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교육의 서구적 전통과 변용 -12세기 <철학의 여왕과 리버럴아츠 7과목> 도상을 중심으로

Western Tradition in Liberal Education and Its Transformation -Focus on the 12th Century Iconography in The Queen Philosophy and Seven Liberal Arts

Article information

Korean J General Edu. 2020;14(2):11-22
Publication date (electronic) : 2020 April 15
doi : https://doi.org/10.46392/kjks.2020.14.2.11
Professor, Da Vinci College of General Education, Chung-Ang University
한수영
중앙대학교 다빈치교양대학 교수
Received 2020 March 20; Revised 2020 March 22; Accepted 2020 April 14.

Abstract

초록

이 논문은 12세기에 란스베르그의 헤라드가 제작한 도상 <철학의 여왕과 리버럴아츠 7과목>을 대상으로 리버럴아츠 7과목을 의인화하는 전통이 어떻게 계승되고 변용되었는지를 고찰했다. 카펠라는 3학과 4과를 의인화하여 두 영역이 천상에서 결혼을 하는 알레고리를 제시하여, ‘지식의 통합을 통한 인간 고양’에 대한 하나의 원형을 제시했다.

헤라드는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며 신성이라는 종교적 가치와 연결한다. 7명의 여성으로 의인화된 리버럴아츠 7과목은 철학의 여왕을 중심으로 둘러서 있는데, 7과목을 완전한 원형 구조 안에 배치함으로써 지식의 통합성을 강조하고 있다. 12세기 수도원에서 지식은 신이 만든 세계를 이해하고, 신성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도구였다. 지식과 지식이 연결된 통합된 지식을 도구 삼아,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형이상학을 <철학의 여왕과 리버럴아츠 7과목> 도상은 회화적으로 명징하고도 조직적으로 가시화하고 있다.

이 도상은 리버럴아츠 전통의 핵심에 지식의 전체성을 강조하는 정신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통일되고 통합된 지식체계는 인간 정신을 고양시키는 견고한 토대가 된다. 세계를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는 통합적 지식을 토대로 특정 시대에 필요한 가치를 탐구하는 것이 인문교양교육의 서구적 전통과 변용의 원리라 할 수 있다.

Trans Abstract

Abstract

This study observed how the tradition of personification of the seven liberal arts succeeded and transformed by examining the iconography in The Queen Philosophy and Seven Liberal Arts created by Herrad of Landsberg in the 12th century. In his allegory, The Celestial Marriage of Mercury and Philology, Martianus Capella introduced the prototype of the “union of human knowledge” by presenting the personification of the seven disciplines.

Herrad inherited this tradition and tied it to the religious value of Divine Wisdom. By arranging seven women, the personifications of the seven disciplines, in a complete circular structure, the iconography emphasizes the integration of knowledge. In a 12th century abbey, knowledge was a tool to understand the world created by God and to more easily approach the Lord. The Queen Philosophy and Seven Liberal Arts pictorially and clearly displays the metaphysics of attaining salvation by linking the different areas of knowledge together.

The present iconography shows that there has been a spiritual aspect in the tradition of the liberal arts that has emphasized a “unified and integrated human knowledge,” becoming a solid foundation for enriching human beings. Using knowledge in order to better understand the world in a more balanced manner, the Western tradition in liberal education has explored the values needed in a particular era.

1. 서론

1.1 ‘리버럴아츠 7과목’의 회화적 재현의 전통

좋은 배우자를 찾던 머큐리(Mercury)는 아폴로의 조언을 듣고 높은 학식을 갖춘 숙녀인 필로로기(Philology)를 만나게 된다. 필로로기는 숙고 끝에 결혼식 장소인 천상으로 올라간다. 은하수가 펼쳐진 천상의 식장에서 결혼식이 거행되고, 신과 반인반신, 철학자들이 대거 참석한다. 여기에서 신부 들러리인 7명의 학식이 있고 개성이 넘치는 여성들이 차례차례 등장하여, 하객들에게 각자의 이야기를 피력하게 된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5세기 마르티아누스 카펠라의 작품인 ≪필로로기와 머큐리의 결혼(De nuptiis Philologiae et Mercurii)≫의 주요 내용이다(이하, ≪결혼≫).1), 여기서 신부의 들러리(bridesmaid)로 등장한 7명의 여성들은 ‘리버럴아츠 7과목’을 우의적(allegorical)으로 표현한 인물들이다.2)

서구 인문교양교육의 전통과 내용을 논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주제가 ‘7 자유교과(septem artes liberales)’이다(손승남, 2011: 95-139). 리버럴아츠 과목들은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나 이소크라테스에서부터 구성되었으며, 로마의 학자인 바로(Varro)에 의해 지식을 분류하는 체계로 제시되기 시작했다. 3,) 5세기 카펠라(Capella)의 저작에는 7과목 체계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6세기 보에티우스(Boethius)는 쿼드리비움을 정립하여, 그리스 로마의 교육적 전통을 유럽 전역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4)

세 가지의 방법, 또는 세 개의 길이 만나는 곳이라는 어원을 가진 3학(The Trivium)은 문자와 언어에 대한 것으로 문법, 수사학, 논리학(혹은 변증법)을 가리킨다. 3학을 바탕으로 한 후속 교육단계라 할 수 있는, 네 개의 길이 만나는 곳을 의미하는 4과(The Quadrivium)는 숫자와 그것의 응용에 관한 것으로 산술, 천문학. 기하학, 음악(또는 Harmony)을 가리킨다. 4과가 인간의 지식에 관한 것이라면, 지식의 표현에 대한 영역이 3학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바탕이 되는 언어에 대한 기술을 숙달한 후, 숫자를 통해서 심오한 세계의 본질에 다가가게 하는 커리큘럼 체계였다.

