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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General Edu > Volume 15(6); 2021 > Article
횡단적, 실천적 학문으로서의 교양학 정립을 위한 역사적 접근 -교양의 학문적 정체성 수립을 위한 가능성과 조건 탐구

Abstract

본 연구는 교양교육에 대한 학문적 반성을 통해 학문으로서의 교양의 가능성을 검토한다. 학문적 반성은 학문으로서 성립할 수 있는 조건과 대상은 무엇인지, 학문 탐구의 방법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학문탐구를 수행하는 자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정교하게 묻는 작업이다. ‘교양교육’이라는 단어 대신 ‘교양학’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는 바로 ‘교육’이라는 용어가 지니는 학문분류상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다. 교양교육은 기초학문의 성과를 아우르는 포괄성에도 불구하고 사회과학 분야의 최하위 영역에 위치한 것이 현실이다. ‘교육’이라는 용어가 사회과학 가운데 교육학의 한 분야로 자리잡게 만든 주된 요인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교육과 연구를 포괄하는 교양학이라는 명칭은 교양교육의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한 실험적 시도라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교양의 학문적 성립 가능성을 점검하면서, 교양학의 정의와 기능을 탐색한다. 서양 학문의 형성과정에서 교양은 철학, 인문학과 통합, 대립, 갈등의 관계 속에서 발전해 온 만큼 교양학의 정체성과 기능을 밝히는 과정에서 철학, 인문학과의 관계 해명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우선 본 연구는 학문의 분화과정 속에서 나타난 철학의 정체성 위기를 추적하면서 ‘철학’과의 유비에서 메타학문으로서의 교양학의 성립가능성을 점검한다. 나아가 고전 인문학의 ‘전인적인 인간 육성’의 기능을 왜 교양학이 떠맡아야 하는지 그 배경과 이유를 도출한다. 마지막으로 이념형으로서의 교양학의 모습을 가늠해보면서 교양의 영역에서 가르치고 탐구하는 자로서 어떤 자세를 갖추어야 할지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교양학은 경험과학이 제공한 학문적 성과를 다시 학문적 대상으로 삼아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제공하고, 학문세계와 생활세계의 연결을 통해 실천적 학문의 역할을 수행해야 함을 강조할 것이다.

Abstract

The present study examines the possibility of liberal arts as science through academic reflection on liberal arts education. Academic reflection is a work that closely investigates conditions and targets that can be established as a discipline, the methods of academic research, and the attitude of the investigator who conducts research. The reason for using the word “liberal arts and sciences” instead of “liberal arts education” is to determine whether the inherent limitation of the word “education” in academic classification can be overcome. The reality of liberal arts education is that it is positioned at the bottom of the social science field despite its nature of encompassing the achievements of fundamental studies. This must be the main reason for the classification of the term “education” as a sub-field of pedagogy among the social sciences. In this regard, the name “liberal arts and sciences(LAS),” which includes education and research, can be considered as an experimental attempt to reestablish the status of liberal arts education.
The present study examines the possibility of the academic establishment of liberal arts, and it investigates the definition and function of LAS. Considering that liberal arts were developed in a relationship of integration, opposition, and conflict with philosophy and humanities in the process of developing the Western academic disciplines, this study will focus on explaining the relationship with philosophy and humanities in determining the identity and function of LAS. First, the present study will examine the possibility of establishing LAS as a meta-science in analogy with philosophy while tracing the identity crisis of philosophy that emerged in the process of academic differentiation. Moreover, the background and reasons for LAS to assume the function of the “cultivation of the whole man” of the classical humanities will be derived. Lastly, this study will examine attitudes among people who teach and conduct research in the field of humanities while judging the appearance of LAS as an ideal type. Through this, it will be emphasized that LAS should provide an understanding and interpretation of human beings and the world by using the academic achievements of the empirical sciences as academic targets again, and play the role of the practical sciences through the connection between the academic world and life-world.

1. 들어가는 말: 시대변화와 학문으로서의 교양

학문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지식체계로서의 학문은 시대 변화와 사회적 필요에 따라 발전과 퇴보를 거듭한다. 오늘날 4차산업혁명의 도래와 인공지능의 부상은 대학의 교육편제를 인공지능 관련 첨단학과 중심으로 재편시키고 있다. 명확한 학문이해를 동반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 같은 움직임은 현재 많은 대학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며, 특히 기초학문의 위기와 더불어 교양교육의 심각한 균열을 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할만한 현상으로 보인다. 첨단 과학기술의 단기적 성과에 급급하여 성급하게 학과 구조를 재편하는 것은 아닌지 심사숙고해 볼 필요가 있으며, 이는 학문에 대한 근본적 반성작업의 필요성과 직결된다. 현대 학문의 특징인 ‘전문성’은 역설적이게도 학문의 정합적 체계 속에서 개별 학문의 위상과 학문 행위의 의미를 규명하는 작업을 가로막는 장벽이자 학문간의 소통을 방해하는 장애물이기에 이 같은 반성작업은 더욱 절실해 보인다. 무엇보다 학문지형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교양의 학문적 위상을 확고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학문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시대적 전환기에는 예외 없이 학문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재편작업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학문에 대한 새로운 분류체계를 정립했던 베이컨(F. Bacon)이나, 학문으로서의 철학의 가능성을 집요하게 추적한 칸트(I. Kant), 그리고 학문과 삶의 세계 간의 단절 속에서 학문의 위기를 간파했던 후설(E. Husserl) 등은 시대적 격변기에서 학문의 반성작업이 왜 중요하고 의미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들이다.1) 반성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총체적 점검이라면, 학문적 반성은 학문으로서 성립할 수 있는 조건과 대상은 무엇인지, 학문 탐구의 방법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학문탐구를 수행하는 자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정교하게 묻는 작업이다.
대학의 존재 이유는 학문에 근거한다. 대학의 근본기능인 연구와 교육이 바로 학문을 통해 구체화되고 실현되기 때문이다. 본 글은 학문으로서의 교양, 단적으로 교양학2)의 가능성을 묻는다. ‘교양교육’이 아니라 ‘교양학’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는 바로 ‘교육’이라는 용어가 지니는 분류상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다. 교양교육은 기초학문의 성과를 아우르는 포괄성에도 불구하고 사회과학 분야의 최하위 영역(교육학>분야 교육>교양기초교육)에 위치한 것이 현실이다. ‘교육’이라는 용어가 사회과학 가운데 교육학의 하위 범주로 자리잡게 만든 주된 요인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교육과 연구를 포괄하는 교양학이라는 명칭은 교양교육의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한 실험적 시도이다.3)
그러나 교양교육이라는 ‘교육’ 분야의 안전한 길을 벗어나 학문으로서 교양의 정체성을 해명하는 작업은 매우 어려운 과제를 수반한다. 단적으로 학문의 독자성과 전문성이 강화되는 현실에서 교양학의 학문적 대상과 범위, 방법론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매우 지난한 작업이다. 일례로 기초학문의 성과를 아우른다는 교양이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이라는 기초학문 영역에서 무엇을 어떻게 연구하고 가르쳐야 교양학이라는 타이틀을 부여받을 수 있는지를 밝히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하여 본 글은 교양의 학문적 성립가능성을 점검하면서, 교양학의 정의와 기능을 탐색한다. 서양학문의 형성과정에서 교양은 철학, 인문학과 통합, 대립, 갈등의 관계 속에서 발전해 온 만큼 교양학의 정체성과 기능을 밝히는 과정에서 철학, 인문학과의 관계 해명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우선 교양학을 대상 없는 학문체계로 규정하고, 학문의 분화과정 속에서 철학의 정체성을 추적하면서 ‘철학’과의 유비에서 메타학문(meta-science)으로서의 교양학의 성립가능성을 타진해본다. 즉 학문으로서의 철학의 역사를 교양학의 학문적 정체성 해명을 위한 길잡이로 삼으면서, 학문의 분류기준을 연구 대상의 유무에서 확보하려는 구도 속에서는 교양학이 성립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2장). 나아가 자유교양의 역사를 살펴보는 가운데 고전 인문학의 자기형성의 기능을 교양학이 떠맡아야 하는 배경과 이유를 도출한다(3장). 마지막으로 이념형으로서의 교양의 모습을 가늠해보면서 교양의 영역에서 가르치고 탐구하는 행위자로서 어떤 자세를 갖추어야 할지를 살펴본다(4장).

