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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General Edu > Volume 14(4); 2020 > Article
”멜랑콜리아” 읽기를 통한 대학 교양 수업에서의 시 교육의 실천과 효과

초록

이 논문은 대학 교양 수업에서 고대 희랍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한 ‘멜랑콜리’ 담론과 ‘멜랑콜리’를 주제로 다룬 시편을 읽으면서 학생들에게서 나타난 실제적인 효과를 공유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진은영 시인의 “멜랑콜리아”라는 짧은 시편과 이를 이해하기 위한 멜랑콜리 담론은 본 대학의 혁신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융합교과목, <소통의 인문학: 문학 읽고 철학하기>에서 다루어졌다. 학생들의 창의적인 융⋅복합적 사고를 배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설된 이 교과목은 학생들의 자발적이고도 자유로운 참여를 기반으로 수행되는 다양한 주제와 과제를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멜랑콜리는 서구 예술사를 관통하는 주된 정조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낯선 개념이다. 일찍이 고대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재성의 징표로 멜랑콜리 기질과 은유 제작 능력을 꼽았다. 멜랑콜리, 은유와 관계한 시적 이미지는 서로 이질적인 것들을 결합하는 유사성에 대한 통찰로 주조되는데, 이때 이미지는 그 자체로 교육적 방법론이 될 수 있다. 학생들은 멜랑콜리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또한 이에 대한 시를 창작함으로써 자기 내부에 내재한 상처를 드러낼 뿐 아니라 이를 보듬는 치유의 가능성이라는 또 다른 창조적 담론을 생산해내는 체험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처럼 상처를 통해 나를 인식하고 치유의 힘을 배태하는 멜랑콜리 담론은 경계에 대한 치열한 인식과 통찰을 통해 생성된다.

Abstract

This paper aims to share the practical effects of reading the poem, “Melancholia” with a focus on the Aristotelian discourses on melancholy. The course Reading Literature & Doing Philosophy wherein the piece dealing with “Melancholia” by Jin, Eun Young, is a course offered within the University innovation Projects program. This program aims to develop convergent thinking ability, whereby students freely and actively participate in various class activities. The notion of melancholy is still unfamiliar to us even though it has been significant in explaining Western art history. Earlier, Aristotle regards melancholy and the ability of creating metaphors as a sign of genius, and poetic images related with melancholy and metaphors are created by combining dissimilar things, which ultimately renders them similar to one another. This paper argues that poetic images themselves should be considered as educational methods as well as systems of thoughts. While coming up with various images, students can reveal their inner struggles, by which they may also produce creative discourses on how they could be healed. Learning melancholy discourses can make it possible for individual students to recognize who they are by looking at their inner sufferings. Students can also gain valuable insight into the liminal space that can be a place of their creativity.