카펠라는 이 고대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을 신랑 머큐리와 신부 필로로기로 알레고리화 한다.5), 머큐리로 상징되는 ‘능란한 말하기(eloquence)’와 필로로기로 상징되는 ‘학습(learning)’이 결합하는 알레고리는 3학과 4과의 통합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간주되어 왔다(Stahl, 1971: 24). 그런데 천상과 지상이 결합하는 결혼식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머큐리나 필로로기가 아니라, 3권부터 9권까지의 주인공인 리버럴아츠 과목들이다. 결혼식은 인간지식체계인 7과목을 천상에 등장시키기 위한 일종의 배경 무대의 역할을 한다. 카펠라는 두 영역의 결합을 통하여 인간 지성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를 펼쳐 보이는 환상의 향연을 벌인 것이라 할 수 있다.6,) 현학적이고 장황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당대 지식체계를 우화적으로 표현한 이 책은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으며, 중세 전시기를 걸쳐서 교육현장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이기도 했다.7)

이 책에서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만물을 의인화하는 그리스예술의 전통을 인간의 지식체계에 적용했다는 점이다. 각각의 과목을 개성 있는 여성 캐릭터로 의인화한 카펠라의 알레고리는 7과목을 회화적으로 재현하는 전통의 원천이 되었다(Stahl, 1971: 245). ≪결혼≫에서 묘사된 7과목의 여성 캐릭터들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걸쳐서, 그림뿐만이 아니라 무덤의 부장품, 모자이크, 성찬의례에서 쓰는 그릇 등에서도 나타난다. 성당 입구의 벽면 장식인 팀파눔이나, 스테인드글라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중세와 르네상스에 리버럴아츠과목이나 여타의 과학 지식을 알레고리로 재현하는 것은 하나의 개별 장르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Stahl, 1971: 247).

그런데 12세기에 이르면, 회화적 재현의 방식에서 획기적인 성취가 나타난다. 7개의 과목의 특징이 더욱 뚜렷하게 표현되며 리버럴아츠 7과목은 포괄성과 명료성을 갖춘 종합적인 철학의 체계로 확장된다. 전 시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의미심장한 도약이 이루어진 것인데, 이를 대표하는 작품이 바로 12세기에 제작된 <철학의 여왕과 리버럴아츠 7과목(Philosophia et septem artes liberales)>이다(Katzenellenbogen, 1966: 39-55). 철학의 여왕을 중심으로 여성으로 의인화된 7과목이 둥글게 둘러서 있는 이 도상은 그 명료함과 우아함으로 리버럴아츠 도상학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아왔으며, 가장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다(Masi, 1974: 59-60).

1.2 논문의 대상과 방향

본 논문은 <철학의 여왕과 리버럴아츠 7과목(Philosophia et septem artes liberales)>을 분석대상으로 한다(이후 서술에서는 ‘<7과목 도상>’으로 약칭). 이 도상은 12세기 알자스 지방의 호헨부르그 수도원에서 초심 수녀들과 수도원에 위탁된 어린 귀족 여성들을 교육하기 위해 편찬한 당대의 백과사전적 지식 개론서인 ≪기쁨의 정원 Hortus Deliciarum≫ 에 실려있는 작품이다.8), 수도원 원장인 란스베르그의 헤라드(Herrad of Lansberg)를 중심으로 여성이 기획하고 여성들이 공동 작업한 예술이라는 점에서 독보적인 자료이며, 중세 여성교육 자료로서도 희소한 가치를 지닌다(Gibson, 1989: 86-98).

<7과목 도상>의 명성이 높은 만큼 인문교양교육의 역사에 관련된 논의에서 이 도상의 이미지는 배경화면처럼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그 명성에 비하면 <7과목 도상> 자체의 내용이나 의미는 부분적으로 다루어져서, 리버럴아츠의 도상적 전통의 영향 관계를 규명하는 대상 자료로서 조명되어 왔다.9)

최근 들어서는 ≪기쁨의 정원≫ 텍스트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종합적 연구가 수행되고 있는데, 전체 서사 구조의 맥락에서 <7과목 도상>의 위치나 역할 등이 조명되고 있다. 학습의 도구로서의 도상의 교육적 의미를 진단하는 시도나 <7과목 도상>의 이미지가 세계를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는 분석은 연구의 폭을 넓히고 있다(Griffiths, 2011; Joyner, 2016).

이 논문은 중세 수도원이라는 특정한 시공간에서 리버럴아츠 7과목이 어떻게 해석되고 활용되었는지를 집중적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국내에서는 아직 본격적으로 <7과목 도상>을 다룬 연구가 없기에, 이 논문에서는 먼저 원전을 검토하는 기초작업을 수행한다. 도상에 삽입된 라틴어 문장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도상의 구조적 특징과 연결하여 전체 내용을 정리해본다. 그리고 카펠라에서 시작되는 리버럴아츠의 회화적 재현의 전통이 어떻게 계승되고 변용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피기 위하여 카펠라의 텍스트와 부분적으로 비교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를 통하여 인문교양교육의 서구적 전통에서 이 자료가 보여주는 함의를 진단함으로써, 차후에 진행될 <7과목 도상> 연구의 단초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그림 1]

<철학의 여왕과 리버럴아츠 7과목 (Philosophia et septem artes liberales)>10)

2. <철학의 여왕과 리버럴아츠 7과목> 도상의 내용과 구조

≪기쁨의 정원≫에는 336장에 이르는 다양하고도 화려한 삽화가 실려있는데, <7과목 도상>은 전반부의 천지창조 이야기 영역에서 제시된 것이다.

