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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General Edu > Volume 15(5); 2021 > Article
포스트휴먼 시대, 통섭 교양 과목은 왜 필요한가 -지적 통섭과 실천 통섭을 중심으로

Abstract

본 연구는 통섭적 사고를 적용하는 교양 과목이 포스트휴먼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왜 필요한지를 고찰하기 위해, 교양 교육의 의미를 통섭의 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그와 관련된 통섭 교양 과목을 크게 지적 통섭과 실천 통섭으로 나누어 구체화한다. 통섭은 결과로서의 융합으로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학문간 교류와 화합을 의미하는 동시에 학문간 융합을 이루기 위한 일종의 방법론으로서 삶과 학문을 연계시키는 도구이기도 하다. 결과로서의 융합과 과정으로서의 통섭은 인재의 유형에 있어서도 차이를 만든다. 융합형 인재가 자신이 갖고 있는 전문성을 중심으로 융합 가능한 범위를 미리 상정하고 그 결과를 예측하는 결과지향적 인간을 말한다면, 통섭형 인재는 자신이 공감하는 문제에 따라 융합 가능한 범위를 변화시키면서 솔루션을 도출하는 문제지향적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통섭형 인재는 어떤 현상을 보면서 질문을 생성하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것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조합하고 재배열하며 새로운 틀을 구상해내게 되는데, 본 연구는 이와 같은 사고의 흐름을 통섭적 사고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통섭 교양 교육은 통섭적 사고의 체득에 초점을 맞추어 학생들로 하여금 타 계열 또는 타 학문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을 줄여주고 나아가 타 계열 또는 타 학문으로의 진입장벽까지 낮춰 전공에서의 융합적 사고를 깊고 넓게 만들어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만, 통섭 교양 과목이 복잡한 관계적 특성을 갖는 포스트휴먼의 시대에 그와 같은 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지적 통섭’과 ‘실천 통섭’의 두 파트로 나누어 진행되는 것이 필요하다. 지적 통섭이 학생들로 하여금 우리 삶과 관련된 통섭적 지식을 습득하고 우리 주변의 문제를 통섭적 지식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음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라면, 실천 통섭은 학생들 스스로 자기 주변의 문제들을 탐색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분석하여 실제 활동 중심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면서 통섭적 사고를 체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meaning of liberal arts education focused on the concept of consilience and concretizes consilience liberal arts into intellectual consilience and practical consilience, in order to consider why the sort of liberal arts that applies consilience thinking is necessary in the post-human era. Consilience refers to a harmony between disciplines that occurs in the process of convergence, a method that achieves convergence between disciplines, and a tool that connects life and disciplines. Convergence as a result and consilience as a process also make a difference in the types of talent a person possesses. Convergence-type talent refers to a resultant human who can precisely design linkages with other fields based on expertise in one field, whereas consilience-type talent refers to a generative human who finds issues around them, focuses on those issues, and derives solutions by combining studies and data in various ways. Here, consilience-type talents create questions by observing certain phenomena, combine seemingly unrelated things in their own way, and develop a new framework to answer the questions. Their thinking flow is defined as ‘consilience thinking’. Therefore, consilience liberal arts education focuses on the acquisition of consilience thinking and allows students to reduce their prejudices and fears about other departments or other disciplines, lower the barriers to entry into other departments or other disciplines, and further deepen and broaden convergence thinking in their majors. However, in order to have such an effect in the post-human era, it is necessary for consilience liberal arts to divide into two parts: ‘intellectual consilience’ and ‘practical consilience’. The purpose of intellectual consilience is to make students realize that they can acquire consilience knowledge related to our lives and solve problems around us through consilience knowledge, whereas practical consilience allows students to experience consilience thinking while creating results centered on actual activities by exploring the problems around them and analyzing the data needed to solve the problems.

