) 수준 높은 리버럴아츠 칼리지가 많아지면, 연구중심대학과 대학원의 연구기능이 강화될 것이다. 피더 스쿨로서의 리버럴아츠 칼리지의 수준이 높아지면, 그 졸업생들이 진학하는 연구중심대학의 기능도 상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리버럴아츠 칼리지가 한국대학의 한 축으로 성립하게 되면, 교양교육도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3. 한국사 교양교육의 전개과정

변화하는 대학 속에서 교양교육이 차지하는 역할은 막중하다. 특히 대학교육이 비판성과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교양교육이 자신의 태세와 역할을 재정비할 필요가 절실하다. 19세기 독일 대학이 표방해온 이래, 대학의 교양교육은 첫째 비판적 성격, 둘째 보편적 성격을 가장 핵심적인 가치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여기에 더하여 21세기의 변화한 상황에서 교양교육에 필요한 덕목이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 가치가 필요하겠지만, 창의력 함양에 필요한 풍부한 상상력을 배양하는 일이 교양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의 전공교육이 가질 수 있는 전문성 중심의 교육, 특수성만을 강조하는 교육, 그리고 상상력 부재의 교육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비판성, 보편성, 창의성을 함양할 수 있는 새로운 교양교육이 필요한 상황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해방 이후 한국대학에서 교양교육이 주변화의 길을 걷는 가운데서, 한국사 교양교육은 어떤 역할을 수행해왔던 것인가? 해방 이후 대학 교양교육에서 한국사는 크게 세시기로 구분해서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문화사’ 중심으로 역사학 교양교육이 시행된 시기(해방 이후 - 1973년)이다. 이 시기 대학의 교양교육에 포함된 문화사 과목은 주로 세계사 혹은 유럽사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대부분 필수교과목으로 편성되었다. 따라서 대학 교양교육 과정에서 한국사는 독립적인 교과목으로 취급되지 못했다.(신주백, 2010)
다음 두 번째 시기(1974년 - 1988년)인데, 1974년 한국사는 ‘국사’라는 이름의 국책과목으로 선정되었다. 이때 한국 대학에서 처음으로 한국사는 교양필수 과목으로 선정되었는데, 앞서 본 바와 같이 국민윤리, 교련, 체육과 함께 ‘법정 교양과목’이 되었다. 1972년 공식적으로 출범한 ‘유신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이데올로기 교육의 수단으로 한국사 교육이 이용되었던 것이다. 1973년도 ‘대학입학 예비고사’부터 국사 과목이 독립 교과목으로 출제되었으며, 1974년부터 중등학교 국사 교육에는 ‘국정’ 교과서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1976년부터 본격적으로 대학의 교양 교과목으로 국사가 교육되기 시작했다.(김지형, 2015)
1970년대 유신시대의 시대적 징표로 거론되기도 하는 ‘국사’ 교과서 발간과 필수 교과목화는 한국사의 ‘전성시대’를 불러왔다. 한국사 대학원생에게는 파격적인 장학금이 지급되고, 국사가 필수 교양과목으로 지정됨으로써 시간강사들이 강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한국사 교양과목은 대학 내에서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그것이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후반 사이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국사 교양교육이 이 시기에 특별한 ‘내적 발전’을 이루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오히려 대학원의 신진 연구자들 사이에서 한국사연구가 갖는 전략과목으로서의 위상에 대한 자의식이 강해짐에 따라, 급속도로 연구 내적인 반성과 새로운 인식론에 대한 모색이 거듭되었다. 대학 제도 속에서는 기존 교수진과 신진연구자들 사이에 갈등이 노골화되고, 연구자들 사이에서 제도 밖의 새로운 집단화가 다양한 차원에서 모색되었다. 1970년대에 일부 한국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민중과 분단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태동한 바 있다. 이를 계승하여 1980년대에 등장한 신진연구자들은 역사학 연구에서의 과학성과 실천성을 강조하였으며, ‘민중사학’을 제창하기도 하였다. 새로운 연구단체들이 결성되면서 이런 움직임은 더욱 강화되었다.(신주백, 2021: 281-430)