Key Words

melancholy; general education; poetry; images; metaphor; Aristotle

1. 서론

이 논문은 대학 교양 수업에서 고대 희랍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한 ‘멜랑콜리’ 담론과 ‘멜랑콜리’에 관한 시를 읽으면서 학생들에게 나타난 실제적인 효과를 공유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진은영 시인의 “멜랑콜리아”라는 짧은 시편과 이를 이해하기 위한 멜랑콜리 담론은 본 대학 혁신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융합교과목, <소통의 인문학: 문학 읽고 철학하기>에서 다루어졌다. <소통의 인문학>은 문학과 철학을 결합한 인문학적 융합교과목이다. 학생들의 창의적인 융⋅복합적 사고를 배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설된 이 교과목은 학생들의 자발적이고도 자유로운 참여를 기반으로 다양한 주제의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2020학년도 1학기에 처음으로 개설된 교양 교과목 <소통의 인문학>은 개별 문학 작품을 자세히 읽고 작품에서 파생되는 질문과 사고를 나름의 개별적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 활동으로 구성되었다. 문학 텍스트는 서사가 주는 재미로 인해 다른 텍스트보다 학생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여러 가지 논제를 제기할 발판으로 삼기에 적합하다. 학생들은 문학 텍스트 속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면서도 이러한 흥미를 심화하는 과정에서 작품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개념적 도구를 학습한다. 문학이 인간 존재의 헐벗은 근원적 모습을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면, 철학은 분석적 작업을 통해 문학 텍스트 자체뿐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세계인식을 유인한다. 이러한 작업은 친숙하고 익숙한 사물과 대상을 낯설게 바라보며 새로운 인식을 갖추는 것이며,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우고 사회를 바라보는 의식을 다시금 성찰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인문학적 사유 지평을 넓히는 일로서, 문학과 철학의 융합적 의미 또한 인문학적 사유 지평을 넓히는 데 있다. 인문학적 사유 지평을 확장함으로써 우리는 이전에 갖고 있던 문제의식을 새롭게 정립할 뿐 아니라 이전에 갖지 못했던 문제 또한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 아울러 학생들의 상상력을 고양하고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을 배양할 수 있다.
이에 이 교과목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정립했다. 첫째, 이 교과목은 문학 텍스트를 “자세히 읽는” 훈련을 통해 철학적 사유를 유발함으로써 두 인문학 분야의 교차지점을 인식한다. 둘째, 이 교과목은 문학과 철학의 교차 이해를 통해 학생들이 자아, 공동체, 세계에 대해 폭넓고 균형 잡힌 견해를 갖추도록 예비한다. 셋째, 이 교과목은 학생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유도하면서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배양한다. 부연하자면, 이 과목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다양한 장르의 문학 작품을 읽고 이와 관계한 철학적 인식을 공유하며 나아가 학생들의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배양하는 데 있다. 선별된 문학 텍스트에 대해서 교수자는 텍스트를 읽는 다양한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텍스트를 읽은 후의 반응과 해석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음을 학생들에게 주지시켜야 한다. 텍스트에서 받은 정서적 반응은 언어뿐 아니라 다른 방식의 매체를 이용해 표출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자발적인 질문과 선택이다. 요컨대, 담론 생성의 공동체로서 학생들은 문학 텍스트에 드러난 문제가 실은 우리 자신의 문제와 맞닿아 있으며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교수자는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 창의적인 해결법을 찾도록 탐색을 유도해야 한다.
창의성 및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은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전대미문의 기술적 혁신,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더욱 강조되는 추세다. 사회 전반의 지형변화를 초래하는 기술적 변화의 가파른 속도에 대응하려면 기존의 지식 축적 지향성보다는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제시하는 창의성이 무엇보다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창의성은 시대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정의되어왔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령, 고대 희랍 문화에서 창의성이란 “인간에게 숨을 불어넣는 어떤 고귀한 힘, 혹은 영감을 받는 것”(이종관, 2017: 395)이었다. 그러나 보다 세속화된 낭만주의 시대에 오면 이러한 창의성은 개인의 독특함이나 독창성과 맞물려 개별적 천재성을 드러내는 탁월한 능력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20세기 후반이 되면 개별적 천재의 역할을 넘어서 사회적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창의성을 탐구하는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난다. 특히 키스 소여(Keith Sawyer)는 한 명의 천재가 세상을 이끄는 시대의 종말을 고하며 집단적 천재성을 역설한다. 소여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더욱 창의적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성공은 경청과 조언을 통한 상당 시간의 협력을 통해 달성된다. 의미의 결정적 규정을 연기하면서 끊임없이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는 이러한 협력의 과정에서 특정한 개인에게 기대할 수 없었던 놀랍고도 독창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소여의 주장이다(2008: 35-40). 이처럼 소여는 창의성을 근본적으로 협력의 산물로 본다. 사회적 상호작용과 협력을 통해 새로운 사고가 창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상호작용에는 서로 다른 것들의 연결과 결합, 즉 융⋅복합적 사고의 실천이 전제되어 있다.
이렇듯 창의성 함양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교육이 지향해야 할 목표이지만, 그것을 구체화하는 작업은 쉽지 않다. 그러나 소여의 주장처럼, <소통의 인문학>은 창의성 함양을 수업의 목표로 두면서도, 그 창의성이라는 것이 다양한 학생들의 토론과 협업 속에서 발생한다는 믿음을 견지한다. 게다가 서로 이질적인 학문 분과를 엮고 연결하는 과정에서 창의성 배양의 효과는 배가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러한 창의성 발현에서 문학적 담론은 매우 독특한 위치를 점유한다. 문학은 논리적 사실관계를 천착하기보다는 개연성과 가능성에 무게를 둔 허구적 담론이다. 더욱이 문학은 언어의 조밀한 사용과 낯선 배열을 통해 개별 독자의 다양한 해석과 정서적 반응을 환기한다. 여러 문학 장르 중에서도 특히 시는 은유를 비롯한 비유적 언어의 사용과 생략된 행간의 폭과 깊이로 인해 학생들의 창의적인 사고 실험에 매우 적합하다. 학생들의 사고 실험에 있어 문학적 담론이 적합한 더욱 구체적인 이유는 보편성과 특수성 사이를 오가는 언어적 특성에 연유한다. 보편적 언어의 사용은 문학에 접근할 수 있는 진입 장벽을 한껏 낮춰주면서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반면 언어의 특수성은 낯선 비유와 이질적인 것들의 연결을 통해 관점과 사고의 전환, 상상력의 발동 등을 유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진은영의 “멜랑콜리아”라는 시편을 작품 목록에 선별했다.1) 이 논문은 수업 시간에 다룬 다양한 작품 목록 중에서도 진은영의 시편에 집중하고자 하는데, 그 이유는 첫째, ‘멜랑콜리아’ 개념의 미학적 중요성, 둘째, 시적 이미지의 강렬함, 셋째, 이미지 자체가 지니는 독특한 교육적 효과에 있다. 진은영의 “멜랑콜리아”는 아주 짧지만 강렬한 이미지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여러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열린 텍스트로 작동한다. 더욱이 제목인 ‘멜랑콜리아’는 서구 예술사를 관통하는 정서적 기질로 예술적 창조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개념이다. ‘멜랑콜리’는 천재적인 시적 이미지, 시적 은유와 결합하면서 그 이미지 자체가 사고 체계로 기능할 수 있는 매우 독특한 개념으로 이는 학생들의 창의적 능력을 발현토록 자극하는 충분한 기제가 될 수 있다. 학생들은 ‘멜랑콜리’라는 다소 생경한 개념을 이해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이해는 개념이 입은 예술적 형상, 즉 이미지를 사고하는 과정과 맞물린다. ‘멜랑콜리’를 다룬 수많은 서구의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이 존재하지만, 이 수업에서 다룬 ‘멜랑콜리’는 서구 사상과 학문의 원류가 되는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이곳 강의실이라는 현대적 문맥에 적용한 경우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멜랑콜리론과 이와 연계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은유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유연한 융⋅복합적 사고를 배양하고 창의적 역량을 계발하는 데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음을 이 논문은 보여주고자 한다. 이에 이 실험적 수업 사례를 소개하는데, 본문은 우선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한 ‘멜랑콜리’의 개념적 정의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은유 개념과 시적 이미지 이해의 중요성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 학생들의 실천 과정, 학생들에게서 발현된 잠재적 효과를 검토하기로 한다.

