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J General Edu > Volume 15(6); 2021 > Artic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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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이컨의 ‘위대한 부흥’(Instauratio magna) 프로젝트는 지식의 진보를 통해 자연과 사회의 완성을 이루기 위한 대형기획이었다. 그는 이 기획의 출발점으로 학문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작업을 『학문의 진보』에서 수행하는데, 특히 인간적 학문을 인간의 기억과 상상력과 이성과 연관지어 각각 역사학, 시, 철학으로 구분함으로써 인문학의 핵심영역인 문사철의 윤곽을 그려냈다(베이컨, 2002). 또 다른 측면에서 학문에 대한 반성작업은 칸트에게서 이루어졌다. 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학문(Wissenschaft)이야 말로 단순한 지식의 집합이 아니라 ‘체계’(system)로 보았으며, 특히 시스템을 ‘자연적인 사물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이념 아래서의 다양한 지식들의 통일’(die Einheit der mannigfaltigen Erkenntnisse unter eine Idee)로 간주함으로써 학문의 체계적 통일성을 강조한 바 있다(칸트, 2006: A832/B860). 이러한 맥락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비유되는 칸트의 이성 비판은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가능하게 한 치밀한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후설은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에서 “사실을 규명하는 학문은 사실적 인간만을 만들 뿐”(후설, 1997: 65)이라고 밝히면서 학문의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으로 실증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하는데, 그의 비판은 일종의 학문이론(Wissenschaftstheorie)으로서 학문의 주체, 학문의 대상, 학문의 의미를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2) ‘교양학’이라는 용어는 하병학이 「보편교양학으로서의 수사학 재정립」(2004)이라는 논문에서 이미 사용한 바 있다. 여기서 그는 중세 대학에서 성행했던 7개의 자유교과를 교양학(Disziplin der Bildung)으로 이해하고 있다. 교양학의 경우 영어로 liberal arts and sciences(LAS로 약칭)로 표기함으로써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기초학문 중심의 자유교양을 의미하는 것으로, liberal arts education 혹은 liberal education은 LAS에 토대를 를 둔 교육으로 표기할 수 있을 것이다.
3) 교양교육의 명칭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백승수(2019)가 「교양교육의 명칭 재정립을 통한 교양교육의 재개념화」에서 제안한 문리교육(文理敎育)은 ‘기초학문 분야를 가로지르는 횡단적 교육’을 표방함으로써 기초학문을 전면에 내세우는 동시에 교양교육의 정상화를 도모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 명칭으로 보인다. 이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명칭 자체가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학문으로서의 교양 전체를 포괄하기에는 다소 무리라고 보여진다. 학문으로서의 교양이 일차적으로 정립되어 있고, 이를 통해 교육과 연구의 구도가 형성되어야만 현행 학문분류체계에서 교양교육이 중분류 이상의 위상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4)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윤리학』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철학, 즉 지혜에 대한 사랑은 그 순수함과 견실함에 있어서 놀라운 즐거움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앎을 실제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찾는 사람들보다 더 즐겁게 삶을 영위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럴 법하다(아리스토텔레스, 2006: 1177a 20-1177b 25).”
5)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1644)의 목차는 제1장 「인간 인식의 원리들에 대하여」, 제2장 「물질적인 것의 원리들에 대하여」, 제3장 「가시 세계에 대하여」, 제4장 「지구에 관하여」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점은 당시 지칭하는 철학이 좁은 의미의 분과학문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6) 주지하다시피 과학으로 번역되는 영어 science는 인식, 지식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episteme의 라틴어 버전인 scientia에서 유래하였다. scientia는 어떤 상황이나 주제에 대한 분별 있고, 통찰력 있는 지적 이해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였으며, 이러한 용례는 13세기 중엽 scientia라는 가장 큰 범주 아래, 신적 지식과 인간적 지식으로 구분한 킬워드비(R. Kilwardby)의 학문분류체계에서 명시적으로 나타난다(김영식, 2007: 47-48). 가장 포괄적인 의미의 지식을 의미했던 scientia가 과학으로 굳어진 것은 근대 학문의 분화와 관련이 있으며, 특히 과학(科學)은 분과학문(分科學問)의 줄임말로서 학문이 통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나누어져 있다는 사태를 보여주기 위한 일본인의 정교한 번역태도가 담겨 있는 단어다.
7) 김남두는 근대 학문의 역사를 ‘지식지배’라는 개념으로 요약한 바 있다. 지식지배란 “특정한 지식이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어 광범위하게 지배적인 지식형태로서 수용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특히 자연과학적 지식은 근대학문의 역사에서 이러한 지배의 형태를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전통적으로 과학의 형식에 따라 접근될 수 있는 지식 영역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던 분야가 과학적 지식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이런 영역 확대가 일반화되는 현상”이 근대에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근세 이후의 학문사란 크게 물리학에서 시작된 수리적 체계화 작업이 자연과학의 여러 영역을 비롯하여 경제학⋅심리학⋅정치학 등 사회과학의 영역으로 확대되어 가는 과정이었으며 금세기 이후 시작된 공학화가 진행되고 정보화와 결합되어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다”(김남두, 2000: 15).