세 번째는 대학에서 한국사를 포함한 국책교과목 편성이 폐지된 1989년 이후의 시기이다(1989년 - 현재). 한국사회가 민주화되고 전지구적 탈냉전 시기로 접어들면서, 대학도 자율화의 시대로 진입하였다. 교양 국책과목을 폐지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 되었다. 이제 대학에서 한국사 역시 교양선택 교과목이 되었다. 한국사는 이제 더 많은 교양교육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교과목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한국사가 법정 교양교과목에서 해제되자, 한국사학계의 위기감은 높아졌다. 이른바 ‘진보 역사학자’들의 대응이 그런 사정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가가 일방적으로 한국사를 국책과목으로 지정하였다가 또 일방적으로 폐지하는 것은 오직 정권안보적인 이해에 따른 것이라는 비판이, 그런 사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한국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 그리고 민족통일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국사 교양교육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진다.(고석규, 1989)
또 전 사회의 개방화와 국제화가 이어지는 속에서 민족현실에 기반을 둔 교육을 진행할 필요가 절실하며, 이를 위해서는 한국사 교육을 강화하여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긍심과 민족현실에 대한 주체적 인식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백승철, 1990) 심각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민족의 분단을 극복하며, 민족 내부의 이질성을 넘어 새로운 민족문화를 창조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사를 포함한 민족문화 교육은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요컨대 한국사교육은 교양교육 가운데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다.(안병우, 1996)
1990년대를 지나면서 대학 내 교양교육의 교과목은 매우 다양한 방면에 걸쳐 확대되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한국사가 교양교육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 역시 조금씩 축소되고 있었다. 이른바 ‘연성화’된 다른 교양교과목과의 경쟁에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대학별로 역사학 교양교과목의 과목수와 과목명에서 편차가 매우 크지만, 대체로 학생들의 흥미를 유도할 수 있는 주제사 중심으로 교과목이 변화하고 있었다.(최상훈, 2009) 한편 한국사 교양교육 내의 다양성 수준도 매우 높아졌는데, 이를 한국사 교양교육의 위기로 인식하고 이를 비판하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민족 및 국가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한국사 교양교육이 재정비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오종록, 2004)
2010년대 초반 교양 역사교육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4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첫째 지역이나 국가를 대상으로 한 개설 교과목, 둘째 시기별 혹은 분야별로 심화된 교과목, 셋째 다양한 주제를 특별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교과목, 넷째 한국사와 세계사의 통합과목이 그것이다.(김한종, 2011) 한국사만을 두고 볼 때, 전달방식이 달라진다고 하더라도 이전의 민족사 중심 교육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셋째 유형의 일부 교과목을 포함하여 첫째, 둘째 유형이 그런 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런 대학 교양교육에서 한국사를 강화하려는 한국사학계의 노력은 대학 밖으로도 이어졌는데, 2011년 교원 임용시험에서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자격증 취득을 의무화하고, 고등학교 신입생부터 한국사를 필요교과목으로 선정하는 등 한국사 교육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나타났다. 이어 2015년부터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는 방침이 단행되었으나, 정권이 바뀌면서 곧바로 그 조치는 철회되었다.