1. 서론

사회생물학의 창시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은 자신의 저서 <통섭: 지식의 대통합(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1998)에서 계몽사상가 마르퀴 드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 1743~1794)의 죽음을 계몽사상의 종말과 관련된 사건이라고 말한다(윌슨, 2005: 49-50). 18세기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수학자였던 콩도르세는 탁월한 지성과 공상가적 정치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1793년부터 1794년까지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테니스 코트의 서약(Tennis Court Oath) 이후 들불처럼 번진 프랑스 시민혁명은 급진적인 자코뱅(Jacobin)파와 온건적인 지롱드(Girond)파의 주도로 진행되었는데, 콩도르세는 지롱드파에 속하여 자코뱅파 주도의 제정 법령을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를 필두로 한 자코뱅파가 실권을 잡으면서 콩도르세는 새로운 질서에 반대하는 즉결 처형 대상자가 되었고 죽음을 맞이한다. 윌슨은 그의 저서를 통해 콩도르세를 애도하며, 콩도르세가 <다수결 확률 해석의 응용에 관한 시론(Essay on the Application of Analysis to the probability of Majority Decisions)>과 같은 저서를 통해 사회학에 수학을 적용하는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윌슨, 2005: 54-55). 그리고 사회학적 현상을 자연과학적으로 해석하고자 한 콩도르세의 태도는 윌슨이 말하는 ‘통섭(Consilience)’을 관통하고 있다.
십여년 전, 윌슨의 ‘통섭(Consilience)’을 놓고 국내 학계에 열띤 논쟁이 있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최재천의 ‘통섭(統攝)’이라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윌슨의 저서 <통섭: 지식의 대통합>이 화두의 발원지고, 2005년 책을 번역⋅출간한 윌슨의 제자이자 생태학자 최재천이 화두의 중심지다. 최재천 스스로 통섭이라는 용어와 개념을 꺼내 놓기 무섭게 학계는 물론 기업과 사회로 퍼졌다고 말할 만큼 통섭은 분명 사회적 인지도를 얻었다(서울신문, 2008.02.14.). 그것은 기존 지식의 틀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학문간 장벽을 뛰어넘어 ‘지식의 대통합’을 주창하는 것이 매우 호소력 있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긍정적 시선 뒤편에 통섭을 바라보는 비판론 또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비판론의 주된 대상은 최재천이 번역한 ‘통섭(統攝)’이었다. 윌슨이 19세기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로부터 가져온 ‘consilience’를 최재천은 통합, 통일, 합치, 일치 등의 익숙한 용어 대신 불교와 성리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통섭’이라고 번역했다. 그리고 ‘사물에 널리 통한다’는 뜻의 ‘통섭(通涉)’과는 다른 ‘거느닐 통(統)’과 ‘잡을 섭(攝)’을 붙여 ‘큰 줄기를 잡는다’는 의미로 풀이했다(윌슨, 2005: 10-13). 이에 대해 철학자 최종덕은 최재천이 번역한 ‘통섭(統攝)’이라는 말이 학계의 충분한 논의와 성찰 없이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경향신문, 2007.08.06.). 다시 말하면, 윌슨이 사용한 ‘consilience’와 ‘통섭(統攝)’은 그 의미가 엄연히 다름에도 최재천의 번역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비판은 신학자 김흡영에 의해 제기되었다. 김흡영은 ‘통섭(統攝)’이 윌슨의 과학제국주의를 이식한 용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최재천은 고의적으로 ‘사물에 두루 통한다’는 한자를 쓰지 않고 ‘포섭하여 통제한다’는 의미의 한자를 사용하여 인문학에 대한 자연과학의 ‘정복’을 내포하였다는 것이다(서울신문, 2008.02.14.). 심지어 시인 김지하에 의해 제기된 비판은 비난으로까지 들린다. 김지하는 ‘통섭(統攝)’이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영원하고 심오한 의미를 최재천이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과학적 환원주의에 사로잡혀 ‘에코파시즘’을 위한 도구로서 ‘통섭(統攝)’을 오용하고 있다고 혹평했다(프레시안, 2008.10.08.).
비판론의 다음 대상은 윌슨의 논리에 있다. 윌슨은 일관되게 사회학적 현상이 심리학적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고, 심리학적 현상은 생물학적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생물학적 현상은 물리학적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환원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흡영은 윌슨의 통섭론이 인문학과 사회학을 환원주의 방법론으로 재편하자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미 본토에서 실패한 기획이 뒤늦게 한국에 들어와 성공적으로 부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서울신문, 2008.02.14.). 더 나아가 김지하는 윌슨이 과학적 환원주의를 통해 모든 지식을 대통합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진화법칙의 기초 원리인 동학의 기본도 모르는 상태에서 생명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어불성설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프레시안, 2008.10.08.).
이와 같은 비판론들에 대해 최재천은 특별한 반박문을 내놓지는 않았다. 다만 “학문의 대통합이 자연과학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정한 통섭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원활한 소통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자신의 통섭론이 윌슨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서울신문, 2008.02.14.). 따라서 최재천이 ‘통섭(統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그 안에 과학제국주의나 에코파시즘을 의도적으로 숨겨두지는 않은 듯하다. 오히려 최재천은 윌슨의 ‘consilience’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 ‘통섭(統攝)’을 운명적으로 생각하고 사용했을 뿐인데,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으면서 비판의 대상이 되자 적잖이 당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와 같은 과정은 최재천 자신이 의도했던 ‘통섭(統攝)’이 윌슨의 ‘consilience’보다 훨씬 더 큰 규모였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런 점에서, 통섭 논쟁은 최재천에게 자기 스승 윌슨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 사건이었다.
‘통섭(統攝)’이라는 화두는 의도치 않게 우리 사회에 던져졌고, 좋든 싫든 이 시대적 흐름과 결부되어 그 덩치가 커졌다. 논쟁은 일단락되었지만, 이제 우리만의 통섭론을 발전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이미 윌슨이 의도한 과학적 환원주의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에 의견이 모아졌으니 한국적 통섭론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대학의 역할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혁신을 요구받는 교양 교육이 통섭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들을 키워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앞서 윌슨이 애도한 콩도르세가 살던 시대와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를 비교해보면 더 이해가 쉽다. 콩도르세가 계몽사상가들과 함께 활동하던 때를 근대적 휴머니즘 시대라고 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점은 포스트휴머니즘 시대라고 부른다. 근대적 휴머니즘이 중세적 신의 절대성과 권능을 근대적 인간의 보편 이성과 자기 결정권으로 대체하고자 했다면,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중심주의에 비판을 가하면서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차별을 거부하거나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초월적 존재로의 도약을 꿈꾼다(김환석, 2017: 67-73). 중요한 것은 두 시대 모두 그동안 배제되어왔던 대상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면서 기존에 다루지 않았던 다양한 담론들을 찾거나 기존의 담론들을 새롭게 연결시키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려면, 통섭적 사고의 방법을 받아들이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통섭적 사고란 무엇인지 밝히고, 통섭적 사고를 적용하는 교양 과목이 시대적 흐름 안에서 왜 필요한지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통섭 교양 과목은 크게 지적 통섭과 실천 통섭으로 나누어져 구체화된다.

2. 통섭적 사고란 무엇인가

2.1 통섭의 자세

영화 대사로 등장해 더 유명해진 영국 속담 “Manners Maketh Man”은 “매너(예절, 자세)가 사람을 만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을 통섭에 적용하여 “자세가 통섭을 만든다”로 바꾸어 생각하면, 통섭의 실체가 좀 더 명확해진다. 통섭은 그 의미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통섭 논쟁은 그런 맥락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두 학자 최종덕과 최재천이 보여준 모습은 앞서 말한 “자세가 통섭을 만든다”에 어울리는 태도였다.
최종덕은 윌슨의 ‘consilience’가 인문학을 자연과학에 종속시키는 일방향적 통합을 의미함에도 최재천은 성리학, 원효의 화쟁사상, 최한기의 통섭 등을 거론하며 ‘통섭(統攝)’이라는 단어를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대등한 통합인 것처럼 사용했다고 말하면서, 최재천이 통섭을 환원적 통합이 아닌 상호적 통합에 있다고 믿는다면 윌슨의 유명도에 의존하지 말고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으로 태도를 분명히 한 뒤 통섭의 의미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경향신문, 2007.08.06). 그리고 언제든 이야기 나눌 준비가 되어있다고 첨언하면서 함께 한국적 통섭론을 구축해 나가고자 하는 자세를 보였다. 이에 대해 최재천은 환원주의가 통섭적 연구를 위한 하나의 방법론일 뿐 모든 통섭적 연구가 환원주의적으로 이뤄질 수는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통섭이 과학과 기술, 그리고 인문과 사회를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범학문적 연구를 일컫는다는 점에서 학문의 일방향적 통합으로는 제대로 된 통섭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서울신문, 2008.02.14.). 최재천이 통섭에 대한 국내 학자들의 관련 글들을 엮어서 펴낸 <지식의 통섭 - 학문의 경계를 넘다>(2007) 역시 그와 같은 입장의 연장선에 있다.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 프랜시스 베이컨, 최한기 등 동서양 학자들의 사상을 통섭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동시에 통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윌슨의 환원주의적 입장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결론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섭 논쟁은 자연과학자와 인문학자 간 대결 구도가 형성되어 치열한 영역 다툼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덕과 최재천의 이와 같은 태도로 인해 한국적 통섭론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만약 최재천을 중심으로 한 자연과학 진영이 김흡영이 말한 과학제국주의나 김지하가 말한 에코파시즘을 부정하기 위해 인문중심주의나 인문학적 허황성 등을 공격하는 일에 주력했다면 ‘통섭(統攝)’이라는 단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 전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재천은 ‘통섭(統攝)’이라는 단어를 과학제국주의나 에코파시즘을 숨겨두기 위한 의도로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김흡영과 김지하의 날선 비판에 분노하지 않았고 최종덕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오히려 최재천은 인간의 지식이 본질적으로 통일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연과학과 인문사회는 서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윌슨이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현대 철학 사조를 깊이 이해하지 못했거나 1998년에 출판된 윌슨의 책이 최신 연구 성과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도 인정했다(최재천, 2007: 289-296). 그리고 이와 같은 모습은 한국적 통섭론을 구축해 나갈 수 있게 만든 통섭의 자세였다고 평가받을 만하다. 따라서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있겠지만, 최재천이 윌슨의 ‘consilience’를 원효대사의 화엄사상 속 ‘통섭(統攝)’으로 연결한 것은 자연과학적 환원주의를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닌 자연과학과 인문사회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학문의 창발 가능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종덕의 충고와 최재천의 반응은 지식의 대통합을 위해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학문과 분야의 출현을 촉발시킬 수 있는 통섭의 자세였다고 볼 수 있다.

