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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General Edu > Volume 15(2); 2021 > Article
대학생의 성찰과 치유를 위한 문학교육방법 연구 -교양교과목 운영사례를 중심으로

초록

이 글은 수도권 소재 H대학의 문학 관련 교양교과목의 운영사례를 바탕으로, 문학이 대학생의 자아 성찰과 치유을 위해 어떤 기능을 발휘하는지 점검해 보기 위한 목적으로 씌어졌다. 특히 ‘준비글 쓰기’ 활동이 학생들의 지극히 사적이고 정서적인 경험을 어떻게 소환하고 그들이 갖고 있었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는지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문학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 읽기와 그것에 관한 쓰기 활동이다. ‘준비글 쓰기’는 작가나 작품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오직 작품 자체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지극히 주관적이고 사적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준비글 쓰기를 통해 학생들은 작중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공감하게 되고, 이를 통해 과거의 어떤 특정한 경험이나 상처를 소환해 스스로 성찰하고 그 과정에서 치유를 경험하게 되었다.
읽기와 쓰기 외에 과제에 대한 교수자의 적극적인 피드백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준비글에 대한 피드백을 들으면서 학생들은 작품을 읽으면서 작중인물에게 느꼈던 공감이 이제는 같은 분반 수강생들과의 ‘정서적 교감’으로 확대되는 경험을 하거나, 서로의 생각과 경험의 ‘차이’를 확인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런 경험을 몇 주에 걸쳐 진행하면서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경험만이 옳고 소중하다는 틀에서 벗어나 타인에 대해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가야 하는지 서서히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Abstract

This article was written for the purpose of examining the function of literature for both self-reflection and healing among university students, based on literature-related liberal arts courses at H University in the metropolitan area of Seoul. In particular, I focused on how the ‘Writing Prepared Article’ activity summons students’ extremely personal and emotional experiences, and showed how it can heal their wound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literature education is reading works, and then conducting writing activities about those works. The ‘Writing Prepared Article’ activity is a very subjective and private description of the students’ understanding of the work, without any background information about the artist or the work itself. Through the ‘Writing Prepared Article’ activity, students identified and sympathized with the characters of the pieces, summoning whatever specific experience or injuries they may have undergone in their past. After doing some reflecting, the students were then able to experience a degree of healing from this process.
In addition to reading and writing, I also confirmed that active feedback from the professors about the assignment was also very important. Listening to feedback regarding the criticism, the students were given the opportunity to experience the empathy they felt for the writer. Moreover, students were also able to expand into “emotional engagement” with their classmates, and to further examine the “differences” in their thoughts and experiences.
After several weeks of being involved in this activity, students slowly learned how to better relate to others based on a deeper understanding of their peers―one that took them out of the confining framework of their own thoughts, feelings and experiences.