이처럼 1970년대 유신 독재체제가 만들어놓은 한국사 교양교육 중시 풍조는 저항적 입장을 취하고 있던 한국사학계 일각에도 공유되어 갔다. 이런 역설은 대립을 통한 변화의 구조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한국사 교육과 관련해서는 더욱 특별한 바가 있다. 민족주의 의식을 강화하고 민족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국사 교양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한국사학계 전체가 공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한국사 교양교육은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의 교양교육은 그저 한국사 전공교육의 가장 낮은 단계로 설정하거나, 한국사교육의 최종단계 교육으로서 대중화교육에 전념하는 정도의 고민만이 동반되었다. 요컨대 한국사 연구의 확대에 버금가는 교양교육에 대한 고민은 전혀 수행되지 못했다. 전공교육의 가장 낮은 단계를 교육하는 교양교육의 경우에는, 전공교육의 대한 혐오를 심어주는 무책임한 교육이 되는 경우도 많다. 반면 대중화된 교양교육의 경우에는, 역으로 학계의 새로운 흐름과 전혀 무관한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무책임한 측면이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 교양교육에 역사학이 포함되어야 하는 이유로는 교양이나 흥미 외에, 전공교육을 위한 기초지식 혹은 민족정체성과 민족적 자부심의 함양이 가장 중요한 이유로 거론되고 있다.(김한종, 2011) 요컨대, 대학 교양교육에서의 한국사는 첫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주박되어 비판성 시각을 확보하지 못하고, 둘째, 민족집단의 특수성에 매몰되어 보편성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보인다. 한국사 교양교육이 민족주의와 한국적 특수성에 매몰되어 있다면, 인간성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창의성을 함양하는 새로운 교양교육의 역할에 미달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과연 사정이 이러하다면, 한국사가 대학의 교양교육 교과목에 포함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사 나아가 역사학이 대학 교양교육에 포함되어야 할 이유를 스스로 만들지 못한다면, 더 이상 교양교육 교과목으로 편성되어야 할 이유도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4. 역사를 보는 눈

대학 교양교육을 쇄신하기 위해서는 교과목별 교육내용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교양교육은 관련 전공교과목의 발전을 체계적으로 담아내는 방식으로 재편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 대학에서 역사학과는 인문대학(혹은 문과대학) 안에, 역사교육과는 사범대학 안에 배치되어 있다. 역사학과와 역사교육과의 소통의 부재, 그로 말미암은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불일치 현상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여러 논의가 이어져 왔다. 또 중등학교 역사교육 과정에서 역사학 일반의 성과를 충분히 흡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나인호, 2016) 대학의 역사학 교양교육을 사범학만이 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교육과 역사학 연구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대학 교양교육과 관련해서도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근대역사학의 변화와 한국사 교양교육의 관련을 검토할 필요가 절실하다. 1970년대 포스트 모더니즘 논의가 제기된 이후 근대역사학 역시 몇 번의 ‘전환’을 거치며 상당히 큰 폭으로 그 성격이 변화해왔다. 지금은 근대역사학의 토대 자체가 근본적으로 동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심각한 변화를 거치고 있는 중이다. 근대역사학의 전환을 생각하는 데서 크게 세 가지 테마가 중심이 될 수 있다. 과학, 인간, 민족(혹은 국가)의 문제인데, 여기서는 이 세 개의 테마를 차례로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근대역사학과 과학의 연관 문제이다. 근대역사학은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를 인과적으로 기술해내는 것을 자신의 유일한 목표로 삼아왔다. 과학이 구축한 내러티브는 근대역사학의 전범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그렇지 않다. 사료에 기록된 과거라는 실재는, 기록된 그대로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단지 기록되어 있는 사실만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이것이 언어론적 전환 이후 근대역사학이 도달한 지점이다. 따라서 근대역사학을 끌고왔던 사실과 허구의 이분법은 이미 현실에서는 거의 소용이 없어져버렸다.(김기봉, 2009) 그렇다면 근대역사학은 과학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가?