2.2 융합형 인재 vs 통섭형 인재

통섭에 관한 논의는 최근 제4차 산업혁명시대의 인재상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융합형 인재의 필요성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인간과 사물이 초연결⋅초지능화 되는 제4차 산업혁명시대의 특성상 학문과 학문, 산업과 산업, 학문과 산업을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융합형 인재와 통섭형 인재를 구분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최재천에 의하면, 통합은 물리적인 결합을 의미하고 융합은 화학적으로 결합되어 원래 대상들로부터 전혀 새로운 것이 탄생된 것을 의미한다(조선일보, 2009.12.21). 대상들의 결합 방식에 차이는 있지만 통합과 융합 모두 결합의 결과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둘 다 통섭과는 차이가 있다. 통섭은 결과로서의 융합으로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학문간 교류와 화합을 의미하는 동시에 학문간 융합을 이루기 위한 일종의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융합형 인재가 어느 한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른 분야와의 연계성을 치밀하게 설계할 수 있는 정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권두언, 2017: 6-7), 통섭형 인재는 자기 주변에서 공감할 수 있는 문제를 찾아내고 그 문제를 중심으로 필요한 분야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하고 선택하며 배우는 동시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을 도출할 수 있는 융통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융합형 인재가 자신이 갖고 있는 전문성을 중심으로 융합 가능한 범위를 미리 상정하고 그 결과를 예측하는 결과지향적 인간이라면, 통섭형 인재는 자신이 공감하는 문제에 따라 융합 가능한 범위를 변화시키면서 솔루션을 도출하는 문제지향적 인간인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융합형 인재 속에 부족한 창의적 문제 발견 능력을 보충하기 위해 창의융합형 인재를 말하기도 한다. 창의융합형 인재란 서로 다른 것들을 합쳐서 무엇인가 새롭고 가치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으로서(교육부 행복한 교육 2015년 1월호), 결과지향적 인간으로서의 융합형 인재에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창의성을 접목시킨 것이다. 하지만 창의성이라는 것이 여러 학문 또는 지식들을 자유롭게 조합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발휘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창의융합형 인재가 창의성의 발휘 과정을 충분히 내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미 자기 분야를 정립하고 정해진 범위 안에서 다른 분야를 접목하는 융합형 인재나 창의성을 피상적으로 연결시키는 창의융합형 인재보다는 자기 주변의 문제를 중심으로 필요한 분야를 선택하고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통섭형 인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통섭형 인재는 이미 많이 존재했다. 르네상스적 만능인으로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는 ‘어떻게 하면 사실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중심에 두고 자기만의 솔루션을 도출하기 위해 회화와 조각 뿐만 아니라 기하학과 해부학을 융합하여 위대한 예술작품들을 남겼다(주경철, 2019: 89-97). 마테오 리치(Matteo Ricci)는 ‘어떻게 하면 예수의 말씀을 동양에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스콜라적 철학과 스토아적 윤리학 뿐만 아니라 천문학과 수학, 심지어 기억술까지 접목하여 성리학의 틈새를 파고들었다(김선희, 2010: 191-203). 우리나라 인물로서 정약용 또한 ‘어떻게 하면 실천지향적인 학문 체계를 세우고, 이상적 세계의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경세적 실학에 천문, 지리, 역학, 의약을 연결하고, 심지어 기계 제작까지 이어나갔다(성태용, 1994: 110-128). 그리고 가장 가까운 시대의 인물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경우,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차별화된 문화 공간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들까’라는 문제를 중심에 두고 따로 발전하던 이동통신기술과 인터넷기술을 하나로 녹여냈고, 철학과 디자인과 예술까지 결합된 스마트폰을 세상에 내놓았다(김동일, 2015: 11-21). 이처럼 역사상 존재했던 통섭형 인재들은 단순한 천재가 아니라 자신이 중심에 두고 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학문과 지식 간 경계를 허물고 필요한 분야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하고 선택하면서 새로운 분야를 출현시킨 문제지향적 인간들이었다.