2. ‘멜랑콜리’란 무엇인가

서구 예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멜랑콜리’는 고대의 ‘4체액설’이라는 생리학적 개념에서 출발한다. 고대 희랍인들은 인간의 몸을 거대한 우주에 빗댄 유비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설명하고자 했는데, 이때 멜랑콜리는 4가지 체액 중에서도 검은 담즙에 해당한다. ‘멜랑콜리’라는 용어는 어원상 ‘검다’는 뜻의 ‘멜라스’(melas)와 ‘담즙’이라는 뜻의 ‘콜레’(cholê)가 합성된 조어다(최문규, 2005: 201-202). ‘검은 담즙’은 인간이 지닌 여러 기질 중에서도 우울과 슬픔을 담당하면서, 이것이 지나치면 질병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서구 고대인들은 이해했다.2) 서구인들이 체계화한 인간의 몸과 우주와의 유비 관계에서 발생한 거대한 세계관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도표 1>과 같다.
<도표 1>
서구인의 4체액설3)
원소 공기
체액 혈액 노란 담즙 검은 담즙 점액
성질 따뜻함/축축함 따뜻함/건조함 차가움/건조함 차가움/축축함
계절 여름 가을 겨울
연령 유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하루 아침 점심 저녁
색깔 붉은색 노란색 검은색 흰색
달콤한 맛 쓴맛 매운(신)맛 짠맛
기분 쾌활하다 대담하다 반항적이다 비활동적이다
행성 금성(또는 목성) 화성 토성 달(물을 가진 별)
기질 밝고 쾌활하고 낙천적인 기질 정열적이고 흥분하기 쉬운 기질 우울과 슬픔에 젖는 기질 조용하고 냉담한 기질
의학적 관점에서 고대 서구인들은 멜랑콜리가 인간의 몸속을 운행하는 네 가지 체액 중 하나라고 믿었고 이것으로 인간의 마음을 짐작하고 치료하고자 했다. 그러나 김동규는 멜랑콜리가 인문학적 전문용어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멜랑콜리는 단순히 의학적인 질병의 범주를 넘어서 “문화의 중축인 예술과 철학을 해명하는 핵심어”(2014: 27)로 사용되어왔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멜랑콜리는 특히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조성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단서로 기능한다.
인문학적 개념으로서 멜랑콜리 담론은 고대 희랍의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출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히포크라테스 이후 전개된 의학적, 자연과학적 주제인 멜랑콜리를 처음으로 인문학적 주제로 재정립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제들(Problems)4)은 인문학적인 멜랑콜리 담론의 효시로 간주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저서에서 멜랑콜리에 내재한 문제들을 정식화한다. 서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 철학, 정치, 시 또는 예술에서 비범한 사람들은 왜 모두 멜랑콜리를 앓는 것인가? 게다가 영웅 중에서도 헤라클레스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처럼 검은 담즙으로 발병한 질병에 걸린 어떤 이들은 왜 그토록 비범한 것인가?