언어론적 전환 이후 역사학은 근대 이후 자신이 버렸던 문학으로 다시 회귀해야 했고, 그 이후 과학과 문학 사이에서 역사학은 불안한 줄타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역사학이 현실에서는 부정되어 버린 ‘사실과 허구의 이분법’을 어떻게 하면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과학의 특성인 사실과 문학의 특성인 허구 사이에서 역사학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 것인가? 문학적 도구인 허구를 과학의 방법으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프랑스 역사학자 자블론카는 허구를 문학적 창조의 수단이 아니라 과학적 인지의 도구로 사용해보자고 제안한다. 요컨대 역사학에서 허구=픽션의 유용성을 강조하고, 역사적 가정을 방법론적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한다.(Ivan Jablonka, 2018) 허구를 활용한 그의 역사서술은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교착하고 서로 간섭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이 특이점의 시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AI의 지능이 인간을 능가하는 시점이 특이점(singularity)인데, 불과 20여년이 지나면 그런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특이점이 도래하기 이전의 시기라 하더라도 AI에게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곧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컴퓨터 역사학은 AI시대 역사학이 지향해야 할 미래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컴퓨터역사학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상의 과거(virtual past)에 대한 실험을 한다는 점에서, 위의 자블론카의 시도와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컴퓨터역사학은 빅데이터 정보를 수량화하여 객관적인 방식으로 즉 4차원의 방식으로 시뮬레이션한다는 점에서 서로 명확히 다르다.(김기봉, 2020-2; 김기봉, 2021) 컴퓨터역사학은 기존의 디지털역사학을 한 차원 더 발전시킨 것으로서, 거대한 규모로 축적된 데이터와 역사학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결합한 것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측면이 있다.(양재혁, 2020; 이상동⋅박충식, 2020)
둘째 근대역사학과 인간의 관계이다. 역사학의 유일한 대상으로서 인간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중이다. 이런 예를 한번 들어보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이라는 생태학자는 가이아(Gaia) 가설을 제시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가이아 가설이란 지구를 생태적으로 자기생성하고 순환하는 일종의 유기체로 보는 설명체계이다. 러브록이 보기에 지금 지구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은 기후변화이다. 그는 기후변화의 속도를 지금 당장 늦추어야 하며, 이를 위해 원자력발전소를 시급히 많이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개의 생태론이 핵발전의 위험성을 높이 강조하는 것을 감안하면, 생태학은 지금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김종철, 2019)
이처럼 지구 생태계가 처한 위기 상황을 감안하면, 인간이 중심이 되어 전개해온 근대 이후 각종 휴머니즘이 얼마나 인간중심적인 것이었는지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인간중심의 휴머니즘에 크게 기여해온 근대역사학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이미 빅 히스토리(거대사)라는 새로운 역사인식 체계가 제출된 지 오래다. 빅 히스토리는 빅뱅 이후 138억년에 이르는 우주의 역사까지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그 핵심은 역시 인간만이 역사학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는 자각일 것이다. 지구와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사물과 생명이 함께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발상이다. 빅히스토리는 인간과 환경이 공진화해왔다는 사실에 바탕하여 새로운 역사를 구성하려 한다. 이런 점에서 빅 히스토리는 인간 중심의 근대역사학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에서 출발하는 역사학이다.(김기봉, 2019; 김기봉, 2020-1)
빅 히스토리의 뼈대를 이루는 세가지 개념은 임계점(threshold), 집단학습(collective learning) 그리고 기원(origin)의 이야기이다. 빅히스토리는 빅뱅을 비롯하여 생명체의 등장과 집단학습, 농업, 근대혁명 등의 8개 임계점을 설정하고, 그 가운데서 인간의 차별적인 특징을 가능하게 한 집단학습에 특히 주목한다. 또 지구와 우주 그리고 인간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중시한다.(데이비드 크리스천, 밥 베인, 2013; 박혜정, 2017) 빅히스토리는 우주적 규모에서 ‘과거 전체’에 접근하고자 하는 이야기로서, 기존의 모든 이야기를 포괄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빅히스토리와 관련하여 딥 히스토리(deep history, 깊은 역사)와 인류세(anthropocene) 논의도 함께 발전하고 있다. 딥 히스토리는 인간 생물학(human biology) 논의를 통해 지구 생태계의 진화만이 아니라 인간의 문화와 제도까지 이해하려는 학문 분야다. 자연사와 문화사를 통합하여 역사학의 ‘인간 예외주의’를 넘어서려는 시도로 주목할 만하다. 또 인류세는 새로운 지질시대로 제창된 개념으로서, 아직은 지질학적 검증을 거쳐야 하는 단계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인간을 지질학적 행위자로 설정하고 이를 중시하는 것은 인간행위가 지구환경에 미친 영향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박혜정, 2020) 새로 제출되고 있는 이런 논의들은 모두 파편화된 근대 분과학문의 분절성을 넘어 새로운 융합학문의 필요를 요청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한편 인류는 현재 정보의 시대 혹은 초역사(hyper-history)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중이다. 2002년 마침내 디지털 정보량이 종래 인류가 1만년 동안 축적해온 아날로그 정보 총량을 초월했다고 한다. 매 3년마다 4배로 증가하는 정보량은 이른바 초역사시대를 열었다. 초역사 시대는 정보가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되는 시대이며,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정보통신기술이 개인과 국가, 인류의 존속과 발전을 위한 본질적 조건이 되는 시대이다.(김기봉, 2021) 이런 조건이 앞서 말한, 컴퓨터역사학이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낸다.