2.3 공감과 창의성의 원천으로서 통섭적 사고

앞서 언급한 인물들을 융합형 인재가 아닌 통섭형 인재로 볼 수 있는 근거의 핵심은 통섭적 사고에 있다. 통섭형 인재를 문제지향적 인간으로 바라본다면, 통섭적 사고는 문제지향적 사고로 표현할 수 있다. 최재천의 제자 장대익에 따르면, 융합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제기하고 있는 같은 질문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진정한 융합이란 인접 분야와 단순히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공유하고 답을 찾는 것이다(장대익, 2012). 여기서 장대익은 일반적 융합과 진정한 융합을 의도적으로 구분하여 말하는데, 그것은 최재천이 융합과 통섭을 구분한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 융합이란 화학적으로 결합되어 원래 대상들로부터 전혀 새로운 것이 탄생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와 같은 결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학문간 교류와 화합,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환경으로서의 질문의 공유가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장대익 또한 윌슨의 <통섭: 지식의 대통합(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을 최재천과 함께 번역했다는 점에서, 장대익이 말한 진정한 융합은 통섭을 거친 융합을 염두해 둔 것이라 볼 수 있다. 일반적인 독자들에게 융합과 통섭의 차이를 구분하여 이해시킨다는 것이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통섭을 진정한 융합으로 달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통섭은 어떤 현상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여러 분야들이 합쳐지고 공유되는 것이고 더 나아가 무언가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다(윌슨, 2005: 8-10). 여기서 많은 사람들은 통섭의 초점을 여러 분야들이 합쳐지고 공유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통섭의 초점은 어떤 현상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려는 욕구, 즉 장대익이 말한 질문의 생성과 공유에 있다. 그것은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분야들을 선택하고 합치며 학습하려는 의지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통섭적 사고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현상을 보면서 질문을 생성하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것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조합하고 재배열하며 새로운 틀을 구상해내는 것이 통섭적 사고이다. 그것은 단순히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여 창의적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라는 일종의 구호와 같은 말들을 반복하는 것과는 다르다. 왜 과감한 발상의 전환의 시도가 필요하고 어떻게 하면 창의적 아이디어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잡스의 경우 통섭적 사고의 과정을 제대로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잡스가 발명해낸 것으로 생각하지만, 스마트폰은 이보다 훨씬 전에 등장했다. 최초의 스마트폰은 IBM이 1992년 선보인 ‘사이먼(Simon)’이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으로 불리지 않았지만 컴퓨터의 기능을 휴대전화에 접목했다는 점에서 최초의 스마트폰이라 할 수 있다. 길이 23cm에 무게 500g으로 휴대하기에는 상당히 컸고, 키패드 대신 스타일러스펜으로 화면을 찍어 입력하는 방식이었으며, 배터리 사용시간이 1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탓에 큰 인기를 끌진 못했다. 그 뒤로 Hp나 Dell에서 내놓은 휴대용 소형 컴퓨터와 휴대전화의 기능을 합친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폰 또한 여전히 부담스러운 크기와 불편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탓에 외면당했다. 하지만 사이먼 등장 15년 후, 잡스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Macworld) 연단에서 검은색의 조그만 기기를 꺼내 들었다. ‘아이폰’의 등장이었다. 이렇게 2007년 출시된 아이폰은 휴대전화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통화와 문자메시지가 핵심 기능이었던 기존의 휴대전화는 아이폰을 시작으로 모든 정보통신기술의 허브로 탈바꿈했다. 대중들은 휴대폰과 인터넷과 아이팟이 합쳐진 아이폰에 열광했고, 잡스의 예언대로 사람들은 전화를 걸고 웹에 연결하고 음악을 듣는 모든 행위를 하나의 기기 안에서 완벽하게 해결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아이폰이 최초의 스마트폰인 ‘사이먼’을 제치고 진정한 최초의 스마트폰으로 인식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이먼과 PDA폰이 단지 기술의 융합을 선보인 것이었다면, 아이폰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차별화된 문화 공간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들까”라는 질문을 중심에 두고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기술과 인문학, 그리고 예술을 조합하여 새로운 틀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있다.
결과적으로, 사이먼과 PDA폰이 컴퓨터를 가운데 두고 휴대전화나 스타일러스펜 등과 같은 필요한 것들을 더하거나 연결하는 식의 융합적 사고를 진행시킨 것이었다면, 아이폰은 잡스의 질문을 중심에 두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조합하고 재배열하여 새로운 틀을 창조하는 통섭적 사고를 진행한 것이었다. 심지어 잡스는 자신이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의 이름까지도 바꾸었다. 그는 컴퓨터 중심의 IT 회사가 아닌 문화 중심의 IT 회사로 바꿀 필요성을 느꼈고, 회사의 이름을 애플컴퓨터사(Apple Computer Inc.)에서 애플사(Apple Inc.)로 바꾸기로 결정했다(Macworld San Francisco, 2007). 이는 자신이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회사의 정체성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통섭적 사고는 질문을 스스로 생성하면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스스로 탐색하고 결정하며 실행한 후 솔루션을 도출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통섭적 사고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여러 정보나 학문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점에서 공감의 원천이 되고, 이로부터 제3의 지식과 영역들을 창출하고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만든다는 점에서 창의성의 원천이 된다.

3. 통섭 교양 과목의 필요성

3.1 포스트휴먼의 시대적 특성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본 연구는 자기 분야를 정립한 후 다른 분야를 체계적으로 연계하는 융합형 인재보다는 자기 주변의 문제를 중심으로 필요한 분야를 선택하고 조합하며 섭렵할 수 있는 통섭형 인재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 우리가 대학 교육에서 융합형 인재가 아닌 통섭형 인재의 양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현재 우리가 놓여있는 시대적 특성에 기인한다. 세계경제포럼의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의장이 디지털 인프라의 토대 위에 인공지능, 로봇공학,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3D 프린팅, 가상현실, 유비쿼터스 모바일 컴퓨팅과 같은 새로운 기술들을 결합하여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난다고 말한 이후, 우리는 흔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몇몇 학자들은 4차 산업혁명과 3차 산업혁명의 구분이 허울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Da the president, 2017.12.06), 4차 산업혁명이 가상과 실재의 결합을 실현시킨다는 점에서 디지털 정보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3차 산업혁명을 넘어서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흐름은 곧 인공지능과 로봇이 우리 인간과 함께 생활하게 될 수도 있다는 기대와 공포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면서 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 또 다른 화두를 던진다.
휴머니즘이 르네상스 정신을 중심으로 중세적 신이 가지고 있던 절대적 권능을 근대적 인간의 보편적 이성으로 대체했다면, 포스트휴머니즘은 그 형식만 신에서 인간으로 바뀐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을 비판하고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근대의 이원론적 구분법을 벗어나고자 한다. 따라서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차별에 의문을 제기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지만 그동안 소외되어왔던 여성과 장애인, 심지어 정신질환자까지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한다(김환석, 2017: 67-73). 그 배경에는 앞으로 우리와 함께 생활하거나 심지어 우리의 몸과 정신 속으로 들어올지도 모르는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의 발전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이보그와 같은 새로운 종류의 초월적 인간종이 탄생할 수 있다는 기대나 인공지능의 노예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공포로 그 논의를 확장시키면서 포스트휴먼 시대의 모습을 예측한다.
물론 새로운 기술들이 어디까지 발전하고 인간과 어떤 관계를 형성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에서, 포스트휴먼 시대의 모습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포스트휴먼의 시대는 단순하게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여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판단했던 시대와는 달리 굉장히 복잡한 관계적 특성을 가질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포스트휴먼의 시대에는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기술뿐만 아니라 그 기술들이 근본을 두고 있는 인간의 뇌와 자연의 구조,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인간의 심리와 사회의 단면들까지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실 그것은 인문계열, 사회계열, 자연계열, 공학계열 등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이 중⋅고등학교 때부터 계열의 분리로 학문적 편식이 심하고 그러한 습관이 대학 진학 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통섭적 사고와 멀어진다는 것을 생각할 때, 대학에서의 실질적인 통섭 교육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대학에서의 통섭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학생들이 포스트휴먼 시대의 복잡한 관계적 특성을 갖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는 상태로 사회로 진출한다거나 극단으로 치우친 결과들을 만들어 사회의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이슈가 된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인구론’(인문계 출신 90%는 논다)과 같은 신조어나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는 그와 같은 우려가 실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살아갈 포스트휴먼의 시대에 자기 주변의 문제를 균형감 있게 탐색하고 그 문제를 중심으로 나와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솔루션을 찾아낼 수 있는 통섭형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대학 교육은 잘 준비되어야 한다.