2. 학문의 분화과정에서 제기된 철학의 정체성 문제와 교양학의 위상

2.1. 학문 분화과정의 역사와 철학의 변화

철학의 역사는 학문 전체를 의미하는 유(類)개념에서 분과학문 가운데 하나를 의미하는 종(種)개념으로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주지하다시피 고대 그리스에서의 ‘필로소피아’(philosophia)는 학문탐구 행위 일반이나 학문 전체를 지칭하는 단어로 출발했다. 일례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철학을 인간 본성에서 순수하게 우러나오는 지적 호기심, 일종의 ‘경이’의 감정에서 출발하는 인식 일반으로 규정하였으며,4) 특히 철학(학문)을 이론, 실천, 제작의 측면에서 정교하게 구분하여 학문의 체계화에 기여한 바 있다. 그는 이론적 진리를 탐구하는 이론학(theoretike)에 형이상학[존재 그 자체를 보편적으로 다루는 학문], 자연학[가변적인 존재자, 즉 질료와 형상의 복합체인 존재의 영역을 다루는 학문], 수학[존재자를 양적 특성에 관련지어 탐구하는 학문]을, 삶의 실천적인 문제를 연구하는 실천학(praktike)에는 윤리학[인간적인 좋음을 다루는 학문]과 정치학[바람직한 정치체제를 다루는 학문]을, 전문적인 기술지를 탐색하는 제작학(poietike)에는 시학[예술창작의 기술을 다루는 학문], 수사학[청중을 설득하는 논리적, 윤리적, 심미적 토대를 다루는 학문]을 배치시켰고, 각각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소피아(sophia), 프로네시스(phronesis), 테크네(techne)로 특화하여 대응시킨 바 있다. 학문대상의 성격과 인간의 지적 태도를 고려한 그의 구분법은 서양 학문의 변천과정에서 학문분류의 기준과 탐구방식의 범형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철학을 학문 전체 혹은 인식 일반을 통칭하는 단어로 사용했던 전통은 서양의 근대 초까지 지속된다. 근대의 대표적 철학자인 데카르트(Descartes)는 철학을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하여, 학문의 뿌리를 형이상학에, 줄기를 자연학에, 가지를 분과학에 각각 연결시킨 바 있다.5) 그에 따르면 모든 학문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응용학문은 기초학문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점, 나아가 학문의 존재 이유가 인간 삶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점이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다. 의학(medicine)을 통해 인간의 건강을 도모하고, 역학(mechanics)을 통해 삶의 편의와 부를 축적하고, 도덕학(moral science)을 통해 덕스러운 삶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은 학문의 근간(根幹)으로서 자연학과 형이상학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징적인 점은 근대 초반까지 자연과학은 철학으로부터 분화되지 않은 채 자연학이라는 이름으로 철학의 한 부분으로 속해 있었는데, 자연이라는 대상의 본질과 속성을 이해할 때 전통적 형이상학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려한다면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이와 같이 보편적이고 통합적 학문으로서의 ‘철학’은 근대적 의미에서 ‘과학’(science)의 성립과 함께 커다란 의미변화를 겪게 되었다.6) 혁명에 비견되는 16, 17세기 과학의 발전은 서양 학문체계의 지각변동을 일으켰고, 무엇보다 학문의 분과화(departmentalization)를 가속화시켰다. 주목할 만한 점은 근대 과학적 방법론을 특징짓는 경험적⋅실험적, 수학적, 기계론적 특성은 이미 고중세에도 존재했으나, 16-17세기에 이르러서야 개별적인 차원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되면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김영식, 2009: 84-85 참조).
일례로 1687년에 출간된 뉴턴(I. Newton)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는 학문의 급격한 분화를 촉발시킨 이정표가 되는 저서다. 특히 실험과 관찰을 통해 일반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분석의 절차와 발견된 원인으로부터 여러 현상을 설명하는 종합의 절차로 구성된 뉴턴의 실험적 방법은 자연의 모든 현상을 법칙적이고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데 성공하였고, 기존의 자연철학과 구분되는 새로운 의미의 지식체계, 즉 고전 물리학을 태동시켰다. 한마디로 뉴턴의 실험철학은 현대적 의미에서 과학의 의미를 결정짓는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서양근대철학회, 2001: 62-67). 천체 역학에 적용되었던 뉴턴의 방법론은 화학, 생물학 같은 자연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등 인간의 복잡한 사회현상을 해명하는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학문분화를 촉진시켰다.7) 이러한 측면에서 지식의 총체로서의 철학이 학문 분화과정에서 겪게 될 정체성 위기(identity crisis)는 불가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철학사에서 정체성 위기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정리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앞서서 언급한 뉴턴과학의 출현 이후 자연이 철학의 대상 영역에서 이탈하여 독자적 방법론에 의해 자연과학으로 발전을 거듭하는 시점에서 나타난 위기다. 칸트의 ‘선험철학’(transcendental philosophy)은 자연세계에 대한 이론적 탐구를 자연과학의 소관사항으로 완전히 넘기고, 인간의 인식능력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철학의 새로운 과제로 설정하기 위한 전략을 담아내었다. 두 번째 정체성 위기는 19세기 말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토대를 둔 심리학의 출현이다. 칸트 이후 정신과학과 자연과학이라는 구분 속에서 철학을 정신과학에 편입시켰던 종래의 시도가 심리학의 출현으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이명현, 1982: 28-29). 결국 근대 이후 나타난 철학의 정체성 위기는 자연과학적 탐구방법론의 확장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로 보인다. 급속한 학문분화는 철학의 정체성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기에 이르렀고, 철학은 특정 대상에 대한 지식체계로서의 분과학문과는 다른 위상, 즉 철학은 인식론의 측면이나 가치론의 측면에서 ‘분과학문’을 학문적 대상으로 삼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와 같이 철학은 메타학문으로서 자리매김되었으며, 인문학 내의 문학과 역사학과는 다른 매우 독특한 성격을 형성하였다(황수영, 2010: 205).
학문의 분화과정 속에서 제기된 철학의 정체성 위기는 학문으로서 철학의 존립가능성을 묻는 절박한 작업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 현대철학의 전반적 경향은 이 같은 위기상황에 대한 학문적 대응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일례로 하이데거(M. Heidegger)는 데카르트의 제일철학(prima philosophia), 칸트의 선험철학, 후설의 선험적 현상학(transcendental phaenomenology) 등 개별 학문과의 비교 속에서 철학의 정체성을 수립했던 이전의 경향과는 다른 행보를 취한다. 단적으로 그는 근본학(Grund- wissenschaft)으로서의 철학의 특성을 강조한다. 그는 『철학입문』에서 “철학은 하나의 학문인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제기하면서 결코 “철학은 하나의 학문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마디로 모든 학문의 근원인 철학이 이로부터 파생된 개별학문과 비교대상에 서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는 것이다(하이데거, 2007: 25-29). 이 같은 주장은 기초존재론(fundamental ontology)이라는 그의 독특한 사상에 기반하고 있다. 하이데거는 종래의 존재론, 즉 전통 형이상학이 ‘존재’를 ‘존재자들의 세계를 지탱하는 최후의 무엇’으로 이해하면서 존재를 존재자처럼 다루었다고 비판하고,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를 ‘존재망각(Seinsvergessenheit)의 역사’로 규정한 바 있다(하이데거, 1998: 27-32, 38-40). 그에 따르면 존재를 존재자처럼 다루는 방식은 서양 근대에 확고해진 대상적 사유에 기초한 것이고, 모든 개별 학문은 이러한 대상적 사유에 기초하여 발전해왔다. 이러한 구도 아래서는 개별 학문과 철학은 명확히 구별된다. 개별학문의 대상이 존재자라면, 철학의 대상은 존재자를 존재자이게끔 하는 존재이며, 결국 철학은 존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하이데거, 2007: 227- 228). 설령 학문이 존재자의 인식을 다룬다고 하더라도 철저하게 분할된 특정한 영역에 대한 앎이기에 존재자 전체를 포괄할 수 없고, 개별 학문 전체를 동원하더라도 존재자 전체를 해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나아가 존재와 존재자 사이의 내적 연관에도 접근할 수 없기에 개별학문은 그 자체로 명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하이데거는 철학과 학문의 구별, 나아가 학문에 대한 명확한 한계 설정을 통해 분과학문의 시대에 필요한 철학의 역할을 분명히 밝힌다. 개별학문은 학문과 학문탐구 주체로서의 개인간의 근본적 관계를 망각하고 있고, 학문의 대중화에 빠져 실천적 면모로서의 본래적 가치를 상실하였으며, 사실의 영역에서 이루어낸 진보에 취해 학문의 고유한 한계를 망각함으로써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하이데거, 2007: 26-50). 결국 학문의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식은 근원적 학문으로서의 철학의 가능성과 역할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철학의 정체성에 대한 하이데거의 입장은 철학이 분과학문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근본학으로서의 위상을 강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철학의 영역에서 사회철학, 법철학, 정치철학, 과학철학, 언어철학을 다루는 것은 여전히 철학에서 분화된 개별학문이 발전하더라도 여전히 근본적 원리 탐구의 행위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전공으로 분화된 학문 영역에서 통합적이며 반성적인 탐구의 필요성은 부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별학문이 대상에 대한 지식 획득을 목적으로 한다면, 철학은 자기성찰적 학문으로서 지식과 학문의 근거 일반을 총체적으로 반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학문적 성찰은 ‘지금 여기’라는 시간과 공간의 맥락에서 구체화된다. 이런 맥락에서 철학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회와 문화 등 여러 영역의 최고 원리와 여러 영역의 통일 원리를 반성적으로 탐구하는 지적 활동 또는 그 결실”(백종현, 2007: 299)이라 할 수 있다.