Key Words

a liberal arts course; reading; writing; prepared article; empathy; reflection

1. 들어가며

대학생은 이제 막 성인의 단계에 진입한 상태로 교양과 전문 역량을 갖춰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 단계이다. 이 시기 대학생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진로를 모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대학 생활에 적응하여 새로운 인간관계를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합리적인 상황판단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2018년 한 연구(오혜령, 2018: 16)에 따르면, 대학생들이 대학생활에 잘 적응하는 경우는 23.7%에 불과하고 73.3%가 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고 한다.
즉 한국의 대학생은 과도한 입시경쟁과 그 속에서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 탓에 학생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어른’의 세계 앞에서 주저하고 있는 듯하다. 이들은 대학생이 되었음에도 아직도 부모로부터 분리되지 못한 채 ‘미성숙한 어른’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거나 계획하지 못하는 기형적 존재들이다. 학업을 마치고 취업과 결혼, 출산 등의 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성인’으로 진입했던 과거의 20대와는 달리, 요즘의 20대는 여전히 학업에 몰두해야 하는 시기이고,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시기다. 따라서 학업 수행과 취직 준비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 외에, 결혼이나 출산은 시도조차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성인기 이행의 지체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아네트는 ‘성인모색기’라는 새로운 발달 단계를 제안한 바 있다(Arnett, J, 2004: 27-29; 김은정, 2014: 86-87에서 재인용).1) 분명 청소년기와는 구분되는 성인이면서도 성인이라고 느끼지 못하고, ‘중간에 낀 느낌’으로 여전히 불안한 20대들이 스스로 N포 세대라고 자조하는 걸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불안’과 ‘자조’를 털어내고 타자와의 원만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대학은 교양교육의 목표와 역할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 2015년 인성교육진흥법을 마련한 것도 이와 같은 현실을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인성교육의 시작은 “학습자로 하여금 현재 자신의 모습과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도록 하는 데에서부터 출발”(정기철, 2001: 37)한다. 우리는 누구나 ‘나’의 참모습을 찾고 그 바탕 위에서 나의 위치를 정립해 가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서히 성장해 가는 것이다.
이 글은 수도권 소재 H대학의 문학 관련 교양교과목의 운영사례를 바탕으로, 문학이 대학생의 자아 성찰과 치유을 위해 어떤 기능을 발휘하는지 점검해 보기 위한 목적으로 씌어졌다. H대학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하여 수학하였고, 문학작품의 독서는 수능을 위해 읽었던 교과서와 참고서가 전부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들은 이과 혹은 공대 선택의 기준에 대해 졸업 후 취업이 보장될 거라는 기대 외에 여러 가지 답변을 하였는데, 그중 ‘언어 과목이 싫어서’라는 의견도 있었다. 언어 과목이 싫은 이유로는 작품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고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고 이미 정해져 있는 정답만을 외워야 하는 중고교의 주입식, 획일적인 교육방법을 지적했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문학작품 독서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었다. ‘수능 공부할 때 외에는 전혀 문학을 접해 본 적이 없’거나 ‘군대 말년 자기계발서나 베스트셀러를 읽은 게 전부’, 혹은 ‘간혹 드라마에 노출된 시집 정도를 읽어보았’다는 얘기가 과제의 서두를 장식하는 게 비일비재했다. 이렇게 문학작품에 관심이 없거나 제대로 접해 본 적이 없는 학생들이 매주 작품 읽기를 해야 하는 문학 교양 교과목을 선택하기까지 제법 큰 용기와 도전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들에게 작품을 읽게 하고, 작품과 관련된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쓰게 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찰과 치유를 경험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이 교과목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한국문학의 이해>는 H대학의 ‘핵심교양’ 과목으로, 3학점 3시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H대학의 핵심교양이란 ‘문학과 예술’, ‘역사와 철학’, ‘기업과 미디어’, ‘인간과 사회’, ‘자연과 생명’ 등 5개의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학생들은 각 카테고리 중 한 과목 이상씩은 반드시 수강해야 한다. ‘문학과 예술’에는 <한국문학의 이해> 외에 <서구문학의 이해>, <현대예술의 이해>, <현대영미문화와 언어> 등의 교과목이 있다. 핵심교양 교과목은 주로 2~4학년들이 수강하게 되어 있는데, <한국문학의 이해>의 경우 매학기 총 4개 분반이 개설되고 분반당 수강생은 50명이다.
<한국문학의 이해> 수업은 주차별로 제시된 텍스트 읽기→준비글 쓰기→강의→토의→수업글 쓰기 등으로 진행했다. ‘준비글’은 수업 준비를 위해 쓰는 글로, 학생들이 작품을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이나 과거의 경험, 느낌 등을 자유롭게 서술하는 것이다. 일종의 인상비평이나 감상문으로도 볼 수 있다. ‘토의’하기는 작품에서 함께 논의할 만한 몇 가지 주제를 잡아 조별로 토의를 진행하고 그 내용을 발표하는 것이다. ‘수업글 쓰기’는 수업 중에 행해지는 것으로 작품과 학습자들의 삶을 연계시킨 한두 가지 문제에 대해 학생들의 의견을 서술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주차별 수업 내용을 내면화하고 자신의 삶의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러나 코로나 19로 인해 2020년부터 수업은 비대면으로 운영되었고, 수업 방법 역시 약간의 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대면수업에서는 텍스트 읽기→준비글 쓰기, 수업글 쓰기2)→강의 순으로 진행하였다. 이중 이 글에서는 본 수업의 가장 중요한 활동인 ‘준비글 쓰기’에 대해서만 중점적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즉 이 글에서는 교양 문학 교과 시간에 행해지는 ‘준비글 쓰기’ 활동이 성찰과 치유의 도구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고자 한다. 특히 이번 논문은 2020년도 2학기 수업을 중심으로 분석할 예정인데, 수업은 모두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

2. 문학교육에서 읽기와 쓰기

문학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 읽기와 작품에 대한 감상 쓰기다. 특히 작품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갖지 않은 상태에서 학습자 자신의 지극히 주관적이고 독자적인 감상을 쓰는 ‘준비글’ 쓰기가 작품의 이해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또 준비글 쓰기가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내면에 있는 잠재된 기억과 상처를 치유하는 데 어떤 기능을 하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수업 전 학생들은 주차별 강의계획에 따라 미리 LMS에 올려놓은 텍스트를 읽어야 한다. ‘읽기’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텍스트 읽기를 선행하지 않으면 ‘쓰기’ 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뿐더러 강의를 이해할 수 없다. “글은 글쓴이라는 한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이상원, 2011: 118)라는 말처럼, 학생들은 작품을 통해 작가의 세계를 이해하고 교수자는 작품에 관해 쓴 학생들의 과제를 통해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문학텍스트를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고도의 복잡한 개인적 과정”이다. 문학 읽기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과거 경험, 최근의 관심사와 근심, 현재의 감정과 마음 상태 등을 텍스트 안으로 가지고 들어간다. 이런 개인적 요소들은 텍스트에 대한 일차적 반응과 선입견으로도 작용하지만, 학생들이 문학 텍스트의 ‘살아 있는’ 의미를 텍스트 바깥의 삶으로 가지고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연결고리’의 역할을 한다(Louise M.Rosenblatt, 1995: 75-77; 박진, 2020: 208에서 재인용).
다시 말해 학생들은 작품 자체에 대한 “공적 의견 표명과는 다른 개인적 느낌, 개인적 생각, 욕구에 더 귀를 기울인다. 진화된 독자에게 작품의 의미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그 대신 작품이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가 중요하고, 따라서 “텍스트가 내게 무슨 계시를 하는가가 텍스트의 주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앞선다.”(변학수, 2010: 112)
어차피 “문학 읽기는 작가의 경험과 독자의 경험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얽혀 들어가는 과정이다. 결국 어느 지점에 이르면 작가가 말한 것인지, 독자가 말한 것인지 그 경계가 해체되어 버리기까지 한다. 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통합하는 과정이 개입되기 때문이다.”(전미정, 2013: 140) 즉 텍스트 읽기를 통해 독자는 작가가 의도한 경험이나 스토리와는 별개로 자신의 경험을 소환하고 이를 재구성하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따라서 중고교 시절 수능을 위한 수업처럼 문학작품의 주제는 하나이고, 상징 역시 하나라는 식의 결정된 정답은 무의미할뿐더러, 우리 수업에서는 오히려 경계해야 할 독서 태도다.
  • 문학작품은 독자가 참여한 독자적 해석이 가능할 때 비로소 어떤 자기동일성을 띤 미학적 대상으로 탈바꿈한다. 문학작품은 완결된 자기동일성이나 미리 정해져 있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읽기와 해석을 기다리는 미결정성의 얼룩들이 핵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핵은 독자가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장소이고, 그 잠재력은 독서행위를 통해 구체적으로 현실화된다. 하지만 현실화 과정은 정해진 노선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독자에 따라,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양예빈, 2013: 18).