    Why is it that all men who have become outstanding in philosophy, statesmanship, poetry or the arts are melancholic, and some to such an extent that they are infected by the diseases arising from black bile, as the story of Heracles among the heroes tells? (NM: 57)5)
인용문이 시사하는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멜랑콜리를 비범한 능력과 연결한다. 더욱이 그러한 비범한 능력이 발현되는 영역이 철학, 정치, 시, 예술로 구체화된다. 여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던진 질문의 요지는 비범한 철학자, 비범한 정치인, 비범한 시인, 비범한 예술가들이 왜 멜랑콜리에 빠진 인물들인가인데, 이러한 질문에는 멜랑콜리 기질이 비범함과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사실이 이미 전제되어 있다. 김동규에 따르면, 멜랑콜리가 비범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에게 주어진 기질이라는 인식은 고대 희랍인들에게는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자명한 전제였다(2009: 127).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어 멜랑콜리 기질을 지닌 비범한 인물로 엠페도클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같은 구체적인 인명을 예로 들기까지 했는데, 이를 보면 멜랑콜리는 단순히 의학적 상식을 넘어서는 철학적이고도 미학적인 생산성과 결부되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처럼 멜랑콜리는 보통 이상의 천재적인 기질로 이해된다. 과도한 검은 담즙은 우울하고 슬픈 정조를 일으키는데, 그 정도가 심각해지면 광기에 가까운 질병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에 멜랑콜리의 핵심적 이미지는 “어둡고 음산한 영혼의 고뇌”(김동규, 2009: 131)로 표상된다. 이렇게 생리적인 검은 담즙은 영혼과 내면의 어둠으로 연결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멜랑콜리를 “성스러운 질병”인 간질과 나란히 두면서 이러한 질병이 지니는 광기와 신적인 힘을 언급한다(NM: 57). 그는 문제들에서 멜랑콜리 기질을 지닌 사람들로 시인, 무녀, 예언자를 꼽으며 이들이 자신을 잃을 정도로 신적인 영감에 차 있었던 사실을 밝힌다. “시라쿠스 사람, 마라쿠스는 몰아경에 있었을 때, 훨씬 더 좋은 시인이었다”(NM: 57). 게다가 검은 담즙이 점점 더 뜨거워지면 “노래를 동반한 흥겨움과 광기, 그리고 고뇌 등의 분출을 자아낸다.” 또한 “실성하기도 하고 더 영리해지거나 요염해지며, 쉽게 정염과 욕망에 움직이고 어떤 사람들은 말수가 많아진다”(NM: 57).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멜랑콜리는 이처럼 인간 내면의 유동적인 힘을 이끌어내는 변화무쌍한 기질이다.
멜랑콜리가 천재적인 시인의 기질이라고 할 때,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또 하나의 천재성은 바로 작시(作詩)의 중요한 부분인 은유 제작 능력에 달려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를 일상어와 대립시키면서 고상하고 비범하고 생소한 말들의 조합과 이동으로 이해한다. 그에게 은유는 ‘전이, 이동’(epiphora)(김애령, 2013: 30)이다. 즉 은유는 한 단어를 다른 사물에 속한 단어의 자리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김애령은 이것을, 단어를 그것이 원래 속한 자리에서 다른 자리, 생소하고 낯선 자리로 이동시키는 언어적 사건으로 규정한다(2013: 30).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다음과 같이 은유를 설명한다.
  • 가벼운 방식으로 앎에 다다르는 것은 모든 이에게 본성적으로 즐거운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묘사하는 것은 말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앎을 주는 말이 가장 즐거운 것이다. 일상적인 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반면, 낯선 말은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은유는 우리를 가장 먼저 이러한 상태에 들어가게 한다. 우리가 노인을 그루터기라고 부르자마자(『오디세이아』 14권 241행), 우리는 종개념의 도움으로 배움과 앎을 매개하게 된다. 이 둘은 시듦이라는 종에 속하기 때문이다. (김애령, 2013: 34, 재인용)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가 앎의 즐거움을 준다고 말한다. 일상적인 언어에 어떤 낯선 요소를 부여함으로써 인식의 즐거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이는 “인간은 통상적인 것에서 벗어난 것에 경탄하고 경탄할 만한 것은 즐겁기 때문”(김애령, 2013: 35, 재인용)에 가능하다. 김애령이 지적하는 것처럼, 은유는 배움과 경탄의 즐거움을 일깨운다. 게다가 낯설지만 이해가 가능한 은유는 즐거운 느낌을 자아낸다(2013: 35).
아리스토텔레스의 은유론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유사성에 기댄 은유의 자유로운 속성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은유는 주어와 술어를 자유롭게 연결하는 언어 사용법이다. 시학에서 밝힌 것처럼, 은유는 “유에서 종으로, 혹은 종에서 유로, 혹은 종에서 종으로, 혹은 유추에 의하여 어떤 사물에다 다른 사물에 속하는 이름을 전용하는 것이다”(2004: 124). 이것은 논리적이고 일상적인 어법을 벗어난다. 은유에서 중요한 것은 “주어와 술어가 계사를 통해 연결되면서 어떤 새로운 의미와 이미지가 창출된다는 점”(김동규, 2009: 141)이다. 유사성에 근거한 주어와 술어의 비일상적 결합은 생경하면서도 독창적인 어떤 이미지를 탄생시킨다. 이때 이미지는 의미론적 중요성을 담지한다. 다시 말해서, 이미지는 단순히 시각적 감각을 자극하는 그림이 아니라 하나의 사고 체계로, 그 자체로서 의미 생성의 담론이 될 수 있다. 권혁웅의 표현을 빌자면, 한 이미지 안에서 “이야기와 가시성은 서로 호환된다”(2016: 207). 이미지는 관계를 정립하고 또한 재정립하면서 “담론의 분석이나 개념의 탐구를 통해 드러나지 않는”(권혁웅, 2016: 209)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는 혁명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요컨대, 서로 다른 것들에서 남들은 쉽게 보지 못하는 유사성을 찾아내는 것이 은유를 창출하는 핵심적인 능력인데, 이러한 은유는 이미지와 결합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연결의 가능성을 재정향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은유를 창출하는 능력이 교육을 통해 진전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교육될 수 없는 타고난 능력의 표시라는 것이다(2004: 134). 그런 의미에서 은유 창출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천재의 표징”(2004: 134)이다. 은유가 교육될 수 없으며 설명이 불가능하고 불가해한 영역의 징표라는 이해는 은유와 꿈 이미지 사이의 유사성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언적 꿈을 꾸는 현상을 멜랑콜리와 연관 지어 설명했다.
  •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예언을 하거나 예언적인 꿈을 꾸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떤 신성이 꿈을 보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모든 이들의 본성이 수다스럽고 멜랑콜리하기 때문이고, 모든 가능한 현상들을 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많고 다양한 정념들을 통해서 유사성을 보는데 그들이 성공하기 때문이다. (김광규, 2009: 142, 재인용)