<7과목 도상>은 중세도상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원형 다이어그램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그 내부에 작은 원을 배치하여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고 있다. 두 개의 원과 큰 원안에 정교하게 배치된 작은 아치들로 이루어진 이 도상은 12세기 교회 건축에서 나타나는 장미 모양의 창(rose window)을 연상시켜서 “장미창의 건축형태에 따라 조직된 이미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Katzenellenbogen, 1966: 39). 도상은 내용상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내부원에는 철학의 여왕이 있으며, 외부원은 7명의 여성으로 의인화된 리버럴아츠 과목들이 여왕을 호위하듯이 빙 둘러 서있다. 그리고 원의 바깥에는 신성한 세계에 낄 수 없는 추방자들의 영역이 나타난다. 도상 안에 제시된 글씨는 인물의 특징을 강조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데, 인물이나 도구의의 이름, 그리고 각각 인물이 설파하고자 하는 전언 등이 라틴어로 쓰여 있다.11)

2.1 내부원

내부의 원은 상하 2단으로 나뉘어 있다. 윗부분에는 ‘필로소피아’라고 명시된 여성이 망토를 두르고 베일을 쓴 채 앉아있다. 붉은색의 화려한 의자나 금색의 왕관은 권위와 위용을 보여주고 있어서, 필로조피아(philosohpia, lady philosophy)가 여왕으로 재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12), 철학의 여왕(Philosophia)은 세 개의 머리가 솟아 나와 있는 삼면 왕관을 쓰고 있다. 이 머리들은 당시 철학 교육의 세 분야였던 윤리학(etica) 논리학(logica) 자연철학(phisica, natural science)을 의미한다. 여왕은 두 손에 긴 띠지를 들고 있는데, “지혜는 신으로부터 온다. 오로지 현명한 사람만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라고 씌어 있다.13)

여왕의 가슴에서 7개의 물줄기가 분출되고 있다. 여왕의 우측에는 “철학으로부터 7개의 지혜의 샘물이 분출되어 리버럴아츠 과목들을 이루며”14),라는 글씨가 있어 물줄기의 기원이 철학임을 밝히고 있다. 좌측에는 “신성한 영혼(Divine spirit)이 만든 리버럴아츠 7과목은 문법, 수사학, 논리학, 음악, 건축, 기하학, 천문학”이라고15) 명시되어 있어서 물줄기가 상징하는 의미를 정확히 지시하고 있다. 즉 왼쪽으로 분출된 세 줄기는 3학(Trivium)을 상징하며, 오른쪽으로 뻗어나간 네 줄기는 4과(Quadrivium)를 상징한다.

여왕의 발밑에 있는 사람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다. 두 인물은 철학자(philo-so-phī)라고 쓰인 긴 목제 의자에 앉아, 여왕의 말을 적거나 글을 쓰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오른쪽에는 “철학자들은 먼저 윤리학을, 그 다음에는 자연철학을 그리고 수사학을 가르친다”라는 문장이 보인다. 플라톤의 왼쪽에는 “철학자들은 세상의 진정한 현자이며, 만인의 스승이다”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두 철학자의 머리 위쪽으로는 “그들의 임무는 세상 모든 것의 심오한 본질을 면밀하게 밝히는 것”이라는 문장이 펼쳐져 있다.16)

내부원의 원주에는 두 문장이 새겨져 있다. “나, 신성한 철학의 여왕은 모든 것을 현명하게 통치한다. 나는 나에게 속하는 7과목을 배치한다.”17) 이 명문은 7과목과 철학의 위계관계를 확실히 제시하며, 구조적으로는 내부원을 감싸면서 동심원 구조를 중심으로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2.2 외부원

외부의 큰 원 안에는 젊은 여성으로 형상화된 리버럴아츠 7과목이 철학의 여왕을 둥글게 에워싸고 있다.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진 로마식 기둥들이 원 내부를 7개의 공간으로 균일하게 나누고 있으며, 아치형 둥근 지붕 아래에는 리버럴아츠 7과목이 12세기의 전형적인 드레스인 블리엇(Bliout)을 입고, 각자의 도구를 들고 나열해 있다. 각각의 아치에는 과목의 특성이나 목표를 제시하는 명문이 제시되어 있다. 캐릭터 옆에는 과목의 이름과 들고 있는 도구의 이름도 제시되어 있다(산술, 천문학 제외).

철학의 여왕 바로 위쪽에 있는 것은 문법(Grammar)이다. 문법은 붉은색 블리엇을 입고, 흰 베일을 쓰고 있다. 오른손에는 문법 학습에서 필요한 엄격한 훈육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 식물의 가지로 만든 빗자루 모양의 회초리(scopae)을 들고 있으며18), 왼손에는 책을 들고 있다. 명문에는 “나를 통하여, 모두가 단어, 음절, 철자를 배운다”라고 쓰여 있다.19)

시계방향으로 다음 칸에는 수사학(Rhetoric)이 서 있다. 그녀는 왼손에 검은색 왁스가 입혀진 한 쌍의 테블릿(tabula, 글씨를 쓰고 수정할 수 있는 철판)을 들고 있고, 오른손에는 철필(stylus)을 들고 있다. 좋은 스피치를 위해서 필요한 면밀한 준비 과정을 상징하는 도구이다. 명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랑스러운 연설가여. 나에게 감사하라. 나로 인해 당신의 언설이 힘을 갖게 된다.”20)

그 옆의 논리학(Dialectic)은 과목의 특성상, 실제적인 도구가 아니라 논증의 상황을 상상하게 하는 상징물을 들고 있다. 왼손에는 개의 머리(caput canis)를 들고 있고, 오른손은 둘째 손가락으로 상대편을 가리키고 있다. 명문에는 “나의 논증은 개가 짖는 것처럼 재빠르고 맹렬하다”라고 제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개의 머리는 토론에서 상대를 예민하게 견제하면서도, 경계 대상을 발견한 개가 짖어대는 것처럼 필요할 때는 빠르고 맹렬하게 대응하는 기술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21)

음악(Music)은 베일을 쓰지 않고 금색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측면으로 서 있어서, 다른 여성들보다 더 역동적으로 보인다. 도구를 세 개나 제시하는 점도 눈에 띈다. 하프 모양의 시타라(cithara)를 연주하고 있으며, 손 오르간(organistrum)과 리라(lira)도 보인다. 명문에는 “나는 음악이고, 다양한 악기로써 내 과목을 가르친다”라고 쓰여 있어서, 제시된 악기 이외에도 음악 학습에서 여러 악기들이 활용되었으리라 추론해볼 수 있다.22)

산술(Arithmetic)은23) 셈을 할 때 필요하다고 추측되는 구슬로 장식된 끈을 들고 있다. 이 도구의 이름은 따로 제시되어 있지 않고, 명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숫자에 기반을 두고, 그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밝힌다.”

