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교육은 어떻게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가 -자유교육 옹호를 위한 역량기반자유교육의 역사적 검토

How Liberal education makes humans free -Historical review of competence based Liberal education to advocate for Liberal education

Article information

Korean J General Edu. 2021;15(6):11-22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21 December 31
doi : https://doi.org/10.46392/kjge.2021.15.6.11
한수영
중앙대학교 다빈치교양대학 교수, hangang331@cau.ac.kr
Da Vinci College of General Education, Chung-Ang University
부족한 글을 엄중하게 읽어주시고 많은 가르침을 주신 세 분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Received 2021 November 20; Revised 2021 December 03; Accepted 2021 December 27.

Abstract

이 논문은 자유교육의 가치를 오늘의 교육 현실에서 의미있게 계승할 수 있는 방향을 설정해보기 위한 기초작업이다. 이를 위해 ‘자유’와 ‘비자유’라는 자유교육의 원형적인 대립 요소가 자유교육의 역사에서 어떻게 작동해왔으며 오늘의 문제 상황과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검토했다. 특히 현재 자유교육의 가치를 위협하고 있는 역량담론을 자유교육의 내재적 특징과 관련하여 고찰했다. 역량담론을 자유교육의 역사적 전통 안에서 다중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자유교육이 당면해있는 복합적인 정체성을 이해해보고자 했다.

‘자유로운(liberal)’이라는 개념과 그것이 필연적으로 불러오는 배타적인 영역은 자유교육이라는 오래된 구조물의 복잡한 정체성을 직조하는 핵심원리였다. 역량담론은 ‘자유-비자유’의 대립 구조를 기반으로 성장했으며, 자유의 영역까지 포섭하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다. 직업교육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강렬해지며 자유교육은 직업교육에 수사적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상징적 신화로 이용되며, 그 가치는 시장 논리에 침윤되고 있다. 자유교육과 역량담론은 가치나 지향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두 영역의 잠재적 갈등 요소와 교착지점을 인지함으로써, 자유교육의 현실을 중층적으로 조망할 수 있으며, 차후 방향을 설정해볼 수 있다. 역량담론이 압도하는 교육현실에서 자유교육은 인간 정신의 구심점을 제공해줄 지식의 지평을 재정비해야 한다.

Trans Abstract

Liberal education has represented the ideal and standard form of education that contains the essential value of education. Liberal education values the exploration of knowledge that holds truth beyond life. This is because knowledge itself has an intrinsic value of being “liberal.” Nonetheless, how being “liberal” actually liberates human beings cannot be explained. This very characteristic of liberal education has been criticized for making knowledge a priori dogma and for distancing people from the fullness of real life.

Liberal education, an elite education for liberal citizens, is known to be exclusive and removed from the reality of the working class. While it is concentrated on the input of knowledge, it shows a structural vulnerability that it neglects in the output. Therefore, the demand for a specific curriculum and observable consequences that would liberate humans was bound to appear constantly. Competence-based education grew against this backdrop, and liberal education gradually diminished in importance due to being seen as overly speculative, old fashioned, and disconnected from reality.

As the social demand for professional education intensifies, liberal education is being used as a symbolic myth that grants rhetorical justification to vocational education. Efforts to transform liberal education into competency-oriented training may backfire and often weaken the originality of liberal education and produce self-negating outcomes.

The cooperation between liberal education and competency-based education should begin again not by meeting half-way, but by acknowledging differences and recognizing potential elements of conflict.

1. 서론

1.1. 자유교육의 이동

바티칸 성당벽화인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1511)에는 전통적인 자유교육의 이상이 잘 나타나 있다.1) 가톨릭의 성전에 그리스의 철학과 예술, 과학의 거장들이 모여있다. ‘자유로운 지식’의 위대한 스승들이 밝힌 진리의 횃불을 따라서 지식의 계단을 올라가면, 그림 중앙에 있는 빛나는 통로에 다다를 수 있다는 신념이 벽화에는 깃들어 있다. 이 그림은 자유로운 지식은 모든 것의 시작이며, 이를 통해서 자유로운 인간의 가치를 고양하고 ‘진리’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영원한 이상’을 표상해준다.

그런데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교육에 대한 요구가 급변하며, 자유교육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신성한 지식의 권위는 무너졌고 현자와 스승이 밝힌 횃불을 따라서 진리를 찾아가는 성실한 순례자들로 이루어지던 전통적 교육의 옛 풍경은 소멸했다. 자유교육의 스승들을 통해서 계승되며 인간을 심원한 이상으로 이끌어주던 지식의 지평이 희미해진 자리에는 기성의 지식체계로는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세계가 펼쳐져 있다.

“상아탑의 아카데미 개념에서 벗어나, 지속적이며 동시대적 의미가 있는 자유교육의 형식을 창조해간다. 이 도전은 새로운 학문, 새로운 커리큘럼, 새로운 지식의 적용을 위한 의미 있는 촉진제가 될 것이다. 자유교육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이다”(AAC&U, 2011: 3). 현재 자유교육을 대변하고 있는 미국대학교양교육협회(AAC&U)에서는 자유교육의 방향을 위와 같이 표명했다.