    멜랑콜리적인 사람들은 격렬성으로 인해 원거리 사수처럼 정확하게 활을 쏜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에 급변할 수 있는 그들의 태도로 인해 그들 앞에는 연속해서 그다음 이미지가 급속도로 다가온다. … 게다가 그들의 행동은 매우 커다란 격렬성으로 인해 또 다른 행동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다. (김광규, 2009: 143, 재인용)
수면은 인간의 정신 활동이 자유롭게 터져 나오는 순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열기가 과도해지면서 영혼이 정상보다 더 많이 움직이고 그 움직임은 잠들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하기에 멜랑콜리는 수면 속에서 시작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에서 꿈 이미지를 멜랑콜리라는 기질 탓으로 돌린다. 과잉으로 넘쳐나는 정념들이 서로 연관시키기 어려운 사태 사이의 유사성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김동규, 2009: 143). 새로운 이미지의 창출은 일상적인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의 커다란 차이들 속에서 공속적인 유사점을 발견함으로써 가능하다. 이렇듯 멜랑콜리 담론에는 독창적인 시각적 이미지, 시적 천재성이 발현되는 사건으로서의 은유가 관계하면서, 멜랑콜리는 창조적인 이미지를 생산하는 기질적인 기초가 된다. 다음은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멜랑콜리론과 은유론을 바탕으로 진은영의 “멜랑콜리아”를 살펴보기로 한다.

3. 진은영의 “멜랑콜리아”

진은영은 이야기와 이야기된 것 사이의 간극을 선명하게 의식하는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진은영의 ‘멜랑콜리’는 바로 이 간극에서 발생한다. 멜랑콜리를 지닌 사람은 사물을 관통하는 시선의 깊이를 지니며 대상의 내면을 파악하는 통찰력을 지니기에(김홍중, 2006: 12), 외부와 내면의 간극에 예민하다. 다시 말해서,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 것 사이의 간극은 멜랑콜리에서 비롯된 통찰력이라 말할 수 있다. 진은영의 “멜랑콜리아” 시 전문은 다음과 같다.
  • 그는 나를 달콤하게 그려놓았다 뜨거운 아스팔트에 떨어진 아이스크림 나는 녹기 시작하지만 아직 누구의 부드러운 혀끝에도 닿지 못했다

  • 그는 늘 나 때문에 슬퍼한다 모래사막에 나를 그려놓고 나서 자신이 그린 것이 물고기였음을 기억한다 사막을 지나는 바람을 불러다 그는 나를 지워준다