기하학(Geometry)은 오른손으로 땅에 컴퍼스(circinus)를 세우고 있고, 왼손으로는 측량용 막대를 들고 있다. 지상을 측량하기 위한 목표를 강조하기 위해서 시선은 아래쪽을 향하고 있다. “나는 정확하게 땅을 측정한다”라고 명문은 말한다.24)

천문학(Astronomy)은 유일하게 위쪽을 보고 있는 캐릭터이다. 하늘을 우러르며 별들을 관찰하고 있다. 한 손은 별을 가리키고, 또 다른 손은 별을 관측하는 도구로 추정되는 물건을 들고 있다. “나는 천체의 이름을 붙잡아, 미래를 예측한다”라고 명문에 쓰여 있다.25)

7명을 둘러싸고 있는 큰 원에는 네 개의 문장이 쓰여 있다. “발견한 것은 기억된다. 철학은 부분적 요소들의 비밀과 모든 전체를 탐구한다. 철학은 일곱 과목을 가르친다. 학생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글로 써놓는다.”26)

2.3 원의 바깥

원의 바깥에는 네 명의 남자가 앉아있다. 그들은 질서에 속하지 못하고 외부 공간으로 밀려나 있다. “순수하지 못한 영혼에 의해 이끌리는 시인과 마술사”라는 위쪽의 글씨가 말해주듯이27), 동심원의 바깥은 철학의 영향을 받지 못한 추방자의 영역이다. 네 명의 남성들이 각각 책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있지만 원의 내부에 있는 철학자들과 같은 지혜를 얻을 수 없다. 어깨 위에 앉아서 귀에 대고 무엇인가를 속삭이는 까마귀는 철학의 지혜와 대조되는 불순한 영혼의 유혹을 상징한다. 맨 가운데에 “그들은 불순한 영혼에 이끌리기에 마술을 가르치고 허황된 이야기인 시를 쓴다”라는 문장이 제시되어 있다.28)

3. 도상의 함의: 지식의 전체성과 가치의 추구

3.1 세계를 보는 종합적 지식체계로서의 리버럴아츠

<7과목 도상>의 도상은 3학과 4과를 의인화하여 표현하는 리버럴아츠의 회화적 재현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창의적으로 변용하고 있다. 카펠라는 ≪결혼≫에서 각각의 지식체계를 여성의 특징적인 외모나 손에 들고 있는 도구 등으로 우의적으로 묘사했다. 그런데 길고 현란한 카펠라의 문학적 묘사를 도상에서는 하나의 형상으로 명료하게 압축해서 나타내야만 한다. 그래서 이 인물들은 <7과목 도상>에서는 훨씬 단순하면서도 더 직관적으로 의미를 전달해주는 간명한 캐릭터로 변신한다. ≪결혼≫에서 7명의 자매들 중에 가장 연장자인 문법(제3권)이 등장하는 장면을 예로 들어 비교해볼 수 있다.

나이가 지긋하면서도 매우 매력적인 한 여성이 로마식 망토(Roman cloak, 연설가나 교육자의 공식적인 차림)를 걸치고 신들로 구성된 상원(senate) 앞으로 들어온다. 그녀는 장인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밝은 아이보리 빛 광택이 나는 빛나는 상자를 들고 있다. 그것은 치료가 필요한 상처 자국을 제거하는 유능하고도 숙달된 의사가 들고 다니는 물건처럼 보였다. 상자에서 그녀는 반짝이는 가지치기용 칼(pruning knife)을 꺼낸다. 그녀는 이 도구로, 아이들의 잘못된 발음을 교정해주고, 그리고 갈대의 재나 갑오징어 먹물로 만든 검은 가루로 건강을 회복시켜줄 것이라고 말한다(223) … 이 약들은 터무니없는 무지에서 고통받는 목을 낫게 해줄 것이고, 잘못된 발음에서 비롯된 나쁜 호흡을 날려버릴 것이다(224) … 내 이름은 문법이며(229) … 초기 단계에서 나의 의무는 바르게 읽고 쓰는 것이며 그다음으로는 잘 이해하고 조리 있게 비판하는 임무가 더해진다(230)(Stahl, Johnson, Burge, 1977: 64-67).29)

문법은 이렇게 장황하게 자신의 임무를 이야기하고는 호흡과 기억력을 북돋는 약들을 꺼내든다. 그리고 자신은 문자(letters), 문학(literature), 문인들(man of letters) 그리고 문체 (literary style) 이렇게 네 가지 분야를 다룬다고 이야기하며, 주로 문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알파벳 각각의 글자의 활용과 발음법, 철자법, 강세법, 품사들의 특징과 활용들을 아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해나간다(Stahl, Johnson, Burge, 1977: 64-105). 짧은 책 한 권으로 구성된 ‘문법(제 3권)’은 나이가 든 여성으로 비유되며, ‘전지용 칼’이나 ‘비법의 약물’이 상징하는 것처럼, 언어학습에서 잘못된 점을 도려내고 상처를 치료하는 엄격하고 권위 있는 의사를 자칭한다.