3.2 ‘First Mover’의 국제적 위치

우리가 대학 교육에서 통섭형 인재 양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또 한가지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가 놓여있는 국제적 위상에 기인한다. 얼마전 대한민국은 유엔무역개발회의(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rade and Development, 이하 UNCTAD)가 설립된 이래 최초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된 국가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선진국을 뒤쫓아 가는 나라가 아니다. 세계 시장 또는 국제 차트에서 1위를 했다거나 세계 최초로 개발 또는 발매했다는 표현은 더 이상 부풀려진 문구가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기존의 선진국보다 기술이나 문화에서 앞서 나가는 나라가 되었다. 이는 우리가 지난 수십년간 충실하게 선진국을 따라갔던 ‘first follower’에서 벗어나 이제는 ‘first mover’가 되어야 할 때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쫓아가는 것과 맨 앞에서 움직이는 것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미 누군가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과 아직 없는 길을 만들면서 나가는 것의 차이다. 만들어진 길을 따라갈 때는 식량과 체력만 잘 구비하여 방향만 잘 설정하면 그 길을 따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지만, 아직 가 본 적이 없는 길을 처음으로 개척할 때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를 매순간 결정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길을 찾을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first mover’가 된다는 것은 매순간 자신이 가야 할 방향과 방법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 곧 통섭적 사고가 요구된다는 것을 말한다. 선진국을 뒤쫓아가는 것이 아닌 나란히 또는 앞서 간다는 것은 아무도 만들지 않았던 기술과 문화 또는 제품과 서비스를 생각해내고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일들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통섭적 사고를 갖춘 인재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분위기와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공부하고 일해 온 방식들은 대부분 선진국 뒤따라가기에 잘 맞추어져 있었고 그 수준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기존의 방식들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 기존의 방식이라 하면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대표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주입식 교육이라 하겠다. 주입식 교육은 학생 개인의 성향이나 적성보다는 정해진 시스템 하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교과서 중심의 지식을 일방향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주입식 교육이 무조건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전 대통령은 2011년 신년국정연설에서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을 이끈 동력으로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칭찬한 적이 있다. 실제로,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주입식 교육 방식과 학부모들의 교육열을 토대로 하여 세계의 어느 나라도 이루지 못한 괄목할만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이제 주입식 교육 방식만으로는 안 된다. ‘first follower’가 아닌 ‘first mover’로서 아무도 만들지 않았던 기술과 문화 또는 제품과 서비스를 생각해내고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일들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호기심을 기반으로 우리 주변의 문제를 탐색하고 분석하며 창의성을 기반으로 해결책을 찾고 실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호기심과 창의성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주입식 교육은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 더 이상 좋은 교육 방식이 되지 못한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학벌 중심 입시제도로 인해 중⋅고등학교에서의 주입식 교육을 단번에 뜯어고치기 어렵다면, 대학 교육부터라도 자기 주변의 문제를 호기심을 갖고 탐색하고 그 문제를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통섭형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한다.

3.3 왜 통섭 교양 과목인가

2014년 교육부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발표했다. 그동안의 문과와 이과의 교육 구분을 없애고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적 실행력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막상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점수를 받기 유리한 과목을 선택하느라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폭넓은 영역의 과목을 수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장수철, 김주옥, 2017). 따라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문과와 이과의 계열 간 이질감과 타 계열의 학문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대학에 진학한다. 문제는 대학 진학 후에도 그와 같은 편견과 두려움이 해소되기보다는 점점 더 심화된다는 것에 있다. 그러한 경향은 학생들로 하여금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정신을 반감시키고, 결과적으로 대학이 배출하는 인재형과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 사이에는 괴리가 생기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괴리를 줄일 수 있을까?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분야와 지식이 섞여 있는 교과목을 듣고 그 안에서 주변의 문제를 스스로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대학 차원에서 높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좀 더 현실적으로, 전공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교양을 중심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전공 과목의 특성상 이미 정립된 하나의 분야를 중심으로 지식 체계가 잡혀있고, 그 체계를 중심으로 교수자의 강의가 학생들에게 전달되며, 학생들 또한 그 분야의 지식 체계를 전수받기 위해 그 학과로 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양의 경우 어떤 분야의 지식 체계를 중심으로 강의가 진행된다기 보다는 전인교육을 위한 기초 학문을 공부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무엇보다도 다양한 분야의 학생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모이다 보니 타 계열 또는 타 학문을 공부하는 학생들과도 쉽게 교류할 수 있다. 실제로, 교양을 의미하는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라는 단어에는 우리가 소위 인문학을 뜻하는 문⋅사⋅철(어문, 역사, 철학) 뿐만 아니라 예술과 자연과학, 그리고 기술공학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교양은 학생들이 통섭적 사고를 경험할 수 있는 일종의 장이 될 수 있다. 다만, 교양이 그러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교수자가 여러 분야를 통섭해 본 경험을 갖고 학생들을 통섭적 사고로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교수자부터 학문의 경계에서 자유로워야 하고,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경험을 수시로 하고 있어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은 앞서 통섭형 인재를 융합형 인재와 굳이 구분했던 이유와도 연결된다. 융합형 인재가 어느 한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른 분야와의 연계성을 치밀하게 설계한다면, 통섭형 인재는 자기 주변에서 공감할 수 있는 문제를 찾아내고 그 문제를 중심으로 필요한 분야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하고 선택하며 배우는 동시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을 도출한다. 굳이 말하자면, 융합형 인재의 양성은 전공 과목을 중심으로 이룬다면, 통섭형 인재의 양성은 교양 과목을 중심으로 이루어 나간다고 볼 수 있다. 융합형 인재가 우선 하나의 분야를 중심으로 정립된 지식 체계를 필요로 하는 반면, 통섭형 인재는 주변의 문제를 중심으로 필요한 분야를 모으고 섭렵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학에서의 인재 양성은 2개의 트랙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한 가지는 전공을 중심에 둔 융합형 인재 양성이고, 다른 한 가지는 교양에서 시도되는 통섭형 인재 양성이다. 여기서 교양에서 시도되는 통섭형 인재 양성이 학생들로 하여금 타 계열 또는 타 학문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을 줄여주고 나아가 타 계열 또는 타 학문으로의 진입장벽까지 낮춰주는 동시에 전공에서의 융합적 사고를 깊고 넓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2개의 트랙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통섭형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춘다는 것은 대학에서 각 전공마다 통섭 과목을 만드는 것이 아닌 교양을 중심으로 통섭 과목을 만드는 것이 될 것이고, 그것은 다시 전공에서의 융합적 결과물로 환원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4. 지적 통섭과 실천 통섭 중심의 구체화