2.2. 메타학문으로서의 교양학

대상 없는 학문의 가능성을 철학이 보여준다면, 학문으로서의 교양 역시 이러한 메타학문적 성격을 부각시켜야 할 것이다. 교양의 학문성에 대한 논의는 사실의 문제(quid faci)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quid juris), 즉 교양의 이념적, 당위적 형태를 탐색하는 문제이다. 특징적인 점은 이념형으로서의 철학(근본학문으로서의 철학)과 현실에서의 철학(인문학 내 분과학문으로서의 철학)은 이념형으로서의 교양(기초학문을 포괄하는 측면에서의 교양학)과 현실에서의 교양교육(교육학 내의 분야교육)과 일종의 유비관계가 성립한다는 점이다. 학문의 독자성과 전문성이 강화되는 현실에서 교양이 특정한 학문 대상과 영역을 주장하기 어렵다면 다른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고, 그것은 바로 철학이 취했던 입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교양학이 기초학문을 다룬다고 할 때 전공으로서의 기초학문과의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우선 메타학문(Meta-science)으로서의 교양학을 확립하는 작업이다. 교양학은 경험과학(사회과학 및 자연과학)이 제공한 세계에 대한 사실적 내용을 다시 대상으로 삼아 메타적 차원에서 접근하여,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동일한 학적 대상을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함으로써 고유성을 확보하는 전략으로, 실증적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학문적 성과를 다시 한번 반성적으로 천착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경우 인문학과 교양학은 공통의 학문적 과제를 공유할 것이다.8) 그러나 교양학이 인문학과 차별화될 수 있는 점은 교양학이 전공으로서의 인문학이 할 수 없는 학문적 탐구의 역동성을 구가하여, 횡단적 학문성과를 구축하는 것이다. 일례로 철학이 학문의 근본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했다면, 교양학은 자신의 정체성을 횡단성(Transversality)에서 확보하는 전략이다.9) 결국 메타학문으로서의 교양학은 실증적 층위에서는 기초학문에 의존적이지만, 반성적 층위에서는 학문간의 역동성을 구가함으로써 그 고유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모든 학문은 연구와 교육의 측면을 지닌다. 진리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연구의 사명과 지식의 전수를 원리로 삼는 교육의 사명이 학문을 선순환 구조로 만드는 두 축이기 때문이다. 학문으로서의 교양, 즉 교양학 역시 연구와 교육의 두 가지 측면을 모두 포함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교양학’은 다른 전공학문과는 달리 기초학문의 횡단적 성과를 구축하는 이론적 측면과 인간의 자기형성을 추구하는 실천적 측면을 동시에 갖춘 학문, 이른바 학문성과 인간성을 동시에 갖춘 학문으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칸트는 학문의 성립조건을 조건을 이성적 원리에 따라 다양한 지식이 내적 연관성과 유기적 통일성을 지닌 시스템, 즉 체계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일차적으로 꼽으면서, 특히 체계를 건축물에 비유한 바 있다(칸트, 2006: A832-834/B860-862). 하나의 건물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건축자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설계도면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교양의 지식체계를 구축하고 구조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원리, 이념이 필요할 것인가. 학문으로서의 교양, 즉 교양학은 전공학문으로서의 인문, 사회, 자연과학과 구분되어 기초학문의 성과를 어떤 원리 아래 체계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부각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3. 현행 학문체계에서 교양학의 역할