그런데 <7과목 도상>에서는 길고 장황한 이 내용을 ‘회초리’와 ‘책’을 든 젊은 여성 캐릭터 하나로 압축해낸다. 도상에서 문법이 들고 있는 ‘회초리’는 칼과 약이 상징하는 것과 같은 엄중한 훈련과 교육을 나타낸다. 특히 도구의 이름에 ‘회초리(scopae)’라는 글씨까지 명기함으로써, 부가 설명이 필요 없이 단일 이미지만으로도 교육에 필요한 강력한 훈육을 환기시킨다. 또한 다른 손에 들고 있는 ‘책’은 문법이 후반부에 길게 설명했던 문자에 관련된 다양한 목록들을 종합적으로 상징하는 것이라고 추정된다.

특정 교과의 방대한 지식을 한 두 개의 도구로 형상화하는 방식은 <7과목 도상>이 리버럴아츠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문법’이 들고 있는 회초리나 책, ‘수사학’이 들고 있는 테블릿이나 철필, 또는 ‘기하학’이 들고 있는 컴퍼스나 막대 등등은 모두 세계를 관찰하고 이해하고 분석하는 도구이다. 이 도구를 통해 문자와 말하기와 논증의 영역을 습득할 수 있으며, 이 도구들을 통해 숫자에 기반한 세계의 질서, 하늘과 땅, 그리고 그것들의 조화(음악)을 이해할 수 있다. 즉 개별 도구를 모두 연결하면 인간과 자연을 골고루 이해할 수 있는 종합적 도구로서의 지식체계가 구축된다.

개별성이 아니라 지식의 전체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7과목 도상>의 의도는 도상의 구조적 측면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리버럴아츠 재현의 전통에서 ‘문법’은 프랑스의 샤르트르 성당 입구에서 볼 수 있듯이 ≪결혼≫의 묘사대로 ‘나이든 여성’으로 많이 나타난다. 아마도 이런 이미지가 아이들에게 언어의 기본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켜야 하는 엄격한 교육자에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30) 하지만 <7과목 도상>에 등장한 문법은 천문학이나 음악 같은 다른 과목들처럼 젊은 여성으로 형상화된다.

요컨대 <7과목 도상>의 캐릭터들은 머리 스타일도 다르고, 들고 있는 도구도 상이하며, 팔 동작이나 시선도 달라 각자의 개성이 드러난다. 하지만 동시에 모두가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이며 동일한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고 있다는 점에서는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구현한다. 무엇보다도 각각이 둥근 아치 아래서 ‘명문-이름-도구’라는 세 가지 표지로 정체성을 증명하고 있는데, 이 작은 원들이 모여 하나의 큰 외부원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안정된 형식미를 만들어낸다. 이런 구조적 특징은 하나하나의 캐릭터들을 강조하면서도 통일되고 일관된 질서 안에서 개별캐릭터를 수렴하여 지식의 전체성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리버럴아츠 7과목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지식체계를 기반으로 형성되었고, 교육현장에서도 3학과 4과를 순차적으로 학습해나가는 것이 관례였기에, 두 영역을 서로 다른 묶음으로 나누어 이해하는 것이 익숙한 방식이다. 하지만 중세의 학자들은 두 영역의 밀접한 연관성을 매우 중시했다. 예를 들면 초기 피타고라스학파는 산술이나 기하학은 보편적으로 응용 과목인데, 4과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수사학이나 다른 언어에 관련된 과목들이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운율(metrics) 같은 것은 수학에 기반한 음악 영역에도 속하지만, 문법이나 수사학에도 필요하고 어울리는 것으로 여겼다. 기하학에서 명제를 증명하는 과정은 논리학에서 논리적 추론을 하는 과정과 유사하여, 논리학은 기하학의 자매로 불리곤 했다. 카펠라도 3학 부분을 쓸 때, 4과 분야에 대한 언급과 암시가 포함된 텍스트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리버럴아츠의 개별 과목들, 또는 3학과 4과 체계의 근저에는 이처럼 지식의 전체성과 상호연관성을 중시하는 뿌리 깊은 전통이 내재되어 있다(Stahl, 1971: 25).

그런 맥락에서 ≪결혼≫이 서로 다른 두 영역을 전제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결합’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 결합의 의미야말로 작품의 핵심적 주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7과목 도상>은 ‘결혼’의 핵심적 의미를 간명하고도 더 조직화 된 이미지로 그려낸다. 각각의 과목들은 세계를 보는 중요한 도구이며, 이것을 연결하여 균형 있게 배치했을 때 지식의 전체상을 상징하는 완벽한 ‘원’이 만들어진다. <7과목 도상>은 종합적 지식체계로서의 리버럴아츠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더 창의적으로 강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2 지식을 통한 신성의 탐구

내부원에는 여성으로 형상화된 철학과 두 명의 위대한 철학자가 등장한다.31) 내부원은 2단 구조로 되어 있는데, 아래쪽에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하단의 철학자의 영역은 협소하게 설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상단을 받치고 있는 심오한 토대라는 점에서 필요불가결한 영역이다. 또한 제시된 명문은 동시대까지 이어온 철학의 역사와 내용을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인간 지식의 역사에서 철학이 차지하는 권위를 잘 보여준다. 소크라테스는 나이가 든 사람으로 그려지고, 그의 제자인 플라톤은 마치 스승의 말을 옮기어 적는 듯이 고개를 약간 수그리고 있는 젊은이로 등장하여,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으로 이어지는 철학의 위계가 잘 나타난다.

명문에서는 철학자들이 다루는 학문의 영역들을 제시하고 ‘세상의 모든 심오한 본질을 밝히는 것이 철학의 역할’이라고 말하여, 우주의 기원과 원리를 밝히고 지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플라톤 철학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다.32) 특히 원 바깥으로 추방된 사람들(시인과 마술사)을 재현한 부분은 상상을 부추기는 예술에 빠져서 그림자의 허상을 좇는 어리석은 자들을 비판하는 플라톤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Nettleship, 2011: 337-341). 이렇듯 <7과목 도상>은 그리스 고대 철학의 전통을 축약해 제시해주며 철학자를 ‘세상의 현자’로 명명한다.