4.1 지적 통섭과 실천 통섭의 구분

지금까지 논의한 바와 같이, 통섭이란 결과로서의 융합으로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학문간 교류와 화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단지 이질적인 학문들을 같이 습득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질적인 분야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하고 배워야 하는 이유를 뚜렷하게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진정한 통섭은 자기 주변에서 공감할 수 있는 문제를 중심으로 관련된 분야의 지식을 두루 익히고 방대한 분량을 많은 시간 동안 곱씹어보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사실 이것은 각 분야의 전공 지식 뿐만 아니라 연계 분야의 지식을 충분히 섭렵한 이후에나 가능한 매우 방대한 작업이다. 이와 같이 생각할 때, 전문 지식을 깊이 있게 다루기 어려운 교양 과목의 수준에서, 그것도 한 학기의 수업을 통해 제대로 된 통섭 교육을 수행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통섭 교양 과목의 수준을 통섭적 사고의 체득에 집중시킨다면 말이 달라진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학생들은 통섭적 사고를 통해 질문을 스스로 생성하면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스스로 탐색하고 결정하며 실행한 후 솔루션을 도출해 나갈 수 있다. 이 사고 과정에서 학생들은 이질적으로 보이는 여러 정보나 학문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공감의 원천을 만들고, 이로부터 제3의 지식과 영역들을 창출하면서 창의적이고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만들게 된다. 다시 말하면, 통섭 교양 과목은 앞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게 될 학생들에게 통섭적 사고에 대한 눈을 뜨게 하고 장래에 자신이 집중하게 될 분야에서 통섭을 시도할 수 있는 자양분을 제공하는데 의의가 있다.
실제로 이와 같은 통섭 교양 과목의 실행 목적은 2007년 하버드(Havard) 대학이 학부 과정을 개편하면서 낸 보고서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 보고서는 “하버드 대학의 학부 교육은 ‘자유 교육(Liberal Education)’을 지향한다”고 말하면서, 대학에서의 자유 교육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자유 교육의 목적은 추정된 사실들을 뒤흔들어 놓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며, 사회적 쟁점들 밑에 존재하는 것들을 규명하면서 젊은이들의 방향 감각을 혼란스럽게 만들다가도 그들이 스스로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Harvard University, 2007: 1).” 그리고 이와 같은 목적은 하버드 대학의 교양 교육 중심의 혁신을 가져오면서 30년간 유지하던 단일 학문 중심의 ‘핵심 교양 커리큘럼(Core Curriculum)’을 해제하고 학제간 융합 중심의 ‘새 교양 교육(New General Education)’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었다(김지현, 신의항, 2015). 이 새로운 교양 교육 체제는 자유 교육의 목적과 교양 교육의 역할에 대한 재인식으로부터 출발하여 ‘학제간 융합’이라는 다양한 학문의 영향과 간섭을 학생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교양 과정에서 경험하고 느끼게 만드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이것은 앞서 말한 통섭 교양 과목이 통섭적 사고의 체득에 집중한다는 부분과 같은 맥락이다.
결국, 하버드 대학이 말하는 새로운 교양 교육 체제는 전공을 중심으로 한 전문적 직업 교육이 주는 유용성과는 전혀 다른 유용성을 가진다. 그것은 인간의 삶을 기본 바탕에 두고 변화무쌍한 다원적인 상황에서 자신이 공부한 학문을 자신의 삶과 연계시킬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으로서, 이론과 실제의 측면에서 학제간 융합을 확장⋅침투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통섭 교양 과목을 이론 중심의 ‘지적 통섭’과 실제 중심의 ‘실천 통섭’의 두 파트로 나누어 진행한다면 학생들이 통섭적 사고를 자신의 삶 속에서 실질적으로 경험하고 활용하는데 효율적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여기서 지적 통섭이 학생들로 하여금 우리 삶과 관련된 통섭적 지식을 습득하고 우리 주변의 문제를 통섭적 지식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음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라면, 실천 통섭은 학생들 스스로 자기 주변의 문제들을 탐색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분석하여 실제 활동 중심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면서 통섭적 사고를 체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4.2 지적 통섭 중심의 교양 과목 구체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공지능, 로봇공학,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3D 프린팅, 가상현실, 유비쿼터스 모바일 컴퓨팅과 같은 기술들이 인간과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포스트휴먼 시대는 단순하게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관계가 아닌 굉장히 복잡한 관계적 특성을 가질 것이다. 사실 하버드 대학의 새 교양 교육 체제는 그와 같은 관계의 변화를 발빠르게 감지하고 교양 교육의 철학을 바꾼 것이다. 기존의 핵심 교양 과정에서 추구하던 단일 학문 중심의 교과목이 더 이상 포스트휴먼 시대의 복잡한 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융합과 탐구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포스트휴먼 시대의 교양 교육은 기존의 진리 체계와 지식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비판적 사고력과 지식의 전수를 넘어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낼 수 있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삶의 단위로 확대할 수 있도록 교과목이 구성되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 주변의 문제를 중심에 두고 인간과 자연과 기술의 과학적 구조와 역사적 맥락,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인문⋅사회적 담론들까지도 함께 다루면서 인문⋅사회와 과학⋅기술 간 지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적 통섭을 필요로 한다.
하버드 대학의 경우, 이와 같은 지적 통섭을 삶의 주제들을 8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각 영역의 교양 과목을 1개 이상 필수로 이수하는 방식으로 시도한다. 8개의 영역은 ‘미학적/해석적 이해(Aesthetic and Interpretive Understanding)’, ‘윤리적 추론(Ethical Reasoning)’, ‘문화와 신앙(Culture and Belief)’, ‘경험적/수학적 추론(Empirical and Mathematical Reasoning)’, ‘물리적 세계의 과학(Science of the physical Universe)’, ‘생명 체계의 과학(Science of Living Systems)’, ‘세계의 사회(Societies of the World)’, ‘세계 속의 미국(United States in the World)’과 같다(Harvard University, 2007: 7). 그리고 각각의 영역 속 교양 과목들은 그 삶의 단위와 관련된 학문들을 선택하여 다양한 이론적 관점의 조합을 시도한다.
하버드 대학 신문(The Harvard Gazette)에 소개된 몇 가지 교과목들은 좋은 예가 된다(Harvard Gazette, 2009.04.30). 그 중에서도 생명 체계의 과학 영역에 해당하는 <다윈주의의 이해(Understanding Darwinism, 교과목 코드: Gen Ed 1004)>는 다윈의 진화론을 중심으로 과학과 역사가 새로운 학제간 과정으로서 서로 조명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흥미롭게도, 이 학제적 교과목은 학생들에게 다위니즘적 역사와 진화생물학적 과학에 대한 보다 큰 그림을 제공하기 위해 역사 전공의 자넷 브라우니(Janet Browne)와 생물학 전공의 앤드류 베리(Andrew Berry)가 공동 강의한다. 두 교수는 이 교과목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함께 협력해 본 적이 없었지만 이 과목을 통해 과학과 역사의 차별화된 만남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학생들은 이 과목을 통해 다양한 학제간 자료를 제공받을 뿐만 아니라 실험실에서 자신의 DNA를 시퀀싱하면서 우생학과 같은 민감한 주제와 인간 진화를 조작하려는 시도에 대한 사회적 의미까지도 함께 생각해 보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브라우니와 베리가 우리 삶의 단위에서 생성되는 질문을 중심으로 과목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의 소개 첫 문장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이 과목은 “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발전하고 인간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리고 인간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와 같은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인간과 자연의 과학적 구조와 역사적 맥락,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인문⋅사회적 담론들까지도 함께 다루고 있다(Harvard College program in General Education, Gen Ed 1004).
근래 개설된 <진화하는 도덕: 원시 스프에서 초지능 기계로(Evolving Morality: From primordial Soup to Superintelligent Machines, 교과목 코드: Gen Ed 1046)> 또한 좋은 예이다. 이 교과목은 실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죠수아 그린(Joshua Greene)이 강의하는데, 도덕(morality)의 존재와 시대에 따른 진화를 조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원초적인 생물학적 유기체로부터 시작하여 지적인 영장류의 심리학을 거쳐 인간보다 더 지능적이고 더 잘 조직된 기계가 존재하는 미래 지구까지 상정하여 도덕의 변화를 학생들 스스로 예측해 볼 수 있게 만들고자 한다. 옛 사람들이 도덕을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신의 명령이나 추상적이고 영원한 진리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이 과목은 도덕에 대한 경험적 접근을 취하며 도덕을 생명체와 사회 간의 전략적 상호작용에서 태어난 결과물로서 바라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과학과 도덕이 별도의 영역에 존재한다고 믿는 부분에 대해 도전한다. 그것은 지구의 진화 역사상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인공지능기계와의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현시점에서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서도 그린과 같은 교수자는 우리 삶의 단위에서 생성되는 질문을 중심으로 과목을 구성하고 있다. 그린은 강의 소개를 통해 “도덕이란 무엇인가”라는 우리 삶에 있어서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자율주행차, 드론, 로봇이 도덕적으로 행동하도록 프로그래밍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까? 기계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통제를 유지할 수 있을까?”와 같은 현재 이슈가 되는 다양한 질문들을 제시한다(Harvard College program in General Education, Gen Ed 1046). 이와 같은 교과목들은 학생들 스스로 교수자가 제시하는 질문들에 공감하고 어떤 방식으로 인문⋅사회⋅자연⋅공학의 계열 간 지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관점을 도출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지적 통섭이 구체화된 교양 과목이라 할 수 있다.