  • 그는 정말로 낙관주의자다 내가 바다로 갔다고 믿는다

이 시는 ‘나’와 ‘그’의 관계를 이미지를 매개하는 가운데 풀어낸다. ‘그’는 ‘나’를 그림으로 표상한다. 그 그림은 매우 구체적인데, ‘그’가 그린 그림에 의하면, ‘나’는 “뜨거운 아스팔트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이고, “모래사막”에 떨구어진 “물고기”다. 이 시에서 ‘나’는 이렇게 다양한 이미지로 존재한다. 그런데, ‘그’가 ‘나’를 그림으로 표상하는 것은 ‘그’와 ‘나’ 사이의 메울 수 없는 존재론적 간극이 상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동규의 지적에 따르면,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여러 의미의 단어를 파생한다. 가령, 어원을 따져보면 그림을 ‘그리다’라는 동사는 ‘그립다’라는 형용사로 발전하게 되고, ‘그립다’에서 ‘그리움’이 전성된다(2009: 123). 이렇듯 그리움이 ‘마음에 떠오르는 그림’이라면, 그림은 대상의 부재로 인한 그리움이 불러낸 이미지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의 ‘그’는 결국 대상의 부재로 인한 그리움을 담아 ‘나’를 그리는 사람이다. 이처럼 ‘그’와 이미지로 존재하는 ‘나’ 사이에 상정된 거리감과 간극을 인식하는 것이 이 시를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이 시에서 그림은 대상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림은 ‘나’를 규정하고 인식의 범위 내에 붙잡아 두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고뇌하는 예술가이자 학자다. 그러나 이 시는 ‘그’가 그리는 ‘나’가 계속해서 소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인 ‘나’는 녹아 사라지고, 사막의 모래바람은 물고기 형상의 ‘나’를 지운다. 결국, ‘그’는 ‘나’를 규정하지도 붙잡지도 못하면서 계속 지워지는 것에 “슬퍼한다.” 부재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슬픔은 멜랑콜리를 앓는 자의 전형적인 감정이다. 그러므로 ‘그’는 멜랑콜리적인 인물이다. 멜랑콜리적인 ‘그’는 지속해서 이미지를 창출하지만, 이 시에서 ‘그’는 ‘나’의 본질에 닿지 못한다. 이미지를 생산하는 행위만 거듭될 뿐이다. 류신에 따르면, 멜랑콜리에 감염된 인물은 “상실한 대상을 다른 대상을 통해 대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여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이미지를 제조하는 자”(2012: 97)다. 그러므로 멜랑콜리적인 인물의 상실감은 더욱 깊어지기 마련이고, 이미지를 창출하려는 열망은 그에 비례해 증폭한다. 그런데 이 시의 마지막 행은 ‘그’를 낙관주의자로 정의한다. 멜랑콜리적인 인물의 전형이라면, ‘그’는 결코 낙관주의자가 될 수 없지만, 이 시에서 ‘그’가 품는 ‘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자기중심적인 안이함을 내비치는 또 다른 표현이다. ‘그’는 ‘나’란 존재에 대해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안일한 기대가 ‘그’를 자기애적 인물로 만든다. ‘그’는 ‘나’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다. 이 시에서 ‘나’는 ‘그’가 그려준 모습으로 존재하다 사라지면서 존재의 명멸을 경험하지만 정작 그 ‘나’가 누구/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다. 요컨대, 이 시에서 중요한 점은 이미지에는 상실이 담겨있다는 사실이다.

4. 강의실에서의 ‘멜랑콜리’ 수용

4.1 질병으로서의 멜랑콜리

멜랑콜리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 중심의 이론 강의를 듣고 진은영의 ‘멜랑콜리아’를 읽은 뒤 학생들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는 멜랑콜리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보는 것이었다. 자기가 생각하는 멜랑콜리 혹은 멜랑콜리적인 인간에 연상되는 이미지를 자유롭게 그려보도록 학생들을 독려했다. 무엇을 그려도 허용되는 자유에 오히려 부담을 느끼는 학생들도 더러 있었지만, 학생들 대부분이 정답이 없는 과제인데다 자기 사유를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며 성실하게 참여했다.
이 활동은 이미지에 대한 두 가지 가정에 기인한다. 첫째, 이미지는 역동적이라는 것이다. 이미지는 명사적 실체라기보다는 대상을 감각적으로 재현하는 움직임 자체를 말한다. 여기에는 그리는 자의 욕망이 손쉽게 투영되기에 더욱더 역동적이다. 둘째, 이미지는 유사성을 작동시키는 체계 자체의 동력으로, 사유 체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권혁웅은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시 교육 방법론의 변화를 촉구하면서 이미지 자체가 교육적 방법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이미지에는 개념이나 설명을 대체하는 새로운 사유 역량이 내재할 뿐 아니라 상투적이고 일상적인 것들을 끊어내는 혁명적 체험이 담겨 있다(2016: 200). 이 활동이 의도하는 바는 학생들이 스스로 이미지를 창출하는 멜랑콜리적 인물이 되어 이미지의 역동성을 직접 체험하는 데 있다.
이 수업에서 제출된 수많은 멜랑콜리 이미지를 통해서 정작 학생들이 ‘멜랑콜리’ 개념을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지를 목도할 수 있었다. 학생들 대부분은 ‘멜랑콜리’를 개인화하며 자기 내면의 상처로 인식했다. 내적 상처를 가감없이 이미지화하는 것은 교수자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학생들은 솔직한 자기표현을 해냈다고 생각되는데, 이러한 바탕에는 시각적 이미지의 간접성이 주는 안정감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수업에서 이미지는 학생들 자신의 욕망이나 성정이 투영되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학생들이 내놓은 이미지들을 추려보면 [그림 1]과 같다.
[그림 1]
그림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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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편이 조금 넘게 제출된 그림들은 비교적 다양한 형상을 보여주었지만, 그럼에도 이들 이미지는 어느 정도의 유형화가 가능했다. 대체로 안과 밖이 다른 이중성,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내면의 상처, 자기 파괴적인 욕구와 무기력 등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이 중에서도 내부의 아픔을 감춘 채 아무렇지 않은 듯 가면을 쓴 존재에 내재한 이중성은 가장 많은 학생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대표적인 멜랑콜리 이미지였다. 멜랑콜리의 검은 담즙은 학생들을 통해 내면의 붉은 선혈로, 자신의 정신적 질병을 드러내듯 시각적으로 노출되었다. 이는 장대한 역사를 지닌 서구의 멜랑콜리 정서가 현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 마음속에서 지극히 주관화된 형태로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학생들은 대부분 멜랑콜리를 어두운 정서로, 하나의 질병으로 받아들였다. 요컨대, 학생들에게 멜랑콜리는 자기 내면의 상처에 대한 은유로 작동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일찍이 카프카는 자신의 일생을 바친 문학을 질병이라 단언한 바 있다. 카프카는 실제로 결핵으로 심한 고통을 받다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문학은 그의 질병을 딛고 개화했다. 아프다는 고백은 주관적 감정의 토로를 우선시했던 낭만주의 문학에서도 흔히 목격되는 현상인데, 내가 아프다는 인식은 인간이 곧 감성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입증할 뿐 아니라, 자신이 독톡하고 개성적인 존재라는 사실도 확인시켜 준다. 고통과 아픔은 인류의 보편적 현상이지만, 주관적 개인 속에서 그 고통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은영이 지적하듯이, 이때 질병은 건강에 대립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건강을 찾아가는 한 상태로서 건강에 포함되는 것이 되어야 한다(2012: 78). 그런 의미에서 질병으로서의 멜랑콜리 또한 개인의 특이성을 표현하는 비명의 언어를 담지하면서 보다 창의적인 정상성을 추구하는 이행의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수많은 학생들의 그림 앞에서 이렇게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 만약 이 질문이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림이 “욕망과 충동으로 추동되는 생명 형식과 같은 무엇”(미첼, 2010: 22)이라고 우리가 전제하기 때문이다.