8) 인문학의 메타학문적 성격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강조된 바 있으며, 이태수(1994), 신승환(2007), 정호근(2003), 이중원(2003), 김영식(2009)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이태수는 학문체계를 대상영역에 따라 구분하는 방식을 포기한다면 인문학의 독자성을 확보하기가 수월하다고 말하면서, 인문학의 대상은 다른 학문이 대상으로 삼는 학문세계와 생활세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이태수, 217-218). 또 다른 측면에서 김영식(2009)은 인문학이 ‘인문학’으로 불리는 것은 지식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연구방법과 정신 때문이며, 이런 측면에서 인문학에 속하지 않는 수많은 분야들이 인문학적 공부, 연구, 분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10) 수학이 모든 학문의 모범이라는 인식은 플라톤뿐만 아니라 근대철학자 데카르트의 보편학(mathematica universalis)의 이념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양자간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전자의 경우 경험과 무관한 ‘순수 이성적 존재’를 학문적 대상으로 간주하기에 수학이 모든 학문의 전형이라면, 후자의 경우 수학이 가장 완성도 높은 인식방식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모든 학문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수학적 확실성의 토대 위에 지식 체계를 정립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11)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크리스텔러(Kristeller)에 따르면, 그리스 철학 대부분이 라틴어로 번역되지 못함으로써 중세 말까지 라틴세계에서의 철학에 대한 이해는 7자유교과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12세기에 이르러서야 새로운 교육제도로서의 대학의 출현, 이슬람에 의해 보존된 고대 그리스, 로마의 학문적 유산의 유입 등을 통해 7자유교과의 범주를 넘어서는 철학의 전통을 이해하게 되었다(크리스텔러, 1995: 59, 285 참조).
12) 르네상스 인문학이 철학과의 대립 가운데서도 도덕 철학(philosophia moralis) 만큼은 자신의 영역에 포함시킨 것은 인간다움의 추구라는 명제 앞에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13) 특징적인 점은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대학 바깥에서 시작되어, 대학은 오히려 전통적인 지식체계와 학풍에 안주하여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주도하는 지적 흐름에 저항하였으나 점점 그 변화에 부응해서 새로운 형태의 인문학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지식변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대학의 대처방식은 이러한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14) 인문학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정신과학(Geisteswissenschaten)이라는 용어는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의 『연역 논리학과 귀납 논리학의 체계』(전 6권)의 6권 제목인 “On the logic of Moral Science”를 요하네스 시엘(J. Schiel)이 “Von der Logic der Geisteswissenschaften”으로 번역하면서 유래하였다. 정신과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자연과학적 방법론이 인문학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밀의 의도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H.-G. Gadamer, 1972: 1)
15) 현대 분과학문 체제 아래서의 인문학에 대한 김영식의 비판은 주목할 만하다. 그에 따르면,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당시 학계에 만연한 스콜라학풍을 반대하면서 개방성과 역동성을 무기로 현대 인문학의 토대를 형성하였으나, 현재 분과학문 체제에서의 인문학은 지나치게 전문화되면서 큰 질문(big question)을 회피하고 세부적인 주제들에 대한 연구에만 몰입함으로써 새로운 스콜라주의(neo-scholasticism)에 갇혔다는 것이다(김영식, 2009: 170-171 참조).
16) 키케로의 다음의 언급은 고중세 인문학, 철학, 자유교양을 결속시켰던 인문 정신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목적에 봉사하는 모든 학문은 서로가 서로를 묶는 공통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고, 마치 혈연에 의해 연결된 것인 양 상호결속되어 있다(Cicero, Pro Archia poeta, Ch. 2, 안재원, 2015: 170에서 재인용).” 학문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움(humanitas)의 형성이라는 목적 아래 모든 학문을 묶어낼 수 있다(안재원, 2015: 170)는 그의 생각은 교양학이야말로 분과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이 방치한 고전 인문학의 기능을 떠맡아야 하는 책무를 환기시킨다고 볼 수 있다.
17) 칸트에 따르면 철학부는 두 가지 분과, 즉 역사적 인식의 분과와 순수한 이성인식의 분과이며 양 분과는 상호간에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역사적 인식의 분과에는 역사, 지리학, 문헌학 등의 경험적 지식이 속하고, 순수한 이성인식의 분과에는 수학, 형이상학, 철학 등이 속한다(칸트, 2012: 42 참조).
18) 후설은 학문의 위기를 언급하면서 그 위기의 핵심은 학문을 수행하는 학자의 망각, 즉 자신의 학문활동과 자신의 삶의 연관성에 대한 망각에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형식논리학과 선험논리학』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우리는 이론적 작업수행 속에 사태, 이론과 방법에 몰두하면서 자신의 작업이 지닌 내면성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고, 그 속에 살면서도 이 작업을 수행하는 삶 자체를 주제의 시선으로 다루지 못하는 이론가의 자기망각(Selbstvergessenheit)을 극복해야 한다(후설, 2019: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