4.3 실천 통섭 중심의 교양 과목 구체화

하버드 대학의 새 교양 교육 체제는 교수들이 기존의 경계와 한계를 깨고 비전통적 교수 방법을 찾아내어 적용하는 것을 적극 권장하면서 학생들의 수업 참여 방식의 변화까지도 유도한다. 삶과 학문을 연계시키는 것은 필연적으로 기존의 학문 중심 교육 방식을 탈피하고 일상생활에서의 자유로운 교육 활동이 교과 과정 안으로 들어와 삶과 앎이 만날 때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새 교양 교육 체제는 교양 과목들이 가지는 감수성(sensibilities)과 실재성(realities)이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교양 과목들을 본질적으로 유연하고 민첩한 교과 과정적 독립체(curricular entity)로서 바라본다(Harvard University, 2007: 19). 하버드 대학은 새 교양 교육 체제에 이와 같은 부분을 적용하여 작년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기존 8개의 영역들을 통합하여 4개의 영역으로 조정하였다. 그것은 ‘미학과 문화(Aesthetics & Culture)’, 윤리와 시민(Ethics & Civics)’, ‘역사, 사회, 개인(Histories, Societies, Individuals)’, ‘사회 속 과학과 기술(Science & Technology in Society)’과 같다(Harvard College program in General Education, Requirements).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데이터를 사용한 양적 추론(Quantitative Reasoning with Data)’에 대한 요구사항을 따로 추가했다는 것이다(Crimson Education, 2020.03.20). 그것은 현대 인간의 삶이 정보통신기술 기반의 미디어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감안하여 데이터 분석에 대한 정량적 접근 방식을 배우고 실제 생활에 적용하면서 데이터를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는 목표를 반영한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이와 같은 최근의 변화는 학생들 스스로 자기 주변의 문제들을 탐색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분석하여 실제 활동 기반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실천 통섭이 구체화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하버드대학 교내 신문인 하버드 크림슨(Harvard Crimson)에 따르면, 하버드 대학이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기존 8개의 교양 영역들을 통합하여 4개의 영역으로 조정하고 추가 요구사항들을 따로 만든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이 교실 밖에서 실질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실천 교양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Crimson Education 2020.03.20). 예를 들어, <예측: 미래의 과거와 현재(prediction: The past and present of the Future, 교과목 코드: Gen Ed 1112)>와 같은 과목은 이와 같은 변화 속에서 눈에 띠는 실천 통섭 관련 과목이다. 천문학자이자 데이터 전문가이기도 한 알리사 굿맨(Alyssa Goodman)은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녀에 따르면 인간은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미래를 걱정할 수 있는 종이다. 따라서 인간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때로는 강박적으로 엄청난 양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타고난 예측 능력은 지난 몇 천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수학적이고 개념적인 예측 모델은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예측 시스템을 엄청나게 개선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과거의 결과들을 비교하고 통합하면서 다양한 미래의 모습이 얼마나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인지를 정량화하여 보여준다. 그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인이 양 내장의 생김새와 위치를 읽은 행위에서부터 기후, 건강, 부, 우주의 운명을 읽는 행위까지 모두 현대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속으로 집어넣어 예측하는 과정들을 포함한다. 따라서 이 과목을 통해 학생들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기술이 인류 역사를 어떻게 바꾸어 왔는지를 살펴보고, 기존의 예측 시스템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지금과 같은 현실적 불확실성 속에서 자신의 예측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하면 좋을지를 스스로 배우게 된다(Harvard College program in General Education, Gen Ed 1112).
지적 통섭과 비교할 때 실천 통섭 교양 교과목에 대한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인식이 부족하다. 그것은 실천 통섭이 실제 활동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강의실을 벗어나거나 최근에 등장한 이슈들을 감각적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교수자에게도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버드 대학의 새 교양 교육 체제는 교수들로 하여금 새로운 교수 방법을 찾아내어 적용하는 것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세상 끝에서 온 이야기(Stories from the End of the World, 교과목 코드: Gen Ed 1001)>와 같은 과목은 새로운 교수법으로 학생들이 자기 삶의 문제를 실제 활동 중심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성경연구학자이기도 한 지오반니 보자나(Giovanni Bazzana)는 우리 삶 속에서 늘 상상으로 존재해왔던 ‘종말’을 ‘예술적 생산’과 연결지어 강의한다. 그에 따르면, 종말에 대한 환상은 전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며, 특히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Corona virus)의 대유행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이상 허무맹랑한 종말이 아닌 우리의 삶에 가까워진 종말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많은 사람들이 2020년 이전에도 이와 같은 상태를 경험해 왔다는 사실이다. 보자나는 그와 같은 경험들이 종종 ‘묵시록’이라 불리는 문학 장르에 축적되어 있으며 고대부터 지속적으로 생산되어 왔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교과목은 그와 같은 문학 장르의 역사적 궤적을 살펴보는 동시에 영화, 소설, 노래, 회화, 애니메이션, 비디오게임 등과 같은 현대 문화적 결과물까지도 살펴본다. 작가, 영화 제작자, 예술가의 작품들은 다가오는 종말과 그 여파에 대한 일종의 사고 실험적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종말에 관한 의미있는 데이타들이다. 보자나는 이 과정에서 하버드 미술관과 협력하여 작가와 예술가들을 초청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반성과 상상을 통해 종말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아가, 학생들 스스로 “종말론적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의 끝에서 윤리적 선택은 무엇이 되어야 하며, 인간 스스로 그동안의 실수를 고칠 기회가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 것인지”와 같은 질문에 자신만의 반성과 대답을 글, 그림, 사진, 노래로 표현하도록 만든다(Harvard College program in General Education, Gen Ed 1001). 그것은 학생들이 종말론적 상황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그와 관련된 스스로의 콘텐츠를 발견하며 자신의 콘텐츠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와 지식들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재미와 트렌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실천 통섭이 될 수 있다.