4.2 치유의 과정

그림이 상처라면, 그림은 치유를 원할 것이다. 자기 상처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을 객관화하는 것이 치유의 과정이 될 수 있다면, 글쓰기는 이에 가장 적합한 예술 양식이 될 수 있다. ‘멜랑콜리아’라는 제목 아래 쓰인 진은영의 시를 학생들은 어려워했다. 그러나 ‘그’와 ‘나’의 관계를 연인으로 두고 그 관계를 중심으로 시를 읽어보자고 권유했을 때, ‘그’가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애적 인물이라는 점에는 쉽게 동의가 이루어졌다. ‘그’와 ‘나’의 관계가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는 상대의 참된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만약 인간에게 허용된 참된 모습이라는 게 있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 명멸하는 존재다. 즉 현존하면서도 부재하고 부재하면서도 현존하는 이미지, 즉 예술적 재현을 통해 가시적 영역으로 수없이 소환되는 존재다.
학생들에게 주어진 두 번째 과제는 진은영의 시를 바탕에 두고 자기 시를 창작하는 것이었다. 진은영의 시는 하나의 표본이 되고 학생들은 이를 모방해도 좋았다. 대부분은 몇 가지 단어를 바꿔 넣으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했고, 완전히 자기 시를 만들어내는 학생들도 소수 있었다. 학생들의 시를 몇 편 살펴보면 [그림 2]와 같다.
[그림 2]
작시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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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멜랑콜리아’의 이미지를 자기 나름대로 변용했다. 학생들은 얼음, 달빛, 나무, 장미 등의 이미지들을 사용하면서 우리에게 친숙한 이러한 대상들이 낯선 환경에 떨어졌을 때 발생하는 소멸을 제각각 그려냈다. 40명이 넘는 수강생들이 진은영의 시를 바탕으로 주조해낸 이미지들은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다들 달랐다. 은유가 천재의 징표라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떠올린다면, 주어와 동사의 간극을 메우려는 제각각의 은유의 수사는 학생들에게 잠재된 천재성의 발현이라고 할 것이다. 서술어에 어울리는 주어를 찾아내려는 노력은 이질적인 것들 속에서 유사성을 꿰뚫어 보는 천재적인 창조성과 맞물린다.
그런데 눈여겨볼 사실은 이러한 창조성에 내재한 힘이 곧 상처를 치유하는 생성의 담론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시인이 된 학생들은 직접 시를 제작하면서 머릿속에 과녁처럼 박히는 이미지들을 경유하며 언어를 조율하고 통제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치유의 힘을 발견해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받아들인 질병으로서의 ‘멜랑콜리’에 머무르지 않고 이 정서를 통제하는 창작 행위를 통해 치유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학생들의 창작 행위는 개인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았고, 학생들은 서로의 사유와 각자가 주조해낸 이미지들을 공유하면서 창작의 개별성과 동시에 담론의 보편성을 확인했다. 멜랑콜리 담론을 다루면서 특별히 주목을 받았던 한 모둠은 자신들의 사유 과정을 연극적 장치를 통해 표현하기도 했다. 5인으로 구성된 이 조는 멜랑콜리적인 인물을 내세워 한편의 이야기를 제작했는데, 이들 이야기는 타인의 시선을 갈망하고 인정받으려는 내적 갈망으로 인해 병적 우울감에 빠져버린 인물을 다루고 있다. PPT 파일에 그림을 그리고 음성을 입혀 완성된 이 이야기는 지금 우리 대학생들이 겪고 있는 보편적인 갈망과 상처로 이해되는 측면이 있었다. 진은영의 시가 그랬던 것처럼, 타인의 시선에 의해 주조되는 ‘나’는 부재와 현존 사이에서 명멸하면서 자기 정체성의 소멸로 고통을 겪는다. 이에 학생들은 진정한 ‘나’를 찾기를 원했고, ‘나’의 회복과 존재 가능성은 내적 힘을 축적하는 치유 과정에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가령, 학생들이 발표한 서사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그림 3]과 같이 끝난다.
[그림 3]
학생들의 발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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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발표가 제시하듯이, 병적 우울감을 겪은 주인공은 치유를 향해 나아간다. 다만 여기에서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모습은 타인의 시선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타인과의 성숙한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는 발판이자 출발이 될 수 있음을 학생들에게 주지할 필요는 있었다. 진정한 ‘나’라는 것도, 독립된 개별성이라는 것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정립됨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홀로 외떨어진 섬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고리나 매듭과도 같은 존재임을 환기하는 것은 이 수업이 의도하는 협업적 창의성과 맞물린다. 결국, 이 모든 서사는 교수자가 의도했다기보다는 수업 구성원으로서의 공동체가 보여주는 다소 즉흥적인 반응과 이미지에 내재한 열린 의미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창출된 것이다. 놀랍게도 학생들은 멜랑콜리 담론을 통한 이미지 제작 활동과 토론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상처와 치유라는 새로운 담론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이미지와 예술적 표현 양식이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사유 체계로서 학생들에게 교육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훌륭한 기제가 되어준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5. 결론: 경계에 대한 인식을 향하여