결국 “텍스트는 본질상 다의적 구조”(정재찬, 2014: 59)임을 독자인 학습자들이 인식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 엄격히 말해서 우리 수업시간에는 텍스트의 의미를 분석하거나 주제를 찾는 일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 대신 문학작품을 읽는 독자(이 경우는 문학치료에 참여한 사람들) 개개인에게 이끌어낸 지극히 사적이고 감정적인 반응과 경험을 중시한다. 독자가 작품의 내용과 무관한 시의 단 한 구절, 또는 단어에 반응하여도 상관이 없다.”(이봉희, 2014: 284)
이런 의미에서 학생들의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나 그를 통한 이해에 의미를 부여하는 본 학습방법은 ‘문학치료’적 행위로 볼 수 있다. 즉 학습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 감정을 이끌어내는 촉매로서의 문학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러나 문학치료는 “문학작품에 대한 강의를 하지 않으며 어떤 반응이든 존중해 주고 경청”(이봉희, 2014: 285)하는 데 비해, 우리 수업은 문학작품에 대한 학습자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존중해 주고 그에 대한 적극적인 피드백을 행하지만, 문학작품 자체에 대한 강의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 교수자와 학습자가 치료사와 내담자로 역할을 나누지 않았고, 몇몇 그룹이나 개인의 ‘치료’ 행위가 아니라 전체 수강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기 때문에 이 수업을 ‘문학치료’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한국문학의 이해> 수업 텍스트는 이야기, 즉 ‘단편’소설로 한정하였다. 단편소설은 일반적으로 별것아닌 사소한 것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그것이 뿌리내리고 있는 복잡한 인생을 송두리째 엿볼 수 있게”(Roland.B & Réal.O, 1996: 43) 해주기 때문이다. 또 이야기는 “우리 마음을 작동하는 기본 원리로 작용하고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민용, 2014: 61)이기도 하다. 문학작품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매주 한 편씩 ‘스토리’를 읽히기 위해서는 장편소설에 비해 구성이 복잡하지도 않고 등장인물 또한 많지 않아 학생들의 쉽게 읽을 수 있는 ‘단편’ 소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대상작품은 5주차 텍스트였던 김언수의 <잽>(2011)이다. 이 작품을 선정한 이유는 다른 작품에 비해 비교적 분량이 짧다는 점과 학습자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상태라 그 시절의 스토리에 공감하기 쉽다는 점, 마지막으로 해피앤딩인 점 등을 고려하였다.
<잽>은 2011년 “문학사상” 6월호에 <권투>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단편소설이다. 작가는 2013년 문학동네에서 창작집을 출간할 때 이 작품의 제목을 <잽>으로 바꾼 후, 표제작으로 내세웠다. 고등학교 1학년인 ‘최재구’라는 인물이 서른이 될 때까지의 스토리를, ‘권투’라는 매개를 통해 형상화한 성장소설이다.
최재구는 “야망도 없고, 마땅히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잽도 못 날리고, 홀딩은 더더욱 못하는 인간”(김언수, 2013: 27)이다. 주인공이 다니는 학교는 매일 아침 등교 시간에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동상 앞에 서서 몇 초간 눈을 감고 자신의 야망에 대해 묵상해야 한다는 교칙이 있다. 야망 따위는 전혀 없는 주인공에게 학교는 어쩔 수 없이 다녀야 하는 의무적인 공간일 뿐이다. 야망과 직업을 동일시하는 친구들과 학생 개인의 사소한 감상 따위는 용납하지 않는 교사, 체벌과 불합리한 규율 속에서 최재구는 하루하루 그저 버텨내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중 수업시간에 창밖의 회오리바람에 감탄했다는 이유로 최재구는 윤리선생과 갈등을 겪게 되고, 졸업할 때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테니스장을 청소해야 하는 벌을 받게 된다. 그는 하굣길 권투 도장에 등록하여 관장으로부터 권투는 물론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결말 부분, 서른 살이 된 주인공은 15톤짜리 대형 활어트럭 운전수가 되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과거 윤리선생 부부와 조우한다. 이제 그는 “늘 화가 나 있”던 ‘어린’ 시절을 통과해 ‘잽’과 ‘홀딩’ 사이의 균형을 맞추며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으로 성장해 있었다.
학생들은 우선 텍스트 읽기부터 과제를 시작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김언수라는 작가의 이름도 처음 들었으며 당연히 작가의 작품 역시 읽어본 적이 없다. 사실 작가나 작품에 대한 정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읽기 전 굳이 검색하지 말라고 미리 부탁해 두었다.
학생들은 이 소설을 통해 ‘성장’의 개념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볼 기회를 갖고, 성장소설의 의미와 그 효용에 대해 학습하게 된다. 그들 대부분이 이제 막 성인의 문턱을 넘어선 사람들, 아니 ‘성인모색기’에 놓인 사람들이다. 사실상 성장에 ‘완성’이란 없기 때문에 그들의 ‘성장’은 어쩌면 아직도 진행중일지 모른다. 학생들은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이런저런 일화와 갈등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독서를 하고 독서를 통해 다시 ‘성장’하게 된다. 교수자는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을 환기하고, 이를 텍스트 내 인물의 삶과 오버랩시키면서 스스로 ‘성찰’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잽>의 주인공 최재구는 “늘 화가 나 있”(김언수, 2013: 24)는, 고등학교 1학년생(17세)이다. 그는 윤리선생과의 갈등을 겪으면서도 반성문 쓰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옳다는 것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살아야 타인과 부딪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상처받지 않고 살 수 있는지 아직 알지 못하는 상태다. 이때 인생의 멘토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권투 도장의 관장이다. 40대 후반인 그는 역시 고집스러운 인상에 무뚝뚝한 사람이지만, ‘세상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키고 싶’어하던 주인공이 무사히 그 위기를 넘기고 성인이 될 수 있도록 지혜로운 안내자 역할을 한다. 이때 도구로 활용된 것이 권투의 기술들이다. 관장은 ‘잽’, ‘홀딩’, ‘풋워크’ 등 권투 용어를 동원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 주인공에게 설명해 준다.
  • 링이건 세상이건 안전한 공간은 단 한군데도 없지. 그래서 잽이 중요한 거야. 툭툭, 잽을 날려 네가 밀어낸 공간만큼만 안전해지는 거지. 거기가 싸움의 시작이야.