3.1. 고전 인문학에서 분과학문으로서의 인문학으로

앞서서 살펴본 대로 현행 학문체계에서 교양학의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점검해보아야 하는 문제는 어떤 이념 아래 교양의 체계를 구축할 것인가이다.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은 여러 측면에서 가능하겠지만, 일단 학문의 역사에서 자유교양과 철학, 인문학 간의 통합과 분리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이들을 묶어내는 공통의 목적을 도출하는 작업을 시도할 것이다. 우선 짚어두고 넘어갈 점은 인문학이 서양 고대까지 소급할 만큼 역사적으로 오래된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현행 학문체계에서 자연과학이 가장 우선적으로 분과학문으로 자리매김되고 이를 기반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분과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강상진, 2007: 61). 이런 측면에서 철학, 인문학, 자유교양이 현재와 같은 분과학문 체제 이전에 어떤 연관관계에서 작동하면서 의미를 가졌는지, 또 그 연관이 어떤 역사적 경로를 거쳐 현행의 분과로 귀결되는지를 면밀하게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인문학과 철학은 서양학문의 역사 속에서 상당한 대립과 갈등 속에서 학문적 정체성을 수립해왔으며, 그 대립은 플라톤(Platon)과 이소크라테스(Isocrates)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플라톤과 이소크라테스의 대립은 현대의 과학과 인문학의 대립을 연상시킬 만큼 첨예하게 대립하였는데, 동일하게 ‘철학’ 교육을 표방하면서도 전자는 인간의 경험과 독립적인 순수한 지식(epiteme)을 지향했다면, 후자는 인간의 경험을 중시하는 상식(doxa)에 기반했다는 점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일례로 플라톤이 ‘아카데미아’에서 수학을 학문의 모범으로 하여 산술, 기하학, 천문학, 음악(화성학), 변증술을 가르쳤다면, 이소크라테스는 ‘수사학 학교’에서 올바른 시민의 교양을 갖추기 위한 수사학, 좀더 구체적으로는 고대 시인과 역사가들의 작품을 다루는 전형적인 고전 인문학의 내용을 가르쳤다. 플라톤은 수학을 감각에 의존하지 않고 사고의 힘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는 대상을 다루는 학문이기에 학문의 모범으로 간주하였다.10) 언제나 동일한 수를 다루는 산수(arithmetike), 공간의 수리적 성질을 탐구하는 기하학(geometria), 천체 상호간의 속도와 비율을 탐구하는 천문학(astronomia), 화음을 가능하게 하는 비율을 탐구하는 화성학(harmonia)은 생성이 아니라 실재를 다루고, 대상에 대한 지성적 인식을 훈련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상호간의 친근성을 확보한다. 끝으로 변증술(dialektike)은 사물의 본질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능력과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포괄적 안목을 기르는 교과이다(김영균. 2008: 254-259). 반면에 이소크라테스는 “인간 행동에 관한 최선의 상담자”로서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 같은 위대한 시인의 텍스트, 헤로도투스, 투키디데스 같은 역사가들의 작품을 수사학 수업에서 강조하면서 언어교육을 통해 건전한 정신과 윤리의식을 함양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오인탁, 2001: 402-403).
이러한 대립은 로마 공화정 시대 키케로(Cicero)에 의해 후마니타스(humanitas) 개념이 구체화되면서 고전 인문학의 주요 교과 내용으로 통합된다. 철학 교육에서 플라톤이 강조한 산수, 음악, 기하학, 천문학은 4과(quadrivium)로 이소크라테스가 강조했던 넓은 의미의 수사학은 문법, 수사학, 논리학의 3학(trivium)으로 이어진 것이다. 따라서 3학 4과로 이루어진 자유학예(artes liberalis)는 체계적 원리에 따른 진리 탐구와 고전연구를 토대로 한 인간다움의 추구의 정신이 종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징적인 점은 인문교양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자유학예 7과목이 11세기 경까지는 ‘철학’이라는 용어로도 쓰였다는 점이다.11) 서양 고대와 중세의 학문적 전통에서 철학, 인문학, 자유학예는 개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범주로 묶였다는 점이 특징적이다(황수영, 2010: 189). 다시 말해 학문 일반, 일반적인 지식체계로서의 철학과 인간 교육으로서의 인문학이 ‘자유학예’라는 용어 안에 종합되면서 상호간에 교환가능한 개념으로 자리매김된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오면서 이러한 연관관계에 균열이 가고 특히 철학과 인문학의 대립은 고조된다. 인문학의 관점에서 보면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근대 과학의 출범은 현재 인문학의 토대를 형성한 주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인문학의 탐구대상이 ‘인간’으로 한정된 것은 15세기 르네상스 학자들에 의해서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키케로의 후마니타스를 스튜디아 후마니타티스(studia humanitatis), 즉 인문학 연구로 재개념화하면서 문법(grammatica), 수사학(rhetorica), 역사학(historia), 시(poetica), 도덕철학(philosophia moralis)으로 그 범위를 한정했으며, 각 분과의 교육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 원전 읽기를 강조하였다.12) 특히 스투디아 후마니타스는 스투디아 디비니타티스(studia divinitatis)와의 대립관계에서 형성된 단어로 당시 신학과 그것의 방법론을 마련해준 논리학 중심의 스콜라 학풍에 반대하고 인간에 대한 학문을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중세 3학의 중추였던 논리학이 위축된 가운데 수사학이 가장 중요한 분과로 부상했으며, 4과 역시 빠져 있다는 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황수영, 2010: 189-190; 이종흡, 2007: 85; 백종현, 2015: 169-170).13) 르네상스 인문주의자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바람직한 윤리적 행위를 모색하는 도덕철학만을 가치 있는 학문으로 인정했다고 한다면, 자연철학, 형이상학, 도덕철학으로 구성되었던 당시의 철학 역시 여전히 학문 전체를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인문학을 지식체계에서 인정하지 않을 만큼 인문학과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일례로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언어, 문학, 역사, 수사학, 시 등 전통적인 인문학을 구성하는 영역에 대해 학문적 인식의 결여와 내용의 무용성, 공허함을 이유로 강하게 비판하면서, 자신의 철학(학문) 체계에서 인문학적 내용을 제외시킨 바 있다(데카르트. 2019: 149-152).