그런데 상하로 분리되는 내부원의 2단 구조는 그리스적 전통에 기반한 철학과 변별되는 신성의 영역을 구분해내는 역할을 한다. 철학의 여왕은 남성 철학자(philosophi)와 대비되는 여성 철학자(philosophia)로서가 아니라, 모든 지식의 총체이며 지배자이다. 철학이 가르쳐온 세 분야는 여왕의 권위를 빛내주는 훈장이 된다. 여왕은 굳건한 철학의 체계 위에서 철학자들이 헌정한 왕관을 쓰고 군림하고 있다. 여왕의 가슴에서 7개의 물줄기가 분출되어 리버럴아츠 7과목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이 물줄기들은 근원적으로는 철학이라는 하나의 샘에서 기원하는 것이며, 철학의 여왕이라는 단일자로부터 각각 생명을 부여받는다.

모든 것을 관장하고 생성하는 단일자의 이미지는 철학의 여왕에게 인간 지식의 영역을 초월한 신성을 부여해준다. 여왕이 들고 있는 띠지에 제시된 ‘현명한 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지만 그 지혜는 궁극적으로는 ‘전능한 신(the Lord God)’으로부터 온다는 전언은 <7과목 도상>의 핵심적 메시지이다. ‘현명한 자들’이란 플라톤으로 대변되는 철학을 가리키는데 이들을 통해 지혜를 얻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지혜의 근원은 신에게 속하기에 진리를 찾기 위해서는 매개자인 철학의 여왕을 통해 신성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의 여왕은 철학의 화신이면서, 동시에 신성의 현현인 지혜의 여왕 마리아를 상징하는 존재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Griffiths, 2006: 134).33), 특히 이 도상이 수도원의 교육자료였고, 원전인 ≪기쁨의 정원≫에서 노아의 홍수 이후에 구원을 얻기 위해 인간에게 지혜가 필요하다는 맥락에서 제시되어 있다는 것을 감안해 본다면, 지식을 통한 신성의 추구라는 도상의 의도는 더욱 명료해진다(Joyner, 2016: 69-76).

요컨대 철학의 여왕은 철학에서 기원한 인간의 지식을 신에게 헌정하는 매개자이다. 이때 외부원의 리버럴아츠 7과목은 철학의 여왕을 통해 인간이 신성한 진리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유용한 도구였다. 리버럴아츠 7과목을 철학에서 기원한 통합된 전체지식체계로 구성해낸 이유는, 원형으로 구현된 ‘지식의 전체성’이야말로 우주 전체에 깃들어있는 신의 원리를 이해하고 탐구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식과 지식을 연결하고, 통일되고 통합된 인간 지식을 토대로 더 높은 가치를 탐구해가는 형이상학을 <7과목 도상>은 조직적이면서도 직관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4. 마무리: 통합적 지식의 지평과 새로운 상상

리버럴아츠의 전통은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하여 로마시대를 거치며 구체적인 지식체계로 형성되어 왔으며 중세 대학 커리큘럼의 기초가 되어 근대 대학 체제를 거쳐 오늘날 대학의 인문교양교육(liberal education)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7과목은 이미 잊힌 낡은 지식체계이지만, <7과목 도상>에서 확인했듯이 인문교양교육의 전통이 계승해온 주요한 유산의 원천이 된다.

카펠라는 천상의 결혼식이라는 우화를 통하여, ‘지식을 결합을 통한 인간성의 고양’이라는 리버럴아츠의 중요한 원형을 제시했다. 12세기에 란스베르그의 헤라드가 제작한 <7과목 도상>은 리버럴아츠 전통에 내재되어 있던 핵심적 요소를 계승하되, 통합적 지식을 바탕으로 신성을 추구하는 동시대적 지향성을 회화적인 도상으로 명징하게 가시화한다. 중세 기독교적 맥락에서 <7과목 도상>은 철학과 세속 지식과 신성이 연결된 정교한 동심원을 구현해낸다. 12세기 수도원에서는 지식은 신이 창조한 놀라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도구였다. 이 도구들을 골고루 활용해 전체지식체계를 학습할 때 그들이 지향하는 신성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7과목 도상>은 리버럴아츠 과목을 의인화된 이미지로 재현하는 알레고리의 전통을 창의적으로 계승한 탁월한 결과물이다.

<7과목 도상>은 서구 인문교양교육의 전통에서 리벌럴아츠를 계승해온 핵심적 동력이 개별지식을 이어낸 종합적 지식체계로서 전체성을 강조하는 정신이었다는 사실을 명증하게 드러내준다. 통일되고 통합된 지식체계는 인간이 자기정체성을 탐색할 수 있는 지적인 기반이며, 특정한 시대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비옥한 토대가 된다. 세계를 균형 있게 볼 수 있는 지식을 토대로 하여, 인간의 정신은 새로운 가치를 향해 움직여간다. 12세기의 수도원에서 그 가치는 신성을 통한 영혼의 구원으로 변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7과목 도상>은 신성에 복무하는 지식이라는 중세의 종교적 도그마의 위력을 엿보게 하면서도, 동시에 닫힌 세계관 안에서도 리버럴아츠가 인간의 정신과 가치를 지탱하는 도구로 작동하고 있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해준다. 12세기 여성수도원에서 피어난 지식의 동심원은 신앙과 이성의 대립과 조화에 의해 직조되어온 중세라는 여정에서 리버럴아츠 전통이 남긴, 작지만 의미심장한 이정표이다.