  • 정작 투지는 아주 차갑고 조용한 거지.

  • 싸움은 그렇게 잔인한 거야. 어때? 끝없이 잽을 날리는 인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 홀딩이라는 좋은 기술도 있지. 좋든 싫든 무작정 상대를 끌어안는 거야. 끌어안으면 아무리 미워도 못 때리니까. 너도 못 때리고 그놈도 못 때리고 아무도 못 때리지(김언수, 2013: 25-26).

작품 말미, 서른 살의 최재구는 15톤 대형 활어트럭 운전수로 살아가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활어라는 것이 속도와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시간을 잘 맞춰야 하고 코너를 돌 때도 신경써야 하는데, 이는 청소년기 ‘잽’과 ‘홀딩’ 사이에서 방황하던 주인공이 이제는 그 둘의 균형을 매우 잘 맞추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인생은 누구나 그렇게 ‘잽’과 ‘홀딩’ 사이, 공격과 방어 사이, 거부와 포용 사이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맞춰가며 사는 것이 아닌가. 자신과 타인 사이, 자신과 세상 사이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어른’의 삶이기 때문이다. 결국 주인공은 부모의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자신이 속한 사회의 질서와 문화 속에 편입되어 그 안에서 자신의 설자리를 찾”(김자영, 2003: 228)은 것으로 보인다. 이때야말로 사회는 그 사람을 한 ‘어른’으로서 자신의 질서 속에 받아들이게 된다.