또 다른 국면전환은 바로 근대 자연과학의 태동과 발전이다. 근대 자연과학의 발전은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학문적 정체성을 교육에서 연구 쪽으로 방향을 전환시키는 계기를 제공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인문학은 자연과학의 방법을 차용하여 스스로의 존립근거를 확보하려고 노력하였다. 근대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수행했던 가다머(H.-G. Gadamer)는 근대 과학의 방법적 사유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근대적 의미의 방법은 여러 학문 분과에서 가질 수 있는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통일적 방법이다. 방법 개념을 통해 규정된 인식 이상은, 우리가 어떤 인식의 길을 의식적으로 걸어갈 때 그 길을 나중에 다시 걷는 것이 항상 가능해야만 한다는 사실에서 성립한다. 메토도스(Methodos)란 ‘나중에 다시 걸어가는 길’(Weg des Nachgehens)을 의미한다. 누군가 걸어갔던 것처럼 항상 다시 걸어갈 수 있음, 바로 이것이 방법적인 것이며, 과학의 연구방식을 특징짓는 것이다(H.-G. Gadamer, 1986: 48).
수학적 자연과학은 근대 인문학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특징적인 점은 인문학이 자연과학의 확고한 영역확보에 따른 자기방어적 성격을 지녔을 뿐 아니라 자연과학 못지않게 학문적 진보를 이룰 수 있는 ‘과학’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19세기 정신과학(Geisteswissenschaften)14)의 전개과정에서 특징적인 사실은, 정신과학이 외적으로 자연과학을 모범으로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근대 자연과학과 똑같은 근거에서 나왔기 때문에 정신과학은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경험과 연구에 관한 동일한 열정을 발휘시켜야만 한다”는 가다머의 언급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H-G. Gadamer, 1972: 61). 구체적인 예로서 헤름홀츠(Helmholtz)는 자연과학과 구별되는 정신과학의 특성과 그 우월성을 강조하였으나 정신과학의 학문적 성격이 자연과학적 ‘방법’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고, 드로이젠(Droysen) 역시 이론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는 역사의 의미와 인간의 역사적 삶이 근원하는 생생한 원천을 강조하였으나 정신과학 역시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자명한 학문 분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고유한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며, 정신과학의 방법론적 독자성을 정당화시키고자 한 딜타이(Dilthey) 역시 정신과학의 정당화 기준을 자연과학의 객관성에서 찾았다는 점은 당시 자연과학이 학문의 모델로서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는지 명시적 예가 될 것이다(H.-G. Gadamer, 1972: 1-7).
정신과학을 지금의 인문학으로 이해한다면, 결국 근대 이후의 인문학은 자연과학을 모범으로 삼아 엄밀한 탐구방법과 탐구대상이 있는 학문으로 정립하는 데 노력을 쏟았다고 볼 수 있다. 고전 인문학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전인적인 인간육성’의 기능은 크게 위축되고, 인문학도 자연과학처럼 하나의 연구 작업으로 수행되기에 이른다. 실증적 방법론을 채택한 근대사학이나 엄밀학의 이념을 표방한 근대철학이 대표적인 예이다(백종현, 2015: 173). 이제 근대 인문학은 인간의 실천과 공동체의 규범을 제시하는 가치지향적 학문에서 사실규명에 집중하는 학문으로 빠르게 전환되는데, 자연과학의 전개 양상과 유사하게 대상영역에 대한 방법적 차별화와 자립화에 의해 여러 분야로 구분되었으며, 스스로를 이론적 학문으로 규정하여 ‘탐구된 사태에 대한 가치중립성’이라는 요청을 수용함으로써 실천과는 무관한 이론적인 작업이라는 형태를 띠게 되었다(최성환, 2007: 105-107).
결국 인문학의 분과학문화는 고도로 분화된 학문체계에서 인간의 자기형성, 고차원적 인간성 형성을 위한 역할이 상당 부분 공백으로 남아 있음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이태수는 인간은 자기정체성을 규범적인 모델로 설정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런 맥락에서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개념은 인간의 본성과 동시에 이상적 인간이 지닌 특성을 동시에 의미하기에 서구문화사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분석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 비추어보면 인간을 탐구한다는 인문학의 성격이 이미 존재하는 인간의 속성에 대한 연구라기보다는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기획의 일부로 파악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는 것으로 보인다(이태수, 2008: 15). 그러나 바람직한 인간형을 구축하기 위한 역할을 현행 분과학문 체제 아래 속해 있는 인문학에서 기대하는 것은 매우 요원해보인다.15) 결국 이러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고전 인문학이 담당했던 역할을 현재의 교양이 주도적으로 수행해나가야 할 것이다.16) 이를 위해 교양은 현재 대학 편제와 학문체계에서 도구적, 기능적 차원의 한계를 극복하여 실천적 학문으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고전 인문정신의 회복과 재구성으로서의 교양학의 역할을 명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3.2. 고전 인문정신의 회복과 재구성으로서의 교양학의 역할