이제 전통적인 상아탑의 지식을 변화하는 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제인 것으로 바꾸어 내는 것이 자유교육의 당면 목표가 된다. ‘영원한 이상’이라는 측정 불가능한 가치(‘개념’)를 구체적으로 실현시킬 학습과정과 결과(‘형식’)가 강조된다. 자유롭고 합리적인 마음을 중요시했던 전통적인 ‘자유로운 지식’은 손에 잡히는 탐색 도구와 같은 생생하고 ‘유용한 기술(skill)’로 대체되었으며, 자유교육은 특정 엘리트가 아닌 국가발전과 미래에 기여할 전체를 위한 일반교육의 특징을 갖게 된다. 기술, 역량, 성과와 같은 개념은 동시대의 자유교육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현재 교육현장에서 전방위적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21세기의 자유교육은 “전통적인 교과를 배워야만 한다든가 비직업적이라든가 하는 특징을 거부”해야 하고, 모든 학생에게 필수적인 “목표와 결과의 종합 세트”가 되어야 한다고 정의된다. 이제 자유교육은 추상적인 지식과 가치가 아니라, “명료한 경제적 활력을 제공하는 기회의 열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AAC&U, 2007: 3-4). 자유교육은 ‘영원한 이상‘이라는 추상적인 가치에서 점차로 목표부터 결과까지가 명료하게 측정되는 손에 잡히는 측면을 강화해왔다. 자유교육 정체성의 이동이 매우 낯설고 파격적으로 느껴지지만 실상 새로운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자유교육의 오래된 화두인 ‘가치와 실용’, 즉 그리스적 용어로는 ‘자유’(liberal)와 ‘비자유’(illiberal)를 대립적으로 구분해온 유구한 역사가 내재되어 있다. 자유학예(liberal arts)의 경우를 보더라도 과목이나 주제영역에 대한 논쟁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지만, 두 개의 영역으로 지식을 나누어 이해하는 기준만은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와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았다. “자유학예(Liberal arts)는 마음(mind)을 사용하고 비자유학예(iliberal arts)는 손(hand)를 사용한다”는 말처럼, 자유와 비자유 영역의 구분만은 2000여 년 동안 일관되게, 마치 인간이 여전히 마음과 손을 사용하고 있듯이 지속되어 왔다(Fitzpatrick, 2017: 19). ‘자유로운(liberal)’이라는 개념과 그것이 필연적으로 불러오는 배타적인 영역은 자유교육이라는 오래된 구조물의 복잡한 정체성을 직조하는 핵심원리였다. 이것은 ‘자유교육과 직업교육’, 또는 ‘내재적 가치와 도구적 가치’ 등의 대립적 프레임으로 지속되어 왔다. 그리스적 이상이 구축한 지식의 계단에서 출발한 자유교육의 정체성은 표준화된 커리큘럼과 성과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구체적인 현실공간으로 이동했다.

1.2. 연구의 방향

현재 자유교육의 대척점에서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역량담론이다. AAC&U가 <자유교육과 미국의 약속>에서 제시한 자유교육의 ‘새로운 형식’도 ‘역량’과 관련된 일련의 시도들이었다. 역량담론은 전통적 자유교육이 동시대와 잘 호흡하지 못한다는 취약성을 자양분 삼아 성장했다. 출발에서부터 현실에 밀착해 사회변화가 요구하는 실천적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데 주력해왔기에, 역량 담론은 신자유주의 시장의 강력한 파고에서도 거침없이 순항해 왔다. 그리고 미래를 담보로 하는 역량교육담론의 열기가 강해질수록 자유교육의 이상과 전통은 과거의 것으로 퇴색하게 된다.

직업교육의 영역에서 출발한 역량담론이 점점 그 범주를 확장하여 자유-비자유의 오래된 대립을 무화시키며 자유교육의 전통적 영역을 포섭해내는 중이다. 역량담론의 현실적 파급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역량논의는 교육에 미칠 긍정적 영향의 측면을 진단하고 예측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역량담론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학습자의 삶을 향상하고 학습자와 사회를 연계하는 역할을 하며 교육실천의 가능성을 확장해가고 있다(진미석, 2016: 8). 특히 OECD의 <2030프로젝트>의 경우에 ‘성공’이 아니라 ‘웰빙’을 목표로 내세우면서 포용적 성장을 강조하고 개인과 사회의 웰빙을 추구하는 변혁적 역량을 중시한다. 이런 면에서 역량담론에서 인본주의적 특성이 강화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설연경, 2020: 29).

그러나 역량담론은 기본적으로 도구적 관점에 입각해 있기에 근원적인 문제를 야기할 위험이 있다. 역량 담론은 경쟁과 효율이 극대화된 신자유주의적 사회의 담론적 구성물로서 시장가치를 내면화하게 하는 만드는 권력으로 작동하며(김민정a, 2019: 204), 학습자를 성과를 향해 달리는 자기관리의 주체로 내몬다(김민정b, 2019: 213). 이런 면에서 인간을 사회적 자본으로 이해하는 역량담론은 근원적으로 전인교육의 가치에 위배된다. 실제로 글로벌 경제기구(OECD)가 역량 담론을 주도하고 있으며, 역량 지표들이 시장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측면을 고려할 때도, 자본과 권력의 통치성 관점에서 역량담론을 견제하는 시선은 지속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양교육에서 자유교육과 역량담론의 관계 설정은 가치론적인 당위성의 차원이 아니라 절박하고 현실적인 문제이다. 우리 교육 현실에서 자유교육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은 다르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해야 한다는 목적은 유사하다는 전제에서 핵심역량기반 교양교육의 가능성을 타진하고(손승남 외, 2021), 자유교육(교양교육)과 직업교육(전공교육)의 이분법을 넘어 균형 있는 교육실천을 제안하며(정연재, 2018), 인성교육에서 역량기반의 가능성을 탐색하는(조혜경, 2021) 연구 등은 두 영역 간에 가능한 관계를 모색해보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영역의 접점이 잘 만들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역량기반교육이 기성 교육에 성찰의 계기를 주는 측면은 분명히 있지만, 교육의 본질이나 정체성을 훼손할 수 있다. 자유로운 마음을 계발하는 비판적인 행위 주체를 길러내기 어렵기 때문에, 역량기반교육과 교양교육은 서로 양립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교양인 양성에도 부정적이라는(정훈, 2018: 117-118) 지적은 자유교육과 역량담론의 사이에는 합치되기 어려운 근원적인 단절이 존재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역량담론 초기부터 자유와 비자유의 분리를 넘을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찾으려 했던 것은 역량담론의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전략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탄생한 ‘역량기반 자유교육’은 역량담론에 교육철학적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로, 역량담론과 자유교육의 공통 접점을 발견하여(Knott, 1975/ Ewens, 1979) 역량담론에 이론적 당위성을 부여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역량담론은 자유교육의 정체성을 되돌아볼 계기를 준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논문은 자유교육의 가치를 오늘의 교육 현실에서 의미있게 계승할 수 있는 방향을 설계해보기 위한 기초작업이다. 이를 위하여 ‘자유’와 ‘비자유’라는 자유교육의 원형적인 대립 요소가 어떤 자유교육의 지형을 만들어왔으며, 자유교육은 현재 어떤 문제에 봉착해있는지를 진단해보기로 한다. 특히 자유와 비자유의 대립이라는 전통 안에서 역량담론을 고찰함으로써, 역량담론을 다중적으로 조명하며 자유교육이 당면해있는 복합적인 정체성에 접근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먼저 2장에서는 ‘자유(liberal)’와 ‘자유로워지다(liberating)’의 의미 비교를 통하여 자유교육과 역량담론의 교착 관계를 고찰한다. ‘자유-비자유’ 라는 대립항이 유발하는 문제를 살펴보고(2.1), 역량담론의 필연적 대두와 이에 따라 자유교육의 정체성이 이동하는 양상을 고찰한다(2.2). 3장에서는 현재 자유교육이 당면한 현실을 살펴보겠다. 자유교육의 전통은 직업교육에 수사적인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상징적 신화로 이용되고 있으며(3.1), 자유교육의 가치는 시장 논리에 침윤되며 고유한 지식의 지평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검토하겠다(3.2). 이를 바탕으로 자유교육과 역량담론의 근원적으로 다른 지점을 확인해보고, 현재 자유교육에서 보강해야할 부분을 언급하겠다.(4)