3. 준비글, 텍스트에 대한 사적인 감상 쓰기

<한국문학의 이해> 수업에서 매주 읽어야 하는 텍스트는 답이 정해져 있는 분석의 대상이 아니다. 텍스트의 주제와 그 주제를 구현하기 위한 서사의 흐름, 갈등 등은 분명히 살펴볼 테지만 그것이 단 하나의 ‘정답’만을 향해 가지는 않는다. 학생들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 따라 나름의 해석을 할 수 있다. 비록 20년 안팎의 삶이라 하더라도 학생들은 저마다 과거의 경험이 ‘다를’ 수밖에 없고, 현재의 상황 역시 모두 다 ‘다르다’. 따라서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 따라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제멋대로 작품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작품에 대한 철저히 주관적이고 지극히 사적인 감상 쓰기가 바로 ‘준비글’ 쓰기다.
준비글은 작가나 작품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오직 작품 자체만 읽고 그에 대한 자신만의 이해를 지극히 주관적으로, 지극히 사적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주관적 비평의 기조가 되는 가정은 각 개인의 가장 절실한 동기란 자신을 이해하는 것”(Raman.S, 1987: 186)이기 때문이다. 준비글 쓰기 과제는 소설을 읽고 난 후 혹은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이나 느낌, 소설의 스토리나 어떤 장면으로 인해 촉발된 과거의 기억이나 경험, 감정 등을 자유롭게 기록한다. 그때의 상황을 복원하고, 그때 느꼈던 감정들, 예컨대 슬픔이나 불쾌함, 분노, 동정, 기쁨이나 아름다움, 고독, 우울감 등을 그대로 써내려간다. 그러다보면 작품 내용과 멀어져 전혀 엉뚱한 곳을 배회할 수도 있다. 그것도 무방하다. 작품의 주제나 스토리와는 상관없이 읽으면서 갑자기 든 생각들, 즉 ‘샛길’로 빠져도 상관없고, 오히려 ‘샛길’로 빠져 한참 동안 그 길을 산책하라고 권장한다. 따라서 학생들은 과제를 위해 작품과 관련된 자료를 찾지 않아도 되고, 인터넷을 검색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독자인 학습자들은 “자기 느낌과 경험의 주파수에 맞는 대로”(변학수, 2010: 112) 작품을 읽은 후 ‘그 느낌과 경험’을 그대로 준비글에 썼다. 대상작품인 <잽>에 대한 준비글은 수강생 50명 전원이 제출하였고, 그 중 62%인 31명이 스토리를 촉매로 하여 무의식중에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였다. 특히 58%인 18명은 고등학교 시절을 소환하였다. 작중인물이 고등학교 재학 중에 겪었던 사건이 스토리의 주요 갈등이었던 만큼 학생들 역시 고교 시절의 경험을 서술했던 것이다. 또 대학 고학년의 경우 직전 학년의 경험이나 군복무 시절 경험을 서술하기도 했다. 이밖에 재수시절의 경험 혹은 중학교 시절이나 그 이전의 과거를 호명한 학생들도 더러 있었다.
  • ① 작품을 읽고 나서 주인공이 말한 학창시절의 이야기가 나의 학창시절과 닮은 점이 꽤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안의 학교가 나의 모교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꼈는데, 나의 모교에는 건물 앞에 학교 재단 설립자의 흉상이 있었고, 테니스장도 있었다. 이 때문인지 작품을 읽을 때, 마치 내가 우리 학교 테니스장을 청소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 ② 고등학교 시절 나도 한때 복싱을 배우고 아마추어 대회까지 나가보았다. 관장님에게 나도 주인공과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 “관장님 저는 왜 기술도 안 알려주시고 샌드백도 못 치게 해요?” 관장님이 말씀하시길 인생 살면서 모든 것은 기초를 잘 쌓아야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 소설을 보면서 예전에 나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③ 난 수업이 없는 주말에 조용한 학교 교실에 가서 앉아 있던 적이 많다. 가면 교실 밖 창문으로 운동장에서 공차는 소리와 가끔씩 들리는 복도에 사람 지나가는 소리, 저 멀리 교실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등등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주인공이 계속 테니스장을 청소하기 위해 학교에 가고, 사람들이 갈 때까지 교실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리는 모습에서 혹시 나와 비슷한 이유에서일까 싶어 동질감을 느꼈다.

  • ④ 이 소설을 읽고 나는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이 많이 떠올랐다. 그때는 체벌이 있었던 때라 이에 대한 강한 반항심이 있었다. 주인공처럼 나는 그런 것이 늘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어 반감이 들곤 했었다.

  • ⑤ 나도 어렸을 때 소설 속 ‘나’처럼 야망도 없고 꿈도 없었다.

  • ⑥ 주인공이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음을 인정받으려고 끝까지 버티는 모습이 나와 겹쳐서 보였다. 나는 중학생 시절에 체스를 광적으로 플레이했다. (중략)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냥 접게 되었다. 주인공 역시 윤리 선생님에게 결국 홀딩을 날려 인정받은 후 권투를 접게 된다. 나는 바로 이 부분에서 주인공과 과거 나의 모습이 겹쳐서 보여 신기했다.