인문학, 철학, 자유교양의 전개과정을 간략하게 개괄하면서 확인할 수 있는 점은 교양의 지식체계를 구축하고 구조화하기 위한 기본 원리는 결국 고전 인문정신의 회복과 재구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고전 인문정신이야말로 특정 직업인 양성보다 사람다움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강력한 믿음을 전제한다는 측면에서 그렇고, 기계의 인간화를 꿈꾸는 ‘인공적 포스트휴먼’과 인간의 기계화를 꿈꾸는 ‘생물학적 포스트휴먼’이 우리 앞에 포스트휴먼 시대를 전면적으로 예고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포스트휴먼 시대 교양학은 고전 인문정신의 회복과 재구성의 차원에서 인간다움에 대한 재정의와 새로운 가치체계를 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포스트휴먼의 시대로 접어드는 전환기적 국면에서 교양학은 일종의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학부간의 논쟁』에서 철학의 역할을 새롭게 규정했던 칸트의 시도는 되새겨볼 만하다. 칸트 대학론의 핵심은 자율적 학문공동체로서의 대학은 상위학부와 하위학부로 구성되며, 양자 모두 학문의 진전을 위해 각각의 특성에 맞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대학의 편제를 한 인간의 영원한 안녕(신학부), 사회구성원으로서 시민의 안녕(법학부), 신체의 안녕(의학부)을 도모하는 상위학부와 학문 추구 자체가 목적인 하위학부(철학부)로 구분하면서 하위학부인 철학부가 상위학부를 섬기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공언한 바 있다. 문제는 칸트가 생각하는 하녀의 역할이다. “하녀의 역할이 상위학부라는 귀부인이 입은 드레스가 바닥에 끌리지 않도록 옷자락을 들고 따라가는 것인지, 길을 안내하기 위해 횃불을 들고 앞길을 밝히는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칸트, 2012: 42)는 그의 언급은 이성적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부가 후자의 역할, 즉 상위학부 학문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 진리의 길로 이끄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이런 측면에서 철학부가 대학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야 함을 주장하기 위한 포석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철학부가 경험적, 역사적 인식의 학문 분과와 순수한 이성인식의 분과 모두를 포함한다고 본다면 기초학문을 토대로 하는 지금의 교양대학으로 이해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17) 결국 칸트의 비유는 예측불가능한 변화의 시대에 교양학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우선 교양학은 보편 지성교육으로서 인간에 대한 실증적 지식의 풍요와 참된 가치의 빈곤이라는 역설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나아가 기술적 변화에 맞서는 인간다운 도전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미래 세대에게 인간다움의 정신을 환기시키고 새로운 가치체계 정립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정연재, 2020: 71). 또한 교양학은 분과학문으로서의 인문, 사회, 자연과학과 차별화하기 위해 기초학문의 성과를 인간 가치와 생활세계와의 밀접한 연계 속에서 재구성하는 것, 즉 연결성(Connectivity)의 조건을 충족해야 할 것이다.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단편적이고 사실적 분석을 넘어서 일종의 실천적 관심을 확보하여 학문세계와 생활세계의 연결을 확고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후설은 실증주의 학문의 결정적 단점은 자신이 수행하는 학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18) 이는 특정 학문 영역에 갇혀버림으로써 자신의 연구성과가 궁극적으로 삶의 세계에서 어떤 가치와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지 않는 현대의 학문적 세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 삶을 위해 지녀왔던 학문의 본래적 가치와 사명을 인식하여 인간 가치와의 연계 속에서 학문의 의미를 규명하는 작업이 그 어느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일례로 하버드 대학의 교양교과목 자격요건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강의실 안에서의 교과내용과 강의실 너머의 세상과의 밀접한 연관성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다(홍석민, 2020: 20). 물론 이것은 교육적 차원의 언급이지만 교양학의 성립조건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삶과 융합된 실천적 지식’은 인간성 실현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구현하는 교양학에 부합하는 지식이다. 이런 측면에서 교양학은 학문세계와 생활세계의 연계를 통해 가능적 인간과 현실적 인간의 간극을 메꾸는 실천적 학문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맡아야 할 것이다.