2. 자유교육과 역량담론

2.1. ‘자유로운(liberal)’과 ‘자유롭게 하다(liberating)’

동굴에 갇힌 수인으로 살지 않기 위하여 가치 있는 지식을 통해 자아를 성장시켜나가는 것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자유교육(Liberal Education)의 원리는 오늘날 전인교육의 이념과 근원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 자유교육은 특별한 종류의 교육이 아니라 보통의 의미에서 좋은 교육, 가치 있는 교육이며, “여러 가지 교육실천과 제도 속에 간직된 표준적 교육관”이다. 자유교육은 가장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교육원리로 여겨져 왔다(신차균, 1989: 2).

하지만 자유교육은 어렵고 낯선 것이기도 하다. 자유교육은 기원전 4-5세기 그리스 사회에서 그 개념이 형성되었으며, ‘자유로운(liberal)’이라는 말은 역사가 유구한 만큼, 그 개념도 애매하고 추상적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말은 그 자체로 강렬하여, 독보적이고 절대적인 권위를 자유교육에 부여해준다. 또한 자유교육에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소크라테스와 같은 위대한 스승들의 그림자가 항상 드리워져 있다. 자유교육은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엄격한 권위로 무장하여 오늘의 현실과는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 이래로 지속되어온 자유교육의 개념은 교육사의 중요한 시점마다 되살아났는데 자유교육에 대한 모든 해석에서 공통되는 것은 ‘지식’과 ‘이해’에 가치를 둔다는 점이다. “자유교육은 지식 자체를 목적으로 지식을 추구함으로써 인간다운 발달을 도모하는 교육이다. 그 원리의 특징은 인간다운 발달을 마음의 발달로 보는 것이며, 이것을 지적 이해능력 내지 합리성의 신장으로 보는 관점이며, 그 일이 지식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지식의 추구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보는 관점이다”(신차균, 1989: 42).2)

‘지식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는 말은 진리를 찾기 위해 탐구하고 관찰하고 판단하는 지성의 자유를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빛의 방향으로 영혼을 돌리는 일”은 현실적 속박에 구애받지 않고, 삶을 초월해 존재하는 진리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다(서용석, 2015:24). 진리에 대한 사랑은 인간 지성의 특별한 영역으로서 사유하고 창조하는 인간의 고유성을 만들어내는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지성의 자유가 보장될 때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성장을 계속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자유교육은 특정 프로그램을 가리키는 말이라기 보다는 교육 프로그램의 원리 내지 프로그램의 의미를 해석하는 하나의 관점이다(신차균, 1989: 42).

자유교육의 이런 특징은 양날의 검으로 작동한다. 특정한 시대에 포박되지 않고 교육의 원형으로 유구하게 계승되어온 원동력이면서, 동시에 삶의 생생한 현실과 분리된 추상적 신념이라고 비판받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liberal)’이라는 개념은 태생적으로 배타적이다. ‘자유’는 몸과 마음을 고착시키고 변형시키는 모든 기계적 활동에 반대되는 것으로 “귀족주의적 사회구조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형이상학(서용석, 2015: 30)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자유교육은 발생론적으로도 노동과 생산적 삶에서 분리된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엘리트 교육이며, 자유로운 지식은 노동하는 현실, 예측불가능한 사건들로 점철된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서 삶의 모든 실용적인 요구로부터 분리된 배타성을 갖게 된다.

‘지식 그 자체’를 강조하는 교육원리는 지식을 실재하는 현실과 분리시키고 고립시키는 이원론으로서3), ‘비자유’라는 대립영역을 통해 ‘자유’를 강조하는 구조적 특성을 만들어내게 된다. 교육은 이상과 현실을 매개하고 때로는 대립하고 화해하게 하는 역동적인 과정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느 한 편에 대한 강조는 다른 편에 대한 결핍을 유발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결핍을 채우려는 강렬한 요구를 촉발시킨다.

자유교육은 진리탐구라는 인간 지성의 이상적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어떻게 현실에서 인간을 지성적으로 성장시키고 자유롭게 만들어갈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의 장을 스스로 예비해놓고 있던 셈이다.