  • ⑦ “매일매일 누군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있는 것 같은데 막상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주먹을 내밀지 않고 있는 고요한 세상이어서 도대체 어디다 잽을 날려야 할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제일 감명깊었다. 얼마 전 군대에 있을 때 나 역시 이러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 ⑧ 작품을 읽고 굉장히 친근감을 느꼈다. 진짜 학생 때 누구나 해봤을 법한 불만들과 반항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 ⑨ 돌이켜보면 나도 고등학교 시절에는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세상이 멸망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 ⑩ 주인공과 나를 비교해 봄으로써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학생들은 작품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작중인물의 삶에 자신의 삶을 투영시켰고, 이를 준비글을 통해 표현하였다. 즉 학생들은 준비글을 통해 작중인물의 말이나 행동에서 과거 자신의 경험을 환기하고 거기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록 작중인물과 동일한 경험은 아닐지언정 그 경험이 환기하는 유사한 경험을 자신의 과거 속에서 찾아내고 그 기억 속 경험을 작중인물의 것과 교차시키며 공감하고 있었다. “문학교육이든 문학치료이든 소통을 위해 무엇보다도 가장 기본적으로 강조해야 할 것이 이른바 공감(empathy)의 능력과 태도”(정재찬, 2009: 84)라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준비글은 학생들의 ‘공감’ 능력을 확인하고 이를 견인해 낼 수 있는 적절한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학생들은 작품 읽기를 통해 자신도 몰랐던 어떤 시공간에 대한 기억을 불현듯이 떠올렸고, 이를 준비글 쓰기를 통해 객관적으로 표현하며 작품의 스토리는 물론 자신의 과거사까지 새롭게 들여다보고 이해하게 되었다. 어떤 식으로든 학생들이 느낀 것을 ‘표현’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즉 “일어났던 사건을 언어로 바꾸는 것은 면역체계뿐 아니라 두뇌에도 영향을 준다. 절망과 분노를 일으킨 사건에 대해 털어놓는 것, 특히 말을 하는 것보다 글을 쓰는 것은 감정적이고 고통스런 사건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이봉희, 2014: 289-290) 학생들은 작품을 읽고 느끼고 기억난 것을 쓰는 활동을 함으로써 타인을 ‘공감’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단계에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가족 안에서 받은 차별과 무시, 학창시절에 겪은 학교 폭력과 따돌림, 교사와의 갈등, 인간관계의 부재 혹은 불통, 실연, 끝없는 열등감, 자괴감, 취업에 대한 불안 등 각자 나름대로의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상처를 준 사람이나 상황을 용서하지 못해 괴로워하거나 애써 무시하고 외면 혹은 은폐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소설을 읽으며 어느 순간 다시 명료해지고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사건에 개입하여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상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표현의 과정을 통해 새롭게 인식되고 이해되는 것이다. 기억 속에 묻어 두었던 것들, 알고 있다고 여겼던 것들, 혹은 무의식 속에 가두어 두었던 것들을 새롭게 드러내게 될 때 비로소 치유와 성장의 물꼬가 트기 시작하는 것”(정재찬, 2014: 55)이다. 작품 읽기를 통해 스토리를 파악하고, 읽으면서 생각하거나 느낀 준비글을 쓰면서 작품의 내용을 좀더 깊이 이해하게 될 뿐 아니라 자신의 과거 경험을 반추하고 이를 객관화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병행하게 되었다. 학생들은 작중인물의 생각이나 행동이 발단이 되어 자신의 과거 기억을 소환하고, 작중인물과 자신의 동일시를 통해 공감을 이끌어낸다. 또 그것을 ‘글’로 표현함으로써 과거의 ‘나’와 그 시공간 속의 ‘나의 행동’을 성찰하고, 상처를 극복하며 ‘성장’하게 된다. 문학은 “읽기와 쓰기, 말하기 등 다양한 언어활동과 결부되면서 치유적 기능을 수행”(김미혜, 2013: 58)하기 때문이다.
작품으로부터 유발된 정서적 감흥이 학습자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다짐하게 하는 긍정적 효과를 견인해 낸다. 작품 속 사건이나 갈등을 대리경험하며 독자는 자신의 과거 경험과 이를 통합하여 받아들이고, 이는 독자로 하여금 공감과 성찰을 가능하게 하여 결국 자신의 삶의 의미있는 변화를 다짐하게 된다.
  • 나는 내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아마도 홀딩을 하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중략) 지금 이 글을 읽어보니 어찌 보면 더 깊은 상처를 받기 전에 나를 보호하는 한 가지 방법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한 기준에 맞추어 대학에 왔고 졸업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글을 읽는 모든 순간에 내 자신이 창피했다.

  • ② 나도 주인공처럼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잽을 날리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홀딩을 하여 꾸준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결국에는 인정을 받아내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 ③ 잽을 날리고 피하는 것도 권투에서 또 삶에서 중요하지만, 그만큼 상대방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 ④ 나는 삶에서 잽보다는 가드를 했던 것 같다. (중략) 나의 생각은 조금 달라졌다. 나는 권력이나 힘을 가진 존재에게 신념이나 뜻을 지키기 위해서 싸워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극중 주인공이 샌드백을 치는 부분에서 나는 신념을 잃지 않고 어떤 존재와 싸우는 법을 배웠다. 건강한 신념을 가지는 것이 인생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 ⑤ 현재 나는 4학년 2학기 재학중이다. 이때까지 나의 대학 생활 속에서 잽은 무엇일까. 내가 처한 상황에서의 잽은 취업 준비인 것 같다. 학점, 어학성적, 대외활동, 실무경험 등 내가 준비한 것만큼 취업 시장에서 내가 안전해질 수 있다. 잽이 중요하다. 수많은 실패와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잽을 날리고 마지막 순간에 홀딩으로 판정승을 취업 시장에서 거두고 싶다.

  • ⑥ 그동안 살아온 삶에서 나는 잽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가? (중략) 나 역시도 평정심을 가지고 잽을 날린다는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⑦ 나도 꿈을 꾸기만 하고 부정만 하고 내지르기만 했지 어쩌면 현실적인 생각은 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나에게 이 소설은 나의 아집을 부수며 들어와 앞을 보게 해주었다. 나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여태 내 무기가 잽밖에 없었지만 이젠 홀딩을 배웠다. 일단은 앞으로, 잽! 홀딩! 잽! 잽! 홀딩!