또 하나의 우주, 비트로 이루어진 우주가 급속도록 생성되고 있는 중이다. 그 우주는 인간과 사물이 활동을 개시하면 그대로 기록된다는 특성을 지닌다. 이제는 인간이 자신의 활동을 일부러 시간과 노력을 들여 기록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모든 활동이 그대로 비트의 세계에서 기록되어 남기 때문이다. 메타버스(metaverse)의 세계가 열리면서 그 우주는 현실과 가상을 오가며 더욱 큰 무한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최형욱, 2021) 가상의 세계로 열린 이 무한의 디지털 우주는 또 하나의 빅히스토리를 구성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빅히스토리가 빅뱅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상상된 것이었던데 비해, 현재 나타나고 있는 횡적인 빅히스토리는 새로운 디지털 공간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동시대적 빅히스토리가 될 것이다.
근대역사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민족주의를 자신의 기반으로 삼아왔다는 점일 것이다. 근대 국민국가의 내이션빌딩에 가장 크게 기여해왔던 것이 바로 근대역사학을 기반으로 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이제 근대역사학과 민족의 연관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바, 이것이 세 번째로 살펴볼 사항이다.
“한민족은 국조 단군을 시조로 한 단일민족이다.”라는 언명은 한국의 농촌지역에서부터 근본적인 부정의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다민족, 다인종 사회로 변하고 있는 농촌지역에서 단일민족사라는 환상의 구조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된 것이다. 민족의 역사를 다루는 근대역사학의 근본 구조가 흔들린 것은 오래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민족집단의 가장 안쪽에서부터 그 뿌리가 뽑히고 있는 것이다.(최용규⋅이광원, 2011; 문재경, 2016) 초등학교 한국사 기술에서 단군 조선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역사기술을 즉각적으로 바꾸는 힘을 가진 것은 역시 ‘현실’ 그 자체일 것이다.
역사학은 기본적으로 민족집단을 중심으로 구축된 내러티브의 체계라는 가정이 흔들리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올 것인가?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라든가 글로벌 히스토리라는 새로운 체계들이 앞으로 유용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가정은 튼튼한 현실적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2021년을 기점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국가가 될 것이다. 또 세계에서 가장 출산을 적게 하는 나라다. 합계출산율이 1 이하로 떨어진 뒤 회복될 줄을 모른다. 그럼에도 앞으로 출산율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오히려 더 많다. 솔로계급이 빠른 속도로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결혼하지 않고 출산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걸 용인해줄 사회도 아니다. 자연적인 상태라면 한국의 인구는 계속해서 감소할 것이다. 그러나 출산율이 줄어든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인구의 증감은 인구정책의 결과라는 것이 인구학의 정설이다. 앞으로 한국에도 많은 사람이 외부에서 유입되어야 할 것이다. 인구 감소로 초래될 경제적 타격을 감내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우석훈, 2014: 131-153)
그렇다면 다문화사회를 맞이할 준비를 한국사회 역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강고한 민족주의적 역사인식 체계를 바꾸는 일이 될 것이다. 초중등학교에서 다문화교육과 가장 많이 충돌하는 것은 역시 역사교육 과정이다. 이미 교육부의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다문화교육을 강조하고 있고, 세계사 교육과 함께 동아시아사 과목을 추가한 바 있다. 역사교육 역시 ‘민족 정체성’ 중심의 교육으로부터 벗어나 다문화상황을 반영한 새로운 방식을 정립해야 할 때이다.(최용규⋅이광원, 2011; 문재경, 2016; 하경수, 2020)
지금 근대역사학의 기반이 붕괴하고 있는 중이다. 근대역사학과 과학, 인간, 민족(국가)의 직접적인 연관은 거의 소멸되어 버렸다. 한국사 연구 역시 거시적으로 보면 근대역사학의 이런 흐름과 발걸음을 함께 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근대역사학의 기반이 커다란 물음에 직면해 있는바, 한국사 연구 역시 이 물음으로부터 비켜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의 한국사 교양교육이 역사학의 이런 흐름과 아무런 관련이 없이 진행되어도 좋은 것인가? 한국대학의 한국사 나아가 역사학 교양교육은 근대역사학이 안고 있는 이런 심각한 고민을 어떻게 수용하고,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새로이 정립해나가야 할 것인가? 깊이 고민해보아야 할 시점이 되었다.