자유교육에 대한 최근의 논의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liberal’의 동의어로 ‘liberating’을 자발적이고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아편이 사람들을 잠들게 한다고 말하는 식으로 특정 학문 그룹들은 본질적인 덕성을 원래 갖고 있기에 자유주의라고 여겨왔던, 전통적 관념과의 단절을 표시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을 ‘자유롭게하다’로 정의함으로써 자유교육과 리버럴아츠 대학의 문제들은 실제로 성취된 것을 탐색하여 문제를 해결해가는 연구의 대상이 된다. 주장의 검증과 정당화는 선험적 도그마가 아니라 관찰 가능한 결과에서 발견된다. (Dewey, 2008; 276)

듀이는 ‘자유로운 학문’과 ‘자유롭지 못한 학문’을 구분하는 전통적 자유교육을 비판하면서, 모든 학문은 동등하며 특별히 자유로운 학문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만약 어떤 지식은 자유롭고, 어떤 지식은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지식 자체의 문제가 아니고 교육의 문제로서 그 교육과정이 부자유스럽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듀이에게 중요한 것은 자유로운(liberal)이 아니라 ‘자유롭게 만드는 것(liberating)’이다. 즉 ‘아편을 복용하면 저절로 잠이 든다’라는 식으로 ‘자유로운 지식을 배우면 저절로 자유로워진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편이 어떤 이를 실제로 잠들게 했다면, 얼마나 복용했는지, 언제 어떻게 복용했는지, 복용한 사람은 어떤 상태였는지 등의 조건과 과정이 필요하다. 특정 행위를 유발하는 아편의 실체는 아편에 들어있는 구성성분이 아니라, 아편을 복용한 사람의 실제적인 행동, 정서, 태도 등에 의해서 관찰될 수 있을 것이다.

듀이는 지식의 선험적이고 내재적 가치를 부정하면서, 관찰 가능한 행동을 생성해내는, 즉 ‘자유로워진(liberating) 사람’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철학의 죽은 뼈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실제로 자유로워지는 과정이 중요하다. 모든 자유로운 지식은 본질적으로 귀중하다는 규범적 주장에 대해서 추가적인 정당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관찰 가능한 행동을 생산하기 위한 과정이 요구된다(Fitzpatrick: 2017, 31-33).4)

요컨대 자유교육에는 자유로운 지식을 접하면 당위적으로 자유로워진다는 묵언의 전제가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자유와 비자유’의 대립구도가 ‘자유로운’과 ‘자유로워지다’의 구도로 옮겨지면서, 선험적이고 내재적인 가치에 수렴되어 괄호 안에 숨겨져 있었던 영역이 더 크게 부각된다. 즉 자유로움을 내재한 지식은 어떻게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지, 그 여정을 이어줄 교육과 학습의 복잡한 프로세스의 탐구가 시작된다. 역량담론의 무대가 펼쳐진 것이다.

2.2. 역량기반 자유교육5)

19세기 중반부터 광범위하게 고등교육의 목표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증가했고, 20세기 중반에는 추상적인 지식 자체에 집중하는 고등교육의 전통적 학문 가치와는 다른 흐름이 나타나게 된다. 바로, 지식의 학습 과정과 활성화 과정에 주목하여 교육의 실효성을 강화하자는 ‘역량기반교육’이었다(Knott, 1975: 25). 전술했듯이 이는 실상 새로운 것이 아니며, 고대 그리스 이래 지속된 유용성을 둘러싼 교육의 오래된 화두가 ‘역량’이라는 키워드로 집중되어 등장한 것이다. ‘역량’을 키워드로 하는 담론은 일종의 교육개혁 운동처럼 퍼져나갔다. OECD의 <DeSeCo 프로젝트> <Education2030 프로젝트> 에 의해 세계적 파급력을 갖게 되었고, 교육은 물론 인적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교육의 길은 ‘역량’으로 통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역량은 원래 직업교육이나 훈련분야에서 논의되어 온 것인데,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일반적인 능력이라는 개념으로 점차 확대되어 왔다. (소경희, 2009: 2) 자유교육이 시대에 맞지 않는 편협한 합리주의에 빠져 추상적이어서 생동하는 삶의 충만함에서 멀어져 있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역량담론은 교육실천의 중요성을 부각했고 구체적인 교육 성과로 이어지는 커리큘럼을 강조했다(knott, 1975: 38-39).

그런데 역량교육이 지엽적이고 도구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종합적 이론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 넘어야할 장벽은 바로 자유교육의 전통과 권위였다. 초창기 역량기반교육에 대한 다학제적 연구 프로젝트 결과물로서 현재에도 주요하게 인용되는 <On Competence>(Grant, 1979)의 구성은 자유교육의 전통에 기대여 구성되는 역량담론의 논리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은 먼저 역량교육의 사회적 역사적 배경과 당위성을 제시하고, (사회적 요구, 교육적 대응, 교수진 역할, 수행평가, 자유교육과 역량) 다음 단계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직업 실습, 실행의 난점)을 제시하며, 마지막에는 5개 대학의 사례를 들고 있다. 실제 대학들의 사례를 관찰한 결과 역량기반교육은 이론적으로는 행동주의, 인본주의, 기능주의를 두루 포괄하며, 특정직업을 위해 사람들을 훈련시킨다는 협소한 개념은 물론이고 삶을 준비시킨다는 넓은 개념까지도 포괄하고 있다(Grant, 1979: 1-7).

이 책에서 역량기반교육의 전체상을 구성하는데 논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글이 <자유교육에 대한 역량기반 접근의 영향 분석>(Ewen, 1979)이다. 이 논문은 역량기반교육이 새로운 기준에서의 자유교육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역량담론에 역사성과 정통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그 논거로서 전통적인 자유학예(liberal arts)에 주목하여 자유학예와 역량담론의 공통 접점을 제시한다. 자유학예는 알고자 하는 욕망 이외에 다른 욕망과 무관하기에 자유로운 지식이며 실용적인 지식과는 대조되는 사변적이고 이론적인 지식이지만, ‘arts’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만들고 제작하고 구성하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논리학자는 정의와 논증을 만들고, 문법학자는 문장과 단락을 만들며 수사학자는 표현의 순서를 정한다. 학예로서의 수학은 숫자와 수치를 구성하며…수학적 학예인 음악은 하모니를 구성”한다. 즉, 전통적인 자유학예는 실용적인 기능과 용도를 갖고 있었으며, 특정한 결과를 산출한다는 측면에서 역량교육과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6), 형이상학이나 신학과 같은 영역은 이미 구축된 질서가 있기에 특별히 정신을 움직일 필요가 없다. 하지만 3학(Trivium)이나 4과(Quadrivium)의 경우에는 학습자의 정신 안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생산하고 구성해내는 과정이 동반되어야만 한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자유학예는 소통이나 문제해결, 분석과 같은 일반적 역량과 유사한 정신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Ewens, 1979: 176-178).