  • ⑧ 학창시절 내내 나랑 담임선생님은 유난히 사이가 좋지 않았다. 졸업 후 학교에 한번도 찾아가지 않은 것도 그 선생님 때문일 거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니 그때 그분이 나에게 했던 잔소리와 훈육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모르고 나 혼자 계속 잽을 날렸던 건가. 우연히라도 그분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홀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⑨ 나는 지금 대학교 3학년인데, 어쩌면 세상을 향해서 조금씩 잽을 날려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번에 감정적으로 내질러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아주 천천히 지금의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가고 있다. 결국 이 잽이 모이고 모여서 세상을 녹다운시킬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학생들은 준비글을 통해 동일시(공감)→성찰→성장의 단계를 보여주었다. “~하고 싶다.”, “~을 느꼈다.”, “~할 것이다.” 등등의 서술어를 사용하며 앞으로의 삶의 태도 변화를 다짐한 학생들은 전체 수강생 50명 중 36명으로, 72%였다. 작품을 통해 새로운 삶의 가치나 방향성을 학습하고 이를 자신의 삶에 투영시켜 보겠다는 다짐은 상당히 유의미한 결과다. 성찰은 “사람의 마음내용을 충실하게 하고, 마음작용을 올바르게 하는 기제이다. 성찰적 읽기는 읽기 주체가 텍스트를 읽고 구성한 마음을 반성적으로 살피는 것”(김도남, 2007: 242)이다. 특히 문학은 “인간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을 아우르는 총체를 반영⋅형상화하여 도덕적 보편성과 가치의 문제를 다루어 왔다는 점에서 성찰적 글쓰기의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고명신, 2017: 249)
또 읽기만 했을 때는 그저 스쳐지나가던 단상들이 준비글을 쓰는 순간에 훨씬 명확해지는 것들이 있다. 또 쓰면서 튀어나오는 무의식 속의 어떤 것들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소설 읽기를 통한 글쓰기 과정의 치유적 효과의 발휘는 이야기와 인물에 몰입하면서 자신의 마음 속 깊은 내면과 표출하지 못한 억압된 감정, 상처받은 기억을 떠올리는 데서 시작하며 인물의 정서와 감정을 이해하면서 자신을 이해하게 되고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김형원, 2015: 19) 할 것이다.
문학작품에 대한 읽기와 쓰기 활동이 끝나면 교수자의 피드백과 강의가 이어진다. 학생들의 준비글에 대한 교수자의 피드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첫째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준비글의 전체적인 개괄과 함께 중요한 부분을 직접 소개하는 것, 두 번째는 LMS 과제 ‘평가의견’란에 교수자의 의견을 남기는 것이다.
우선 강의시간에 행해지는 피드백은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부터 시작해서 공통적으로 언급한 것들을 먼저 이야기한다. 독자에 따라 작품이 재밌거나 지루했다, 등장인물의 가치관이나 행동을 모방의 대상이 될 정도로 선망했다거나 전혀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한 것을 그대로 읽어준다. 이후 어떤 것을 어떻게 느끼고,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때로는 직접인용으로 때로는 풀어서 읽어주었다.
그것을 들은 학생들은 “내가 쓴 글을 읽어주셨을 때 마치 라디오에 내 사연이 채택된 것마냥 기분좋았다.”, “사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내 개인적인 경험이고 상처였는데 그걸 누군가가 알아주고 위로해 준 느낌이 들어 좋았다.”, “다른 학생이 쓴 글인데 마치 내가 쓴 것처럼 거의 비슷해서 놀랐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들으며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구나 신기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즉 준비글에 대한 피드백을 들으면서 학생들은 작품을 읽으면서 작중인물에게 느꼈던 공감이 이제는 같은 분반 수강생들과의 정서적 교감으로 확대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또 서로의 생각과 경험의 ‘차이’를 확인하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 이런 경험을 몇 주에 걸쳐 진행하면서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경험만이 옳고 소중하다는 틀에서 벗어나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나가야 하는지 서서히 학습하게 될 것이다.
이 수업은 앞서 말했다시피 국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교과목이 아니라 타과 전공학생들이 선택한 일반교양과목이다. 대부분 공대생인 이들이 문학 관련 교과목을 선택한 이유는 잠시나마 영어와 숫자, 컴퓨터에서 벗어나 ‘문학’에서 위로와 휴식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차별로 선정한 문학작품의 이론적 강의는 학생들에게 큰 의미가 없을뿐더러 애초에 설정한 학습목표도 아니다. 이 교과목의 학습목표는 문학작품을 통해 간접경험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다.
두 번째 과제 피드백은 LMS 과제란에 교수자의 평가의견을 남기는 것이다. 평가의견은 과제를 제출한 학생들 전원에게 매주 150자 안팎의 멘트를 남겼다. 기본적인 틀은 학생들이 쓴 내용이 무엇이든 모두 수용한다는 것이다. 몇몇 학생은 강의소감에 피드백이 가장 좋았다고 쓰면서 “이 과제는 재미없는 소설을 재미없다고 솔직하게 쓸 수 있어 좋았다”, “사실 열심히 쓴 것도 있고 시간에 쫓겨 성의없이 쓴 것도 있었는데 전부 포용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기도 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확히 표현할 줄 아는 학생에게는 문장력을, 아직도 가족 혹은 세상과 불화하며 상처를 지니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이해와 용서를 통해 오히려 ‘나’ 스스로가 그 기억에서부터 벗어나자는 글을, 취업을 준비하느라 고민이 많은 취준생에게는 무조건적인 응원과 격려를 담아 썼다. 사실 매주 50개의 과제를 읽고 일일이 평가의견을 남긴다는 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것이었으나, 그만큼 학생들에게는 꽤나 의미있는 피드백이었기에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 결과 학생들은 종강하는 날 실시한 강의소감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생들의 생각을 교수님을 통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뭔가 계속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 책 읽기는 지루하다고 생각해서 멀리했는데, 단편소설은 단시간에 집중해서 읽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앞으로 꾸준히 단편소설은 찾아 읽어 볼 것 같다”,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에 공감도 하고 비판도 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간접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준비글 쓰기라는 과제 방식이 좋았다”, “짧은 단편을 읽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 좋았다”, “모든 과제에 대한 교수님의 꼼꼼한 피드백, 매주 한 편씩 소설을 읽고 생각을 정리해 냈다는 점에서 오는 내 지식에 대한 고양감” 등의 수업 운영 방식에 대한 의견들이 많았다.
그런가 하면, “수학, 컴퓨터만 하는 전공 강의들 속에서 유일하게 리프레쉬되고 힐링되는 수업이었다”, “이번 수업 들으면서 가장 많이 나에 대해 생각해 보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분명 수업인데 수업이 아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수업이었다”, “짧은 소설 한 편만으로도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 좋았다”, “삶의 목표를 새롭게 정하게 해준 수업이었다”, “이 수업이 이번 학기 전체 일정에 있어 가장 좋은 휴식포인트였다” 등의 멘트도 있었다.
학생들의 소감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단어들은 ‘읽기’, ‘쓰기’, ‘소통’, ‘돌아봄’, ‘공감’, ‘힐링’, ‘휴식’ 등이었다. 학생들은 문학작품을 읽고, 작품을 촉매로 자신의 과거 경험이나 기억을 반추하고 이를 ‘글’로 표현함으로써 뭔가 해소되고 치유받은 듯한 느낌을 가진 것이다. 이렇게 문학 작품을 천천히 읽고, 읽으면서 느끼거나 생각난 지극히 사적인 기억들을 꼼꼼히 표현하고, 그것에 대한 응원과 격려를 받는 것, 이것이 <한국문학의 이해> 수강생들이 한학기 내내 경험한 것들이다.