5. 맺음말

이른바 ‘4차산업혁명’의 전개와 함께 기술발전의 속도가 빨라지고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간숙련도의 관리자가 소멸하고 중간층이 몰락하고 있다. 인문학 전공자가 갈 곳을 잃고, 대학에서 인문학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유럽에서 근대대학이 성립한 이후 교양교육은 대학교육의 비판성과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장치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인문학의 위기와 함께 대학에서 교양교육이 차지하는 위상도 함께 동요하고 있다.
해방 이후 한국대학의 교양교육은 일본식과 미국식 모델이 절충되는 가운데 가치중립적 성격이 강화됨과 함께 전공교육의 주변적 성격 역시 심화되었다. 1974년 한국사가 대학에서 법정 교양과목으로 지정되면서, 한국사 교양교육은 폭발적으로 확대되었다. 국책과목으로 지정되면서 강화된 한국사 교육의 민족주의적 성격은 1989년 국책과목에서 해제된 이후에도 어느정도 유지되고 있다.
근대역사학의 토대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바람직한 한국사 교양교육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우선 바람직하지 않은 길 혹은 가서는 안 될 길을 짚어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구태의연한 민족사 중심의 통사교육이 교양교육의 이름으로 더 이상 진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족사중심의 통사교육이 갖는 부정적인 효과가 많지만,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정통적 역사상의 재생산이다. 한국사회에서 역사교육이 대체로 ‘국사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는 지적은, 민족사 중심의 통사교육이 행사하는 압도적인 영향력을 지칭하는 것이겠다.(나인호, 2016) 둘째, 구태의연한 역사학 3분과 즉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의 분과를 유지하는 제도 역사학에서 교양 한국사의 새로운 미래를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컨대 민족사를 넘나들고, 지역사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역사학을 강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셋째, 오랜 도식에 사로잡힌 역사학 교육은 자신의 무덤을 파는 일이 될 것이다. 한국사학계에 무성한 맑스주의적 발전도식이 교양한국사 교육에서 되풀이되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역사학의 새로운 흐름을 알려주는 한국사 교양교육을 시행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법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지적에 동의한다면, 대학 교양교육에 도입되어야 할 새로운 한국사교육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할 것인가? 첫째, 새로운 교양교육에는 한국사가 아니라 ‘역사학’이라는 이름으로 교과목이 편성되면 좋을 것이다. 그것은 역사학 3분과를 넘어서는 새로운 역사학적 지향을 담고, 단일민족의 정통역사상을 재생하는 한국사를 넘어서는 새로운 역사학이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한국사의 특수성만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적 역사교육이 한국사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어서는 곤란하다. 예컨대 ‘동아시아사’ 강의를 통해서 한국사를 새롭게 보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한국사의 특수성을 넘어서 평화와 공존의 동아시아를 열어가는 새로운 역사상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유지아, 2011)
둘째, 한국사 관련 강의가 진행되더라도, 그것은 다원적 역사인식 아래서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지구사를 중심으로 강의하되 한국사를 포함하는 방법 혹은 한국사와 세계사를 연결해서 강의하는 방법 등 다양한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세계 역사학계에서 수행되고 있는 새롭고 획기적인 시도를 수용하여, 학생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교양교육은 고전교육의 장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상상력을 육성하는 참신한 교육의 장으로도 기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Notes

1) MOOC, 기업대학 등을 중심으로 한 근래 대학의 변화에 대해서는 이영달, 『메리토크라시』, 행복한북클럽, 202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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