이 논리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정신을 구성(making of the spirit)”하는데 관여하는 “구체적인 방법(specific way)” (Ewens, 1979:178)이 내재한다는 저점을 자유교육과 역량담론의 공통점으로 추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 방법’이란 곧 ‘자유로워지는(liberating)’ 과정이다. 선험적인 지식이 그대로 정신에 옮겨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지식체계의 질료들을 이용하여 ‘만들고 제작하고 구성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통해서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자유와 비자유의 오래된 대립은 liberal과 liberating으로 전이되었고, ‘liberating’ 의 근거를 전통적인 자유학예의 영역까지 소급하여 제시하여 역량담론의 역사적 기원을 확보하고자 한다. 역량교육은 자유교육을 비판하면서도, 고전적 자유교육에 맥을 대고 정통성을 공유하며 개념을 확장해왔다.

“자유교육의 목표와 역량기반 커리큘럼의 양립가능성”(Knott, 1975: 25)이라는 조어에서 보듯이, 한 편이 가치의 영역인 ‘목표’를 그리고 다른 한 편이 방법과 과정인 ‘커리큘럼’의 영역을 각각 대변한다면, 두 영역이 조화롭게 연결되어야 교육의 전 과정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자유교육과 역량담론은 매우 비대칭적인 구조에 놓여 있다. 학습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실효성, 사회변화에 부응하는 적절성, 시장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길러내는 생산성 등의 모든 측면에서 역량 담론은 자유교육과는 다른 현실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소경희는 Ewen의 역량기반자유교육에 대하여, “역량기반교육은 전통적인 자유교육에서 추구하고 있는 바를 계승하고는 있으나, 전통적 자유교육의 이론적 측면보다는 실제적인 기능 측면을 강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소경희, 2009:14). 하지만 현실에서 자유교육의 입지는 협소해지는 반면 역량교육은 방법이고, 도구이면서도 더 나아가 이념을 현실적 역량으로 직조해내는 실천적 교육과정으로서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

역량담론 논자들은 역량기반자유교육을 새로운 자유교육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역량교육은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로 펼쳐지기 때문에 인간이 계승해온 정신적 유산을 바탕으로 하는 자유교육과는 출발과 지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거는 쉽게 청산의 대상이 되고, 현재의 실존적 삶은 미래역량을 준비하기 위해 계속 유예된다. 자유교육과 역량담론의 공통 접점으로 지목되었던 arts는 결과적으로 두 영역의 공존과 협력에 기여하지 못했다. 어떻게 역량을 만들어내는가 그 과정에 모든 것이 집중되면서, 교양교육현장에서 인간의 가치와 의미를 묻는 지식 자체에 대한 관심과 탐구는 점차 빈곤해지고 있다.

3. 자유교육의 이상과 현실

3.1. ‘자유’라는 신화

20세기는 고등교육이 급속하게 확대된 시기이기도 하고, 동시에 대학에서 직업교육에 대한 요구가 강렬해진 시기이기도 하다. 미국 리버럴아츠대학의 경우 1970년대부터 노동시장 변화에 따라 취업교육 대한 사회와 학생의 요구가 강해지면서, 전통적인 리버럴아츠컬리지가 교육 내용적으로는 “전문직업학교 (professional college)”로 전환되는 대변동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Breneman, 1990: 3-6). 리버럴아츠컬리지들이 대외적으로 표명했던 ‘학문적 사명’과 ‘실제 교과과정’ 사이의 관련성을 비교한 한 연구에서는, 대학들이 직업교육 중심으로 교과과정을 바꾸면서도 겉으로는 전통적인 자유교육의 이념을 강력하게 내세우고 있다는 것을 고찰하고 있다(Delucchi, 1997).7) 예를 들면 당시 미국대학을 소개하는 대표적인 한 책자에서 대학들은 전형적으로 다음과 같이 학문적 사명을 표명하고 있다.

“(우리 대학은) 자유교육의 지속적 가치를 확인한다. 이는 전인적 인간을 발전시키고, 삶 전체를 통해 성찰적 사고의 습관을 형성하는데 기여하는 2500여 년에 이르는 전통이다.”

“(우리 대학의) 자유교육 커리큘럼은 학습자를 다양한 영역의 과목에 접하게 하여 의사소통, 비판적 사고, 추론 및 연구의 기술을 쌓아가게 한다.”

“(우리 대학의) 학생들은 인문학, 과학 및 예술 분야의 탁월한 영역에 도전하는 교육을 받고, 사회적 가치를 키우며, 평생의 목표에 영감을 얻을 수 있다.”

(Delucchi, 1997: 415 재인용)

자유교육 전통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자부심이 드러나는 서술인데, 이러한 교육 선언에도 불구하고 실제 커리큘럼은 표명된 내용과 달랐다. 많은 경우에 자유교육의 전통은 고등교육을 지탱하는 이론적인 레퍼토리로서 인용되고 있을 뿐이었으며, 실제로는 자유교육이 계승해온 “독창성의 신화(the myth of uniqueness)”에 의거함으로써 대학존립의 정당성을 강화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독창성의 신화가 여전히 리버럴아츠컬리지의 핵심으로 작동하면서 표면적으로 이를 내세우는 전략이 대학을 지속시키는 측면도 있지만, 실제로 미국교육에서 진정한 의미의 리버럴아츠컬리지는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다고 분석된다(Delucchi, 1997: 423).