4. 나가는 말: 교양학 이념의 회복을 위하여

지금까지 논의를 정리하면 학문으로서의 교양은 전공으로서의 기초학문이 할 수 없는 학문적 탐구의 역동성을 구가하여 횡단적 학문성과를 구축하고, 고전 인문정신의 회복과 재구성을 통해 학문세계와 생활세계의 연계를 공고히 하여 실천적 학문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학문성과 인간성이라는 두 가지 조건은 학문으로서 교양이 본격적으로 출범하기 위한 일종의 기본전제다. 이러한 기본조건마저 충족되지 못한다면 학문 편제에서 교양교육은 교육학의 하위 분야로 머무를 가능성이 농후하고, 대학교육에서 입문 성격의 낮은 수준의 지식체계나 전공교육에 진입하기 위한 예비 기초교육 정도의 위상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극단적으로는 학문이라는 타이틀을 부여받기 어려운 낮은 수준의 상식이라는 편견에 끊임없이 시달릴 것이다.
특히 학문으로서의 교양의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더욱 역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바로 연구 부문이다. 교양교육은 연구 없이도 가능하다는 그릇된 통념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교양교육이 교육학의 한 하위 탐구영역인 것은 사실이다. 교양을 독립적으로 분류해 놓을 경우 교양교육 전공을 할 만큼 개념과 이론, 연구방법론, 학문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는가를 판단해 보아야 한다”(손승남 외, 2018: 24)는 전문가의 지적은 관점의 정당성을 차치하고라도 교양교육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뼈아픈 지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교양교육 분야 연구에서 기초학문의 횡단적 연구성과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은 여전히 교양학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함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백승수, 2017: 290-291).
결국 이념적 차원의 교양과 현실적 차원의 교양의 간극을 메꾸는 위해서는 결국 교양을 업(業)으로 삼는 자의 학문적 태도의 변화가 중요할 것이다. 하이데거는 “학문이야말로 오직 물음의 열정 속에, 발견함의 환희 속에, 비판적인 해명, 증명, 근거제시의 철저함 속에서만 존재한다”(하이데거, 2006: 25)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교양학은 학문의 근본정신을 주도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이상적 학문이다. 교양학은 외적 자연의 세계, 인간의 사회적 세계, 인간의 내면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박학심문(博學審問)의 정신을 구현하는 학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분과학문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는 점에서 넓게 배워야 하고, 분과학문이 도저히 시도할 수 없는 근본적인 질문도 집요하게 제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교양학은 이소크라테스의 인문정신의 전통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대표하는 진리탐구의 정신이 교차하는 자유로운 학문이자, 대학이라는 교육제도의 변화와 학문의 분화과정 속에서 학문적 정체성을 끊임없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학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교양학은 태생적 위기를 굳건한 학문으로 정립하는 기회로 전환해야 할 중대한 책무를 지닌다. 김우창은 학문의 자세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방황을 허용하는 것은 탐색과 탐구의 범위를 넓히는 일이다. 정신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한 지점에 고착되는 것을 거부하고, 자아정체성의 관점에서는 자신을 끊임없는 자기초월의 움직임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학문적 추구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김우창 ⋅ 박명림, 2011: 179).” 역사 속에서 다양하게 구현된 교양의 여러 양태들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방황적 탐색’의 결과다. 그리고 학문으로서의 교양은 새로운 탐색의 출발점에 서 있다.

Notes

1) 베이컨의 ‘위대한 부흥’(Instauratio magna) 프로젝트는 지식의 진보를 통해 자연과 사회의 완성을 이루기 위한 대형기획이었다. 그는 이 기획의 출발점으로 학문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작업을 『학문의 진보』에서 수행하는데, 특히 인간적 학문을 인간의 기억과 상상력과 이성과 연관지어 각각 역사학, 시, 철학으로 구분함으로써 인문학의 핵심영역인 문사철의 윤곽을 그려냈다(베이컨, 2002). 또 다른 측면에서 학문에 대한 반성작업은 칸트에게서 이루어졌다. 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학문(Wissenschaft)이야 말로 단순한 지식의 집합이 아니라 ‘체계’(system)로 보았으며, 특히 시스템을 ‘자연적인 사물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이념 아래서의 다양한 지식들의 통일’(die Einheit der mannigfaltigen Erkenntnisse unter eine Idee)로 간주함으로써 학문의 체계적 통일성을 강조한 바 있다(칸트, 2006: A832/B860). 이러한 맥락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비유되는 칸트의 이성 비판은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가능하게 한 치밀한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후설은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에서 “사실을 규명하는 학문은 사실적 인간만을 만들 뿐”(후설, 1997: 65)이라고 밝히면서 학문의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으로 실증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하는데, 그의 비판은 일종의 학문이론(Wissenschaftstheorie)으로서 학문의 주체, 학문의 대상, 학문의 의미를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2) ‘교양학’이라는 용어는 하병학이 「보편교양학으로서의 수사학 재정립」(2004)이라는 논문에서 이미 사용한 바 있다. 여기서 그는 중세 대학에서 성행했던 7개의 자유교과를 교양학(Disziplin der Bildung)으로 이해하고 있다. 교양학의 경우 영어로 liberal arts and sciences(LAS로 약칭)로 표기함으로써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기초학문 중심의 자유교양을 의미하는 것으로, liberal arts education 혹은 liberal education은 LAS에 토대를 를 둔 교육으로 표기할 수 있을 것이다.

3) 교양교육의 명칭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백승수(2019)가 「교양교육의 명칭 재정립을 통한 교양교육의 재개념화」에서 제안한 문리교육(文理敎育)은 ‘기초학문 분야를 가로지르는 횡단적 교육’을 표방함으로써 기초학문을 전면에 내세우는 동시에 교양교육의 정상화를 도모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 명칭으로 보인다. 이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명칭 자체가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학문으로서의 교양 전체를 포괄하기에는 다소 무리라고 보여진다. 학문으로서의 교양이 일차적으로 정립되어 있고, 이를 통해 교육과 연구의 구도가 형성되어야만 현행 학문분류체계에서 교양교육이 중분류 이상의 위상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4)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윤리학』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철학, 즉 지혜에 대한 사랑은 그 순수함과 견실함에 있어서 놀라운 즐거움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앎을 실제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찾는 사람들보다 더 즐겁게 삶을 영위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럴 법하다(아리스토텔레스, 2006: 1177a 20-1177b 25).”

5)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1644)의 목차는 제1장 「인간 인식의 원리들에 대하여」, 제2장 「물질적인 것의 원리들에 대하여」, 제3장 「가시 세계에 대하여」, 제4장 「지구에 관하여」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점은 당시 지칭하는 철학이 좁은 의미의 분과학문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6) 주지하다시피 과학으로 번역되는 영어 science는 인식, 지식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episteme의 라틴어 버전인 scientia에서 유래하였다. scientia는 어떤 상황이나 주제에 대한 분별 있고, 통찰력 있는 지적 이해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였으며, 이러한 용례는 13세기 중엽 scientia라는 가장 큰 범주 아래, 신적 지식과 인간적 지식으로 구분한 킬워드비(R. Kilwardby)의 학문분류체계에서 명시적으로 나타난다(김영식, 2007: 47-48). 가장 포괄적인 의미의 지식을 의미했던 scientia가 과학으로 굳어진 것은 근대 학문의 분화와 관련이 있으며, 특히 과학(科學)은 분과학문(分科學問)의 줄임말로서 학문이 통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나누어져 있다는 사태를 보여주기 위한 일본인의 정교한 번역태도가 담겨 있는 단어다.