3학과 4과, 즉 트리비움(Trivium)과 쿼드리비움(Quadrivium)은 둘 다 ‘갈라진 길들이 만나는 곳’이라는 말에서 기원했다. 개별지식을 불러 모아 ‘결혼’의 향연을 벌이고, 지식의 길들을 조화롭게 합쳐 아름다운 ‘동심원’을 구축하여, 그 단단한 토대 위에서 동시대에 필요한 가치를 탐색하는 것이 인문교양교육의 서구적 전통이자 변용의 원리였다.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오늘날의 지식체계는 정교한 만큼 파편화되기도 쉽다. 12세기 <철학의 여왕과 리버럴아츠 7과목> 도상은 지식의 전체성을 그리고 이 전체성 위에서 꿈꿀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지평을 상상하게 해준다.

참고문헌

1차 자료

Herrad of Hohenbourg, edited by Rosalie Green et al.(1979). Hortus Deliciarum 2 vol. Warburg Institute.

Martianus Capella, translated by William Harris Stahl et al.(1977). Martianus Capella and the Seven Liberal Arts: Vol I, The Marriage of philology and Mercury, Columbia University Press.

Notes

1)

마르티아누스 카펠라(Martianus Capella, AD.360-420)의 ≪필로로기와 머큐리의 결혼≫은 리버럴아츠 7과목을 우화(Allegory)의 형식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9권으로 나뉘어 있으나 전체가 일관된 주제로 이어져 있어서, ‘지식’에 관한 단일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1권과 2권은 결혼식의 배경 무대를 설정하는 장으로, 1권(The Betrothal), 2권(The Marriage)으로 구성되어 있다. 3권에서 9권까지는 7과목을 차례대로 설명하고 있다. 3권(Grammar) 4권(Dialectic) 5권(Rhetoric) 6권(Geometry) 7권(Arithmetic) 8권(Astronomy) 9권(Harmony)의 구성이다. Martianus Capella, translated by William Harris Stahl et al. (1977). Martianus Capella and the Seven Liberal Arts: Vol I, The Marriage of philology and Mercury, Columbia University Press.

2)

통상적으로 신부 들러리로 번역되지만, 원래 작가는 ‘feminae dotales(ladies constituting a dowry)’라고 표현하고 있어, 머큐리가 신부를 위해 제공한 신랑 측 지참금의 의미가 강하다(Stahl, 1971: 27).

3)

로마의 학자인 바로(Marcus Terentius Varro, BC.116-27)가 만든 9권의 책은 지식을 집대성하는 백과사전류의 모델이자 원천이 되었다. 눈에 띄는 것은 이 사전을 구성하는 원리로 리버랄아츠의 과목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는 grammar, rhetoric, logic, arithmetic, geometry, musical theory, medicine, architecture 9개의 과목을 제시하고 각각의 과목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바로의 목록을 토대로 하면서, 마지막 두 과목이 빠진 7과목이 리버럴아츠 7과목으로 자리를 잡아나가게 된다(Lindberg, 2007: 137).

4)

보에티우스(Anicius Manlius Severinus Boethius, AD.480-524)는 숫자에 기초한 네 개의 영역 (기하, 산술, 천문, 음악)에 대한 일련의 저작을 통해서 ‘쿼드리비움’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리비움’이라는 용어는 보에티우스 이후 8, 9세기에 이르러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5)

‘머큐리’(그리스 신화에서는 헤르메스)’는 문자를 발명했고, 천상과 지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메신저이며 그리스예술을 창시했다고도 알려진 신이다. 웅변의 후원자(patron)이기도 하여, 문자와 언어의 대한 알레고리로 채택되었다고 생각된다. ‘필로로기’는 주로 ‘문헌학’으로 번역되는데, 근대 이후에 사용되고 있는 문헌학과는 개념이 다르다. 학습과 문학에 대한 사랑이라는 어원에서 보듯이, 이는 지식과 학습의 영역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지상 출신으로서 인간이 구축한 학습체계와 이에 따른 지혜를 알레고리화한 것이다. 능란한 언변과 다양한 지식을 골고루 갖추는 것은 당시 로마 신사들의 포부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이 알레고리에는 현실의 실용적 요구가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6)

연회를 열고 초대된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서 주제를 전달하는 심포지움 장르(symposium genre)는 플라톤의 ≪향연(Symposium)≫에서 기원한다. 카펠라의 시기에도 허구적 연회(fictional banquet)라는 서사구조를 활용하는 유사장르들이 크게 유행했다.

7)

≪결혼≫의 시대별 영향력에 대해서는 Stahl(1971: 55-71) 참조.

8)

호헨부르그 수녀원(현재 프랑스 알자즈 지역 Mont Sainte-Odile 수녀원)의 수도원장이었던 헤라드(1130?-1195)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당대의 지식 개론서로서 대부분 라틴어로 기술되어 있으며 독일어로 주석이 첨부되어 있다. 1167년에서 1185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성경의 구원 서사를 중심으로 철학, 과학, 음악, 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주제의 텍스트가 시와 산문, 노래와 대화 등의 형태로 들어있다. 신학적 내용은 당대 교부들의 해석을 참조하고 있으며, 그리스전통이나 비잔틴 문명의 자료를 참조하고 있다. 노래 텍스트는 다성음악의 기원 중의 하나로 음악사적으로도 중요하다. 특히 아름다운 서체와 336장에 이르는 삽화가 유명하다. 원본은 수도원에서 보관되다가 프랑스 혁명 당시 근처의 스트라스부르그 도서관에 이관되었으나 1870년 보불 전쟁 중 폭격으로 소실되었다. 하지만 19세기 초반에 텍스트와 이미지를 부분적으로 복제하는 작업들이 수행된 바 있어, 이를 기반으로 1979년에 런던대학의 와버그 연구소에서 원고를 모사한 자료들을 묶어 “Hortus deliciarum 2 vols”으로 출판하였다.

9)

리버럴아츠의 도상학적 재현의 역사는 다음을 참고. William Harris Stahl(1971), Appendix A: Bibliographical survey of the seven liberal arts in medieval and renaissance iconography, 245-249; Masi, M. (1974). “Boethius and the Iconography of the Liberal Arts”, Latomus 33(Fasc. 1), 55-75.