교육과 일자리의 격차가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면서 인문학을 축소하고 직업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20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 대학이 겪어온, 그리고 현재도 진행 중인 상황이다. 현재 미국의 리버럴아츠컬리지의 상황과 미래 전망에 대해서도 위기 담론이 지배적이다(Baker et al., 2018: 52).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위기의 국면에서 자유교양의 전통과 권위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 인용된 학교들은 전인적 인간 양성, 종합적 지식에 기반한 사고와 소통 능력, 감수성과 사회적 가치 등을 ‘특별한’ 교육내용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인류 역사를 통해 계승되어온 ‘고유한’ 가치라는 점을 ‘2500여 년’이라는 시간을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 자기를 성찰하고 인간 본연의 가치를 찾아가는 자유로운 인간, 다양한 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다양하고 풍부한 삶을 살아가는 전인적 인간은 자유교육의 전통이 구축해온 고유한 가치이다.

시대의 조류에 교육의 내용이나 방향이 영향을 받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겠지만, 사회경제적 현실의 요구가 아무리 강하다고 할지라도 삶의 목적과 가치를 탐구하는 교육의 본질 자체를 외면하기는 어렵다. 인간 가치와 삶의 목적에 대한 질문은 다른 어떤 것과도 변별되는, 본질적이면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은 어떤 직업을 얻는 일”이라고 정의되고 “대학은 만족스러운 직업을 얻기 위한 통로”라고 여겨지는 시대에도(크론먼, 2009: 260-261) 자유교육의 가치에 대한 신뢰와 신념이 한 편에서는 지속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8)

그런데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진리에 대한 이야기는 자유교육 내부에 있는 사람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신념이지만, 외부에 있는 사람에게는 현실에서 동떨어진 종교적 도그마처럼 느껴질 것이다. 자유교육이 특별하고 고유한 가치가 있다는 것은 당위적인 명제이다. 현실에서는 위의 예에서 보듯이 자유교육의 이상은 일종의 수사이며 상징적 신화로서 활용되며, 자유교육의 권위는 직업교육에 치중되어 있는 대학의 현실을 가려주는 베일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마치 역량담론이 자유학예와의 공통접점을 강조함으로써 확장의 동력을 만들어낸 것처럼, 자유교육의 이상은 다양한 역량의 세트들, 정량적이고 표준적이며 도구적인 용어들이 줄지어 있는 교육현실을 뒷받침해주는 권위 있는 후광으로 활용된다. 그 와중에서 점멸하는 ‘자유’의 아우라는 교육의 출발과 근원을 상기시키며, 현재 우리가 얼마나 멀리까지 와 있는지를 확인하게 한다.

3.2. 지식의 새로운 지평

현재 자유교육이 견지해온 핵심 개념들은 직업시장이 요구하는 인재상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 보고서(2016)는 기술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산업 및 비즈니스 모델이 급변하고 있는데도 기존교육시스템은 변화의 속도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오늘날 초등학교에 입학할 어린이의 65%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일을 하게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트렌드는 기술적, 사회적, 분석적 기술을 필요로 하는 많은 새로운 교차기능적 역할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육시스템은 지극히 고립된 교육만을 제공하며 노동시장을 방해하는 20세기적 관행을 고집하고 있다. 인문학과 과학이, 응용학문과 순수학문의 이분화되어 있는 현실, 실제 학습 내용 보다는 공인된 대학교육형식이 누리는 특별한 프리미엄은 전세계의 공식적인 교육시스템에 부담을 주는 두 가지 유산이다. 이것들 중 어느 것도 지속시킬 이유는 없다, 기업은 정부와 교육관계자들 등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진정한 21세기의 커리큘럼을 상상해야 한다.(World Economy Forum, 2016: 32)

기업의 목소리로 사회변화에 대학교육이 전혀 보폭을 맞추고 있지 못한다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기존의 대학교육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분리되어 있고 고립되어 있는 학문체계를 과감하게 바꾸어야 하며, 대학교육이 과거 시스템에서 누려오던 특권을 청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교육 관계 부처와 연계해 21세기에 필요한 진정한 커리큘럼을 상상해야 한다며, 기업이 교육커리큘럼의 발신자 역할을 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변화하는 시장에 필요한 직무 관련한 기술 및 역량을 35항목으로 제시했는데, 2020년에는 ‘복합적 문제해결(complex problem solving)’이 가장 중요한 역량이 될 것이며, 기술 변화에 따라 필요한 세트들이 새롭게 조합될 것이라며, <표 1>에 제시하고 있다(World Economy Forum, 2016: 21).

Core work-related skill

화려하게 나열된 역량 항목의 많은 부분이 전통적인 자유교육의 목표를 상기하게 한다. 자유교육이 직업교육과 대치되는 국면에서 이런 용어들은 독창성의 신화를 지탱하는 근거로서 현실과 동떨어진 교의(敎義)처럼 자리하고 있었는데, ‘미래의 일자리’가 요구하는 역량표에서 이것은 어제든지 새롭게 재조합될 수 있는 생산적이고 유동적인 개념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자유로운 삶의 가치를 도모하려는 교육의 목표는 변화하는 시장에서 생존을 위해 필요한 조건으로 제시되어 있다.

현실에서 ‘자유교육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가’라는 질문은 퇴색해가는 반면, 역량에 대한 이야기는 교육의 모든 국면을 압도하고 있다. “AAC&U의 역량논의들은 21세기 첫 10년 동안 고등교육을 위협했던 시장기반 개혁의 힘으로부터 자유교육을 지키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오늘날 그 수사학과 아이디어는 자유교육을 매장해버리거나 역량과 기술 점검 목록으로 바꾸려는 파괴자들과 것과 구별하기 어려워졌다”(Ward, 2016:32). Ward는 AAC&U가 자유교육을 현실에 어울리게 바꾸어보려고 했지만, 자유교육을 갱신하지 못한 채 오히려 ‘표준화된 기업가적 대학’의 양상이 강해지면서 전통적인 자유교육이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이것은 미국교육 일부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역량이 대학교육의 표준이 되어있는 우리 현실에도 경고하는 바가 크다. 역량 리스트가 기준이 되어서, 정해진 역량체계에서 교과를 매칭하여 교과내용을 조절하는 교육현실은 역량담론과 자유교육의 긍정적인 협력의 형태는 아닐 것이다.