4. 교양 문학교과목의 운영 방향

문학은 가치있는 체험의 세계다. 문학을 통해 사람은 자신의 독자성을 추구하고 남의 독자성을 용납할 수 있으며, 상대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고, 남을 사랑할 수 있게 되며, 독립성과 책임을 지님과 동시에 남에게 그런 가치를 고무하게 되고, 자유를 추구하고, 편견과 간섭 그리고 강요를 피할 수 있게 된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김대행, 2006: 116). 이 글은 학생들이 문학을 매개로 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상처를 치유하여 타자와 바람직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도록 대학의 문학 관련 교양교과목 수업 운영사례를 제시해 보았다.
문학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 읽기와 그것에 관한 쓰기 활동이다. 이 글에서 강조한 ‘준비글 쓰기’는 작가나 작품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오직 작품 자체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지극히 주관적이고 사적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소설을 읽고 난 후 혹은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이나 느낌, 과거의 기억이나 경험 등을 자유롭게 표현함으로써 학생들은 특별한 정서적 체험을 하게 된다. 작중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공감하게 되고, 이를 통해 과거의 어떤 특정한 경험이나 상처를 소환해 스스로 성찰하고 그 과정에서 치유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읽기와 쓰기 외에 과제에 대한 교수자의 적극적인 피드백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준비글에 대한 피드백을 들으면서 학생들은 작품을 읽으면서 작중인물에게 느꼈던 공감이 이제는 같은 분반 수강생들과의 ‘정서적 교감’으로 확대되는 경험을 하거나, 서로의 생각과 경험의 ‘차이’를 확인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런 경험을 몇 주에 걸쳐 진행하면서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경험만이 옳고 소중하다는 틀에서 벗어나 타인에 대해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가야 하는지 서서히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에서 ‘문학’은 “인문 인성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교과목”(이병순⋅장미영, 2020: 294)이다. 교양 수업으로 진행되는 대학의 문학 교과목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수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PBL이나 플립드 러닝 등 다양한 교수학습방법을 수업에 적용하며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검증해 봐야 한다. 또한 지금처럼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학생들과의 소통에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게다가 과제에 대한 교수자의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피드백이 학생들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도 유념해야겠다.

Notes

1) 이 글에서 아네트는 ‘성인모색기’란 청소년기 이후 성인기로 진입하기 이전에 존재하는 중간 단계이며, ‘자아정체성 탐색의 시기,’(the age of identity exploration) ‘불안정한 시기,’(the age of instability) ‘자기중심성의 시기,’(the most self-focused age of life) ‘중간에 낀 느낌이 드는 시기,’(the age of feeling in-between) 그리고 ‘가능성의 시기,’(the age of possibilities) 등의 다섯 가지 특징을 지닌다고 언급하였다.

2) 비대면수업 시 ‘준비글’과 함께 제출해야 하는 ‘수업글’은 작품을 제대로 읽었는지를 묻는 3-4가지 문제로 구성했다. 즉 등장인물의 성격과 주요 용어의 의미, 핵심문장에 대해 자신의 해석과 비평을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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