5. 결론

한국의 대학 대부분은 교양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많은 4년제 대학들이 교양 교육의 중요성을 좀 더 인식하게 되면서 다양하게 명칭을 바꾸면서까지 새롭게 교양 교육의 체계를 잡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대학에서의 교양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사람들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교양은 알면 좋고 몰라도 상관 없는 잡동사니 상식 같은 것인 경우가 많다. 심지어 학생들이나 전공 교수들까지도 교양 과목을 본격적인 전공 공부와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앞서 다루었던 하버드 대학의 2007년 교육 과정 개편 보고서를 다시 한번 상기해보자. 하버드의 학부 교육이 지향하는 ‘자유 교육’이란 추정된 사실들을 뒤흔들어 놓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며, 사회적 쟁점들 밑에 존재하는 것들을 규명하면서 젊은이들의 방향 감각을 혼란스럽게 만들다가도 그들이 스스로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유 교육의 목적은 하버드 대학의 교양 교육 중심의 혁신을 만들면서 ‘새 교양 교육 체제’로의 전환을 이끌었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생각하는 교양의 의미와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양의 의미는 사뭇 차이가 있어 보인다. 왜 그럴까? 그것은 우리가 자유 교육이라는 것을 별로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복잡한 관계적 특성을 갖는 포스트휴먼의 시대에 서 있고, 수십년간 충실하게 선진국을 따라갔던 ‘first follower’에서 벗어나 ‘first mover’로 나서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이런 시점에서 교양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정립하는 것은 중요하다. 교양은 더 이상 잡식, 박식, 다식, 상식과 같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자유 교육의 철학을 기반으로 진리를 발견하고 인식하는 것에 관한 방법론이며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정신적 훈련과 관계된 말이다. 다시 말하면, 교양은 기존의 진리 체계를 동요시키고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하는 비판적 사고력, 어떤 현상 뒤에 숨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드러내거나 오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정신, 아무리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는 능력과 관계된다. 따라서 교양 교육은 전공 교육을 존중하면서도 전공 지식의 틀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자율적인 정신의 생성에 대한 것이고, 자기 주변의 문제들을 거리낌없이 찾아내어 탐구하는 모험적 호기심의 발휘에 대한 것이다. 실제로, 하버드 대학이 보여준 새 교양 교육 체제는 이와 같은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서 전공을 중심으로 한 전문적 직업 교육이 주는 유용성과는 전혀 다른 유용성을 갖게 만들었다. 그것은 인간의 삶을 기본 바탕에 두고 변화무쌍한 다원적인 상황에서 자신이 공부한 학문을 자신의 삶과 연계시킬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과 관련된 것이다.
본 연구는 그와 같은 교양 교육의 의미를 통섭의 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통섭은 결과로서의 융합으로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학문간 교류와 화합을 의미하는 동시에 학문간 융합을 이루기 위한 일종의 방법론으로서 삶과 학문을 연계시키는 도구이기도 하다. 결과로서의 융합과 과정으로서의 통섭은 인재의 유형에 있어서도 차이를 만든다. 융합형 인재가 자신이 갖고 있는 전문성을 중심으로 융합 가능한 범위를 미리 상정하고 그 결과를 예측하는 결과지향적 인간을 말한다면, 통섭형 인재는 자신이 공감하는 문제에 따라 융합 가능한 범위를 변화시키면서 솔루션을 도출하는 문제지향적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통섭형 인재는 어떤 현상을 보면서 질문을 생성하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것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조합하고 재배열하며 새로운 틀을 구상해내게 되는데, 우리는 이와 같은 사고의 흐름을 또한 통섭적 사고라고 정의했다. 놀랍게도, 하버드 대학의 새 교양 교육 체제는 통섭적 사고의 측면에서 통섭 교양 교육과 여러모로 닿아 있다. 이 새로운 교양 교육 체제는 자유 교육의 목적과 교양 교육의 역할에 대한 재인식으로부터 출발하여 다양한 학문의 영향과 간섭을 학생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교양 과정에서 경험하고 느끼게 만드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이것은 하버드 대학의 새 교양 교육 체제가 통섭적 사고의 체득에 집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통섭 교양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타 계열 또는 타 학문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을 줄여주고 나아가 타 계열 또는 타 학문으로의 진입장벽까지 낮춰주는 동시에 전공에서의 융합적 사고를 깊고 넓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전공 교육과 교양 교육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통섭형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춘다는 것은 대학에서 각 전공마다 통섭 과목을 만드는 것이 아닌 교양을 중심으로 통섭 과목을 만드는 것이 될 것이고, 그것은 다시 전공에서의 융합적 결과물로 환원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다만, 통섭 교양 과목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지적 통섭’과 ‘실천 통섭’의 두 파트로 나누어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적 통섭이 학생들로 하여금 우리 삶과 관련된 통섭적 지식을 습득하고 우리 주변의 문제를 통섭적 지식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음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라면, 실천 통섭은 학생들 스스로 자기 주변의 문제들을 탐색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분석하여 실제 활동 중심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면서 통섭적 사고를 체험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것은 자유 교육의 철학을 교양 교육 체제 안에 제대로 담을 수 있는 2개의 그릇이 될 것이다.
글을 마치며 앞선 통섭 논쟁으로 돌아가 보려고 한다. 통섭 논쟁은 자연과학자와 인문학자 간 대결 구도가 형성되어 치열한 영역 다툼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을 대표하는 최종덕과 자연과학을 대표하는 최재천의 통섭적 사고와 자세로 인해 한국적 통섭론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만약 이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만을 옳다고 주장하고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쪽으로 상황이 흘러갔다면, ‘통섭(統攝)’이라는 단어는 설득력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종덕은 진심으로 충고했고, 최재천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와 같은 모습은 한국적 통섭론을 구축해 나갈 수 있게 만들었고, 자연과학과 인문사회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학문의 창발 가능성을 드러냈다. 그것은 포스트휴먼 시대를 살아갈 우리의 학생들이 기존의 진리 체계와 지식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비판적 사고력과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낼 수 있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고 때로는 인문⋅사회와 과학⋅기술 간 지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결과물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통섭 교양 과목이 만들어 나갈 지적 통섭과 실천 통섭은 빈번하게 마주치게 될 여러 갈등과 충돌 상황들을 해결할 수 있는 통섭적 사고와 자세를 학생들 스스로 배워나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통섭 교양 과목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계획성 있게 설계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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