물론 자유와 비자유의 배타적인 역사를 넘어서, 역량담론이 역량주창자들의 의도대로 ‘역량기반자유교육’이라는 새로운 협력을 성공적으로 완수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협력이 서로 다른 입장의 이질적인 측면을 끌어보아 타협하거나 절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협력은 실질적 및 잠재적인 불화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대단히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상호조정과정일 수밖에 없다. “협력은 갈등 부재를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협력은 전형적으로는 갈등과 혼합되어 있으며 부분적으로 실질적 혹은 잠재적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성공적인 노력을 반영”하기 때문이다(코헤인, 2012: 117).

따라서 자유교육과 역량담론의 차후의 관계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근원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갈등의 국면을 먼저 정확하게 인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자유교육은 고유한 영역을 재정비함으로써 전략적 협력을 모색할 수 있는 토대를 다져야한다.

경제포럼이 제시한 화려한 역량 리스트는 자유교육이 목표로 삼았던 전인(全人)의 조건을 세분화해놓은 듯이 보인다. 인지적, 신체적, 사회적, 조직적, 기술적인 모든 영역에서 유능한 인간을 상정하기 때문이다. 이 역량 리스트에는 불안정하고 취약하며 예측불가능한 삶의 진실이 배제되어 있다. 그리고 때로는 이겨내고, 때로는 실패하고, 파국을 선택함으로써 오히려 운명의 주인이 되기도 하는 모순적인 인간의 이야기가 배제되어 있다.

원론적으로 자유로운 인간이란 모순적인 삶을 이해하고 돌보면서 끝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내는 존재일 것이다. 역량의 화려한 리스트에 비해, 현재 자유교육에서 공유해야 할 지식체계는 과거의 영광 안에, 그리고 근대적 분과학문에 격자 안에 머물러있다. 선험적인 권위로 군림하는 지식이 아니라, 효과적인 권위의 원천이 될 지식이 필요하다. 즉 오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해명해주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는 지식의 지평을 재구성해야 한다. 형이상학과 과학적 세계관이 연결된 통합적 지식체계, 분과학문을 넘어서는 융합적 주제에 대한 간학문적인 탐구도 필요하다. 특히 교수학습방법에 중점이 가 있는 한국교양교육의 경우, 변화하는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인지적 정서적 토대를 만들 수 있는 지식콘텐츠의 학술적 깊이를 확보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끝없이 세분화되는 역량목록에 좌우되지 않고, 21세기에 필요한 인간의 정신과 가치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지식의 지평을 자유교육은 새롭게 열어야 한다.

4. 결론

자유교육(Liberal Education)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영광된 이름을 누려왔다. (신차균, 1989: 9) 그리고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기 위한 여정을 달려왔다. 자유는 비자유와 대비되며 ‘지식 그 자체’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자유로워지는 ‘과정과 방법’으로 점차 중심을 옮겨왔다. 이 여정을 역량의 개념으로 채우게 되었고, 점점 더 많은 역량 항목들이 등장하고 있다.

역량담론의 현실적인 영향력을 고려할 때, 자유교육과 역량담론이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협력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두 영역은 근원적으로 다르며 각기 다른 것을 지향한다는 사실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즉 갈등을 전제한 협력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각의 정체성이 다르며 역할 또한 다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위축되어 있는 자유교육의 자리를 재확인해보는 작업이다.

미약한 결론을 대신하여 자유교육에 관련된 용어를 검토하며 지식의 지평을 재구성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자유교육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어렵고 애매한 이유는 용어의 혼란과도 관계가 있다. 자유교육과 관계된 용어의 역사적 맥락이나 내용은 각각 다르다. 자유교육의 용어는 학문영역이나 지식체계를 가리키기도 하고(Artes Liberales, Liberal Arts), 이러한 지식체계 커리큘럼에 기반한 연구기관(liberal arts college), 자유학예를 포함하여 특정한 목표를 지향하는 교육의 포괄적 방향(liberal education), 또는 그런 방향에 부합하는 커리큘럼(general education)을 가리키기도 한다(<표 2> 참고).

Liberal education and other commonly confused terms9)

이처럼 “liberal arts education, liberal education, general education 은 각각 다른 말들인데도 동의어처럼 쓰이면서, 개념적으로도 혼용되고 있다”(Fitzpatrick, 2017: 20). 특히 ‘liberal education’ 은 가장 복합적이면서도 포괄적으로 쓰이고 있다. 이 용어는 ‘자유’라는 주요개념을 내세우고 역사성과 정통성을 강조하면서도, ‘자유’와 ‘교육’을 조합해 교육을 통해 자유로워지는 과정과 방법이라는 개념을 포괄하고 있다. 이 용어 안에는 자유교육의 여정에서 등장한 자유와 비자유, liberating, 그리고 liberal arts의 영역까지가 포괄되어 있다. 아마도 이런 복합성이 <표 2>에서 보듯이 자유교육(liberal education)을 지식함양, 기술, 역량을 포함한 “대학교육의 접근방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자유교육이라는 용어가 지시하는 포괄성에 비하여, 교육현실은 기술과 역량에 집중되어 있어서 토대이자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자유교육의 가치를 내포한 지식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자유교육은 어떻게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가?’ 라는 오래된 질문은 다시 ‘자유교육은 오늘 여기에서, 어떤 지식의 지평을 열어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대체해볼 필요가 있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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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AAC&U. 2011. “The LEAP Vision for Learning:Outcomes, Practices, Impact, and Employers Views” https://www.aacu.org/sites/default/files/files/LEAP/leap_vision_summary.pdf.
25. OECD. 2019. “OECD Future of Education and Skills 2030:OECD Learning Compass 2030, A Series of Concept Notes” http://www.oecd.org/education/2030-project/teaching-and-learning/learning/learning-compass-2030/OECD_Learning_Compass_2030_Concept_Note_Series.pdf.
26. World Economy Forum. 2016. “Global Challenge Insight Report:The Future of Jobs, Employment, Skills and Workforce Strategy for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http://www3.weforum.org/docs/WEF_Future_of_Jobs.pdf.