10)

1818년 Christian Moritz Engelhardt가 스트라스부르크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원본을 모사한 이미지이다. 현재 이 도상은 뮌헨의 Bavarian National Museum에 소장되어 있다.

11)

<7과목 도상>의 라틴어 원본과 영어번역(각주 14번~29번)은 다음을 참조하여 제시했다. 라틴어 원문: Green, R. B. (1979). Hortus deliciarum 2 vols, Warburg Institute.; Sandys, John(1903). “List of Illustration”, A History of Classical Scholarships: from the Sixth Century B.C. to the End of the Middle Ages, Cambridge at the University Press, 13-14.; 영어 번역(괄호 안에 표기): Joyner, D. (2016). Painting the Hortus Deliciarum. Medieval Women, Wisdom, and Time, Penn State Press.; Peter Losin, “Illumination from Hortus deliciarum: Herrad of Landsberg, Abbess of Hohenburg, ca. 1180” http://www.plosin.com/work/HortusDetails.html(검색일: 2020년 12월 12일); Iain Tidbury, “Philosophy and the Liberal Arts” https://www.liberalarts.org.uk/philosophy-and-the-liberal-arts/ (검색일: 2020년 1월 2일).

12)

‘Philosophia’가 철학의 여성형 명사인 점을 고려하여, 연구자들에 따라 필로조피아를 lady philosophy, 또는 the Queen philosophy라고 지칭하기도 하고, 그냥 성을 고려하지 않고 Philosophy로 부르기도 한다. 본 논문에서는 도상에서 철학이 신성한 마리아의 현신이기도 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철학의 여왕’이라고 칭하기로 한다.

13)

Omnis sapientia a domino Deo est. Soli quod desiderant facere possunt sapientes(All wisdom is from the Lord God. Only the wise people are able to do what they desire).

14)

Septem fontes sapientiae fluunt de philosophia, quae dicuntur liberales artes(Seven fountains of wisdom flow from philosophy, which is called liberal arts).

15)

Spiritus sanctus inventor est sept em liberalium artium, quae sunt: Grammatica, Rhetorica, Dialetica, Musica, Arithmetica, Geometria, Astronomia(These are the seven liberal arts that have divine spirit as their author: grammar, rhetoric, dialectic, music, arithmetic, geometry, and astronomy).

16)

Philosophi prinum Ethica, postea physica, deinde Rhetorricam docuerunt; philosophi sapientes mundi et gentium clerici fuerunt; Naturam universae rei quem docuit philosopia(Philosophers first taught ethics, then physics, then rhetoric; they were the true sages of the world and the teachers of the people; their task was to scrutinise the profound nature of all things).

17)

arte regens omnia quae sunt ego philosophia: subjectas artes in septem divido partes(I, the divine Philosophy, govern all things wisely; I lay out seven arts which are subordinate to me).

18)

라틴어 scopae의 사전적 의미는 나뭇가지로 만든 빗자루이다. 도상에서 scopae는 나뭇가지로 만든 빗자루 모양의 훈육용 도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문맥을 고려하여 ‘회초리’로 번역했다. 참조한 영어권 학자들은 채찍(whip 또는 switch)으로 번역하고 있다.

19)

Per me quivis discit, vox, littera, syllaba quid sit(Through me all can learn what are the words, the syllables, and the letters).

20)

causarum vires per me, alme rhetor, requires(Thanks to me, proud speaker, your speeches will be able to take strength).

21)

argumenta sino concurrere more canino(My arguments are followed with speed, just like the dog’s barking).

22)

Musica sum late doctrix artis variate(I am Music and I teach my art with the help of various instruments).

23)

Ex numeris consto, quorum discrimina monstro(I base myself on the numbers and show the proportions between them).

24)

Terrae mensuras per multas dirigo curas(It is with exactness that I survey the ground).

25)

Ex astris nomen traho, per quae discitur omen(I hold the names of the celestial bodies and predict the future).

26)

Hec exercicia que mvndi philosophia investigavit investigata notavit⋅scripto firmavit et alvmnis insinvavit⋅Septem per studia docet artes philosophia⋅hec elementorum scrvtatvr et abdita rervm (What it discovers is remembered⋅Philosophy investigates the secrets of the elements and all things. Philosophy teaches arts by seven branches⋅It puts it in writing, in order to convey it to the students).

27)

Poetae vel magi spiritu immundo instincti(The poets and magicians who are moved by the impure spirit).

28)

Isti inmundis spiritibus inspirati scribunt artem magicam et poetriam i.e. fabulosa commenta(Those moved by impure spirits teach magic and write poems, that is, lying fictions).

29)

괄호의 숫자는 3권 원전에 제시된 단락의 표시임.

30)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Chartres Cathedral)의 서쪽 정문의 장식인 ‘문법’의 의인화 부조는 카펠라의 공식을 충실하게 재현한다. 이 부조에서 문법은 회초리를 들고 두 명의 아이를 훈육하는 엄격해 보이는 나이든 여성으로 등장한다.

31)

철학의 여왕을 의인화한 맥락은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판단된다. 보에티우스가 서술한 신플라톤주의의 전통이 내부원의 내용에 많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7과목 도상>과 보에티우스의 영향 관계는 차후 연구에서 다루기로 한다.

32)

이 부분은 특히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와의 영향 관계가 두드러지는데, 차후 연구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33)

중세 신학에서 마리아는 신성의 현현으로서, 인간에게 가능한 모든 지혜의 총체이자, 완전한 영혼의 상징이었다. Titus Burkhardt(1969), “The seven liberal arts and the west door of Chartres Cathedral”, Studies in Comparative Religion, Vol.3,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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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여왕과 리버럴아츠 7과목 (Philosophia et septem artes liberales)>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