7) 김남두는 근대 학문의 역사를 ‘지식지배’라는 개념으로 요약한 바 있다. 지식지배란 “특정한 지식이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어 광범위하게 지배적인 지식형태로서 수용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특히 자연과학적 지식은 근대학문의 역사에서 이러한 지배의 형태를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전통적으로 과학의 형식에 따라 접근될 수 있는 지식 영역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던 분야가 과학적 지식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이런 영역 확대가 일반화되는 현상”이 근대에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근세 이후의 학문사란 크게 물리학에서 시작된 수리적 체계화 작업이 자연과학의 여러 영역을 비롯하여 경제학⋅심리학⋅정치학 등 사회과학의 영역으로 확대되어 가는 과정이었으며 금세기 이후 시작된 공학화가 진행되고 정보화와 결합되어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다”(김남두, 2000: 15).

8) 인문학의 메타학문적 성격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강조된 바 있으며, 이태수(1994), 신승환(2007), 정호근(2003), 이중원(2003), 김영식(2009)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이태수는 학문체계를 대상영역에 따라 구분하는 방식을 포기한다면 인문학의 독자성을 확보하기가 수월하다고 말하면서, 인문학의 대상은 다른 학문이 대상으로 삼는 학문세계와 생활세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이태수, 217-218). 또 다른 측면에서 김영식(2009)은 인문학이 ‘인문학’으로 불리는 것은 지식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연구방법과 정신 때문이며, 이런 측면에서 인문학에 속하지 않는 수많은 분야들이 인문학적 공부, 연구, 분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9) 일례로 아놀드 하우저(A. Hauser)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예술의 사회학』 같은 학문의 횡단적 성과가 바로 교양학의 성과가 되어야 할 것이다.

10) 수학이 모든 학문의 모범이라는 인식은 플라톤뿐만 아니라 근대철학자 데카르트의 보편학(mathematica universalis)의 이념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양자간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전자의 경우 경험과 무관한 ‘순수 이성적 존재’를 학문적 대상으로 간주하기에 수학이 모든 학문의 전형이라면, 후자의 경우 수학이 가장 완성도 높은 인식방식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모든 학문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수학적 확실성의 토대 위에 지식 체계를 정립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11)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크리스텔러(Kristeller)에 따르면, 그리스 철학 대부분이 라틴어로 번역되지 못함으로써 중세 말까지 라틴세계에서의 철학에 대한 이해는 7자유교과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12세기에 이르러서야 새로운 교육제도로서의 대학의 출현, 이슬람에 의해 보존된 고대 그리스, 로마의 학문적 유산의 유입 등을 통해 7자유교과의 범주를 넘어서는 철학의 전통을 이해하게 되었다(크리스텔러, 1995: 59, 285 참조).

12) 르네상스 인문학이 철학과의 대립 가운데서도 도덕 철학(philosophia moralis) 만큼은 자신의 영역에 포함시킨 것은 인간다움의 추구라는 명제 앞에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13) 특징적인 점은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대학 바깥에서 시작되어, 대학은 오히려 전통적인 지식체계와 학풍에 안주하여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주도하는 지적 흐름에 저항하였으나 점점 그 변화에 부응해서 새로운 형태의 인문학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지식변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대학의 대처방식은 이러한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14) 인문학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정신과학(Geisteswissenschaten)이라는 용어는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의 『연역 논리학과 귀납 논리학의 체계』(전 6권)의 6권 제목인 “On the logic of Moral Science”를 요하네스 시엘(J. Schiel)이 “Von der Logic der Geisteswissenschaften”으로 번역하면서 유래하였다. 정신과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자연과학적 방법론이 인문학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밀의 의도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H.-G. Gadamer, 1972: 1)

15) 현대 분과학문 체제 아래서의 인문학에 대한 김영식의 비판은 주목할 만하다. 그에 따르면,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당시 학계에 만연한 스콜라학풍을 반대하면서 개방성과 역동성을 무기로 현대 인문학의 토대를 형성하였으나, 현재 분과학문 체제에서의 인문학은 지나치게 전문화되면서 큰 질문(big question)을 회피하고 세부적인 주제들에 대한 연구에만 몰입함으로써 새로운 스콜라주의(neo-scholasticism)에 갇혔다는 것이다(김영식, 2009: 170-171 참조).

16) 키케로의 다음의 언급은 고중세 인문학, 철학, 자유교양을 결속시켰던 인문 정신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목적에 봉사하는 모든 학문은 서로가 서로를 묶는 공통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고, 마치 혈연에 의해 연결된 것인 양 상호결속되어 있다(Cicero, Pro Archia poeta, Ch. 2, 안재원, 2015: 170에서 재인용).” 학문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움(humanitas)의 형성이라는 목적 아래 모든 학문을 묶어낼 수 있다(안재원, 2015: 170)는 그의 생각은 교양학이야말로 분과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이 방치한 고전 인문학의 기능을 떠맡아야 하는 책무를 환기시킨다고 볼 수 있다.

17) 칸트에 따르면 철학부는 두 가지 분과, 즉 역사적 인식의 분과와 순수한 이성인식의 분과이며 양 분과는 상호간에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역사적 인식의 분과에는 역사, 지리학, 문헌학 등의 경험적 지식이 속하고, 순수한 이성인식의 분과에는 수학, 형이상학, 철학 등이 속한다(칸트, 2012: 42 참조).

18) 후설은 학문의 위기를 언급하면서 그 위기의 핵심은 학문을 수행하는 학자의 망각, 즉 자신의 학문활동과 자신의 삶의 연관성에 대한 망각에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형식논리학과 선험논리학』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우리는 이론적 작업수행 속에 사태, 이론과 방법에 몰두하면서 자신의 작업이 지닌 내면성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고, 그 속에 살면서도 이 작업을 수행하는 삶 자체를 주제의 시선으로 다루지 못하는 이론가의 자기망각(Selbstvergessenheit)을 극복해야 한다(후설, 2019: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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