Notes

1)

liberal(arts) education 에 대한 번역은 자유학예교육, 자유교육, 교양교육 등으로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 본 논문은 ‘liberal’의 의미에 집중해보기 위해서 ‘자유교육’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자유로운(liberal)’, ‘자유롭게하는(liberating)’이라는 말은 문맥의 명료성을 위해서 영어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용어에 관련해서는 4장에서 보충 서술)

2)

자유교육의 개념은 다양한 용례들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통해서 추론될 수 있다. 신차균은 자유교육의 전통을 대표하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s), 뉴만(J.H.Newman,1801-1890), 허친스(R.M.Hutchins 1899-1977) 허스트(P.Hirst 1927-2020)의 주장을 비교하여 자유교육 개념을 추출하고 있다.

3)

형이상학적 이원론은 서양철학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이데아와 실재의 이원적 관계에 대해서는 복합적인 관점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서용석, 2015: 31). 이런 측면에서 자유교육의 자유 개념에 대해서도 더 입체적인 설명들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4)

물론 듀이가 특정 교과의 내재적 가치를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가 강조한 것은 내재적 가치는 그 교과의 가치일 뿐이며 이것이 저절로 교육의 내재적 가치가 되는 것 아니라는 점이다. 학습자와의 관련 속에서 실제로 그 사람의 성장에 기여하는 바가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경험의 상호작용. 경험의 재구성이라는 듀이의 키워드가 등장한다(존듀이, 2020: 180-181). 삶의 주체로 살기 위한 광범위한 교육과정을 생각한 듀이의 입장은 사회가 요구하는 구체적인 역량을 길러야 한다는 역량담론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5)

역량기반자유교육(competence based liberal education)이라는 말은 knott의 용어에서 빌려온 것으다(Knott,1975 :31)

6)

자유교육의 지식도 일반적인 의미에서 유용한 결과를 창출한다.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결과로 나오지 않더라도, 삶의 전반에 걸쳐서 문제를 해결하고 분석하고 판단할 바탕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는 유용하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천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선장이 항해를 할 때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계절과 달과 연도에 대한 더 나은 인식을 제공할 수도 있으며, 유용성 때문에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이끌어 내어 이성에 생기를 넣어주기 때문에 공부를 한다.

‘liberal’한 지식의 유용성 문제는 본고의 맥락에서는 다루기 어렵지만, 교양교육과 관련하여 본격적으로 탐구되어야할 주제라고 생각된다.

7)

이 연구는 미국의 327개 리버럴아츠컬리지를 대상으로 수행되었는데. 대학들이 실제 내용에서는 전문 직업 교과목을 운영하면서도, ⅔ 이상이 교육적 사명에서는 여전히 리버럴아츠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는 통계를 제시하고 있다.

8)

1990년대에 네델란드에서 리버럴아츠컬리지 7개가 세워진 것이라든가, 2000년대 이후에 한국대학에서 학부대학, 리버럴아츠 교육이념을 바탕으로 한 단과대학이 설립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9)

LEAP 안내 자료 중에서, 혼동하기 쉬운 용어를 설명하고 있는 부분을 표 형식으로 정리했다(AAC&U, 2011:3).

Article information Continued

<표 1>

Core work-related skill

Abilities Basic skills Cross-functional skills
Cognitive Abilities Content Skills Social Skills Resource Management Skills
- Cognitive Flexibility - Active Learning - Coordinating with Others - Management of Financial Resources
- Creativity - Oral Expression - Emotional Intelligence - Management of Material Resources
- Logical Reasoning - Reading Comprehension - Negotiation - People Management
- Problem Sensitivity - Written Expression - Persuasion - Time Management
- Mathematical Reasoning - ICT Literacy - Service Orientation
- Visualization - Training and Teaching Others Technical Skills
Physical Abilities Process Skills Systems Skills - Equipment Maintenance and Repair
- Physical Strength - Active Listening - Judgment and Decision-making - Equipment Operation and Control
- Manual Dexterity and Precision - Critical Thinking - Systems Analysis - Programming
- Monitoring Self and Others - Quality Control
Complex Problem Solving Skills - Technology and User Experience Design
- Complex Problem Solving - Troubleshooting

<표 2>

Liberal education and other commonly confused terms9)

쉽게 혼용되는 용어 설명
Liberal Education (자유교육) 개인이 복잡성, 다양성, 그리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대학교육의 접근방식. 이 접근법은 과학, 문화, 사회에 대한 폭넓은 지식함양과 함께, 하나 이상의 특정 분야에서의 깊은 성취를 강조한다. 이는 학생이 사회적 책임감, 여러 학문에 걸친 지적이고 실용적인 기술들 (의사소통, 분석능력, 문제해결 능력 등), 그리고 이러한 지식과 기술을 실제 세상에 적용하는 능력을 개발하도록 돕는다.
Liberal Arts (자유학예) 특정한 분야들 (인문학, 과학, 사회과학 등).
Liberal Arts College (자유학예대학) 특정한 형태의 교육기관. 주로 소규모이고 거주시설을 제공함. 자유학예 학문분야 (liberal arts disciplines) 에 커리큘럼의 근간을 두고 학부와 학생 간의 친밀한 상호작용이 존재.
Artes Liberales (자유학예 7과목) 근대 자유학예 (modern liberal arts) 의 역사적 근간이 된 3학 (문법, 논리학, 수사학) 과 4과 (산술, 기하, 천문학, 음악)
General Education (일반교육) 모든 학생에게 공유되는 자유교육(liberal education) 커리큘럼의 일부로서, 다양한 학문분야와 폭넓게 연관되어 있으며, 핵심적인 지적, 시민적, 실천적 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기초를 만든다. 일반교육은 다양한 형식으로 구성될 수 있으며, 기초에서부터 점차 발전되고 통합되는 방식의 학습을 포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