멜랑콜리적 인물이 보이는 창조성은 이미지 제작, 시적 은유를 재탄생시키는 과정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다소 생경한 서구의 멜랑콜리 담론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미지를 주조하고 시를 창작하는 과정은 어떻게 보면 멜랑콜리적 인물을 교실 환경에서 동료들과 함께 집단적으로 가상 체험한 것과 같다. 학생들은 이러한 체험 앞에서 놀라울 정도로 솔직했고 용감했다. 그 배경에는 은유를 사용하는 예술적 재현 양식의 간접성과 그것에서 비롯된 안전성이 자리한다. 은유라는 이동의 수사법은 그 이동의 속성으로 인해 안전하게 내면을 표출하는 방패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이 수업이 의도한 효과는 자아를 정의하고 자아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역으로 타인에 대한 인지와 인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데 있었다. 고대 서구인들이 생각한 것처럼 멜랑콜리가 서로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유사성을 감지하는 데 특화된 기질이라면, 우리가 ‘나’를 사고하기 위해서는 또한 나의 바깥을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개체의 잉태는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모든 창조적인 개성화는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자기 상실과 자기 재현을 오가는 경계 지대에 대한 통찰, 그것만이 유아론적 자기 인식에서 벗어나 건강한 자아를 획득하는 방법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중요하다. 수업에서 이루어진 학생들의 활동은, 멜랑콜리 담론의 체험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질병과 치유, 부재와 현존을 관찰하는 것이며, 멜랑콜리를 유발하는 불안정한 간극에 대한 창조적 인식을 통해 자아를 성찰하면서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갈 역량을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Notes

1) <소통의 인문학>에서 다룬 문학 텍스트 목록은 다음과 같다. 희곡,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단편 소설,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 셜리 잭슨의 제비뽑기,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시 윌리엄 워즈워스의 “우리는 일곱이에요,” 진은영의 “멜랑콜리아” 등이다. 문학의 대표적인 장르인 시, 소설, 희곡을 골고루 안배하면서 장르에 따른 개별 작품의 특징적인 면을 부각하고자 했고 문학 장르의 포괄적인 이해를 돕고자 선별했다.

2) ‘멜랑콜리’의 어원과 계보, 수용과정에 대한 개괄적 설명으로 최문규(2005: 201-212), 김홍중(2006: 9-13) 참조

3) 해당 도표는 롤랜드 램브레트(Roland Lambrecht)의 것으로 김동규(2014: 21)에서 재인용

4) 문제들의 저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아리스토텔레스인지 그의 추종자인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연구자 대부분이 이 저서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데 동의한다.

5) 텍스트로는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현대 철학자에 이르기까지 멜랑콜리에 관한 글을 엮은 영역서 멜랑콜리의 본질(The Nature of Melancholy)을 사용했고 이하 NM으로 축약해 표기한다. 해당 인용문 번역은 필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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